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이 남자의 인생'에 해당되는 글 194건

  1. 2011.01.07 남편, 가족을 위해 저녁만찬을 준비하다. 4
  2. 2010.11.12 결혼 5년, 처음으로 해물뷔페에 가다 6
  3. 2010.10.11 음주에 뺑소니 친 사람 때문에 두 사람의... 14
  4. 2010.08.31 놀이터에서 중학생 세명을 혼냈습니다 5
  5. 2010.08.25 남자들이 집안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4가지 이유 18
  6. 2010.08.20 늘 혼자인 아빠, 그가 설 자리는 언제쯤 만들어질까? 14
  7. 2010.08.10 지난 10년, 무엇이 내 얼굴을 바꿔놓았는가 19
  8. 2010.07.24 10만원에 장인, 장모님까지 모시고 워터파크를 즐기는 방법 6
  9. 2010.06.29 결혼 생활에서 가장 두려운 5가지 12
  10. 2010.04.12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집에 홀로 있게 되니... 5
  11. 2010.02.28 아내의 생일, 남편은 울었습니다. 21
  12. 2010.01.20 나는 '잘 나가는 남자'일까?
  13. 2009.12.21 십오년만에 감기약을 먹었습니다. 6
  14. 2009.12.02 그 남자, 장난감에 질투하다! 1
  15. 2009.11.11 화성신문과 인터뷰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16. 2009.11.09 그림이 그려지는 이루마 콘서트에 다녀오다
  17. 2009.11.03 전업주부 남편, 지역신문과 인터뷰하다! 7
  18. 2009.11.03 남편은 교통정리 대장!
  19. 2009.09.30 추석 때 처가에서 점수따는 5단계 작전 5
  20. 2009.09.25 전업주부남편, 시민단체 활동가가 되다 9
  21. 2009.09.18 어느 전업주부 남편의 백일기록, 최종회 14
  22. 2009.09.17 어느 전업주부 남편의 백일기록, 육아편(세번째) 35
  23. 2009.09.16 어느 전업주부 남편의 백일기록, 두번째 21
  24. 2009.09.15 어느 전업주부 남편의 백일기록(1편) 52
  25. 2009.08.25 함께 마음농사 지으며 사는 게 결혼 아닐까. 4
  26. 2009.08.21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너를 두고 싶다
  27. 2009.07.28 둘째 임신에 "병원" 이 아닌 "보건소"를 찾은 이유 28
  28. 2009.07.21 수련회 다녀옵니다! 4
  29. 2009.07.21 남자 그리고 눈물(부제 : 남자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 1
  30. 2009.07.10 아내의 다이어트 외조-1.닭가슴살 미역국 10

저녁 시간, 가족을 위한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평소 가사분담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좀 단단히 마음 먹고 준비하려 하였습니다. 특별한 날이었던 건 아니였습니다. 퇴근하는 아내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짠~'해지면서 오늘 저녁을 맛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먼저 맛깔나게 갈치를 구웠습니다. 생선을 구울 때는 그냥 굽는 것보다 약간의 가루를 입혀주면 좋습니다. 그러면 비린내가 사라지기도 하고, 노릇노릇한 색깔을 내며 고소한 향내를 풍기기도 하지요. 어떤가요? 제법 그럴싸 해보이지요? 다행이 가족 모두 참 맛나게 먹어주네요. 딸아이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오늘의 국은 어묵국입니다. 날씨가 추울 때는 어묵 국물이 최고지요. 국물망에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한참 동안 국물을 내었습니다. 국물이 시원하도록 무와 파를 넣기도 하였지요. 국간장을 두세스푼 정도 샤악 뿌려주니 음~이 정도면 국물은 대성공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어묵을 넣어주었는데요. 아뿔싸! 아무리 끓여도 어묵 특유의 향내와 맛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알고보니 아내가 가장 싼 어묵을 사왔다고 합니다. 제가 먹어본 어묵 중 가장 맛이 없습니다....흑흑, 어묵국의 핵심인 어묵맛이 별로라 그냥 국물만 마시게 되었습니다 -_-;;


어묵국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바로 김치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모님표 김치'이죠. 저희 장모님께서 직접 재배하신 배추와 친환경 태양초 고춧가루를 이용해 만들어진 김치입니다. 맛이 기가 막힙니다. 글을 쓰면서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지요. 아~정말 좋은 데, 이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오늘의 후식은 딸기입니다. 이것 역시 장인 어른 내외께서 직접 재배하신 친환경 딸기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바로 따먹어도 될 정도지요. 당도 역시 기가 막힙니다. 장인 어른께서 일본까지 가셔서 친환경 수경재배 농법을 배워오셨지요. 하우스 내부에 꿀벌이 도는 것만 봐도 얼마나 깨끗한지 알 수 있습니다(꿀벌은 농약을 치면 바로 죽습니다).

여기서 딸기 세척법 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사진을 보면 모두 푸른 잎이 따여져 있는 것이 보이지요? 저는 딸기 세척시 항상 이파리를 따곤 합니다. 그 이유는 이파리 밑에 있는 이물질이 잘 씻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딸기를 씻을 때는 과도를 이용해 이파리를 따면서 흐르는 물에 헹궈주면 상당히 편리합니다. 하하, 오랜 자취 경험이 있는 남편의 살림노하우 정도라고 이해해 주세요 ^^

정리하며

가족을 위한 저녁을 준비하는 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남자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몸이 피곤할수도 있지만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것보다 이런 생산적인 "살림살이"를 하면 오히려 더욱 힘이 나게 됩니다. 그리 대단한 밥상을 차린 것도 아니지만 맛나게 먹어주는 가족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치게 되지요.

그리보면 사실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연봉 1억이나 2천만원이나 돈 없다 울상짓기는 늘 마찬가지. 이런 소소한 행복을 볼 줄 아는 눈이 나와 가족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기억하면 일상이 행복일 수 있겠지요.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오늘을 살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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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절입니다. 아마 만난지 백일쯤 되는 기념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신학교를 다니며 폐지를 주워 생활하시는 어르신을 섬기는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민중이란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뛰며 공부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날도 날이니 만큼 당시 여자친구이던 지금의 아내가 갑자기 수원역에 있던 M식당을 가자 하였습니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던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밥값이 8천원인 것입니다! 8천원은 어르신들이 하루 종일 리어카를 가득 채워 올 때나 받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지요.

저는 경악을 했습니다. 식당에 가서 밥까지 나왔기에 식사를 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이런 밥을 먹을 수 있는가' 라며 제가 매우 강하게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솔직히 "지랄"을 했다는 게 맞습니다). 결국 당시 여자친구이던 제 아내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당시 저는 이것이 전혀 미안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역시 저와 비슷한 공부를 했기에 철저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많이 나이브해졌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수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참 제가 심했고, 옹졸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열한 삶을 살던 시기이었기에 후회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아내에게 그런 것은 정말 잘못한 일 같습니다. 그래도 불타는 사랑을 했던 저희 커플은 그 일이 있고도 약 1년 후 쯤 저희 커플은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평등결혼식을 한복을 입고 진행했었다.


결혼을 하며 저는 다른 날은 몰라도 결혼 기념일 만큼은 좀 특별한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결혼 후 출산까지 하고 군 복무를 했던터라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내는 그런 저를 이해해 주었지만 저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어제는 결혼한지 5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요즘 다음 view와 오 마이 뉴스에 지속적으로 성범죄 시리즈를 연재하다보니 강의가 좀 들어오고 있어 여유가 생겼습니다. 저는 지난 날의 미안한 맘을 달랠 수 있도록 아내에게 이틀 전부터 뭘 먹고 싶은 지 아무거나 다 고르라 하였습니다. 다음 맛집 블로거인 아내는 정말 좋은 동탄 신도시의 맛집을 알아내더군요. 어떤 곳인지 궁금증을 갖고 벼락을 헤치며 달려가보았습니다.

아내가 선택한 식당은 해물뷔페였습니다. 1인당 16000원이었지요. 30년 동안 제가 저를 위해 돈을 내고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비싼 식당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해물뷔페 가보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돌잔치나 장인 어른내외께서 오셨을 때 등 뭔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만을 위해서 가본 적은 없었지요.

가보니 소문처럼 이것저것 괜찮았습니다. 서비스나 분위기 모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맛도 너무 좋았습니다. 제 옆에 있던 딸아이는 연방 '맛있다' '야호~'를 외쳐댔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원없이 먹었습니다. 식당 서비스나 분위기, 맛도 좋았지만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5년전과 달리 예쁜 두 딸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저를 들뜨고, 기쁘게 하였습니다.

두 딸아이는 우리 부부의 사랑이자 자랑이다.


가만보면 행복한 삶을 산다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물질의 양을 상대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며 "상대적 박탈감" 이란 걸 느끼곤 합니다. 이미 절대적으로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고, 가끔 특별하게 비싼 식당을 갈 수도 있는 데 늘 부족하다 느끼지요. 그러나 이를 행복의 척도로 삼게 된다면 늘 답답하고, 쫓기는 마음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양의 많은 지혜자들과 고전은 욕심을 비우고, 감사하며 사는 데에 행복의 비결이 있다고 얘기해 왔던 것일 겝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아이들에게 많은 용돈을 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내와 해물뷔페를 가는 것도 내년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서 수학하는 탓에 물질의 절대적 양도 많이 부족하겠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적은 용돈을 지혜롭게 쓰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말하며 삶을 긍정하고 싶습니다.

"그래, 너는 행복한 사람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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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자가 밉습니다.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이것쯤은 괜찮다 싶었겠지요. 하지만 그 오만함 때문에 두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습니다. 제 여동생 말입니다. 지난 주 음주운전자 때문에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치였던 또 다른 한 남성은 사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 새벽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입니다. 거의 한시가 다 되었는 데 갑자기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요.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요. 정말 여동생의 목소리는 매우 떨고 있었습니다. 일이 있어 장거리 운전을 했는 데, 자신이 사람을 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사람이 죽은 것 같다 하였습니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저 역시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일단 여동생을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일단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한참을 얘기하고, 사고 정황을 다시 한번 얘기해보도록 하였습니다. 사고가 난 곳이 워낙 시골이라 가로등 조차 없는 곳이기에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본인이 직접 사람을 친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미 도로에 쓰러져 있던 사람이었다더군요.

우선 제 동생이 1차 가해자가 아님을 알았기에 주변을 살피라 하였습니다. 사실 워낙 시골에 내려갔다 생긴 일이기에 주변에 가로등조차 없는 곳이라 별기대는 안했습니다만 정말 다행이 목격자가 한명 있었습니다! 그 분은 검정색 점퍼를 입고 신호등 옆에 서있었는 데, 왠 승용차가 사람을 치고 그대로 도주하기에 경찰에 신고하고 있었다 합니다.

휴...이 목격자가 없었다면 제 여동생이 100% 뒤집어 써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는 데, 정말 다행이었지요.

하지만 일단 사고는 사고이기에 사고 현장을 절대 뜨지 말고, 경찰이 올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여동생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아까 있었던 상황을 그대로 진술하였다 합니다.

새벽 3-4시쯤 되었을까요. 제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는 데, 여동생에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운전자가 잡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음주운전 단속을 구간구간별로 하고 있었는 데, 신고가 들어갔던 순간 그 차량이 딱 걸렸다는 거지요! 그 사람을 잡고 보니 완전히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합니다. 경찰서에서도 그냥 쓰러지더라더군요.

음주운전에 뺑소니라....

하....

참으로 허탈했습니다....

