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박근혜 씨가 확정되었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난 대선때도 박근혜 씨는 강력한 대권주자였고, 이미 새누리당은 박근혜 씨의 '사당'이란 비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씨가 여당의 첫 대권후보로 확정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최소한 남성만이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기존의 편견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씨가 진정 우리 역사에 있어 유의미한 존재가 되려면 정책을 통해 그 의미가 증명되어야 한다. 물론 박근혜 캠프측은 정부-교육-여성 순으로 정책공약을 발표하며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서 갖는 의미를 잘 살려보려 노력하고 있다. 임신부터 양육까지 국가책임제도로 간다는 컨셉은 좋은 슬로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는 박근혜 씨를 여성친화적이라 평가하는데 인색한 편이다. 박근혜 씨에게 가해지는 일련의 비판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해봐야만 여성, 보육정책을 잘 해낼 수 있다는 말은 모순 덩어리 명제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늙어 보지 않고는 노인정책을 꾸릴 수 없다는 것이 되고, 외국인이 되어 보지 않고는 다문화 정책을 꾸릴 수 없다는 말이 된다.

필자가 박근혜 씨에게 거부감을 받게 되는 측면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그가 보여온 제왕적 리더십이다. 이는 매우 강한 심정적 거부감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섬김이나 낮아짐 등은 박근혜 씨와는 왠지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데, 이러한 느낌을 받는 것이 필자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조차 모르는 그에게서 어떤 섬김과 낮아짐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두 번째 측면은 박근혜 씨가 가져온 여성정책의 내용이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그의 정책 속에 핵심이 되는 중심원칙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이른바 여성정책이란 것은 여성의 문제로 특화시켜 볼 부분도 있지만 모든 정책에 있어 고르게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즉, 단순히 여성문제를 여성만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여성/남성 모두의 문제로서 '양성평등'이란 확고한 방향성과 원리위에서 수립되어야만 한다. 어떤 조직이나 정책이든 여성과 남성의 문제를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와 구조를 개선할 수 있으며 근본적인 여성정책의 수립이 가능해 진다.

(사실 이 문제는 박근혜 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그 어떤 후보에게서도 획기적인 정책제안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박근혜가 첫 여성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에도 신선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여성 대통령이란 점 자체가 여전히 낯선 것은 우리 뿐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박근혜 씨가 여성이란 의미가 살기 위해서는 그가 내세우는 정책과 정책수행 과정 역시 뭔가 다른 점이 보여야 한다. 지금처럼 제왕적인 모습과 원칙 없는 모습으로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기 어렵다.

끝으로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은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곳곳의 핵심 지도부에는 여전히 남성이 주로 포진해 있다는 것이며, 우리 사회의 가부장성 역시 여전한 문제라는 것이다. 단순히 정치 지도자의 성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화를 보다 관계 중심적이고, 양성평등한 구조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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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명절입니다. 저 역시 처가에 내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언론보도를 보니 무려 3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대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민족의 대이동 입니다. 그런데 해마다 명절이 되면 알게 모르게 우리가 가하는 성폭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는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는 가족끼리 일어난 일이라 제대로 말도 못하는 경우가 있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요. 이에 오늘 저는 명절에 우리가 가족끼리 가하기 쉬운 성폭력을 몇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1. 아이 고추 만지기

오랜만에 여러 가족이 만나면 우선 아이들이 눈에 보입니다. 굉장히 성장한 모습이 보이지요. 그러면 꼭 가족 중에 한분이 남자 아이들을 이리 와보라 하며 '고추 얼마나 컸나 보자'고 합니다. 이런 말씀은 대개 집안에서도 상당히 어른들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다보니 막상 부모님도 뭔가 개운치 않고, 기분이 나쁘지만 아무 말도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뭘 이런 것을 갖고 그러느냐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이는 명백한 성폭력입니다. 일단 육체적 성희롱으로 규정할 수 있고, 어른이 아이에게 어떠한 위협이나 위력을 동반한다면 성추행으로까지 볼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실제 '고추 만지기'로 상처를 받은 남자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꽤 많지요.

