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이 남자의 인생'에 해당되는 글 203건

  1. 2009.09.17 어느 전업주부 남편의 백일기록, 육아편(세번째) 35
  2. 2009.09.16 어느 전업주부 남편의 백일기록, 두번째 21
  3. 2009.09.15 어느 전업주부 남편의 백일기록(1편) 52
  4. 2009.08.25 함께 마음농사 지으며 사는 게 결혼 아닐까. 4
  5. 2009.08.21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너를 두고 싶다
  6. 2009.07.28 둘째 임신에 "병원" 이 아닌 "보건소"를 찾은 이유 28
  7. 2009.07.21 수련회 다녀옵니다! 4
  8. 2009.07.21 남자 그리고 눈물(부제 : 남자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 1
  9. 2009.07.10 아내의 다이어트 외조-1.닭가슴살 미역국 10
  10. 2009.07.07 아내의 다이어트. 이렇게 외조하겠다! 10
  11. 2009.07.02 나는 공처가일까 애처가일까? 17
  12. 2009.06.26 아내의 마법은 남편에겐 기회이다! 29
  13. 2009.06.08 나일롱 환자 VS 보험사 그 결과는? 24
  14. 2009.05.28 B.M.W 로 출퇴근하니 참 좋습니다. 18
  15. 2009.05.27 새벽에 아내 아침을 해주고나니.. 11
  16. 2009.05.20 남자의 변신은 무죄다! 그 남자의 몸짱 프로젝트 2
  17. 2009.05.19 남자는 결혼해야 철이 든다? 4
  18. 2009.05.18 사위도 아들이고, 장인 장모님은 내 아버지, 어머니십니다. 11
  19. 2009.05.15 꺽정샘의 수학강사생활 일기 4
  20. 2009.05.06 서로 챙겨주는 맛이 있어야 부부다. 5
  21. 2009.04.28 주말부부 설움, 아프니 느껴진다. 7
  22. 2009.04.24 야~애비야! 그 전화사기범(?)이 붙잡혔단다! 8
  23. 2009.04.22 아내와 딸 그리고 나, 그 기묘한 삼각관계. 10
  24. 2009.04.14 야간에 산에 올라 도심을 보니.. 6
  25. 2009.03.17 마트에서 캐쉬백 적립하는 남자..이상한가요? 73
  26. 2009.03.09 할머니께서 보이스피싱에 당하셨습니다... 276
  27. 2009.01.13 첫 휴가 아내. 감동의 <편지>로 답하다 27
  28. 2009.01.11 결혼 3년. 아내에게 첫 휴가를 주다 10
  29. 2008.12.17 집에 들어오는 "쥐" 어떻게 퇴치해야 할까요? 4
  30. 2008.12.11 주말부부 6개월. 가정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다 107


철드는 것만큼 어려운게 또 있을까.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누구나 살다보면 철이 들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한두번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중 가장 큰 계기가 있다면 바로 출산과 육아의 긴 과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출산과 육아는 사실 내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스스로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성장을 한다는 건 언제나 성장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몸이 자라도 통증이 있는 거고, 아픔을 겪으며 마음이 자라기도 한다. 당연히 출산과 육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참 아쉽게도 우리는 기쁨의 순간만을 떠올리곤 한다. 임신을 하면서 새생명이 들어옴은 분명 신비하고, 놀라운 과정이지만 그 후의 과정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있지 아니하면 오히려 내 자신을 잃고, 짜증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1.늘어가는 짜증

아이가 가장 예쁠 때가 언제일까. 아마도 많은 엄마들이 "잠잘 때" 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잠잘때는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필자는 '아이 예뻐라~이 귀염둥이!! 라면서 뽀뽀를 해주곤 한다.

그런데!!! 

좋은 건 여기까지.


이 녀석이 다시 눈을 뜨고 말을 이기기 시작하면 상황은 180도 변해버린다. 악을 쓰기 시작하면 이건 정말...또 한번 놀아달라 들러붙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ㅡ.ㅡ;; 찰거머리 저리 가라이다.

최근 건희는 손이 다친 일이 있다(관련글 : 10분의 방심, 딸아이 손가락을....). 그래서 나와 2주 정도 함께 집에서 요양을 취했다. 아이와 2주 동안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것도 "미운 네살" 접어든 녀석과 함께라면!!
...
....
......

2주란 시간은 사람을 2년 이상 더 늙게 만드는 것 같은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2.늘어나는 회의

사람이 삶의 목표와 꿈을 잃는 다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 점점 커져가는 목소리만큼 꿈과 열정도 커지면 좋은 데, 이건 그 반대이다.  

아~한 땐 나도 꿈많고, 열정적이던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아~~~옛날이여!!! ㅠ.ㅠ


육아를 100% 전담하다보니 자기회의가 늘어남을 볼 수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나는 신학공부를 하며 지금까지 수도해왔다. 그러나 아이 앞에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흥분하는 걸보며 수없는 자기회의에 빠지고 말았다. 또 아이에게 치여 살다보니 내 젊은 시절 꿈은 이미 사라지고,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쓰며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박지윤의 <하늘색 꿈>이 듣고 싶어지는...으흑....ㅠ.ㅜ


3.늘어나는 교육비와 자존심

우리는 저소득층으로써 정부에서 100% 보육료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교육비가 안 들어갈까. 이건 순진한 발상이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지출되는 교육비가 상당하다. 만약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고, 그것도 형제(또는 자매)를 함께 보냈다면 이건 정말 엄청나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맞출수가 없는 금액이 나간다. 윽..허리가...ㅠ.ㅜ

그런데 또 참 재밌는 게 내 아이가 좀 쳐저 있는 건 보기 싫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어진다. 또 친구에게 맞기라도 하면 기분이 굉장히 나쁘다. 차라리 치료비를 물어주는 한이 있어도 안 맞고 다녔으면 하는 맘이 생기고 만다. 특히, 나는 무도 수련을 20여년 정도 한 사람으로써 아이가 덩치 큰 친구에게 위축되어 꼼짝못하는 걸 보면 ..... 

내 눈은 순간 이글아이가 된다~

으~~~이글 아이!!!


그러니 참으로 재밌지 않은가. 가장 좋은 걸 주는게 가장 좋은 교육 효과를 담보하는 게 아님에도  내 자식이 연루된 문제이 있어서는 그러지 않아도 될만큼 감정적이게 되니 말이다.


4.기타

육아에 좀 더 신경쓰다보니 참 이런 저런 전화를 많이 하게 된다. 동사무소를 찾는 횟수도 늘어난다. 육아 관련 사이트도 엄청나게 들락거리고, 대학시절 교육학 공부를 하며 읽던 책도 다시 보게 된다. 안 그런 척하면서 옆집 아줌마는 애한테 뭘 입히고, 뭘 시키는지 관심 갖게 되고..ㅠ.ㅜ;;;


정리하며

자기만족이다. 결국 아이에게 무엇이든 최고의 것으로 최고만 해주고 싶은 결국 자기만족이란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에게 고가의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굳이 조기교육을 하지 않아도 결국 공부할 놈은 공부하고, 공부안할 놈은 공부 안하는 게 이치이다. 그러니 결국 자기만족이란 생각이 든다.

또 자기감정이다. 자기 감정을 못 이기니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고, 내 자신이 흥분하게 된다. 사실 이렇게 흥분하며 아이를 다그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아이는 자연스레 세상 사는 법을 깨우치는 법이다. 윽...이런 말을 하니 또 다시 부끄러워진다. 오늘 아침 나는 또 다시 건희에게 밥 먹고 가라 다그치고 말았었다...으흐흐흐흐흑....ㅠ.ㅜ;;

음음, 아무튼..

결국 육아의 긴 과정은 내 자신의 성장과정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자신의 모델로 삼고, 무의식에 모두 저장하는 만큼 내 자신이 성장하고, 학습하는 삶이 되지 않는 이상 아이들은 성장할 수 없다.



P.S : 내일은 연재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백여일간 전업주부로써 살며 느꼈던 것을 최종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내일도 업데이트 시각은 10-11시 사이입니다. 또 방문자가 200만명을 넘겼습니다. 많은 사랑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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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먼저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__)

오늘은 어제 미리 말씀드린대로 "가정경제"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나는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신학을 전공했고, 철학을 함께 공부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어릴 적부터 장사를 해왔던 터라 참 재밌게도 국제경제학을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게다가 대학을 직장생활을 하며 다녔는 데, 그게 바로 "수학강사" 였다.
 
자, 이제 이쯤되면 필자가 어떤 공격력(?)의 소유자일지 대충 짐작이 된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쌓은 말빨(좋은 말로 논리)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수학강사를 오랫동안 하며 키워온 꼼꼼함!! 이건 좋게 발휘되면 좋지만..^.^;;; 나쁘게 발휘되면 엄청난 잔/소/리/ 능력의 소유자란 말이 된다. 오늘도 나는 아내에게 '불을 끄고 다녀라' '왜 외식을 하려 하느냐' 며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ㅠ.ㅠ


그러나 나 역시 잔소리를 해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마음수련을 쭉 해오면서 이것 역시 하나의 반응체계이자 습관임을 알게 되었고, 내 스스로 조절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된 계기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집안살림" 을 맡게 된 것이었다.

사실 그 동안 가사를 분담하며 세밀한 가계 계산은 아내가 하곤 했었다. 나는 큰 방향을 잡고, 결정을 하는 정도였다. 머리속으로 계산을 이리저리 해보면서 톱니바퀴를 대충 맞춰보는 정도였다. 그래서일까...이 때만해도 별로 대단한 걱정이 생기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아내 역시 그런 표정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아내는 워낙에 성격이 낙천적이고 여유로움)

그런데 이게 웬일...

이건 완전 다른 세계다. 살림을 분담하며 머릿속으로 큰 틀에서 계산했던 건 한마디로 "뜬구름 잡기" 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밀하고도 실제적인 계산에 들어가니 보통 복잡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였다.


먼저, 생각외로 지출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은근슬쩍 한푼두푼 나가는 항목이 참 많다. 구체적으로 뭐가 그렇게 많냐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할 수는 없는 데, 아무튼 정말 많다. 즉,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정확히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예산을 짜고, 집행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가 갖고 있던 돈이 사라지고 없는 걸 볼 수 있었고, 스스로 '어라 언제 이 돈을 다 썼지?' 라며 놀란게 한두번이 아니다..ㅠ.ㅜ;;


둘째, 몇 달-몇 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다.

단순히 이번 달 생활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아니 사실 이것만해도 대단히 어려운 얘기다(아래 단락에서 계속). 그런데 가계를 꾸리다보니 한달, 하루의 삶 뿐 아니라 몇 년 후 상환해야할 대출금도 염두해야하고, 내년에 입학할 대학원 학비 계산까지 해야하며 곧 태어날 둘째가지 고려해야 했다. 길게 보지 않고 살다보면 결국 - 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흐흐흐, 그래도 흰 머리와 주름과 함께 안목 역시 길어진 듯 하다 ^_^;;


셋째, 강한 생활력(?)을 어디서든 표출하게 되었다.

강한 생활력..ㅎㅎㅎㅎ 혹시 이 글을 읽는 남성에 사은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본적이 있는가? 필자는 있다..;;; 혹시 주인 아줌마와 싸우면서 가격 흥정 끝에 물건값을 깎아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있다..;;; 백일전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살림을 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다. 기왕에 같은 돈을 주고 사는 거니 뭔가 하나 더 준다면 그걸 사게 되고..1+1이라 해도 1g 단위로 계산해서 평균단가를 따져 더 저렴한 걸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1+1이 더 손해일때도 많습니다. 주의하시어요!!) 



넷째,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서는 돈을 써도 나를 위해선 안쓰게 되었다.