한 사람의 오만함이 한 생명을 앗아갔고, 한 사람의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여동생을 만나러 시골에 제가 직접 내려갔습니다. 사고 현장을 보니 왕복 4차선의 도로였습니다. 가로등도 없이 신호등과 횡단보도만 있던 곳이더군요. 여동생은 파란 불을 보고 그냥 가고 있던 길이라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실제 경찰에서도 불가항력적이었던 점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여동생의 마음을 다시 한번 안정시키고, 앞으로 사고처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 녀석, 많이 힘들어하더군요. 운전을 그렇게 잘 하던 녀석이 아예 차에 타기조차 싫어했습니다. 얼굴은 완전히 반쪽이 되었구요....정말 보는 것조차 힘든....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음주운전은 '죄'입니다. 나 자신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송두리째 빼앗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뺑소니범은 반드시 가중처벌 또는 엄중처벌 해야할 것입니다. 이번 사고에서도 뺑소니를 하지 않고 구급차를 부르며 사고 수습을 먼저하고 있었다면 제 여동생은 사건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사고 피해자 역시 길에 방치되지 않을 수 있었겠지요...

사망자의 영혼에 안식이 있기를...

그 가족의 상처에 위로가 더하기를...

제 여동생의 맘에 생긴 상처가 하루속히 씻기기를....

간절히..간절히...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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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딸아이와 함께 목욕을 하고 나면 그냥 자리 깔고 누웠지요. 그런데 어제는 좀 이상했습니다. 왠일인지 캄캄하면 밖에 안나가는 딸아이도 그렇고, 저도 바람을 쐬고 싶었습니다. 딸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건희야, 건희 목욕하고, 아빠랑 그네 한번 타고올까?"

딸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해졌습니다. 당연히 좋다고 했지요. 낮에는 언니들에게 치여 쉽게 타지 못하는 그네이기에 아빠와 함께 실컷 타고 싶었던 겁니다.

놀이터에 가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비가 오겠다는 예보와 달리 그저 시원하고, 좋기만 하였습니다. 딸아이와 함께 그네를 타며 놀았지요. 그 때, 저쪽에서 중학생 세명이 걸어오기 시작하는 게 보였습니다.

이 친구들은 여학생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 누구가 예쁘네 좋네 마네 하며 사귀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욕설이 반을 차지했지요. 그래도 너무 거슬리거나 크지 않게 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았지요. 그런데 우리 부녀가 그네를 놓고, 미끄럼틀로 가기 시작할 때부터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그네를 타고 있던 딸아이 모습



이 학생들은 그네를 향했습니다. 잠깐 자기들끼리 욕을 하며 타기 시작하더니 그네를 뒤집어 올리는 것입니다. 기둥에 그네줄이 엮이기 시작하자 그네는 매우 높이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줄이 짧아지면서 말이죠. 제 눈에 많이 거슬렸습니다. 어린 애들이 타고 노는 것이고, 공공시설이 훼손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 하려고 쳐다보았습니다. 막 말이 나오려던 찰나 딸아이가 얘기했습니다.

"아빠~건희 쉬마려~"

하하, 일단 한번 접어야 했습니다. 딸아이의 쉬를 길거리에다 할 수는 없었지요. 관리사무소까지 갔습니다.


평소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 딸아이 모습

화장실을 다녀오니 녀석들은 여전히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네를 기둥 위로 돌려 넘기느라 여전히 시끄러웠습니다. 그 욕하는 것도 굉장히 거슬리고 말이죠. 마침 딸아이가 벤치에 앉아 저에게 그럽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말이죠.


"아빠, 저 오빠들이 그네 망가뜨리고 있어"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들에게 얘기했습니다.

"그네 원상태로 돌려놓아라"

세명의 학생 중 둘이 슬슬 빠지기 시작합니다. 가장 약한 애 하나만 남기고 말이죠. 순간 화가 솟아올랐습니다.

"거기서! 이거 똑바로 안해놓으면 집에 못갈줄 알아!"

지난 10여년간 학생들 지도만 해왔습니다. 태권도 4단입니다. 저는 목소리가 꽤 나오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게 좀 많이 컸나 봅니다. 순간 단지내에 메아리가 치더군요(순간 저도 좀 당황..^^;;) 아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제게 왔습니다. 그 아이들을 맘에 안들어했지만 말 못하고 그냥 보기만하던 어른들이 오더군요.

너무 많은 어른이 와서 아이들이 창피하지 싶었습니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우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경비 아저씨와 사다리를 놓고, 아이들이 올라가서 그네를 원상복귀 시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거지만 어른들이 집단적으로 아이들을 욕하는 것도 안좋다 싶었던 것입니다.

그네 복구가 끝나고 가볍게 타일렀습니다. 저희 단지에 사는 아이들이더군요. 본래 성격 자체가 나쁜 애들은 아니였습니다. 표정을 보니 다시는 안 그럴 것 같긴 한데..글쎄요 어떨런지...

집에 돌아오며 여러 모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청소년들이 잘못하는 걸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어른들...또 이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괴팍해진 아이들...입에 욕을 달고 살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또 이 아이들을 방치하는 부모들...

제 아이부터 예의있고, 바른 아이로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교육하는 아이들부터 "개념" 있는 애들로 키워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야만하고, 삶의 형편때문에 방치되는 아이들을 위해 두눈 똑바로 뜨고 살겠다 다짐했습니다. 이 다짐이 이 아이들을 온전히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관련글>요즘 조직폭력배의 나이가 어려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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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미역국에 떡갈비였습니다. 미역국은 아내가 어제 끓여준 것이고, 떡갈비는 오늘 제가 했습니다. 고기를 다진 것까지는 아니구요. 좋은 재료를 구해서 맛나게 굽는 것 정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설거지까지 완료!

그런데 설거지를 하는 데 문득 참 재미난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남편들이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이유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참 그렇지요. 오랜만에 큰 맘 먹고(?) 요리며 설거지까지 완벽하게 한 것 같은 데, 꼭 나중에 보면 말이 나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


1.꼭 티를 낸다

가만보면 집안일을 자주 안하는 남편일 수록 티를 냅니다. 뭐 내가 맘만 먹으면 잘 하는 데 한번 해줘버릇하면 고마운 줄을 모른다나 어쩐다나...또는 원래 고수는 함부로 나서는 게 아니라나...ㅋ

사실 저도 여기서 그리 자유롭진 않은데요 ^^;; 살림을 그렇게 하면서도 아직도 이런 맘이 듭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건데, 내가 특별히 수고를 하고 있다...는 식의 사고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ㅠ.ㅜ;;

만화 "짱"의 한장면을 수정, 편집.



2.뒷정리가 깔끔하지 못하다

이게 참 문제입니다. 일단 일을 벌려놓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뒷 정리까지 했다는 모습을 보면 시원치가 않습니다. 그러니 꼭 아내들이 다시 뒷정리를 싹~다시 하게 되지요. 말하자면 일을 두번 하게 한다는 얘기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군대서는 그렇게 각을 잡던 사람도 살림만 하면 그런 것 같습니다. 평소에 손이 익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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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맞벌이 가정조차 가사분담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뜻 잘 이해가 안되지요? 예, 그렇습니다. 실제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해보면 대부분의 부부가 당연한 얘기를 한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지요. 서울여성가족재단의 보고서를 보면 아내의 경우 남편보다 직장과 집안에서의 노동시간을 합한 결과 최소 1시간 38분 이상 많은 것으로 나오더군요. 즉, 여전히 가사는 여성의 영역이란 생각이 지배적이고, 남편의 가사분담에 지속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4.꼭 하라는 것만 한다

설거지를 해달라하면 정말 설거지만 합니다. 설거지를 하면 자연스레 씽크대도 닦고, 가스렌지 등에 묻은 오물도 함께 처리해줘야 하는 데, 정말 설거지만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스갯소리 하나 할까요? 제 아내가 들려준 얘기인데요. 어느 가정에서 부인이 남편에게 애를 좀 봐달라 했다 합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자신 있게 알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막 울더랍니다. 알고보니 정말 아기를 보고만 있더란 것이죠 ^^;;


                         영화 <아더와 미니모이>를 보면 수백살 먹은 "어른 아이"가 많이도 나온다.

정리하며

평소에 어떻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평소에 잘 안하다 하려면 손에 익숙치가 않지요. 그러니 뭔가 허술해 보이게 됩니다. 어차피 서로 맞벌이 하느라 똑같이 힘든 요즘입니다. 서로 가사를 함께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겠지요.

다만 바람이 하나 있다면, 아내분들께서도 남편의 허술함을 이해해주시면 합니다. 우리는 참 이런 데 익숙치 않은 문화에서 성장했습니다. 어수룩한게 당연하다는 거지요. 하나씩 하나씩 나아지고, 변해가는 것이니 기왕이면 좋은 말로 격려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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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잘 꿈도 꾸지 않는 저인데, 악몽을 꾸었습니다. 너무나도 내용이 선명합니다. 새벽녘에는 이게 더 심했지요. 그래서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니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몸에 식은 땀이 가득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옆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둘째를 낳고, 폭염이 가득했던 올 여름 저는 혼자 자고 있던 터였습니다. 폭염으로
요즘 아내와 두 딸아이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난감했습니다. 제가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던 것입니다. 마음이 너무 뒤숭숭해 아이들과 아내 곁에서 자려했는 데, 이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물을 한잔 마셨습니다. 아이들이 깰까 싶어 불도 끄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셨습니다. 그러고보니 괜히 제 자신이 청승맞아 보였습니다. 사실 가족을 위한 배려로 그 동안 계속 이렇게 해왔던 건데, 가족과 함께 잠 잘 자리조차 없다는 생각을 하니 그렇더군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많은 아버지들

아마 이 땅의 많은 아빠들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빠들은 늘 혼자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서야할지 그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켜내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아이들이 있고, 나 하나만 믿고 살아온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만 이런 저런 얘기도 듣다보면 때론 너무하다 싶은 남자들도 있지요. 요즘 언론보도에 자주 오르내린 인면수심의 아버지 즉, 성매매나 성폭력을 자녀에게 가한 경우를 보면 같은 남자지만 치가 떨립니다. 또 아내의 외로움도 이해가 되지요. 왜 이렇게 우울증에 빠지는 여성이 늘어나고, 처음과 달리 변해버렸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은 자신을 뒤로한채 가족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이른바 '노동유연성'이란 허울좋은 미명아래 어느 날 갑자기 명퇴 당할지 모르는 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서. 날로 더해가는 성범죄로부터 내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렇게 아버지는 오늘도 긴장의 끈을 바짝 잡고 살아갑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성역할에 대한 기대치도 변해야

음, 갑자기 조금 쌩뚱맞아 보이긴 하지만 저는 이렇게 남성에게 짊어지우는 여러 무게가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당연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게 역시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게 너무도 가혹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무게가 그렇다것입니다. 
 
과거부터 계속해서 규정된 이런 관념이 21세기 우리 사회까지 지배하게 된다면 우리는 멋진 정장에 짚신을 신고 다니는 것과 같은 꼴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버지가 설자리 역시 갈 수록 좁아지겠지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와 초단위로 변해가는 시대이니 말입니다. 이런 식이면 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외롭고 힘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양성평등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양성에 대한 성역할과 기대치, 그간의 고정관념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의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이걸 어떻게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리하며

아내도 제가 혼자 자는 게 내심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왜 혼자 자고 그러냐 그러네요. 오늘부터는 같이 자자고 말이지요. 하하, 하지만 오늘도 저는 아마 혼자 작은 방에서 자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을 위해 제가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이 여기까지 입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시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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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잘 생긴 편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썩 좋은 인상도 아닙니다. 확실히 저는 타고난 인상 자체가 강했습니다. 짙은 눈썹과 엄청난 수염..ㅠ.ㅜ;; 어릴 적에는 속눈썹도 길고, 날씬해서 참 예뻤다하는 데,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는 전설과 같은 얘기이지요.

