힘겨웠던 코로나 시기, 딱 이 맘때 갑암 진단을 받았죠. 처음에는 별거 아니겠거니 했는데, 전이가 너무 많이 됐었어요. 양쪽 귀밑부터 쇄골 밑 혈관까지..수술시간이 5~6시간 정도였고 절개부위도 20센티 정도..
동위원소까지 마치고 참 힘들었어요. 몇 달간 말도 제대로 못하고 2~30분 걸으면 지쳐쓰러지고..감정조절이 어려워 가족끼리 갈등까지..휴..그간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회복을 위해 미친듯이 살았네요. 영양요법, 기능의학 공부도 엄청하고, 운동은 뭐..ㅋ 제가 지금 주짓수를 시작한지 2년 4개월째이고, 대한민국 명산을 계속 오릅니다. 러닝도 3~5키로씩 꾸준히 하고요. 첫 해에는 꼼짝을 못했지만 계속 움직이니 이렇게까지 되네요.
오늘은 3년차이기도 했고, 생일기념이기도 해서 다시 한라산에 올랐습니다. 동위원소 끝난 다음해부터 시작해 벌써 세번째입니다.
오늘은 성판악~관음사 코스로 왔는데요. 개인적으로 관음사~성판악 코스가 가장 힘들고요. 오늘 코스는 무난하다 보시면 되는데, 지침없이 꾸준한 페이스로 짧은 시간안에 잘 돌아왔습니다. 올해 여름 지나면서 체력이 급격히 좋아진 느낌입니다. 그전에는 조금씩 좋아지던게 점프한 것 같은..
정상에서 찍은 사진 몇 장 올립니다. 지금 힘드신 모든 분께 제 사례가 희망과 용기가 되었으면 해요.
말도 안 되는 나이에 진단을 받고, 미친듯이 관리를 시작한지 6개월이 경과됐다. 3~4월만 해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억이 아예 입력되지 않아 가족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 일이 계속 되었다. 샤워 후 옷을 어디둔지 기억나지 않아 발가벗은채 몇 분씩 해매기도 했다. 가스렌지에 불을 켜놓고 다른 일을 하는 건 그냥 애교정도로 봐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을 누구에게 말 할 것이며, 누구에게 말한들 믿어 주기나 할까..기껏 믿을 수 있는 이에게 말했더니 모두 똑같이 나도 그렇다는 소리나 하고 있었다. 나이 먹어 깜빡깜빡 하는 것과 경도인지장애는 전혀 다른 것임을 4~50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긴 세브란스 병원에 가보니 아예 신경과 교수조차 진단서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냥 돌려 보내려 하더라. 그런데 그거 아는가. 이 모든 걸 가장 믿을 수 없는건 바로 나 자신임을.
어쨌든 내 인생 최대위기를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아도 사회생활은 할 수 있지만(심지어 일부러라도 계속해야 한다), 이를 방치하면 결국 치매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내게 가장 큰 실망을 끼친 것 역시 의학이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 때문이고, 이것이 쌓이는 걸 지연시켜 주는 약을 먹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아볼 수는 있었다. 유전적 요인인지, 혈관성인지, 알츠하이머인지..그런데 웃긴게 이미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그 원인을 아는게 크게 의미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원인을 알아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비슷할 것이라 뭐랄까..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문가 강의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직 공부할 수 있을 때, 뭔가 기록해두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을 때 움직여야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긴 아내마저도 내 상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 내 살길은 나 혼자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기능의학'을 알게 됐다. 몇 백시간 분량의 강의를 들어보니 하는 얘기가 조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에 대한 내용은 같은데, 또 다른 접근을 하고 있었다. 즉, 장과 뇌를 한 축으로 보는 것, 중금속과 환경호르몬 등에 의해 형성된 신경독소가 신경을 공격하는 것, 뇌에 과도하게 쌓은 활성산소가 뇌혈관을 공격하여 상하게 하는 것, 호모 시스테인 수치가 높아져 뇌에 문제가 생긴 것, 비타민 B6,9,12의 결핍, 스트레스의 문제, 수면문제 등 정말 많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 얘기 대로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게 좋았다. 장누수와 신경독소 제거를 위해 NO슈거,NO글루텐,NO액상과당,NO식물성기름/저탄고단지+세미 케톤식을 시행했다. 아예 100일 정도는 모든 걸 끊어버렸다. 활성산소 제거를 위해 비타민C 메가도스를 하루 12000~15000을 시행, B군 고용량 복용(특히 12를 1000정도), 오메가3 메가도스, 마그네슘 400mg, 유산균 메가도스, 프레그네놀론, DHEA, L타이로신, 글루타치온 등을 순차적으로 기존 비타민D3+k2에 더해 시행했다. 기름은 모든 요리에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사용했다.
