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머리 제목'에 해당되는 글 1174건

  1. 2007.11.16 영어 공부 왜 하십니까?
  2. 2007.11.16 결혼일기(2)-혼수를 장만하다 들었던 생각들
  3. 2007.11.15 수능시험 본 후 이런 이야기 꼭 나온다(수험생과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 6
  4. 2007.11.13 수능시험 당일 컨디션 최상으로 끌어 올리기
  5. 2007.11.13 결혼일기(1)-그녀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6. 2007.11.12 누드와 사회-(5)
  7. 2007.11.12 누드와 사회-(4)
  8. 2007.11.12 누드와 사회-(3)
  9. 2007.11.12 누드와 사회-(2)
  10. 2007.11.12 누드와 사회-(1)
  11. 2007.11.12 우리 경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12. 2007.11.12 나는 생일이 어색하다
  13. 2007.11.12 공익병을 아십니까
  14. 2007.11.12 균형의 상실
  15. 2007.11.12 두서 없이 적은 짧은 생각
  16. 2007.11.12 맛 탕 만들기
  17. 2007.11.12 국제 유가 상승세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18. 2007.11.12 오일쇼크 또 올까요?
  19. 2007.11.12 석유에 대한 상식 몇 가지-1
  20. 2007.11.10 학원 심야 자율학습 효과 보셨나요?
  21. 2007.11.10 이륜차 고속도로 통행금지 이유가 뭘까
  22. 2007.11.10 10월 2일 노인의 날을 아십니까?
  23. 2007.11.10 아기예수탄생-조선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면 1
  24. 2007.11.10 대한민국은 십자가 공화국인가(모셔온 글)
  25. 2007.11.10 이런 자세로 목회함이 1
  26. 2007.11.10 헌금
  27. 2007.11.08 가을과 겨울을 건강하게 나기 위한 올바른 영양관리
  28. 2007.11.08 국제 유가와 패러다임
  29. 2007.11.08 여동생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다
  30. 2007.11.08 국제 유가 상승과 미국의 함수관계

영어 공부 왜 하십니까?

[교육]자녀교육 한마당 2007. 11. 16. 15:05 Posted by 바람몰이


우리 나라처럼 영어 공부 열심히 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물론 외국의 경우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여 한 나라에서 2-3개 언어를 사용하는 곳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입시"나 "취업"만을 위한 영어 공부나 영어에 목숨을 걸고 있는 현상 등은 우리밖에 없지 않나 하는 조금 심한 생각까지 해봅니다.

그러나 기왕에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가며 하는 영어 공부라면 "잘"해야 하겠습니다. 저 역시 영어에 능통한 것은 아닙니다만 다년간의 지도경험을 토대로 학부모님과 학생여러분께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드릴 수는 있을 듯 합니다.

1.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와 그 목적을 상기하십시오.
여러분은 영어 공부를 왜 하십니까? 말 그대로 시험성적과 취업만을 위해서입니까? 저는 이런 자세가 바로 내 영어 실력을 정체시키는 한 원인이라 봅니다.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영어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도구이고, 나는 그 꿈을 향해 영어 공부를 하며 세계속에 뻗어 나가는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어야 겠다는 큰 꿈을 꾸어 보시길 바랍니다. 영어 자체에 매몰되어 버리면 영어에 끌려다니다 흐지부지해질 수도 있습니다.

2.영어에 과도한 사교육비를 투자하지 마십시오.
영어에 목숨걸고 과도한 사교육을 받은 학생치고 뛰어난 경지에 이른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중-고등학교때는 그냥 좀 하는 정도였다가 대학에 가서 상당한 수준에 오른 경우를 더 자주 목격하였습니다. 즉, 영어에 목숨을 건 과도한 교육열은 학생의 학구열을 감퇴시키어 일정 수준만을 유지시키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학원이나 과외에서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차라리 많은 영화를 보시길 바랍니다. 단, 한번은 자막을 넣고 보고, 한번은 한글과 영어 자막을 함께 보며 마지막은 자막없이 보셔야 합니다.

3.학원을 보내거나 과외를 시킬때는 분위기를 먼저 보십시요.
영어는 즐겁게 공부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이 일상에서의 배움이구요. 그러나 가족 중 외국인이 있거나 회화에 능통한 사람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게 되는 데, 이 때 그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의 분위기를 잘 보시라는 겁니다. 기왕이면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나 성격을 지닌 분을 선택하십시오. 적어도 수업시간을 지루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루하지 않는 수업은 10분을 공부해도 1시간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지루한 수업은 1시간을 해도 10분한것만 못한 경우도 있구요.

4.영어가 도저히 안된다 싶을 때는 과감히 접으십시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영어는 세계 속에 내 꿈을 펼치며 뻗어 나가는 주요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 모두가 세계 속에 뻗어가야만 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중 상당수는 영어를 잘 못해도 먹고 살만큼 벌고 있습니다. 즉, 영어를 할 만큼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되 정 안된다 싶으면 과감히 접고 내 흥미,적성 등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길을 찾으시란 것입니다. 안되는 걸 억지로 붙잡고 있을 때 우리네 인생이 매우 피곤해지는 것이 세상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반드시 잘 해야만 합니다. 영어 없이 대기업에 취직하기는 불가능하며 좋은 대학 역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영어를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 가"를 묻고 있는 어이없는 현상이 만연합니다. 그래서 투자하는 사교육비나 부모님, 학생의 열정에 비해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부산을 간다 마음먹었을 때 차를 탈건지, 비행기를 탈건지, 열차를 탈건지 고민하게 되고 차 중에서는 승용차를 탈건지, 버스를 탈건지 결정하게 됩니다. 열차를 탈 때도 KTX를 탈건지 새마을호를 탈건지 무궁화호를 탈건지 결정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뭘 하든지 그 방향성을 온전히 잡고 있을 때야 비로소 알맞은 수단과 도구를 선택하고 그것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영어 역시 내가 왜 공부하고, 무엇을 위해 하는지 그 개념이 서있어야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지요. 또 기왕에 하는 거면 지루하고 힘들지 않게 재밌게 해야 효율적이라는 거구요. 버스나 기차, 비행기에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친구를 수다를 떨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글이 여러분의 영어 학습 방향정립에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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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자는 한 여인과 결혼을 약속하고, 지금은 신혼의 달콤한 오늘과 내일을 꿈꾸며 지내고 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도 했고, 살림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나갔던 필자는 어느 아파트 한쪽에 버려진 작은 교자상과 책장을 보았다. 또한 동네 형님과 함께 돌다 냉장고와 와 작은 고가구를 발견하였다. 곧 필자는 그것들을 주워다 살림에 합쳤고, 우리 커플은 그것들을 걸레로 닦고, 포장하며 제법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우린 서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좀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 '왠 청승을 그렇게 떨고 있냐'는 거다. 기왕 새로 시작하는 거 새걸로 좀 사지 뭘 남이 쓰던 걸 쓰고, 버린 걸 주워오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웃으며 가볍게 흘리려 하였다. 보통 그렇게들 얘기하고,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챤"으로서 다시 생각해본 필자는 몇 가지 생각을 짧게 해보게 되었다.

첫째, 과연 우리는 이러한 '소비지향적' 흐름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다. 소비는 말 그대로 소비이다. 기존의 것을 쓰기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것 역시 또 다시 소비되어 사라지게만 할 뿐이다. 소비란 그 말 자체에서 착취성과 소모성, 파괴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성격이 지닌 영향력은 자연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인간내면으로 들어가면 그 영혼이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끊임없는 소비의 유혹에 휩싸이게 하고, 그 사회로 들어가면 생명이 그것 자체로 귀히 여겨지지 못하고 소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 되고 있다. 헛된 욕망에 사로 잡힌 영혼과 사회가 계속 멍들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의 엄청난 발전과 함께 찾아온 소비지향이, 전 생태계와 우리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메마르게 하고, 아프게 하는 가 우린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소비지향성은 그것이 반생명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 크리스챤들이 여기에 쉽게 동조해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둘째, 지금 교회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늘 생명중심의 마음을 잘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대가 소비지향적 세태를 보이며 생태계와 인간, 사회를 좀 먹어 간다면 그 반대쪽 자리에 서서 중심을 잡아가기도 해야한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며, 그 생명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인간의 영혼과 그 사회의 건강성을 견실히 잡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몇 몇 교회들을 보니 막대한 돈을 들여 건축하는 걸 중요한 기도제목으로 놓고 전력질주 하고 있다. 몇 몇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고급 식당에서 한끼에 몇 만원짜리 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각 은행이 특별관리대상으로 알아서 모시고 있다는 말도 있다.

모두 알다시피, 교회에 들어온 돈은 목회자 고급 승용차 유지와 번쩍이는 교회건축에 쓰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게 아니다. 이 세대의 소비의 중요한 축이 되어 VIP고객으로 모심 받으라고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사회의 소외되고, 아픔의 그늘이 있는 곳에 써야한다는..파괴되어 가는 생명을 살리는 데 써야한다는..뭐 이런 상투적인 말까지 꼭 할 필요가 있겠는가. 각 자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일 일이다.

혼수를 장만하다 있었던 에피소드를 통해 두서 없는 이야기를 펼쳤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크리스챤은 늘 생명중심의 방향을 잘 잡아나가야 한다. 반생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생명의 방향으로 돌이킬 수 있겠금 한쪽 날개의 힘을 실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며 동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주체적인 신앙적 판단을 내리며 책임있는 자신의 삶을 살고, 이 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다시 한번 살펴볼 일이다. 난 지금 도대체 어느 자리에 서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건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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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능시험 만점자
해마다 수능 시험 만점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수고와 의지에 격려를 보냅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만점자 대부분은 언론에 나와 늘 같은 얘기를 하곤 합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학원은 거의 안다녔어요." "수업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예습복습을 철저히 했어요"

이걸 보는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에이..설마.." "말도 안돼." " 방송이니까 그렇게 말하는거지" "쟤가 사람이야?!"

2.수능출제위원장의 인터뷰
험 당일 뉴스에는 출제위원의 인터뷰가 자주 나옵니다. 기자들은 이번 시험 난이도에 대해 묻곤 하는 데 그 때마다 출제위원 또는 위원장님은 "난이도는 예년과 비슷하다." "교과서 위주로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모두 풀 수있게 만들었다."

이걸 보는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말도 안돼." "뭐 항상 그렇지.." "나도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긴 했는데.."

3.명문대에 자녀를 합격시킨 부모님 이야기
이른바 명문대에 자녀를 모두 합격시킨 어머니 이야기, 외국 명문대에 자녀를 합격시킨 어머니 이야기 등이 꼭 나옵니다. 이 분들은 보통 자녀를 믿고 알아서 하도록 도와주며 자신은 그저 보조만 했다는 말씀을 하곤 합니다.

이걸 보는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고액과외 하는 애들은 왜 이리 많아." "저 아주머니 또 책 한권 내시겠네."

4.술 마시고 놀다가 사고친 수험생 이야기
무면허로 부모님 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낸 이야기나 술 마시고 싸움을 하다 다쳤다는 이야기가 꼭 나오곤 합니다.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시험 후 스트레스를 풀려 그랬습니다"라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5.자살하는 학생들
시험 후 인터뷰 하는 학생들은 각 자 나름의 소감을 얘기합니다. 무슨 무슨 과목은 풀만했고, 무슨 무슨 과목은 어려웠더라..해볼만 하더라..너무 힘들더라..등을 말이지요. 그러나 해마다 빠지지 않고 보도되는 뉴스 중 하나는 늘 자살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제가 이 이야기를 쓴 것은 단순한 흥미때문이 아닙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가 반성할 지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아시다시피 명문대에 입학해야만 한다는 수험생들의 과중한 입시부담과 이를 조장하는 학벌위주 사회, 엄청난 사교육비 문제 등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걸 보고 '문제다..문제다..'하면서도 결국 내 자식을 또 다시 사교육에 몰아 넣고 명문대에 보내려 합니다. 이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말이지요. 이렇게 해야만 하는 부모님 역시 마음이 많이 아프실 거구요.

하지만 이런 현실만을 비관하며 언제까지 고개숙인 채 지내서도 안될 것입니다. 보다 희망찬 오늘을 살고 내일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이를 위해 저는 수능을 치른 수험생과 학부모님들께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1.수능은 인생의 수많은 시험 중 하나일 뿐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수능이 매우 중요한 시험임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인생을 좌지우지 하지는 않습니다. 수능 결과에  매몰된 나머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집니다.

2.중요한 것은 대학진학 이후입니다. 대학 생활 설계를 한번쯤 해보시길 바랍니다.
명문대에 진학해도 제대로 취업이 되질 않습니다. 반면에 지방대생 중에도 취업 잘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학진학이후입니다. 대부분 신입생들이 처음 두달은 잘 하다가 그 뒤부터는 술에 빠져 허우적 대기 시작합니다. 공부 잘 안합니다. 대학 진학 이 후 어떤 생활을 할 것인지 잘 설계해보실 바랍니다. 대학 졸업때까지 반드시 이것만은 해놓겠다는 다짐을 해보세요.물론 설계대로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예 안해보는 학생과 해본 학생의 끝은 전혀 다릅니다.

3.대학 입학까지의 공백 기간을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이 기간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먼저 면허증을 따놓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대학 입학금에 보태는 것도 좋지만 특별한 가정환경이 아닌 이상 첫 입학금은 부모님께서 내주십사 정식으로 부탁드려 보세요. 내 자식 입학금을 해줬다는 것은 부모님께 부담이기도하지만 자부심도 된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생활 동안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의 노력으로 내 학비를 스스로 조달해보려는 노력인 것이지요.

4.이제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겠다 굳은 결의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혼자서만 여행을 떠나보길 추천합니다. 친구들과 가면 놀면서 술만 마시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산행을 하거나 바닷가를 걸으며 내가 살아온 인생을 정리해보고 앞으로 성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다짐해보시길 바랍니다. 여행자금은 면허 따고 약 1-20만원 가량 남을 것이니 이걸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이제 시험을 모두 치르고 성인으로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자녀들을 더 이상 애 취급 하시면 안됩니다. 성인으로서 스스로 책임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주시고 그 뜻에 따라 열심히 살도록 환경을 마련해주심이 좋겠습니다.

수험생 역시 더이상 부모님께 의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영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독립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대학 진학 이 후는 부모님께 걱정과 부담이 되기 보다 듬직한 기둥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님께서 나를 보며 힘든 지금의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되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의 밝은 오늘과 내일을 위해 건투를 기원합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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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수능 시험이 바로 코 앞에 닥쳤습니다. 수능 시험 당일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다년간 지도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몇가지 조언을 드립니다.

A.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1.먼저 핸드폰을 머리에서 1m 이상 멀리두시길 바랍니다.
대부분 중고생은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잡니다. 그러나 핸드폰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전자파는 뇌 활동에 영향을 끼쳐 충분한 숙면을 취하는 데 방해를 합니다. 알람을 맞추는 것까지는 좋으나 최대한 멀리 놓고 주무세요.

2.족욕을 하며 발 마사지를 약 10분 이상 해주시길 바랍니다.
발바닥에 보면 가운데 볼록한 부분과 발가락 바로 밑의 평평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곳은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혈이 자리한 곳입니다. 따라서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때를 벗긴다는 마음으로 충분히 마사지를 해주면 숙면에 도움이 됩니다. 본래 사람이 잘 자려면 머리는 시원하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는 것입니다.