그러나 타고난 것만이 제 인상을 결정짓는 건 아니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살아온 남들과 조금은 다른 삶의 환경은 제 인상도 다르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제 나이 다섯에 제 부모님이 헤어지시는 과정을 모두 보았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가보니 허여멀건한 서울놈이 맘에 안드는가 봅니다. 참 무던히도 친구들에게 맞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복수심에 불타 태권도를 했고, 나름 소질이 있던 저는 조부모님 모르게 싸움 좀 하고 살았습니다.

또 인생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울고 있는 어린 여동생을 보면서, 빨간 대야에 생선을 담아 파시고, 500원짜리 삯바느질로 저를 키우시기 위해 고생하시던 조부모님을 보는 것, 또 이렇게 '버림'받은 나를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겐 '악'밖에 없었나 봅니다. 공부도 잘 했지만 이것 역시 조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악으로 잘 했던 것이었습니다. 싸움도 잘 했지만 이것역시 지기 싫어 했던 것이었습니다. 모범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이것 역시 무시당하기 싫어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악'이 제 사춘기를 지배하였습니다.

'악'으로 사는 삶은 대학시절도 계속 되었습니다. 제 나이 19살에 독립을 했습니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많아서 둘다 잘 하고 싶었지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장에서도 상당히 인정받고, 대학에서도 과수석을 다투는 정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니 제 인상이 장난 아니였습니다. 지금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약 10년전 찍었던 면허증 사진입니다. 이번에 면허갱신을 하면서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스캔으로 받아 두었지요.

어떤가요. 인상이 장난 아니지요? 물론 화질도 좀 떨어지고, 피부색도 좀 검게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이 기본적으로 약 10도쯤 올라가 있지요. 뭔가 잡아먹을 듯한 눈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좀 슬퍼보이지요.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모습입니다. 예, 이 때는 한창 마음속에 적대감과 불만, 우울과 슬픔이 가득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자, 이건 얼마 전 면허갱신을 위해 찍었던 사진입니다. 어떤가요? 저는 제 자신을 보면서 좀 더 부드러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또 보다 편안해 보이고 말이지요.

예, 요즘의 저는 참 편안하고, 부드러워 졌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상당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확실히 저는 지난 10년 동안 인생이 많이 변한 케이스입니다.

제 인생이 변한 계기는 대략 네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아내와의 연애이지요. 수업시간에 하도 비판을 많이 해서 상처만 주던 제가 사랑을 얘기할 줄은 아무도 몰랐지요. 아내와의 연애는 그 사람의 맘을 헤아려 주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역시 사랑은 위대한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우리 딸 건희의 탄생입니다. 건희를 처음 안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녹아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이 작은 녀석을 보며 눈물이 나왔던 그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지요. 그 후 녀석과 함께 즐겁게 놀면서 저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신학공부였습니다. 신학공부를 하며 제가 깨달은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자아와 욕심을 통해 많은 문제가 비롯되고 있음을 깨달으며 저는 물질을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니 얼마나 편안하던지요. 저희 부부는 그저 "일용할"만큼의 양식만 취하며 평생을 살기로 하였습니다.

끝으로 네번째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블로그는 단순히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기 위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제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요.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휴~시간이 어찌나 빠른지요. 시골에서 복수의 칼을 갈던 한 아이가 이렇게 자라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남은 인생을 더 어렵고, 가난한 이와 함께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글을 통해 인생을 함께 나누는 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또 다가올 10년 후가 기대됩니다. 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런지요. 그 때도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며 한바탕 웃고,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통해 여러 분들이 힘을 얻고, 위로를 얻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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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를 보니 여름 휴가 비용으로 45만원대라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휴~상당하지요. 부담이 되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여름 휴가를 보내지 않으면 뭔가 섭섭하지요. 어딘가를 다녀와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푹~쉬면서도 저렴하게. 그러면서 아이들도 만족하고, 나도 즐거울 수 있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또 여름 휴가지의 거리가 부담스럽지 않느냐 역시 고민해봐야 합니다.

저희 역시 이런 고민을 하였지요. 더욱이 올해는 여러모로 형편이 어려워져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오랜논의 끝에 올해 여름저희 부부가 선택한 곳은 피로도 풀 수 있고, 아이들도 즐거워 할 수 있는 "워터파크" 였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가기로 했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리솜 스파캐슬이 괜찮았습니다. 선택의 이
  유
는 세가지였는데요. 
 
  우선 주변에서 워터파크 추천이 있었습니다. 당일치기 여름
  휴가지로 괜찮다더군요  (http://www.resom.co.kr/spa)

  두번째는 거리의 이점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서해안 고속도로
  를 타고 홍성 ic로 나오면 금방인데요. 수도권에서는 대전-당진
  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상당히 편리합니다.

  세번째는 가격의 이점인데요. 충남도민 할인과 TTL할인이 40%, 신용카드 할인, 초청장 등을 통해 아주 저렴하게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스파동으로 이동하는 길에 짱구 그림이 있더군요. 딸아이가 "짱구다~"하면서 좋아합니다. 짜식... 짱구처럼은 되지 말아다오~ㅋㅋ

때마침 어린이집에서도 놀러왔더군요.
내려가면서 몇살이냐고 물어봤더니 4살이랍니다. '요녀석들~ 물좀 먹겠는데~'하며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지하주차장에서 입장하기까지 계단이 너무 많더군요. 무릎이 불편하신 장모님이 힘들어하셨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입장권을 받았습니다. 딸아이는 소인으로 skt할인 받을려고 했는데, 본인이 아니라서 할인 받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신용카드 20%할인을 받았습니다. 표소 앞에 모형집이 있었습니다. 참 예쁘죠? 딸아이가 이것을 보고 '옛날집'이라고 알려주네요 ^^ 

 

입장권을 주면 키를 줍니다. 스파키는 신발보관함과 사우나안에 의류보관함을 열수 있고, 먹을 것이나, 구명조끼, 수영모등을 사는데 이용합니다. 그리고 나올 때 한꺼번에 계산하지요. 워터 파크가 처음인 저로서는 상당히 편리하게 느껴졌습니다. 수영복과 수영모자는 필수이고, 여성의 경우 비치원피스를 걸쳐도 되더군요. 

 신발장의 모습입니다. 무슨 은행금고같은 느낌이 들지요? 

 아래로 내려가면 사우나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아내와 눈물을 훔치며 신파극을 찍었네요.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도 이곳에서만큼은 반드시 이별을 경험해야 합니다 ㅋㅋㅋㅋ 

 사우나에서 나오면 바로 파라원이 나옵니다. 파라원은 바데풀, 유러피안 스파등 다양한 스파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인데요. 바데풀 주위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수심이 얕은 키디풀과 유스풀이 있었습니다. 키디풀은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하구요. 안전요원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딸 건희는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서 풍덩~! 들어오자마자 물을 먹었네요 ㅋ

 첫번째 코스 바데풀입니다. 유럽식 수(水)치료 마사지 시스템이 도입되었다는데요. 경락에 따라 다양한 수압마사지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11종 29가지) 저는 이곳에서 거의 두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온천수가 아주 편안하더라구요.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위 사진에 있는 애는 저희 둘째인데요. 할머니 품에 안겨서 잠깐 발만 담궜다가 도로 나가는 불상사(?)가 있더랬습니다. 안전요원들의 철저한 안전관리가 오히려 더 맘에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하하, 위 사진에 저와 딸아이가 있네요. 아내가 찍어주었습니다. 어휴~무슨 살이 이렇게도 쪘는지..예전에 몸짱 프로젝트 한게 "폭풍요요"의 아픔을 겪고 말았습니다.ㅠ.ㅜ;;

아무튼
 써니레이도 딸아이와 함께 튜브를 타고 쭉~ 돌아왔습니다. 재밌더군요. 딸아이에게 튜브 사용법과 수영을 가르치는 게 이런 재미가 있는 줄 몰랐네요.  마스터블라스터, 튜브슬라이더, 스피드슬라이드는 짜릿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는 데, 딸아이가 있어 아쉽게도 타지 못했네요. 

 

 위로 올라가면 오감원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오색오감의 테마탕이 있다는 것입니다. 째즈음악이 나오는 째즈탕,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래식탕, 국악이 나오는 가야금탕, 연인들이 은밀히 즐길 수 있는 연인탕이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오른쪽 사진이 연인탕이였는데요. 정말로 연인들이 있더라구요 ^^;; 

 파도풀 옆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키디풀이 또 있었습니다. 버섯분수와 개구리 미끄럼틀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더군요. 가운데 제가 폼을 잡고 서있지요 ㅋㅋ 건희는 엄마를 튜브에 태워놓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놀았습니다. 

 이곳은 제가 가장 재미나게 즐길 수 있었던 워터래이의 토렌트리버입니다. 파도풀이라고 하는데. 정말 정말 재미있더군요.

저는 너무 재미있어서 3번이나 타고 아쉬워서 또 타고 싶었던 곳입니다.
한 두어번 물도 먹었는 데, 이런데는 물을 좀 먹어줘야 제 맛인 것 같습니다 ㅋㅋ 

 

 해미원이란 곳을 갔습니다. 들어가면 음료와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아쿠아탕과 동굴탕, 물레방아탕, 사우나, 히노끼탕, 닥터피쉬탕등이 있더군요. 신나게 놀고 잠시 쉬어가는 코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인, 장모님께서도 여유를 즐기시는 모습이 보이지요. 편안했습니다. 

 

 파라원 2층에 가니 사랑채라는 곳이 있었는데요. 한바탕 놀고 나서 이곳에 오니 참 편안하더군요. 목침을 베고 잘수도 있고, 산소방도 있었습니다. 정글짐의 경우는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습니다. 건희 이 녀석도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피시방도 있긴한데 요금을 따로 지불하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수유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게 참 좋더군요. 아무부담 없이 편안하고, 조용하게 수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저렴하게 휴가를 보낸 세가지 비결

음, 이곳에서 어른 4명에 아이 2명이 즐겼는데요. 비용을 모두 합쳐 10만원정도 들었습니다. 물론 각 자 쓰기 나름이겠습니다만 저희는 초청장 몇장과 구매한 입장권, 음식비용 등을 모두 합쳐 이렇게 저렴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 나름의 비결을 소개하자면..

우선, 음식 조절을 해야 합니다. 음료수는 집에서 가져갔습니다. 안에서 먹는 음식은 간단히 먹고(안에서는 비쌉니다), 저녁에 밖으로 나와 고기를 먹으며 즐겼습니다. 두번째로 초청장이나 이벤트에 응모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희 역시 이 방식으로 초청장을 얻었지요. 세번째로 각 종 할인을 다 활용해줘야 합니다. 저희는 충남도민 할인과 신용카드 할인을 이용했습니다.