2. 억지로 뽀뽀하기

우리가 아이들이 워낙 예쁘거나 귀여워서 뽀뽀를 하기도 하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억지로 강요하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아이들이라 하여 모두에게 억지로 뽀뽀를 해야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요.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도 싫어하고, 불쾌해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른들이 이해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약간 섭섭할 수도 있지만 내가 섭섭한 마음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성적 권리를 누리고,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줄 필요가 있다는 거지요. 그래야 아이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교육적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정표현이라고 해도 역시 뭐든지 '억지'는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3.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강요하거나 무릎에 앉히기

명절이 되면 노래방을 가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다보니 노래방만큼 재미나고, 저렴하게 놀 수 있는 곳이 흔치 않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러다보니 맥주 한잔씩 할 수도 있고, 분위기에 취해 약간 흥분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놀이' 처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블루스를 추거나 무릎에 조카들을 억지로 앉히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런 경우도 우리는 성폭력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여도 과도한 스킨쉽으로 인한 성적 수치심 혹은 불쾌감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고, 즐거운 만큼 서로에 대한 과도한 스킨쉽은 주의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4. 각 종 성차별적 발언들이나 행동들

(앞서 3번까지는 고개가 끄덕여지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4번 문항에서는 '왜 이게 성폭력이지?' 라고 의문을 가질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과거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서는 성희롱을 남녀차별의 하위개념으로 규정하였고, 현재 남녀고용평등법에서도 성차별을 성희롱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명절 때 가해지는 성차별은 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단 집안일 자체를 모두 여성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것 역시 과거 가부장적 관념이 투영된 성차별적 관행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많은 여성들이 '명절 증후군' 혹은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힘들어 하기도 하지요. 

또 다른 명절 성차별의 예는 밥상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명절에는 남성들을 위한 밥상이 따로 먼저 차려지고, 여성들은 한쪽에서 따로 먹는 경우가 보이기도 하지요. 명절 때 발생하는 성차별은 상당히 관습적이고,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며 행해지곤 합니다. 


그러나 명절 성차별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꼭 남성만이 여성에게 가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리셔야 합니다. 명절 때 남성에게 가하는 성차별적인 발언 중에는 '남자가 왜 이리 비실비실해' '이런 건 남자가 해야지'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해' '무슨 남자가 그렇게 쪼잔해' 등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남성에 대한 경제적 문제 얘기가 오가며 자연스레 남성의 가치가 측정되고, 서열화되는 것으로 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사람의 가치가 단순히 '돈'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또한 모든 남성이 반드시 씩씩하고, 대범해야 하며, 강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 역시 우리가 쉽게 놓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하며

오늘 저는 명절 때 쉽게 가할 수 있는 성폭력의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해 드렸습니다. 성폭력에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외에도 다양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명절 때 가족끼리는 주로 언어나 육체적인 성희롱이나 성차별이 가해지곤 합니다. 여기서 성차별은 성폭력과 따로 떨어져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성폭력 속에 포함된 개념임이 중요한 포인트이지요.

또한 명절 때 가해지는 성폭력은 주로 어른이 아이에게 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가족이란 구성과 개념의 특성상 어른에게는 함부로 말 대답을 하면 안되는 우리나라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막상 아이들이나 아이를 둔 부모님은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적이고, 배려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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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여배우의 '가슴'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단 섹시 스타의 기본 조건으로 가슴을 먼저 꼽게 되었고 몸매 역시 가슴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지요. "착한 가슴" "베이글녀" 니 뭐니 하는 문구와 내용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연기자나 가수 데뷔 역시 가슴 마케팅을 먼저 시도하는 경우도 흔한 것 같고 말입니다.

가슴이 일종의 상품이자 자기 과시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의미라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지 싶습니다. 수많은 남성팬의 관심을 받아야 먹고 사는 걸그룹 또는 여자 연예인은 가슴이 곧 돈이 되고 섹시스타로서의 기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가치부여가 '가슴'으로 상징되는 '외모'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지점입니다.  

