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20.12.11 산타 할머니는 무엇을 타고 오실까? 사라진 루돌프는 어디에?
  2. 2020.12.08 눈사람은 여자일까 남자일까? 어린이 성교육, 생물학적 성
  3. 2014.02.06 예쁜 딸, 씩씩한 아들 이게 최선입니까? 2
  4. 2012.08.20 첫 여성 대통령 후보, 그리 달갑지는 않습니다.
  5. 2012.02.09 아빠의 정성, 건강한 겨울나기 비법입니다.
  6. 2011.07.23 왜 '마초'가 남자다움의 상징인가? 3
  7. 2011.07.07 성매매 거부했다고 '기수열외' 당하다니... 14
  8. 2011.06.10 가슴에 파묻힌 사회, C컵 이하는 여자도 아니다? 12
  9. 2011.01.24 블로거 드디어 방송출연하다! 24
  10. 2011.01.07 남편, 가족을 위해 저녁만찬을 준비하다. 4
  11. 2010.11.02 성희롱 처리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무슨 의미일까? 2
  12. 2010.08.27 요즘 신혼부부의 이혼률이 증가 하는 이유 12
  13. 2010.08.20 늘 혼자인 아빠, 그가 설 자리는 언제쯤 만들어질까? 14
  14. 2010.06.08 돈 줄 테니 애 낳아라? 왜 20조나 쓴 저출산대책은 실패했는가. 10
  15. 2010.03.17 셋째 안 낳느냐는 말에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 20
  16. 2010.02.16 다섯살배기 아들이 자위를 하는 데 어떡하죠? 16
  17. 2009.11.11 화성신문과 인터뷰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18. 2009.10.27 "꿀벅지"가 성희롱이 맞냐구요? 7
  19. 2009.10.22 성범죄가 만연한 세상을 탓하기 전에! 5
  20. 2009.10.21 나는 왜 양성평등 운동을 얘기하는가 2
  21. 2009.10.15 남자인 내가 여성단체에 들어가게 된 이유 13
  22. 2009.09.25 전업주부남편,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다 9
  23. 2009.03.17 마트에서 캐쉬백 적립하는 남자..이상한가요? 73
  24. 2008.11.21 어느 페미니스트의 이중생활 15
  25. 2007.11.08 사람을 만드시다


신개념 산타 할머니는 루돌프와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타고 다닐까?

루돌프는 어디로 간걸까?

과연 산타 할머니의 연세는?

https://youtu.be/s-fVwrQz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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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자연스러운 성교육의 시작

생물학적 성의 구분을 귀여운 캐릭터 친구들의 인형극으로 알아본다.

https://youtu.be/vWqEBZQyu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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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아들, 씩씩한 딸로 기르면 안되는 걸까요?

왜 우리는 늘 씩씩한 아들과 예쁜 딸만 기르는 걸까요.



아들을 예쁘게 기른다하여 '여자' 같은 남자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딸을 씩씩하게 기른다하여 '남자' 같은 여자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이면서도 상대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는 아이로.

대결과 경쟁만이 아닌 공존과 평화의 감수성도 지닌 아이로.



'여성'이면서도 당당하고, 적극성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는 아이로.

관계적 감수성에 주체성을 고루 갖춘 아이로 길러 보자는 것입니다.



씩씩하고, 경쟁지향적이기만 한 '아들'과 예쁘고, 감성만 살아있는 '딸'은 이미 충분히 많습니다.

이젠 누구나 갖고 있는 양성적 잠재성을 타고난 기질과 잘 조화를 이뤄 길러줄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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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박근혜 씨가 확정되었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난 대선때도 박근혜 씨는 강력한 대권주자였고, 이미 새누리당은 박근혜 씨의 '사당'이란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씨가 여당의 첫 대권후보로 확정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최소한 남성만이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기존의 편견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씨가 진정 우리 역사에 있어 유의미한 존재가 되려면 정책을 통해 그 의미가 증명되어야 한다. 물론 박근혜 캠프측은 정부-교육-여성 순으로 정책공약을 발표하며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서 갖는 의미를 잘 살려보려 노력하고 있다. 임신부터 양육까지 국가책임제도로 간다는 컨셉은 좋은 슬로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는 박근혜 씨를 여성친화적이라 평가하는데 인색한 편이다. 박근혜 씨에게 가해지는 일련의 비판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해봐야만 여성, 보육정책을 잘 해낼 수 있다는 말은 모순 덩어리 명제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늙어 보지 않고는 노인정책을 꾸릴 수 없다는 것이 되고, 외국인이 되어 보지 않고는 다문화 정책을 꾸릴 수 없다는 말이 된다.

필자가 박근혜 씨에게 거부감을 받게 되는 측면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그가 보여온 제왕적 리더십이다. 이는 매우 강한 심정적 거부감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섬김이나 낮아짐 등은 박근혜 씨와는 왠지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데, 이러한 느낌을 받는 것이 필자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조차 모르는 그에게서 어떤 섬김과 낮아짐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두 번째 측면은 박근혜 씨가 가져온 여성정책의 내용이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그의 정책 속에 핵심이 되는 중심원칙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이른바 여성정책이란 것은 여성의 문제로 특화시켜 볼 부분도 있지만 모든 정책에 있어 고르게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즉, 단순히 여성문제를 여성만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여성/남성 모두의 문제로서 '양성평등'이란 확고한 방향성과 원리위에서 수립되어야만 한다. 어떤 조직이나 정책이든 여성과 남성의 문제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와 구조를 개선할 수 있으며 근본적인 여성정책의 수립이 가능해 진다.

(사실 이 문제는 박근혜 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그 어떤 후보에게서도 획기적인 정책제안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박근혜가 첫 여성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에도 신선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여성 대통령이란 점 자체가 여전히 낯선 것은 우리 뿐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박근혜 씨가 여성이란 의미가 살기 위해서는 그가 내세우는 정책과 정책수행 과정 역시 뭔가 다른 점이 보여야 한다. 지금처럼 제왕적인 모습과 원칙 없는 모습으로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끝으로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은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곳곳의 핵심 지도부에는 여전히 남성이 주로 포진해 있다는 것이며, 우리 사회의 가부장성 역시 여전한 문제라는 것이다. 단순히 정치 지도자의 성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를 보다 관계 중심적이고, 양성평등한 구조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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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겨울이 참 춥습니다. 작년처럼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집니다. 지난 1월 내내 왕복 5시간에 걸친 이동을 하며 공부를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때 몸이 많이 약해진 듯 싶습니다.

요즘은 부쩍 아이들과 아내도 피곤한듯 보였습니다. 다행이 저희 아이들은 올해도 큰 병치례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기나긴 겨울을 보내다보니 조금 지친 것 같았습니다. 특히, 아내는 출산을 앞둔 몸으로 공부를 하고 있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 결심을 하나 했습니다. 매일 준비하는 저녁이지만 오늘은 뭔가 특별한 것을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물론 그렇다고해서 거창하고, 아주 비싼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물가가 워낙 많이 올라서 말이지요. 아무래도 저렴하면서도 기운이 날 수 있는 음식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심한 것은 바로 '불고기' 였습니다.

1. 먼저 정육점에 갔습니다. 저희 동네 돼지고기 시세를 알아보니 생삼겹은 1근에 10,800원이고, 생목삼겹은 12근에 9,800원이더군요. 하하, 많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지요. 또 불고기에는 목살도 좋지만 사실 앞다리살이 정석입니다. 1근에 6,500원씩 하던데요. 그래서 저는 2근을 구입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먹을 맵지 않은 간장 불고기용과 저희 부부가 먹을 매콤 불고기용입니다.

2. 냉장고와 베란다를 보니 양파와 배추가 보였습니다. 깨끗하게 손질하였지요. 또 묵은지를 찾았습니다. 이것은 저와 아내가 먹을 고기를 하기 위해서 따로 챙겼지요. 불고기를 할 때는 야채를 듬뿍 넣어줘야 기름기도 잡을 수 있고, 섬유질도 보충할 수 있지요. 또 묵은지를 잘 사용하면 특별한 양념 없이도 맛있는 매콤 불고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3.양념은 시중에 판매하는 것이 아닌 제가 직접 만든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간장에 물엿을 살짝 넣고, 고기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미림을 살짝 넣어 줍니다. 그리고는 고기와 야채를 넣어 잘 비벼주어 양념이 잘 스며들게 합니다.

4. 매콤 불고기는 묵은지를 사용하여 요리하였습니다. 먼저 참기름과 식용유를 살짝 프라이팬에 뿌려 줍니다. 그리고는 묵은지를 잠시 볶아 주지요. 이때, 매콤한 맛을 내기 위해 고춧가루를 살짝 얹어 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묵은지가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그 때 고기를 넣어줍니다. 그리고는 맛나게 볶아주면 끝나지요.

5. 자, 이제 이렇게 만든 결과물을 공개하겠습니다~~짜자잔!!!

 

 


먼저, 간장 불고기 입니다. 사진에는 별로 안보이지만 배추를 비롯한 야채를 듬뿍 넣어 느끼함을 잡아내고, 나름의 꾸미기까지 진행하였습니다. 하하, 어떤가요. 먹을만해 보이나요? ^^


두번째는 매콤 불고기입니다. 묵은지와 돼지고기, 고추를 곁들여 밥도둑이 완성되었습니다. 사진으로는 이 냄새를 전해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그 냄새를 한번 맡으면 밥을 먹었어도 또 먹고 싶어지게 된답니다. ^^



어제 저녁 식탁의 모습입니다. 워낙 요즘 단백질이 부족했던터라 이번 식단은 단백질 위주였습니다. 두부조림과 콩자반은 원래 있던 것인데, 어제 저녁식탁 컨셉에 딱 들어 맞았습니다.

이렇게 만든 저녁식탁은 약 15,000원 가량의 재료비가 들었습니다. 작다면 작은 돈이고,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 식탁이었지만 저희 가족은 너무도 맛나고,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 아내는 제 정성을 보아 주었고, 딸아이는 아빠와 함께 준비하는 저녁식탁이 놀이처럼 즐거웠던 같습니다.

(맛은 어땠냐구요? 하하, 제가 제 입으로 너무 너무 너무 ~~~ 맛있었다고 하면 안 되겠지요? ^^;; 네, 그냥 밥솥을 다 비웠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저희는 저녁 시간은 소식을 하는 편인데, 어제는 오랜만의 과식을 하고 말았네요..ㅠ.ㅜ;;)

사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식사 준비를 한다는 건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곧 잘 저녁준비를 하곤 합니다. 물론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를 통해 가족을 위한 아빠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지요. 이러한 아빠의 정성은 그 어떤 영양제보다 알차고, 그 어떤 과일보다 달콤하며, 그 어떤 예방주사보다 건강한 겨울나기의 비법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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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남자다운 것인가?

요즘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오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보면 극중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에게 차 안에서 소리치는 장면이 나오지요. 자기랑 같이 살건지 죽을 건지 말하라 소리를 지릅니다. 또 이 장면을 그대로 따와서 무한도전의 모 개그맨은 '죽을래 사귈래'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지요.

어제 해피투게더를 보다보니 또 비슷한 맥락의 모습이 나옵니다. 방송에 출연한 모 개그맨은 함께 출연한 여배우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거침 없이 몸을 만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얼굴을) 쳐주는 게 멋진거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지요.