오랫만에 우리가족이 총출동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시간가는 줄도 몰랐네요.
오전11시경에 들어가서 8시가 되어서 나왔으니 제대로 본전 뽑은 거지요~ㅎㅎㅎ 아무쪼록 독자님께서도 여러 아이디어를 통해 저렴하고, 즐거운 휴가 즐기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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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한 환상은 있어야 됩니다. 앞으로 수십년을 살게 될 삶인 데,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에 대한 꿈이 있어야지요. 저희 부부는 이를 위해 참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끊임 없이 대화하며 준비하였지요. 그리고  그 성과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인생관이나 자녀교육, 양쪽 집안에 대한 의견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 다섯가지만 골라서 함께 마음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카드, 캐피탈 회사의 압박

경제적인 부분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살림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지출해야하는 곳이 너무도 많지요. 예전에 차량 할부금 결제일을 한번 놓친 적이 있습니다. 깜빡 한거지요. 그랬더니 세상에 그 다음 날부터 엄청난 전화가 오더군요. 그리고 바로 카드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휴~할부금을 곧바로 냈지만 카드는 일주일이나 있어야 회복되어 참으로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지요. 제가 말씀드렸듯 결혼 후 경제적인 문제로 다퉈보지 않은 부부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가족이 먹고 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 기준이 높을 수록 현실에 불만이 많이 생긴다 생각합니다.


이 접시를 깨뜨려 말어~ 결혼이란 환상의 접시!



2.딸아이의 아픔

아이가 아플 때 겪는 아픔은 예습되지 않습니다. 공부로는 알 수 없는 뭔가 좀 더 깊고, 오묘한 가슴이 금가는 애절함입니다. 흔히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말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요. 특히, 그것이 내 잘못 또는 부모의 잘못 때문이면 더 할말이 없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큰 애가 어린이집 안가고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전업주부 생활을 할 때였는데요. 시원하게 '그래, 오늘은 아빠랑 있자!'라고 했었습니다. 하루 종일 우리 부녀는 재미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잠시 제가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며 컴퓨터를 하게 되었는데요. 갑자기 비명 소리와 함께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딸아이 앞으로 전신거울이 넘어졌던 거지요.

딸아이의 상태는 말이 아니였습니다. 다행이 거울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 틈에 손가락이 끼어 손가락이 절단될 뻔 하였지요. 그 작고 여린 손을 수술하고, 수술에 지쳐버린 아이를 보던 기억은 제 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습니다.(관련글 : 10분간의 방심이 딸아이 손가락을...)


3.아내의 삐짐

흐흐흐, 이건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사실 많은 남편들이 아내가 왜 삐졌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남자 또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게 왜 삐질 일이냐는 거지요. 그리고 때론 화날 일이 없는 데,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며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지 않지요. 아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을 해도 남편은 듣지도 않고, 결국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이 사람하나 믿고 살아가는 데, 이게 뭔가 싶기도 합니다. 

부부간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고, 많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부분이지요. 평소 대화가 있어야 서로 배우자 탓만 하지 않고,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서로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해주려면 이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저 대화하고, 이해해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 부부 결혼식은 양성평등 결혼식으로 모교 예배당에서 진행되었다.




4.익숙함 그리고 긴장감 제로

연애시절 제가 부부사이에 있어 갖고 있던 가장 두려웠던 부분입니다.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버리면 어떡하나...아무런 긴장감도 없어 그냥 사는 인생이 되어 버리면 어떡하나...제가 이런 기준으로 삼고 있던 게 바로 "방귀"입니다. 이걸 스스럼 없이 트는 순간 우린 부부 또는 연인이 아닌 그냥 '가족'이 되어버린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 지금도 저는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익숙함 속에 서로를 향한 더 깊은 신뢰와 우정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사랑이란 떨리는 감정은 길어야 3년밖에 안되는 호르몬 작용이란 점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데, 그것을 넘어서는 게 바로 신뢰와 우정이란 것입니다. 

저는 지금 결혼 5년차인데요. 다행이 아직은 설렘이나 사랑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조금씩 서서히 신뢰와 우정을 함께 쌓아가는 것 같습니다. 혹시 독자님께서는 결혼 몇 년차이시고, 어떤 노하우를 갖고 계신지요.(댓글을 통해 지혜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5.꿈의 사라짐-그냥 사는 인생

개인적으로 (아내와 자녀를 모두 내려놓고 봤을 때)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저는 결혼생활을 하며 제 꿈이 사라지고,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삶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꿈이 없는 삶이란 마치 회색빛 삶과도 같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꿈이 있고, 이를 이뤄가며 최선을 다해가는 삶에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두려워만 하니 참 피곤하더군요. 이걸 싫어한다하여 변하는 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두려움을 나에 대한 반성의 지점으로 삼고 매일 자신을 발견하며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스스로 제 꿈을 버리고 그냥 사는 인생이 되어버린다면 아마 아내는 물론 아이들도 매우 속상해할 것입니다. 아빠 또는 남편의 살아있는 눈빛 속에 가족의 희망을 볼 테니 말이지요.

필자가 결혼식 순서를 만들 때 넣었던 그림이다. 푸른 꿈을 잃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자 하는 맘을 담았다.



결혼은 현실이란 말도 있고, 아예 미친 짓이란 말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부부가 어떻게 얼마나 노력하는 결혼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에 따라 현실 속에 여전히 환상이 살아있고, 미친 짓을 넘어 행복함이 있다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리 많이 미리 준비해도 결혼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허나 이것마저도 내 자신과 부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게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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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에 데려다주고 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의 특성상 저는 주로 월요일에 쉬곤 하는 데요. 아침부터 딸아이가 유독 '딸기 할머니'를 보고 싶다하여 내려갔다 오는 길입니다. 기왕 내려간김에 지난 달 출산한 아내가 친정 엄마와 함께 좀 더 편히 쉴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 겸사겸사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히 다녀온 탓일까요. 집에 돌아온 저는 어깨가 뻐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독 휑~하게 느껴지는 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 네식구 살기 딱 알맞은 조촐한 집인데, 오늘따라 너무도 크게만 느껴집니다. 불이 꺼져있는 거실과 안방을 보면서는 괜히 썰렁한 느낌마저 들게 됩니다.

사실 저는 유독 외롭게 자란 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헤어지시는 걸 직접 보았고, 다른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함부로 책 잡히지 않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른바 '부모없는 자식'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동생을 괴롭히거나 저를 우습게 여기면 악을 쓰며 싸워이겨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에는 혼자 직장생활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여동생을 살펴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쉽게 제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 자신이 너무도 약해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 자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입술을 으깨물고, 눈에 힘을 준채 사는 습관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이런 성장배경이 제게 가족이 주는 의미를 더 크게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가족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아내와 아이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제가 살아가는 버팀목이자 이유입니다.

물론 그래도 가족과 늘 함께 있다보면 그 소중함을 놓칠 때가 많지요. 늘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들러붙는 아이를 보며 녀석 없이 평온한 날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또 가끔 사고도 치고, 잔소리도 하는 아내를 보면서 자유로운 총각시절을 떠올릴 때도 있지요. 하지만 이내 곧 이들이 없다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여유로운 회상을 넘어서버리게 됩니다.


앞으로 저는 약 2주간 혼자 있게 될 듯 한데요. 음, 문득 주말부부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때, 저는 가족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혼자 있으면서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고, 지난 날을 돌아보기도 하였지요.
 
이번에는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또 다른 방식으로 제 자신을 다져갈까 합니다. 다시 시작한 공부를 더욱 열심으로 진행하고, 오랜만에 운동도 좀 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주 후 가족들을 만나며 더 큰 마음으로 안아줘야겠습니다. 스스로에게 기운을 불어넣으며 글을 맺어 봅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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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대하다보면 여러 감정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특히 남자는 살면서 늘 미안하기만 한 사람이 둘이 있다 합습니다. 첫째는 어머니고, 둘째는 아내입니다. 제 경우는 조손가정에서 자라다보니 어머니의 사랑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들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저와 아내는 대학 동창이었습니다. 같은 신학교에서 아내는 학회장, 저는 학회교육가배(후배를 지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저 학회장과 가배라는 사무적인 만남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날 우리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인생관이 비슷합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 신학적 노선도 거의 일치합니다. 또 욕심 없는 것도 비슷하고, 삶에 대한 마음도 비슷합니다. 예, 저희 부부는 세상의 부귀영화는 둘째로 둔채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며 살아가기로 평생을 살아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으로써 미안한 마음은 없을 수 없습니다. 특히, 엊그제는 더욱 그랬습니다. 요즘 저는 대학원 입학과 새로 부임하게 된 교회일 등으로 매우 바쁩니다. 집을 비우는 경우가 유독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매우 지쳤고, 많은 활동 때문에 생활비 역시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엊그제 있었던 아내의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없어도 맛난 미역국과 정성으로 생일을 챙겨줬었는 데, 이번에는 미역국조차 끓여주지 못했던 거지요.

참 미안했습니다. 아내에게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필요한 것도 얘기하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생일 선물로 "머리띠"를 선물해달라 하더군요. 순간 제 자신이 어찌나 초라해지던지요. 순간적으로 아내에게 '그게 뭐야'라며 콧방귀를 뀌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피곤하고, 어려운 가정상황 때문에 저를 배려해 얘기한 것일텐데 말입니다.

본래 화를 내는 것보다 콧방귀 등이 더 기분 나쁜 것이지요. 아내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대로 밖을 나갔지요. 그나마 가장 예뻐 보이는 머리띠로 생일 선물을 대신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또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게 일은 많은 데, 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내에게는 또 다시 미안했지요. 형편은 여전히 어려운데, 일 때문에 가정과 아내에게 점점 소홀해진 듯 해서 말입니다. 

아, 
하늘을 보며 큰 숨을 쉬고 싶은 수요일 저녁입니다.

관련글 : 남자는 가슴으로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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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아내 아침을 해주고 나니
             움켜쥔 걸 내려놓으니 행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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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나가는 남자'일까?

[LIFE]이 남자의 인생 2010. 1. 20. 21:20 Posted by 바람몰이


 

대통령이었던 이들은 '잘 나가는 성공한 남자' 였을까?


대통령이었던 이들은 '잘 나가는 성공한 남자' 였을까남자는 군대를 제대하거나 대학을 졸업하며 세 가지를 갖기 원합니다. 첫째는 여자친구이고, 둘째는 자동차이며 끝으로 세 번째는 멋진 직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 세 가지가 이른바 ‘성공한 남자’ 또는 ‘잘 나가는 남자’의 잣대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가만 보면 그렇지요. 얼마 전 유명한 섹시배우와 약간은 촌스러운 듯한 남자 연예인의 교제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은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라면서도 그 남자 연예인을 재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능력이 있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저는 이 현상이 아름답고, 잘 나가는 여자와 교제 또는 결혼한 남자를 ‘능력 있다’라고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름답고, 멋진 애인을 둔 남성은 그 자체로 능력 있는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자동차’는 어떨까요. 요즘 한창 나오는 자동차 광고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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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건희 콜록콜록 했어요!”

“그래, 건희야. 아빠랑 같이 병원가서 의사 선생님 만나고 오자. 아빠도 약먹어야겠다! ”

딸아이의 기침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기침을 하다 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병원을 찾았더니 이틀치 약을 처방해 주더군요. 음, 다행이 약을 먹으며 기침이 줄어드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조금 나아졌나 싶더니 아침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열이 점점 심해지더니 그 활발하고, 씩씩하던 아이가 너무나도 조용하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맘에 즉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역시나 신종플루가 의심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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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장난감에 질투하다!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12. 2. 10:49 Posted by 바람몰이


업무와 일상에 전념하다보면 때때로 놓치는 게 생깁니다. 특히, 업무 관련 스케줄은 잘 기억하면서도 나와 관련된 일은 잊기 쉽습니다. 올해 제가 그랬습니다. 분명 나도 생일이 있긴 있는 데, 그게 언제이고 올해는 어떻게 지나는지 흐릿했습니다. 아내와 딸아이는 이런 저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잊지 않고 제 생일을 기억하여 준 것입니다.