그러다보니 여자 연예인 뿐 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외모'에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가슴 사이즈나 몸매에 대한 남성의 열망은 상상 이상이니 말이지요. 늘씬하고 하얀 다리를 잘 드러내고, 큰 가슴을 보여주면 이제는 아예 새로운 개념의 '덕德' 이 생겼다며 '육덕'이 있다 하면서 취직도 잘 되고, 보다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날 수도 있다 하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여성비하 또는 차별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여성의 몸에 대한 규격화 되고 정형화된 이미지 덕에 이른바 "쭉쭉빵빵"한 일부 소수의 젊은 여성만이 아름다워졌고, 수많은 대다수의 여성은 섹시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 되었으며,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여성은 자신의 몸이 볼품 없어졌다 여긴채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배후에는 우리 사회의 여성의 지위가 숨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는 언듯 보기에는 '여성상위시대'로 보이지요. 가정에서도 엄마의 힘이 더 세고, 사회에서도 엄마의 입김이 장난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즉, 경제권이나 정치적 권력, 출산 후 사회진출, 기업내 임원비율 등을 보면 여전히 우리 나라는 매우 후진적임에 틀림없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 이 후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여성의 몸과 성을 매우 치밀하고, 교묘하게 상품화 시킵니다. 결국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뚱뚱해도 안되고, 쌍커풀이 없어도 안 됩니다. 키가 작을 수는 있으나 그러면 어떤 연예인처럼 오밀조밀하게 비율 좋은 몸매와 귀여운 외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성의 두세배가 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남성도 참 많이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상은 남성에 대한 폭력이기도 한 것입니다. 쉽사리 "착한 가슴"을 갖고 있는 여배우를 보며 환상에 젖어 판타지에 빠지게 되지요. 이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 또는 물화 시키며 여성의 몸에 대한 소유와 통제의 욕구를 강화시킵니다. 결국 여성을 상대로 배려나 존중보다는 일방성을 담보할 확률이 증대되구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통념을 증대시키고, 남성 스스로를 이중적인 모습에 빠지게 합니다.  

또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남자 취급을 못 받습니다. 키가 작으면 남자 축에도 못끼고, 야외에 나가면 힘도 잘 쓰면서 용감한 척도 해야 합니다. 숯불 한번 제대로 못 피우면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직장에서는 매일같이 야근에 술자리를 가져야만 하구요. 여직원 컴퓨터 본체나 포맷도 일일히 다해줘야 합니다. 또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무슨 남자가 쪼잔하게 그러냐'며 핀잔을 듣습니다. 이것 역시 정말 피곤하지요. 결국 양성간 성적차별과 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남자만 행복한 것도 아닌 매우 이상한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겝니다.

러니 참 어려운 얘기지요. 저도 딸만 둘인데, 이녀석들이 살아갈 인생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견하게 됩니다. 또 아들만 있는 분들도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지요.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가부장적 개념에 빠져있는 이상은 그 누구도 쉽게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없을 겝니다. 이제 더이상 성평등의 문제는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트래픽이 너무 늘어 무슨일인가 했습니다. 다음 메인에 글이 실렸군요. 오랜만에 실린 거라 참 반갑고, 이곳에 방문하신 독자님을 환영합니다. 오늘 하루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며 앞으로 더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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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왜곡된 회식 및 접대 문화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요즘 룸살롱에 가면 자연산을 찾는다고 하더라'라는 얘기를 하여 대국민 사과까지 하게 되었다. 룸살롱에서 '여성 접대부'를 찾는 게 일상화 된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여진다. 사실 우리는 회사 단체 회식을 하면 1차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2, 3차에 이어지는 회식자리는 결국 룸살롱 등을 찾으며 '여성 접대부'를 찾고, 자연스레 성매매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거래처 직원과의 '접대'도 비슷하다. 우리의 접대문화 역시 1차를 넘어 2, 3차에 이르며 잘 접대한다는 것에는 '성접대'가 포함되고 있다. 얼마전 있었던 '성접대 검사' 사건을 보면 성매매와 회식, 접대 문화가 이른바 '사회지도층'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일반화 된 일부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왜곡된 회식 및 접대 문화는 성폭력과 속성을 공유한다

이렇게 잘못된 회식-접대문화는 여성의 몸 또는 성을 왜곡하게 한다. 이 때, 여성의 몸은 그녀의 인격과 분리된 하나의 '객체' 또는 '대상'이 되며 여성은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한 모든 권리를 상실하고 반대로 남성은 그녀를 '소유'하게 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만다. 이렇게 왜곡된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인식은 가부장적 사회의식과 맞물려 여성 일반에 대한 범위로 확장되고, 우리 사회의 성차별은 반복-재생산 된다.  