100일 정도 지나니 다른건 다 괜찮은데, 빵을 안 먹는게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호밀빵이 괜찮다고 해서 겨우 타협하였다. 일의 특성상 외식을 안 할 수가 없는데, 공기밥을 안 먹거나 절반만 먹는 것으로 타협했다. 커피는 9:1의 비율로 드립커피 중심으로, 어쩔 수 없이 음료수를 마셔야 하면 제로로 선택하였다. 집에서는 백미 40+발아현미 40+잡곡20의 비율로 밥을 짓고, 우유와 계란은 무항생제로 선택했다. 집안의 대소사는 당분간 모두 안 하는 걸로 얘기하였다. 심지어 명절마저도. 잠은 6시간 이상 자려고 했고, 매일 주짓수나 러닝, 가끔 등산을 시행했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나고 나니 일단 급격히 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막은 느낌이다. 급브레이크를 잡은 것이 성공한 것 같은게, 특정상황이 기억나지 않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전에는 입력자체가 아예 안 되었는데, 지금은 깜빡은 해도 입력은 되는 것으로 보인다. 말을 하는 것도 평소에는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그런데 여전히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말을 더듬고,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 일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고지혈증약과 혈압약은 다끊었지만 모두 정상수치를 보이고 있다. 체중은 4~5키로 정도 추가감량 할 수 있었다. 일단 샤워 후 옷이 어디둔지 몰라 헤매는 일은 없어졌다. 운전을 하면서 톨게이트를 잘 못 나가는 일도 아직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에너지가 모이질 않는다. 다른 사람과 공감을 하며 대화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강사와 목회를 하는 내게는 치명적이다. 또한 순간적으로 상황을 놓칠 때가 많다. 수면시간이 조금만 틀어져도 일을 제대로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내 상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지금처럼 꾸준히 유지하면 더 악화되는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최근 코로나 유행이 심상치 않습니다. 문제는 치료제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이에 정부에서는 백신접종을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냉방병도 흔해서 분별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1. 코로나, 감기, 냉방병 코로나와 감기는 바이러스 감염입니다. 냉방병은 아니지요. 그러나 기온이 낮고, 건조할 때 면역력 약한 사람에게 발병하는 것은 같은 원리입니다.
2. 백신 감기와 냉방병은 백신이 없습니다. 코로나는 있지요. 저도 코로나 초기에는 2차+확진 후 항체 또는 2~3차 접종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권하지 않습니다. 항체형성 기간도 짧고, 접종에 따른 이익보다 부작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지요.
3. 치료제 감기, 냉방병은 치료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감기약은 사실 해열진통제에 불과합니다. 코로나는 팍스로비드란 약이 있지만 지금 부족한 실정입니다. 정부에서 곧 공급한다 하는데,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4. 예방법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와 동거 중입니다. 평소 면역력이 높으면 병세가 안 올라오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올라오지요. 따라서 면역력 관리가 중요하겠고요. 응급처치를 잘 해야 하겠습니다.
(1) 물 충분히 마시기 (2) 비타민 D: 성인 5000iu 정도, 초등 고학년~청소년 2000~2500iu, 초등 저학년 1000~2000iu 정도 꾸준히 복용하기 (3) 비타민 C: 성인과 청소년 3000~6000mg(식사 때마다 1~2알씩 복용하거나 3천짜리 가루형 1회 복용), 어린이는 먹기 쉬운 걸로 1000~3000mg 복용 (4) 비타민 B: 성인과 청소년은 전체적으로 성분별로 50mg정도에 맞춰서, 어린이는 절반수준으로 (5) 고기 충분히 먹기: 혈중에 건강한 콜레스테롤이 적정량 있을 경우 감염예방 효과도 있고, 회복도 빠르다는 연구가 꽤 있습니다. 고기 섭취량은 자기 체중정도로 맞추면 됩니다. 50kg은 50g, 70kg 은 70g 이런 식으로...