아내와 딸이 준비한 깜짝생일파티

아내와 딸아이는 언제나처럼 잊지 않고 제 생일을 기억하여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여느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주린 배를 어루만지며 퇴근한 저는 집문 앞에서부터 심상찮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풍선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거지요.

집문을 여니 매우 어두웠습니다. 그리고 거실 끝에서 아내가 딸아이를 부르며 뛰어 오는 걸 보았습니다. 둘은 고깔모자를 쓰고 저를 축하해주려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둘이서 생일 축하 노래 연습도 했다 합니다.

어라, 그런데 이게 웬일! 저를 본 딸아이가 흥분하던 기운을 가라앉혔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이 제 손으로 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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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 활동이 많이 뜸해졌지요? 항상 찾아주시는 분들께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요즘 강의가 계속 들어와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음..지난 번 화성신문과 인터뷰한 기사가 나왔기에 이렇게 소식을 전합니다. 기사를 보니 아이쿠...ㅠ.ㅜ;; 일단 사진부터 영~~;;;; 또 마지막 구성애 씨 관련 얘기는 좀 이상하게 나왔습니다. 중학교가 아니라 고교시절 강의를 들었고, 저는 구성애씨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 기사를 링크해두고요..

엊그제부터 성매매 집결지 단속과 풍선효과에 대한 글을 쓰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빠른 시일안에 마무리하여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http://www.ih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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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회색빛 도심과 답답한 차안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약간은 센티해진 듯 한 기분이 들때도 그렇지만 일상에 지쳐가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맘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 한적한 교외로 나가거나 등산을 가는 것도 좋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음악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영혼에 평안함을 줍니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영혼을 날개짓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위트 있는 연주자의 말솜씨와 함께 한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지난 주 찾았던 이루마 콘서트는 바로 이런 두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약간 쌀쌀했습니다. 마치 자로 잰듯 갑자기 추워진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은 공연장은 추위마저도 녹여버릴 설렘과 들뜸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있었고, 흥분된 분위기였으며 저 역시 이 흐름을 굳이 거스르거나 태연한척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흐름에 자연스레 함께 하며 설렘을 안고 공연장에 들어섰습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종이 울렸습니다. 화면에 사막의 모래가 금빛물결을 이루며 흩날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건반소리가 들리면서 조명은 한 남자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루마의 등장이었습니다.



첫 연주곡은 익히 들어본 적 있는 친숙한 곡들이었습니다. 연주를 마친 후 인사하던 그의 모습은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라기 보다는 친숙한 옆집 청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수줍은 미소와 약간은 썰렁한 듯한 농담을 던졌지만 이는 어색함이라기보다 편안함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꾸준히 연주를 해나갔습니다. 연주 하나하나에 열정과 마음이 있었습니다.연주가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있을 때쯤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마음이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결혼 후 세상에 나온지 50여일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군대에 갔던 터라 그가 군대를 가기 전과 군대에서 느꼈던 감정이 마치 나와 같았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길 끝에는 내가 있을까" 라며 부르던 노래를 들을 때는 마치 다시 군대로 돌아간 듯한 끔찍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주자와 하나되는 소통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1부가 끝나고 2부의 마지막을 향할 때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몰려 왔습니다. 그의 앵콜 공연이 이 마음을 달래주었지만 공연장을 나서며 느꼈던 아쉬움에 비할바는 아니였습니다. 다시 이런 기회가 있으면 또 오겠다며 스스로를 달래보았고, 평안함과 기쁨이 충만함을 상기해보았지만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은 다시 공연장을 향하고만 싶었습니다.

얼마만에 다녀온 피아노 콘서트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덧 문화조차 즐길 수 없어진 나를 보며 세월의 흐름과 일상의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연주가 평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공연을 통해 느꼈던 감동은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이루마 콘서트는 한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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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  남편, 인터뷰 제의를 받다

제 인생을 바꾼 몇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그 중 전업주부 생활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해 가사분담과는 또 다른 세계를 보았고, 여성단체에 들어가며 새로운 꿈을 펼쳐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게 또 다시 좋은 기회가 하나 찾아왔습니다. 바로 화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님께서 제 블로그를 방문해 보셨고, 취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자님이 사무실에 올 때 저는 투호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도 넣지 못하던...ㅠ.ㅜ;;; 그런 때에 딱 오시더군요. 순간 어찌나 민망하던지...;;;;  아무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갔습니다.


질문의 핵심은 '남자의 눈으로' 였다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남자인 제가 왜 여성단체에 들어왔고, 남자인 제가 볼 때 지금의 성희롱 예방 교육 등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왜 양성평등을 지향해야 하는 가.. 강의를 나갔을 때 반응을 어땠는가..끝으로 사무실에서의 어려움 같은 걸 물었습니다.

내가 강의를 나가는 이유

저는 대답을 하며 양성평등 운동에 대한 제 소신과 제가 강의를 나가는 이유를 접목해 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강의를 나가면 제가 제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제가 할 소리만 하다 오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양성평등을 이뤄야할 분명한 인식과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고, 저는 이 마음을 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저 책 몇 권 더 읽고, 고민 좀 더 해본..한 걸음쯤 먼저 발을 내딛은 사람으로써 이걸 나눠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 거지요. 그래서 내 아이가 이 사회의 주역이 되어 살아갈 때쯤은 뭔가 변화된 모습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또 이런 세상을 만드는 게 조금 거창하게 보면 인권 문제로부터 국가 경제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게 없다 보기 때문이지요.


인터뷰의 마무리

열심히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그 동안 블로그에 써왔던 것도 있고, 평소 소신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썰렁한 농담도 건내면서 열심히 대답하였습니다 ㅎㅎㅎ. 하지만 사진 찍는 건 정말 어쩔 수가 없더군요. 몇 컷을 찍는 데도 왜 이리 어색하고, 긴 시간인지....^^;;;

이렇게 사진까지 찍고 나니 인터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처음 해본 인터뷰치고 별로 떨지는 않았지만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는 참 궁금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이 어떻게 나올런지....ㅡ.ㅡ;;

아무튼 기사가 나오면 그 때 다시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요. 오늘 하루도 행복하고, 건강한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__).

<출강문의> 댓글 부탁드립니다.
<강사약력>
다음 신지식 엑스퍼트, 경기여성정보웹진 "우리" 필진, 경기도 자주여성연대 전문강사 수퍼비전 교육과정 수료, 화성여성회 양성과정수료, 성평등, 성희롱 예방, 성매매 예방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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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교통정리 대장!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11. 3. 06:04 Posted by 바람몰이

<화목한 가정지킴이!>


'삐이익~삑! 삑~~삑~!!'

퇴근길 교차로가 복잡합니다. 또 시끄럽습니다. 이내 퇴근길의 꼬리잡기 차량을 정리하러 교통경찰이 나왔습니다. 확실히 교통경찰이 정리하니 조금 시끄러운 듯해도 흐름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교통흐름을 계속 관찰하며 유기적인 조절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아내와 자녀 사이에서의 역할

비오는 날 저녁, 조금은 센티해진 탓일까요. 문득 이 모습을 보며 우리네 삶도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집안이든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특히, 고부간 갈등과 아내와 자녀 사이의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먼저, 남편은 자기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문제를 잘 교통정리 해야 합니다. 자기 집과 처가를 공정히 대하고, 어머니와 아내의 다툼이나 의견을 지혜롭게 조절해 가야 합니다. 만약 이를 실패하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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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만 되면 더해지는 아내의 부담

참 어렵습니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기쁜 명절 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 맛난 음식과 사촌들을 만난다는 설레임보다는 점점 부담이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한번 더 챙겨야할 사안도 많아지고 말이지요. 고속도로 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남편보다 아내의 부담이 더 한게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저희 집은 아내가 임신하여 제가 거의 모든 요리나 살림을 하지만 그래도 명절 자체가 아내의 입장으론 부담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시댁 어른 만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일 겝니다. 저 역시 처가 어른들 뵙는 게 쉽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 추석은 남편에게 있어 최고의 찬스!

참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왜 우리는 나이를 먹을 수록 즐겁고, 행복한 명절 보내기가 어려워지는 걸까요. 특히, 결혼 후 맞이하는 명절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린 시절 가져왔던 그 재미난 추억을 뒤로한채 명절 이 후 이혼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사회적 현상을 목도해야만 합니다.

이번 명절은 우리 남편들이 팔을 걷어보는 게 어떨까요. 제가 볼 때는 이번 추석은 그 동안 점수를 잃었던 남편들이 한번에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일단 그 기간을 보십시오. 얼마나 짧습니다. 짧고 굵게 변화된 모습을 보임으로 오랜시간 뭔가를 해야한다는 부담을 줄 일수 있습니다. 또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겠지요.


처가에서 점수따기 5단계

그러면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일단 처가에 가면 모든 가족이 보는 앞에서 선언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가만 앉아서 쉬고 있어. 부엌은 내가 맡는다"

오~일단 이 한마디에 50점 먹고 들어갔습니다. (이 때, 지그시 아내를 바라보며 존댓말을 써주면 효과는 배가 됩니다)

자,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있지요. 우리 집 살림도 어딨나 잘 모르는 데, 처가 살림을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거지요. 하하, 그러나 다 살아날 구멍은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아마 다른 여성가족들이 바로 옆에 포진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때, 이들과 연대해야하는 거지요. 이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 슬쩍 아내의 성격이나 숨겨진 비밀(?) 등을 알아내면 훗날 여러 모로 쓸모 있습니다 홀홀홀~ㅋ 

세번째로 부지런히 발바닥에 땀을 내줘야 합니다. 음식을 하면 가장 좋겠지만...내 자신이 내 솜씨를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나 할까요...이거 자칫하면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좋은 게 뭡니까. 바로 덩치 아니겠습니까. 일단 부엌을 부지런히 왔다갔다 하며 잔심부름만 해줘도 10점 + 될 수 있을 겁니다.

네번째로 배달을 부지런히 해야합니다. 음식배달은 꽃몽오리가 터지기 직전으로 비유할 수 있을만큼 내가 아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절정으로 가기 위한 최고의 단계입니다. 만약 천성적으로 땀이 좀 있으신 분들이라면 더욱 유리하지요 ^_^

끝으로 반드시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음식배달이 꽃몽오리가 터지기 직전의 모습이라면 설거지는 살림의 "꽃"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대단히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단,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고도 욕을 먹는 건 그 뒷 마무리가 안 좋기 때문입니다. 설거지 후 행주를 이용해 물기없이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뭐든지 뭘 할려면 제대로 해야지 어설프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어느 통계를 보니 상당수의 남편들이 자기는 명절 때 많은 일을 도와준다 한다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내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 비율이 상당히 낮아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왕에 나서는 것이니 열과 성의를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하하, 지금까지 제가 좀 '보여주기' 냄새가 나는 글을 재미나게 적어보려 했는데요. 요지는 이것입니다. 이번 명절은 그리 길지도 않아 부담이 없으니 이번만큼은 남편이 먼저 나서 보자는 것입니다. 처가에서 아내의 위상을 높여줘보자는 거지요. 그러면 이런 모습을 보는 장인, 장모님의 마음과 내 아내의 입장은 어떨까요. 분명 '아~내 딸이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고 있구나' 라며 사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품지 않을까요.