왜 많은 '아줌마' 들이 처녀시절 미모를 잃는걸까..한때는 '게으름' 때문이라 생각했다. '좀 예쁜 옷도 입고, 몸매 관리도 하지..' 이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가계를 꾸리다보니 자연스레 가족을 위해서는 돈을 써도 나를 위해선 쓰지 않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성이고, 어머니의 자기 희생임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정리하며

자, 지금까지 짧게 가계살림을 꾸리며 느꼈던 점을 정리해 보았다. 살림의 한복판에서 모든 걸 관리하다보니 그 전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도 하고, 이른바 "아줌마" 가 된 내 모습을 보며 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이렇게 복잡한 살림이 진행된다는 것은 결국 이 집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우리가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즉, 이런 저런 계산을 하며 한숨만 쉬기보다 좋게 생각하며 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내가 모든 걸 맡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또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런 우리 가족의 삶에 감사하고 싶다.  



오늘은 이쯤에서 2편을 마무리 합니다. 내일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고, 제 전문분야 중 하나인 "육아" 에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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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업주부 남편이다. 한 때 잘나가는 시절도 있었고, 아직도 여기저기서 인정 받지만 약 100 여일동안 전업주부로 살게 되었다. 구직시도를 안 한건 아니지만 아직 때가 아니고, 인연인 곳이 없는지(구직조건이 워낙 까다롭기도..^.^;;) 좋은 곳을 만나지 못했다. 아무튼 오늘은 필자의 일과를 기록하며 지난 일백여일 동안의 전업주부 생활을 정리하는 첫 페이지를 열어볼까 한다.


1.오전 7시 기상

가족 중 가장 늦게 자는 건 바로 나이다. 그러나 가족 중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 역시 나이다.  아내와 딸아이 경우 7시 30분쯤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나는 반드시 7시에 기상해야만 한다. 아침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약 30분간의 노력을 통해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고, 많은 절약을 할 수 있기에 꼭 하게 된 일과이다. 늦잠이란 주부에게 통용될 수 없는 일이다.


2.오전 7시 30분-8시 30분

아내와 딸아이를 깨우고, 식사를 시킨다. 현재 아내는 둘째 임신 중이라 좀 더 자라는 나름의 배려로 7시 30분 기상을 얘기하고 있다. 딸아이와 아내의 세면이 끝나고, 식사를 마치면 대략 8시 30-40분. 아침 출근을 위해 빈 그릇만 대충 정리하고 문을 나선다.


3.오전 8시 40분-9시

아내와 딸아이의 출근(?)시각이다. 딸아이는 어린이집으로 가고, 아내는 직장을 향한다. 현재 새로 이사온 곳에 버스가 없어 내가 출퇴근 시켜줘야만 하는 상황이다. 택시를 타고 가자면 워낙 돈이 많이 들어 벌써 한참을 이렇게 하고 있다.


4.오전 9시-10시

집에 돌아오니 상황이 엉망이다. 일단 상을 깨끗하게 치우고 설거지를 해야한다. 휴~딸아이는 그 짧은시간에 을 어지럽혔다. 이것도 치워야 한다. 오 마이 갓! 벌써 한시간이 지나갔다.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 후 커피한잔을 끓여본다.


5.오전 10시-11시

커피한잔을 하며 TV를 켜보니 이런 저런 토크쇼도 있고, 케이블 방송에 육아 등 강연도 많다. 커피를 마시고, 과일 한점 주워먹으며 보고 있는데...어라...갑자기 눈을 뜨는 상황이 발생한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만것!! 으....내 뱃살...ㅠ.ㅜ;;


6.오전 11시-오후 1시

이제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나는 밥먹고 잠만 자는 잠탱이가 아니다! 집안을 싹 쓸고, 닦으며 땀을 낸다. 청소를 하니 벌써 점심시간. 가볍게 찌개 등을 밥을 말아 한그릇 후다닥 해치운다. 이야~시간 참 잘 간다~~


7.오후 1시-3시

집안과 관련된 밀린 일을 처리할 시간이다. 가끔 4시까지 소요될 때도 있다. 이런 저런 일이 왜 이리도 계속 생기는지...정말 집안 일은 끝이 없다.


8.오후 4-6시

귀가 후 잠시 숨을 돌린다. 이 때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 관리를 해준다. 가끔은 피곤해서 이것도 못할 때가 있다. 한달 평균 2-30만명의 방문자를 자랑하던 이 블로그를 보라. 현재 겨우 몇 백명 수준이니 그동안 얼마나 관리를 못해왔나 알 수 있다 ㅠ.ㅜ;;;

블로그 관리가 끝나면 이젠 저녁 준비이다. 사실 저녁 준비를 하다보면 인터넷 시간이 매우 줄어든다. 하루 종일 고생한 아내와 딸아이에게 비싸진 않아도 영양만점 식사를 제공해야한다는!!! 강한 의지가 발동되기 때문이다.


9.저녁 6시 20분

아내의 퇴근을 위해 차를 몰고 나간다. 으하하하~그러나 아내의 얼굴은 피로가 가득하다. 음...딸아이는 에너지가 언제나 넘친다. 아빠를 부르며 안기곤 한다.


10.저녁 7시 ~ 9시

식사를 하고 나니 아내가 설거지를 해준다. 오전에 널어두었던 빨래도 같이 정리한다. 가볍게 과일을 먹으며 뉴스를 보기도 하고, 하루 일과를 정리해본다. 아~~오늘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구나~~~


11. 밤 10시 이 후

아내는 드라마를 보기도 전에 잠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하는 일의 특성상 드라마를 공부삼아 보기도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왠지 하루의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생겼기 때문이다 ㅠ.ㅜ;;  월화는 <선덕여왕>을 봐준다. 수목은 <태삼>을 봐준다. 금에는 뭐 그냥 딱히 볼게 없다(소비자 고발 정도..) 주말은 <천추태후> 이다 (--)V

 
전업주부 남편으로 백여일을 살며 알게 된 두가지

아~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나는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눈 깜빡 하니 또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렇게 백일이 지나고 나니 늘어난 건 뱃살과 잔소리요 줄어든 건 냉철한 이성과 자기관리 시간이었다. 팔뚝은 점점 굵어지고,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입던 바지에 숨이 막혀가기 시작했다 으~~~ㅠ.,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나로써는 참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이유는 두가지이다. 먼저, 이렇게 살다보니 스스로 자기회의와 부정에 빠지게 되고,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부 우울증 비슷한 걸 보게 된 것이다. 살림 자체가 나쁘거나 의미 없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나 자신을 잃어가는 듯하고,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의 주부들이 왜 가십거리를 찾으며 수다를 찾게되고, 남편과의 거리가 생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주부의 노동가치가 얼마나 큰지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자취생활과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필자 역시 6년간의 자취를 통해 수많은 살림 노하우를 터득한 인재(?) 였지만 본격적인 집안살림을 하는 데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필자가 그 동안 일하며 받은 급여 등과 비교할 때 집안일은 최소 연봉 2천 이상의 가치가 있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남편이 반드시 가사를 분담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며

전업주부 남편으로 살다보니 동네 사람들의 신기한 듯한 시선도 받게 되고 참 재미난 일이 많다. 그러나 역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 지 모르는 나를 잃어가는 시간 역시 존재함을 느꼈다. 평소 가사의 40% 이상을 분담한다 자부하던 나였지만 100% 전담을 해보니 가사 분담의 중요성을 온 몸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오늘은 이렇게 1편을 정리한다. 내일은 가정경제에 대한 에피소드를 나누도록 하겠다. 내일의 업데이트 예정 시각은 오전 10시 -11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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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소리쟁이야~제발 그만 좀 해!!

며칠전 있었던 얘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저는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웹진 "우리" 의 필진입니다. 한달에 한편씩 원고를 보내야 합니다. 운영자님은 큰 부담 갖지 않겠금 문자를 주시지만 저로써는 정해진 날짜에 특정 주제의 글을 써서 보내야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원고 마감의 압박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지난 달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희 집에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걸 토대로 쓰니 제법 반응도 괜찮더군요. 하지만 이번 달은 참 어려웠습니다. 원고 마감 이틀전까지 글의 컨셉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휴~상당히 마음이 답답하고, 급하지요.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습니다. 그리 큰 일도 아닌 데 자꾸 신경질을 내었습니다. 아내의 임신 후 제가 도맡아 하던 집안일조차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참 웃긴 현상이 일어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엄청난 잔소리를 해대는 것입니다. 아내가 출근에 쫓겨 그냥 던져놓고 간 옷을 일부러 가만히 두고 퇴근 후 돌아온 아내에게 '이게 뭐니?!' 라고 하는 걸 시작으로 사사건건 놓치는 게 없었습니다. 신경이 예민하니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이더란 것입니다.

하하, 이런 저 때문에 아내의 고생은 보통이 아녔습니다. 오죽하면 저보고 "이 잔소리쟁이야! 제발 그만 좀 해!! " 라고 할까요..ㅠ.ㅜ;;  나중에는 본인도 힘이 들어 저에게 짜증을 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이미 짜증난 상태니까 같이 짜증을 냈지요. 같이 짜증을 내니 서로 다툼이 일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서로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던 거지요. 


제 장인 어른께서는 농사를 지으시는데요. 가만보면 땅과 자연 때문에 많이 울고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정을 주어도 태풍 한방에 농사를 망치기도 하고, 때론 자연의 도움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며 웃기도 하시구요. 그러면서 더욱 생명의 소중함을 아시고, 인자한 주름이 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결혼 생활이란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서로의 말과 행동 때문에 많이 울고 웃곤 하지요. 나는 많은 정을 주며 노력하지만 배우자의 한마디와 행동 하나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반면 뜻밖의 작은 정성을 보며 웃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서로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인생이 하나의 인생이 되어 인생이란 큰 농사를 지어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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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저도 제법 잘 나가던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학원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제 이름을 듣고 학원에 온 학생도 있었고, 학원 수강생 중에서도 제게 따로 과외 부탁을 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법 수입도 좋았고, 어린 나이에 교무주임을 하며 표창장도 받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예, 그 때는 참 잘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만약 이 때의 저를 본다면 여자들은 저를 꽤 능력있는 남자라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득 저는 이런 삶이 주는 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허리를 다쳐 수술을 하게 되며 더욱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내 삶 자체는 아무런 여유가 없고, 매일을 피로에 지쳐 살아가며 돈만 벌고 있는 내가 무엇인가 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사람 냄새를 풍기며 생명을 일구는 삶이었던가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두려했던 신학을 다시 공부하며 제 삶을 바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제 아내는 이런 저를 보고 믿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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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며칠 아내가 속이 좋지 않다 합니다. 그 동안 다이어트를 한다 하여 나름 식단 조절도 해주고 신경을 쓰고 있었는 데, 이렇게 안 좋다 하니 제 속이 더 상하더군요. 그런데 며칠 전 아내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른 걸 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배가 아파 나온 표정이 아니였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뭔가 중차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지요.

흐흐흐~~~ㅋㅋㅋ~~~~하하하하~~~~와~~~~ㅋㅋㅋㅋ

예, 아내가 생리를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바로 "임신" 했다는 거지요!!!

와~~~~~ㅋㅋㅋㅋㅋㅋ


아내의 임신 후 검사를 위해 보건소를 찾았습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일단 병원을 갔었습니다. 그러나 임신 초기 검사는 굳이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으로 찾은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보건소. 참~좋아졌더군요. 다양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선생님과 상담을 하니 여러 자세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이런 선물을 하나 주더군요. 알고보니 신생아 베넷 저고리였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만든 건가 하고 보니 순수 국내산에 친환경 황토 저고리였습니다. 아~좋더군요!! (참고 : 저희 집은 행정구역상 오산이지만 1분만 걸어나가면 화성시가 되고, 5분만 나가면 수원시가 된답니다 ㅎㅎ)




선생님과 간단히 상담을 한 아내가 혈액검사를 위해 나왔습니다. 채혈을 무려 세통이나 하더군요. 결과는 일주일 후 쯤 나온다 합니다. 따끔했겠지요?




이번에는 소변검사입니다. 다 아시죠? ㅋㅋㅋ 검사를 해준 선생님이 친절한 건지 요즘 보건소가 다 친절해진건지 잘 검사를 하였습니다.