5. 응급처치 방법 (1) 일단 타이레놀은 드시지 않길 권하고요. 저 같으면 이부프로펜이나 나프록센 성분의 소염진통제를 먹겠습니다. 이지엔6, 그날엔, 탁센, 맥시부펜 등이 있습니다. 효과가 시원치 않으면 2시간 후 타이레놀 1알 정도 교차복용 해도 괜찮습니다.
(2) 비타민 C를 1~2시간 마다 2000~3000mg 정도, 반나절~하루 정도 복용하면 열도 내려가고, 면역력도 오르며, 회복 속도도 빨라집니다. 설사 나오기 전까지 용량 제한 없이 드세요. 비타500, 비타1000, 고려은단 비타민 음료와 함께 복용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3) 비타민D는 일시적으로 1만 iu 이상 복용해도 됩니다. 저는 갈비뼈가 골절되었을 때 하루 15000iu 정도를 약 열흘간 먹었는데, 골절된 뼈가 금방 붙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4) 비타민 B 중에서는 B1 티아민 성분이 중요합니다. 활성형으로 된 것으로 복용하는게 좋은데, 에너지를 올리고 활력을 찾아 줍니다. 약국에서 몸살감기약을 달라고 하면 주는 약이 실제로는 타이레놀+활성형 비타민 B1 성분입니다.
(5) 마스크는 증상 발현 시 쓰는게 좋고요. 환기를 잘 안시키는 실내에서도 착용하는게 좋습니다.
요약. <생활습관: 물, 운동, 잠> <비타민 B,C, D 복용>, <이부프로펜, 나프록센으로 해열진통 가능>, <식사: 고기류를 충분히 먹기>
수련회를 준비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다시 컨디션이 이상해짐을 느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수련회가 은혜 가운데 잘 끝나고, 내 마음도 감동과 보람으로 가득찰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힘들었다. 지금 상태로 목회를 계속할 수 있을지, 이런 상태로 해도 되는 건지, 해도 얼마나 더 해야하는 건지..나는 산을 오르며 기도를 시작했다.
변산반도 내변산, 계룡산, 남한산성 남한산을 올랐다. 몸을 극한으로 몰아 붙이며 모든 잡념을 지우고, 오롯이 내면의 소리와 주님의 음성에 집중해 보려 했다. 내 스스로 지금 상황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마음이 안정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거나 강의, 설교를 들으며 산을 올랐는데, 체력이 바닥에 이를 때쯤 나는 이 작은 이어폰마저 거추장스럽고, 무겁다고 느껴졌다. 이에 이어폰을 바로 빼버리자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곤충 소리와 산을 휘감는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마치 자연에 스며든 하나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아그간 내가 내 마음의 번민이 강해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 했구나..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듣다보니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구나..'
이제부터는 바람, 계곡 물, 곤충, 동물 소리를 들으며 산을 올랐다. 내면을 비우고 주님의 음성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니 깊은 감동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산에게 명령하여 바다에 던져지라는 권능을 주시진 않았지만, 저 산을 오를 수 있는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믿음을 주셨구나..'
'특정 기능. 말하기 능력, 암산력, 판단력 등은 급격히 감퇴했는데, 왜 공부하고 정리하며 운동하는 능력은 살려두셨을까..아, 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어라.. 나를 믿는 자신감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단단해지게 하셨구나. 지금은 크게 넘어졌지만 주님께서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계시구나'
'왜 인생을 살며 인간을 가장 괴롭게 하는 질병을 한 번도 아닌 두번이나 경험하게 하셨을까..아, 이 경험을 통해 지금 아파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라는 것이구나. 그간 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이제는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는 목회를 하라는 뜻이구나..'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중증 질환자나 삶의 고민과 아픔, 큰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이들이 편히 찾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너무 자연으로 가지 않지만 접근성이 좋은 한적한 곳에, 예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한 명 한 명과 깊은 만남을 갖는 목회를 하는 것. 중증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힘이 되는 것. 내가 직접 돈을 버는게 아니라 이 뜻에 공감하는 이들의 힘을 받아 하나님 일을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큰 방향만 본 것일뿐 구체적인 부분까지 세워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역과 목회는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내 인생과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 새로 펼쳐질 인생 2막은 좀 다른 길이 펼쳐지지 않을까. 걱정하기 보다 기도하며 순종하는 것이 백배 더 나은 지금이라 할 것이다.