이는 성폭력과 그 기본적 속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성폭력시 주된 피해자인 여성은 상대의 힘 앞에 자신의 권리와 몸 또는 성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만다(그 도구가 무형의 권력이든 유형의 폭력이든 상관없다). 이 때 주된 가해자인 남성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남성성'에 대한 기대와 무의식적인 학습을 통해 여성을 통제 및 소유해야한다는 합리화 근거를 갖고 접근하게 된다. 결국 주된 피해자인 여성은 그 자신의 인격이 사라진 채 주된 가해자인 남성에 의해 소유 및 통제되면서 폭력과 권력 앞에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는 절대적 약자의 지위에 처하게 되며 또 다시 우리 사회의 '성차별'이 전제된 '성'을 매개로 한 '폭력'이 반복-재생산 되고마는 것이다.

(참고 : 취업포탈 사람인의 08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의 52%가 회식자리에서 성흐롱이나 성추행을 경험했고, 회식자리가 아닌 평상시 직장생활에서도 경험했다는 대답이 39.1%에 이르렀다. 또한 우리 나라의 성폭력 발생비율은 세계 2-3위를 기록하는 실정이다.)

회식-접대문화 개선은 기업과 기관이 먼저 나서야...

왜 우리는 꼭 회식 때 술을 마시며 취해야만 하는걸까. 왜 접대는 고급 룸살롱에서 해야하고, '물 좋은 곳'으로 안내해야만 하는 걸까. 남성만이 공유한다는 이런 문화를 언제까지 수용해야만 하는걸까. 사실 성차별을 극복하고, 회식-접대 문화를 개선하는 건 개인 뿐 아니라 기업이나 기관에서 먼저 나서야할 문제이다. 개인의 의지와는 달리 업무실적 등 일정부분 강요되는 측면있다는 것이다.

실제 회식-접대문화를 개선하고, 가족친화 경영을 하는 건 기업이나 기관에도 매우 유용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작년 12월 조사결과를 보면 가족친화 경영을 실시한 기업 172곳 중 66%가 경영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을 하였다. 직원들의 사기진작(80.1%)과 이미지 제고(49.8%), 이직률 감소(48.5%)에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 워킹맘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는 교보생명은 2003년 1억3000만원이던 1인당 생산성이 지난해 1억7000만원으로 30.7% 높아졌다. kt 역시 출산 후 직장 복귀율이 무려 99%에 달한다.

정리하며

사실 성차별이나 성희롱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람은 흔히 보게 된다. 그렇지만 왜 현실은 이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재생산 되는 것일까. 이는 한 개인이 노력하여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기업이나 기관이 나서야만 하는 부분도 있는 즉,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회식문화나 접대 문화 개선을 시작으로 하는 성차별 없는 가족친화적인 기업 및 기관 운영은 이제 세계적 대세이자 우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당면과제이고, 이는 성폭력과 그 기본 속성을 공유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변화시키는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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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성추행(?) 사건 관련 장면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김주원에게 들어가있던 길라임은 백화점에서 일어난 사건 현장을 보고 가해자를 응징하지요. 그 후 경찰서에 가고 말이지요. 참으로 인상깊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진짜 인상깊게 본 것은 그 다음 장면이었습니다. 박상무가 회장과 박여사 앞에서 당시 일어난 사건 설명을 하던 장면이지요. 박상무의 설명을 듣던 누나가 성추행의 성립요건에 대한 언급을 할 때입니다. 이 장면을 인상 깊게 본 이유는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희롱과 성추행의 차이