물론 위 드라마는 극의 흐름에 따라 최대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는 것이였을 겝니다. 또 아래의 예능프로 역시 웃자고 했던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고민이 됩니다. 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매우 일방적이고, 마초성이 강한 모습을 남자다운 것이라 여기는 것일까요. 반대로 왜 여성은 이럴 때 가만 있거나 그냥 '가세요' 정도만 해야하는 것일까요.

남성성과 여성성은 늘 변해왔다

소위 말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이란 것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늘 변화해 왔습니다. 때론 통통한 여성이 미의 기준이 될 때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나 성적 욕구를 표현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남성 역시 모든 걸 책임지며 꼭 '바깥 일'만 할 필요도 없고, 이렇게 소리를 잘 지를 필요가 없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것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은 것이며 이것을 굳이 따를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자면 이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21세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실상 '한물 간' 사상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이른바 '선진국' 그룹은 양성평등을 국가 경쟁력 확보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수적 과제임을 인식하고, 각 종 정책과 사회문화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당연히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반성이 있고, 성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소질과 흥미, 적성에 맞는 일과 캐릭터를 개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요.

허나 우리는 여전히 여자 아이는 핑크, 남자 아이는 블루를 가르칩니다. 여자 아이는 늘 치마를 입으며 '선머슴아' 처럼 뛰어다니지 말라 집안의 어른들이 훈계를 하십니다. 저는 무려 20년을 넘게 공직생활에 있던 7급 공무원이 자기 팀장에게 커피를 타다 바치는 모습 역시 많이 보았더랬지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관념은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각 국의 문화와 사상이 교류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성역할'에 대한 부분은 우리 모습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성의 경계를 허물고, '양성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병대 사건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해병대의 여러 사건 속에 저는 왜곡된 남성성 역시 굉장히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판단을 합니다. 가령 성매매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수열외를 당해버린 병사의 사례는 그 극명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부사관은 구타를 금지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사병들에게 왕따를 당해 상담을 하기도 했지요.

모두 전형적인 '남자다움'에 대한 오해 속에 나온 것들입니다. 여성을 많이 거느리거나 성경험이 많은 남성, 구타를 참아낼 줄 알아야 남자다운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이지요. 미군을 보면 구타를 없애고, 수직적인 질서가 아닌 프로의식과 자율적인 팀웍 형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강군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군문화 즉, 왜곡된 남성성에 기반한 문화로 21세기를 끌고가려 하니 끝없이 문제가 나오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양성성을 개발한다는 것은

제가 양성성이 잘 갖춰졌다 생각하는 분 중 한분이 '차인표'씨입니다. 차인표 씨는 드라마에서는 굉장히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하시지요. 그 분의 외모부터가 남성미가 물씬 넘치기도 하구요. 각진 턱선과 엄청난 근육.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차인표 씨가 가정에서 생활하는 모습이나 어린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부드러운 모습을 보게 되지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연출이 아님을 '입양'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도 있구요. 

또 다른 예로 저는 채시라 씨를 들기도 합니다. 채시라 씨를 보면 우선 참 훤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요. 특히, 이 분의 젊은 시절 미모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채시라 씨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프로' 의 모습이 물씬 풍겨납니다. 매우 철저한 자기 관리와 개발의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양성성을 개발한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남성도 여성성을 개발하며 여성성의 측면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여성도 남성성을 개발하며 남성성의 측면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성과 여성이 화성과 금성에서 온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닌 서로 하나될 수 있고, 어울려 더불어 사는 그래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정리하며

저는 위 방송에서 나온 모습을 이해합니다. 드라마이고, 예능이니 그랬겠지요. 그러나 이것을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곤 합니다. 또 이러한 고정된 성역할을 주장하는 분들과도 자주 논쟁을 벌이곤 합니다. 이러한 관념이 우리의 정신사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나 문화의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마초 같은 남자나 현모양처 같은 여자라는 캐릭터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것을 감지해야 하고, 이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교육부터 군대 문화에 이르기까지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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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열외, 왜곡된 남성주의


한겨레 신문을 보다보니 성매매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기수열외' 당한 해병대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남성주의를 개탄하게 됩니다. 너무도 광범위하고, 우리 아이들이 매우 어릴 적부터 이렇게 교육받고 있다는 것은 더욱 문제입니다.

가령, 우리는 흔히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라' '사내자식이 그것도 못 참아' '총은 자기 애인 다루듯 하여라' 등의 이야기는 왜곡된 남성주의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문구들입니다. 사실 남자만이 아닌 누구나 뭐든지 한번 일을 시작하면 깔끔한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겠지요. 남자도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괜찮고, 총기관리를 신중히 하는 것은 굳이 자기 여자 애인 얘기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해병대 기수열외 사건의 이면에는 '남자는 이래야해'라는 가부장주의에 기초한 왜곡된 남성주의의 한계가 남성성이 극대화되어 있는 해병대에서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군대도 양성성 또는 양성평등 의식을 함양해야...
 
저는 우리 사회가 한단계 성숙하기 위해서는 양성평등 의식을 함양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게 됩니다. 남성이지만 여성성을 동시에 고루 갖춰야 하고, 여성이지만 동시에 남성성을 고루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여자 같은 남자를 만들거나 남자 같은 여자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양성이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그 감수성을 기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무엇을 하든 양성이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 줄 아는 그래서 서로 차별하지 않고, 동등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학습을 하고, 능력을 배양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만 강한 조직력이 나오고, 갈등이 생겼을 때 원활히 해결해갈 수 있으며, 동시에 강한 추진력도 얻을 수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더 느리고, 덜 효율적인 것 같지만 이렇게 조직문화를 행복하게 바꿔가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우정을 쌓아가는 게 종국에는 더 효율적이며 강한 응집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군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 군대는 '남성성'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터프해도 좋고, 싸움을 잘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되지 않지요. 예를 들어, 군기를 폭력으로 잡는다는 생각 같은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타나 폭언은 일시적으로는 순종하게 만들 수 있어도 근본적인 동기부여나 자발적 복종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소위 말하는 대표적인 '남성성' 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지요.

또 다른 예로는 여군간부 비율도 들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자 ROTC는 이제야 시작되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사관학교의 경우 예전부터 여자 후보생을 선발하였으나 전체적인 우리 나라 여군 간부비율은 3.5%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는 여군 자체가 적은 것도 있겠으나 여군으로 입대하여 진급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문제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수많은 기업이 여성 간부비율을 할당해 집중 육성하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한 모습입니다.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문화를 선도하는 조직이 되기를

저는 이참에 군대가 한국 사회의 양성평등 문화를 선도하는 조직이 되면 어떤가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 군대는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각 종 기술교육부터 전투력 강화를 위한 정신안보교육까지 종류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효'나 '가족사랑'에 대한 것이 있지요. 아마도 군생활에 동기부여를 위해 도입한 것일 겝니다.

그렇다면 군생활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양성성 개발교육도 할만 합니다. 소위 '여성성' 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참고 : 저는 '남성성' '여성성'으로 규정된 것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갈등을 인식하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힘이 되어주는 교육. 조직력 강화를 위한 부드러우면서도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리더쉽. 남군과 여군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제도개발과 의식함양 등 교육 할 수 있는 분야와 방법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군대가 '마초'를 기르는 집단이 아닌 이 사회의 참된 일꾼을 양성하는 집단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최소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기수열외 시켜버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지요.
 
정리하며

인생에 있어 가장 예민한 시절이 바로 20대 초반입니다. 많은 고민을 하고, 이 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진로가 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이 때 어떤 교육을 받고, 경험했느냐는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남성은 모두 군대를 가게 되고, 이곳에서 공통된 경험 즉, 남성성을 극대화시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군 조직력이나 전투력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나는 지금이야말로 양성성 또는 양성평등 교육을 도입할 시기가 아닐런지요. 그래서 최소한 여성을 성적 노리개나 대상으로 보지 아니하고,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며, 리더쉽이 단순히 '나를 따르라'만 있는 게 아님을 알기만해도 우리 군대나 사회는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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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여배우의 '가슴'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단 섹시 스타의 기본 조건으로 가슴을 먼저 꼽게 되었고 몸매 역시 가슴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지요. "착한 가슴" "베이글녀" 니 뭐니 하는 문구와 내용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연기자나 가수 데뷔 역시 가슴 마케팅을 먼저 시도하는 경우도 흔한 것 같고 말입니다.

가슴이 일종의 상품이자 자기 과시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의미라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지 싶습니다. 수많은 남성팬의 관심을 받아야 먹고 사는 걸그룹 또는 여자 연예인은 가슴이 곧 돈이 되고 섹시스타로서의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가치부여가 '가슴'으로 상징되는 '외모'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지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여자 연예인 뿐 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외모'에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슴 사이즈나 몸매에 대한 남성의 열망은 상상 이상이니 말이지요. 늘씬하고 하얀 다리를 잘 드러내고, 큰 가슴을 보여주면 이제는 아예 새로운 개념의 '덕德' 이 생겼다며 '육덕'이 있다 하면서 취직도 잘 되고, 보다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날 수도 있다 하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여성비하 또는 차별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여성의 몸에 대한 규격화 되고 정형화된 이미지 덕에 이른바 "쭉쭉빵빵"한 일부 소수의 젊은 여성만이 아름다워졌고, 수많은 대다수의 여성은 섹시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 되었으며,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여성은 자신의 몸이 볼품 없어졌다 여긴채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배후에는 우리 사회의 여성의 지위가 숨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는 언듯 보기에는 '여성상위시대'로 보이지요. 가정에서도 엄마의 힘이 더 세고, 사회에서도 엄마의 입김이 장난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즉, 경제권이나 정치적 권력, 출산 후 사회진출, 기업내 임원비율 등을 보면 여전히 우리 나라는 매우 후진적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 후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여성의 몸과 성을 매우 치밀하고, 교묘하게 상품화 시킵니다. 결국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뚱뚱해도 안되고, 쌍커풀이 없어도 안 됩니다. 키가 작을 수는 있으나 그러면 어떤 연예인처럼 오밀조밀하게 비율 좋은 몸매와 귀여운 외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성의 두세배가 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남성도 참 많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은 남성에 대한 폭력이기도 한 것입니다. 쉽사리 "착한 가슴"을 갖고 있는 여배우를 보며 환상에 젖어 판타지에 빠지게 되지요. 이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 또는 물화 시키며 여성의 몸에 대한 소유와 통제의 욕구를 강화시킵니다. 결국 여성을 상대로 배려나 존중보다는 일방성을 담보할 확률이 증대되구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통념을 증대시키고, 남성 스스로를 이중적인 모습에 빠지게 합니다.  

또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남자 취급을 못 받습니다. 키가 작으면 남자 축에도 못끼고, 야외에 나가면 힘도 잘 쓰면서 용감한 척도 해야 합니다. 숯불 한번 제대로 못 피우면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직장에서는 매일같이 야근에 술자리를 가져야만 하구요. 여직원 컴퓨터 본체나 포맷도 일일히 다해줘야 합니다. 또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무슨 남자가 쪼잔하게 그러냐'며 핀잔을 듣습니다. 이것 역시 정말 피곤하지요. 결국 양성간 성적차별과 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남자만 행복한 것도 아닌 매우 이상한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겝니다.