3.모든 조명을 끄고 최대한 어둡게 하시길 바랍니다.
빛은 우리 몸의 긴장을 유발합니다. 최대한 어두운 곳에서 잘 때 우리 몸은 비로소 휴식에 접어들게 됩니다.

잠을 잘 자는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컨디션과 뇌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전기기기는 모두 전원을 끄고, 빛은 최대한 어둡게 하며, 발 마사지를 통해 하체를 따뜻하게 한 후 잠을 자면 별도의 스트레칭이 없어도 숙면을 취할 수 있으실 겁니다.

B.두뇌활동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1.아침식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몸이 소모하는 열량의 20%이상이 두뇌에서 이뤄집니다. 따라서 충분한 영양공급을 해야만 두뇌활동이 촉진된다 할 수 있습니다. 아침식사를 거르는 것은 시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2.양과 질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합니다.
제 오랜 지도경험과 개인적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평소 먹던 양의 3/4정도가 적절합니다. 적절한 공복감을 유지하여 정신을 또렷하게 하며 집중력 유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질은 아래 3번을 참고하세요.

3.특히, 지방이 많은 것과 김치찌개류 등의 매운 음식은 삼가하시길 바랍니다.
매운 음식은 뇌로 유입되는 혈류량을 늘립니다. 그래서 산소가 부족하게 되고 머리가 무거워지며 "띵~"한 상태를 만들게 됩니다. 따라서 아침식사와 점심으로는 적절치 않다 할 수 있습니다. 라면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름기가 많은 것은 몸을 느끼하게 하여 벌써 기분부터 좋지 않게 합니다. 시험 당일 아침과 점심으로는 느끼하거나 맵지 않은 고단백 음식과 신선한 과일 및 견과류를 통해 두뇌활동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4.긴장을 완화하는 충분한 스트레칭과 호흡이 필요합니다.
말 그대로 입니다. 스트레칭과 호흡을 충분히 해야합니다.

특히, 어깨쪽 스트레칭과 무릎 관절 뒷 부분의 스트레칭에 좀 더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이 두 부분은 우리 몸의 전체적인 긴장도를 풀어 줄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큰 숨을 들이쉬어 뇌 활동을 환기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C.적절한 의상은
1.일단 부피가 너무 큰 의상은 피하시길 바랍니다.
오리털 파카 같은 의상은 몸을 웅크리게 하고 움직일때마다 소리가 나서 집중력을 저하시킵니다. 단촐하면서도 춥지 않은 의상을 선택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너무 추우면 긴장이 높아지니 이것 역시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D.시험 장에 갈 때는
1.기름 냄새가 많이 나는 버스는 피하시길 바랍니다.
 게다가 버스는 난폭운전을 하는 경우가 많아 기름 냄새와 함께 멀미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컨디션 조절에 완전 실패하는 경우이지요. 물론 요즘은 천연가스 버스가 많아지고 부드러운 운전을 하는 기사님도 많습니다만 가능하면 전철이나 승용차 등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몸을 웅크리고 있지 마십시오.
대개 차를 타면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긴장을 높일 뿐 아니라 잠을 유발하여 머리가 띵해지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잠을 자려면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하시고 잠에서 깬 후에는 꼭 스트레칭을 하여 몸의 잠도 깨우시길 바랍니다.

E.시험 장에서는
1.일단 화장실은 무조건 가셔야합니다.
시험시간에는 화장실에 보내주지를 않습니다. 일단 쉬는 시간이면 먼저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 오세요. 특히, 오전에 대변을 보고 와서 편안한 속을 유지할 수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2.흡연이 많습니다.
화장실에서 흡연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하세요. 그저 가볍게 소변 보고 오는 것은 아무 문제 없으나 담배연기를 유독 싫어하는 분은 마스크를 준비하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3.책상 상태가 불량한 경우가 있습니다.
책상에 구멍이 뚫려있는 등 불량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자칫 답안지 마킹을 할 때 OMR지의 손상과 실수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바닥 상태를 보며 조심해서 체크하시길 바랍니다.

제 다년간의 지도경험으로 비춰 볼 때 이 정도만 유의하셔도 시험 당일 컨디션 조절에는 별 문제가 없을 거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자신감있게 문제를 읽고 풀어가느냐 입니다. 너무 신중하려 하면 시간조절에 실패하기 쉽고, 너무 빨리 하려 하면 실수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한문제 한문제를 자신감있게 읽고 기억을 더듬으며 풀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결과야 어찌되었건 이 시험을 치르는 경험은 내 인생을 책임있게 살아가는 첫 관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훗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주 귀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모두 준비하신 만큼 충분한 열매를 거두며 대박 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화이팅!!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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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곧 한 여인을 만났다. 그간 한번의 연애경험이 없던 나에겐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난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인식의 관점과 내 삶의 수많은 패턴들이 바뀌게 되었다. 모든 연애가 그렇듯 우리 역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믿음과 뜻을 품고 잘 이겨내었고, 곧 결혼을 할 예정이다.

결혼 준비를 하며 주변의 많은 사례들을 보았고, 많은 조언을 들었다. 쭉 훑어보니 '이 정도는 해야한다..' 하는 기본선이 있었다. 혼수, 예단, 웨딩촬영, 드레스, 턱시도, 해외신혼여행...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이러한 기본선을 지켜가는 것이-흔히 일생의 단한번이라 말하곤 하는-결혼의 의미를 더욱 뜻깊게 할 것인가..더욱 풍요로이 해줄 것인가..경제적인 부담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워지켜나가기로 하였다.

첫째, 모두 하는 대로 하는 대로 꼭 할 필요는 없다. 우리 결혼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세상의 관념들이 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고, 후배들과 또래의 젊은 커플들에게 모범 사례로 기억되거나 참고가 될 수 있는 예식을 준비해 보자.

셋째, 20대 중후반이 되어서까지 부모님의 손을 빌려 시작하지는 말자. 힘들더라도 우리의 힘으로 가보자.

이정도의 큰 틀을 잡아보며 우린 좀 더 세밀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먼저 기존의 웨딩홀을 빌려 하는 흔히 말하는 결혼식을 지양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이 속에는 서로의 사랑과 인격, 신념을 존중하는 고백이 충분히 담보되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린 서로의 종교와 신념을 존중하여 대학 채플실을 빌려(약 5만원 상당)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받아오는 식의 남성중심적 예식이 아닌 양성평등적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서로의 은사님이신 여성 목사님을 주례로 모시기로 하였다. 이것을 통해 양성이 서로를 존중하는 양성 평등적 의미를 담아내고 싶었던것이다.

또한 결혼식 때 흔히 입곤 하는 턱시도와 드레스를 과감히 벗고, 우리의 전통 한복을 입기로 하였다. 꼭 서양사람들의 몸에 맞춘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우리의 결혼에 우리의 의식을 담아내는 것 또한 뜻깊은 것이라 여겨졌다.

혼수, 예단 등은 모두 생략하기로 하였다. 사실 그 동안 차근차근 준비하기도 하였거니와 대부분 새로운 살림을 시작한다 하여 꾸준히 사용가능한 물품을 버리거나 처분하고, 새것을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내가 갖고 있던TV, 오디오 세트, 책장, 그녀가 갖고 있던 식기류, 컴퓨터, 전기밥솥 등을 그대로 이용하기로 하였다. 냉장고는 누군가 몰래 버리고간 350리터짜리를 구해다 깨끗이 닦아 사용하였다. 자본주의 적 소비의 시대 속에 산다고 하여 우리까지 편승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소비중심의 생활양식이 지구별에 끼칠 영향은 눈에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신혼여행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일단 해외여행은 지양하기로 하였다. 아직 우리네 땅도 제대로 모를 뿐더러, 굳이 해외로 나가야만 할 이유가 없었다. 또 나간다고 하여 딱히 더 좋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필자의 소형차를 이용하여 전국일주를 하기로 하였다. 같은 값일지 몰라도, 이것을 통해 더 오래 함께 있고, 전국의 수많은 명승고적을 탐방해보고, 우리네 인심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사람 사는 맛을 느껴보기로 하였던 마음이다.(200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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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사회-(5)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45 Posted by 바람몰이
 ▣결 론▣

 누드는 예술의 중요한 한 장르이다. 초기의 누드는 남자를 중심으로 한 것이 많았으나, 르네상스 이 후 여성을 다룬 것이 많아진다. 이것은 누드에 새겨졌던 예술적 혼 이외에 에로티시즘이 접합된 것이었다.

  최근에 들어서는 일부 연예인을 중심으로 누드사진을 찍는 게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디지털 산업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되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러 저러한 말이 많지만, 이것은 한 개인 내면 문제로 국한 지으며 단순한 문화코드나 노출 불감증 정도로 여기는 분석은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데올로기적 기초와 경제적 물질 기초가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성 혁명은 이러한 현상의 직접적인 뿌리가 되는 것이다. 특히, 두 차례의 성 혁명과 함께 급격히 발달한 성산업은 ‘virtue'나 ’intercourse' 같은 개념을 성애화 하는 동시에, 성적 매력을 가리키는 ‘sexy'라는 신조어를 대중화 시켰다. 또한 성 산업이 대항문화의 ‘해방적 수사’를 원용하고, 그 쇠퇴를 틈타 그것을 독점하면서, 역설적으로 포르노 산업이 창궐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내기도 하였다. 결국  성해방의 가장 강력하고 가시적인 모델을 제공한 것은 광고업자와 미디어였던 것이다. 남한 사회의 누드 열풍에는 위의 개인적 문제 외에도 성 혁명 이후 자리 잡은 이데올로기적 기초와 광고업자와 미디어에 의한 선동 역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본주의 경제의 주기적 순환은 문화산업의 발전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경제에 있어서는 혼란기인 이른바 'Belle epoque'는 문화산업에 있어서는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기간이었으며 남한 사회 역시 이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이러한 성장의 원동력인 자본이 그 원인에서 빠지게 된다면 이 역시 반쪽짜리 분석이 되고 말 것이다.

  세 번째로 남한 사회 성문화의 독특성이다. 우리의 성 문화는 육체적 거래가 없는 성의 상품화 현상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성의 상품화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기준이 부재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청소년기의 성적 모험에 가까운 성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일고 있는 누드 열풍에 상당한 정도 기여 하며, 그 시장을 급속하게 팽창시켜 나가는 중요한 한 원인이 되었다.

  끝으로 우리는 한 미술 교사의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표현의 자유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참고)기타 다이어트, 건강 관련 사이트~!

▣정리하며▣

  지금까지 필자는 누드에 대한 예술사적 흐름 변화와 최근의 누드 열풍을 중심으로 본 보고서를 전개해 왔다. 지면의 한계 상 더 다루고 싶지만 그렇지 못 한 것이 많아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또한 본 보고서가 담당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의 의도와 얼마나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 평소 관심 있어 하던 분야였고, 이 참에 한번 여러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과감히 써내려가기로 결정하였다. 누드는 예술가의 혼을 담아 오늘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의 중요한 한 장르이다. 이것은 그림이 되었든, 조각이 되었든, 사진이 되었든 모두 공히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오늘의 누드는 이러한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남성의 욕구와 자본의 욕구, 그리고 여성의 나르시시즘적 욕구를 반영하는 일종의 ‘짬뽕 같은 기형아’와 같은 꼴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폭력성과 함께 공명하며, 이제는 순수한 한 예술을 쥐 잡듯이 잡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도 중요하고, 경제 발전도 중요하며, 인권의 회복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사회적 교양 수준의 함양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누드라는 한 예를 통해서 본 일련의 과정은 결국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에 대한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냉소와 비관만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사회의 개혁을 위해 뛰어갈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제 자리에 주저 앉아 한량처럼 떠들어 대는 것은 내 젊음에 대한 배신이요, 사회적 인력낭비이다. 청년학도들이 취업에만 목을 메이지 말고, 사회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며, 전반적인 자기 개발에 더욱 힘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윤소영 지음,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워싱턴 콘센서스’-마르크스적 비판의 쟁점들>. 과천연구실 1999

윤소영 지음,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과천연구실 2001

이미경 지음, <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페미니즘적 비판의 쟁점들>,과천연구실 1999

이주헌 지음, <신화 그림으로 읽기> 학고재 2000

김영애 지음, <페로티시즘-여성의 눈으로 본, 미술속의 에로티시즘> 개마고원 2004

한겨레 신문 2005. 8. 7

주간한국 2005. 3. 23

기업나라 2005.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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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사회-(4)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43 Posted by 바람몰이
 

3.음란과 폭력1)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은 “프리섹스는 오케이, 성매매는 노”라는 말로, 성매매 반대의 정치학을 요약했다고 한다. 여성주의자들이 포르노를 반대하는 것은 성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대개 포르노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를 정상화, 합리화하는 정치적 재현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정희진은 반대해야 할 것은, ‘음란물’이 아니라 폭력물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남한 사회는 폭력물은 무제한 허용하면서도, ‘음란물’, 특히, ‘성찰적 음란물’에 대해서는 낡은 칼날을 휘두른다는 그의 지적은 옳다. 지난 번 대법원은 미술교사 부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나체 사진에 대해 1심과 2심에서의 무죄 판결을 뒤엎고, ‘음란물’이라며 일부 유죄 판결을 내렸다. 시민사회와 여론은 “ ‘음란’ 여부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한가”라며, 법원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었다.

  그러기에 정희진은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의 자유인가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표현의 자유는 공동체의 민주주의와 창조성, 다양성에 기여하지만, 강자의 표현의 자유는 폭력의 자유에 다름 아니다2). 이번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 문제라기보다는, 재판부의 ‘음란’의 정치학에 대한 무지와 그들의 획일화된 신체관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미술교사의 작품은 외모가 계급이 되어버린 ‘몸짱’ 지배의 한국사회의 억압적인 몸 이미지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것인데, 재판부의 수준은 이를 ‘음란’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정희진은 지금 대한민국을 도배하고 있는 ‘쭉쭉 빵빵’한 젊은 여성의 누드는 ‘아름답고’, 배 나오고 처진(대부분 사람들의 몸) 벗은 몸은 ‘음란’한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이런 종류의 ‘음란물’ 제작은 더욱 격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성 연예인의 누드 모바일 서비스 같은, 주로 여성이 대상이 되는 규격화된 몸 이미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것이다.



참고)링크 프라이스에 소개된 건강,미용 사이트~!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더 추가되어야 할 폭력이 있는 데, 그것은 마치 ‘인민재판’식으로 몰고가는 언론의 선동과 네티즌의 마녀 사냥식 폭력을 말한다. 특히, 언론의 한 개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은 이미 그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미디어 몽매주의에 따른 네티즌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두 말 하면 잔소리같이 여겨질 정도인 것이다.


1) 한겨레 신문 2005년 8월 7일자 정희진의 칼럼 제목을 인용


2)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할 말은 하는’ 신문들처럼, (지배 세력의)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보장된 사회라며 조소섞인 말을 하기도 하였다. 앞의 일자 칼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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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사회-(3)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42 Posted by 바람몰이

 

2.누드열풍의 원인은 무엇인가?