박상무의 누나 박여사는 '성추행은 가해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느냐가 중요하다'는 요지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가해자에게 분명하고, 단호하게 대응하여 처리하는 게 맞다는 거지요. 후자의 경우 맞습니다. 성관련 사건은 매우 분명하게 처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성추행은 위와 같은 요건으로 성립되는 게 아닙니다.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가해자의 의도여부와는 상관없이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느냐를 중시하는 건 바로 "성희롱"입니다. 직장내 성희롱의 경우 대부분 직장 상급자에 의해 자행되고 따라서 피해자는 고용이나 진급 등 고용전반에 피해를 받을 수 있어 아무런 호소도 하지 못하게 되기 쉽지요. 그래서 피해자의 근무환경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그 피해를 온전히 호소하여 밝고 건강한 직장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걸 채택하고 있고, 이 관점에 따라 피해자의 심적상처나 충격을 우선 고려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희롱에는 언어적인 것도 있고, 그 외 육체적인 것도 있습니다. 말로 야한 농담을 하여 성적 수치심을 주거나 과도한 신체적 접촉을 통해 수치심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걸 환경형 성희롱이라 하지요.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성희롱은 단순히 말로 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란 것입니다. 이러한 성희롱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객과 관련된 문제까지 성희롱이라 판단함으로써 그 범위가 확장되었고, 민법에서 주로 다루는 부분이라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성추행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일단 성추행은 형법에서 다루는 문제입니다. 즉,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추행이 성립되려면 성희롱에 더해 위력이나 위협, 폭행 등이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이런 것들을 동원해 강제적으로 신체접촉을 하게 되면 그 때부터 성추행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나오는 장면은 성추행이라기 보다는 고객에 의한 육체적 성희롱이라 보는  게 맞지요. 만약 이 경우에서 가해자를 형사처벌하고 싶다면 모욕죄 등으로 고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직장내 성희롱 발생시 대처방법

만약 직장내에서 성희롱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입니다. 사실 성희롱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그리 대단한게 아닙니다. 바로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그것이란 것이지요. 간혹 어떤 분들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악의적으로 공격하여 돈을 뜯어내면 어떡하냐는 분도 있습니다만 사실 성희롱으로 소송까지 가봐야 피해자가에 오는 보상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금액으로만 따지면 변호사 선임비용도 안 나오지요. 따라서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 특히,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 데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는 그 자리에서 일단 사과하시는 게 좋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피해를 주었다면 조심하도록 할게요. 미안해요' 이 한마디면 당신은 상당히 Coooooooool 하고, 예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로 내가 피해자가 된 경우입니다. 만약 내가 피해자가 되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게 중요합니다. 대부분 문제제기를 해도 아무 소용없을 것 같아 지나치시는 분이 많은데요. 이럴 경우 당신은 계속해서 피해자가 되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걸 보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문제제기를 하셔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만약 이렇게 해서 안 될 경우는 사내 고충처리기구를 이용하시는 게 그 다음입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회사측에서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공식적인 처리에 들어가야 하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노동부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먼저 찾으실 걸 권해드립니다. 제가 필드에서 만나본 결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좀 더 풍부한 경험과 피해자 중심주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세번째는 내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지켜 보게 되는 경우입니다. 즉, 제 3자의 입장에서 사건의 발생과 처리과정을 보게 되는 경우인데요. 이 경우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자칫 가해자를 두둔하며 2차 가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걔는 원래 행실이 좀 그래'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니야' 등 입니다. 원래 행실이 어떻든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요. 또 사람이 워낙 좋아도 실수는 누구나 하기 마련입니다. 이럴 경우 조금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함부로 가해자를 두둔하지 말고 사건 처리 결과를 보는 게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성희롱 발생시 대처방법