러니 참 어려운 얘기지요. 저도 딸만 둘인데, 이녀석들이 살아갈 인생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견하게 됩니다. 또 아들만 있는 분들도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지요.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가부장적 개념에 빠져있는 이상은 그 누구도 쉽게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없을 겝니다. 이제 더이상 성평등의 문제는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트래픽이 너무 늘어 무슨일인가 했습니다. 다음 메인에 글이 실렸군요. 오랜만에 실린 거라 참 반갑고, 이곳에 방문하신 독자님을 환영합니다. 오늘 하루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며 앞으로 더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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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드디어 방송출연하다!

[문화]블로그 인생 2011. 1. 24. 17:47 Posted by 바람몰이


처가에 내려가는 데 왠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매우 친절한 말투의 여성이었습니다. 제 블로그를 보고 연락했다면서 KBS VJ특공대에 출연제의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짜증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동안 방송출연을 두고 방송국과 여러 차례 교류하며 단 한번도 좋은 기억을 가져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도 지난 번과 별반 다름없을 것임을 예상하며 그리 친절치 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제가 제게 방송출연 제의를 한 계기를 물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대개의 경우 방송국과의 대화는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주제를 제시하고, 출연을 요청하며 일반인 출연진은 방송출연만으로도 기뻐서 제대로 대화조차 못하는 매우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우선권을 가져오려 했던 거지요. 

방송컨셉과 연락을 취하게 된 계기 등이 쭉 설명되었습니다. 우선 주제는 "딸바보" 라고 하였습니다. 딸을 무지무지 사랑하는 아빠에 관한 얘기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성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니 관련 내용까지 설명해줄 것을 부탁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관련글 : 1억이면 어떠랴...네가 주는 행복이 그 이상인데)


하지만 저는 여전히 무뚝뚝한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작가님에게 그 동안 있었던 방송국과의 악연을 세세히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제작진 내부에서 제대로 회의해서 출연이 확실해지면 다시 전화하라 통보했습니다. 어설프게 하는 건 거절한다는 거지요. 사실 저는 오산에서 일산까지가서 인터뷰를 마치고도 출연 거절 통보조차 못 받고 버려진 경험이 있습니다(방송국의 친절함이여!) (관련글 : 블로거의 방송출연 제의 다섯차례 거절했습니다, 블로거 방송국에 또 낚이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지난 며칠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방송국 계통은 전반적으로 참 오만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일단 뭔가 일을 함께 하려했으면 잘 되든 안 되든 문자라도 한통 주는게 예의지요. 그런데 자신들이 아쉬울 땐 설설 기다가 필요없게 되니 버려버리는 이런 기본적인 사람에 대한 예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처음 통화했던 그 작가입니다. 출연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정지어 예전같이 섭섭한 일이 없게 하다보니 늦었다 합니다. 그리고 내용을 들어보니 그랬습니다. 제가 전화인터뷰에서 제시했던 여러 이야기가 반영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상당히 만족스러웠지요. 방송내용이나 작가의 성실성도 맘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20-21일(목-금) 저희 집으로 VJ특공대가 왔습니다.

처음 방송 촬영을 하다보니 참 어려웠습니다. 어떤 연출이 아닌 자연스런 삶을 찍는 건데 카메라가 있으니 자연스럽기가 참 어렵더군요. 하지만 주제가 딸을 사랑하는 아빠이고, 성폭력 예방과 양성평등까지 진행되는 것이라 이내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딸내미를 사랑하며 살림을 하다보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단 말이지요. (관련글 : 어느 전업주부 남편의 100일 기록 1편, 2편, 3편, 4편)

평소처럼 둘째 녀석 똥기저귀를 빨고, 이유식을 먹이며 큰 아이와 함께 노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저희 세 부녀가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찍었습니다. 장을 본 재료들로 큰 아이와 재미나게 김밥을 만드는 것도 찍었습니다. 제가 설거지 노하우를 설명하기도 하고, 요리를 할 때 칼질하는 법 등도 설명하였지요. 평소에 꾸준히 하던 것인데 또 이렇게 찍어놓고 보니 제가 마치 전문가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ㅋㅋ(관련글 : 남편, 가족을 위해 저녁 만찬을 준비하다)



또 오랜만에 태권도 수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저는 태권도를 사랑하며 수련해왔습니다. 물론 최근 체육관을 찾는 경우가 조금 뜸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고 있지요. 다만 이번에는 방송을 위해 오랫동안 안 하던 격파를 하였네요. 기왓장을 10장씩 두번, 송판을 10장씩 두번 "손날"로 격파하였습니다. (ㅎㅎㅎ 원래 고수는 주먹질 안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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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딸아이 어린이집에 가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아동 성폭력 문제 때문에 제가 강의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더군요. 당연히 평소대로 저는 잘 교육하고 왔습니다. PD말이 이런 식의 성교육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다하더군요(긍정적인 면에서). 다행이지요. 저는 늘 기존의 교육의 장점을 흡수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교육을 하려 하니 말이죠.

어린이집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는 필자의 모습. 어린이집은 많지 않은 아이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강의하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재밌고, 실질적인 연습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밤에는 딸아이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는 걸 찍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만화를 같이 보곤 합니다. 그래야 그 내용을 알고 우리 아이에게 보여도 되나 안 되나를 판단하지요. 또한 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 수준을 맞춰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딸아이 목욕을 시키고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촬영하였네요.(참고글 : 건희, 월반시켜도 되겠어요)

이 내용을 이틀동안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계속 찍었습니다. 휴~정말 힘들더군요. 그래도 참 재미났습니다. 카메라가 이틀동안 저를 밀착하여 따라다니는 것도 신기했고, 여러 인터뷰를 하는 것도 재미났습니다. 또 주변의 여러 지인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체육관 관장님, 어린이집 선생님, 재래시장 아주머니, 우리 처형까지 인터뷰를 했네요.

하지만 아쉬움도 좀 남게 됩니다. 역시 방송이다보니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을 원하더군요. 제 소신이나 사실이긴 하나 조금 더 재미난 표현 등을 요구하였습니다. 또 출연료가 없더군요. 사실 이건 좀 황당했습니다. 무려 이틀이나 촬영을 하고, 방송출연까지 했는 데 출연료가 없다니....물론 방송출연을 계기로 인지도가 올라가는 등 홍보효과가 있겠지만 그래도 시청자가 이틀을 투자해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어떤 방식이든 사례가 있어야하지 싶습니다.

방송은 이번 주 금요일(28일) 저녁 10시에 KBS 제2 텔레비젼으로 하게 됩니다. VJ특공대가 하는 시간이지요. 어떻게 방송이 나올지 모르겠네요. 이틀 동안 엄청난 얘기를 했는 데 말이죠. 음, 굉장히 자극적인 내용만 편집될 수도 있고, 여러 측면이 고루고루 나오며 균형잡힌 모습이 나올 수도 있을텐데..자세한 건 저도 방송을 봐야 할 것 같네요. 아무튼 블로그를 운영하며 이런 재미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말 블로그는 제 삶의 환기구이자 신선한 휴식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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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가족을 위한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평소 가사분담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좀 단단히 마음 먹고 준비하려 하였습니다. 특별한 날이었던 건 아니였습니다. 퇴근하는 아내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짠~'해지면서 오늘 저녁을 맛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먼저 맛깔나게 갈치를 구웠습니다. 생선을 구울 때는 그냥 굽는 것보다 약간의 가루를 입혀주면 좋습니다. 그러면 비린내가 사라지기도 하고, 노릇노릇한 색깔을 내며 고소한 향내를 풍기기도 하지요. 어떤가요? 제법 그럴싸 해보이지요? 다행이 가족 모두 참 맛나게 먹어주네요. 딸아이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오늘의 국은 어묵국입니다. 날씨가 추울 때는 어묵 국물이 최고지요. 국물망에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한참 동안 국물을 내었습니다. 국물이 시원하도록 무와 파를 넣기도 하였지요. 국간장을 두세스푼 정도 샤악 뿌려주니 음~이 정도면 국물은 대성공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어묵을 넣어주었는데요. 아뿔싸! 아무리 끓여도 어묵 특유의 향내와 맛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알고보니 아내가 가장 싼 어묵을 사왔다고 합니다. 제가 먹어본 어묵 중 가장 맛이 없습니다....흑흑, 어묵국의 핵심인 어묵맛이 별로라 그냥 국물만 마시게 되었습니다 -_-;;


어묵국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바로 김치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모님표 김치'이죠. 저희 장모님께서 직접 재배하신 배추와 친환경 태양초 고춧가루를 이용해 만들어진 김치입니다. 맛이 기가 막힙니다. 글을 쓰면서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지요. 아~정말 좋은 데, 이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오늘의 후식은 딸기입니다. 이것 역시 장인 어른 내외께서 직접 재배하신 친환경 딸기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바로 따먹어도 될 정도지요. 당도 역시 기가 막힙니다. 장인 어른께서 일본까지 가셔서 친환경 수경재배 농법을 배워오셨지요. 하우스 내부에 꿀벌이 도는 것만 봐도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습니다(꿀벌은 농약을 치면 바로 죽습니다).

여기서 딸기 세척법 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사진을 보면 모두 푸른 잎이 따여져 있는 것이 보이지요? 저는 딸기 세척시 항상 이파리를 따곤 합니다. 그 이유는 이파리 밑에 있는 이물질이 잘 씻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딸기를 씻을 때는 과도를 이용해 이파리를 따면서 흐르는 물에 헹궈주면 상당히 편리합니다. 하하, 오랜 자취 경험이 있는 남편의 살림노하우 정도라고 이해해 주세요 ^^

정리하며

가족을 위한 저녁을 준비하는 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남자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몸이 피곤할수도 있지만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것보다 이런 생산적인 "살림살이"를 하면 오히려 더욱 힘이 나게 됩니다. 그리 대단한 밥상을 차린 것도 아니지만 맛나게 먹어주는 가족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치게 되지요.

그리보면 사실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연봉 1억이나 2천만원이나 돈 없다 울상짓기는 늘 마찬가지. 이런 소소한 행복을 볼 줄 아는 눈이 나와 가족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기억하면 일상이 행복일 수 있겠지요.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오늘을 살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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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처리시 '피해자 중심주의'는 그 의도와 달리 자주 오해를 삽니다. 특히, 남성의 경우 더욱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무조건 여자의 말만 들어주는 듯 하여 법의 편향성을 의심하게 되고, 일방적으로 남성만 가해자로 지목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오해입니다.