   2-1.과시본능이 만든 문화코드1)

  진옥현은 인터넷의 등장,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의 대중화 등으로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더니 이제는 누구나 쉽게 카메라 앞에서 옷 벗는 세상이 되었다며, 얼짱, 몸짱 열풍에서 누드짱으로 이어진 요즘은 자기만족을 넘어서 때로는 익명성마저 무시한 채 많은 사람이 자기 몸을 봐 주기를 기대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에게 관음증과 노출증은 정신병 증상이 아닌 성적 취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얼마 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등장한 셀프누드는 공개되자마자 2만여 명이나 다녀갔고 1촌을 신청하는 네티즌도 폭주했다고 한다. 자기의 미니 홈피에 세미누드를 올린 주인공은  누드를 예술 장르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얼굴도 가리지 않았다고 하니, 아무리 셀프누드 열풍이 거세다고 해도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인이 누드를 공개할 때는 얼굴을 가리는 것이 상식인데 비하면 엄청난 파격이긴 하다.

 사실 인터넷의 성인 커뮤니티에서는 셀프누드가 활발하다. 성인 포털 사이트나 관련 인터넷 카페, 사진 갤러리에는 일반인 누드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씩 올라온다. 물론 아직은 대부분 익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2~3년 전만 해도 몰래 카메라 중심이던 일반인 누드가 방문객을 늘리고 눈길을 잡기 위해 섹시 컨셉트에서 누드까지 확장된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여성들이 셀프누드를 찍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2). 반직업적 형태로 성 취향과 관계없이 자기 몸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알바형, 자기만족이나 화상 채팅에 중독된 여성으로 대표되는 과시형, 누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동경을 갖고 있는 신세대 젊은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는 모델형, 그리고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단지 남자 친구나 남편 등의 권유로 찍는 희생형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셀프 누드의 대중화는 화상 카메라의 보급과 더불어 사회 문제를 일으킨 음란 화상 채팅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일반인들의 호기심은 모바일에 공개된 연예인 누드 열풍으로 누드에 대한 인식마저 바꿔버렸다. 때로는 셀프누드 마니아가 음란 화상 채팅 등으로 수입을 올리는 반 직업이 되기도 한다. 또 애로 배우 매니지먼트사에는 연예인 누드 붐 이후로 누드를 찍겠다며 스스로 찾아오는 대학생, 직장인 등 평범한 여성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진옥현은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나르시시즘적인 취향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파악하며, 과시본능이 만들어낸 문화코드라고 보는 것이다.


 2-2.노출 불감증 "내 알몸을 봐"3)

  주간한국은 잠자는 부인·애인의 누드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처음엔 남자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었어요. 그런데 막상 인터넷에서 내 누드사진을 확인하고, 흥분된 리플들이 줄줄이 달려 있는 것을 보니까 묘한 쾌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하는 한 여성의 증언을 인용한다4).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남자 친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알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에 담아 내고 공개하는 셀프 누드 마니아로 변모해 갔다고 말했다.

또한 주간한국은 화상채팅은 라이브 포르노라고 하면서 텍스트기반으로 이뤄지던 음란 채팅은 웹캠과 함께 1인 라이브 포르노 시대를 열었다. 누드는 물론이고 자위 행위 등을 서슴없이 공개한 소수의 여성, 일명 ‘쇼 걸’들은 누드 불감증을 확산키는 데 1등 공신이라고 하고 있다.>주간한국은 통계도 인용하는 데, 2003년 한 스포츠신문의 온 라인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46%가 셀프 누드를 찍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호기심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공개된 연예인 누드 열풍으로 인해 누드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 연예인도 누드를 찍는데 나라고 못 찍을 것이 뭐 있느냐는 식의 안도감은 물론 용기까지 준 것이다.

  또한 누드를 통해 월 15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한 여성의 예 역시 보도한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셀프 누드 마니아였다고 하는 데, 그녀는 호기심에 인터넷에 폰카로 찍은 누드 사진을 올려 놓던 중 우연히 화상 채팅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남자들 반응이 재밌어서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수입이 좋아서 요즘엔 반 직업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에로 배우 매니지먼트사인 나은 엔터테인먼트의 이경민 대표의 전언은 더 적나라하다. 이 대표에 따르면 연예인 누드 붐 때문인지 누드를 찍겠다며 스스로 찾아 오는 대학생, 직장인 등 평범한 여성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는 것.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젊은이들의 미팅 현장에서는 셀프 누드를 찍어 핸드폰 속에 저장해 뒀다 상대에게 보여 주기도 하는 것, 사진 작가 J씨는 요즘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무료 누드 사진을 찍어 주고 있다고 하는 데, 처음에는 모델료까지 지불해도 구하기 어려웠지만, 요즘은 모델 구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즉, 다시 말하자면 주간한국은 “디지털 혁명이 세상을 하루가 다르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보수적인 한국의 성 관념마저 뒤바꿔버리고 있다.”라고 하며, 특히 인터넷의 등장,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의 대중화 등의 추세에 따라 알몸은 더 이상 감춰둘 수 없게 만들고 있고 그러기에 관음증과 노출증은 정신병적 현상보다는 이제 당당한 성적 취향으로서 더 강하게 다가오고 있으며, 몰카든 셀카(셀프 카메라)든 이미 통제 불가능의 상황이 된 “누드불감증 시대”라는 것이다.


 2-3.사회학적 접근

  셀프누드는 나르시시즘을 반영하는 과시본능이 만든 문화코드라는 것이 첫 번째  인식이었다. 또한 두 번째 인식은 노출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분석은 사회전반과 관련되어 있는 경제구조에 대한 몰이해와 이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예술의 장르에서 벗어난 여성의 몸을 상품화 하고, 돈벌이 한 수단으로써만 여기는 상업과 결탁한 남한 사회의 누드 열풍의 원인을 한 개인의 내면 문제로만 치부해버리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성산업의 발전에는 그만한 경제구조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을 함께 짚어 내야만 오늘의 성산업에 의해 왜곡된 누드에 관한 보다 생산적인 담론을 끌어 낼 수 있지, 이것을 단순한 개인 내면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은 오늘의 누드유행을 온전히 해명하지 못 할 것이다. 

 

  20세기에는 두 번의 성 혁명5)이 있었다. 먼저 1920년대의 1차 성 혁명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중 문화와 구애의 급진적인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 데이트 혁명이었다. 1차 성 혁명 당시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하게 된 아메리카 자본주의의 상황과 관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산업적인 하부구조 건설을 위한 자본을 축척하기 위해서 더 이상 지속적인 노동 윤리 또는 금욕주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자본은 소비자를 필요로 했다. 이러한 새로운 경제 질서는 여러 면에서 기존 규범과 충돌하였다. 특별히 대량 소비를 위한 광고는 성적 판매를 일상화하면서 성에 대한 태도를 변혁하였다. 성 산업은 사회 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였다. 성적 자유주의는 성을 상업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virtue'나 ’intercourse' 같은 개념을 성애화 하는 동시에, 성적 매력을 가리키는 ‘sexy'라는 신조어를 대중화 시켰다. 결국 성해방의 가장 강력하고 가시적인 모델을 제공한 것은 광고업자와 미디어였다.

   1960년대의 2차 성 혁명은 성적 자유를 가속화하였고, 핵가족의 가치 자체를 부인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독신자 혁명이었다. 이것은 여성이 성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시작되었고, 그 쟁점은 피임-낙태의 권리와 동시에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반대, 즉,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프리섹스’ 였다. 이러한 프리섹스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여성해방을 가져 왔다기 보다는 미디에에 의한 ‘성의 상품화’와 평행하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문화 산업이 대항문화의 ‘해방적 수사’를 원용하고, 그 쇠퇴를 틈타 그것을 독점하면서, 역설적으로 포르노 산업이 창궐하였던 것이다. 이 배경에는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전 세계 경제 이윤율의 고도화 된 성장과 지속이 있다. 흔히 하는 말대로 ‘먹고 살만해지니 이것 저것에 관심이 많이 쏠리는 것’이다6).

  남한 사회의 경우는 1980년 대 중반 이 후 ‘3저 호황’을 통해 강화된 재벌 체제를 중심으로 계속된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bubble'을 형성하며 IMF까지 지속되었는 데, 특히, 95-97년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과잉축적은 6,70년대의 고도성장기의 지수적 자본성장률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97년 IMF는 우리 경제의 결정타를 먹인 사건으로써 사실상 우리 경제의 'Bubble'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사회전반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장하는 듯한 우리 경제는 이른바 'Belle epoque'로 상징될 수 있는 아메리카 경제의 이윤율 주기와 맞물려 진행되는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문화산업의 가장 활발한 성장이 가능하게 된 시기이다. 즉, 다시 말하면 하락하는 이윤율과는 상관없이 시장에 축적되어 있던 여유자금이 문화산업에 집중투자 되게 하는 것이다.

  남한에서 성 산업은 1980년 대 말 이후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이러한 팽창은 1970년대 이 후 발전 전략에서 외국인에게 국한되던 성적 착취 양식이 비공식 부문의 서비스 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일반화 되어 나타난다. 특히, 남한에서는 태국과 달리 성 산업이 외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내국인에게까지 허용된다.

  이러한 상업적인 성의 대중화는 우리 사회에서만의 독특한 경향을 띄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육체적 거래가 없는 성의 상품화 현상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경의 지적7)대로 성의 상품화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기준이 부재한 것이다. 따라서 성의 상품화로 파생되는 외설과 퇴폐라는 측면만 규제가 되는 것이 남한 사회의 현실이다.

  성의 상품화는 자본주의적 문화 산업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또한 성적 자유 또는 해방이라는 환상은 성의 상품화에 대해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기꺼이 공모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특별히 남한 남성은 공식적인 통계치로도 40배 이상의 상품화된 성을 서양 남성에 비해 이용하고 있다8). 서양의 성 혁명과 관련된 이데올로기 수입은 성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상황과 접목되면서 성적 무규범성을 가속화하고 있다. 남한 남성의 상품화된 성행위의 특징은 일본 남성의 가학적인 취향과는 성격을 달리 하면서도 연령에 관계없이 청소년기의 성적 모험에 가까운 성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누드열풍은 이러한 배경적 원인을 품고 있는, 과거의 에로티시즘의 이유 이상의 원인으로 인해 형성 된 것이다


1) 이 용어는 기업나라 객원기자인 진옥현이 사용한 것으로 기사제목은 “일반인도 벗기는 셀프누드 열풍”이렀다. 2005년 8월 16일자 보도이다.


2) 앞의 기사 발췌. 실제 주간한국 역시 아래의  2005년 3월 23일자 보도에서 셀프 누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불러도 손색없게 되었다고 하며, 우리 사회의 셀프누드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먼저 알바형은 반직업적 형태로 성 취향과 관계없이 자신의 몸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경우다. 유흥가 접대부나 성 매매보다는 누드 촬영이 그나마 낫다는 인식이 있다. 연예인 누드의 대중화로 부담감이나 죄책감도 많이 사라졌다. 여대생에서부터 유부녀까지 그 대상이 폭 넓고 다양하고 모바일, 인터넷 누드 촬영이나 유료 화상 채팅 등의 분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작업의 특성상, 유료성인 화상채팅 아르바이트 등의 영역에 국한되기 일쑤다. 과시형은 얼짱, 몸짱 열풍에 기인한 우리 시대의 노출증이라고 할 수 있다. 돈벌이와 상관없이 셀프 누드 사진을 찍고 보여 주면서 자기 만족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다. 화상 채팅에 중독된 여성들이 대표적이다. 모델형은 누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동경을 갖고 있는 신세대 젊은 여성들의 욕망을 대변한다. 젊은 시절 아름다운 몸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논리다. 이들은 은밀하게 스튜디오를 찾아 온 뒤, 오히려 돈을 내고서라도 자신만의 누드를 남긴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섹시한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올리는 유형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희생형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단지 남자 친구나 남편 등의 권유로 인해 누드 이미지를 남기는 여성이다. <신문기사 발췌 및 정리>


3) 이 용어는 주간한국의 2005년 3월 23일자 보도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4) 보도에 따르면 30대 초반인 이 여성은 그렇게 침실에서 시작해 식당, 커피숍에서부터 심지어 사람들이 오가는 공원에서까지 성기를 드러내고 누드 사진을 찍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5) 제프리즈(Jeffreys, 1990, 1993)는 1980년대의 성 산업의 레즈비언 공동체로의 침투를 또 하나의 성 혁명으로 보기도 한다.


6)  'belle epoque'로 불리는 19세기 말 유럽의 상황은 실질적인 경제 이윤율은 바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으나, 이 때 시장에 풀려있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문화 예술 산업계에 투자됨으로써, 예술가들로 하여금 ‘풍요의 시대’라는 찬사가 나오게도 하였다. 이것은 70년대 이 후 미국경제의 사례 분석에서 좀 더 분명하게 제시되는 데, 실제 성산업이 가장 발전했던 70년대 대불황에서 90년대에 이르는 belle epoque는 5,60년대의 황금기를 거친 후 나온 장기파동에 후속하는 것이었다. 이 장기파동은 윤소영이 지적한 대로 체계적 축적 순환의 물질적 확장 국면과 금융적 확장 국면이었다. 이 때, 시장에는 상당한 자금이 퍼져있어서, 실제 경제적인 이윤율 하락 국면과는 별도로 문화산업이 창궐하는 시기와 연관되어 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본 보고서가 경제학 분석 보고서가 아니므로 생략하겠으니 윤소영 지음,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과천연구실 2001을 참조하라. 성 혁명에 관한 내용은 이미경 지음, <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페미니즘적 비판의 쟁점들>,과천연구실 1999 윤소영 지음,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워싱턴 콘센서스’-마르크스적 비판의 쟁점들>. 과천연구실 1999 제1장 6절 ‘아메리카 핵가족의 형성’을 를 참조하라.


7) 이미경, 앞의 책,


8) 이미경, 앞의  책 p.76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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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사회-(2)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40 Posted by 바람몰이

 

1.접근과 추세

  1-1. 접근-예술의 영역에서는

 원시예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거나 조각하는 데서 비롯된 조형예술은 육체를 예술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취급해왔다. 인간의 생명력과 움직임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육체 또는 그것 자체가 복잡 미묘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예술에서도 기술의 발달과 함께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이용하여 누드는 중요한 피사체가 되었다.

  이와 같이 예술의 영역에서 미적 대상으로서의 육체, 즉 작품화되는 나체의 전통이 그리스시대 때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반라 또는 전라의 육체에 직접 그림물감을 칠하는 보디페인팅도 이 누드의 전통을 확대한 것이고, 보디빌딩도 자기의 육체를 미화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적 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무대에서의 누드댄스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르네상스 이 후 남성 누드는 시간이 갈수록 그 수효가 급격히 줄어든 반면, 여성 누드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여성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기에 그 중심이 옮겨 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만은 않았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남성의 아름다움과 대등하게 바라보게 된 미술 쪽의 시각과 달리, 사회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불완전한 남성’ 취급을 받았다. 여성은 ‘하위의 성’일 뿐이었다. 변한 것은 여성미의 독자성을 발견하고, 여성 누드가 지닌 힘의 폭발성을 갈 수록 강하게 느꼈던 미술이, 누드 미술을 주체로 표현하는 미술에게 객체를 표현하는 미술로 변형시켰다. 말하자면 남성이 스스로를 찬양하는 미술로서의 누드 미술을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미술로서의 누드 미술로 바꿔버린 것이다.