암 투병 이후 2년 반만에 보는 숫자이다. 그간 주짓수를 주2~3회 90분씩, 다른 날은 헬스장을 가거나 산을 타며 운동을 했지만 감량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 골밀도가 떨어지며 6~70대의 뼈상태까지 악화 되었다.
급기야 지난 4월에는 중대한 진단을 하나 더 받게 되었는데, 나는 물론 의사조차 믿기 어려워 3회에 걸쳐 상담, 검사를 진행하며 세브란스에서까지 진단이 나오게 되었다. 암 투병 이후 생긴 각종 합병증과 약물 부작용 때문에 생긴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깊은 절망의 시간을 보내며 미친 듯이 살길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원인조차 설명을 못했고, 당연히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대체의학은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그리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하게 기능의학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현대의학의 한계를 경험한 의사들이 연구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실낱 같은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벼랑 끝에서 살 길을 찾고, 대형트럭이 바로 눈 앞에서 멈춘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매일 몇 시간씩 시간을 내어 수백편의 강의를 들었다. 전문가의 노하우가 집약된 강의를 보며 계속 공부하니 순식간에 눈이 뜨였다. 심지어 아이들의 이해하기 어려웠던 말과 행동도 대강의 이해가 되었다.
처음 암 판정을 받고 마음이 무너짐을 경험하고, 이제 또 비슷한 길을 가게 되었지만....아이들을 더 깊이 만날 수 있게 되고, 이 녀석들이 건강히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줄 수 있게 되니....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영육을 살고 죽이는구나....를 깊이 체감하게 되니
'아, 이래서 하나님이 내게 시련을 또 주셨구나....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실수가 없고, 내가 측량 못할 계획이 있으시겠지....그냥 주님만 더 굳게 믿으면 될 것을....' 하는 깨달음과 은혜를 느끼게 된다.
5월 1일부터 본격적인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약 40여일이 지난 지금의 내 상태는 여전히 별로이다. 이번 달에만 고가의 중요 검사를 3회 더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내 마음은 두 달 전과 아주 다르다. 몸도 아주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어 더 투지를 불타게 한다. 6개월 후 나는 감량도 성공하고, 건강지표가 최소한 악화되진 않게 하거나 호전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23~40)
22년 1월 7일 암 수술 후 2년이 넘어간다. 처음 수술+항암 이후에는 몸이 걸레짝이 된 느낌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피로감이 극심했으며 전신 무기력증에 수족냉증이 심해져 6월까지 양말을 신고 자야했다. 체중은 96.5kg까지 증가했었고, 혈압은 180까지 솟구쳤다. 골다공증 역시 덤으로 찾아왔었다.
처음에는 걷기만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이것도 7~8천보를 넘기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매일 시도했더니 어느 순간 1만보를 가뿐히 넘기기 시작했다. 대략 3~4개월 정도 걸린 듯 하다.
1만보를 넘어 2만보를 향하던 어느 순간 몸에 큰 변화가 없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와...산을 오르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으며 내려오자마자 쓰러져 잤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후 1년이 넘게 평일 쉬는 날, 주말을 이용해 등산을 했다. 특별히 시간을 내기 어려울 때는 매일 걷기를 했다. 그렇게 수술 15개월 후 나는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 물론 후유증이 상당했었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족냉증, 극심한 피로감, 전신 무기력증, 근력부족 등은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어려웠다. 그때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찾아갔던 것이 주짓수였다. 주짓수 시작 후 1~2개월 동안은 준비운동만으로도 호흡이 딸렸다. 스파링을 한 번만 해도 팔다리가 후들거려 운전도 못 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몸이 너무 굳어 있어 제대로 기술구현도 못했었다.