3-4년전 아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일입니다. 옆 자리에서 근무하던 남성 상급 직원이 자꾸 야한 만화를 본다는 것입니다. 이에 제 아내는 매우 불쾌감과 짜증을 느꼈습니다. 이는 명백한 직장내 성희롱 사례로서 저는 분개하였고, 당장 따지고 들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섯불리 나서지 못했습니다. 비정규직에 하급 직원이었기에 고용상 또는 근무상에 불편함과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바로 이런 제 아내와 같은 경우를 위해 성희롱 사건 처리시 적용되고 준비된 개념입니다. 이는 피해자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또 가해자에게 복수해주겠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경직되고, 계급적인 직장 조직 문화 속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피해자가 마음편히 하소연 또는 피해호소를 할 수 있는 법으로 보장된 창을 열어 두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 고충처리 위원회 등을 통해 진상조사 후 조절 및 처리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희롱은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경우가 많으나 동성간이나 여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는 성욕이나 변태적 성향에 따른 문제가 아니라 위계서열과 같은 권력구조와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라하면 남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성별에 상관없이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는 이는 법에 의해 고용상의 불이익 없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일어난 H사의 성희롱 사건처리 과정은 적절치 않은 점이 많습니다. 피해자 주장에 따르면 이 사건은 성희롱을 호소한 피해자가 인권위 등에 진정을 하자 회사측에서 해고를 했다는 게 요지입니다. 만약 피해자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측은 성희롱 문제제기를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었기에 이는 적절치 못한 처우가 됩니다.

물론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해도 사측은 고충처리 위원회를 통해 피해자의 주장을 확인하고, 우선 안정을 시킨 후 절차에 맞게 사건 처리를 했어야 했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는 바 '피해자 중심주의'란 피해자가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호소를 듣고 합리적이 사건처리를 진행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더욱 추워지는 계절입니다. 지금처럼 진흙탕 싸움이 되어가면 피해자는 물론 사측 역시 회사 이미지 등에 문제가 생겨 공멸하기 쉽상입니다. H사는 피해 당사자와의 대화를 통해 사건처리를 좀 더 납득할 수 있게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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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제일이라 합니다. 신혼부부의 이혼률 말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4세 이하 젊은이들이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사례가 전체 이혼율 평균의 10배에 이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빨리 했다가 감당을 못하고 헤어지는 사례가 느는 것이라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지요.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이혼사유 1위가 성격차이란 것을 보면 통계청의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오늘 이 글은 신혼부부의 이혼원인을 나름의 시각으로 고찰하고, 이를 통해 예비 부부 또는 신혼부부에게 도움이 되고자 포스팅됩니다. 아무쪼록 유익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결혼식 준비'는 하는 데, '결혼준비'는 하지 않는다.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식 준비 자체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데, 결혼준비에는 너무도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식도 중요하지요. 이를 준비하다 파혼을 하는 걸 보면 결혼식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결혼식과는 비교도 안되는 일들이 넘쳐 납니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준비에 얼마나 소홀한가는 학창시절 시험과 비교하면 금방 나옵니다. 학교에서 중간고사 한번 보면 어떤가요. 요즘은 한달전부터 준비하곤 하지요. 새벽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이 맺어진다는 결혼생활을 위해 얼마나 준비하던가요.

2.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

가장 믿는 사람이 배우자입니다. 그만큼 기대하고, 의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대치가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함께 설정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나의 기대치란데 있습니다. 흔히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는거 아니야'라고 하지요. 도대체 이건 누가 정한 것인지요. 바로 이런 일방적인 기대치가 서로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실망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연인'이 아닌 '웬수'가 되고 맙니다. 웬수가 되면 정말 모든 게 보기 싫어지지요. 저 역시 이혼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통해 잘 느낀 바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신경이 곤두서고, 행동 하나하나가 싫어집니다. 기대치를 낮추거나 함께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화가 필요하지요.

3.부부의 대화법을 배우지 않았다.

부부의 대화는 조금 특별합니다. 조금만 실수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면 바로 서운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서운함을 그 때그 때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분노로 표출되게 됩니다. 한바탕 전쟁을 치뤄야 하지요. 같은 말을 해도 사업상의 고객과는 서운하지도 않고, 충분히 이해도 하는 데 내 배우자에게는 서운함을 느끼고, 화를 내게 됩니다.

그러니 연습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내 의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또 그만큼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하지요. 특히, 부부간 막말은 정말 중요합니다. 굳이 욕을 하지 않아도 '야~''너' 등의 표현은 배우자의 자존감을 떨어뜨려 결혼생활을 참 어렵게 만듭니다

4.어떤 남편, 어떤 아내가 되어야하는 지 정리되지 않았다.

물론 생각한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일종의 '상상', '이미지화' 작업은 필요합니다. 특히, 요즘은 참 빨리도 변하는 시대이지요. 기술도 변하고, 문화도 변하며 가정에서의 삶도 변합니다. 당연히 남편과 아내의 역할 또는 기대치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바깥 양반'과 '집사람'으로 대변되는 성역할이 기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이 맞벌이를 해도 특정 배우자가 살림과 육아를 전담해야 하지요. 그런데 세상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고 말입니다. 현실과 이상에서의 괴리를 느끼며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대목입니다.

5.어떤 아빠, 어떤 엄마가 되어야하는 지 준비되지 않았다.

자녀교육 역시 참 큽니다. 우리 나라는 대개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곤 하는데요. 그러다보니 아빠는 자연스레 아이들과의 관계가 멀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시험성적표를 들고와서 혼을 내기만 하지요. 그러다 아이를 체벌하게 되면 엄마는 '네가 뭔데 애를 잡고 난리야'라고 합니다. 또 비슷하게 평소에는 애들한테 별관심도 없다가 무슨 문제만 생기면 아내에게 '도대체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킨거야'라고 하지요.

참으로 문제입니다. 자녀교육은 엄마 또는 아빠만 하는 게 아니지요. 서로 사랑해서 자식을 낳았으면 함께 길러야 합니다. 최근 많은 연구보고를 보면 성평등한 부부관계 또는 민주적인 부부관계를 가진 가정자녀일 수록 사회성과 리더쉽 등이 뛰어난 것으로 나옵니다. 어떻게 엄마, 아빠의 역할을 가져야할 지 미리 잘 공부하고, 준비해야할 필요성이 나오는 대목이지요.

6.좀 더 참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조건 참으라는 게 아닙니다. 또 내 주장을 일방적으로 꺾으라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참아본다는 건 내 일방적인 주장을 나열하는게 아니라 한번 더 배우자의 생각을 이해해보자는 것입니다. 요즘은 부쩍 이런 과정이 약한 것 같습니다. 그냥 화가 나면 바로 막말과 욕을 하며 '그래, 갈라서'라고 합니다. 배우자를 향해 '짜증나'를 연발합니다. 

전혀 다른 성장환경에서 자란 두명이 만났습니다. 당연히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면허 한번 따려고 해도 한달을 넘게 알아가야 하는데, 하물며 배우자는 어떨까요. 참을 忍이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하였고, 백번을 하면 하늘을 얻는다 하였습니다(백인득천). 상대방의 마음을 한번더 아니 백번이라도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리하며

부부관계 권위자 가트맨<비난, 경멸, 방어, 담 쌓기>를 부부간 이혼의 실제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예, 결혼은 나이만 먹고, 안정된 직장만 있다하여 준비되는 게 아닐 겝니다. 서로의 인격을 닦아가고, 내 배우자를 충분히 이해할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 성인군자가 될수는 없는 것이니 함께 공부하고, 맞춰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신혼부부 또는 예비부부께서는 이점을 잘 기억하시어 행복한 가정 꾸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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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잘 꿈도 꾸지 않는 저인데, 악몽을 꾸었습니다. 너무나도 내용이 선명합니다. 새벽녘에는 이게 더 심했지요. 그래서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니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몸에 식은 땀이 가득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옆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둘째를 낳고, 폭염이 가득했던 올 여름 저는 혼자 자고 있던 터였습니다. 폭염으로
요즘 아내와 두 딸아이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난감했습니다. 제가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던 것입니다. 마음이 너무 뒤숭숭해 아이들과 아내 곁에서 자려했는 데, 이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물을 한잔 마셨습니다. 아이들이 깰까 싶어 불도 끄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셨습니다. 그러고보니 괜히 제 자신이 청승맞아 보였습니다. 사실 가족을 위한 배려로 그 동안 계속 이렇게 해왔던 건데, 가족과 함께 잠 잘 자리조차 없다는 생각을 하니 그렇더군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많은 아버지들

아마 이 땅의 많은 아빠들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빠들은 늘 혼자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서야할지 그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켜내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아이들이 있고, 나 하나만 믿고 살아온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만 이런 저런 얘기도 듣다보면 때론 너무하다 싶은 남자들도 있지요. 요즘 언론보도에 자주 오르내린 인면수심의 아버지 즉, 성매매나 성폭력을 자녀에게 가한 경우를 보면 같은 남자지만 치가 떨립니다. 또 아내의 외로움도 이해가 되지요. 왜 이렇게 우울증에 빠지는 여성이 늘어나고, 처음과 달리 변해버렸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은 자신을 뒤로한채 가족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이른바 '노동유연성'이란 허울좋은 미명아래 어느 날 갑자기 명퇴 당할지 모르는 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서. 날로 더해가는 성범죄로부터 내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렇게 아버지는 오늘도 긴장의 끈을 바짝 잡고 살아갑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성역할에 대한 기대치도 변해야

음, 갑자기 조금 쌩뚱맞아 보이긴 하지만 저는 이렇게 남성에게 짊어지우는 여러 무게가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당연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게 역시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게 너무도 가혹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무게가 그렇다것입니다. 
 
과거부터 계속해서 규정된 이런 관념이 21세기 우리 사회까지 지배하게 된다면 우리는 멋진 정장에 짚신을 신고 다니는 것과 같은 꼴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버지가 설자리 역시 갈 수록 좁아지겠지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와 초단위로 변해가는 시대이니 말입니다. 이런 식이면 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외롭고 힘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양성평등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양성에 대한 성역할과 기대치, 그간의 고정관념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의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이걸 어떻게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리하며

아내도 제가 혼자 자는 게 내심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왜 혼자 자고 그러냐 그러네요. 오늘부터는 같이 자자고 말이지요. 하하, 하지만 오늘도 저는 아마 혼자 작은 방에서 자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을 위해 제가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이 여기까지 입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시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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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지난 참여정부만큼 보육이나 여성관련 이슈에 대해 깊은 관심과 구조적 틀을 만든 정권은 없었다. 분명 2010년을 사는 우리는 지난 정부의 정책 덕을 보는 면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필자는 지난 5년간 20조나 쏟아부은 저출산 대책을 비판하고자 한다. 저출산 대책에 대한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또 다시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도 실패하는 우를 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저출산대책 - 돈 줄 테니 애 낳아라?

작년에 국회에서 있었던여성정책조례 관련 토론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이곳에서 필자는 각 지자체가 갖고 있는 출산관련 조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참으로 다양한 정책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 같이 출산을 위해 돈을 주겠다하는 것이었다. 둘째를 낳으면 얼마, 셋째를 낳으면 얼마라는 것이다. (아니 그나마 이런 지원책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사실상 아무 대책도 없거나 있어도 형식적으로 있는 게 태반이다)


애를 낳지 않는 두 가지 이유

그러나 이는 지극한 단견에 불과하다. 우선, 오늘을 사는 부부는 출산비용이 없어 애를 낳지 않는게 아니다. 실제 지난 2005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저출산 의식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저출산 원인 1위는 '자녀양육에 따른 부담'이었다. 아이 하나를 기르기 위해 투자되는 어마어마한 사교육 등 비용부담이 보다 현실적이란 것이다. 보도에 따라 다르지만 아이 하나를 대학졸업까지 시키는 데 최소 1억이상이 든다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기혼여성에게 가사와 육아는 일보다 우선되거나 양보돼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남자의 61.1%가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여성은 결국 자신의 경력을 단절시키면서 가사와 육아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요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현실 속에서 출산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출산휴가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아니 여성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현실을 보면 출산휴가라도 쓰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여성이라도 출산을 할 마음이 싹 달아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시장'과 '자율'에 맡기면 보육의 질이 올라가나?