  물론 모든 여성 누드가 에로티시즘의 목적을 띄고 있지는 않다. 특히, 중세의 누드는 순수함이나 헐벗음, 죄, 진실 등 다양한 상징성을 지녔고, 이 전통은 후대에도 어느 정도 이어져 내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에로티시즘은 여성 누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미술 속의 여성 누드가 취하고 있는 포즈만 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의 남자 누드처럼 ‘시선을 던지는 자’가 아니라 ‘시선을 받는 자’이다. ‘자기를 의식하는 자’가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자’이다. 즉,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1)이다.


 

  1-2.추세

 신라와 고려시대 일부에서 개방화됐던 우리 나라의 성문화는 조선시대 이래 유교적인 틀 속에서 오랫동안 보수적인 색채를 띠었다. 우리 나라에서 성과 누드가 공론화 된 시기는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 선두에는 연예인이 서있다. 1991년 가수 겸 영화배우인 유연실이 반라와 전라 등의 사진 81컷을 모아 사진집 ‘이브의 초상'을 펴낸 것이 시초. 이후 10여 년 간 모델 이승희를 비롯해 서갑숙, 성현아, 김지현, 권민중, 이혜영, 고소영 등 내노라하는 연예인들이 누드집을 출판했으며 매번 큰 충격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섰다. 최근 유명 여자 연예인들이 경쟁적으로 누드집을 내면서 우리 사회에 `벗기 열풍`이 불고 있다.

  성현아가 처음 온라인에 누드 영상을 공개했을 때는 사이트가 해킹을 당하는 수난을 겪으며 1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권민중의 누드공개에서는 해킹 위험이 적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서비스하면서 해외 화보집 제의를 합해 매출 규모가 50억원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현재 누드영상을 공개 중인 김완선은 기대치가 더 올라가 일부에서는 100억원대를 거론한다. 물론 모바일 접속자를 막연하게 추정한 수치여서 그다지 신빙성은 없지만, 그만큼 누드영상이란 콘텐츠의 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반증이다. 이혜영은 아직 누드영상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에 24억원을 받고 초상권을 판매했다. 이쯤 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다. 한번 벗었다 하면 수 십억의 매출이 오르고 인기도 높아지니 `꿩 먹고 알 먹는`셈이다. 옷을 벗는 행위가 일종의 사업이자 자신을 홍보하는 마케팅 수단이 된 것이다.

  몸값으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너나없이 누드를 찍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확실히 지금의 우리사회는 누드가 돈이 되는 사회이고, 섹슈얼리티가 이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세상이 달라지고 사회가 변하면서 `누드`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달라졌다. 그래서일까. 이제 누드 열풍은 더 이상 돈을 위해 옷을 벗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우리사회에는 각각의 이유로 옷을 벗고, 그 벗은 몸을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개인과 집단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대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돈을 받고 팔 것도 아닌 누드 사진을 돈을 들여 찍기도 하고, 셀프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공개하기도 한다.



1) 이주헌 지음 <신화 그림으로 읽기> 학고재 2000






참고)링크 프라이스에 소개된 건강,미용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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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사회-(1)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39 Posted by 바람몰이

  서 론
요즘 문화계의 화두 중 하나는 성(性)이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성과 관련한 원색적인 대사들과 불륜을 소재로 한 내용이 여과 없이 나오더니, 연예인들의 누드열풍이 일반인에게까지 전가돼 ‘누드 전국시대'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옷을 벗는 연예인들부터 시작해 누드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생활의 한 영역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성(性)의 공개가 이제는 표현의 자유 중 하나쯤으로 여겨지며, 보편화 되는 추세다. 옷과 사회적 통념을 입은 채, 은밀한 성은 최근 누드열풍 속에서 소통과 자유, 즐거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때로는 매춘과 상업화의 대상으로, 또 마케팅의 강력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성은 이제 일상이자 상품이며 자기과시의 강력한 무기로 바뀌었다. 몸값으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너나없이 누드를 찍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확실히 지금의 우리사회는 누드가 돈이 되는 사회이고, 섹슈얼리티가 이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제 누드 열풍은 더 이상 돈을 위해 옷을 벗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우리사회에는 각각의 이유로 옷을 벗고, 그 벗은 몸을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개인과 집단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들이 이렇게 옷을 벗고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 보고서는 최근 일고 있는 이러한 누드열풍이 본래의 예술적 관심과는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이고, 이러한 원인을 진단하고자 한다. 또한 이것이 품고 있는 사회적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대학시절 보고서로 제출한 글)






참고)링크 프라이스에 소개된 건강,미용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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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시사]세상살이 2007. 11. 12. 11:06 Posted by 바람몰이

우리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시장에 나가도 그렇고 개인 사업하시는 분을 만나 뵈도 그렇습니다. 요즘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경제 침체론을 자주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 근거는 계속 증가하는 청년실업과 끝없는 내수침체 등을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의 정부 이 후 무역에 따른 경상수지는 거의 매달 대부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률 역시 4-5%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실제 2000-2005년 OECD국가 평균 경제 성장률이 2.8%임을 감안한다면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국부의 잣대로 여기는 외환 보유고 역시 2천억 달러를 넘습니다. 오히려 정부에서는 넘쳐나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해 외국 부동산 구입이나 송금 제한을 완화 하는 형편입니다.

끝으로 대기업의 영업 수익률과 이익률은 계속해서 증가 또는 유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주가지수가 -오락가락은 하지만-2000을 넘어섰습니다. 시장에 자본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에 곤두박질 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잘 방어하고도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체감경기와 경기지표와 일정부분 괴리가 있음을 실감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경제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다음과같이 보고 있습니다.

먼저 성장의 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고용없는 성장이 대부분이란 것이지요.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의 설비투자와 고용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성장은 IMF 이 후 금융상의 성장입니다. 또한 국민의 80%가 취업해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이 아닌 대기업의 성장입니다. 따라서 고용이 없고 계속해서 자본만 축척해 가는 꼴이 되고 이것이 일반 서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으니 계속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두번째는 대기업의 단기 위주 운영정책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유가 상승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과 국내의 정치상황 등을 볼 때 대기업에서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계획을 세워 설비 투자 및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 같습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이 늘어감에 따라 분명한 이익률 상승의 성과를 보여하는 부담이 증가한 것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자본을 빼버리고 시세차익만 얻은 후 가버리니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분명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위주 정책을 펼치게 되어 가는 것이지요.

끝으로 비정규직의 증가때문에 그렇습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압박으로 인해 계속해서 CR 즉, 단가인하 부담을 지게 되어 경영이 어렵습니다. 대기업은 "노동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단기간의 이익을 내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의 어이 없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한 몫을 했구요. 그러다보니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고 구매력이 떨어지니 당연히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경기가 침체되어 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돈이 있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줄여가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정부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가장 크다 생각합니다. 물론 언론의 어처구니 없는 사실 왜곡과 호들갑, 정치권의 말조차 안나오는 공세도 있지요.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이야 했겠지요. 실제 기업 대표를 초청해 만찬도 많이 하고 단도직입하여 필요한게 뭐냐..뭘 해주길 원하냐..등 얘기 하는 모습도 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과 갈등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잘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량이자 리더쉽 인 것이지요. 이에 실패한 것은 결국 정부에 말 그대로 "일차적"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 국민 역시 반성할 지점이 있습니다. 너무 생각없이 언론 보도와 소문에 넘어간다는 겁니다. 그 구체적인 근거가 없이 일방적 주장만 하고, 그 반대편의 이야기는 관심조차 같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마찬가지이지요. 인터넷을 한번만 뒤져봐도 그렇고 반대편 주장을 들어보면 자기 생각을 좀 더 합리적으로 세워갈 수 있는 건데 말이지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거지요. 상생하기 위해서는 서로 도우며 선순환 구조를 적절히 만들어가야 하는 데 그러지를 않는 겁니다. 일단 제 밥그릇 먼저 챙겨놓겠다는 거지요.

이제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양 진영으로 구분되어 있다 합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국익을 위해 그리고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열린 가슴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민주주의란 바로 이 지점에 그 기준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노동자와 자본가가, 진보와 보수가, 정치권과 국민들이 말입니다. 이들은 어느 것 하나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니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경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서로를 믿지 못 하고 내 밥 그릇 찾기에만 몰두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서로에 대한 비난만 하면서 말이지요. 아마도 이런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4-5만불이 되어도 계속 어렵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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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일이 어색하다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12. 10:12 Posted by 바람몰이



생일을 맞이하는 내 모습은 늘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해마다 돌아오고, 벌써 27번째인데도..

까닭은 "내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려 했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모든 사물(생물 무생물 총칭)은 각 기 태어난 날이 다 있다.

내가 태어난 날 역시 그 중 하나이기에 유독 내가 축하받아야 할 이유가 그렇게 많은 것은 사실 아니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내 존재 자체를 기뻐해주고 아껴주어 챙겨주니까 그런거지..

또한 누군가 이 날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할 일도 아니다. 그 많은 생일을 일일히 다 챙기는 것도 상당히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

생일에 대한 적극적인 개념이해가 필요한 대목이다. 생일이란 "내가 태어났던 날"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는 날"인 것이다. 매일같이 깨어지고, 또 깨어지며 거듭나는 사람은 매일이 생일인 것이 되는 것이다.

특별히 크리스챤은 인식의 전환이 더욱 요청된다. 내 육체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늘 새롭게 태어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크리스챤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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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병을 아십니까

[시사]세상살이 2007. 11. 12. 10:11 Posted by 바람몰이

공익근무요원(이하 공익요원)들에게는 "공익병"이란 것이 있다. 공익병을 정확히 정의할 순 없지만 어쨌든 '어떤 일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 무기력증의 호소와 하루를 그냥 그렇게 흘러보내는 것'등 이 공통된 증상이다. 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일이다. 가장 혈기왕성한 20대가 이렇게 된다는 것이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1.일단 공익요원이 하는 일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것이 첫째 문제이다. 예를 들어 공익요원의 복무분야 중 "행정보조"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행정보조"의 정의가 무엇인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행정보조의 업무인지 공익관련 자료 어디에서도 필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하는 일의 개념정리조차 되어 있지않으니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열심히 해야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둘째로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 그 이유이다. 아무리 잘 해도 늘 손해이다. 왜냐하면 수고했다는 공무원들의 간단한 립서비스 이 후 더욱 과중한 업무가 몰려오기 때문이다. 일을 빨리 처리 할 수록 더많이..잘 할 수록 더 많은 업무가 오니 열심히 할 수록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끝으로 내 젊음과 열정을 바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공익요원들 사이에는 '우리는 공무원의 노예다'라는 자조섞인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그런데 실제가 그렇다. 지난 5월 1일 한 인터넷 뉴스에서는 "공익요원, 비정규직은 교원 개인비서?"보도를 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것이 특정지역, 특정복무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복무기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공익요원의 인터넷 까페 등에는 이와 관련된 하소연들이 매일 같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이 무언지도 제대로 모르고, 설사 안다해도 열심히 할 이유가 없으며 기껏해야 노예나 머슴 같은 일만 하고있으니 공익병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2.사실 공익근무요원은 일반 현역 근무병에 비하면 천국과도 같은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익근무요원의 현실이 무시되거나 가볍게 처리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현역과 비교하며 잠잠히 있으라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공익요원의 근무 및 관리 역시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관리하는 기관의 책임있는 행정관리와 요원들의 동기부여 및 사기진작을 통해 행정서비스가 더욱 향상되어야 하지않겠는가. 또한 공익요원 개인의 인생이 2년간 헛되게 흘러가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먼저  무엇보다 관리 감독 기관의 관리 및 지도가 더욱 철저해질 필요가 있다.


혹시 "군대놀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인 있는가? 군대놀이란 공익요원간에도 군대처럼 '다,나,까'를 사용하고, 경례를 하며 얼차례를 주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여전히 욕설과 구타가 행해지는 곳도 있다. 또한 공익근무요원에게 최소한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실비로 1천원씩 지급되어야할 차비가 900원만 지급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도대체 담당행정기관에서는 관리감독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두번째로 공익요원이 복무기간 중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가능한 정책개발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공익요원은 특정 행정서비스 분야에서 약 2년간 근무하며 그 내용을 익힌 사람들이다. 근무 실적 및 업무 능력이 인정받는 자들에 한해서는 이들의 이러한 경험을 소집해제 후에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걸까. 아울러 복무 중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의 개인소질개발이나 업무에 최선을 다한 것 등을 적절히 평가하여 포상휴가를 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할 수는 없는걸까.

끝으로 공익요원들의 심리상담이나 마음수련 프로그램, 소집해제 후 복학 및 취업 관련 교육 프로그램 등의 운영도 고려하여 복무 효율성을 재고하고, 국가를 위해 보다 능률있게 헌신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3.그러나 위의 문제들은 행정기관의 노력만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익요원 스스로의 노력 역시 매우 절실하다.

공익요원들은 내 젊음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2년이란 시간을 유머 사이트나 들락거리며 시간을 떼우지 말고 틈틈이 공부하며 수준을 올려가보자. 자격증도 취득해보고, 상당수가 건강상의 문제로 4급판정을 받았으니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다져가 보기도하자. 그래서 소집해제 이 후 보다 건강하고 성숙해진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해보자.

또한 온라인 상의 공익요원 모임에는 꽤 많은 요원들이 육두문자를 섞어 가며 공무원을 비난하거나 그들과의 다퉜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무조건 인터넷에 이슈화 하거나 공무원 욕만 하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차분하고도 정확하게 이야기 하며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부당한 대우가 시정 되지 않으면 그 때 병무청장 및 청와대 등에 자신의 의견을 게재하여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2004년 8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차 심부름이나 청소하는 게 공익요원의 목적에 부합하는가'라며 공익근무요원제도 운영에 대해 지적한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익요원들은 그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공익요원의 생활 역시 거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심지어 2007년 6월 18일에는 안산시청 공익요원이 이틀연속 근무하고 세면장으로 이동하던 중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기도 하였다. 보다 적극적이고도 실제적인 관리감독기관 및 복무행정기관 그리고 공익요원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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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의 상실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12. 10:09 Posted by 바람몰이



균형을 잡는 다 함은 절대 적당한 중간선을 찾는 게 아니다. 진정한 균형은 좌우의 모든 끝을 보고 난 후 내 자신을 온전히 세웠을 때 잡을 수 있다. 내게 잘 해주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도 잘 보고 내 마음을 다스리며 하늘의 이치에 맞춰 받아들일 줄 알아야 인생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이고..우리네 생명세계나 역사 역시 하늘의 삶과 땅의 삶 어느 하나에 치우쳐서는 곤란한 것이다.

한 때 우리의 역사는 땅의 삶을 물리치고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며 추상적인 관념에만 사로잡혀 딴 세상 사람처럼 살 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동서양을 막론하고-학문세계나 정신세계는 사람들의 현실적 삶에 아무런 힘을 끼치지도 못하고 도리어 억압하는 굴레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지금의 우리네 삶은 우리네 인간사 속에서 하늘의 뜻과 이치, 그 질서 등을 완전히 배제한채 살아가고 있어 지극히 물질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 결과 생태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파괴되었고, 우리네 정신 역시 그 따뜻함과 깊이, 인간냄새 등이 사라져가고 말초적인 흥분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인간을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아주 간단히 도식화하여 정리하여 보았는 데..

