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라 가족과 함께 외식한번 마음 놓고 못하는 가장의 마음은 생각보다 무게가 있다. 때론 허리를 계속해서 졸라매는 아내를 보며 괜시리 화를 내게 되고, 뒤돌아 미안해 가슴아파 하는 못난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일요일 오후 아내와 할머니, 딸아이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모두 뭔가 먹고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그냥 집에 들어간다. 할머니께서 모두의 마음을 안고 대표로 말씀하신다.
"내가 살테니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주문해~"
이 못난 사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좋았을 걸 할머니 말씀에 굳이 토를 단다.
"그냥 있는 걸로 먹죠 뭐 돈을 쓰고 그래요"
바로 여기서부터 아내의 활약은 시작되었다. 아내의 복안은 짜장밥을 통해 분위기 전환도 하고, 외식 기분도 내본다는 것이다. 퉁탕 퉁탕 거린다. 예전에 사두었던 짜장 분말을 찾아 거기 넣을 야채를 써는 것이다. 가만보니 야채 역시 재료 사용 후 조금씩 남아있던 녀석들이었다.
오호라~짜장을 잘 안해먹는 우리지만 제법 냄새가 그럴싸하다. 한참을 저으며 만들던 아내가 드디어 맛을 봐달라 하였다.
어라, 그런데 이거 뭔가 2% 부족하다. ㅋ
아내는 '아 이거 뭐가 문제지~뭐를 더 넣어야 하지'라며 연신 방법을 차증려 애를 쓴다. 그 때 내 머리를 스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내를 잠시 뒤로 보내며 가만 있어 보라 한다.
내 아이디어는 남은 찬밥을 이용 짜장에 알맞은 맞춤식 볶음밥을 만드는 것이었다. 중국집의 볶음밥이 떠올랐던 것이다. 문제는 부족한 그 2%를 과연 이것이 채워줄 수 있느냐 였는 데, 나는 볶음밥의 씹는 느낌과 센스 있게 뿌리는 소금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다음은 프라이팬 위 볶음밥의 완성된 모습이다. 약간 노란색을 보이는 건 달걀을 풀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각 자 그릇에 옮겨 담았다.
다음은 아내가 만든 짜장의 모습이다. 건더기가 가라 앉아 그렇지 남은 야채로 만든 그 속은 매우 풍성한 상황이다.
이제 아내가 만든 짜장을 내가 만든 볶음밥 위에 얹어 놓는 차례이다. 일단 보기는 괜찮아 보였다.
다들 맛이 어떤가 물어보았다. 반응이 매우 좋다. 짜장에서 느껴졌던 2% 부족한 느낌이 잘 채워져 좋다 한다. 진짜 중국집 볶음밥 같단다.
아싸~작전 대성공!!ㅋ
이제 20개월 된 딸아이도 잘 먹는다. 좋아하는 눈치이다. 밥 먹는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어 줬더니 나름 자세도 잡아본다 ㅋ
오늘 우리 가족의 만찬은 재료비 5천원 내외쯤에서 해결된 것이었다. 물론 아내의 98%에 내가 단 2%를 보탠 것에 불과했지만 이 작은 노력으로 온 가족이 행복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사실 가만보면 남자는 특별히 잘 해주진 못해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스스로를 힘들게 할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꼭 밖에 나가 특별한 걸 해주거나 사주지 않아도, 온 가족이 함께 내 작은 노력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역시 참으로 중요하고, 행복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질 거란 비관적인 얘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어려움을 어려움으로만 느낀다면 그 삶은 참으로 괴로운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부부가 맘을 모으고, 내가 작은 노력을 더해 어려움 속에서도 일상의 기쁨을 찾아갈 수 있다면 그 삶은 작은 행복이 피어나는. 어려워도 희망이 있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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