지난 5년간 있었던 저출산 대책의 또 다른한 축은 바로 보육이다. 실제 약 20조 이상 투입된 정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산의 70%정도인 약 14조원이 보육관련 예산으로 쓰였다. 이에 대해 매일경제신문은 보육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며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보육정책의 대안으로 '시장'과 '자율'을 들고 있었다.(기사참조) 그러나 필자는 궁금하다. 정말 시장과 자율에 맡기면 보육의 질이 올라가고, 이에 만족한 부모들이 출산을 하겠냐는 것이다. 

지금 문제는 애를 온전히 맡길 데 자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중요하다. 물론 통계상으로는 남아돌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보육의 질을 떠나 절대적으로 맡길 수 있는 가까운 어린이 집 자체가 부족하다. 특히, 장애아동의 경우는 맡길 수 있는 곳이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경제 살리기 명목으로 우선 삭감된 복지예산 부족과 의지부재 때문 아닌가? 출산과 양육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려는 너무도 가부장적인 사고 때문 아닌가? 시립과 구립 어린이집은 정말 너무 부족하다. 왜 사설 어린이집에만 예산을 투입하고, 시립과 구립 어린이집 건축에는 이리도 소홀한가.


어떻게 해야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가?

저출산 문제 해결은 사실 이미 답이 나와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나라 중에 스웨덴의 경우만 간단히 보도록 하겠다. 스웨덴은 사실 우리와 같은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대적인 저출산 극복 대책을 시행했다. 저출산 극복 대책의 핵심은 한마디로 "취업과 양육 양립지원"이었다.
 
스웨덴은 우선 양육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육아휴직 제도인 데, 스웨덴은 아빠의 육아휴직 기간을 30일로 의무화해버렸다. 엄마 뿐 아니라 아빠에게도 양육의 책임을 나누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육아휴직 동안도 여전히 급여를 지급하는 데, 소득의 80%정도를 보전해주고 있다. 보육의 경우 양질의 보육을, 충분한 접근성과, 공공재원을 통하여 제공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보육부문 지출은 스웨덴 국내총생산의 약 2%정도를 차지하고, 부모의 보육비 분담비율은 전체 보육비용의 11%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스웨덴의 노력은 실질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1980년대 약 1.5명 수준이었던 출산률이 약 1.85명까지 올라간 것이다. 여기서 함께 보면 좋을 것이 바로 여성의 취업률인데, 스웨덴은 2006년 기준으로 남성 82%, 여성 78%로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또한 양성평등 지수 역시 세계 최고의 수준을 보이며 삶의 질이 매우 높은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즉, 저출산 문제의 해답은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부부가 함께 지는 양성평등 문화에 그 첫째가 있다. 두번째는 보육의 공공성 확대이고, 세번째는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확대 및 실질적 보장 끝으로 네번째는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 확산에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며

우리 사회가 더욱 양성평등하고, 국가의 책임을 분명하게 확인하며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지 못하면 결코 저출산 문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다. 출산지원금은 출산에 따른 보조 또는 도움은 될 수 있을망정 근본적인 저출산 대책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라는 요구는 말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출산과 양육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며 국가의 책임을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출산과 양육은 어디까지나 부부가 함께 짊어져야할 부분이지 결코 여성에게만 부과할 수 없는 문제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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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안 낳을거야?

엄마를 빼닮은 3.3kg의 건강한 딸아이를 낳았습니다.(관련글 : 1억이면 어떠랴 네가 주는 행복이 그 이상인데..) 이 녀석을 낳기 전날밤도 잠못 이뤘는 데, 녀석을 안고 나니 또 잠 못 이루고 있습니다. 하하, 주책맞아 보이긴 해도 너무 좋으니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맘을 흐트러놓는 말이 있습니다. 출산을 축하하기는 한데, 셋째는 안 낳을거냐는 것입니다.

이 분들은 저와 아내, 아기를 축복해주러 오셨습니다. 서로 가까운 관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것은 이 분들의 의도가 나빠서가 아니라 이 한마디에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보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남자애 하나는 있어야해!

최근 양성간 성비를 보면 지난 96년 여아 100명당 남아는 111명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08년도의 경우 106.4명까지 줄었습니다. 또 호주제 폐지와 사회적 성별역할에 따른 생각이 바뀌면서 남아 선호사상도 많이 줄었다 합니다. 심지어 부산일보의 2010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여아를 낳기 위한 비법까지 등장했다 합니다.


하지만 이 분들의 한 마디 속에서 우리는 여성이 살아가기 너무도 힘든 우리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수많은 범죄에 노출되고,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져도 외모가 딸리면(?) 취업조차 할 수 없는 현실과 출산과 동시에 모든 꿈을 접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뚜렷한 이유는 없으나 '어쨌든' 남자애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남아선호를 보게 됩니다. 말로는 부정하지만 우리의 내면은 여전히 이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지요. 

예, 우리는-2009년 보고된 세계성격차보고서에 따르면-양성평등 순위가 134개국 중 115위 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너무도 아쉽습니다. 분명 일상에서는 여성이 더 기를 펴고 사는 것 같고, 남성은 인권을 보장하라는 개그프로까지 있는 데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면 여전히 성격차가 심하다는 거지요.


출산 보조금으로 출산율을 높인다?

저는 이런 우리 사회의 후진성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가 굳이 '후진성'이라 표현한 것은 세계적인 흐름에서 너무 뒤쳐진 우리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미 소위 말하는 선진국은 양성평등을 국가적 주요과제로 설정하고, 지속적인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실제 이를 통해 출산률은 물론 삶의 질을 높이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실제 스웨덴은 낮은 출산의 문제를 풀기 위해 '어설픈' 출산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성격을 강화하여 출산율을 높인바 있습니다. 프랑스는 여성 정치인 50%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 30%를 법제화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양성평등에 신경을 쓴 것은 양성평등을 이루는 것만으로도 국가경쟁력과 삶의 질을 훨씬 높일 수 있다 보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양성평등 교육을 반드시 이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부실합니다. 교사부터 훈련되어 있지 않으며 연중 이벤트성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양성평등 선진국인 노르웨이의 경우 교사는 물론 어릴 때부터 꾸준히 양성평등 교육을 하고 있고, 이를 통해 남녀 즉, 양성모두 더욱 삶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글 : 나는 왜 양성평등 운동을 얘기하는가남자인 내가 여성단체에 들어간 이유)

양성평등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적 흐름을 보아야..

저는 딸아이를 잘 기를 자신도 있고, 충분히 노력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개개인의 노력과 자신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구조적이고 의식적으로 양성평등을 이뤄가야만 가능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삶의 질 및 국가 경쟁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나아가 성범죄 문제와도 긴요한 관계가 있으므로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우리의 육아에 대한 개념 역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이럴 때 양성성을 고루 갖춘 인재로 자녀를 양육하지 못하면 내 아이는 결국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어와 수학도 중요하나 그 이전에 성평등 교육부터 해야한 다는 것입니다. 성평등 교육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중으로부터 시작하는 전인교육이므로 가정에서부터 노력을 기울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관련글 : 지금은 자녀교육의 방향성을 고민해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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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배기 아들이 자위를 하는 데 어떡하죠?"

유아기(3-5세) 어린이의 자위는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합니다. 문제는 이걸 발견한 부모님의 반응이지요. 아이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데, 엄마 또는 아빠가 "안돼"라며 과민반응을 보이곤 한다는 것입니다. 당황하는 것이지요. 아이에게 어떻게 뭘 말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오늘 저는 어제 글에 이어 유아기 어린이의 성교육에 대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1.일단 목욕부터 같이해라.

어떤 전문가는 만 1세만 되어도 성교육을 시작하라 합니다. 즉, 신체를 인식할 때부터는 조금 이른 감이 있어도 시작하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를  "목욕"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얘기합니다.
 
유아기 어린이들은 남녀의 신체차이를 아이 혼자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며 '나는 왜 이러지' 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또 흔히 아이들은 목욕하기를 싫어하지요. 따라서 아빠 또는 엄마와 함께 놀이하듯 목욕을 하며 신체차이를 설명해주면 보다 자연스레 교육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가끔 보면 -특히, 아빠의 경우- 딸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함께 목욕하는 걸 꺼려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자녀의 성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좀 더 적극적이실 필요가 있습니다. 여아가 아빠와 목욕을 한다는 건 성별차이를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통로가 됩니다.(남아의 경우도 마찬가지)

2.아이들의 심리-성기를 만지며 자위하는 아이

자, 목욕을 같이 하며 생식적 차이를 깨닫기 시작하면 이젠 심리적인 부분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참 재미난 생각을 합니다. 남아의 경우 여아들이 뭔가 나쁜 짓을 해서 성기를 떼어버린 것이라 여깁니다. 또 자신의 성기 역시 떼어질 수 있다 생각하는 '거세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편, 여아의 경우는 남아의 성기를 보며 자신도 일어서서 소변을 누는 행위를 합니다. 그리고 '왜 나는 고추가 없어?' 라며 질문을 하기도 하지요. 아빠를 두고 엄마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아빠와 결혼하겠다며 엄마에게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남아도 마찬가지)

그러나 양성의 어린이 모두 아빠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더 작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즉, 성욕에 의한 자위라기보다는 갇힌 감정에 대한 심리적 위안을 찾는 만족행위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기타 여러 부분에서도 적용됨)

이럴 때는 '안돼'라고 하며 부정적이고,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주며 다른 장난감을 주며 자신의 신체가 소중한 곳임을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 심리적인 부담이나 억압을 느끼고 있는지 잘 헤아려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부모님의 모습과 성역할 교육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게 바로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요즘은 좋은 책도 많고, 자료도 많습니다. 학원도 참 많지요. 허나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여전히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성교육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부모님이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성교육은 자연스레 이뤄지게 됩니다.

특히, 성역할에 대한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유아기 아동들은 성역할에 대한 최초의 배움을 시작합니다. 또한 소꿉놀이를 하며 이를 반복, 확인해갑니다. 문제는 이 때 고정화된 성역할이 끝까지 간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양성평등이 세계적 대세이자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중요 이슈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를 보면 양성성을 지닌 어린이의 학습성취도와 사회적 능력이 더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양성평등을 이뤄가는 사회일수록 그 경쟁력과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즉, 어린 시절부터 너무 정형화된 성역할을 부모님이 보여주실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역할에 대한 열린 자세를 갖고 설명해주시며, 부모님 역시 서로 함께 하는 살림살이가 되는 게 좋겠습니다.