실제 우리네 인생과 우주의 이치란 것은-동서양을 막론하고-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조화로운 삶에 그 기본과 끝이 있다. 특별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 성품을 입고 땅에 살게 하였다는 성경의 관점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즉, 오늘날 우리네 인생들이 당면한 역사적 책임이란 바로 신, 하늘, 추상이 지배하던 역사를 박차고 나와 땅, 물질, 현실이 지배하는 오늘의 역사를 거쳐 이제 변증법적 중심을 잡아나가는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 생명이 사라져가는 우리네 인간의 영혼과 온 생명세상에 하늘의 생명기운을 다시금 불어넣어 흙에서 사람이 되었던 옛 고백처럼 우리네 인간의 영혼과 세상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조금 엇나가는 얘기이긴 하지만..오늘 우리 나라의 정치세계가 지극히 천한 것 역시 바로 이런 더 큰 세계를 볼 줄 아는 이가 없고, 오로지 자신의 바로 눈 앞 밥그릇 채우기와 기싸움만 해댈 줄 아는 이가 득실거리기 때문인 것이다.

이들은 하늘의 이치와 성품속에 지극한 땅의 삶을 살며 국민들을 인도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대의명분과 시끄러운 입방정으로 가장 천박한 인생사를 살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도 좌우의 끝을 볼 줄 알고, 포용할 줄 아는 큰 마음을 지닐 수 있어야 그 중심을 잡고 국민들을 편하면서도 좀 더 고귀한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 우리의 맥으로 돌아와..아무튼 세상의 교회와 크리스챤들이 이런 큰 신앙의 맥락을 알고 살아나가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대로 각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열매를 맺어가고, 그 가운데 예수님과 같은 사람냄새 나고 하늘 냄새나며 그래서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으로 잘 살아가는 생명의 세상을 일궈갈 수 있어야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이 때에 자신의 자리와 삶에서 최선을 다해가며 주께서 다시 오시거나 나를 불러가실 때에 죄많고 부족한 나이지만..주님의 그 은혜로 살며 최선을 다했노라..열심으로 살았노라..그렇지만 너무 힘들었노라 이야기하며 그 품에 안길 수 있는 당당한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 여행의 첫번째 도전에 직면해보자.

지금 나는 어디서 무얼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는 무얼 알고, 무얼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내 삶은 바로 이 순간 우리 주님께서 오시거나 나를 불러가실 때에 나만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열심있고 책임있는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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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적은 짧은 생각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12. 10:05 Posted by 바람몰이


필자는 "국제 유가와 패러다임"(
http://blog.naver.com/kkuks81/30005482669)이라는 글에서 국제유가가 꾸준히 상승할 것을 예측한 바 있다. 또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세계 경제위기의 심화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소비성 및 착취성을 밝히며 "생명"을 향한 선택을 강조했었다.

사실 이 글을 쓸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설마..'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요즘은 하나둘씩 '진짜 그렇게 되는 것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유가의 고공행진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고, 특별히 유류세 및 정유사 횡포가 큰 우리 나라에서는 그 부담이 너무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정신사적으로는 해체적이고도 지극히 개별적인 것과 실증적인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들이 주는 장점을 놓치고 단점만이 반복되고 있고, 현실적으로는 지극히 물질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와 은혜로 바로 잡아가야할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선도해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우리가-특별히 교회가-물질중심의 삶에서 물질과 고귀한 정신이념-정신사로의 상승지향적 성향 포함-, 해체적이고도 지극히 개별적인 것 및 실증적인 것과 전일적이고도 포괄적이며 유기체적인 것의 조화를 꾸준히 추구해나가거나 유지해나갔다면 지금의 이런 파국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별히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하늘의 신령한 지혜 및 성령의 인도하심을 세상에서 유행하는 정신사 및 물질적인 삶과 온전히 구분하여 설파하여 나갔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실제 우리는 절벽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상황이기에-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나님께서 온 생명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시면서까지 기다려 주시며 은혜를 베푸셨기에 이렇게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필자는 우리네 인간이 가지는 본성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비본래적인 상태(김경재 "폴 틸리히 신학연구"참조)에 있는 즉, 원죄에 빠진 상태인 인간이 지닌 이기성과 욕심, 잔학성, 폐쇄성, 정체성, 보수성 등으로 대변되는 그 본성에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필자의 주장이 꼭 다 들어맞거나 모두 공감하지 않는다해도) 늘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고, 따라서 다양한 주장이 오고가는 것이며 여기에는 당연히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내일의 방향을 제시하는 부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와는 반대로 현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좀 더 물질적인 풍요를 중시하는 부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네 인간의 심사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자유로운 본래적 상태에 머문 본성이었다면-우리는 에덴동산의 낙원과 같은 상태처럼-얼마든지 서로를 비판적으로 돕고 도우며 꾸준히 살아갈 수 있었을 것 아니었겠는가.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논리이다) 성경에서 바벨탑을 쌓다가 온 인류의 언어가 흩어지고, 다르게 된 것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알아가고, 타개해가며, 새로운 앞길을 열어 가는 것은 우리네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며  이것을 위해 이미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며 그 거대한 물줄기를 생명의 물줄기로 바꾸어 놓으셨던 것이다. 정작 문제를 일으키고도 깨닫지 못하고 뻔뻔하게 자기를 죽인 인간을 너무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믿고 다시금 기회를 주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고, 희망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세상을 보며, 판단해가야 하는 걸까..

우선 조화를 깨뜨리는 지극한 편향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지극한 편향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극과 극은 그 끝에서 하나의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어설픈 편향으로 인한 폐쇄성일 것이다. (오늘의 삶이 지극히 물질적인 삶에만 편향된 것은 어쩌면 이것이 어설픈 편향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물질적인 땅의 삶에서 고귀한 인간애를 깔고 있는 하늘의-하나님의-삶으로의 반전을 통한 변증법적인 조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일적인 삶의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 결국 교회가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생명을 상품으로 전락시키지 말고..은혜마저 값싸게 팔아버리지 말고..겸손하면서도 열심있는 삶의 추구를 해야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착취지향 및 소비지향적 성향을 이겨내고, 지속적인 개발 및 유지가 가능한 생태적이고도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만큼 살아가며 휴머니즘을 구현해낼 수 있는 역사적인 생명으로의 삶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지구적이고도, 전생명적인 삶과 조화가 필요하다. 특별히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착취성을 바탕으로 한 강대국의 그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진정한 인류의 하나됨과 행복의 추구 및 생명의 조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간 계층간 빈부격차 및 자연, 영혼과 생명의 파괴를 가속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셋째이다.

끝으로 우리 한명 한명이 "성인군자(?)"가 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성인군자라 하니 조금 이상하기도 하지만 결국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보며, 온 생명을 볼 줄 아는 시대와 역사, 생명을 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른 '의식화(?), 계몽(?)' 등이 된 성숙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에 나를 못박고,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어 십자가의 도를 깨달으며 날마다 거듭나 모든 일에 협력하여 선을 이룰 줄 아는 성령에 사로잡힌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끊임없이 나와 우리가 사는 오늘을 바로 보고, 뒤를 반성하며, 내일을 살아가며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기체적이고도 정신지향적인 사고와 물질적인 삶의 현실속에서 전일적으로 판단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글을 정리해보자.

워낙 두서없이 쓰다보니 서론이 좀 긴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글이기는 하다..;; 어쨌든 필자가 하려는 말은 알아서 흘리고 마음에 와 닿는 한 마디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분명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다시 건강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책을 필자는 제시한 것이니 이를 통해 스스로 어떻게 살아왔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세상을 보며 살아갈 것인가를 조용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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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탕 만들기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0:01 Posted by 바람몰이
냉장고에서 굴러다니던 고구마 3개
어떻게든 처리해야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원체 냉장고가 작다보니..ㅠ.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맛탕"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지요.
엠파스에 접속했습니다.
맛탕 으로 검색을 해보니 글이 쫙~나오더군요.

방법을 숙지하고 조리대 앞에 섰습니다.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고구마를 썰었지요.
고구마는 저를 무척이나 믿는 눈치였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후라이팬과 식용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렌지앞에 서자.
'네가 오늘 사고 치려느냐~~'하는 것만 같은 느낌..
수많은 요리를 경험했을 렌지 만큼은 저를 못 미더워하는 듯한 느낌이..흑흑..

이쯤에서 포기할 순 없기에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불을 올리고 먼저 고구마를 튀겼습니다.
제법 노릇노릇해지는 게 모양이 나더군요..

그러나 역시 방심은 금물..
순간 교회 까페에 접속해서 여기 저기 클릭하다 보니, 상당수가 갈색으로 변한 고구마들..
탄게 좀 생겼습니다 ㅡ.ㅡ;;

고구마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눌길이 없기에
저는 '좋다 이제부터 너희에게만 내 온 정열을 쏟겠다' 다짐했지요.

고구마를 어느정도 튀긴 후 그 기름기를 쫙 뺐습니다.

그리고 고구마를 다시 후라이팬에 올려놓았습니다.
아주 조심 조심..정성을 다해..너희가 내 생명이다는 마음으로..(룸메이트 및 여자친구를 먹여야하기때문에 특별한 정성이 필요했지요)

고구마 위에 약간의 "요리당"을 뿌렸습니다.
엠파스 검색에서는 설탕과 물로 시럽을 만들라고 했지만, 설탕보다 상대적으로 덜 단 요리당이 좋겠다 싶었던 거죠. 하지만 소심한 제 가슴이 '그래도 설탕을 좀 넣어야 하지 않겠어?' 라고 소리치기에 어쩔 수 없이 한수저 정도..

요리당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고구마들은 제게 말했습니다.
'전도사님, 전도사님의 그 뜨거운 사랑이 저희를 녹이고 말았어요. 보드랍고, 달짝찌근한, 맛있는 맛탕이 되어 드릴게요' ㅋㅋ

몇 분의 쫄임끝에 드디어 맛탕이 완성되었습니다.
여자친구와 룸메이트에게 줄 것은 예쁘게 장식하고, 제가 먹을 것은 구석에 있는 실패작들 위주로 챙겼지요 ㅡ.ㅡ;; (모든 엄마들의 마음으로..ㅋ)

드디어 시식 시간.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고구마를 하나 집었습니다.
제 입으로 오기까지 녀석은 부끄러운 듯 몸을 숨겼고, 제 가슴은 콩닥거리며 마구 뛰었지요.

고구마를 먹는 순간.
입에서는 아밀라에제가 급격하게 분비되며 소화를 준비시켰고, 뇌에서는 각 종 엔돌핀이 분비되며 기분을 한 층 업시켜주었습니다. 움찔거리는 혀와 위아래 왕복운동을 하는 치아들은 맛을 더욱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지요.

맛이 어떤지 궁금하시죠?ㅋㅋ

그건 모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지요..휴~~~

(대학 자취 시절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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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어제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가 배럴당 86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역시 76달러를 넘어섰구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에 따른 경제 침체나 위기설이 언론에 심심치 않게 보도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하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이미 올해 95달러까지 유가가 오를 것이라 보았고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국제 유가가 최대 200달러까지(장기적으로 볼 때)상승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대다수 언론은 겨울철 사용량 증가에 따른 수급문제와 터키의 이라크 진공계획 등을 상승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OPEC이 생산량을 늘리겠다 해도 쉽게 가격안정이 되지 않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게다가 터키의 진공계획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겠습니다만 이런 일이 없었어도 국제유가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석유의 매장량 자체입니다. 이미 이것은 피크에 가까워졌거나 지났다고 보고 있는 것이구요. 따라서 유가는 꾸준히 상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아마도 미국은 이런 상황을 오래 전부터 예측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9.11 테러는 가장 확실한 전쟁 명분을 제공했기에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적어도 향후 3-40년간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석유"의 이권확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것은 중동정세 및 수급상황의 불안으로 인한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였고 여기에 최근 계속되는 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은 국제 유가의 상승을 가속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제 유가 상승의 두번째 이유입니다.

미국이 이런 전략을 선택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영국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의 비밀보고문서에서 이미 2007년 이후 전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이 점점 심해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냉난방의 문제와 직결될 것입니다. 냉난방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이지요. (또한 전세계 식량시장의 개방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식량 또한 패권유지의 전략적 무기로 선택한 측면 역시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로 약한 달러 정책을 통한 자본유입의 확대와 끊임없는 확전은 계속되는 쌍둥이 적자라는 기형적인 자국 경제상황과 무너져 가는 제조업 상황의 개선 및 부시 행정부의 지원세력인 군수업체의 경영상황 개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지요. 이것이 둘째 이유입니다. 또한 이에 따라 앞으로도 국제 유가는 계속 오를 것입니다.

3.이러한 상황은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달러의 약세는 환율과 직결되기에 우리 나라가 석유를 수입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 아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유가가 배럴 당 95달러를 넘어서면 아무 소용 없어진다 하니 저달러로 인해 큰 타격을 받기 시작한 우리 나라 산업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정말 위기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만약 유가가 200달러에 육박하게 되면 도로에 움직이는 차가 없을 것이란 암울한 예상을 담은 글 조차 존재하는 실정입니다.(아무리 연비가 좋다는 차라도 고유가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으니 말입니다.)

아울러 생각해볼 점은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란 점입니다. 지금 꾸준히 계속되는 세계화란 것은 금융 세계화를 그 핵심실체로 하고 있습니다. 이 금융세계화란 것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서 금융세계화란 환율, 이자율, 유가의 불안정으로 인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초민족적 법인자본이 금융화를 시작하는 걸 의미합니다.
 
이 때, 초민족적 법인자본은 외환 시장, 유로 통화시장 같은 단기 금융시장을 활용하여 현금 플로우를 관리하고 환투기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금융세계화란 투기적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이고, 각 국의 중앙은행은 재무부로부터 독립하여 고도금융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미국 경제에 종속되어 있는 세계 경제의 특징을 볼 때 당연히 미국의 경제적 모순 심화가 심해질 수록 세계적 경제위기가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충격은 각 나라를 가리지 않고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기에 저는 이것을 계속 경고하려 하는 것이지요.(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경제적 기득권자나 상위계층은 위기가 와도 다 잘 살지요. 피해는 서민 중산층이 떠안는 것이구요) 

4.이제 저는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는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 봅니다. 세계 경제나 미국 경제가 좋던지 나쁘던지 아무튼 어떤 방식이든 그 끝을 볼 때까지 오를 것입니다. 석유 매장량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이 배후에 미국의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에 따른 세계적 경제 위기도 금융세계화와 더불어 더욱 심해질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는 이런 상황을 염두해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측이 빗나가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집중될것이니 말입니다. 교회가 아니면 이 상처들을 정신적, 물적 피해를 안아줄 곳이 없습니다. 각 정부 역시 재무부가 고도금융에 종속된 형편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 상황일 것입니다.

아울러 저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께 작은 팁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새차를 사시려면 조금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보십시오. 국제 유가와 세계 및 한국 경제의 상황을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래도 사셔야 한다면 가스차를 사십시오. 천연가스는 한국형 대체연료로 고려될 정도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확보된 걸로 압니다. 기왕이면 걸어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연습도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로 아파트는 구입하지 않는 게 나으실 것입니다. 그 돈으로 개인주택을 구입하여 "연탄" 가는 연습을 좀 해두시는 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만약 구입하시게 되면 되도록 저층을 구입하십시오. 15층까지 어떻게 걸어다시렵니까.  끝으로 주가가 아무리 계속 오른다해도 섯불리 투자하지는 마십시오. 특히 중국쪽 투자는 올림픽 거품이 있으니 신중하시고 상황을 보며 적절히 매수하시길 바랍니다.