내 아내의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내 위상 역시 높아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P.S : 제가 취직을 함으로 인해 포스팅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부족한 글을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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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여일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사에 일부 참여한 것과 달리 그 한복판에 뛰어들어감으로 많은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경험은 제 구직에도 영향을 주었고, 저는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하, 어제 저는 여성단체에 들어가 양성평등, 직장내 성희롱 등의 교육을 하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사실 원래 어린 시절부터 저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뇨 조금 문자를써서 말하자면 "소수자" 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자란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든 발생되는 상대적으로 연약(?)한 편견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자를 의미하는 데요. 제 눈에 비친 여성은 일상에서 늘 편견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의 입장이었고, 동시에 이 때문에 남성 역시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 성장환경 영향이 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님과 자란 저는 늘 여동생과 제가 다르게 받아들여짐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여동생은 늘 이게 불만이었고, 저는 늘 여동생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 조부모님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나름 "영재" 소릴 들으며 "기대주" 로 과대평가 되었고, 게다가 "장남" 이었으며 여기에 옛 어르신들의 남아선호사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던 거지요. (지금 여동생은 그 때 얘길 하면서 서운했다 얘기하며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잘 보니 양성간에 가해지는 차별 또는 편견은 상대적으로 소수자였던 여성을 더 힘들게 하지만 결국 남성 역시 힘들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평소 생각은 대학시절 여성신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에 빠져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보니 역시 제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양성 모두 어려움과 아픔을 겪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양성 모두의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곳은 제가 직접 알게 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한주 연재했던 글을 보고, 제 구직자리를 찾던 아내가 제안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학습을 통해 전문가로 거듭나고, 제가 깨닫고, 경험한 것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있다 여겼습니다.

하하,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만나게 될지..

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어떤 그림을 만들어나갈지 참으로 기대되고, 궁금해집니다. 


독자님 보시기엔 어떤가요.

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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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의 중요성

건강을 유지
하는 가장 큰 비결이 무얼까. 좋은 약을 먹는것. 당연히 아닐 것이다. 강한 육체를 갖기 위해 극한의 훈련을 하는 것. 이것 역시 아니다. 전자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치고, 후자는 오히려 신체를 상하게 하기도 한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마음으로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면 이것보다 건강을 유지하는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우리네 조상님들은 이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네 삶을 "살림살이"라 하였다. 삶자체가 서로를 살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부의 살림살이는 매우 중요
하다. 서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살아갈 부부가 서로를 살리는 삶을 살 수 없다면 그것은 곧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닌 고통스런 나날의 연속으로 귀결될 뿐이다. 


가사를 분담하는 것과 전담하는 것의 차이

평소 나는 가사 분담을 40% 이상 하고 있었다 자부하는 편이다. 또 아내 역시 이런 나였기에 아무것도 없는 필자를 선택하고, 결혼하게 되었다 한다. 확실히 이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서로 별 부담없이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재밌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확실히 가사를 전담하게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서로를 살리는 행복한 삶이 잘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분명 좀 더 자신을 잃어가고, 힘들어하는 한쪽이 생기고 말았다. 감정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입에서 사랑과 생명이 담긴 말보다 공허한 잔소리와 상처를 주는 말이 더 많이 나오고 말았다. 대화의 창이 점점 닫혀지고,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 역시 줄어
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깨"가 쏟아지는 삶이 짧은 이유

아마도 이것은
필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흔히 결혼은 현실이라 하고, 때론 미친짓이라고까지 하지 않던가. 꼭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엔 "깨"가 쏟아지는 행복한 삶은 대개 1-2년에 불과한 것 같다. 길면 3-4년이 대부분인 듯 하다. 참으로 아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환상에 젖어 살다 현실에 돌아오니 더 행복하더라' 라는 말이 나오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는걸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참으로 간단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산과 양육, 가사를 도맡아 하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배우자가 있고..또 밖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자신을 이해하고 품어주기를 바라며 이런 모습에 실망하는 배우자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은 미움 또는 짜증이 되고 이것은 언어로 표출되고 마는 현상이 반복된다. 비아냥과 무시의 발언이 쏟아지며 대화의 창이 닫히고
만다. 그러면 누군가는 자녀에게 지나치리만큼 관심 또는 집착을 하게 되고, 또 다른 배우자는 일과 취미에 열중하고 만다.
 

변화를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혼" 까지 맺는다는 "결혼"을 하는 걸까. 그것은 서로를 살리기 위한 삶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얗고 아름다운 웨딩 드레스와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으며 그 출발을 아름답게 수놓는 것은 왜 일까. 첫 단추부터 아름답게 시작해보자는 게 아닐까. 그런데 고작 몇 년만에 이렇게 감정이 식어버리며 살게 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라면 확실히 이런 건 그다지 권할만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는...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누구의 잘못이란 걸 따지기 전에...나는 이게 불만이다 말하기 전에...내 인생과 이 가정을 위해...과연 나는 내 배우자를 이해하고, 배려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나
돌아볼 일이다. 서로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아무런 발전도 없는 소모적인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사회구조나 통념 역시 중요하다. 이것 역시 폐기 또는 변화될 부분은 시대정신에 맞게 흐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부의 결혼생활에 가장 1차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역시 내 배우자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려는 바로 나 자신의 노력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백여일간 남편전업주부로써의 내가 느끼고, 깨달은 바이다.


정리하며

지난 백여일을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구직의 문제와 살림에 치이며 정신적으로 많이 어렵기도 하였다. 하루하루가 아무런 의미없이 흐르는 것만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이 글을 쓰는 오늘 나는 내 자신의 성장을 보며 감사하게 된다. 아내를 더욱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다짐하게 된다. 서로를 살리는 생명살림의 삶을 꿈꾸며 이것이 내 삶의 한복판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읊조리게 된다. 이것은 아내와 나의 "혼" 까지 맺게 한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살려내고, 내 자신의 행복이 실현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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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드는 것만큼 어려운게 또 있을까.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누구나 살다보면 철이 들 수 있는 특별한 계기가 한두번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중 가장 큰 계기가 있다면 바로 출산과 육아의 긴 과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출산과 육아는 사실 내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스스로의 과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성장을 한다는 건 언제나 성장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몸이 자라도 통증이 있는 거고, 아픔을 겪으며 마음이 자라기도 한다. 당연히 출산과 육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참 아쉽게도 우리는 기쁨의 순간만을 떠올리곤 한다. 임신을 하면서 새생명이 들어옴은 분명 신비하고, 놀라운 과정이지만 그 후의 과정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있지 아니하면 오히려 내 자신을 잃고, 짜증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1.늘어가는 짜증

아이가 가장 예쁠 때가 언제일까. 아마도 많은 엄마들이 "잠잘 때" 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잠잘때는 정말 천사가 따로 없다! 필자는 '아이 예뻐라~이 귀염둥이!! 라면서 뽀뽀를 해주곤 한다.

그런데!!! 

좋은 건 여기까지.


이 녀석이 다시 눈을 뜨고 말을 이기기 시작하면 상황은 180도 변해버린다. 악을 쓰기 시작하면 이건 정말...또 한번 놀아달라 들러붙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ㅡ.ㅡ;; 찰거머리 저리 가라이다.

최근 건희는 손이 다친 일이 있다(관련글 : 10분의 방심, 딸아이 손가락을....). 그래서 나와 2주 정도 함께 집에서 요양을 취했다. 아이와 2주 동안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그것도 "미운 네살" 접어든 녀석과 함께라면!!
...
....
......

2주란 시간은 사람을 2년 이상 더 늙게 만드는 것 같은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2.늘어나는 회의

사람이 삶의 목표와 꿈을 잃는 다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 점점 커져가는 목소리만큼 꿈과 열정도 커지면 좋은 데, 이건 그 반대이다.  

아~한 땐 나도 꿈많고, 열정적이던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아~~~옛날이여!!! ㅠ.ㅠ


육아를 100% 전담하다보니 자기회의가 늘어남을 볼 수 있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 나는 신학공부를 하며 지금까지 수도해왔다. 그러나 아이 앞에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흥분하는 걸보며 수없는 자기회의에 빠지고 말았다. 또 아이에게 치여 살다보니 내 젊은 시절 꿈은 이미 사라지고,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쓰며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박지윤의 <하늘색 꿈>이 듣고 싶어지는...으흑....ㅠ.ㅜ


3.늘어나는 교육비와 자존심

우리는 저소득층으로써 정부에서 100% 보육료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교육비가 안 들어갈까. 이건 순진한 발상이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지출되는 교육비가 상당하다. 만약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고, 그것도 형제(또는 자매)를 함께 보냈다면 이건 정말 엄청나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맞출수가 없는 금액이 나간다. 윽..허리가...ㅠ.ㅜ

그런데 또 참 재밌는 게 내 아이가 좀 쳐저 있는 건 보기 싫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어진다. 또 친구에게 맞기라도 하면 기분이 굉장히 나쁘다. 차라리 치료비를 물어주는 한이 있어도 안 맞고 다녔으면 하는 맘이 생기고 만다. 특히, 나는 무도 수련을 20여년 정도 한 사람으로써 아이가 덩치 큰 친구에게 위축되어 꼼짝못하는 걸 보면 ..... 

내 눈은 순간 이글아이가 된다~

으~~~이글 아이!!!


그러니 참으로 재밌지 않은가. 가장 좋은 걸 주는게 가장 좋은 교육 효과를 담보하는 게 아님에도  내 자식이 연루된 문제이 있어서는 그러지 않아도 될만큼 감정적이게 되니 말이다.


4.기타

육아에 좀 더 신경쓰다보니 참 이런 저런 전화를 많이 하게 된다. 동사무소를 찾는 횟수도 늘어난다. 육아 관련 사이트도 엄청나게 들락거리고, 대학시절 교육학 공부를 하며 읽던 책도 다시 보게 된다. 안 그런 척하면서 옆집 아줌마는 애한테 뭘 입히고, 뭘 시키는지 관심 갖게 되고..ㅠ.ㅜ;;;


정리하며

자기만족이다. 결국 아이에게 무엇이든 최고의 것으로 최고만 해주고 싶은 결국 자기만족이란 생각이 든다. 어린 아이에게 고가의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굳이 조기교육을 하지 않아도 결국 공부할 놈은 공부하고, 공부안할 놈은 공부 안하는 게 이치이다. 그러니 결국 자기만족이란 생각이 든다.

또 자기감정이다. 자기 감정을 못 이기니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고, 내 자신이 흥분하게 된다. 사실 이렇게 흥분하며 아이를 다그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아이는 자연스레 세상 사는 법을 깨우치는 법이다. 윽...이런 말을 하니 또 다시 부끄러워진다. 오늘 아침 나는 또 다시 건희에게 밥 먹고 가라 다그치고 말았었다...으흐흐흐흐흑....ㅠ.ㅜ;;

음음, 아무튼..

결국 육아의 긴 과정은 내 자신의 성장과정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자신의 모델로 삼고, 무의식에 모두 저장하는 만큼 내 자신이 성장하고, 학습하는 삶이 되지 않는 이상 아이들은 성장할 수 없다.



P.S : 내일은 연재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백여일간 전업주부로써 살며 느꼈던 것을 최종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내일도 업데이트 시각은 10-11시 사이입니다. 또 방문자가 200만명을 넘겼습니다. 많은 사랑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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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먼저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__)

오늘은 어제 미리 말씀드린대로 "가정경제"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나는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신학을 전공했고, 철학을 함께 공부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어릴 적부터 장사를 해왔던 터라 참 재밌게도 국제경제학을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게다가 대학을 직장생활을 하며 다녔는 데, 그게 바로 "수학강사" 였다.
 