정리하며

양성에 대한 열린 자세를 갖고 사는 모습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성역할 교육이 됩니다. 또한 함께 놀이하듯 목욕을 하며 자연스레 생식적 차이를 습득하는 게 좋으며 혹시 아이가 자위를 한다면 어떤 부분에서 심리적인 부담이나 압박을 겪고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은 유아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유아기 아동은 최초로 성별구분과 역할을 습득하게 됩니다. 또한 이 때의 학습이 성인까지 가는 무의식의 기본이 됩니다. 따라서 어떤 교육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진행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이점을 핵심으로 기억하고, 교육을 "삶"을 통해 진행하신다면 여러 권의 책을 읽히거나 학원에 보내시는 것보다 훨씬 양질의 교육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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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 활동이 많이 뜸해졌지요? 항상 찾아주시는 분들께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요즘 강의가 계속 들어와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음..지난 번 화성신문과 인터뷰한 기사가 나왔기에 이렇게 소식을 전합니다. 기사를 보니 아이쿠...ㅠ.ㅜ;; 일단 사진부터 영~~;;;; 또 마지막 구성애 씨 관련 얘기는 좀 이상하게 나왔습니다. 중학교가 아니라 고교시절 강의를 들었고, 저는 구성애씨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 기사를 링크해두고요..

엊그제부터 성매매 집결지 단속과 풍선효과에 대한 글을 쓰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안에 마무리하여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ih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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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게 얼마전 있었던 "꿀벅지" 논란과 관련해 의견을 물으셨던 분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1)사건개요

얼마 전 모 그룹 멤버의 "꿀벅지" 논란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사건은 이 여가수의 허벅지를 꿀벅지라 하는 걸 보고 한 여고생이 여성부 게시판에 이 용어를 쓰지 못하게 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후 인터넷 상에는 수많은 논쟁이 오고 갔는 데, 그 핵심을 정리하자면 1)칭찬을 성희롱이라 여기는 과민반응이라는 측과 2)꿀벅지가 음담패설의 한 용어로 사용되던 것인데 이걸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건 안된다는 측 3)끝으로 여성의 몸을 음식에 비유했으므로 명백한 성희롱이란 세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여성부의 입장성희롱은 피해자의 모멸감 등이 핵심기준이므로 개인적인 문제라는 의견을 밝혔고, 언론사의 표현을 규제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문제제기

그러나 돌아볼 문제이다. 과연 성희롱 문제를 이슈화 하며 제기하고자 했던 문제는 무엇일까. 당초 시민사회측에서 이 얘기를 꺼냈던 건 기존에 만연화 되어 있던 남녀의 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또한 여성 등의 성을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며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문화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것을 제도화 된 방식으로 표출한 게 바로 성희롱 문제였고, 성희롱 문제를 통해 문화를 바꾸는 통로를 여는 데 그 본래적 의미가 있었다.

만약 이걸 보지 못하고 '성희롱이 무엇인가?', '굴욕감의 기준이 뭐냐?', '어떻게 처벌해야 하느냐' 라는 데 묻혀 버리면 성희롱 문제는 아무런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지루한 논쟁에 빠져 버리기 쉽다. 성적 굴욕감이나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성차별적 (조직)문화이고, 이것이 왜 어떤 구조로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느냐인 것이다.


3)실망스러운 여성부의 입장

꿀벅지 논란은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여성부의 입장은 더욱 그렇다. 우리가 한 여고생의 지적을 보며 주목해야하는 건 '과연 이것이 성희롱이냐 아니냐' 가 아니다. '왜 꼭 칭찬을 성별화 된 방식으로만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과 함께 "몸"과 "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육덕"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 문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끝으로 이 논쟁의 이해당사자가 누구냐라는 것이다. 

이걸 보고, 지적하지 못하게 되면 "그럼 너네도 초컬릿 복근이라 하지 않느냐' 라는 말이 나오며 지루한 말꼬리 잡기가 이어지게 된다. 또한 '남자들은 다 그런 존재' 라는 말이 나오며 여성부처럼 "개인적인 문제"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이 나온다. 어떻게 이 문제가 '개인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여성 문제를 비롯 성차별적 구조를 확인하고, 양성평등이란 세계적 흐름을 만들어갈 여성부에서 나온 대답이라 하기엔 정말 실망스러운 "단견" 이라 아니 할 수 없다.


4)육덕이 지배하는 문화

다시 필자가 제기했던 문제로 돌아와 보도록 하자. 요즘 방송을 보면 "육덕", "짐승돌" 등의 용어가 칭찬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먼저 "왜 꼭 성별화된 방식으로 칭찬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자본과 미디어 산업의 발달이 가속화 시킨 여성 또는 남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필자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성별 불평등 권력관계를 작동하는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다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은 잠시 접어둔다쳐도 "건강" 과 "삶의 질"을 얘기하며 시작되던 "몸"에 대한 관심이 왜 이렇게 변질된 것인지 아쉽기만 하다.


5)꿀벅지 논쟁을 보며 웃고 있는 건

여기서 잠시 자본의 상술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필자는 앞서 이 논쟁의 이해당사자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하였다. 과연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데로 "남성"과 "여성"일까?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양성간 진행된 논쟁을 통해 그 반사이익을 보는 건 모 여가수를 모델로 채용했던 소주회사이고, 이를 긴요한 방송소재로 사용했던 방송사였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문화상품으로서의 여가수와 그녀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통해 누가 반사이익을 얻었냐는 것이다. 


우리가 이에 주목해야 하는 건 이것이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슈화 되었으며 또한 전개되었고, 또 다시 다른 이름으로 반복 재생산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때마다 이 논쟁에 휩싸여 공연한 힘을 빼야하는 걸까. 지금 이 꿀벅지 논란을 보며 웃고 있는 건 남성과 여성 그 누구도 아닌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6)정리

성희롱 문제는 성희롱 자체에만 국한해 볼 수 없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는 그런 측면이 매우 많으나 만약 계속 이런 식으로 성희롱 문제를 접근한다면 성희롱 문제를 제기했던 그 본래적 의미는 사라지고, 지루한 말싸움과 상처 입은 감정만 남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희롱이란 문제를 왜 제기했는지 그 속의 함의를 보고, 문화를 바꿔나가는 노력을 경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꿀벅지 논란 역시 마찬가지이다. 꿀벅지란 용어 자체와 성희롱 문제 자체만 바라보면 끝없는 감정싸움만 나오게 된다. 필자는 이를 통해 우리는 '왜 성별화 된 방식으로만 칭찬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논쟁의 뒤에는 은폐된 자본의 상술과 우리 사회의 "육덕문화" 그리고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취업조차 할 수 없는 구조가있다. 우리가 이를 보고, 변화의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제2, 제3의 꿀벅지는 언제든 재생산 될 것이다.


<출강문의-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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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사람은 역사적 존재(하이데거)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인간 인식의 한계성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 정신과 의지를 통해 한계의 범위를 확장하고,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도모할 수는 있다. 명확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판단, 노력은 우리 삶의 진보를 가져오는 힘이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만이 희망인 이유이다. 또한 이 글은 필자의 이와 같은 신념위에 쓰여질 것이다.

두번째로 이 글에서 필자는 성폭력의 원인을 나름의 시각으로 고찰하고,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물론 사회변혁과 제도 개선도 필요하나 성폭력 문제는 제도의 확립만으로 예방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글은 사회과학적 접근보다 철학적 접근을 그 방법론으로 택하게 될 것이다.


성폭력 원인에 대한 다양한 접근

2.성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어떤 여성운동가는 "습관" 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성구매를 하는 습관, 접대문화속에 여성을 부르는 습관 같은 성매매 습관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습관은 여자는 남자를 위해 존재하는 기껏해야 2등 시민이란 인식을 갖게 한다 이야기 한다. 일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양성간의 문제 뿐 아니라 아동과 동성간에도 이뤄지는 것이기에 이는 한계가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학자들의 연구는 일탈행동을 얘기하기도 하고, 문화를 얘기하기도 한다. 갈등주의적 접근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말하자면 현상에 대한 연구로써는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 이면에 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이면에 깔린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작금의 물신주의와 힘과 권력에 의지한채 객체화 된 사람의 성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본성이라 하겠다. 


물신주의와 지배욕에 대한 구체적 접근

3.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 사회전반의 풍토에 만연해 있는 물신주의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의 "객체"로 인식하게 한다. 즉, 인격과 그 존엄성을 보지 못하고, 단순한 대상으로만 보게 한다는 것이다. 객체로 전락해버린 인간의 몸과 성은 더 이상 존중받을 대상이 아니게 된다. 하나의 물건처럼 사고 팔며 성적 욕구의 만족을 위한 "도구"되어 버리게 된다.

또한 지배와 통제의 욕구라는 인간의 본성은 내가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는 힘과 권력의 차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불평등한 위치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을 가리고, 집단의 문화에 결탁하며 내 자신을 은폐하고, 반복 지속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을 강자 앞에서는 숨기다 약자 앞에서 야수적 본성으로 표출하며 피해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게 된다.

자, 이제 이런 관점으로 성폭력을 다시 보도록 하자. 우선 성희롱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은 성희롱에 대한 법령이 형법이 아닌 남녀고용평등법에 제시된 것부터 생각할 수 있다. 남녀간의 사회적 위치와 힘의 차이가 바로 성희롱을 일으키는 원인이라 본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성 상사가 남자 부하직원을 성희롱 하는 것도 이해되고, 심리적 우위에 있는 남성이 여자 상사를 반권력적 성희롱 모델에 따라 성희롱 하는 것도 이해되게 된다. 이들에게 성희롱 대상자는 더 이상 인격체가 아니고 내 위치와 힘을 이용해 성적 유희를 즐기거나 희롱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두번째로 성폭행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부는 여성의 야한 옷이 성충동을 일으켜 우발적으로 범행이 일어나게 한다 하지만 실제 성폭행 사건은 70% 이상 계획된 범죄이다. 또한 동성간에도 성폭행이 일어나고, 아동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범죄를 보면 어떠한가. 이를 보며 필자는 나보다 강한 자에게는 굽신거리다 조금이라도 약한 자에게는 그 태도가 돌변하는 노예근성 같은 지배욕과 동물적 본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마음이 필자 개인만의 것이라 쉽게 치부해버릴 수 있는 것일까.


시대를 탓하기 전에 내 자신부터!

4.린다 레드레이는 "성폭력은 성적만족을 위한 행위라기보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격앙되고 과격한 욕구의 표현" "성폭력의 기저는 폭력, 분노와 지배욕"이라는 말을 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그녀의 견해가 정확한 것이라 생각한다. 성적 불평등이 시작된 이래 양성간에 가해진 성폭력은 물론 최근 이슈가 되는 동성간, 아동 성폭력 역시 이 모든 것에 그대로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는 "악마와 계약을 교환하고 풍부함을 대가로 초월성과 목적성을 팔아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목적의 부재에 괴로워하고 있다"라고 하였던 보드리야르나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인간 고유의 가치들을 화폐적 가치들이 대신 하는 병든 현상"이라 진단한 소로스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이는 비단 경제와 문화 뿐 아니라 성폭력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조차 나를 알 수 없게 하는 이 정신 없는 시대는 성폭력의 수위와 양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어떤 정신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또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의 변화가 사회가 변하게 하는 밀알임을 상기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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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성적 불평등의 기원과 양성평등운동

1.초기 원시공동체는 "성적 불평등" 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성별 차이에 따른 "분업" 만 있었습니다. 이 때 말하는 성별 분업은 아직 농경사회로 진입하기 전이기에 지금 생각하는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임신과 출산, 양육의 문제로 여성의 경우 채집경제를 이루고, 남성은 수렵경제로 이뤄지게 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모계중심 사회구성)

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 수 있습니다. 자연상태에서의 남성은 여성보다 물리적으로 강하니 더 많은 생산물을 얻는 여성을 남성이 지배하려 들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왜 남자가 굳이 수렵을 떠나냐는 거지요. 그러나 이게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크나 홉스 같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완전자연 상태에서는 성적 불평등이 없었다 얘기합니다. 언뜻 보면 남성이 위력으로 여성을 지배할 것 같지만 특히, 홉스의 경우는 이것이 문화 속에서 이뤄진 것이지 원래 자연적으로 있던건 아니라 보았던 것입니다. 
 