(2007년 10월 19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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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쇼크 또 올까요?

[시사]세상살이 2007. 11. 12. 09:53 Posted by 바람몰이

저는 지난 해 처음 쓴 "국제 유가와 패러다임"이 후 약 두 차례 더 국제 유가 상승을 경고해 왔습니다. 또한 미국 경제 붕괴와 급속한 금융 세계화와의 관련성을 통해 세계 경제가 겉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경고했습니다. 특히, 교회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염두해두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란 당부를 해왔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글을 쓸 때만해도 '설마 유가가 그렇게까지..설마 미국이..걱정이 지나치다..'는 반응이 많았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하긴 골드만 삭스가 보고서를 발표했을때도 그랬으니 좀 위안은 됩니다 ^.^)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 국제 유가가 100불을 넘을 것이란 예상은 사실상 기정사실화 되고 있습니다. 그 시기가 언제냐라는 말만 다를 뿐 이지요. 또한 심심치 않게 세계 경제 위기설이 모락모락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경제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주변의 반응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제 말을 보는 시각 역시 그렇구요 ^.^;;

음..

저는 앞으로도 유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경제 위기가 찾아올 확률도 매우 높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언론이 호들갑떠는 것처럼 지금 당장 올것이라 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역시 세계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 연 10%에 달하는 중국경제의 성장률이고 그 동안 일종의 내공(?)이 쌓인 우리 및 세계 경제의 상황 있다고 보기때문입니다. 아마도 중국이 꾸준히 성장해가는 한 쉽사리 경제 위기가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국이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 동안 축적된 이윤율로 인해 당장의 어려움이 위기로까지 번지지 않을 것이라 저는 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및 세계 경제에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 보는 것은 먼저 그 이윤율이 하락하고 역전되는 시점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란 점과 중국 경제가 성장할수록 더 많이 공급되어야 할 석유가 그 매장량이 이미 그 정점을 지나 하향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금융 세계화란 것 자체가 미국이 지닌 헤게모니의 위기의 반증이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를 통해서도 확인한 바 있는 미국 경제의 취약성 때문입니다.

저는 -쉽게 단정짓기는 어렵겠지만-아마도 경제위기가 2010-2015년 사이에 오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신대 윤소영 교수의 견해에 상당히 근거한 것으로써 이 시기쯤 되어 그동안 축적된 이윤율이 역전되면서 꾸준히 병들어간 경제를 지탱치 못하고 쓰러지게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20대의 건장한 젊은이는 몸에 멍이 들거나 감기에 걸려도 아픈지 모르거나 금방 낫지만 나이를 많이 먹어 몸이 약해지면 같은 멍이나 감기에도 쉽게 쓰러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아마도 이런 저의 예측은 중국 및 세계 경제의 석유 의존도 감소와 하락하는 이윤율을 역전시킬 수 있는 신기술의 개발이나 기존 경제체제의 보완 및 새로운 대안체제로의 전환이 없으면 그 시기가 문제일 뿐 언젠가는 찾아오며 적중될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의 경제사가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대변되던 자유주의의 실패는 결국 뉴딜 정책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개입주의 즉, 케인즈 주의로 변형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깨닫게 된 국가 개입의 실패 즉, 케인즈 주의의 한계는 브레튼 우즈 체제의 와해로 귀결되었고 이것은 신자유주의로 전환되며 하락하는 세계 경제의 이윤율을 역전시키려는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저는 이 모든 걸 이겨 내기 위해 먼저 화석연료 의존의 극복이라는 당연한 이야기와 각 개별국가 경제의 생존(성장은 여기서 통용되지 않습니다. 살아남는 생존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을 위해 고도금융 종속성을 최대한 벗어나 실물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제조업의 부활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결국 전 국민의 80%가 취업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실물경제가 살아있어야만 그 나라의 경제가 삐걱거리기는 해도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이것은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권과 떼어서 운영될 수는 없기에 우리가 고도 금융에의 종속성에서 최대한 안전지대 확보를 하여야 생존이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 일본이 선언한 "모노쯔구리"라는 제조업으로의 회귀 역시 세계 경제의 흐름을 2-30년 이상 놓고 예측해볼 때는 다시금 해석해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신기술의 개발이란 것 역시 필요하나 이것은 일시적 반동작용밖에 하지 못하지 않을까 싶은 거지요.

이제 글을 정리합니다.

아마도 당장 1-2년 내에 오일쇼크에 따른 세계 경제나 한국 경제의 위기가 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유가는 계속 오르겠지만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2010-15년 사이에 위기가 닥칠 확률과 그 위험성은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물론 그 시기가 정확치는 않을 수 있습니다만(저는 점쟁이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니니까요) 분명 이윤율의 저하와 세계 경제가 이를 감당치 못 할 그 언젠가의 시점이 분명 존재할 것이기에 언젠가는 올거라는 거지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의 화석연료 의존 극복 및 신기술 개발, 기존 경제체제의 보완 또는 새로운 대안체제의 도입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실물경제의 부활을 통해 생존의 여지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거구요. 아울러 실물경제의 생존을 위해서는 각 국이 고도금융에 종속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해도 최대한 안전지대를 확보해야 한다는 거구요. (일전에 저는 자본주의 자체의 본성을 볼 때 위기는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는 요지의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동생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다"참조)

그리고 역시 교회는-특히 목회자는-이런 상황을 염두해 두고 있어야 할 것이란 겁니다. 교회가 아니면 사회의 혼란을 받아주고 완충해줄 곳이 없기 때문이지요. 또한 결국 진흙탕에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것이 우리 크리스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구제 및 교회의 유지를 위한 계획을 세워 대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요셉과 같이 앞을 내다보며 국가 정책을 세울 수 있는 비전있는 지도자가 뽑히거나 정책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모든 성도가 하나되어 기도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를 가르며 인도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다시 희망을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띄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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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에 대한 상식 몇 가지-1

[시사]세상살이 2007. 11. 12. 09:50 Posted by 바람몰이


1.석유의 품질은 탄소비중과 황 함유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탄소비중이 높고 황 함유량이 적어지면 그 만큼 품질이 좋다는 것이고 그 반대이면 그만큼 나쁘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토대로 경질유인가 중질유인가를 나누는 것입니다.

2.최근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국제유가는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의 그것입니다. 이것이 최근 100달러에 가깝게 상승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말 그대로 서부 텍사스에서 뉴 멕시코에 이르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원유는 중질유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서부텍사스산 중질유의 영어 표기는 West Texas Intermediate입니다. 여기서 Intermediate는 중질유라는 뜻이 아니라 중간지역이라는 의미인 것이지요.
 
3.따라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는 서부텍사스산 원유 또는 경질유라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4.우리가 수입하는 것은 중동산 두바이유입니다. 두바이유는 황함유량이 높고 탄소비중이 적은 산업에 적합한 중질유입니다. 따라서 품질이 낮은 만큼 가격도 가장 저렴합니다.

5.그렇다면 왜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보다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을 계속 비중있게 보도하는 걸까요. 그것은 서부텍사스산원유가 소비되는 미국 석유시장에서 세계 석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WTI가 오르면 브랜트유나 두바이유도 함께 오르게 되는 것이지요.

6.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실제 원유 생산단가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구체적 메카니즘까지는 매우 복잡하여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원유 생산단가가 채 10-30달러 안팎이란 것이 일반적 견해인 것으로 보면 현재 거래되는 유가의 절반에 가까운 퍼센테이지는 거의 투기에 의한 거품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OPEC의 조절능력이 갈 수록 감소하게 되는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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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또한 기말고사도 얼마 남지 않았지요. 이에 각 학원에서는 빠르면 이번 주나 늦어도 다음 주부터는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할 것입니다. 대개 학원은 밤12시에서 새벽1시까지 자율학습을 운영합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엄격한 통제하에-모두 아시다시피 학원의 규율은 학교보다 더욱 엄격합니다- 주말 또한 학원에 가서 공부하지요. 부모님께서는 늦은 시간 귀가하는 자녀들을 위해 학원으로 찾아오시기도 하고 영양 만점 간식을 챙겨주시기도 하지요. 참으로 선생님이나 학생, 부모님 모두 고생이 많습니다. 수고한 분들 모두 그 결과야 어찌 되었건 칭찬 받아 마땅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렇게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까지는 좋은 데 그 만한 결과는 얻으셨냐 말이지요. 새벽1시까지 공부해서 그만큼 좋은 시험결과가 나왔는지..부모님들께서 그렇게 신경쓰시는 것 만큼 결과가 나오셨는지..

이 글을 쓰는 저는 다년간 학원강사 및 교무주임을 하고 두산동아에서 표창장도 받았던 사람입니다. 제 오랜 경험을 비추어보건 데 아마도 이런 밤늦은 자율학습에서 효과를 본 학생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단 자율학습을 열심히 안합니다. 대부분 하는 척 하면서 놀지요.

둘째, 너무 피곤합니다. 너무 늦게 까지 깨어 학원에 있다보니 잠이 부족해지고, 몸이 쉽게 지칩니다. 당연히 집중력이 떨어지고, 암기했던 것 조차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끝으로 모든 아이들을 공부에만 몰아 넣어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공부를 하려 하는 학생은 언제나 소수입니다. 따라서 나머지 학생들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게 되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겁니다.

그럼 왜 학원가의 심야 자율학습은 계속 되는 걸까요. 심지어 학교에서는 자율학습을 없애가거나 줄여가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아마도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첫째, 학원의 입장이 있습니다. 학원입장에서는 부모님께 무언가 보여주는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엄하고, 강하며 집중적으로 학습시킨다는 거지요. 그래야 "장사"가 되니 말이지요. 그중 1명 또는 소수의 그룹이 성과가 나오면 그걸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거지요.

둘째, 부모님은 아무리 내 자식이 공부를 안하거나 흥미가 없어도 일단 보내야 안심이 되는 겁니다. 그래도 학원에 보내놓으면 좀 낫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끝으로 학생 자체도 자기 혼자서는 절대 안하니 학원에 가면 억지로라도 할 것 같은 막연한 믿음이 있는 것이지요. 그랫서 심야 자율학습이 계속 되는 거지요.


저는 기말고사를 앞 둔 부모님과 학생들께 이런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원에서 아예 자율학습을 안 할 수는 없지요. 또 학원을 끊기도 좀 그러실 겁니다. 그러니 이번 시험부터는 이런 방식을 고려해 실천해 보십시오.

첫째, 자율학습은 10시까지만 참여하세요. 그 뒤는 집에 귀가하여 여유를 갖고 스스로 정리해보세요. 아니면 그냥 스트레칭만 하고 주무셔도 됩니다. 대신 10시까지 하는 자율학습은 최선을 다해 집중적으로 해보세요.

둘째, 자율학습 때 할 과목 공부를 구체적으로 정해놓으세요. 오늘은 무슨 무슨 과목을 하겠다 말이지요. 중요과목은 하루 2개까지만 고르시고 나머지 1개는  예체능을 고르세요. 그래서 시험 1주일 전까지는 전 과목을 한번씩 훑어 보며 정리하셔야 합니다.

셋째, 시험기간에는 절대 도서관에 가지 마세요. 도서관은 많은 학생들이 단기간에 몰려 매우 북적거립니다. 그래서 주위가 산만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또한 친구를 만나 나도 모르게 몇 시간씩 놀고 오거나 잠만 자다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으로 공부는 혼자서만 하세요. 절대 친구들과 함께 하지 마세요. 우리네 조상님들은 학문을 하려면 고양이의 마음을 가지라 하였습니다. 홀로 다니며 주체적으로 하라는 거지요. 만약 모르는 문제가 생긴다면 체크해두고 다음 날 상위권 학생에게 따로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결국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지요. 학원과 선생님, 친구에게 너무 의지하면 결국 내 숨은능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께서 지도해주실 때 집중력있게 매우 열심히 공부하시고 그 나머지는 스스로 하시길 바랍니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기는 어렵습니다. 선생니들께 분명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나머지는 혼자 해야 한다는 거지요. 실제 쪽집게 고액 과외를 받은 학생이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혼자서 공부할 때의 성적은 오히려 떨어지거나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과외를 받는다 하지 않습니까. 친구와도 시험기간 만큼은 거리를 두시구요. (가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잘 하는 학생도 있긴 합니다만 스스로 한번 돌아보세요.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부했나 말이지요.)

사람의 몸은 새벽 1시가 넘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합니다. 또한 기억력은 잠자기 전에 한번 보고 다음 날 아침에 한번 더볼때 더 효과적으로 상승합니다. 그러니 굳이 학원에서 밤12시 새벽 1시까지 남으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내가 스스로 내 공부일정을 짜서 효과적으로 해내는 것이지요. 바로 그러할 때 비로소 기말고사 준비 다운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모두 이번 기말고사 대박 내실 수 있길 바랍니다!! 화이팅!!  임정혁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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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글
이륜차 고속도로 통행금지 이유가 뭘까
3월 1일 이륜차 운전자들, 여의도 집회 예정
텍스트만보기   임정혁(kkuks8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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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1일을 맞이하여 여의도에 이륜차 라이더들이 모여 항의 집회를 한다고 한다. 얼마 전 헌법 재판소가 이륜차의 고속도로 및 자동차 전용도로 통행 헌법소원 기각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때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결요지는 결국 한가지였다. 사고 위험성이 높고 한번 사고가 나면 큰 사고이기 때문에 교통흐름에 방해가 되니 이륜차나 사륜차 운전자 모두를 위해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길거리에서 가장 흔히 만나는 이륜차는 단연 배달맨들의 오토바이다. 중국집, 피자집은 물론 퀵 서비스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배달이 곧바로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상당히 과격하게 운전하는 편이다. 필자 역시 2종 소형 면허를 갖고 있고, 현재 승용차 또한 몰고 있지만 이들이 불쑥불쑥 끼어들 때 아찔하게 느껴지긴 마찬가지다.

일부 고가의 수입 이륜차를 모는 라이더들 또한 도심에서 상당한 스피드로 질주해 운전자들이 위협감을 느끼긴 마찬가지다. 여기에 일부 폭주족들의 행태가 보도되고, 목격되면서 우리나라 이륜차 라이더들의 자리는 사실상 바닥에 내려가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자동차세 내면서 자동차전용도로는 못 달려?

   오늘의 브리핑
주가가 뛰어봤자
부동산 어림없다?
아예 가짜 독립운동가를 양성하시죠
국세청장, <조선일보>에 직격탄
충암고 '담임선택제' 어떻게 보세요?
손학규 대권가도, '같기도' 딜레마
"진보 아닌 노무현 논쟁에서 빠져라"
노 대통령 "탈당해도 공격에는 대응"
<하얀 거탑>, 장준혁은 왜 지지 얻나?
정영진 판사의 사법권력 겸손해져라
불법 납골당에 유골 모시는 서울시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들의 정당한 주장마저 묵살되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고속도로가 안 된다면 적어도 자동차 전용도로만은 허용해 주거나 아예 자동차세를 없애라고 주장한다. 세금 내는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적어도 자기의 권리는 누리게 해달라는 것이다.

