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출동 SOS 를 보니 신도를 때리는 집사가 나온다. 아..또 다시 가슴이 답답해지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무튼 믿을려면 제대로 믿어야지 이래서는 곤란하다.(귀신 축출에 대해서는 추후 시간 날 때 한번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도에게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1)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수준이 낮다는 것이고, 2)더 근본적으로 이것이 한국 교회 목회자의 낮은 수준에 기인한다는 데 있다.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수준이 낮은 것은 성경 자체에 대한 맹목적인 문자 그대로의 믿음에서 시작된다. 크리스챤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자 삶의 푯대와 같다. 수많은 선지자와 사도가 영감을 받아 쓴 것도 맞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인간 프린터가 되어 입력된 것을 그대로 출력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성경은 특별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저자가 신적영감을 받고, 그가 살던 상황과 인간의 한계 안에서 쓰여지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너무 문자 그대로 믿어버리면 성경 본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오히려 해치는 경우가 생겨 이는 결코 바람직하다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 마저 그대로 믿게 되는 꼴이니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너무 믿는 경향이 강하다. 도대체가 그 역사적 배경과 문맥, 비슷한 글 양식, 사회적 의미 등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목회자의 책임이 참으로 크다. 가르칠 때 보면 문자 그대로 믿으라하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교인의 신앙만 인도할 뿐 그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질 수 있도록 신학까지 가르치지는 않는다. 아니 여기서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목회자 자신이 별로 신학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지 않은 경우도 많다. 사실 우리 나라 목회자는 참으로 허술한 양성체계를 갖고 있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주요 교단의 정식 코스는 까다롭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나라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학교에 가고, 일년에 책 몇 권 읽고 레포트를 내면 목회자 안수를 주거나, 자기들끼리 모여 만든 신학원에서 겨우 몇 달 출석하고 목사 안수를 주는 경우 역시 존재하고 있다.
수년에 걸쳐 다양한 분야를 수도해야 할 학문을 이렇게 단기간에 이수하고 끝내니, 여기를 나온 목회자에게- 물론 믿음 하나는 존경스러울 만큼 신실한 경우가 많지만-수준 높은 사회 인식과 성경 이해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하늘의 은총을 맛보기 위함이고, 세상을 섬기기 위함에 그 목적이 있다. 교인을 예수의 모범따라 성숙한 경지에 오르게 하는 데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세상에서 "개독교" 소리나 들으며 예수를 욕보이고, 교인 한명 한명을 맹목적인 신앙에 빠지게 해버린다면 이미 그 교회는 존재의 가치를 잃고 말았다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목회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학식과 균형잡힌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수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화해를 얘기하고, 평화와 정의, 사랑을 전하는 사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교인의 믿음 뿐 아니라 삶까지 연결되는 전반적인 일상의 신앙을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예수를 온전히 따를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나오고,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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