예, 그렇지요. 누군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은 아직 조금 더 지난 뒤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이 때, 여성은 임신과 출산, 양육에 따른 정착이 보다 자연스러웠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남성은 이동이 많은 게 더 당연한 것입니다.


2. 아무튼 초기 원시공동체가 도구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 증대에 이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농경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남성의 힘이 더욱 중요시 되겠지요. 또 본격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생산물에 대한 집착이 시작됩니다. (사유재산의 발생) 이제는 전쟁을 통해 이웃 부족을 공격하며 그 생산물들을 가져오고, 노예를 만드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노예"의 등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노예란 곧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노동력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즉, 경제잉여가 더욱 커지는 조건이 되고, 이를 통한 계급의 형성과 고착의 연결고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는 점점 여성의 모계 중심구조에서 남성중심으로 변해가겠지요. 잦은 전쟁과 모든 생산의 중심에 남성이 있고, 상대적으로 여성은 그 중심에서 점점 밀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부장제가 나오게 되는 시점이지요. 또 여성을 소유 또는 규제하기 위한 여러 이데올로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예 : 정절이데올로기, 양성에게 주어지는 성역할 등..) 

이제는 사회의 문화 자체가 여성 스스로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인 측면 모두 더욱 남성에게 의존하도록 그리고 원래 이런 것이라 믿겠금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거지요.


초기-->원시공동체-->농경의 시작-->잉여와 사적소유발생-->전쟁을 통한 노예의 획득-->계급의 형성과 가부장제의 성립-->밀려나는 여성의 지위-->각 종 이데올로기와 성체제(sex-gender system) 형성(문화적 재생산)

우리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중에서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물질(재물따위)"과 "힘" 그리고 "문화" 가 그것입니다. 이들은 양성간 차별이 발생하고,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라 볼 수 있겠습니다.

(흔히 양성의 생물학적 차이나 고정된 성체제 때문에 성적 불평등이 일어났다 하는 건 그 이면에 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놓치고만 것이지요. 또한 이것이 생기게 된 변증법적 과정과 논리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3. 자, 지금까지 제가 성적 불평등의 기원을 고찰해 보았는데요. 중요한 건 이렇게 성립된 체제가 여성은 물론 남성 스스로에게도 부담을 주는 굴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 하나 기쁨이 없는 서로 힘든 세상이 되었단 거지요.

즉, 과정에서 여성의 소외와 억압 뿐 아니라 결과적으론 양성 모두 상처만 남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양성평등 운동과 이를 위한 노력이 왜 중요한가 나오게 됩니다. 저는 양성평등 운동의 지향점이 기존의 양성대립적 시각에서 벗어나고, 사회구조의 변화를 꾀하며 양성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다성평등은 논외). 이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현실을 인식하고, 변화하게 하는 일종의 자기해방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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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 남편, 여성단체에 취직하다

약 백여일간의 전업주부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여성단체에서 양성평등 및 직장내 성희롱 예방 전문강사로써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 취업소식을 들은 주변 반응이 참 흥미롭습니다. 도대체 왜 여성단체에 남자가 들어가 있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들으며 일단 그 바탕에 깔린 생각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엔 '여성단체는 남성과의 대립(싸움)을 주로 조장하는 데 네가 자기편 자리도 제대로 못보고 갔다' 는 게 첫번째이고, '여성단체에서의 활동은 여자만 하는 거다' 라는 생각이 또한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음, 이게 순전히 제 오해이면 참 좋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여성단체에 들어간 논리적 이유 세가지

우선, 여성운동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하며 글을 전개해 가야겠습니다. 흔히 여성해방, 여성운동 등을 총칭해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쓰곤 합니다. 예, 사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시작되었고, 자연스레 남성과의 대립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지금도 여성운동 진영의 얘기를 듣다보면 '남자는 다 죽일놈' 또는 '남자는 모두 잠정적 범죄자' 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의 여성운동은 기존의 여성해방 논리의 한계에 봉착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여전히 여성의 입장에선 여러 문제가 상존한다 보겠지만 지금과 같아서는 남성과의 대립만 있을 뿐 더이상 출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는 운동의 효율성 및 여성의 삶의 질 등과도 직결되는 것이기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고, 이것은 또한 남성의 삶의 질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느 한쪽은 자신이 불행하다 느끼고, 다른 한쪽은 내가 수세에 몰린다 느끼며 서로 행복한 삶을 살 순 없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여기서 봐야하는 게 바로 "흐름"입니다. 즉, 지금은 애나 어른이나 양성평등의 개념 없이 살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싫든 좋든 이 나라가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 발버둥을 치고,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려 애쓰는 이상 결국 우리는 양성평등의 시대로 접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여성" "남성" 만으로 사는 게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대라는 거지요. 이 흐름을 놓치면 결국 아무리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직장에서 용을 써도 모든 개인과 이 나라는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 끝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바로 "양성평등 운동의 지향점" 입니다. 양성은 서로 화성과 금성에서 온 것처럼 많은 차이가 있다 합니다. 예, 살다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너네는 그렇게 살아라, 우리는 이럴게' 라고 해야할까요? 서로 끊임 없이 대화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양성평등 운동은  바로 '양성간 대립' 이 아닌 '대화와 인정, 배려' 를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여성단체에 들어가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양성평등 운동을 한다는 데, 가만 그 얘기를 듣다보니 여성운동 하시는 분들이 여성해방논리 펼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교육하는 분들도 전부~여자들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요. 아무튼 바로 여기서 제가 여성단체에 들어간 이유가 나옵니다.


지금 제가 속한 화성 여성회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양성평등 및 직장내 성희롱 예방 전문강사단을 육성, 파견하고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곳에서 다른 8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소속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주로 하는 일기존의 여성의 입장에서만 보고 제시하는 논리의 편향성을 지적하고, 남성의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가려는 것입니다.

당연히 현재 제가 개발한 양성평등 교육안과 직장내 성희롱 예방 교육안에는 이 모든 것이 강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제 시강을 본 여선생님들이 하나 같이 얘기하지요.

 
"확실히 남자의 눈으로 접근하니 완전히 다르다"

예, 저는 좀 다르게 하고 싶습니다. 제가 잘나서 그런다는 게 아닙니다. 저는 기왕이면 남성도 별 거부감 없이 함께 공부하며, 양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그래서 내 아이들만큼은 좀 더 합리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내일을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앞의 세가지 이유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바로 제가 여성단체에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정리하며

요즘은 새벽까지 공부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대학시절 공부했던 내용을 다시 돌아보고, 특히, 법 관련 공부때문에 상당한 시간소요가 됩니다. 판례도 함께 봐야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보람이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강의에 그대로 반영되고, 이것이 양성평등 운동을 통한 합리적인 내일을 만드는 데 작은 기여를 할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하하, 물론 제 강의를 듣고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알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거부감이 들수도 있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좀 신선함은 있지 않겠습니까? 워낙 남자 강사가 없으니..^_^;;

출강지역 : 화성시(우선), 기타 지역도 연락주시면 조정 가능합니다.

강사약력
: 군산 고등학교 졸업
: 한신대학교 신학과(전공),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 기독교교육학(부전공) 졸업
: 두산동아스쿨 수학전문강사
: 두산동아 표창장 수상
: 다음 신지식 엑스퍼트(육아-자녀교육)
: 경기여성정보웹진 "우리" 필진
: 블로그 [라이프] 하늘바람몰이 운영(잡지 및 일간지 인터뷰 또는 기사 다수 채택)
: 양성평등 및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전문강사 (화성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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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여일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사에 일부 참여한 것과 달리 그 한복판에 뛰어들어감으로 많은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경험은 제 구직에도 영향을 주었고, 저는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하, 어제 저는 여성단체에 들어가 양성평등, 직장내 성희롱 등의 교육을 하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사실 원래 어린 시절부터 저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뇨 조금 문자를써서 말하자면 "소수자" 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자란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든 발생되는 상대적으로 연약(?)한 편견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자를 의미하는 데요. 제 눈에 비친 여성은 일상에서 늘 편견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의 입장이었고, 동시에 이 때문에 남성 역시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 성장환경 영향이 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님과 자란 저는 늘 여동생과 제가 다르게 받아들여짐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여동생은 늘 이게 불만이었고, 저는 늘 여동생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 조부모님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나름 "영재" 소릴 들으며 "기대주" 로 과대평가 되었고, 게다가 "장남" 이었으며 여기에 옛 어르신들의 남아선호사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던 거지요. (지금 여동생은 그 때 얘길 하면서 서운했다 얘기하며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잘 보니 양성간에 가해지는 차별 또는 편견은 상대적으로 소수자였던 여성을 더 힘들게 하지만 결국 남성 역시 힘들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평소 생각은 대학시절 여성신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에 빠져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보니 역시 제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양성 모두 어려움과 아픔을 겪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양성 모두의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곳은 제가 직접 알게 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한주 연재했던 글을 보고, 제 구직자리를 찾던 아내가 제안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학습을 통해 전문가로 거듭나고, 제가 깨닫고, 경험한 것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있다 여겼습니다.

하하,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만나게 될지..

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어떤 그림을 만들어나갈지 참으로 기대되고, 궁금해집니다. 


독자님 보시기엔 어떤가요.

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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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00 캐쉬백 포인트 적립을 해놓겠다 했으면서 안했기 때문입니다. 총각시절에는 그렇게 열심히 했는 데 말입니다. 그래서 빠른 시일안에 다녀와야겠다 맘 먹고 때를 보고 있었습니다. 

오호~그런데 엊그제 사무실에서 커피를 대량 구입하는 게 아닙니까. 바로 지금이다 싶었습니다. 문구용 칼을 들고 커피박스에 있는 캐쉬백 쿠폰을 모조리 오려왔지요. 운좋게 이번에는 보너스 포인트까지 있더군요. 모두 합해보니 약 3천포인트가 넘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유후~!! 당당하게 쿠폰을 모두 수거한 저는 드디어 어제 대형마트를 방문해 캐쉬백 적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왠 수염이 더부룩한 남자가 이걸 하는 게 낯선 광경이었나 봅니다. 사실 쿠폰을 붙이고, 바코드를 출력해 붙이는 데 약간 시간이 걸리는 데요. 바로 그 때 주변에서 힐끗힐끗 저를 쳐다보는 게 아닙니까. 뭐 대학시절부터 익숙하게 느끼던 시선이었지만 정말이지 쉽게 적응 안되는 시선이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다양한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이 글에서 그 원인까지 분석할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쉬움'은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각 각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는 안 그렇다' 얘기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상당하니 말입니다.