그래도 딱 한달만 버텨보자 시작했던 주짓수에 재미가 붙어 입관 3개월만에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조금씩 몸이 좋아짐이 느껴졌다. 일단 매일 2~30분 전에 가서 스트레칭(요가)을 하는게 몸을 푸는데 큰 도움이 됐고, 주짓수의 각종 롤링이나 드릴이 유연성과 기초체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입관 1년 넘어까지는 몸 상태가 예전의 60% 수준이라 스파링 자체가 많이 무서웠다. 누군가와 대결이 무섭다기 보다는 몸이 안 좋아서 느껴지는 그런 두려움이었다. 근력도 딸리고, 호흡도 딸리며 혹시 다치면 어떡하지라는..뭐 그런..
이때 나는 또 다시 뭔가 도약이 필요함을 느꼈다. 마침 집 앞에 헬스장이 하나 생겼다. 과감히 6개월 선결제 후 등록을 했다. 주짓수를 매일 가면 몸이 너무 쑤시고, 힘들기도 했고..일단 야근이 있는 날은 출석이 어려워 주2~3회로 맞추고, 나머지 절반은 헬스를 했다. 예전에 허리 수술을 했기에 데드나 스쿼트를 강하게 할 순 없으나 각종 근력운동과 유산소는 등산에도 도움이 됐고, 일단 내가 다시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게 했다. 당연히 주짓수 실력도 급 상승하는 느낌을 받았고, 기술구현도 좀 더 수월하게 이뤄졌다.
주짓수 4그랄이 되자 뭔가 여유가 생겼다. 그간 죽도록 고생한 결과물이 이제야 올라온다는 느낌이랄까..이제는 예전만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이 즈음에 스미스머신으로 벤치프레스 100kg을 찍기까지 했고, 90kg으로는 수회 반복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골다공증 검사 후 결과지를 받았던 날, 설날 산소에 다녀오면서 느꼈던 극심한 피로감에서 내가 여전히 암 환자란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지난 2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골다공증은 더 심해졌고, 9시간이 넘는 장거리 이동은 피로감이란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뭐랄까...괴로움? 까지 느끼게 했다. 아, 아직 멀었구나..진짜 예전처럼 되는 건 불가능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이 피로감은 열흘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제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또 다시 뭔가 도약이 필요했다. 그래서 2월부터 주짓수가 끝나면 체력운동을 시작했다. 한 주정도는 결석했으니 이제 4주차로 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푸쉬업 100개를 도전했다. 3주차 때쯤 기술수련을 할때 아쉬움이 있어 여기에 버피테스트 100개를 추가했다. 아휴..힘들었다. 또 허리에 부담이 있어 2~3일 쯤 지나서부터 슬로우 업그레이드 버피(내려가고, 푸쉬업 하고, 두 다리 당기고, 스쿼트로 상승)로 전환했다. 4주차에는 복근운동을 추가했다. 상하체를 새우처럼 동시에 말아올리기이다. 약 3일정도 했는데,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체력운동 시작 후 한 달정도 지나니 아내가 내 가슴을 보며 깜짝 놀란다. 뱃살이 들어가기 시작한 걸 보고 또 놀란다. 아직까지는 근육통만 있을 뿐 테니스엘보나 무릎 통증은 없다. 대신 허리에 살짝 부담이 있는 듯 하여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 체중변화도 아직 없다. 대신 눈바디를 통해 몸이 좋아진 걸 느끼고, 스파링을 할때 나는 평소처럼 했는데, 상대가 힘들어 하는게 보여 운동 효과가 느껴진다(당연히 배려하며 더 힘을 뺀다).
지금 같아서는 이 페이스를 여름까지 가져갈까 싶다. 체중감량을 목표로 하지 않고, 체지방 감소+근육량 증가를 목표로 한다. 그렇게 눈바디가 마음에 들 때쯤 바디프로필을 한번 찍어보고 싶다. 가능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계속 성공해 왔다. 이번에도 그러고 싶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이미 건강에 엄청나게 겸손해졌는데, 더 겸손해 졌다는 것. 골다공증에 따른 부담감은 여전히 매우 크고, 피로감 역시 평생 가져가야할 숙제이다. 그나마 근력량이 늘어나서 불안이 조금 감소하긴 했는데, 신지는 평생 먹어야 하고, 골다공증 역시 영양제를 채워가며 평생 함께 갈 녀석이다. 에잇, 시합출전은 힘들어졌다.