밖을 나와보니 아~이런 것도 있더군요. 첫 아가때는 그냥 독학했었는데, 이번엔 한번 같이 다녀봐도 좋을 듯 합니다. 만약 처음 임신을 한 초보 엄마나 아빠가 계시다면 굳이 병원까지 다니지마시고 보건소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교실이 있으니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나온 아내에게 뭐 먹고 싶은 게 없는가 물어보았습니다. 기왕에 나온거 그냥 들어갈 순 없지요. 병원에 갔으면 몇 만원 들어갔을 텐데 보건소에서 무료로 검사를 했으니 그 돈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맛난 음식을 먹고 와야겠다는 계산입니다.



일단 근처 농민마트에 갔습니다. 입덧이 생기고 있어 신선한 과일을 샀습니다. 첫 아이때는 입덧이 심해질 무렵 선배 목사님께서 재배하신 복숭아 한 박스를 먹으며 다스렸었는 데, 효과가 있더라구요.

그 다음은 짬뽕을 먹으러 갔습니다. 사실 아내는 매운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치킨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였지요. 그런데 이번 녀석은 제 입맛을 닮았는지 갑자기 얼큰한 짬뽕이 그렇게 먹고 싶다는 겁니다. 근처에 있는 수타면으로 소문난 집을 찾았습니다.





그냥 기분탓일까요. 수타면은 그냥 면보다 더 쫄깃하고 같은 그릇에 같은 양을 넣어도 더 배부른 것 같습니다. 종합적으로 봐도 더 맛난 것 같구요. 다양한 맛을 즐기기 위해 저는 짜장면, 아내는 짬뽕을 주문해왔습니다.



일단 도착해서 보니 두번 웃어보게 됩니다. 우선 그양이 상당하여 한번 웃고, 한 젓가락 뜨며 그 맛에 또 한번 웃게 되지요. 흐흐흐~~잘 먹고 왔습니다.


둘째 아이 태명은 "덕만이" 입니다. 첫째 아이이 태명은 "주몽" 이였는데요. 당시 주몽만 보면 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녀석을 보고 지었던 겁니다. 이번엔 선덕여왕이 아주 재밌어 "덕만이" 라 하였네요 ^_^

사실 저희는 좀 더 있다 둘째를 가지려 하였습니다. 둘째를 갖지 않으면 입양을 하려 했지요. 특별히 계획된 임신은 아니지만 기왕에 허락된 생명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태교 잘 하려 합니다. 덕만이도 잘 키우고, 나중에 더 부자되어 셋째를 입양하면 되지요. 이참에 국가에 헌신도 한번 더 하고 말이죠.

보건소 시설도 잘 되어 있어 더욱 좋습니다. 몇만원씩 드는 산전검사도 무료로 가능하고, 여러 교육이나 철분제 등도 무료로 받게 됩니다. 한결 부담이 덜어들어 그만큼 맛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평소 꾸준히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미리 미리 준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가요. 제가 병원보다 보건소를 찾을 만한 이유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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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다녀옵니다!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7. 21. 12:22 Posted by 바람몰이


제가 내일부터 모레까지 (22-23일) 강화도로 중고등부 수련회를 다녀옵니다.

오늘까지 수련회 준비 마무리로 글도 못쓰고, 댓글도 제대로 달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__);

잘 다녀와서 좋은 글로 다시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P.S: 7월 31일-8월 1일도 수련회가 예정되어 있어 다음 주 후반에는 또 인사드리지 못할 듯 합니다.
       미리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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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방송을 보니 남자가 되는 데도 자격이 필요하나 봅니다. 무려 101가지를 해봐야 한다 합니다. 버라이어티쇼이긴 하지만 남자 되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의 자격 중 가장 큰 것이 집안이나 부모님에 대한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실제 남자는 군을 입제대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신부감 역시 기왕이면 효성이 지극하여 내 부모님을 자기 부모님처럼 여길 사람이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25살에 시집와 시할머님을 모셔온 아내

저는 제 나이 다섯에 부모님이 헤어지시는 모든 과정을 직접 목도하였습니다. 그 후 15년간 대야에 생선을 담아 파시는 할머님과 삯바느질을 하시던 할아버님을 뵈어오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반드시 조부모님을 제가 모시겠다 다짐해왔지요.

겨우 25세에 결혼한 제 아내는 시부모님도 아닌 시할머님을 모시며 살아왔습니다.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많은 사연 얽힌 우여곡절을 겪으며 저희 가정은 지내왔고, 아직 어린 아내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장인, 장모님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없는 형편이지만 용돈이라도 한 번 더 드리고 싶어 하고, 휴가도 처가에 가서 농사일을 도우며 보냅니다. 제 아내에게도 나중에 꼭 장인, 장모님을 제가 모시겠다 약속하였습니다.


대학 연애시절 같이 찍은 사진


이해하지 못했던 아내의 눈물


하지만 아내는 가끔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결혼 초 저는 이런 아내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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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발행되는 웹진 "우리"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여러 문제로 본문을 모두 싣지 못하고 더보기를 통해 링크 걸어둠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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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다이어트가 비가 오는 어제도 끊임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 의지가 참으로 멋지더라구요. 이런 모습을 보며 뭔가 하나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메뉴는 섬유질과 단백질을 보충을 고려한 고소한 미역국이었습니다.

단, 만드는 방식에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요. 평소 만드는 미역국과 달리 소금간을 하지 않거나 해도 매우 조금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미역과 닭가슴살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거지요.

1.우선 미역을 냄비에 넣고 참기름을 살짝 넣어 볶아 줍니다. 좀 더 맛나고, 고소한 향이 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2.국물을 내기 위해 따로 멸치를 넣어주었습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칼슘보충 역시 필요한데, 국물맛까지 잡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었던 것이지요. 확실히 이렇게 약간의 수고를 해주면 더욱 맛난 미역국이 가능해집니다.



3.자, 이것이 바로 훈제 닭가슴살입니다. 훈제로 사는 이유는 이것에는 일반 훈제와 달리 소금이 들어가지 않고, 닭비린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다양한 요리를 해먹는데도 괜찮습니다. 포장을 뜯어 전자렌지로 해동 후 이리저리 잘께 찢어 미역국에 넣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항상 주문하는 옥0에서 샀는 데, 이번에는 포장이 약간 바뀌었더군요.



4.이제 아까 멸치를 넣었던 물과 참기름으로 볶았던 미역, 닭가슴살을 한데 모아 줍니다. 사진이 좀 밝게 나왔는데요. 이렇게 넣어주면 제법 맛난 향과 보기 좋은 모습이 나옵니다.




5.이제 끝으로 간장 약간을 넣어주면서 한동안 푹~끓여주면 됩니다. 너무 싱거운 듯 해도 운동을 할 때는 괜찮습니다. 이미 다른 반찬에서 염분이 충분히 보충되기 때문이지요.

다행이 아내가 미역국을 잘 먹어 주었습니다. 딸아이 역시 "이거 아빠가 해준거예요" 라면서 잘 먹었습니다. 갑자기 주부의 마음이 되어버린 저는 참으로 흐믓함을 느끼게 되더군요 ^.^;; ㅋㅋ


요즘 집에서 공부와 운동만 하고 있다보니 살림을 주로 제가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집에 있어도 노는 게 노는게 아니지만(여름 캠프 2회 준비중) 그래도 아내보다는 제가 시간이 더 나니 말이죠. 그러다보니 나꾸 아내의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을 짜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렵고, 대단한 걸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두유 한팩 챙겨주고, 야채 샐러드 살짝 만들어주기만 해도 아내의 반응이 매우 좋고, 여유를 많이 찾는 듯 하였습니다. 내가 불과 몇 분 투자한 것인데 말이지요.

예, 참 그렇습니다.

가정의 화목, 부부간의 금술은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시작하는 것일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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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내의 다이어트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벌써 3주차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그 동안 수차례 다이어트 시도를 하다 금방 포기하는 걸 봐온지라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 중간에 금방 멈추는 듯 하여 눈물 쏙 빠지게 제가 독한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기왕에 시도하는 거 꼭 성공해서 자신감도 찾고, 건강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유산소 운동을 하고 밤에는 웨이트를 하며 식단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도 움직여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이어트 외조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지난 2년간 하던 일을 그만 두게 되어 이번 주부터 말일까지는 시간도 많습니다. 그 전에는 이미 먼저 몸짱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었지요.


제가 아내를 위해 할 일은 크게 두가지 측면이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첫째는 식단조절에 같이 임하는 거고, 둘째는 아이를 잘 봐주는 것입니다.

일단 장을 봐왔습니다. 닭가슴살과 두유를 주문했고, 샐러드용 양배추와 달걀, 두부, 버섯, 감자, 단호박 등을 구입해왔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에 어떤 음식을 해줄까 생각하여 일주일치 식단을 짜보았습니다. 탄수화물과 고단백의 양을 조절할까 합니다. 섬유질이 부족하지 않도록 오후 간식을 싸주려고도 합니다. 

그 다음 아이를 제가 지금보다 더 봐줄 수 있도록 하는데요. 사실 여자의 입장에선 두번째가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먹다 남긴 밥을 처리하는 것. 이것만해도 벌써 보통 일이 아니지요. 아이가 울어서 운동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마음이 얼마나 쓰입니까. 운동장을 돌다가도 아이가 신경쓰여 금방 들어가게 되지요. 그래서 기왕에 보는 아이 제가 좀 더 신경쓸 수 있도록 할까 하는 것입니다. 저녁도 제가 좀 챙기고, 목욕도 주로 제가 시킬 수 있도록. 우유 등도 제가 좀 더 챙겨주려 합니다.

그런데 사실 아내의 다이어트에 외조를 하면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워낙 어린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도해와서 그런지 아니면 성격이 그런지...뭐든 한번 하면 제대로 하라고 잔소리가 너무 심합니다. 물론 아내가 잘 되라 하는 거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참 힘든 일이 될 겁니다. 사실 벌써부터 아내의 불평이 나오는 듯도 합니다. 아..이걸 어째야할지...아마도 아내의 다이어트에 제가 제대로 외조를 하려면 이놈의 입방정(?)부터 잘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아내를 처음 본건 대학 새내기 시절 강의실이었습니다. 그 때 아내는 수업에 늦어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요. 저희 과의 특성상 굉장히 얌전하거나 남자 같은 여학생이 많은데, 그 때 아내는 너무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제가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ㅋㅋㅋ 주로 심야에 방문하곤 했던 족발보쌈 친구들과 피씨방에서 아내를 달래주던 우동 국물은 또 다른 아내를 만들어냈고, 결정적으로 아이를 낳으며 상당히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변한게 몸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마음이 약해지고, 더 어두워져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감도 더욱 잃어가는 듯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아내의 다이어트가 반드시 성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이놈의 잔소리만 어떻게 한다면...으...ㅡ.ㅡ;; 이번 외조의 핵심에는 제 입을 다스리는 게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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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처가일까 애처가일까?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7. 2. 13:57 Posted by 바람몰이


얼마 전 아내의 마법기간 중 밥을 챙겨주는 글을 올렸습니다. 조회수가 수백회가 넘어가자 여러 반응이 나오던데요. 문득 그 반응들을 보며 문득 '공처가와 애처가' 의 차이가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사전에서는 아내에게 눌려 지내는 남편을 공처가라 합니다. 애처가는 아내를 각별히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눌려지내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각별한 사랑을 하는 것인가요.

아마 그 동안 제 글을 읽어오시고, 제 모습을 처음 보는 분들은 제가 "애처가" 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제가 써온 글을 보면 알 수 있듯 저는 대학시절부터 페미니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아내를 사랑하며 가정에 충실하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주변에서는 저를 애처가를 넘어 공처가라 하기까지도 합니다. 너무 아내의 말을 많이 들어주며 풀어주려 한다는 거지요. 집안 살림도 너무 많이 한다고 합니다. 처가에 너무 많이 신경을 쓰려 한다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습니다. 

