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에 데려다주고 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의 특성상 저는 주로 월요일에 쉬곤 하는 데요. 아침부터 딸아이가 유독 '딸기 할머니'를 보고 싶다하여 내려갔다 오는 길입니다. 기왕 내려간김에 지난 달 출산한 아내가 친정 엄마와 함께 좀 더 편히 쉴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 겸사겸사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히 다녀온 탓일까요. 집에 돌아온 저는 어깨가 뻐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독 휑~하게 느껴지는 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 네식구 살기 딱 알맞은 조촐한 집인데, 오늘따라 너무도 크게만 느껴집니다. 불이 꺼져있는 거실과 안방을 보면서는 괜히 썰렁한 느낌마저 들게 됩니다.

사실 저는 유독 외롭게 자란 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헤어지시는 걸 직접 보았고, 다른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함부로 책 잡히지 않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른바 '부모없는 자식'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괴롭히거나 저를 우습게 여기면 악을 쓰며 싸워이겨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에는 혼자 직장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여동생을 살펴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쉽게 제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 자신이 너무도 약해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 자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입술을 으깨물고, 눈에 힘을 준채 사는 습관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성장배경이 제게 가족이 주는 의미를 더 크게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가족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아내와 아이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제가 살아가는 버팀목이자 이유입니다.

물론 그래도 가족과 늘 함께 있다보면 그 소중함을 놓칠 때가 많지요. 늘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들러붙는 아이를 보며 녀석 없이 평온한 날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또 가끔 사고도 치고, 잔소리도 하는 아내를 보면서 자유로운 총각시절을 떠올릴 때도 있지요. 하지만 이내 곧 이들이 없다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여유로운 회상을 넘어서버리게 됩니다.


앞으로 저는 약 2주간 혼자 있게 될 듯 한데요. 음, 문득 주말부부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때, 저는 가족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혼자 있으면서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고, 지난 날을 돌아보기도 하였지요.
 
이번에는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또 다른 방식으로 제 자신을 다져갈까 합니다. 다시 시작한 공부를 더욱 열심으로 진행하고, 오랜만에 운동도 좀 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주 후 가족들을 만나며 더 큰 마음으로 안아줘야겠습니다. 스스로에게 기운을 불어넣으며 글을 맺어 봅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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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야말로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 일요일 밤부터 앓기 시작한 몸살에 저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습니다.

예전에
<주말부부 6개월 가족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다>를 포스팅 한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주말부부의 장단점을 적고, 나름의 각오를 다져보았는데요. 벌써 5개월이 거의 다 지난 지금도 저희는 여전히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의 각오를 최대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 생활도 상당히 익숙해져서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허나 그 중 변화를 하나 꼽아보자면 그것은 딸아이가 점점 성장하고, 말하는 어휘 구사력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간단한 단어정도 구사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벌써 문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밤마다 아내와 딸아이를 바꿔가며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와는 이런 저런 일상도 나누고, 여러 가정일을 상의하기도 합니다. 딸아이와는 아무튼 뭔가 말을 하긴 하는 데, 이게 거의 외계어 수준이다보니 서로 자기 얘기만하다 끝이 나곤 합니다. ㅋ 그래도 이게 어딘가요. 이 녀석 정말 많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밤은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너무 아파 통화를 길게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와도 짧게 안부만 나눌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를 잠깐 바꿔 '엄마 말씀 잘 들으라' 한마디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그러는 겁니다.

"아빠, 안녀히 주무해효~사랑해효~"

 뒤에서 아내가 "건희야, 아빠 아야~하데. 아빠 힘내세요 해드려~" 라고 하니 녀석이

"아빠, 힘내애요~아빠 사랑해효~"

라고 합니다.

아, 이거..

이 한마디를 듣는 데 갑자기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겁니까..그 다음 월요일에도, 어제 화요일에도..그저 딸아이의 한마디를 들을 뿐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던지요..


"그래, 건희야~아빠 힘낼게~건희도 잘자! "

저는 20살부터 결혼 전까지 계속 혼자 살았습니다. 사실 당시 제 가족이라곤 제 여동생 정도뿐이어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혼자 아프고, 혼자 이겨내는 데는 상당히 내공이 쌓여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어린 딸아이와 통화를 하고 나니 어깨를 들썩이며 나도 모르게 훌쩍이게 되더군요. 또 며칠을 앓으면서도 딸아이를 생각하며 물도 더 마시고, 스스로 땀도 닦고, 몸도 깨끗하게 씻으려 애를 쓰게 되었습니다. 밤에는 최대한 잠을 푹~자려 노력해보고 말이지요.


아마 저희는 6월경 다시 살림을 합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떻게든 그렇게 되게 하려 합니다. 이 때는 주말부부 시작한지 1년이 되는 때이기도 하지만 점점 성장할 수록 아빠를 찾는 딸아이 때문에도 안 되겠고, 제가 너무 힘들어서 못살겠습니다. 요즘 며칠 앓고 나니 더욱 그런 마음이 확고해 집니다. 정말 사람은 좀 아파봐야 일상과 평범한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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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회식과 퇴근

지난 금요일 아내의 직장 회식때문에 서둘러 퇴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하기 때문이지요. 부천에서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영동 고속도로를 나와 수인산업도로를 거쳐 수원역을 지나 오산시 양산동까지 가는 것이 제가 선택한 코스였습니다.