물론 결혼 후 애를 낳고 기르다보니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으로 존재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게 "차이" 겠지요. 서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고, 이것은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을테지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 양성간의 대화나 배려의 삶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굳이 각 각의 성역할을 고정 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게 모두에게 더 편하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보면 꼭 어딘가 한쪽은 더 희생을 강요당하게 되니 말이지요. 

영국드라마 <닥터후>를 보니 주인공 닥터는 꼭 여성 여행 동행자가 있더군요. 900살이나 된 시간의 제왕 닥터이지만 어떤 문제든 혼자서는 안되고, 반드시 여성 동행자와 함께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론 이들에게 마구 혼나기도 하고, 목숨을 빚지기도 하더군요. 또한 동시에 이 여성 동행자들도 혼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닥터와 함께 힘을 모을 때 그 잠재력이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결국 우리네 삶도 이와 비슷하단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나도 남성 혼자만-여성혼자만은 살수도 없고, 해결 못하는 문제도 참 많지요. 예, 우리는 좋은 가사 담당자나 바깥일 담당자를 "고용" 또는 "찾아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닐 겁니다. 

서로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

서로에게 인생과 삶을 더 배우기 위해.. 

서로를 통해 인생과 이 사회의 참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

바로 이 때문에 양성이 존재하고, 서로를 그리며 살아가는 게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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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이중생활

[LIFE]이 남자의 인생 2008. 11. 21. 14:36 Posted by 바람몰이

장안의 화제였던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다보니 중간에 '제 아무리 날고 뛰는 여자도 애 낳으면 다 똑같아진다..저도 별 수 없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지만 우리 나라 여성의 현실이 한마디로 집약된 듯 하여 씁쓸한 마음이 들었었다.

요즘 주변을 보면 흔히 말하는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한다. 가정내 아내의 발언권도 상당하여 요즘은 오히려 고개 숙인 남자가 많아졌다고도 한다. 가만보면 상당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서도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아내의 몫이고, 좀 좋은 남편은 자주 도와준다는 표현이 적절한 수준의 참여를 하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직장여성의 경우 가사분담 시간이 남성의 두배에 달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역시 비슷하다. 어느 잡지를 보니 한국의 남녀불평등지수가 악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세계경제포험의 세계 성격차 보고서를 보니 한국은 작년보다 11계단 하락하여 총 130개국에서 108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최하위권에는 아랍권 국가가 포진해 있으니 사실상 꼴등이나 다름없다.

(세계경제포럼은 교육과 보건, 고용, 정치 등 4개 부문에서 불평등 상황을 계량화 하여 완전 평등을 0으로 가정한 후 평가하게 되는 데, 올해 우리는 작년 0.6409에서 0.6154로 떨어졌다.) 

특히, 최근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신자유주의 물결에 따른 여성 근로자의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핵심가치 중 하나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들고 있다. 이는 결국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적은 임금지출이 가능한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물론 남성 근로자 역시 특별히 나은 건 아니지만- 정리해고의 1순위도 여성 근로자이고, 현재 여성근로자의 70%가 비정규직임을 보면 상대적으로 여성 근로자에게 더 많은 부분 영향이 끼침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만약 그 여성 근로자가 그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그 영향은 더 크게 작용하고 만다.
  

얼마 전 신차 구입 후 열심히 운전 중인 여동생의 푸념을 들을 수 있었다. 운전을 하다보면 도대체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양보가 줄어든 요즘 모습일 수 있으나 유독 여자 운전자에게 더 심한 것 같다 한다.

나는 여동생의 말에 공감하는 편이다. 예전에 어떤 이가 우리 나라 여자는 자신들이 얼마나 존중받는 지 모르고 부당한 대우 받은 것만 기억하는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다는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피해의식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 존재하여 느끼는 건데 어쩌란 말인가. 

아하..그런데 이거 참 웃긴다.

이런 글을 쓰는 나이지만 글을 쓰며 새벽 출근 전 함께 막 잠에서 깨어난 아내를 보고 "나 아침밥 안해줄거야?"라 따지던 게 생각난다. 신혼 초 인터넷으로 구입한 의자를 남자인 내가 조립해야한다 바득바득 우기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아내에게 윽박질러 울게 만든 것이 떠오른다. 새벽에 마구 울던 아이에게 똑같이 일하고 퇴근 한 아내를 깨워 우유를 주고, 달래라 하던 게 떠오른다. 

허허..잠시 거울을 피해다녀야 할까보다.

나의 이중생활에 코가 얼마나 길어져 있을지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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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드시다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12 Posted by 바람몰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세상의 중심에 세우심은 이 생명세상을 아끼시고, 인간을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 아주 잘 나타난 대목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을 땅에서 취해 만든다 할 때 “땅”이란 말 자체가 원래는 “먼지”라는 뜻입니다. 아담이란 말은 일반적인 “사람”을 뜻하는 것 이구요. 하와라는 말은 “생명의 어머니”라는 뜻이지요.    

여기서 잠깐 아는 목사님께 들은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남자를 먼저 만들고 그 후 여자를 만드셨잖아요. 그래서 이 구절은 남자가 여자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논리에 자주 동원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식의 그런 얘기 말이지요.


  그런데 그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남자는 한낱 먼지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여자는 그 속의 단단하면서도 탄력 있는 갈빗대를 통해 만들어진 걸 생각해보라는 거지요. 결국 여자는 하나님께서 남자를 만드시고 난 후 나오는 많은 오류와 문제를 다 보완하여 먼지가 아닌 갈빗대를 취해 만드신 업 그레이드 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남자보다는 여자가 한수 위이고, 남자는 여자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해야 세상살이가 좀 더 현명해진다는 겁니다. 어떠십니까? 그럴 싸 하지 않나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 되어 행복을 누리는 걸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뒤에 가인과 아벨 얘기에서도 말씀드리겠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로 엮어주신 것을 인간의 힘으로 함부로 나눠서는 안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열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될 뿐 아니라 사람은 서로 하나 될 때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가만히 스스로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내 남편에게 대하는 것, 내가 내 아내에게 대하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연애할 때와는 또 다른 내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서로에게 긴장이 풀려갈 수록 더욱 함부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나도 모르게 아내나 남편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남에게는 하지 않는 그런 행동들 말입니다. 그리고는 혼자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서로에게 대한 미안한 마음에 차마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기 힘이 듭니다. 그저 서로 눈빛만 보고 확인할 뿐이지요. 그래서 ‘에구..이 웬수야..’하면서도 “정” 때문에 살아가는 겁니다. 자식들도 있고 하니 말이지요. 또 한편으로는 사랑한다는 한 마디로 이 모든 걸 씻기도 하고 말이지요.


   다른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의식적인 내가 일종의 가면을 쓰고(페르조나) 이뤄 집니다. 그러나 배우자에게는 그러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솔직한 부분이 나오는 것이지요. 이것은 의식적인 내가 아닌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있는 내 모습으로써 나조차 몰랐던 솔직한 내 모습이 발현된 것이지요.


  또 한편 내가 모르는 세계와 사고방식을 아내와 남편에게서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보며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배움을 얻게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내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구나..’ 이러면서 말이지요.


  결국 아내나 남편은 내 자신을 더 솔직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가장 가까운 거울이라 이런 이치인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더 알아가며 인격을 더욱 성숙히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쉬운 일상의 예만 보아도 우리는 사람이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세계는 반쪽짜리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함께 할 때 더욱 온전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태초부터 인간은 평등할 수밖에 없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WCC1)에서는 이미 오래 전 이런 내용을 신앙고백하며 문서화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벌써 몇 십년전 얘기이군요. 하지만 한국 교회는 아직도 이런 흐름을 잡지 못하고 있음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성도님께서도 WCC라는 얘기나 아래 각주에 달아 놓은 얘기는 아마 처음 보실 겁니다. 교회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내용이니 말이지요.


  아무튼 이것이 최신 경향이자 고백입니다. 물론 성경 속 세계를 보면 남녀관계가 완전히 평등했다 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운동 진영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특히, 바울 사도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지요. ‘여자는 잠잠하라’등의 내용이 주된 그 타켓이구요.


  예, 그분들 말씀이 맞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또한 남성 신학자나 목회자 위주의 신학계나 교계에서 경청해야할 부분도 많습니다. 저는 또 그래야만 우리가 더욱 온전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성경은 당시대에서는 보기 힘든 보다 평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을 끊임없이 지향하고 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무렴 최첨단 과학과 고도의 교육수준을 보이는 요즘도 온전한 남녀간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 데 몇 천년 몇 백년 전 세계에서 어찌 완전함을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이런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그 경향과 중심을 보고 이야기를 함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남녀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여러분께서 보기 쉽게 남녀평등이라 했습니다만 최근에는 이 말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녀평등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남자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네 습성이 배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양성평등”입니다. 앞으로는 저도 양성평등이란 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근대 교육의 확장과 민주의식의 내면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성의 경제적 안정의 기회확보는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을 강화시켰습니다
2).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첨가하는 분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일정부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한 축을 차지하기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편입니다. 그만큼 보수적인 가르침이 지속되어 온 것도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이런 역사적 흐름에 따라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 많았습니다. 그걸 보고 우리는 “페미니즘”이라 하곤 합니다. 이 페미니즘도 다양한 흐름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다 다루기 힘든 측면이 있군요. 서점에 가면 페미니즘에 관한 좋은 책이 많습니다. 그러니 -저는 꼭 남성분들께서 보시기를 권합니다-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가서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네 사람을 만드신 첫 모습과 성경이 꾸준히 증언하는 남성과 여성-여성과 남성의 관계입니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한 양성평등의 개념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크리스챤은 더욱 그렇습니다. 특별히 가사와 육아 문제 등은 가장 큰 축을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남성들이 더욱 아내를 위해 열심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명절에도 그렇구요. 반대로 여성들 역시 남편의 작은 변화와 노력에 많은 칭찬과 격려를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2-30년간 살아오던 방식을 바꿔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최근에는 여성의 권익이 많이 신장된 나머지 남자들이 오히려 더 위축되어 있다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서로 싸움닭처럼 고개를 쳐들 필요도 없고 서로 내가 희생당하고 있다고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거지요. 이렇게 서로 돕고 협력해가며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그런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협력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가장 기뻐하실 겁니다. 꼭 뭘 완전히 잘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멘?



1)  이 모임은 교단과 카톨릭, 개신교 등을 총 망라한 초단위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모이는 곳이지요. 그래서 세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신앙고백과 선언을 하며 책임있는 사회의 일원이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는 곳입니다.


2) 과거 남성에게만 국한되어왔던 기초 교육 및 고급 교육이 여성에게 확대되며 여성계 내부에서 스스로의 권리와 위치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선거권 확보 등의 기본적 권리찾기 운동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확산과 함께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산업화와 함께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여성이 더 이상 남성에게 종속될 필요가 없어 졌습니다. 이른바 ‘화려한 싱글“의 등장입니다. 여기에 성과학의 발달은 여성이 임신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였지요. (이것의 좋고 나쁨은 둘째로 하고요) 이런 역사적 흐름은 최근의 양성평등 개념과 운동으로까지 확산되며 상당히 보수적인 우리 나라에서도 여성 법무부 장관이나 총리가 나오는 지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니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 얘기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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