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첫번째 도전 : 성장환경


세상은 저를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말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헤어지시고, 시골에 계신 조부모님께 보내져 성장한 이른바 '조손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예, 이 사람 바람몰이. 나이 다섯에 부모님께서 헤어지시는 모든 과정을 직접 보았습니다. 15년간 생선장사와 삯바느질로 저와 여동생을 키우셨던 조부모님을 뵈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그 삶의 궁핍함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큰 충격이었고, 아픔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조부모님의 헌신적인 모습과 정직한 삶의 자세에서 '삶' 이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배웠던 즉, 나의 성실함과 의지, 그리고 인생과 사람에 대한 겸손함, 눈물어린 기도로 살아가야 함을 어린 나이부터 내면화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도전 : 학업과 직장생활의 병행


고교를 졸업한 저는 바로 독립을 하였습니다. 두 조부모님께서는 10년 전부터 저희 오누이때문에 미뤄왔던 이민을 가시게 되었고, 제 아버님은 빚 때문에 제 학비를 조달해주실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대학 1학년 시절부터 학업과 아르바이트 또는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수업을 오전과 오후 첫 교시로 맞추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직장을 향했습니다.

수학 강사였던 저는 감사하게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어린 나이에 주임으로 승진하였고, 학원 전반의 업무 및 상황을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임기간 두산동아 주최 수학학력평가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결과를 이끌어내며 2 연속 우수학원으로 선정되게도 하였고, 또한 꼼꼼한 지도를 통해 두산동아스쿨 우수강사 표창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일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피로에 지쳐 밥을 먹으며 잠에 들기 일쑤였고, 길을 걸으며 정신을 잃어 다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저는 무리한 업무와 운동 탓에 허리를 상하게 되었고,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3-4,4-5번 두개가 문제였으나 이 중 3-4번만 수술)

인생의 세번째 도전 : 수술


사실 디스크 수술은 그리 크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 약 2주간의 입원을 요하기도 합니다. 허나 제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소변을 볼까 두려워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반식물인간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태권도 4단에 특공무술 수련을 더하여 두려울 것이 없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었습니다. 이러던 차에 더 이상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왔고, 평생을 이 고통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 생각하게 되자 극심한 우울과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침상에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 데..' 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저는 제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침상에 누워 제 내면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울함과 분노의 이면에 자리잡은 제 영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잠시 그만 두려 했던 신학에 다시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하다보니 가난하고, 힘든 이 땅의 민중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크고 화려한 교회와 배불뚝이 목사님들이 보였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찌할 수 없는 이 세상의 구조가 보였습니다. 어떻게든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힘이 없었고, 이것에 대항할 지혜도 지식도 부족했습니다.

저는 미친듯이 학문에 임했습니다. 수십, 수백여편의 논문과 책을 독파하였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 수 업는 세계구조를 위해 국제경제학을 부전공하며 세상의 구성원리를 공부했습니다. 인간을 알고 교육을 위해 기독교교육학을 부전공하며 끝없이 탐구해 나갔습니다.
 
그리고나서 학교를 졸업하며 다시 세상을 보니 이제야 뭔가 조금씩 눈이 트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이 보이고, 세상의 구조악이 보였습니다. 그 짠맛과 빛을 잃은 대결과 반목을 조장하는 이 땅의 기독교가 보였습니다.

저는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이 땅의 신학도이자, 예비 목회자로써 어떤 길을 가야할지. 어떤 기도를 하고,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 할지를 말입니다. 

결혼과 늦깍이 군복무


지금의 아내는 바로 이런 저를 좋게 보아주었습니다. 가진 것은 하나도 없고, 빚 뿐이던 제 꿈과 뜻을 존중해주었습니다. 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살지도 모를 이 험한 길에 기꺼이 함께 해주겠다 하였습니다. 저는 25년동안 단 한번도 여자를 만난 적 없이 지금의 아내를 첫사랑이자 배우자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저는 안산에서 독거노인 어르신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이 때, 아내는 임신 중이었는 데, 이런 저를 믿어 주었고, 아이가 태어난 후 군복무를 하게 된 저에게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아내는 제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료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나이 27세에 늦깍이 군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복무는 제 삶에 또 다른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헤어짐과 조부모님의 고생을 직접 본 인생의 첫번째 도전, 20대를 혼자 힘으로 이겨내야만 했던 두번째 도전과 세번째 도전을 넘어 이제 네번째 도전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길고 험난한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너무 길어 예전에 작성한 글을 참고로 걸어둡니다.

결혼 3년 아내에게 첫 휴가를 주다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349407
움켜쥔 걸 내려놓으니 행복이 왔다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334519
주말부부 6개월 가족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끼다 ( 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180604)

새로운 도전!


저는 지금 성평등 전문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예방강의를 하고, 양성평등 교육을 합니다. 전업주부 생활을 거치며 갖게 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참 좋습니다. 양성평등은 시대적 대세임에 비해 우리는 너무 늦은 감이 있고, 이를 변화시켜 삶의 질을 높여가는 건 참으로 보람있는 일입니다.

또 저는 한신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Ph.D)에 입학하였습니다. 사실 강의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닙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지요. 셋째까지 태어나고 나니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과감이 푯대를 향해 걷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길을 통해 제 전문성을 더욱 기하고자 작정하였습니다.

저는 늘 도전받아 왔고, 이 도전을 기꺼이 감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삶이란 도전의 연속이면서도 경험하면 할수록 신비하고, 감사한 것임을 깨달아왔습니다. 저는 이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블로그는 그 첫번째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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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몰이
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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