끝으로 만약 일상에서 성희롱이 발생하면 어떡해야 할까요. 사실 현행법으로는 일상에서의 성희롱을 규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성희롱 문제를 다루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우 역시 범위만 확장되었을 뿐 직장관련 사건만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일상에서 일어난 성희롱은 어떤 처리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만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일상에서 성희롱이 일어날 때 역시 초기의 대응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직접 표현이 어렵다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실 수 있도록 어떤 방식이든 시도를 하셔야 합니다. 처음에 쉽게 보이거나 그냥 지나치시면 상황은 악화되거나 끊임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만약 가해자로 지목된 분이 사과를 하셨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셨다면 당신의 대응은 상당히 성공적이고, 바람직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과요구에도 불응하고, 자꾸 이같은 일이 반복될 때는 공식적인 처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즉, 모욕죄 등으로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착수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평소 가해자의 성희롱 발언이나 행동 등을 기록하거나 사과요구 편지등을 보내고 이를 내용증명 한 후 경찰에 고소할 때 증빙자료로 첨부하는 등의 방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저는 성희롱의 개념과 관련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각 입장과 상황에 따른 대응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처리절차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예의"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이것이 성희롱이 맞냐 아니냐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또 누군가를 처벌하고 말고가 주된 관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밝고 건강한 직장문화 만들기"와 "성차별 없는 성평등 세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성희롱이란 것 자체가 굉장히 권위적이거나 경직된 직장 문화 속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또 남성 중심문화가 짙은 곳일 수록 자주 일어납니다. 제가 여기서 '남성중심문화'라고 하는 것은 남성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야한 농담을 분위기를 좋게 하는 활력소로 여기거나 술자리에서 성매매를 반복하는 등의 문화를 일컫는 것입니다. 이런 곳이나 분들은 여성의 몸이나 성 또는 심지어 동성의 성이나 몸 역시도 그 인격을 보지 못한채 쉽게 대상화하며 희롱거리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성희롱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사람에 대한 예의"를 우선 갖출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특히, 현실적으로 주된 피해자가 여성인점을 고려할 때 여성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매우 중요합니다. 고정된 성역할에 근거한 성차별 (예 : 커피 심부름 등)을 주의하시고, 야한 농담이나 회식 후 자연스레 이어지는 성매매 등은 지양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정리하며

성희롱과 성추행 등은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즉, 나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고, 내가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한 상황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타자에 대한 배려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스스로 성평등 의식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관련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이런 노력이 조금은 어색하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나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이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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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여러 언론은 김주희 선수의 사진을 제시하며 "여자 얼굴이.."라고 말을 흐린 적이 있었다. "여자 얼굴"이 이렇게 될 때까지 경기를 진행시키는 데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경기 진행과 선수보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면 다른 방식이 얼마든지 있다. 김주희 선수의 땀과 눈물을 보면서까지 굳이 "여자 얼굴"을 들먹였어야 했던 것일까.


비단 이 경우만이 아니다. 한번은 이런 사례가 있었다. 모 대학의 조교로 근무했던 A씨가 있었다. 그런데 A씨가 상당히 예뻤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수업 전 출석을 부르는 등 조교활동을 하다가 남학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이 후 과게시판에는 누구누구 누나 예뻐요 너무 좋아요 등의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A조교는 게시판에 자신에 대한 평가를 그만 해달라고 하였다. 자신은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입장이므로 업무에 관한 얘기를 해야지 외모로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잘 정리되는 듯 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다음 반응이다. 도대체 이쁘다고 하는 데 뭐가 불만이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칭찬을 해줘도 뭐라 하니 어이 없다는 것이고, 배가 불렀다는 말이 나왔다. 역시 얼굴이 예쁘면 000가 없다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늘 외모로 평가받아야 한다. 구인광고에는 늘 "용모단정"이란 애매한 기준이 존재한다. 도대체 어떤 게 용모단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키가 안되면 귀엽기라도 해야한다고 한다. 만약 미모가 안 되면 몸매라도 좋아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시선과 기준으로 평가한 것인지 모르겠다. 언제쯤 여성의 몸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걸까.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면 좋겠다. 그 동안 당연시 해왔던 '남성-여성'의 성역할과 기대치를 낯설게 바라보는 질문을 해보자. 기존의 관념을 '역발상'을 통해 '낯설게 바라보기'만해도 우리의 젠더 감수성은 좀 더 향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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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게 얼마전 있었던 "꿀벅지" 논란과 관련해 의견을 물으셨던 분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1)사건개요