참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저는 그냥 제 "소신" 대로 살아오고 있는 데, 주변 반응이 저를 "애처가" 와 "공처가" 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지요. 

사실 이런 표현자체가 상당히 우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자한테 눌리고, 잡혀산다는 말 속에는 이미 여자를 휘어잡고, 강하게 리드하며 살아야한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또 애처가란 말자체에도 여성은 그저 남자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고 말이지요. 이런 용어 속에 이미 남성 중심적 사고 방식이 강하게 박혀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페미니스트이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또 대단히 앞서나가는 진보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란 게 어떤가요. 일방적인 순종이나 수동적인 태도를 요구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또 나 혼자 독불장군으로 주도하는 삶을 살면 반드시 큰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조금 앞서 나간 이야기지만 우리가 결혼을 하는 이유를 돌아봐도 그렇지요.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이란 꿈에 기초가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림에 삶의 방향성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네 조상님들은 결혼 후 삶을 "살림살이"라 하였지요. 예, 서로를 살리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바로 결혼생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결혼생활에서 아내 또는 남편의 일방적인 순종을 요구한다...하...이럴려면 결혼을 왜 하는 가요? 제 상식으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저는 공처가든 애처가든 다 좋습니다. 제가 열심히 가정에 충실하려는 것은 저와 긴밀하게 엮여진 아내의 인생에 제가 부담되는 존재가 되지 않고, 기왕이면 행복하게 해주려는 데 있습니다. 또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의 행복을 담보하는 일이고, 어린 딸아이 인생의 첫단추를 잘 끼워주는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래야 서로의 삶을 살리는 "살림살이"가 될 수 있을테니 말이지요.

흐흐흐..여러분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저는 공처가인가요 애처가인가요?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설픈 페미니스트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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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길고 긴 아내의 마술기간이 끝났습니다. 주기적인 마술을 통해 아내의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지만 본인 스스로에게나 옆에 있는 저에게 모두 이 기간은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이 기간이 결코 힘든 시간만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남편의 노력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사실 저도 항상 아내의 마법기간을 챙겨주는 건 아닙니다. 연애시절에는 항상 신경쓰며 챙겨주려 했는 데, 결혼 후 이런 저런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니 잘 되지가 않습니다. 많이 힘들어할 때 한번씩 정도...가 되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점수 좀 만회하려 노력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영양보충 가능하면서도 함께 좋아하는 걸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먼저 호박을 잘게 썰어줍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넣어 가볍게 양념 후 볶아주지요. 그 다음은 이 양념 그대로 양파까지 볶아 줍니다. 끝으로 당근을 잘게 썰어줍니다. 그런데 이 때 저는 당근을 볶지 않습니다. 비타민 A 가 열에 약해 금방 파괴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씹는 맛을 고려. 좀 더 얇게 채썰어주어 넣어주곤 합니다.


압력 밥솥에 방금 지은 밥입니다. 비빔밤은 항상 방금 지은 밥에 먹어줘야 합니다. 그것도 양푼에 넣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제 맛이지요.



자, 이걸 이제 합체해줍니다. 그런데 이 때 양념을 넣기 전 들기름을 가볍게 한번 둘러줘야 합니다. 골고루 밥에 그 고소한 향내가 배어 있어야 밥을 비빈 후까지 그 고소함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보기 좋게 준비한 재료를 올려주고, 가운데 고추장을 풀어준 후 달걀 하나를 입혀 주면 완성!!

ㅋㅋㅋ 어떤가요. 좀 먹음직스러워 보이나요?

요즘 아내의 마법기간 동안 제가 저녁을 계속 준비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닙니다. 며칠 전에는 된장찌개, 비빔밥, 양념 볶음밥(추후 포스팅 예정), 호박볶음 등 간단하게 나아갑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상당하지요. 아내가 고마워하기도 하고 맛 없어도 맛나게 먹어주는 걸 보며 제가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예, 정말 아내의 마법기간은 남편에게는 점수 만회의 좋은 기회입니다~ㅋㅋ

요즘 좀 찔리는 게 많은 남편분들은 이 기회를 잘 잡아보시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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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할머님과 딸아이가 있는 오산집에서 자고, 오늘 아침 모셔다드리며 출근하던 차였습니다.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받아 웅~하면서 가고 있는 데, 길가에 주차하듯 서던 SUV 차량이 갑자기 튀어 나오는 게 아닙니까. 그 유명한 불법유턴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급히 속도를 줄이며 차량 방향을 조금씩 움직여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인지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돌. 결국 힘들어하시는 할머님때문에 신속히 차를 몰고 병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가슴 타박상과 목, 허리 염좌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삐끗 했다는 거지요.  교통사고는 날이 지날 수록 더 아픈 지라 이삼일 입원해 있을 겁니다만 예, 이정도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할머님은 다르지요. 손잡이를 잡고 계시던터라 손가락 통증이 너무 크십니다. 또 무릎을 문에 부딪치시어 아파하십니다. 아무래도 좀 계셔야 할 듯 합니다.

보험사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최초방문확인서" 라는 걸 작성하러 온 것이지요. 제가 2년 전 지금처럼 불법유턴 차량과의 사고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공부를 좀 해놨더니 의외로 말이 쉽게 통하더군요. 저는 보상금을 더 뜯어낼 마음도 없고, 그렇다고 쉽게 합의해줄 생각도 없다 얘기하였습니다. 일단 치료하고 보자 하였습니다. 직원도 충분히 수긍하더군요.

사실 이 부분은 우리 모두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더 뜯어내려 나일롱 환자 연기를 하지요. 또 보험사는 꼭 해줘야하는 부분까지 숨겨가며 보상을 안 해줄때가 있습니다.

왜 서로 이러는걸까요..이런 문제일 수록 원칙대로 하면 참 간단하고, 서로 피해없이 잘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지요. 나일롱 환자 연기를 안하며 조금이라도 못 받으면 바보 취급을 당하고...보험사에서는 법대로 보상해주면 사람은 능력 없는 직원이 되고...

이런 뒤죽박죽 모습덕에 우리는 결국 매년 올라가는 보험료를 보게 되고, 내가 받을 수 있는 부분까지 못 받는..또 회사는 욕은 욕대로 먹고..개인이나 회사 모두 손해보는 일을 반복하고 있지요. 결국 서로 싸우긴 열심히 싸우는 데, 승자는 없이 패자만 있는 모양새가 아니냐 하는 겁니다. 


앞으로 보험사 직원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딱 법에 정해진 항목만큼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또 저 역시 나일롱 환자 연기는 안 할 겁니다. 저희는 충분히 치료와 보상을 받고, 보험사 직원분 역시 잘 일 처리가 되어 서로 좋게 사고가 마무리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P.S : 주식투자종목분석은 예전처럼 장을 틈틈이 계속 관찰하며 볼 수 없어 자세한 분석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기본적인 기술적 분석은 챠트를 보며 가능하니 할 수 있는만큼은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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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저는 주말부부로 지내왔었는데요. 지난 5월 초 아이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일단 살림을 합치고 보자 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주말부부가 다시 한 가정 살림을 하니 참 좋았습니다. 아이 역시 아빠와 함께 하니 너무 좋아합니다. 저 역시 홀아비 냄새도 안나고 말이지요. ^.^;;

그러나 모든 게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겠지요. 당장 출퇴근 문제가 가장 크게 닥쳐왔습니다.
현재 저희 집은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에 있고, 제가 다니는 곳은 부천시에 있는데요. 자가용을 이용해 고속도로를 타면 왕복 120km 이상이 나옵니다. 휴~기름값 부담이 상당하지요. 톨게이트 비용도 그렇구요.

그래서 결국 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마음 먹게 되었는데요.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꽤나 부담이 되었습니다. 일단 버스를 타고 나와 전철을 타고 왔다가 다시 한번 갈아타고, 전철에서 내리면 버스 또는 택시를 타거나 30분 이상을 걸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항상 차를 갖고 다니기에는 너무 부담이 되니 이용할 수 밖에요.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좋게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했더니 많이 좋아졌더군요. 특히, <환승할인> 이게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1호선 병점역에서 중동역까지 전철과 버스를 타고 보니 요금이 2천원 안팎 밖에 안들었습니다. 왕복이라 해봤자 5천원이 안 되더군요. 리터당 14-15km 를 가는 제 차로 계산해도 그 금액이 절반밖에 안 됩니다. 와~용돈 벌었지요! 아싸~

두번째는 지상파 DMB를 이용해 좋은 정보 프로도 볼 수 있고, 편히 잠을 잘 수도 있어 좋았습니다. 책을 볼 수도 있지요. 항상 저는 운전만 해서 늘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했었습니다. 대개 아빠들이 다 그렇지요. 모두 자고 있어도 혼자 계속 운전을 해야하고 말이죠. 그런데 피곤하다고 잠도 자고, 책도 보니 이거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세번째는 걷기를 통해 건강증진이 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전철역에서 차로 10분, 걸어서 30여분 거리에 있는데요. 저는 일부러 아침에 일찍 나와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오전에 길을 걸으니 얼마나 좋던지요. 입맛도 살고, 살도 쭉~쭉~빠져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출퇴근 시간에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다보니 많은 사람에 치여 약간 피곤한 감도 있습니다. 또 차로 다니는 것보다 30분이상 시간을 더 써야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이 사는 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데 그 맛이 있습니다. 또 30분정도 여유를 갖는다 해도 막상 보면 못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빠르게만 사는 세상을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며 내 자신을 더욱 추스릴 수가 있지요.


자, 이쯤되면 제가 제목에 넣은 B.M.W 가 자동차 회사 BMW 가 아님을 아시겠지요? 예, BUS, METRO, WALK 의 약자로 만든 B.M.W 였습니다. 기왕이면 좀 재밌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으니 말이죠. 그래서 얼마전 방송에서 들었던 이 용어를 생각해낸 것이었습니다. (제목이 좀 낚시성이였나요? ^.^;;)

음, 요즘도 10분만 걸어도 될 곳을 굳이 차를 갖고 다니는 분들도 꽤 되신다는 보도를 보게 되는데요. 제가 한달동안 B.M.W 를 이용해보니 참 좋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가 없을 때는 차를 타면 훨씬 편할 줄 알았는 데, 막상 차를 몰고다녀보니 대중교통이 정말 최고더군요. 

기왕에 차를 타실거면 최고급 B.M.W 를 한번 이용해 보시는 건 어떻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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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6시 10분이더군요.

잠깐 눈을 비비며 사진을 찍으니 그새 2분이 지나 6시 12분이 되었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고양이 발을 하며 조심조심 다녀왔지요.
그리고 오늘의 요리 재료를 꺼내왔습니다. 왼쪽부터 장인 어른께서 직접 농사지으신 딸기로
만든 딸기쨈, 식빵, 치즈, 머스타드 소스, 달걀, 닭가슴살입니다.
한번에 꺼내려고 두손이 고생을 했네요.



가스렌지의 "딱" 소리가 왜 이리도 크게 느껴지던지요.

한방에 점화시키고, 후라이팬 위에 빵을 올렸습니다.

노릇노릇 맛나게 구우려고 집중에 또 집중을!! ^.^



달걀도 부치고, 닭가슴살도 전자렌지에 데웠습니다.

달걀은 빵에 잘 맞을 수 있도록 최대한 모양을 내보았습니다.

닭가슴살은 마치 회를 뜨듯 심혈을 기울여 얇게 잘라내었구요.



저와 오늘 요리의 주인공 아내를 위한 두유입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24팩 한박스에 6천냥 주고 구입했습니다.

요즘은 저, 아내, 딸아이, 할머님까지 모두 열심히 두유를 마시고 있답니다.




제 요리의 맛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신 딸기쨈 하나만 있어도 이미 훌륭한 맛을 내기 때문이었지요. 
 




자, 딸기쨈을 잘 펴서 발라주고 그 위에 달걀과 치즈, 얇게 썬 닭가슴살을 올려주었습니다.




짜잔~아내를 위한 아침 요리가 끝났습니다!