물론 한 때는 "수원역" 하면 최악의 교통흐름을 보이는 곳이었지요. 물론 지금도 그런 편입니다만 요즘은 버스 승강장 개선을 통해 수인산업도로를 타고 넘어가 활주로를 타는 데는 상당히 흐름이 빨라졌습니다.

평소와 다르던 교차로 상황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수원역 앞까지는 잘 왔는 데, 갑자기 차가 움직이지를 않는 겁니다. 도로에 차가 가득했던 것이지요. 신호가 바뀌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겨우 찔끔찔끔 내려와 교차로 앞까지 올 수 있었는 데요. 상황파악을 대충 해보니 이랬습니다.

먼저, 저는 안산방향에서 빨간색 노선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주 수월하게 잘 넘어왔습니다. 대개 여기부터 오산으로 넘어가는 활주로까지는 약 10-15분가량 소요되곤 합니다.



두번째, 당시 도로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이 교차로는 파랑색선 두개와 빨간 선 1개 총 3개 부분에서 모이는 곳인데요. 누구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상황으로봐서는 오른쪽 파란선 차량이 먼저 교차로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음 신호를 받았던 가운데 파란선 차량과 본래 신호 없이 넘어가곤 하던 빨간선 차량들이 뒤섞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거 끝이 없더군요. 노란 원부분을 핵심으로 오른쪽 하단 도로까지 계속 밀려 있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한참을 제자리에 멈춰있다 제가 차량 안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찍고도 한참을 더 서있었답니다.(저 때문에 더 차 막혔다 뭐라 하지 마시기를..^.^;;)










나 하나 좀 더 빨리가겠다는 마음에 도로는 엉망진창

세 사진을 통해서 보니 정말 정신이 없지요? 평소에도 생각했었습니다만 이 날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에 대해 느꼈냐구요? 바로 "꼬리잡기" 말입니다.


"꼬리잡기" 이거 정말 난감합니다. 나 하나 좀 더 빨리가겠다는 이기적인 마음도로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금씩 한참을 내려가보니 왠 버스 한대가 길 가운데에 떡하니 서있었는 데요. 이것도 정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 뒤에서 양보하며 한대한대 빠지면 금방 풀릴 수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꼬리잡기를 하면서 한대두대 뒤섞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뒤에서 압력 넣는 분들도 문제

복잡한 교차로에서의 꼬리잡기!! 이건 정말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못지 않은 문제인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뒤에서 빨리 앞으로 끼어들기 안한다 뭐라 하면서 압력 넣으시는 분들입니다. 어쩔 때는 얼마나 뭐라 하는 지 무안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압력을 자꾸 주니까 나는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끼어들게 되고, 뒤에서 뭐라 하시던 이 분은 더 뒤에서 꼬리를 잡아 교차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곤 하지요. 뒤의 뒤에 서있게 되니 말입니다.   


정리하며

흔히 하는 말처럼 '나 하나 쯤이야' 라는 생각이 얼마나 피곤한 것인가 도로상황처럼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뒤에서도 너무 뭐라하지 말고 서로 좀 더 느긋하게 여유를 가져주면 모두 함께 정체를 풀어낼 수 있고, 서로 얼굴 붉히며 신경쓸일도 없어지니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지요.

사실 누가 꼬리잡을 줄 모르고, 끼어들기 할 줄 몰라서 가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도로 상황을 보며 "양보"를 하면서 "질서"를 지키면 더욱 빨리 갈 수 있으니 다 조금씩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기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 좀 더 여유있게 운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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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나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수학 강사 생활에 제법 짭짤한 수입을 얻었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도 있었다. 학원생활을 접고 난 후에도 한동안 내 이름은 살아 있었다. 부천으로 이사한 후에도 안산, 화성, 수원 등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때 아내는 가장 힘들었다는 얘기를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 돌아오는 나는 늘 여유가 없었다. 집에서는 축 쳐져 있었고, 아내와의 대화는 갈 수록 줄어들며, 겨우 말문이 트여도 늘 짜증으로 마무리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었다. 아이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었다. 물론 당시 너무 어리기도 했지만 아빠 얼굴을 몰라 잠시만 안아도 울어대는 통에 내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이 때 나는 매우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정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물질 충족을 통한 여유"가 가장 중요하다생각을 하였었다. 이걸 놓치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고, 내일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물질적 여유 없이 마음의 여유가 쉽게 허락될리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이 모든 일을 그만 두었다. 물론 허리 수술 부위의 재발이 직접적인 이유였지만 이런 삶이 계속 되었다간 가정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또한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내 영혼을 바라보며 이것은 사람이 사는 삶이 아니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당연히 수입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부족분은 아내의 취직으로 충당하고 있다. 나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모습을 보며 미안함에 늘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아내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한다. 훨씬 더 여유로워진 내가 좋다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아이를 안아주며,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내가 더 좋다 한다. 비록 지금은 서로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고 있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한다. 지금 당장은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우리의 내일에 비젼이 있고, 희망을 볼 수 있다 한다.