사실 125cc 이상의 이륜차는 자동차세를 내고 있다. 이는 이륜차 사륜차의 구분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자동차 전용도로가 갑자기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우리나라의 도로 여건은 국도를 이용해 라이딩을 즐기는 이륜차 운전자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한다. 불과 20-3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넘게 돌아가야 하는 경제적 비효율성과 번거로움을 일으키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어간 도로에서 과태료를 물어야하는 경우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필자는 이륜차의 고속도로 통행에 의해 사고율과 치사율이 높아진다는 주장 가운데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를 한번도 본적이 없다.

끝으로 세계적으로 이륜차의 고속도로 통행이 금지된 나라는 파라과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 몇 나라가 되지 않는다. 우리와 생활여건이 비슷하거나 더 낫다는 선진국 중에는 없다는 얘기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륜차 라이더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라이더들 또한 우리나라의 이륜차 문화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고, 아직까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각 동호회를 중심으로 건전한 이륜차 문화개선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문제와 법적 문제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함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륜차 역시 과속에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자는 엄연히 존재하고, 이른바 '카폭'(자동차 폭주족) 역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들의 통행을 제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륜차의 고속도로 통행을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되고, 개선되어야할 부분 또한 상당히 많다. 쉬운 예로 이륜차가 과속을 했을 때 사륜차와 달리 번호판을 식별하기 어려워 단속을 하기 매우 까다롭다는 일선 현장의 볼멘소리가 대표적. 일부 폭주족들의 무분별한 진입으로 인한 어려움 또한 분명 예측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도 우리의 이웃, 귀를 기울이자

글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필자의 주장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현재의 이륜차 문화로 인해 이들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되고, 이들의 주장마저 묵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이륜차 운전자들 역시 건전한 이륜차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는 지금 당장 고속도로 통행을 허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내는 의무를 진 이륜차에게 적어도 자동차 전용도로 정도는 허용을 하거나, 그것이 싫다면 세금을 징수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은 이들이 항의 집회를 하는 것을 보고 그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조건 욕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 또한 우리와 함께 사는 이웃이고,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이들이 이런 항의 집회를 할 때는 무슨 이유로, 어떠한 주장을 내세우며 집회를 하는지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는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노력하며,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서로 행복하자는 것이니 말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의심, 끊임없는 인신공격성 발언들은 상황을 전혀 진전시키지 못한다.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합리적인 대화와 대우만이 이륜차와 사륜차 운전자들 모두를 위한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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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뉴스에 올렸던 글
10월 2일, 노인의 날을 아십니까?
텍스트만보기   임정혁(kkuks81) 기자   

2006년 10월의 절반이 기념일이라 한다. 실제 달력을 보며 확인해보니 이래저래 기념일이 열댓개쯤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필자 나름의 추측으로는 아마도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굵직굵직한 날은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추석연휴, 9일 한글날 정도가 되지 않을 까 싶다. 어린 시절부터 교과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 학습 되어오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10월 2일이 "노인의 날"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효"를 강조하는 나라이면서도 말이다.

노인의 날은 지난 97년부터 경로효친 사상의 미풍양속을 확산시키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만들어져 기념되고 있다. 그래서 이날은 간단한 기념식을 갖기도 하고, 경로잔치를 열기도 하며, 노인복지단체 등에 포상을 하기도 한다.

100세가 되시는 노인들께는 명아주로 만든 전통 지팡이 "청려장"을 증정하기도 한다. 많은 노인관련 단체나 노인들은 이날만큼은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맘껏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벌써 10주년이나 된 지금의 "노인의 날"이 지니는 '의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노인의 날은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주로 경로잔치나 기념식 위주로 지켜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처럼 잔치와 기념식 위주로만 계속 노인의 날이 지켜진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개 숙인 채 쓸쓸히 앉아 계신 노인들을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이 없이 선언이나 기념으로만 그치는 속빈 강정과 같은 날이 될 것이니 말이다.

지금의 노인의 날은 노인을 행사의 대상이나 단순한 정책 대상자로만 보고 있지 우리가 마땅히 사회적 약자로서 배려하고, 풍요로운 2006년의 대한민국을 만든 선배이자 공로자로서 보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서있는 데, 우리는 이들을 좀 과격한 표현으로 어쩔 수 없이 한번씩 챙겨주는 "애물단지"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노인의 날은 평소 꾸준히 노인들을 배려하고, 관심을 갖는 가운데 그것을 확인 및 점검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결단, 다짐하는 날이 되기도 하여야 한다. 어르신들께 지난 날 부족하고, 잘못했던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바꿔가며 더 노력해 보겠다는 비젼을 제시해 줄 수 있기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역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기념일을 지정하고, 경로잔치를 열며, 포상을 하는 것도 좋기는 하다. 하지만 경로효친 사상의 미풍양속 확산이나, 노인들의 노고 치하는 하루 아침의 행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은 모두 꾸준히 내 삶속에서 하나 하나 내공(?)이 쌓여져가야만 할 문제라는 것이다.

얼마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 통계는 우리가 얼마나 일상 속에서 노인들을 배려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많은 언론은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노인학대의 가장 큰 가해자가 '아들'이었고, 대부분 '가족'에 의해 자행된다는 선정적인 사실을 중점적으로 그래프까지 보충해가며 보도하였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학대행위별 분류에서 언어,정서적 학대가 44%, 방임이 23%를 차지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꾸준히 삶 속에서 지속되는 유형의 학대이다. 단시일에 이뤄지는 유형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통해 그만큼 일상의 삶속에서 노인들을 배려하고,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자신을 돌아보라. 나는 얼마나 자주 내 부모님과 연락을 하고, 그들을 찾아뵙고 있는 것인지..

이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다가오는 이번 노인의 날을 맞이하여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나와 우리 사회는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며 대하고 있고, 노인들은 지금 어떤 자리에 서있는 지 등을 말이다.

그래서 그동안 잘못하고, 부족했던 것이 있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로 나 자신부터 변화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변화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바로 이순간 수화기를 들고 안부전화 한통 하는 것 자체가 바로 변화 아니겠는가. 이번 연휴동안 내 부모님과 이 땅의 수많은 다른 부모님을 향해 따뜻한 미소하나 건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변화 아니겠는가.

아무쪼록 이번 연휴동안 끼어있는 노인의 날이 마음 속에 기억되고, 내 부모님과 이 땅의 수많은 부모님을 생각할 수 있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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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웹서핑 중 우리 정서로 표현한 그림을 발견하였다.

100%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름의 색깔을 지니고 고백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하여 이렇게 모셔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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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인터넷 신문 <에큐메니안>에서 모셔온 글
대한민국은 십자가 공화국인가
[작은공동체 위한 교회건축] 교회 지붕 위 조형물로서의 십자가

이정구 jkl@skhu.ac.kr


   
‘교회’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들 안에는 '지붕 위의 십자가'가 들어있을 것이다. 중세유럽 고딕교회부터 현대 도시 상가에 임대한 개척교회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회 지붕 위에는 첨탑 위의 십자가가 사라진 적이 거의 없었다.

네온조명이 없던 시절의 교회 지붕위 십자가는 적어도 해있는 낮 동안만이라도 지표역할을 했지만, 현대교회는 24시간 불야성인데도 그 수많은 붉은 네온의 지붕위 십자가는 헤매는 시민들의 지표역할을 하기는 커녕 이들의 짜증만 돋구고 있다. 어느 외국인은 과거 김포국제 공항가까이 비행기가 하강할 때 지상 위에 수많은 붉은 십자가를 보고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라서 안보태세를 위한 무슨 장치인줄 알았다고 한다.

   
예수 보혈을 상징해서 십자가를 붉은 네온으로 장식을 한다. 그렇다면 푸른 십자가와 노란 십자가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여기에는 무슨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붉은 네온 십자가가 너무 많아 식상해서거나, 너무 많은 붉은 십자가를 보는 시민들의 불평과 비웃음을 피하면서 동시에 차별성을 두려고 푸른 네온이나 노란 네온으로 십자가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교회를 표시하는 십자가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교회 지붕 위에 십자가가 있음은 당연하며 이것은 신학적이기까지 하다. 한 교회 지붕 위에 몇 개씩 매달려 있는 작고 크고 울긋불긋한 다양한 십자가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십자가들이 적절한 곳에 설치된다면 그 십자가가 황금으로 치장되었든 십 수척 크기의 네온 십자가든 그것이 대수가 아니다.

유럽의 돌 성당들 지붕 위의 십자가는 아무리 큰 교회일지라도 많아야 두개, 첨탑은 높아도 십자가 크기는 보일 듯 말듯하다. 교회건물의 모양세 자체가 교회임을 말해주는데, 거기에 십자가를 굳이 크고 많게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또 십자가가 적당히 작음으로써 건물과 조화를 이루기도 했다.


   
유독 왜 대한민국 교회들만이 교회건물의 크기나 조화와 관계없이 무지막지하게 크고 울긋불긋한 십자가를 세우는 것일까. 가히 기독교 국가 아니 십자가 국가라고 할만하다. 거기에 심오한 신학적, 교리적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무조건 드러내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이다.

같은 하나의 상가건물에 교회 세 개가 입주해 있는 경우 그 상가 지붕은 참으로 처참할 수밖에 없다. 세 교회가 공동으로 첨탑과 십자가를 설치하면 경비도 절약되고 주민으로 부터의 비난도 덜 하고 상가 건물도 정리되어 좋을 텐데 그런 교회를 아직 본적이 없다. 첨탑의 높이와 십자가의 크기마저 경쟁이 된다. 천사가 한 건물 위에 있는 많은 십자가들 중에서 어느 십자가 위에 임재 할런지 감히 추정할 수 없지만 십자가 위에 앉기보다는 건물에 하나 달랑 보일듯 말듯한 십자형 피뢰침 위에 앉아 그 안의 사람들과 재산을 보호할 것 같다.

건축가들이 교회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고심되는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십자가 탑이다. 건축가마다 나름대로 십자가 탑에 대한 컨셉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설계한 다양한 형태의 교회건물에 일률적으로 같은 모양의 십자가 탑을 맞춤형처럼 설치한다. 십자가 탑 모양을 보면 누가 설계한 것인지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이다.

   
건축도 넓은 의미에서 환경조형물이지만 특히 십자가 탑은 그런 조형물 위에 또 설치되는 조형물이다. 단순히 십자가 하나를 설치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건축주는 주변 타교회와 차별성있는 특이한 십자가 탑을 요구하고, 건축가는 심히 고심하며 만들어 낸 자신만의 독창적인 십자가 탑을 다시 변형하여 재창출해내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건축가는 건축가이지 전문 조각가가 아니다. 간혹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한 건물주변의 조경까지 담보하려는 욕심도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제안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도 전문 조경가의 몫이다.

건물 지붕 위에 부착된 십자가탑 자체가 또 하나의 환경조각품으로써 건물 본체와 독립된 또 다른 미디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십자가 탑도 조각가에게 과감하게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지붕위의 십자가,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재질도 다양하지만 본 건물과 어색하지 않으며 주변 스카이라인에 흠집을 내지 않고 주민들에게 위화감만 주지 않는다면 십자가 개수가 문제겠는가.

   
이 정구 (성공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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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세로 목회함이

[기독교]변해야 산다 2007. 11. 10. 09:52 Posted by 바람몰이
이런 자세로 목회함이...

1. 인기를 위한 목회가 아닌, 인격적인 목회를! (롬12:10-20)

2. 직업적인 목회가 아닌, 소명감에 불타는 목회를! (겔34:1-16)

3. 최고, 최대를 위한 목회가 아닌, 최선의 목회를! (살전2:1-12)

4. 경쟁적인 목회가 아닌, 성실한 목회를! (마25:14-30)

5. 자랑을 위한 목회가 아닌, 겸손한 목회를! (눅17:10)

6. 수와 양에 치중하는 목회보다는, 알곡을 키우는 질적인 목회를! (요10:9,16)

7. 자아 중심의 목회가 아닌, 주님 중심의 목회를! (빌1:20)

8. 명예를 위한 목회가 아닌, 영혼을 위한 목회를! (고전9:19-23)

9. 인간의 칭찬을 받기 위한 목회가 아닌,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목회를! (마6:16-18)

10. 과장된 위선의 목회가 아닌, 양심적인 정직한 목회를! (마23:1-36)

11. 내 힘으로 하는 목회가 아닌,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는 목회를! (행1:8)

12. 받기 위한 이기주의적인 목회가 아닌, 생명까지도 주는 희생적인 목회를! (행20:24)

13. 의무감으로 하는 타율적인 목회가 아닌, 사랑 때문에 하는 목회를! (살전2:8)

14. 정죄하는 목회가 아닌, 이해와 관용의 목회를! (마26:41)

15. 책망의 목회가 아닌, 권면과 위로와 칭찬의 목회를! (살전1:2-8)

16. 명령과 지시만 하는 권위의 목회가 아닌, 본을 보이는 실천의 목회를! (벧전5:3-4)

17. 발로 뛰기만 하는 목회가 아닌, 무릎으로 기도하는 목회를! (눅2:39-46)

18. 십자가를 타고 가는 교만의 목회가 아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순종의 목회를! (16:24)

19. 인간의 지혜로 하는 목회가 아닌, 성경말씀 중심의 생명있는 목회를! (딤후3:15-17)

20. 교인을 외모로 보는 계산적인 목회가 아닌,
의롭고 괴로운 자의 편에 서는 진실된 목회를! (약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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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10. 09:46 Posted by 바람몰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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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주 헌금을 합니다.


과연 우리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 걸까요.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을 바라고, 기다리고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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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단풍이 절정을 지나 조금씩 떨어지며 바야흐로 가을과 겨울의 중간에 서있는 시기입니다. 남은 가을을 건강히 보내고, 다가오는 겨울을 잘 맞이 할 수 있는 노하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규칙적인 식사 사람의 몸은 가을, 겨울의 찬기운에 적응하기 위해 신진대사율을 높입니다. 따라서 식사를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영양만점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표준체중 유지에 힘쓰자. 가을철은 맛난 음식들이 많이 있지요. 그렇지만 풍부한 먹거리때문에 오히려 과잉 섭취가 되어 비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또한 겨울은 추운 날씨 탓에 활동량이 적어져 비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적절한 체중조절을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3.면역력 강화와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양질의 단백질 섭취를 하자. 요즘 같은 환절기는 일교차가 크지요. 따라서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여러 질병에 걸리기 쉬워집니다. 약해진 면역력을 강화하고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육류, 어류, 우유, 콩제품이 적절합니다.