어떤가요..먹을 만해 보이는가요? ^.^;;



요리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6시 30분 조금 넘었더라구요.
대략 30여분 정도 요리했던 것 같습니다.



'요리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즐거운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ㅠ.ㅠ;;

오늘은 요즘 마법에 걸려 피곤해하는 아내를 위해 준비한 아침이기에
아내가 더 잘 수 있도록 일부러 깨우지 않았습니다.



출근길 아내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을 위해 준비된 샌드위치를 보고 맛을 보았나 봅니다.


샌드위치 진짜 맛있다~

땡큐 자기~



라는 문자가 왔네요.

고맙긴요..겨우 이런 걸 가지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내를 위한 아침을 준비하고나니

아내의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아내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네요.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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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우리" 에 보냈던 6월호 원고가 나왔습니다. 얼마전까지 진행되었던 제 몸짱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번에 실린 걸 보니 본문 내용에 약간의 수정이 있었습니다. 지난 달에는 거의 100% 그대로 실렸는데 말이지요. 아무튼 웹진에 실린 글을 링크걸어 둡니다.(사진은 링크된 글에 올려져 있습니다)

클릭---> <그 남자의 몸짱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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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결혼해야 철이 든다?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5. 19. 16:15 Posted by 바람몰이

경기여성정보웹진 "우리" 에 처음으로 원고를 보냈습니다. 원제는 "야야~이번에는 제발 운동화 한켤레 사자" 였는데요. "남자는 결혼해야 철이 든다?" 수정되었더라구요. 

제가 이번에 맡은 새로운 코너는 <남자 이야기> 라는 코너입니다. 이곳이 본래 여성정보웹진이었던 곳이기에 이번에는 남자의 시각으로 본 세상과 인생을 통해 함께 공부하자는 취지가 있다하였습니다.

직접 원고를 올릴까 했는 데, 문제가 있어 그렇게는 안 되겠더군요. 그래서 화면을 띄우고, 링크를 걸어둡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클릭하셔서 읽어보시구요. 댓글도 달아주신다면..^.^;;

글제목 클릭--->  
<남자는 결혼해야 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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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지 않았던 처가 가는 길

빗줄기를 가르며 내려가는 길입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 였지만 뒷 좌석에 있는 아내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눈에는 더욱 굵어지는 빗줄기가 아내의 눈물처럼만 보였습니다. 지금은 장모님께서 다리를 다치신 소식을 듣고 시골에 내려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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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뜬금없긴 합니다만, 혹시 "농부병" 이란 단어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걸 손으로 해결하던 시절 오랜 시간 쪼그려 앉아 농사를 지어 무릎과 허리에 병이 생기는 농부들의 질환을 나타내는 말인데요. 

예, 지난 주말 저희는 오랜 시간 농사를 지으시고, 연세가 드심에 따라 퇴행성 관절염이 오신. 그리고 지난 주 차량에서 내리다 무릎에 충격이 와서 거동이 힘드신 장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했던 장모님의 부상과 제안

처가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워낙 긍정적이신 장모님은 웃고 계셨지만 걷기가 아예 불가능하여 바닥을 기어다니셔야 할 정도였습니다. 제 마음이 많이 불편해지고, 아파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러니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막내딸 아내는 오죽했을까요. 표현은 안 했지만 눈빛 하나하나에서 그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이제 세살된 딸아이가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줍니다. "할머니~" 하면서 장모님 품에 안기니 장모님의 미소가 더욱 활짝 핌을 보게 됩니다. 곰 세마리를 부르고, 바닥을 콩콩 뛰는 모습을 보며 온 가족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자칫 조금은 무거울 수 있었던 시간을 잘 넘기며 아내가 장모님의 치료에 대해 얘기를 꺼내었습니다.

우선 저희는 올 여름에 저희 집에서 쉬실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번 8월에 2년 계약으로 국민임대주택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올라오셔서 운동도 하고, 손녀 재롱도 보시면서 요양하시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저희와 함께 병원을 방문해보심이 어떻겠냐 말씀드렸습니다. 몇 가지 검사도 해보고, 만약 인공관절 수술을 하는 게 장모님의 노후를 위해 더욱 좋은 선택이라면 비용부담을 갖지 마시고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없으시던 장모님 

하지만 저희의 제안을 들으신 장모님께서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시골에 혼자 계실 장인 어른도 걸리고, 혹시나 저희 부부에게 부담이 될까 싶으신 듯 합니다. 예, 역시나 제 생각이 맞는지 장모님은 일단 침도 좀 맞고, 쉬다 보면 괜찮아 질 것이라 예전에도 그랬다 말씀하십니다. 
 
하하, 옆에서 이 얘기를 듣는 데 제가 괜히 뭔가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 "어머니~어머니~" 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왔던 저였지만 사위는 언제나 가장 어려운 손님이란 말도 있듯 제가 부담되어 선뜻 '그러자' 못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서 입니다. 당연히 여쭤보면 아니라 하시겠지만 제가 좀 켕기는 게 있는 건지 계속 마음이 걸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위도 아들이고, 장인 어른 장모님은 내 아버지, 어머니

어제 아내와 얘기해보니 다행이 장모님의 병세는 조금 나아지셨다 합니다. 진단 결과를 보니 퇴행성 관절염에 일시적인 충격이 가해져 신경이 놀란 것이라는 데요. 이대로 며칠 휴식을 취하며 계속 치료 받으시면 괜찮을 것이라 합니다. 제 마음도 좀 안심이 되었고, 다시 한번 장모님의 쾌유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또 하나의 바람이 남았습니다. 장모님께서 저를 처남처럼 농사지을 때 막 부려먹기도 하시고, 편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었습니다. "사위" 도 "아들" 이고, 장인 장모님은 제게 있어 또 하나의 "부모님" 이시니 말입니다.
 
하하, 이거 제가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거겠지요? 다음에는 좀 더 애교있게 장모님을 뵈어야 할까 봅니다. 

음..

이거 혹시 산적 같은 외모 때문에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요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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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정샘의 수학강사생활 일기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5. 15. 15:33 Posted by 바람몰이


저는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독립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20살부터 계속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학업을 진행해 왔었지요.

처음 시작했던 건 직장이라기보다 단순 아르바이트 였습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 전까지 짧게 초등학교 6학년 학생과 중 3 형제 과외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입학 후 호프집에서 시간당 2천냥씩 받으면서 열심히 땀흘리던 생각이 납니다. 이것도 대략 석달정도(한 학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태권도 사범을 했었습니다. 당시 제가 모시던 관장님은 문대성 선수를 기르셨던 국가대표 코치출신 여관장님이셨는데요. 저도 상당히 고생하며 지도했던 생각이 납니다. 이것도 약 석달정도 아르바이트로 했던 것 같네요. 그리고 그 다음에 들어간 곳이 바로 학원이였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죠.


나이 스물하나에 처음으로 분필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종의 보조강사처럼 원감님 밑에서 시작했더랬습니다. 당시 80만원을 받았는데요.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쉬지 않고 계속 수업을 하는 강도 높은 시간이 계속 되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원감님께서 제가 마음에 들어 키워주고 싶어 그랬다 하더군요. 그래서 기초부터 확실하게 쌓으라는 의미로 고된 강의 스케쥴을 짰었다 합니다.

이 때는 제가 전공하는 학문에 회의를 느껴 약 2년간 휴학을 했던 시기였는데요. 아무튼 이런 훈련과 원감님의 맨투맨 전수 생활을 약 1년 정도 하고 나니 나름 수업진행과 학원 운영에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원감님이 학원을 떠나신 후 저는 정식으로 제 교실을 갖고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지요.

학원에서 제 별명은 "꺽정이 선생님" 이였습니다. 제 외모 즉, 상당한 수염과 엄청난 털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습니다. 일단 제가 좀 독특한 외모를 갖고 있고, 나름 웃기는 면이 있다보니 아이들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학부모님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제 이름을 듣거나 소문을 듣고 오는 아이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또 1년의 시간이 흘렀지요.


그런데 이 때 저와 함께 근무하던 영어 선생님께서 학원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자연스레 승진을 하였고, 나이 스물셋에 수학과 주임이 되었습니다. 오호, 제게는 정말 둘도 없는 기회였지요. 바로 중등부를 신설해 졸업생을 그대로 흡수했고, 저와 함께 공부하던 학생들 지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근무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우리 나라에서 출판되는 모든 문제집을 풀어보며 공부했고, 각 종 교육기법과 노하우 습득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상담도 열심히 하고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근무했었지요. 그 결과 아이들의 성적도 괜찮았고, 학원도 두산동아에서 2년 연속 우수학원에 선정되게도 하였으며 저 개인적으로는 표창장도 받는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되고, 넘치면 흐르는 법. 너무나 무리한 강의와 과외 탓에 저는 어린 나이에 허리를 다치게 되었고, 추간판 탈출증 수술을 받게 되었지요. 또한 피로에 쪄든 몸과 메마른 정신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강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순간 이었습니다. 


이 때, 저를 잡아준 것은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학원에 가니 저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다시 시작하며 활력을 찾았고, 아이들의 웃음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녀석들을 보며 제 자신을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용기를 내게 되었지요. 새로운 도전을 하려 마음 먹었습니다.

복학을 하였던 것이지요. 이 때 학원은 제가 꾸려놓은 중등부가 운영되고 있었기에 저는 학교에서 신학을 전공으로, 교육학과 국제경제학을 부전공하며 모든 수업을 오후 세시 또는 세시 반 이전으로 맞추고,  바로 출근하여 초등 고학년과 중등부 학생을 지도하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발전하더군요. 현장에서의 노하우에 이론이 더해지니 더욱 탄탄해지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벌어놓은 돈을 모두 학비에 투자하여 제 손에는 한푼도 남은 게 없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제게는 아이들이 있었고, 학문함의 기쁨이 있었으니 말이지요.

이렇게 약 2년을 보냈습니다. 휴~정말 힘든 시간이었지요. 3분 카레에 밥을 비벼 먹다 입에 음식을 넣은채로 잠이 들어 온 몸에 카레를 묻혀 보지 않은 사람. 길을 걷다 졸아서 전신주에 헤딩하여 다쳐 보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보며 잘 이겨낼 수 있었지요. 제 자신의 의지로 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이들의 계속되는 지지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가장 큰 힘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생활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학원에서 강의를 하지는 않습니다. 늦깍이 군복무를 하며 7년간 근무하던 학원을 자연스레 그만 두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지요. (대신 지금은 다음 신지식 자녀교육 카테고리 엑스퍼트 활동을 하고, 블로그에 자녀교육에 관한 글을 쓰고 있지요) 

그래서 요즘은 예전에 지도했던 학생들이 저를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보람으로 삽니다. 초등학생 코흘리개들이 벌써 고교생이 되었고, 처음 과외하던 학생은 벌써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참 시간이 빠름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 강사를 시작하던 시절 적었던 글이 떠오릅니다. 원 제목이 <선생님이 되고 싶은 선생님> 이었고, 나중에 수정한게 <얘들아, 선생님은 이런 '선생님' 이 되고자 한단다> 였습니다. 참으로 순수하고, 열정 가득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늘 스승의 날인데요.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 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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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저는 수첩이란 게 없었습니다. 노트 역시 거의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 듣고, 그 자리에서 암기하고 뭐 그런 나름 "똑똑한" 편에 속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생활도 잠시. 나이 스물셋에 전신마취 후 허리 수술을 한번 했더니 사람이 요상하게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의학적 지식을 근거로 댈 순 없으나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 이 후부터 자꾸 '깜빡~깜빡~' 하는 습성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 때 부터 제 핸드폰과 노트는 항상 꽉~꽉~메모로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경이나 자동차 키 등 사소한 물품을 던져놓고 깜빡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일어나 다 씻고 난 후 안경을 찾는 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 짰더니..세상에 제가 안경을 쓰고 있던게 아닙니까..ㅠ.ㅜ;;;(실화)


이런 저에게도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제 작은 소지품을 잘 챙겨주었습니다. 제가 한참 운전을 하다 '아~맞다! 그거 놓고 왔다!' 라고 하면 항상 아내의 가방 안에 그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던 아내가 얼마 전부터 이상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고 난 후 부터 조금씩 변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 역시 자꾸 '깜빡~깜빡~'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출산은 꽤 고단한 편이었습니다. 대학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골반이 벌어지지 않았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많은 운동과 준비를 했었습니다. 출산 당일 역시 계속 운동을 하며 준비를 했었고, 하루종일 계속된 진통을 이겨냈더랬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결국 담당 의사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이야기 했고, 의사 역시 산모의 안위마저 걱정되던 상황이라 수술을 하고 말았을 정도 였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아내는 확실히 몸이 약해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개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며 이른바 '진기'를 소진하게 되지요. 그리고 많은 영양분이 빠져나가고, 그 동안 약해져 있던 몸에 본격적인 반응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이걸 제대로 관리 못해주면 평생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요. 산후조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수 있는 대목인데요. 저희 역시 아예 시골로 내려가 산후 조리도 하고, 나름 좋은 것도 많이 먹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출산 후 여성이 출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요즘은 저희 부부 서로가 서로의 물품을 챙겨줍니다. 차에 타면 서로 묻곤 하지요.