얼마 전 모 그룹 멤버의 "꿀벅지" 논란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사건은 이 여가수의 허벅지를 꿀벅지라 하는 걸 보고 한 여고생이 여성부 게시판에 이 용어를 쓰지 못하게 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후 인터넷 상에는 수많은 논쟁이 오고 갔는 데, 그 핵심을 정리하자면 1)칭찬을 성희롱이라 여기는 과민반응이라는 측과 2)꿀벅지가 음담패설의 한 용어로 사용되던 것인데 이걸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건 안된다는 측 3)끝으로 여성의 몸을 음식에 비유했으므로 명백한 성희롱이란 세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여성부의 입장성희롱은 피해자의 모멸감 등이 핵심기준이므로 개인적인 문제라는 의견을 밝혔고, 언론사의 표현을 규제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문제제기

그러나 돌아볼 문제이다. 과연 성희롱 문제를 이슈화 하며 제기하고자 했던 문제는 무엇일까. 당초 시민사회측에서 이 얘기를 꺼냈던 건 기존에 만연화 되어 있던 남녀의 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또한 여성 등의 성을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며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문화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것을 제도화 된 방식으로 표출한 게 바로 성희롱 문제였고, 성희롱 문제를 통해 문화를 바꾸는 통로를 여는 데 그 본래적 의미가 있었다.

만약 이걸 보지 못하고 '성희롱이 무엇인가?', '굴욕감의 기준이 뭐냐?', '어떻게 처벌해야 하느냐' 라는 데 묻혀 버리면 성희롱 문제는 아무런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지루한 논쟁에 빠져 버리기 쉽다. 성적 굴욕감이나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성차별적 (조직)문화이고, 이것이 왜 어떤 구조로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느냐인 것이다.


3)실망스러운 여성부의 입장

꿀벅지 논란은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여성부의 입장은 더욱 그렇다. 우리가 한 여고생의 지적을 보며 주목해야하는 건 '과연 이것이 성희롱이냐 아니냐' 가 아니다. '왜 꼭 칭찬을 성별화 된 방식으로만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과 함께 "몸"과 "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육덕"이 지배하는 우리 사회 문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끝으로 이 논쟁의 이해당사자가 누구냐라는 것이다. 

이걸 보고, 지적하지 못하게 되면 "그럼 너네도 초컬릿 복근이라 하지 않느냐' 라는 말이 나오며 지루한 말꼬리 잡기가 이어지게 된다. 또한 '남자들은 다 그런 존재' 라는 말이 나오며 여성부처럼 "개인적인 문제"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이 나온다. 어떻게 이 문제가 '개인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여성 문제를 비롯 성차별적 구조를 확인하고, 양성평등이란 세계적 흐름을 만들어갈 여성부에서 나온 대답이라 하기엔 정말 실망스러운 "단견" 이라 아니 할 수 없다.


4)육덕이 지배하는 문화

다시 필자가 제기했던 문제로 돌아와 보도록 하자. 요즘 방송을 보면 "육덕", "짐승돌" 등의 용어가 칭찬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먼저 "왜 꼭 성별화된 방식으로 칭찬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자본과 미디어 산업의 발달이 가속화 시킨 여성 또는 남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필자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성별 불평등 권력관계를 작동하는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다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이론은 잠시 접어둔다쳐도 "건강" 과 "삶의 질"을 얘기하며 시작되던 "몸"에 대한 관심이 왜 이렇게 변질된 것인지 아쉽기만 하다.


5)꿀벅지 논쟁을 보며 웃고 있는 건

여기서 잠시 자본의 상술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필자는 앞서 이 논쟁의 이해당사자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하였다. 과연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데로 "남성"과 "여성"일까?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양성간 진행된 논쟁을 통해 그 반사이익을 보는 건 모 여가수를 모델로 채용했던 소주회사이고, 이를 긴요한 방송소재로 사용했던 방송사였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문화상품으로서의 여가수와 그녀에 대한 관심과 집중을 통해 누가 반사이익을 얻었냐는 것이다. 