자, 이제 이쯤되면 필자가 어떤 공격력(?)의 소유자일지 대충 짐작이 된다.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쌓은 말빨(좋은 말로 논리)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수학강사를 오랫동안 하며 키워온 꼼꼼함!! 이건 좋게 발휘되면 좋지만..^.^;;; 나쁘게 발휘되면 엄청난 잔/소/리/ 능력의 소유자란 말이 된다. 오늘도 나는 아내에게 '불을 끄고 다녀라' '왜 외식을 하려 하느냐' 며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ㅠ.ㅠ


그러나 나 역시 잔소리를 해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마음수련을 쭉 해오면서 이것 역시 하나의 반응체계이자 습관임을 알게 되었고, 내 스스로 조절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된 계기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집안살림" 을 맡게 된 것이었다.

사실 그 동안 가사를 분담하며 세밀한 가계 계산은 아내가 하곤 했었다. 나는 큰 방향을 잡고, 결정을 하는 정도였다. 머리속으로 계산을 이리저리 해보면서 톱니바퀴를 대충 맞춰보는 정도였다. 그래서일까...이 때만해도 별로 대단한 걱정이 생기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아내 역시 그런 표정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아내는 워낙에 성격이 낙천적이고 여유로움)

그런데 이게 웬일...

이건 완전 다른 세계다. 살림을 분담하며 머릿속으로 큰 틀에서 계산했던 건 한마디로 "뜬구름 잡기" 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밀하고도 실제적인 계산에 들어가니 보통 복잡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였다.


먼저, 생각외로 지출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은근슬쩍 한푼두푼 나가는 항목이 참 많다. 구체적으로 뭐가 그렇게 많냐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할 수는 없는 데, 아무튼 정말 많다. 즉,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정확히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예산을 짜고, 집행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가 갖고 있던 돈이 사라지고 없는 걸 볼 수 있었고, 스스로 '어라 언제 이 돈을 다 썼지?' 라며 놀란게 한두번이 아니다..ㅠ.ㅜ;;


둘째, 몇 달-몇 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다.

단순히 이번 달 생활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아니 사실 이것만해도 대단히 어려운 얘기다(아래 단락에서 계속). 그런데 가계를 꾸리다보니 한달, 하루의 삶 뿐 아니라 몇 년 후 상환해야할 대출금도 염두해야하고, 내년에 입학할 대학원 학비 계산까지 해야하며 곧 태어날 둘째가지 고려해야 했다. 길게 보지 않고 살다보면 결국 - 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흐흐흐, 그래도 흰 머리와 주름과 함께 안목 역시 길어진 듯 하다 ^_^;;


셋째, 강한 생활력(?)을 어디서든 표출하게 되었다.

강한 생활력..ㅎㅎㅎㅎ 혹시 이 글을 읽는 남성에 사은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본적이 있는가? 필자는 있다..;;; 혹시 주인 아줌마와 싸우면서 가격 흥정 끝에 물건값을 깎아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있다..;;; 백일전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살림을 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다. 기왕에 같은 돈을 주고 사는 거니 뭔가 하나 더 준다면 그걸 사게 되고..1+1이라 해도 1g 단위로 계산해서 평균단가를 따져 더 저렴한 걸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1+1이 더 손해일때도 많습니다. 주의하시어요!!) 



넷째,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서는 돈을 써도 나를 위해선 안쓰게 되었다.

왜 많은 '아줌마' 들이 처녀시절 미모를 잃는걸까..한때는 '게으름' 때문이라 생각했다. '좀 예쁜 옷도 입고, 몸매 관리도 하지..' 이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가계를 꾸리다보니 자연스레 가족을 위해서는 돈을 써도 나를 위해선 쓰지 않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성이고, 어머니의 자기 희생임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정리하며

자, 지금까지 짧게 가계살림을 꾸리며 느꼈던 점을 정리해 보았다. 살림의 한복판에서 모든 걸 관리하다보니 그 전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도 하고, 이른바 "아줌마" 가 된 내 모습을 보며 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이렇게 복잡한 살림이 진행된다는 것은 결국 이 집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우리가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즉, 이런 저런 계산을 하며 한숨만 쉬기보다 좋게 생각하며 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렇게 내가 모든 걸 맡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또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런 우리 가족의 삶에 감사하고 싶다.  



오늘은 이쯤에서 2편을 마무리 합니다. 내일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고, 제 전문분야 중 하나인 "육아" 에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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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업주부 남편이다. 한 때 잘나가는 시절도 있었고, 아직도 여기저기서 인정 받지만 약 100 여일동안 전업주부로 살게 되었다. 구직시도를 안 한건 아니지만 아직 때가 아니고, 인연인 곳이 없는지(구직조건이 워낙 까다롭기도..^.^;;) 좋은 곳을 만나지 못했다. 아무튼 오늘은 필자의 일과를 기록하며 지난 일백여일 동안의 전업주부 생활을 정리하는 첫 페이지를 열어볼까 한다.


1.오전 7시 기상

가족 중 가장 늦게 자는 건 바로 나이다. 그러나 가족 중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 역시 나이다.  아내와 딸아이 경우 7시 30분쯤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나는 반드시 7시에 기상해야만 한다. 아침밥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약 30분간의 노력을 통해 가족의 건강을 지킬 수 있고, 많은 절약을 할 수 있기에 꼭 하게 된 일과이다. 늦잠이란 주부에게 통용될 수 없는 일이다.


2.오전 7시 30분-8시 30분

아내와 딸아이를 깨우고, 식사를 시킨다. 현재 아내는 둘째 임신 중이라 좀 더 자라는 나름의 배려로 7시 30분 기상을 얘기하고 있다. 딸아이와 아내의 세면이 끝나고, 식사를 마치면 대략 8시 30-40분. 아침 출근을 위해 빈 그릇만 대충 정리하고 문을 나선다.


3.오전 8시 40분-9시

아내와 딸아이의 출근(?)시각이다. 딸아이는 어린이집으로 가고, 아내는 직장을 향한다. 현재 새로 이사온 곳에 버스가 없어 내가 출퇴근 시켜줘야만 하는 상황이다. 택시를 타고 가자면 워낙 돈이 많이 들어 벌써 한참을 이렇게 하고 있다.


4.오전 9시-10시

집에 돌아오니 상황이 엉망이다. 일단 상을 깨끗하게 치우고 설거지를 해야한다. 휴~딸아이는 그 짧은시간에 을 어지럽혔다. 이것도 치워야 한다. 오 마이 갓! 벌써 한시간이 지나갔다.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 후 커피한잔을 끓여본다.


5.오전 10시-11시

커피한잔을 하며 TV를 켜보니 이런 저런 토크쇼도 있고, 케이블 방송에 육아 등 강연도 많다. 커피를 마시고, 과일 한점 주워먹으며 보고 있는데...어라...갑자기 눈을 뜨는 상황이 발생한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만것!! 으....내 뱃살...ㅠ.ㅜ;;


6.오전 11시-오후 1시

이제 다시 일어나야 한다. 나는 밥먹고 잠만 자는 잠탱이가 아니다! 집안을 싹 쓸고, 닦으며 땀을 낸다. 청소를 하니 벌써 점심시간. 가볍게 찌개 등을 밥을 말아 한그릇 후다닥 해치운다. 이야~시간 참 잘 간다~~


7.오후 1시-3시

집안과 관련된 밀린 일을 처리할 시간이다. 가끔 4시까지 소요될 때도 있다. 이런 저런 일이 왜 이리도 계속 생기는지...정말 집안 일은 끝이 없다.


8.오후 4-6시

귀가 후 잠시 숨을 돌린다. 이 때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 관리를 해준다. 가끔은 피곤해서 이것도 못할 때가 있다. 한달 평균 2-30만명의 방문자를 자랑하던 이 블로그를 보라. 현재 겨우 몇 백명 수준이니 그동안 얼마나 관리를 못해왔나 알 수 있다 ㅠ.ㅜ;;;

블로그 관리가 끝나면 이젠 저녁 준비이다. 사실 저녁 준비를 하다보면 인터넷 시간이 매우 줄어든다. 하루 종일 고생한 아내와 딸아이에게 비싸진 않아도 영양만점 식사를 제공해야한다는!!! 강한 의지가 발동되기 때문이다.


9.저녁 6시 20분

아내의 퇴근을 위해 차를 몰고 나간다. 으하하하~그러나 아내의 얼굴은 피로가 가득하다. 음...딸아이는 에너지가 언제나 넘친다. 아빠를 부르며 안기곤 한다.


10.저녁 7시 ~ 9시

식사를 하고 나니 아내가 설거지를 해준다. 오전에 널어두었던 빨래도 같이 정리한다. 가볍게 과일을 먹으며 뉴스를 보기도 하고, 하루 일과를 정리해본다. 아~~오늘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구나~~~


11. 밤 10시 이 후

아내는 드라마를 보기도 전에 잠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하는 일의 특성상 드라마를 공부삼아 보기도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왠지 하루의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생겼기 때문이다 ㅠ.ㅜ;;  월화는 <선덕여왕>을 봐준다. 수목은 <태삼>을 봐준다. 금에는 뭐 그냥 딱히 볼게 없다(소비자 고발 정도..) 주말은 <천추태후> 이다 (--)V

 
전업주부 남편으로 백여일을 살며 알게 된 두가지

아~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나는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눈 깜빡 하니 또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렇게 백일이 지나고 나니 늘어난 건 뱃살과 잔소리요 줄어든 건 냉철한 이성과 자기관리 시간이었다. 팔뚝은 점점 굵어지고,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입던 바지에 숨이 막혀가기 시작했다 으~~~ㅠ.,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나로써는 참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이유는 두가지이다. 먼저, 이렇게 살다보니 스스로 자기회의와 부정에 빠지게 되고,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부 우울증 비슷한 걸 보게 된 것이다. 살림 자체가 나쁘거나 의미 없어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나 자신을 잃어가는 듯하고,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의 주부들이 왜 가십거리를 찾으며 수다를 찾게되고, 남편과의 거리가 생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주부의 노동가치가 얼마나 큰지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자취생활과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필자 역시 6년간의 자취를 통해 수많은 살림 노하우를 터득한 인재(?) 였지만 본격적인 집안살림을 하는 데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필자가 그 동안 일하며 받은 급여 등과 비교할 때 집안일은 최소 연봉 2천 이상의 가치가 있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남편이 반드시 가사를 분담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며

전업주부 남편으로 살다보니 동네 사람들의 신기한 듯한 시선도 받게 되고 참 재미난 일이 많다. 그러나 역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 지 모르는 나를 잃어가는 시간 역시 존재함을 느꼈다. 평소 가사의 40% 이상을 분담한다 자부하던 나였지만 100% 전담을 해보니 가사 분담의 중요성을 온 몸으로 느낄 수도 있었다. 

오늘은 이렇게 1편을 정리한다. 내일은 가정경제에 대한 에피소드를 나누도록 하겠다. 내일의 업데이트 예정 시각은 오전 10시 -11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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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소리쟁이야~제발 그만 좀 해!!

며칠전 있었던 얘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저는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웹진 "우리" 의 필진입니다. 한달에 한편씩 원고를 보내야 합니다. 운영자님은 큰 부담 갖지 않겠금 문자를 주시지만 저로써는 정해진 날짜에 특정 주제의 글을 써서 보내야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원고 마감의 압박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지난 달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희 집에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걸 토대로 쓰니 제법 반응도 괜찮더군요. 하지만 이번 달은 참 어려웠습니다. 원고 마감 이틀전까지 글의 컨셉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휴~상당히 마음이 답답하고, 급하지요.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습니다. 그리 큰 일도 아닌 데 자꾸 신경질을 내었습니다. 아내의 임신 후 제가 도맡아 하던 집안일조차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참 웃긴 현상이 일어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엄청난 잔소리를 해대는 것입니다. 아내가 출근에 쫓겨 그냥 던져놓고 간 옷을 일부러 가만히 두고 퇴근 후 돌아온 아내에게 '이게 뭐니?!' 라고 하는 걸 시작으로 사사건건 놓치는 게 없었습니다. 신경이 예민하니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이더란 것입니다.