"자기 핸드폰 가져왔어?"
"어~내가 챙겼어"
"지갑은 내가 가방에 넣어 놨어"
"어~그럼 이제 출발할까?"
 "어~"
"건희야, 아빠 이제 간다 자~출발~"
"추발~"


어디선가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글을 읽었는데요. 요즘 많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 둘이 하나인 것만 못할때도 많겠지요. 허나 이같이 좋고, 나쁨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이 특히, 내가 하기 나름이고, 이를 어떻게 느끼느냐는 내가 받아들이기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부부끼리 행복하게 사는 거 별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먼저 챙겨주기 시작하다보면 어느 샌가 서로를 더 믿고, 서로에게 더 감사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지요.

하하, 오늘 저녁에는 무얼 챙겨줄 수 있을려나요~

퇴근 후가 기다려지는 수요일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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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때야말로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 일요일 밤부터 앓기 시작한 몸살에 저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습니다.

예전에
<주말부부 6개월 가족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끼다>를 포스팅 한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주말부부의 장단점을 적고, 나름의 각오를 다져보았는데요. 벌써 5개월이 거의 다 지난 지금도 저희는 여전히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때의 각오를 최대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 생활도 상당히 익숙해져서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허나 그 중 변화를 하나 꼽아보자면 그것은 딸아이가 점점 성장하고, 말하는 어휘 구사력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간단한 단어정도 구사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벌써 문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밤마다 아내와 딸아이를 바꿔가며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와는 이런 저런 일상도 나누고, 여러 가정일을 상의하기도 합니다. 딸아이와는 아무튼 뭔가 말을 하긴 하는 데, 이게 거의 외계어 수준이다보니 서로 자기 얘기만하다 끝이 나곤 합니다. ㅋ 그래도 이게 어딘가요. 이 녀석 정말 많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밤은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너무 아파 통화를 길게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와도 짧게 안부만 나눌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를 잠깐 바꿔 '엄마 말씀 잘 들으라' 한마디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그러는 겁니다.

"아빠, 안녀히 주무해효~사랑해효~"

 뒤에서 아내가 "건희야, 아빠 아야~하데. 아빠 힘내세요 해드려~" 라고 하니 녀석이

"아빠, 힘내애요~아빠 사랑해효~"

라고 합니다.

아, 이거..

이 한마디를 듣는 데 갑자기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겁니까..그 다음 월요일에도, 어제 화요일에도..그저 딸아이의 한마디를 들을 뿐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던지요..


"그래, 건희야~아빠 힘낼게~건희도 잘자! "

저는 20살부터 결혼 전까지 계속 혼자 살았습니다. 사실 당시 제 가족이라곤 제 여동생 정도뿐이어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혼자 아프고, 혼자 이겨내는 데는 상당히 내공이 쌓여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어린 딸아이와 통화를 하고 나니 어깨를 들썩이며 나도 모르게 훌쩍이게 되더군요. 또 며칠을 앓으면서도 딸아이를 생각하며 물도 더 마시고, 스스로 땀도 닦고, 몸도 깨끗하게 씻으려 애를 쓰게 되었습니다. 밤에는 최대한 잠을 푹~자려 노력해보고 말이지요.


아마 저희는 6월경 다시 살림을 합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떻게든 그렇게 되게 하려 합니다. 이 때는 주말부부 시작한지 1년이 되는 때이기도 하지만 점점 성장할 수록 아빠를 찾는 딸아이 때문에도 안 되겠고, 제가 너무 힘들어서 못살겠습니다. 요즘 며칠 앓고 나니 더욱 그런 마음이 확고해 집니다. 정말 사람은 좀 아파봐야 일상과 평범한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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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걸려온 할머님의 전화

어제 오후 갑자기 할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지요. 할머님 목소리가 너무 흥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님께 무슨 일인가 여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바로 저 제목입니다.


"야~애비야! 그 전화사기범이 잡혔단다!"

엥? 무슨 내용인지는 단번에 눈치챘으나, 또 다시 무슨 말씀인가 여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지난 달 저희 할머니께서 보이스피싱에 걸려 한 겨울 내내 힘들게 버셨던 돈을 사기당한 적이 있으신데요. 지금 이 범인이 잡힌건가 의아했던 겁니다.

할머님 말씀으로는 조금 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고, 돈을 얼마를 찾을지는 모르겠으나 범인을 잡았으니 내일 저와 함께 경찰서로 오시라 했다 합니다. 

아하! 아무튼 다행이긴 합니다만 '세상에 보이스피싱 사기꾼이 검거되다니..' 쉽게 믿기 힘들었습니다.

<관련글 : 할머니께서 보이스피싱에 당하셨습니다>


경찰서에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오늘 오전 할머님을 모시고 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담당 형사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았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사기꾼'이 검거된 건 아니었고, 할머님 돈을 송금했던 '통장주'를 찾았고, 돈이 살아있는 걸 확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사연인 즉슨 이렇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먼저, 할머님 돈이 송금되기 1시간 전에 또 다른 한 여성이 약 1천 3백여만원을 송금했었다 합니다. 그 후 이 분 또는 경찰서에서 바로 통장주에 대한 지급정지를 했고, 따라서 약 한시간 후 돈을 송금했던 할머님 돈은 인출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끝으로 그 통장주는 서울 동대문서에서 찾았고 말이지요. (담당 형사님께 확인해보니 이 통장주는 통장명의를 빌려주며 업자들에게 낚였던 직장인이었다 하더군요. 어쩌면 이 분도 이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천중부경찰서에서 매우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진은 중국 조직망 체계부터 검거과정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던 경찰관님의 메모 흔적이다. 너무 자세한 설명이 감사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자세한 수사기록을 보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현재 중앙 본 조직은 중국 또는 대만에 있다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돈 인출책을 보내는 데, 이들은 모두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라 하였습니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통장은 노숙자 명의를 이용하거나 형편이 어려워 신용등급조절을 원하거나 고수익을 준다는 광고에 속은 분들의 것이었습니다(저희는 두번째 케이스). 

자, 이제 이런 준비가 되면 중국에서 무작위로 전화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걸리면 이런 저런 각 종 레퍼토리를 동원해 순식간에 돈을 송금하게 하고, 이 돈을 약 5분안에 모조리 찾아버린다는 것이지요. 정말 대단한 기동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ㅡ.ㅡ^


피해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한다 해도

아마 할머님은 피해금 전액을 찾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 현행법으로 보면 남은 금액은 나만의 돈이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와 함께 법원의 처분에 따라 나눠야 한다 합니다. 하긴 사실 앞 피해자께서 지급정지를 빨리 하지 않으셨으면 어차피 모두 사라질 돈이었으니까요.

할머님께서도 이 점을 수긍하시었습니다. 이미 돈 문제는 부차적인게 되어 있던 거지요. 그 동안 마음 고생하셨던 걸 생각하면 아예 포기하고 있던 문제가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게 되자 그것 자체가 힘이 되셨던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참으로 오랜만에 웃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벌써 한달이 훌쩍 넘었으니 말이지요. 덩달아 제 기분도 좋습니다. 저도 오늘 이 아침 환하게 웃게 됩니다. 비가 내린다하여 날은 흐리지만 마음만은 너무 밝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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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집으로 비유하자면 부부는 집을 지탱하는 커다란 대들보와 같다 생각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집도 대들보가 부실하거나 무너지면 유지가 안되듯 가정 역시 부부 관계가 온전히 정립되어야만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강하고, 튼실한 접착제나 이음제를 첨가했다 할 수도 있겠지요. 왠만한 일들은 아이를 보며 참기도 하고, 또 아이때문에 웃으며 해결해 나가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정을 유지해주는 원천은 아닐 것입니다. 역시 가정은 부부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 위에서 저는 평소 갖고 있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제게 있어 딸아이는 늘 두번째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이가 예쁘고, 아이를 위해 모든 걸 바쳐도 제 중심의 첫번째는 반드시 아내가 있어야 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훗날 아이가 자랄수록 저는 이 원칙을 더 강조하며 아빠에게는 늘 엄마가 첫째이자 최고의 여자임을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때론 이런 제 마음과 달리 보이는 경우도 있는가 봅니다. 특히, 아내의 눈에는 더욱 그런가 봅니다. 요즘들어 가끔 '자기 나 사랑해?' 라거나 '자기는 건희만 있으면 되지?' 라는 아내의 질문을 받곤 합니다. 


예, 사실 많은 다른 아버지들처럼 저는 제 딸을 너무 사랑합니다. 이 녀석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습니다. 또 이 녀석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이 후- 물론 조부모님의 사랑을 풍족히 받아왔지만- 부모 없이 사는 설움과 상처..충분히..너무나도 충분히..느껴왔기 때문에 적어도 내 자식에게만큼은 이런 아픔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요즘 제 핸드폰에는 아내의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상당수가 딸아이의 사진입니다. 전화를 해도 아내와 제 얘기보다는 딸아이 얘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정말 요즘 제 삶은 딸아이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고 있는 게 맞나 봅니다.


하, 요즘 우리는 기묘한 삼각관계에 빠져버렸나 봅니다. 이거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런지요.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일까나요. 아니면 제가 뭔가 일을 하나 꾸며(?)서 아내의 마음을 녹여 봐야 할지요. 혹시 이거 저만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하하..

이거 참..
 
정말 머리가 찌끈거리게 고민되는 세찬 바람 부는 날의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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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난 번 운동하다 삐끗한 허리 재활 훈련을 위해 이틀에 한번꼴로 등산을 갑니다. 물론 등산이라 해야 그리 거창한 건 아니구요. 저희 집에서 조금 가면 나오는 성주산(하우고개) 약수터를 중심으로 한바퀴 돌고 오는 것입니다.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기는 너무 힘이 들고 해서 주로 퇴근 후에 가곤 하는데요. 야간 산행이라 비록 언덕 정도 규모의 산이지만 조심할 게 참 많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지요. 몸도 충분히 풀고 갑니다.
 

산에 오르니 참 좋았습니다. 밤에 TV를 보며 혼자 앉아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몸도 가벼워지고, 아픈 허리도 나아지고 말이지요. 날마다 약수를 떠가니 집에서 물을 끓일 필요도 없습니다~ㅋ


또 무엇보다 너무나도 고요한 그 적막함이 좋았습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 복잡하고, 빠르며 시끄럽게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숨소리까지 들리는 고요함 속에 있으니 마음을 다잡는 데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산에 올라 잠시 도심을 내려다 보면 더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어두운 산에서 보는 도심은 역시 참 시끄럽고, 바빠 보입니다. 자동차의 공명음이 하늘위에 떠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고, 시끄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환하기도 합니다.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사람의 눈은 어둠속에서 눈을 감고 쉬게 해주기도 해야하는 데, 하루종일 밝은 빛에서 부릅뜨고 살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고문할 때도 보면 밝은 빛에서 잠 못자고 계속 눈뜨게 하는 게 그렇게 힘들다 하지 않습니까.


