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지 않았던 처가 가는 길

빗줄기를 가르며 내려가는 길입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 였지만 뒷 좌석에 있는 아내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눈에는 더욱 굵어지는 빗줄기가 아내의 눈물처럼만 보였습니다. 지금은 장모님께서 다리를 다치신 소식을 듣고 시골에 내려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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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뜬금없긴 합니다만, 혹시 "농부병" 이란 단어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걸 손으로 해결하던 시절 오랜 시간 쪼그려 앉아 농사를 지어 무릎과 허리에 병이 생기는 농부들의 질환을 나타내는 말인데요. 

예, 지난 주말 저희는 오랜 시간 농사를 지으시고, 연세가 드심에 따라 퇴행성 관절염이 오신. 그리고 지난 주 차량에서 내리다 무릎에 충격이 와서 거동이 힘드신 장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했던 장모님의 부상과 제안

처가에 도착해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워낙 긍정적이신 장모님은 웃고 계셨지만 걷기가 아예 불가능하여 바닥을 기어다니셔야 할 정도였습니다. 제 마음이 많이 불편해지고, 아파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러니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막내딸 아내는 오죽했을까요. 표현은 안 했지만 눈빛 하나하나에서 그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이제 세살된 딸아이가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줍니다. "할머니~" 하면서 장모님 품에 안기니 장모님의 미소가 더욱 활짝 핌을 보게 됩니다. 곰 세마리를 부르고, 바닥을 콩콩 뛰는 모습을 보며 온 가족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자칫 조금은 무거울 수 있었던 시간을 잘 넘기며 아내가 장모님의 치료에 대해 얘기를 꺼내었습니다.

우선 저희는 올 여름에 저희 집에서 쉬실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번 8월에 2년 계약으로 국민임대주택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올라오셔서 운동도 하고, 손녀 재롱도 보시면서 요양하시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 저희와 함께 병원을 방문해보심이 어떻겠냐 말씀드렸습니다. 몇 가지 검사도 해보고, 만약 인공관절 수술을 하는 게 장모님의 노후를 위해 더욱 좋은 선택이라면 비용부담을 갖지 마시고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없으시던 장모님 

하지만 저희의 제안을 들으신 장모님께서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시골에 혼자 계실 장인 어른도 걸리고, 혹시나 저희 부부에게 부담이 될까 싶으신 듯 합니다. 예, 역시나 제 생각이 맞는지 장모님은 일단 침도 좀 맞고, 쉬다 보면 괜찮아 질 것이라 예전에도 그랬다 말씀하십니다. 
 
하하, 옆에서 이 얘기를 듣는 데 제가 괜히 뭔가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 "어머니~어머니~" 하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왔던 저였지만 사위는 언제나 가장 어려운 손님이란 말도 있듯 제가 부담되어 선뜻 '그러자' 못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서 입니다. 당연히 여쭤보면 아니라 하시겠지만 제가 좀 켕기는 게 있는 건지 계속 마음이 걸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위도 아들이고, 장인 어른 장모님은 내 아버지, 어머니

어제 아내와 얘기해보니 다행이 장모님의 병세는 조금 나아지셨다 합니다. 진단 결과를 보니 퇴행성 관절염에 일시적인 충격이 가해져 신경이 놀란 것이라는 데요. 이대로 며칠 휴식을 취하며 계속 치료 받으시면 괜찮을 것이라 합니다. 제 마음도 좀 안심이 되었고, 다시 한번 장모님의 쾌유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또 하나의 바람이 남았습니다. 장모님께서 저를 처남처럼 농사지을 때 막 부려먹기도 하시고, 편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었습니다. "사위" 도 "아들" 이고, 장인 장모님은 제게 있어 또 하나의 "부모님" 이시니 말입니다.
 
하하, 이거 제가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거겠지요? 다음에는 좀 더 애교있게 장모님을 뵈어야 할까 봅니다. 

음..

이거 혹시 산적 같은 외모 때문에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요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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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커져버린 아내의 모습

[LIFE]이 남자의 인생 2008. 11. 17. 15:05 Posted by 바람몰이
시어머니도 아닌 시할머니와 함께 사는 건 그리 쉬운 얘기가 아니다. 벌써 나이차이만 50년 이상이 난다. 시간에 따른 문화적 차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느 것 하나 걸리지 않는 게 없다. 게다가 그 시할머니께서 평생 장사를 하시며 뛰어난 언변과 강한 고집을 가진 분이고, 신랑의 수입이 넉넉치 않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시할머니를 
3년 동안 모시고 살았다. 기쁜 일도 많았지만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다. 때론 눈물을 훔치며 내게 따지는 아내를 보기도 해야했다. 한 없이 순수하고, 착하기만 하던 아내가 점점 성격이 날카로워지는 걸 보기도 해야했다.


물론 나나 할머니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와 아내가 다투는 날이거나 내가 할머니께 이것저것 따지는 날에는 모두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겨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어려움이 좀 풀리고 나아질까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린 결국 분가를 결정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 생선장사로 날 길러주신 할머니시다. 할머니는 나를 막내 아들쯤으로 여기시고, 나 역시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다. 따라서 분가 결정은 나로써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우리 부부마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또한 계속 나만의 주장을 하는 건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그 어린 나이에 그만하면 아내로써는  자기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아니 보통이상으로 훌륭한 아내였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아내가 이런 말을 꺼냈다. 오늘 할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그냥 분가하지 말고 계속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다 말씀드렸다 한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하였다. 사연인 즉슨 이러했다. 

지난 주 수요일 아내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었다. 향년 87세 이셨다. 그런데 삼일간 장례를 치르며 아내는 여러 생각과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자신은 며느리로써 여러 상황과 시할머니를 보았는 데, 자신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이젠 시할머니를 며느리로써 뿐 아니라 자식의 눈으로 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자식의 눈으로 시할머니를 보게 되니 그 동안 못 보던 것이 보이고, 어찌해야할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더라 한다. 그러니 할머니와 막혀 있던 대화의 통로가 조금씩 열림이 느껴지고, 또 막혀 있던 부분도 어떻게 열어야 할지도 알 것 같다 하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듣고 있어야만 했다. 혹시 '한 순간의 감정에 취해 한 얘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아내가 너무나도 진지하고, 그 말 속에 진실성이 잔뜩 스며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다시 이런 말을 해준 아내가 그저 고맙기만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냥 분가하도록 하자" 고 얘기하였다. 아내에게 일종의 "휴가"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할머니께는 내가 좀 더 수고하며 왔다 갔다 하면 되는 일이었다.

또한 가만 살펴보니 아내에 비해 내 준비가 너무도 되어 있지 않았다. 신학 공부를 하며 나름 수도를 해왔다 생각했지만 나는 아내에 비해 한참 부족한 존재였다. 그러고 보면 그냥 분가하자 하는 말은 아내를 핑계로 내 부족함을 감추려 하는 어색한 도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정말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인데..


이런 나를 보면 시어머니도 아닌 시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아내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50년이란 시간을 넘어서는..시할머니를 모시는 손주 며느리가 아닌 자식의 눈으로 보게 되는 참으로 놀라운 인식의 확장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 나는 장인, 장모님도 우리가 모시고 살자 했었다. 그러나 나는 내 할머니도 이해하고, 모시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과연 장인 장모님께는 그럴 수 있을것인지..적어도 아내가 내 할머니께 해드렸던 것만큼은 해야할텐데 그럴 수 있을런지..

아하..이거 걱정이 엄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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