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참 빠르네요. 올해가 시작된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다음 주에 성탄절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탄절은 예수 탄생일로 지켜지고 있지만 정확한 날은 아닙니다. 사실 지금의 12월 15일은 로마에서 태양신의 축일을 선교 및 정치적 목적으로 정한 것이지요.
다만 우리는 예수가 언제쯤 태어났을 것이란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을 보면 당연히 눈 내리는 겨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겠죠. 두번째로 천문학자는 설왕설래 하기는 합니다만 동방박사의 별을 통해 대략 6월의 어디쯤이 아니겠냐 하기도 합니다. 끝으로 헤롯이 주전 4년 유월절 즈음 죽었다는 것으로 보아 예수는 그 이전에 태어났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의 탄생일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데요. 그렇다면 왜 성경은 예수 탄생일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복음서 기자들도 확실한 예수의 생일을 몰라서 기록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저마다 나온 날이 있지요. 중요한 건 세상에 나온 날 자체보다 그것이 만들어진 목적이나 의미일 겁니다. 저는 성경도 이런 이유를 갖고 있다 생각합니다. 즉, 성경은 예수의 육신이 태어난 날 자체보다! 는 예수 자체가 세상에 나온 목적과 의미를 중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게 된 목적과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고, 헐벗는 공의가 없는 이 땅에 정의를 세우고, 전쟁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 이 곳에 평화와 화해를 전하며, 미움과 시기가 가득한 이 곳에 사랑을 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질과 명예라는 헛된 신기루를 쫓으며 고통 받는 영혼에 참된 은혜와 인생의 길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비우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모든 생명을 다시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는 십자가를 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곧 다가올 성탄을 보며 저는 예수의 탄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가만보면 요즘처럼 예수 이름이 욕먹는 시대가 없지요. 교회가 "개독교"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적이 없습니다. 이건 순전히 기독교인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교회가 장사소굴이 되니 이런 소리를 들을 수 밖에요..
저는 이번 성탄을 통해 모든 크리스챤들이 다시 한번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았으면 하는 기도를 해보게 됩니다.
교회는 정의 곧, 가난하고 헐벗은 소외된 자를 섬기고 이들도 함께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일하고 있는가.
평화 곧 전쟁을 반대하고, 이 사회의 통합과 화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오히려 지역감정이나 진보, 보수 등의 이념 대립에 앞장 서지는 않고 있는가.
새로운 삶 곧 물질의 노예가 되듯 얽매이는 게 아니라 인생의 참의미와 행복을 전파하며 살고 있었는가. 혹여 오히려 교회가 더 물질에 얽매여 교회 건물을 세우고, 고급 승용차를 타며, 은행의 VIP 자리에 있지는 않았는가.
사랑 곧 이웃을 내 몸처럼 심지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 섬김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 모두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의미와 목적을 잘 기억하며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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