하하, 이런 저 때문에 아내의 고생은 보통이 아녔습니다. 오죽하면 저보고 "이 잔소리쟁이야! 제발 그만 좀 해!! " 라고 할까요..ㅠ.ㅜ;;  나중에는 본인도 힘이 들어 저에게 짜증을 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이미 짜증난 상태니까 같이 짜증을 냈지요. 같이 짜증을 내니 서로 다툼이 일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서로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던 거지요. 


제 장인 어른께서는 농사를 지으시는데요. 가만보면 땅과 자연 때문에 많이 울고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정을 주어도 태풍 한방에 농사를 망치기도 하고, 때론 자연의 도움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며 웃기도 하시구요. 그러면서 더욱 생명의 소중함을 아시고, 인자한 주름이 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결혼 생활이란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서로의 말과 행동 때문에 많이 울고 웃곤 하지요. 나는 많은 정을 주며 노력하지만 배우자의 한마디와 행동 하나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반면 뜻밖의 작은 정성을 보며 웃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서로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인생이 하나의 인생이 되어 인생이란 큰 농사를 지어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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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저도 제법 잘 나가던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학원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제 이름을 듣고 학원에 온 학생도 있었고, 학원 수강생 중에서도 제게 따로 과외 부탁을 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법 수입도 좋았고, 어린 나이에 교무주임을 하며 표창장도 받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예, 그 때는 참 잘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만약 이 때의 저를 본다면 여자들은 저를 꽤 능력있는 남자라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득 저는 이런 삶이 주는 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허리를 다쳐 수술을 하게 되며 더욱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내 삶 자체는 아무런 여유가 없고, 매일을 피로에 지쳐 살아가며 돈만 벌고 있는 내가 무엇인가 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사람 냄새를 풍기며 생명을 일구는 삶이었던가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두려했던 신학을 다시 공부하며 제 삶을 바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제 아내는 이런 저를 보고 믿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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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며칠 아내가 속이 좋지 않다 합니다. 그 동안 다이어트를 한다 하여 나름 식단 조절도 해주고 신경을 쓰고 있었는 데, 이렇게 안 좋다 하니 제 속이 더 상하더군요. 그런데 며칠 전 아내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른 걸 보게 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배가 아파 나온 표정이 아니였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뭔가 중차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지요.

흐흐흐~~~ㅋㅋㅋ~~~~하하하하~~~~와~~~~ㅋㅋㅋㅋ

예, 아내가 생리를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바로 "임신" 했다는 거지요!!!

와~~~~~ㅋㅋㅋㅋㅋㅋ


아내의 임신 후 검사를 위해 보건소를 찾았습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일단 병원을 갔었습니다. 그러나 임신 초기 검사는 굳이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으로 찾은 것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보건소. 참~좋아졌더군요. 다양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처음 선생님과 상담을 하니 여러 자세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이런 선물을 하나 주더군요. 알고보니 신생아 베넷 저고리였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만든 건가 하고 보니 순수 국내산에 친환경 황토 저고리였습니다. 아~좋더군요!! (참고 : 저희 집은 행정구역상 오산이지만 1분만 걸어나가면 화성시가 되고, 5분만 나가면 수원시가 된답니다 ㅎㅎ)




선생님과 간단히 상담을 한 아내가 혈액검사를 위해 나왔습니다. 채혈을 무려 세통이나 하더군요. 결과는 일주일 후 쯤 나온다 합니다. 따끔했겠지요?




이번에는 소변검사입니다. 다 아시죠? ㅋㅋㅋ 검사를 해준 선생님이 친절한 건지 요즘 보건소가 다 친절해진건지 잘 검사를 하였습니다.




밖을 나와보니 아~이런 것도 있더군요. 첫 아가때는 그냥 독학했었는데, 이번엔 한번 같이 다녀봐도 좋을 듯 합니다. 만약 처음 임신을 한 초보 엄마나 아빠가 계시다면 굳이 병원까지 다니지마시고 보건소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교실이 있으니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나온 아내에게 뭐 먹고 싶은 게 없는가 물어보았습니다. 기왕에 나온거 그냥 들어갈 순 없지요. 병원에 갔으면 몇 만원 들어갔을 텐데 보건소에서 무료로 검사를 했으니 그 돈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맛난 음식을 먹고 와야겠다는 계산입니다.



일단 근처 농민마트에 갔습니다. 입덧이 생기고 있어 신선한 과일을 샀습니다. 첫 아이때는 입덧이 심해질 무렵 선배 목사님께서 재배하신 복숭아 한 박스를 먹으며 다스렸었는 데, 효과가 있더라구요.

그 다음은 짬뽕을 먹으러 갔습니다. 사실 아내는 매운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치킨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였지요. 그런데 이번 녀석은 제 입맛을 닮았는지 갑자기 얼큰한 짬뽕이 그렇게 먹고 싶다는 겁니다. 근처에 있는 수타면으로 소문난 집을 찾았습니다.





그냥 기분탓일까요. 수타면은 그냥 면보다 더 쫄깃하고 같은 그릇에 같은 양을 넣어도 더 배부른 것 같습니다. 종합적으로 봐도 더 맛난 것 같구요. 다양한 맛을 즐기기 위해 저는 짜장면, 아내는 짬뽕을 주문해왔습니다.



일단 도착해서 보니 두번 웃어보게 됩니다. 우선 그양이 상당하여 한번 웃고, 한 젓가락 뜨며 그 맛에 또 한번 웃게 되지요. 흐흐흐~~잘 먹고 왔습니다.


둘째 아이 태명은 "덕만이" 입니다. 첫째 아이이 태명은 "주몽" 이였는데요. 당시 주몽만 보면 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녀석을 보고 지었던 겁니다. 이번엔 선덕여왕이 아주 재밌어 "덕만이" 라 하였네요 ^_^

사실 저희는 좀 더 있다 둘째를 가지려 하였습니다. 둘째를 갖지 않으면 입양을 하려 했지요. 특별히 계획된 임신은 아니지만 기왕에 허락된 생명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태교 잘 하려 합니다. 덕만이도 잘 키우고, 나중에 더 부자되어 셋째를 입양하면 되지요. 이참에 국가에 헌신도 한번 더 하고 말이죠.

보건소 시설도 잘 되어 있어 더욱 좋습니다. 몇만원씩 드는 산전검사도 무료로 가능하고, 여러 교육이나 철분제 등도 무료로 받게 됩니다. 한결 부담이 덜어들어 그만큼 맛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평소 꾸준히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미리 미리 준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가요. 제가 병원보다 보건소를 찾을 만한 이유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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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다녀옵니다!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7. 21. 12:22 Posted by 바람몰이


제가 내일부터 모레까지 (22-23일) 강화도로 중고등부 수련회를 다녀옵니다.

오늘까지 수련회 준비 마무리로 글도 못쓰고, 댓글도 제대로 달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한 말씀 드립니다 (--)(__);

잘 다녀와서 좋은 글로 다시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P.S: 7월 31일-8월 1일도 수련회가 예정되어 있어 다음 주 후반에는 또 인사드리지 못할 듯 합니다.
       미리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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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방송을 보니 남자가 되는 데도 자격이 필요하나 봅니다. 무려 101가지를 해봐야 한다 합니다. 버라이어티쇼이긴 하지만 남자 되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의 자격 중 가장 큰 것이 집안이나 부모님에 대한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실제 남자는 군을 입제대하며 이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신부감 역시 기왕이면 효성이 지극하여 내 부모님을 자기 부모님처럼 여길 사람이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25살에 시집와 시할머님을 모셔온 아내

저는 제 나이 다섯에 부모님이 헤어지시는 모든 과정을 직접 목도하였습니다. 그 후 15년간 대야에 생선을 담아 파시는 할머님과 삯바느질을 하시던 할아버님을 뵈어오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반드시 조부모님을 제가 모시겠다 다짐해왔지요.

겨우 25세에 결혼한 제 아내는 시부모님도 아닌 시할머님을 모시며 살아왔습니다.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많은 사연 얽힌 우여곡절을 겪으며 저희 가정은 지내왔고, 아직 어린 아내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장인, 장모님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없는 형편이지만 용돈이라도 한 번 더 드리고 싶어 하고, 휴가도 처가에 가서 농사일을 도우며 보냅니다. 제 아내에게도 나중에 꼭 장인, 장모님을 제가 모시겠다 약속하였습니다.


대학 연애시절 같이 찍은 사진


이해하지 못했던 아내의 눈물


하지만 아내는 가끔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결혼 초 저는 이런 아내의 눈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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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발행되는 웹진 "우리"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여러 문제로 본문을 모두 싣지 못하고 더보기를 통해 링크 걸어둠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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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다이어트가 비가 오는 어제도 끊임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 의지가 참으로 멋지더라구요. 이런 모습을 보며 뭔가 하나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메뉴는 섬유질과 단백질을 보충을 고려한 고소한 미역국이었습니다.

단, 만드는 방식에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요. 평소 만드는 미역국과 달리 소금간을 하지 않거나 해도 매우 조금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미역과 닭가슴살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거지요.

1.우선 미역을 냄비에 넣고 참기름을 살짝 넣어 볶아 줍니다. 좀 더 맛나고, 고소한 향이 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2.국물을 내기 위해 따로 멸치를 넣어주었습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칼슘보충 역시 필요한데, 국물맛까지 잡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었던 것이지요. 확실히 이렇게 약간의 수고를 해주면 더욱 맛난 미역국이 가능해집니다.



3.자, 이것이 바로 훈제 닭가슴살입니다. 훈제로 사는 이유는 이것에는 일반 훈제와 달리 소금이 들어가지 않고, 닭비린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다양한 요리를 해먹는데도 괜찮습니다. 포장을 뜯어 전자렌지로 해동 후 이리저리 잘께 찢어 미역국에 넣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항상 주문하는 옥0에서 샀는 데, 이번에는 포장이 약간 바뀌었더군요.



4.이제 아까 멸치를 넣었던 물과 참기름으로 볶았던 미역, 닭가슴살을 한데 모아 줍니다. 사진이 좀 밝게 나왔는데요. 이렇게 넣어주면 제법 맛난 향과 보기 좋은 모습이 나옵니다.




5.이제 끝으로 간장 약간을 넣어주면서 한동안 푹~끓여주면 됩니다. 너무 싱거운 듯 해도 운동을 할 때는 괜찮습니다. 이미 다른 반찬에서 염분이 충분히 보충되기 때문이지요.

다행이 아내가 미역국을 잘 먹어 주었습니다. 딸아이 역시 "이거 아빠가 해준거예요" 라면서 잘 먹었습니다. 갑자기 주부의 마음이 되어버린 저는 참으로 흐믓함을 느끼게 되더군요 ^.^;; ㅋㅋ


요즘 집에서 공부와 운동만 하고 있다보니 살림을 주로 제가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집에 있어도 노는 게 노는게 아니지만(여름 캠프 2회 준비중) 그래도 아내보다는 제가 시간이 더 나니 말이죠. 그러다보니 나꾸 아내의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을 짜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렵고, 대단한 걸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두유 한팩 챙겨주고, 야채 샐러드 살짝 만들어주기만 해도 아내의 반응이 매우 좋고, 여유를 많이 찾는 듯 하였습니다. 내가 불과 몇 분 투자한 것인데 말이지요.

예, 참 그렇습니다.

가정의 화목, 부부간의 금술은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시작하는 것일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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