4.제철에 많이 나오는 해산물 섭취하기. 바지락, 김, 다시마 등 해조류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칼슘, 철분 등의 조혈성분도 풍부합니다. 당연히 빈혈 예방에 좋겠지요. 또한 비타민 역시 풍부하니 건조하고 추운 날씨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피부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5.감기 예방에 좋은 비타민과 무기질을 풍부하게. 기온이 떨어지면 체내 대사율의 증가로 비타민 요구량이 증가합니다. 비타민 A는 목의 점막을 강하게 해주고, 비타민C는 호흡기의 상피조직을 건강하게 해주므로 감기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또한 무기질이 부족하면 대사이상, 면역기능 약화 등으로 호흡기 질환, 근육이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감, 귤, 사과 등의 과일과 신선한 채소를 많이 드시길 바랍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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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와 패러다임

[시사]세상살이 2007. 11. 8. 13:47 Posted by 바람몰이

인터넷 기독교 신문 에큐메니안에 올렸던 글


국제 유가와 패러다임

임정혁 kkuks81@yahoo.co.kr


1.기름값 상승의 원인

뉴욕 시장 금값이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다. 각종 언론은 이란 핵개발 문제를 그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핵개발 문제의 해결기대가 사라졌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란 대통령이 보낸 친서에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이 하나도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면 일리가 있는 견해이다. 그러나 조금은 다르게 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이란 핵개발이 기름값 상승의 원인?
실은 미국 중국의 소비 증가, 감소하는 생산량

먼저 최근의 계속되고 있는 국세 석유 소비량의 증가를 예로 들수 있다. 이것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이다. 특히, 중국은 고유가 시대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경제성장을 보이며 기름소비를 더하고 있다. 미국 역시 국내 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수급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름의 매장량 자체이다. 허버트 정점설에 의하면 국제 석유 생산량은 2004-5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한다. 즉, 원유생산량 자체가 꾸준히 감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국제 유가 시장은 보다 심각한 수급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공급을 충분히 할 수 없는 상황은 국제 유가를 꾸준히 오를 수 밖에 없게 하는 문제일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2.비교적 적은 경제적 충격

세계 역사에는 총 2차례의 오일쇼크가 있었다.1973년 1차 석유위기 직후 국제유가는 3개월 만에 3배로 올라갔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함께 닥친 2차 석유위기는 1979년 4월 배럴당 14달러이던 유가를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1980년 11월 배럴당 41달러까지 치솟게 하였다. 이 때 세계 경제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최근의 고유가 추세는 세계 경제 및 우리 경제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는 1970년대와는 달리 세계경제, 특히 선진국 경제가 IT 산업의 출현, 에너지 다소비 제조업의 개도국 이전으로 경제구조가 크게 변했기 때문에 고유가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완만한 유가 상승은 적응 능력도 높여
투기자본은 석유에서 기름으로 옮겨가고

게다가 국제 유가의 상승동향은 예전 2차례에 비해서 꽤 완만한 편이다. 상승 기간 역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에 각 국의 기업들이 일종의 적응(?)능력이 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약간의 변동은 있지만-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세계 경제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일종의 마약과도 같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는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안락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이다. 이에 대다수는 점점 감소하는 상승률을 못느끼거나, 아니면 오히려 약간의 하락 정도는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계속되는 하락에도 이것을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에는 이것이 하락폭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임을 경험해야 비로소 현실을 직시할 가능성 역시 있는 것이다. 약 기운에 아픔을 견디고 기분 좋은 경험을 하다가 결국 약 기운이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아픔을 직시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 투기자본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들은 한국과 같은 시장에 대규모의 자본을 투입했다가 그 차액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빼가며, 그 자본을 점점 금 매입에 쏟고 있을 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국제 금값의 상승은 이런 의심을 쉽게 지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국제 금값은 26년만에 1온스당 700달러를 넘어서며 꾸준한 상승기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1온스당 10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 보고 있다.

3.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문제는 우리의 시장구조 자체가 소비지향적이며 자연 착취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지구의 자원을 소비 또는 착취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경제구조와 맞물려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단기적으로는 살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장기적으로는 사람뿐이 아니라 전지구적 생명체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이다. 결국 지구의 자원은 고갈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것으로 인한 쓰레기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은 과거 죽어갔던 많은 생명체의 흔적들이다. 우리는 이들의 생명을 토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은 생명이 아닌 쓰레기이다. 상상을 해보라. 계속해서 성장하고있는 중국이 우리 또는 미국과 같은 소비구조를 가지고 생활하며 쓰레기를 내보내게 되는 것을 말이다. 이미 중국의 경제 발전이 주는 직접적인 피해를 우리는 보고 있지 않는가. 황사에 섞인 중금속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해왔다

실제적인 선택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그동안의 우리 선택은 생명의 선택이 아닌 죽음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산업혁명 이후 언제 한번 전지구적 생명체가 평안한 적이 있었던가. 이제는 호흡조차도 자유로이 못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본성이란 어떤 종교이던지 완전하게 보고 있지 않다. 더욱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타락, 즉, 원죄의 문제까지도 들고 있다(원죄는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이야기 외에도 뇌의 구조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수도 있다. 인간의 뇌는 먼저 수질을 거치게 되어 있다. 질이란 파충류 뇌라 불린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 충족, 생명 유지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는 곳이다. 그 위에 있는 것은 동물뇌라 불리는 부분으로써 정서뇌라고 불리운다. 마지막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이 대뇌인 데 여기서에야 비로소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이성적인 판단 이전에 작용하는 것이 수질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본능적 욕구 충족과 생명 유지에 이성 이전에 자리잡고 있는 동물적 본성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것은 우리가 말하는 이성적인 판단이란 것과 합세하여 어쩌면 동물보다도 못한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적어도 동물은 자기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 외의 살상은 하지 않는다. 바로 개발논리의 위험성이 지적될 수 있는 대목이지도 않을까.

4.선택의 방향성

이제는 생명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한다. 우리는 인간 뿐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살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운명의 오솔길은 낭떠러지를 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빨리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우리 인간의 영성은 본래적인 존재를 통해 향하게 되어 있다. 또한 우리안에는 그 본래적인 존재의 영성이 깃들어 있다. 분명 희망은 있다. 이제는 결단을 위한 작업을 더 많이 수행해 나가야 한다. 아직까지 일부에서만 제기되는 생태의 문제를 보다 공개적인 차원으로 끌어내야 한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만 행해지는 생태운동이 보다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수정 작업만으로도 안된다면 과감한 방향선회까지도 고려해야한다. 만약 자본주의적 방식이 안된다면 이것을 과감히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아니던 간에-필자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이제는 생명의 문제가 포인트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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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다

[시사]세상살이 2007. 11. 8. 13:43 Posted by 바람몰이
 
2007년 7월 30일 인터넷 기독교 신문 에큐메니안에 올렸던 글

 

여동생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다

세계 경제의 전망 속에서 교회를 보다

                                                                                                            임정혁 kkuks81@yahoo.co.kr


오전에 여동생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여동생은 저축성 예금에 가입해 매달 적금을 넣고 있다. 이 예금 상품은 자금운영을 통한 투자를 하는 것이고, 최근의 주가상승으로 이자가 상당히 붙었다. 그런데 지난 주 급락한 주가의 영향으로 그동안 붙었던 이자의 총액이 줄어들고 있다. 이 저축성 예금을 해약해서 이만큼의 이자라도 챙겨야 되나 말아야되나 궁금하다.

필자는 어떤 대답을 하였을까?

지금의 호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최근 국내 주식시장은 주가2000의 시대를 맞이하는 등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세계 증시의 호황 및 국내의 풍부한 유동자금의 유입 등을 대표적인 원인으로 열거하며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겠다. 물론 지난 금요일은 "검은 금요일"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급락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선 주식시장 현장 전문가들은 1800-1700선까지의 하락을 경고하기도 하였고, 일부는 그 이상까지 하락할 것을 예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중 다수는 꾸준한 하락이 후 중장기적 흐름 속에서 주식시장이 반등할 것을 예측하고 있는 것이 현상황이다.

필자는 - '중장기'가 얼마만큼의 기간을 의미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 위에서 언급한 전문가들의 예측이 적중할 것이라 본다. 우선 세계 경제 자체가 일단 호황국면이다. 둘째로 미국내 사정에 의한 쇼크가 한번씩 있기는 하지만 세계 경제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세계 경제의 호황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 아닌 중국의 연 10% 대에 달하는 성장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아직까지는 국제 유가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호황이 오래 가지 않고, 어쩌면 마약과도 같은 성격으로 인해 그 끝이 매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도구와 목적의 반전, 민중의 고통을 예고

보드리야르는 "사회 전체가 주식회사가 되어 악마와 계약을 교환하고 풍부함을 대가로 초월성과 목적성을 팔아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목적의 부재에 괴로워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즉, 현대 자본주의가 어떠한 흐름의 방향이 없는 말하자면 합목적성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 그 첫째 이유이다.

둘째는 인간 및 뭇 생명의 풍요를 위한 도구가 이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상하역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소로스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인간 고유의 가치들을 화폐적 가치들이 대신 하는 병든 현상"이라 진단한바 있다.(첫째와 둘째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논하기로 하자)

끝으로 좀 더 현실적으로 볼 때 세계경제의 풍요와는 별도로 그 이윤율이 점점 감소함으로써 종국에는 상당한 고통이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풍요와 안락은 세계경제가 상당수준에 올라와 있기에 누리는 것이며 일정수준에 오른 경제는 국제유가의 끝없는 고공행진과 더불어 급격한 하락세를 이윤율의 하락과 더불어 이룰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미 배럴당 75달러를 넘어섰고,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역시 70달러에 육박하였다. 수많은 예측 속에 골드만삭스는 배럴당 95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란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고 특히 중국 경제의 성장과 관련한 유가상승설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금융세계화의 확산은 자본주의 위기의 반증

다시 한번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분명 세계의 석유 매장량은 그 끝이 있다는 것이고, 휴버트 정점설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과의 상관관계에서 그 상승의 정점은 2006-7년이며 그 이후는 계속해서 매장량과 생산량이 감소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이러한 예측의 배후에는 급속화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현상이 있다. 한신대의 윤소영 교수는 금융 세계화의 확산은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반증이라 하였고, 서울대 김세균은 결국 이 모든 위기의 충격은 세계의 민중들이 질 것이라 경고한바 있다.

이것의 배후에는 당연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투기자본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경제는 지금 계속되는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는 자본수지와 무역수지가 늘 동률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가 유지되는 것은 한국, 일본, 독일 그리고 최근의 중국의 자본유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심화되는 미국 경제의 위기와 세계 경제의 위기는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이른바 "오일쇼크"와 금융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민중의 삶의 피폐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호황을 곧이 곧대로 볼 수 없고, 이것은 마약과도 같은 현상일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진보적 교회도 속한 교회로 돌아가는게 좋겠다

필자는 여기서 소위 말하는 민주화운동을 해왔던 진보적 교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진보적 교회는 과거의 화려한 역사는 그만 말하고 이제 자신이 속한 교회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그래서 자체의 개혁을 통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에 부족함 없는 질적-양적성장을 이뤄가면 좋겠다. 어찌 될 지 모르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한국의 정세를 관망하며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아예 사회에서 발을 빼라는 게 아니다. 자신들이 정치세력이 되어 앞에 나서다가 뒤돌아 텅빈 교회를 보고 결국 어설픈 도인이 되어 교회에 세상을 등지고 가만히 농사만 짓고 있지 말라는 얘기다.(이에 대한 이야기도 추후 자세히 하도록 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여동생에게 어떤 대답을 하였을까..필자는 여러 이야기를 꺼내며 "그냥 좀 더 관망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여동생이 가입한 상품의 기한이 1년 남짓밖에 안남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상품의 만기가 5년 이상이었다면 필자는 관망하다 6개월내지 1년내에 해약 해버리라고 하였을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예측과 판단들이 잘못되고 또 잘못된 것임을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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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상승과 미국의 함수관계

[시사]세상살이 2007. 11. 8. 13:40 Posted by 바람몰이
국제유가상승과 미국의 함수관계
유가상승으로 세계적 경제 위기 고조...교회는 이런 상황 대처해야

임정혁 kkuks81@yahoo.co.kr


   
1.어제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가 배럴당 86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 역시 76달러를 넘어섰구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에 따른 경제 침체나 위기설이 언론에 심심치 않게 보도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기도 하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이미 올해 95달러까지 유가가 오를 것이라 보았고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국제 유가가 최대 200달러까지(장기적으로 볼 때)상승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대다수 언론은 겨울철 사용량 증가에 따른 수급문제와 터키의 이라크 진공계획 등을 상승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OPEC이 생산량을 늘리겠다 해도 쉽게 가격안정이 되지 않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게다가 터키의 진공계획도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겠습니다만 이런 일이 없었어도 국제유가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석유의 매장량 자체입니다. 이미 이것은 피크에 가까워졌거나 지났다고 보고 있는 것이구요. 따라서 유가는 꾸준히 상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아마도 미국은 이런 상황을 오래 전부터 예측하고 있었을거라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는 가장 확실한 전쟁 명분을 제공했기에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적어도 향후 3-40년간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석유"의 이권확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것은 중동정세 및 수급상황의 불안으로 인한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였고 여기에 최근 계속되는 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은 국제 유가의 상승을 가속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국제 유가 상승의 두번째 이유입니다.

미국이 이런 전략을 선택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영국의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의 비밀보고문서에서 이미 2007년 이후 전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이 점점 심해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냉난방의 문제와 직결될 것입니다. 냉난방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이지요. (또한 전세계 식량시장의 개방 요구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식량 또한 패권유지의 전략적 무기로 선택한 측면 역시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로 약한 달러 정책을 통한 자본유입의 확대와 끊임없는 확전은 계속되는 쌍둥이 적자라는 기형적인 자국 경제상황과 무너져 가는 제조업 상황의 개선 및 부시 행정부의 지원세력인 군수업체의 경영상황 개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지요. 이것이 둘째 이유입니다. 또한 이에 따라 앞으로도 국제 유가는 계속 오를 것입니다.

3.이러한 상황은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달러의 약세는 환율과 직결되기에 우리 나라가 석유를 수입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 아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유가가 배럴 당 95달러를 넘어서면 아무 소용 없어진다 하니 저달러로 인해 큰 타격을 받기 시작한 우리 나라 산업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정말 위기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만약 유가가 200달러에 육박하게 되면 도로에 움직이는 차가 없을 것이란 암울한 예상을 담은 글 조차 존재하는 실정입니다.(아무리 연비가 좋다는 차라도 고유가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으니 말입니다.)

아울러 생각해볼 점은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란 점입니다. 지금 꾸준히 계속되는 세계화란 것은 금융 세계화를 그 핵심실체로 하고 있습니다. 이 금융세계화란 것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서 금융세계화란 환율, 이자율, 유가의 불안정으로 인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초민족적 법인자본이 금융화를 시작하는 걸 의미합니다. 이 때, 초민족적 법인자본은 외환 시장, 유로 통화시장 같은 단기 금융시장을 활용하여 현금 플로우를 관리하고 환투기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금융세계화란 투기적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이고, 각 국의 중앙은행은 재무부로부터 독립하여 고도금융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미국 경제에 종속되어 있는 세계 경제의 특징을 볼 때 당연히 미국의 경제적 모순 심화가 심해질 수록 세계적 경제위기가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충격은 각 나라를 가리지 않고 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기에 저는 이것을 계속 경고하려 하는 것이지요.(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처럼 경제적 기득권자나 상위계층은 위기가 와도 다 잘 살지요. 피해는 서민 중산층이 떠안는 것이구요)

4.이제 저는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는 국제 유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 봅니다. 세계 경제나 미국 경제가 좋던지 나쁘던지 아무튼 어떤 방식이든 그 끝을 볼 때까지 오를 것입니다. 석유 매장량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이 배후에 미국의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에 따른 세계적 경제 위기도 금융세계화와 더불어 더욱 심해질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교회는 이런 상황을 염두해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예측이 빗나가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집중될것이니 말입니다. 교회가 아니면 이 상처들을 정신적, 물적 피해를 안아줄 곳이 없습니다. 각 정부 역시 재무부가 고도금융에 종속된 형편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 상황일 것입니다.

입력 : 2007년 10월 19일 13:55:37 / 수정 : 2007년 10월 21일 07: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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