나 역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의 이혼과정을 모두 봐야만 했다. 생선장사와 삯바느질로 날 키우시던 조부모님과 살아오며 찢어질 듯한 가난에 너무 힘들었다. 대학시절은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뒤는 물론 옆도 보지 않고 달려온 인생이었다. 물론 지금도 내 결혼식조차 오지 않았던 아버님과의 관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삶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그저 움켜 쥐려고만 하던 을 눈 딱 감고 놓아버리면서부터 찾아온 행복이고, 여유였다.


사실 사람 사는 게 별거 아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내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이와 함께 하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내 정신줄을 놓치 않고, 늘 꿈을 꾸며 살 수 있다면 그 속에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그런데 그걸 보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에 뭔가 자꾸 움켜쥐려고만 하면 문제가 생긴다. 돈을 움켜쥐고, 명예를 움켜쥐고는 도무지 놓으려 하지 않는다. 주먹도 계속 쥐고 있으면 피가 안 통해 하얘지고, 경련이 일어나는 법이다. 인생의 행복이란 게 마치 비누와도 같아서 강하게 움켜쥘수록 자꾸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나는 생각한다. 


어제 언론 보도를 보니 일가족 4명이 생활고에 시달려 동반자살을 했다 한다. 또 다른 어떤 기사에는 10억이 있으면 양심은 물론 가족마저 버릴 수 있다 응답한 이가 50%가 넘는 다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더 이상의 물질적 풍요가 아닌 여유와 행복을 채울 수 있는 "비움의 영성"이 아닐까.

블로그 메인에 올려놓은 가족사진. 우린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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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취직과 함께 주말부부로 지낸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유독 빨리 지나간 듯 느껴진 올 한 해였지만 아내와 아이가 없는 집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흐른다. 텅빈 방에 혼자 누워 외로움과 벗하며 청하는 잠은 그리 반가운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새벽 두시나 되야 잠이 들게 되었다.


물론 주중에 한번, 주말에 한번 가며 최대한 자주 만나려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주 듣게 되는 소리도 몇 가지 생겼다.

먼저, 방에서 홀아비 냄새가 난다
는 것이다. 언젠가 여동생이 했던 말이다. 그나마 내 몸에서는 안난다 하니 다행이었다.(그 후 향기00을 사서 뿌려주고 있음)

두번째는 얼굴이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는 것이다. 물론 잠을 늦게 자서 피곤한 탓도 있겠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세번째는 일은 잘 한다
는 것이다. 혼자서 무얼 하겠는 가.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일을 하게 된다. 이미 해봤던 것도 여유 있게 생각하다보니 이래저래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치밀한 준비가 가능했다. 


물론 주말 부부로 지내다 보니 좋은 점도 있긴 하였다. 무엇보다 아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더 애틋한 마음이 들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확실히 사람은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내와 떨어져 살고 나니 그 동안 몰랐던 아내의 소중함이 많이 느껴진다. 밤 마다 피곤해 잠 못드는 나를 위해 안마를 해주고, 아침마다 잘 다녀오라 인사해주는 일상이 이젠 너무 특별해졌다.

또한 그 전에 우리가 다퉜던 일을 생각하며 '아..그래서 그 때 그랬나 보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는 식의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한마디를 해도 좀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해줘야 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아내가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운전해야 하는 터라 차에서 혼자 웃는 걸 연습해보기도 한다.

또한 딸아이와 많이 친하졌다는 것이다
. 주중에 가면 대개 8시나 되야 하는 데, 녀석은 그 때부터 나와 정신없이 놀려 한다. 주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잠을 자도 내 품에 안겨 자고, 밥도 내가 먹여 주는 걸 좋아한다. 기저귀도 굳이 아빠와 갈겠다고 한다. 나 역시 더욱 녀석이 사랑스럽고, 소중히 느껴진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커갈수록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더 느끼는 것이라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부녀가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해 가는 건 굳이 나쁘게만 볼 문제가 아니리라. 


아마도 우리 부부는 6개월 이상 더 주말 부부로 지내야 할 것 같다. 그 때까지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아내와 딸이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 같다.(필자는 부천, 아내와 딸은 오산에 거주) 내 몸도 피곤하고, 아이도 힘들고, 아내도 그립지만 누구나처럼 어쩔 수 없는 삶의 형편이란 것이 있다. 따라서 이 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게 잘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선택일 것이다.

나는 남은 6개월 동안 지금보다 아내를 더 이해하고, 공감해주려 노력하고 싶다. 또한 아이를 더욱 사랑하고 싶다. 끝으로 내 자신을 더욱 깊이 닦고 싶다. 그러면 힘든 시기일 수 있는 지금이 우리 가정의 더 행복한 내일을 위한 소중한 배움과 준비의 시간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처럼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가정의 사람들과 이 사회를 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내가 내 가족 사랑으로만 멈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역시 우리의 이 힘든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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