때론 우리 삶의 호흡을 조금은 길게 가져가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한 때 유행했던 것처럼 조금 더 느리게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조금 더 조용히 살아도 괜찮을 겁니다. 시력에 문제를 주지 않는한 조명을 좀 더 끄고 살아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 삶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면 말이지요.  


산중턱에서 찍은 시내의 모습이다. 이 때 시간이 대략 8시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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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00 캐쉬백 포인트 적립을 해놓겠다 했으면서 안했기 때문입니다. 총각시절에는 그렇게 열심히 했는 데 말입니다. 그래서 빠른 시일안에 다녀와야겠다 맘 먹고 때를 보고 있었습니다. 

오호~그런데 엊그제 사무실에서 커피를 대량 구입하는 게 아닙니까. 바로 지금이다 싶었습니다. 문구용 칼을 들고 커피박스에 있는 캐쉬백 쿠폰을 모조리 오려왔지요. 운좋게 이번에는 보너스 포인트까지 있더군요. 모두 합해보니 약 3천포인트가 넘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유후~!! 당당하게 쿠폰을 모두 수거한 저는 드디어 어제 대형마트를 방문해 캐쉬백 적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왠 수염이 더부룩한 남자가 이걸 하는 게 낯선 광경이었나 봅니다. 사실 쿠폰을 붙이고, 바코드를 출력해 붙이는 데 약간 시간이 걸리는 데요. 바로 그 때 주변에서 힐끗힐끗 저를 쳐다보는 게 아닙니까. 뭐 대학시절부터 익숙하게 느끼던 시선이었지만 정말이지 쉽게 적응 안되는 시선이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다양한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이 글에서 그 원인까지 분석할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쉬움'은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각 각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나는 안 그렇다' 얘기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상당하니 말입니다.

물론 결혼 후 애를 낳고 기르다보니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으로 존재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게 "차이" 겠지요. 서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있고, 이것은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을테지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어야 양성간의 대화나 배려의 삶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굳이 각 각의 성역할을 고정 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게 모두에게 더 편하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보면 꼭 어딘가 한쪽은 더 희생을 강요당하게 되니 말이지요. 

영국드라마 <닥터후>를 보니 주인공 닥터는 꼭 여성 여행 동행자가 있더군요. 900살이나 된 시간의 제왕 닥터이지만 어떤 문제든 혼자서는 안되고, 반드시 여성 동행자와 함께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론 이들에게 마구 혼나기도 하고, 목숨을 빚지기도 하더군요. 또한 동시에 이 여성 동행자들도 혼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닥터와 함께 힘을 모을 때 그 잠재력이 발휘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결국 우리네 삶도 이와 비슷하단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나도 남성 혼자만-여성혼자만은 살수도 없고, 해결 못하는 문제도 참 많지요. 예, 우리는 좋은 가사 담당자나 바깥일 담당자를 "고용" 또는 "찾아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닐 겁니다. 

서로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

서로에게 인생과 삶을 더 배우기 위해.. 

서로를 통해 인생과 이 사회의 참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

바로 이 때문에 양성이 존재하고, 서로를 그리며 살아가는 게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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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만원이란 돈. 어떻게 보면 그리 큰 돈이 아닐 수 있습니다. 허나 1만원도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이 속에 할머니의 땀과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자식에게 부담주지 않기 위해 피땀 흘려 지난 겨울 내내 번 돈이었습니다. 그렇게 드시고 싶다던 함흥냉면 한 그릇도 참아가며 모으시던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전화한통에 모조리 잃고 말았습니다..


전화는 오후 세시쯤 왔다 합니다. 처음에는 전화국이라 하였답니다. 누군가 할머니 이름으로 전화를 개설해 수십여만원이 연체되었다는 거지요. 할머니께서 우린 그런 일 없다 부인하시자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경찰에 신고하여 할머니께 손해가 전혀 없도록 해드린다 했다 합니다.

잠시 후 경찰청이라며 전화가 왔습니다. 자신을 서울지방경찰청 강일구 형사라 소개했다 합니다. 그리고 아까 걸려왔던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그럼 이 일은 누군가 할머니 명의를 도용한 것이니 전혀 피해가 없도록 다 알아서 처리해주겠다 했다 합니다.

그러면서 물었답니다. 지금 현재 은행을 어디 어디 거래하느냐는 겁니다. 할머니께서 주로 거래하시는 새마을 금고에 잔액이 얼마 있는지 확인한 그 사기범은 전화를 끊지 말고 인출기까지 가라 했답니다. 인출기에서 그는 옆에 사람이 있으면 경찰일은 비밀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끊었다 다시 전화를 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덧1-다른 통장에 있는 돈과 지금 남아 있는 잔액까지 명의도용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했다 하는구요. 계좌보호조치를 해야한다는 거지요. 그렇게 인출기까지 유인했다합니다.


그리고는 또 혹시 지금 아들이나 주변 지인에게 삼백만원 정도 더 얻을 수 없겠냐 했다 합니다. 자신들이 수사를 하기 위해 필요하니 잠시 뺐다 다시 넣어주겠다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할머니께서 우린 월세방에서 살아서 그런 돈이 없다 하자 그럼 일단 그거라도 보내라 했다는 겁니다.


할머니께서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누가 할머니 이름으로 사고를 쳤다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가 했습니다. 그 때 저는 퇴근 후 병상에 있는 여동생에게 가 있었는데요.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용을 여쭤보았습니다. 위의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아뿔싸.........가슴이 철렁합니다............

혹시나 하는 맘에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예, 당연히 강일구 형사란 사람은 없지요. 전화받으신 경찰께서 경찰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십니다.

다시 할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당장 통장 잔액을 확인하시라 말씀드렸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말입니다. 잠시 후 제가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님을 받지 않으십니다......

두번세번을 다시 해도 받지 않으십니다.....

역시나.......

전형적인 보이스 피싱이었습니다............


집에 가보니 할머님께서는 울고 계셨습니다. 억울해서 어떻게 사냐...하십니다...지난 겨울 내내 힘들게 그렇지만 기쁘게 한푼 한푼 모으셨던 돈인데.....별거 안되는 돈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걸 보면 참 든든했었다 하시며 또 우십니다....작은 아버지와 통화를 하시며 또 우십니다.....그 옆에서 저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기는 왜 사기일까 생각해봅니다. 사기는 내가 사기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기에 사기이겠고, 걸리면 빠져나오지 못하기에 사기인가 봅니다. 할머니께서도 그러셨다 생각합니다. 평생 장사를 하시어 분별력도 좋으시고, 핸드폰을 해드린 3년전부터 모르는 번호는 받지 마시라,,놓친 전화도 다시 하지 마시라,,말씀드렸지만 이렇게 걸리니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찰쪽에서는 돈이 입금된 계좌 등 상대방과 관련된 정보를 은행에서 찾아서 방문신고해줄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예, 이제 경찰서로 갈 예정입니다. 부천의 경우는 보이스피싱 전담팀이 있더군요.

덧2-경찰서에서 얘기를 해보니 요즘은 돈을 인출할 때 범인을 많이 잡기도하고, 통장명의자 추적 등을 통한 검거사례와 축적 노하우가 많다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들 본세력은 중국 등 해외에 있기에 완전 검거는 어렵다하더군요. 당연히 보상도 어렵구요. 다만 통장명의자에게 소송을 걸어 보상 받을 수 있는 데, 요즘은 소장만 넣어도 거의 승소한다 합니다. 실제 이런 사례도 좀 있구요. 허나 이 역시 대포통장이거나 명의자도 속았던 경우가 많아 그리 현실적이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간 보았던 언론보도를 통해 생각컨대 이 돈은 수업료 냈다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다양한 방법으로 전화가 올지 모르니 말입니다. 

보이스피싱...일명 전화사기..

이거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내 부모님과 내게 걸려올지도 모릅니다.



P.S : 모두 경각심을 갖고 참고하시라 하여 여러 사례를 정리했습니다. 내 자녀나 등록금, 공과금 환불 등은 젊은 사람도 쉽게 낚일 수 있는 것이기에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기관문서까지 위조하는 데는 특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참고> 다양한 보이스피싱의 예

1)통신사라고 하면서 잠시 통화품질 테스트를 할 것이니 약 30분에서 1시간정도 핸드폰을 끄라 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전화하여 자식이 납치 또는 긴급 수술을 해야하니 돈을 보내라 한다.

2)전화국 등 공기관에서 전화하여 명의도용을 당해 경찰에 연락해주겠다 한다. 경찰이라며 전화하여 계좌보호조치를 해야한다며 인출기 앞으로 유인한다.

3)고객님 앞으로 등기나 소포가 왔는데 여러 차례 방문해도 만나지 못했으니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몇 번을 눌르라 한다. 그리고 카드가 왔다 하면서 이런 저런 주문을 한다.

4)팩스로 국가기관 문서를 위조하여 보낸다. 이 문서에 장관 직인까지 찍혀있는 등 치밀함을 보여 대개 넘어가게 된다. 반드시 먼저 확인해야 함(문서에 있는 번호가 아닌 기관에 직접 전화하여)

5)국제소포나 우편물이 왔는데, 본인 확인이 필요하다 하며 전화번호나 주민번호를 요구한다.

6)학교를 위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번에 등록금이 두번 납부 되어 계좌번호와 이름, 주민번호를 얘기하면 환급해주겠다 하는 것. 보험회사, 전화국, 인터넷 회사 등을 사칭해 중복인출이 된 요금을 환급해 주겠다 하기도 한다.

7)금감원이나 자산관리공사 등을 사칭하여 누군가 명의도용을 하거나 불법대출을 받았다며 이를 해결해드릴 테니 은행에 있는 돈을 잠시 다른 곳에 이체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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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는 30년 같이 길게만 느껴지던 너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결혼 3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휴가를 주었다 (☜클릭)하였지요. 제가 딸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 집에 가서 보니 식탁위에 왠 편지가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보낸 것이더군요.

편지 겉봉투를 보니 "건희 아빠 보시오~오늘의 미션봉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진이 좀 흐려서 그런데 분홍빛 바탕에 예쁜 집 그림이 있는 봉투였습니다.



봉투의 뒷면을 보니 예쁜 그러나 메세지가 있는 스티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마지막 "행복해" 에 새까만 "ㅇ"과 하트 표시가 있지요. 자세히 보니 원래 문구는 "너 때문에 올 한해 너무 행복했어"인데, 아내가 자신의 뜻을 전하려고 "행복행 " 로 바꾼 것이더군요.



내용을 열어보니 아내 특유의 둥글둥글한 귀여운 글씨로 두장이나 되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솔직한 마음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첫 휴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휴가 준 것에 대한 보람이 팍팍 들더군요.



편지를 읽으며 아내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그에 대한 표현도 짧게 해주었더군요. 또 한켠으로는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다음 문구때문에 그랬는 데요.

우선 불고기와 찌개가 있으니 데워서 먹고. 냉장고 윗칸에 반찬이 있어 꺼내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사놨어....(중략)...건희와 즐거운 식사시간 갖고. 설거지는 내가 아침에 해도충분하니깐 그냥 놔두고~건희 어제 목욕했으니 오늘은 그냥 손, 발, 세수만 하고 자도 될꺼야.  우유는 왼쪽 맨 끝 아래 싱크대 윗칸에 있어~1분만 살짝 돌려줘~

저에 대한 마음과 딸아이에 대한 걱정때문에 이렇게 자세하게 쓴 것이겠지만 어느 덧 그 순수하고, 맑던 막내 딸 아가씨를 소위 말하는 "아줌마"로 바꿔놓은 것 같아 그랬던 것입니다. 그냥 어제 하루쯤은 모든 걸 잊고 쉬었다 오기를 바랬는 데 말이지요..