지난 2년 간의 운동후기를 이렇게 남긴다. 이번에는 건강회복의 차원에서 몸짱의 수준까지 도달하고자 한다.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지만 40대 중반, 암 환자로서 갈 수 있는 최선의 길까지 가볼까 한다. 그렇게 또 길을 걷고, 바닥을 구르다보면..몸을 늘리고 이완하다보면, 재발의 불안감도 많이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서울대에서 나온 자료를 보니 갑상선암 환자의 재발률은 10년 후 33%, 20년 후 50%가 넘는다. 나도 언젠가 다시 재발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몸을 계속 만든다. 또 다른 질병, 예컨대 뇌 혈관 질환(심혈관은 계속 병원 관리 중이라 걱정이 덜하다)이나 또 다른 암이 발생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이걸 한번 경험해보니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질병을 이겨내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준비되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21년부터 작년까지의 상담 및 사건처리 지원실적을 정리해 봤다. 22년 상반기는 집중치료 기간이었기에 실적이 없어서 사실 대략 30개월 정도의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모든 사안 무료진행)
우리 연구소에서 다뤘던 사건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니 총 건수는 121건이었다. 단순계산으로는 매주 1건 정도로 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1건을 수일에서 수개월에 걸쳐 처리했으니 실제 부담은 더욱 크다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성폭력 37건, 직장 내 성희롱 22건, 학교폭력 10건, 교권침해 8건, 성중독 6건, 성 관련 종합상담 5건, 자녀교육 6건, 아동학대 3건모욕 2건, 직장 내 괴롭힘 2건, 성평등 2건, 성매매 1건, 부부상담 1건, 개인정보 1건, 무고 2건, 기타 문의 13건이다.
징계 또는 형사사건이 될 수 있는 사안만 추려서 어떤 이가 얼마나 가해행위를 했나보니 친구 26건, 교사 16건(교회교사 1건 포함), 직장동료 10건, 학생 9건, 목회자 5건(전도사 1건 포함, 교단 미분류), 학부모 5건, 교수 2건, 동료 교인 2건, 성인 지인 3건, 미상 1건 등이었다.
우리는 이 모든 걸 강연활동과 병행하여 진행했기에 아침, 밤을 가릴 수 없었고, 많은 에너지를 써야만 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성고충 위원회에 들어가면 몇 시간씩 소요되곤 한다. 사실 이 정도 되면 아예 비영리단체 등록을 해서 후원을 받고, 전문 상담직원을 모시는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올해도 벌써 3건의 사안을 상담하였고, 사건처리를 지원하는 중이다. 모든 사안이 피해자의 입장에 맞춰 순리대로 처리되길 바라고, 아예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길 기원한다. 어쨌든 올해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걷는다.
교회개척 6년을 꽉 채웠다. 우리교회는 그간 여러면에서 성장해왔는데, 벌써 25가정 40명(성인 6명, 어린이 7명, 청소년 27명)이 모이게 되었다. 우리 교회의 선한 사역에 대한 칭찬도 많이 듣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이-청소년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위기가정' 친구들이 새로 등록하는 사례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걸 바로 이 지점에서 확인한다. (세 가정 중 한 가정)
사실 교회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개척교회의 특성상 내가 많이 채워야하는데, 건강문제 때문에 예전만큼 안되고..욕심이 커서 아이들에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교육과 먹거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고..
그런데 신기한건, 도움이 필요할때마다 꼭 맞게 좋은 분들께서 십시일반 해주신 덕에 그 어려운 코로나시기도 이겨내며 지금까지 달려오고 있다. 특히 내가 암에 걸렸을 때는 폐교회까지 고민했었으니 하....그땐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올해 추수감사주일은 눈물도 많이 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보니 마음 타들어 갈 일이 너무 많았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가정폭력이나 빈곤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럼에도 힘들 때마다 내게 연락하고, 신앙으로 이겨내는걸 보면 기특하고, 고맙다. 살아내주어, 용기내주어,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맛있게 음식을 먹어주어..그냥 다 고맙다.
쓰디쓴 인생의 순간이 많지만, 나는 주의 자녀로 살며 좋은 이들을 만나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아팠던 학창시절을 이겨냈었다. 이 친구들에게도 주님께서 내게 그러셨던 것처럼, 긍휼을 베풀어 주시길..힘주시길..좋은 이들을 보내주시길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