아무튼 아내는 장문의 편지를 마치며 이런 표현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나도 근사한 휴가를 줄게. 기대해줘~사랑해요~정혁씨~감사해요~당신의 큰 사랑~

자, 이런 표현을 본 후 제 반응이 어땠을 것 같으십니까. 당연히 기분 짱~이었지요! 세상에 어느 남편이 이런 최고의 표현을 보면서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편지봉투에 있는 집 그림입니다. (핸드폰 카메라에 상처가 많아 좀 지저분하게 나오긴 했습니다만..실제로는 참 예쁘고, 따뜻해 보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 가정을 더욱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게 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보았습니다. 언덕위의 예쁜 집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부부의 마음 속에는 늘 이런 분홍빛 사랑이 살아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정과 애 때문에 웬수'와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인격을 알아가며, 더욱 설레는 사랑을 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행복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고,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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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결혼 생활이 주는 가르침>

대학 동기인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서로 사는 방식이 너무도 달랐던 터였다. 그러나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서로 불같이 뜨겁게 사랑을 했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며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었다.

우리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부터 정치, 경제, 사회에 이르는 토론을 하기도 했고, 우리의 비젼과 결혼생활 즉, 자녀교육부터 처가와 시댁 식구에 대한 이야기, 진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준비와 공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를 길러주신 할머님을 모시면서부터 이런 저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가정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지 않는 일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과 진행

할머니께서는 나를 막내 아들처럼 여기시어 잔소리가 유독 많으신 편이었다. 아내가 맡아야 할 고유 영역이 구분되지 않고, 어린 아들 키우듯 계속되는 간섭과 잔소리가 있었다.

이 때, 아내는 사실상 소외되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당연히 신혼의 단꿈을 꿔보지도 못한 아내는 이런 할머니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나이가 내가 26세, 아내가 25세였다. 솔직히 할머니와 마찰이 생길 때마다 모든 걸 이해하고, 맞춰드리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사실 같이 사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역시 문제가 많았다. 이 때 나는 공익요원으로 늦은 군복무를 막 시작했었다. 할머니는 물론 어린 딸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면서 동시에 군복무까지 수행해야 하는 터라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당시는 이래저래 도움의 손길도 있고,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먹고 살 만큼은 되었지만 아내와 할머니를 중재하기까지 여유도 없고,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다. 

문제의 누적과 극단에 이르게 된 싸움

당연히 계속해서 문제가 누적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연로하신 할머니와 다툴 수도 없고, 속상한 일을 내가 아니면 풀 수 없는 아내는 밤 늦게 돌아온 나를 붙잡고 할머니와 있었던 일을 말하곤 하였다. 

피곤하고, 지친 터에 여유도 없는 나는 이럴 때마다 아내가 할머니 욕을 한다 발끈하며 당신도 문제가 있다 양비론을 펴기 시작하였다. 해답 없는 매우 소모적인 그러나 서로의 감정에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내며 무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했던가. 미안하지만 이 말은 당시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서로에 대한 비아냥과 비난이 계속 되었다. 급기야 내가 집을 뛰쳐 나가거나 아내가 나가는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흥분하여 할머니께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심지어 종국에는 서로 헤어지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게도 되었다.

 이런 생활이 일년 넘게 계속되니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말이지 하루가 1년 같은 나날이 반복되었고, 지금보면 지난 3년이 마치 30년쯤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다시 찾은 비결

지금 우리는 다시 신혼초와 같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 할머니 역시 모시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서로 헤어짐까지 결심했던 극단적인 상황을 타개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 있었다. 약 6개월간 주말부부로 지내며 우린 왜 그 때 서로가 그런 말을 했는 지 각 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특히, 아내는 자신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 후 정신영역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고, 시할머니와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매우 깊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아내와 할머니 같은 외부에서 찾던 것에서 그것이 내게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마음수련을 시작하였다. "화"를 다스리는 훈련을 하고, 좀 더 친절하게 대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시작하였다.  서로 이런 노력을 약 6개월을 넘도록 계속하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에게 준 첫 휴가와 결혼생활의 의미

오늘 나는 결혼 3년만에 드디어 아내에게 첫 휴가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리 대단한 휴가를 주는 건 아니다. P블로그 사이트에서 리뷰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가 시사회에 당첨되었기에 아이와 가정살림은 내가 책임질테니 대학시절 단짝과 재밌게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늦게 와도 된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지난 시간동안 매일 같이 아내를 울리고, 힘들게 했던 날에 대한 반성이자, 변화된 우리 부부의 상징적인 첫 열매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제 이 첫열매를 시작으로 우린 더욱 풍성한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다. 지금 행복한 것처럼 앞으로도 행복하고, 지금 이 힘든 시간을 잘 풀어내며 온 것처럼 앞으로도 여러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통해서 사람을 배우고혼자만의 삶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것이 바로 결혼생활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인생의 가르침일 것이니 말이다.


대학 연애시절 찍었던 사진. 상당히 겉늙어 보이는 나와 달리 아내는 여전히 매우 어려보인다.

작년 여름 가족휴가 때 찍은 사진. 세식구 모두 초췌한 모습이다 ^.^;;

결혼 초 가족이 쇼핑나갔던 모습

결혼 초 갓난 딸아이를 봐주시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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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며칠 이상한 냄새와 소리가 난다 했습니다. 엊그제 늦은 시간까지 영화를 보고 양치를 하러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지 뭡니까. 손바닥만한 쥐 한마리가 싱크대와 가스렌지 배관을 타고 천장에 기어 올라가는 겁니다.

헉..어린 시절 생쥐를 친구 삼아 잠이 들곤 했던 저였지만 여전히 징그러운 건 어쩔 수 없더군요.
다음은 싱크대 바닥에서 발견한 쥐의 배설물입니다.


싱크대 구석으로 쌓여있는 쥐의 배설물이다. 집안에서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얼마전 주말부부로 살며 느꼈던 글을 올리기도 했었지요. 사실 그 전까지는 아내가 아기때문에 집안 위생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었지요. 저도 그랬구요.

그런데 제가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자연스레 양쪽 집 모두 예전에 신경 쓰던 것의 반도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고, 결국 지어진 지 약 24년된 할머님 집에서 쥐가 나오고 말았던 겁니다. (
사실 저희 할머님도 나름 신세대 감각을 지닌 분이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연세가 드셔서 그런지 예전만큼 집안 위생이 관리되지 않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아..이래서 제가 할머님 혼자 두고 집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또 나름 양쪽 집 모두 잘 한다 했지만 부족한 제 모습을 또 다시 보게 되었구요 ㅠ.ㅜ;;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또 다시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 할머님께서 쥐를 유인하는 먹이와 끈끈이 몇 개를 놓으셨더군요. 다음은 그 사진입니다.

할머니께서 쥐를 유인하는 먹이를 종이에 깔아두신 모습



쥐 끈끈이 몇 개가 펼쳐진 모습. 탈출하려 할 수록 몸이 조여드는 이것은 내가 볼 때는 가장 무서운 덫이다.



일단 할머님께서 두신 것이니 상황을 하루 이틀 두고 볼까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현재 자주 방문하는 쥐 선생을 잡는 다 해도 결국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시 다른 녀석이 들어올 것이기에 약간 회의적입니다. 


만약 정말 별 효과가 없다면 앞으로 장단기로 나눠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말이면 아내와 아이도 오기에 사실 마음이 좀 급한 편입니다.

먼저, 청결문제입니다. 쥐가 들어오는 건 따뜻함과 먹을 게 있기 때문이기에 좀 더 청결을 유지해야 겠다 싶습니다. 제가 더 해야죠 뭐. 일단 저 끈끈이들을 빼낸 후 락스 청소를 싹~할까 합니다.

두번째는 구멍 문제입니다. 사실 지금은 쥐가 어디서 들어오는 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입니다. 일단 의심되는 곳은 싱크대 및 하수구와 보일러실 배관 벽틈인데요. 청소 후 이 두 곳을 가볍게 "봉인" 해야겠습니다.

끝으로 마지막은 주인집과의 상의입니다. 좀 오래되긴 했어도 지난 1년 6개월 동안 잘 지낸 집이었기에 좋게 얘기해서 쥐가 들어오는 곳을 시멘트 처리 하든지 해야하겠습니다.


저는 쥐를 바퀴벌레, 파리 모기와 함께 '인류의 3대 공공의 적' 이라 여기는 데요. 요즘은 집안에 먹을 게 워낙 풍부해 "아파트"에서도 쥐가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가 가끔 있지요.

물론 쥐선생 퇴치에는 고양이가 최고이긴 합니다만 저희는 워낙 어린 딸아이 때문에 고양이를 키울 수도 없고, 또 키울 자신도 없네요.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쥐를 반쯤 잡아먹고 버리던 장면 ^.^;;을 딸 아이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지도 않구요. 

혹시 여러분은 쥐 선생 퇴치에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가요? 

있으시면 지혜 좀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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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취직과 함께 주말부부로 지낸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유독 빨리 지나간 듯 느껴진 올 한 해였지만 아내와 아이가 없는 집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흐른다. 텅빈 방에 혼자 누워 외로움과 벗하며 청하는 잠은 그리 반가운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새벽 두시나 되야 잠이 들게 되었다.


물론 주중에 한번, 주말에 한번 가며 최대한 자주 만나려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주 듣게 되는 소리도 몇 가지 생겼다.

먼저, 방에서 홀아비 냄새가 난다
는 것이다. 언젠가 여동생이 했던 말이다. 그나마 내 몸에서는 안난다 하니 다행이었다.(그 후 향기00을 사서 뿌려주고 있음)

두번째는 얼굴이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는 것이다. 물론 잠을 늦게 자서 피곤한 탓도 있겠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세번째는 일은 잘 한다
는 것이다. 혼자서 무얼 하겠는 가.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일을 하게 된다. 이미 해봤던 것도 여유 있게 생각하다보니 이래저래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치밀한 준비가 가능했다. 


물론 주말 부부로 지내다 보니 좋은 점도 있긴 하였다. 무엇보다 아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더 애틋한 마음이 들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확실히 사람은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내와 떨어져 살고 나니 그 동안 몰랐던 아내의 소중함이 많이 느껴진다. 밤 마다 피곤해 잠 못드는 나를 위해 안마를 해주고, 아침마다 잘 다녀오라 인사해주는 일상이 이젠 너무 특별해졌다.

또한 그 전에 우리가 다퉜던 일을 생각하며 '아..그래서 그 때 그랬나 보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는 식의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한마디를 해도 좀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해줘야 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아내가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운전해야 하는 터라 차에서 혼자 웃는 걸 연습해보기도 한다.

또한 딸아이와 많이 친하졌다는 것이다
. 주중에 가면 대개 8시나 되야 하는 데, 녀석은 그 때부터 나와 정신없이 놀려 한다. 주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잠을 자도 내 품에 안겨 자고, 밥도 내가 먹여 주는 걸 좋아한다. 기저귀도 굳이 아빠와 갈겠다고 한다. 나 역시 더욱 녀석이 사랑스럽고, 소중히 느껴진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커갈수록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더 느끼는 것이라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부녀가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해 가는 건 굳이 나쁘게만 볼 문제가 아니리라. 


아마도 우리 부부는 6개월 이상 더 주말 부부로 지내야 할 것 같다. 그 때까지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아내와 딸이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 같다.(필자는 부천, 아내와 딸은 오산에 거주) 내 몸도 피곤하고, 아이도 힘들고, 아내도 그립지만 누구나처럼 어쩔 수 없는 삶의 형편이란 것이 있다. 따라서 이 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게 잘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선택일 것이다.

나는 남은 6개월 동안 지금보다 아내를 더 이해하고, 공감해주려 노력하고 싶다. 또한 아이를 더욱 사랑하고 싶다. 끝으로 내 자신을 더욱 깊이 닦고 싶다. 그러면 힘든 시기일 수 있는 지금이 우리 가정의 더 행복한 내일을 위한 소중한 배움과 준비의 시간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처럼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가정의 사람들과 이 사회를 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내가 내 가족 사랑으로만 멈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역시 우리의 이 힘든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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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몰이
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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