우리가 이에 주목해야 하는 건 이것이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슈화 되었으며 또한 전개되었고, 또 다시 다른 이름으로 반복 재생산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때마다 이 논쟁에 휩싸여 공연한 힘을 빼야하는 걸까. 지금 이 꿀벅지 논란을 보며 웃고 있는 건 남성과 여성 그 누구도 아닌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6)정리

성희롱 문제는 성희롱 자체에만 국한해 볼 수 없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는 그런 측면이 매우 많으나 만약 계속 이런 식으로 성희롱 문제를 접근한다면 성희롱 문제를 제기했던 그 본래적 의미는 사라지고, 지루한 말싸움과 상처 입은 감정만 남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희롱이란 문제를 왜 제기했는지 그 속의 함의를 보고, 문화를 바꿔나가는 노력을 경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꿀벅지 논란 역시 마찬가지이다. 꿀벅지란 용어 자체와 성희롱 문제 자체만 바라보면 끝없는 감정싸움만 나오게 된다. 필자는 이를 통해 우리는 '왜 성별화 된 방식으로만 칭찬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논쟁의 뒤에는 은폐된 자본의 상술과 우리 사회의 "육덕문화" 그리고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취업조차 할 수 없는 구조가있다. 우리가 이를 보고, 변화의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제2, 제3의 꿀벅지는 언제든 재생산 될 것이다.


<출강문의-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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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페미니스트의 이중생활

[LIFE]이 남자의 인생 2008. 11. 21. 14:36 Posted by 바람몰이

장안의 화제였던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다보니 중간에 '제 아무리 날고 뛰는 여자도 애 낳으면 다 똑같아진다..저도 별 수 없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지극히 작은 부분이었지만 우리 나라 여성의 현실이 한마디로 집약된 듯 하여 씁쓸한 마음이 들었었다.

요즘 주변을 보면 흔히 말하는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한다. 가정내 아내의 발언권도 상당하여 요즘은 오히려 고개 숙인 남자가 많아졌다고도 한다. 가만보면 상당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그런데 그런 가정에서도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아내의 몫이고, 좀 좋은 남편은 자주 도와준다는 표현이 적절한 수준의 참여를 하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직장여성의 경우 가사분담 시간이 남성의 두배에 달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역시 비슷하다. 어느 잡지를 보니 한국의 남녀불평등지수가 악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세계경제포험의 세계 성격차 보고서를 보니 한국은 작년보다 11계단 하락하여 총 130개국에서 108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최하위권에는 아랍권 국가가 포진해 있으니 사실상 꼴등이나 다름없다.

(세계경제포럼은 교육과 보건, 고용, 정치 등 4개 부문에서 불평등 상황을 계량화 하여 완전 평등을 0으로 가정한 후 평가하게 되는 데, 올해 우리는 작년 0.6409에서 0.6154로 떨어졌다.) 

특히, 최근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신자유주의 물결에 따른 여성 근로자의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핵심가치 중 하나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들고 있다. 이는 결국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적은 임금지출이 가능한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물론 남성 근로자 역시 특별히 나은 건 아니지만- 정리해고의 1순위도 여성 근로자이고, 현재 여성근로자의 70%가 비정규직임을 보면 상대적으로 여성 근로자에게 더 많은 부분 영향이 끼침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만약 그 여성 근로자가 그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라면 그 영향은 더 크게 작용하고 만다.
  

얼마 전 신차 구입 후 열심히 운전 중인 여동생의 푸념을 들을 수 있었다. 운전을 하다보면 도대체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양보가 줄어든 요즘 모습일 수 있으나 유독 여자 운전자에게 더 심한 것 같다 한다.

나는 여동생의 말에 공감하는 편이다. 예전에 어떤 이가 우리 나라 여자는 자신들이 얼마나 존중받는 지 모르고 부당한 대우 받은 것만 기억하는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다는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피해의식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 존재하여 느끼는 건데 어쩌란 말인가. 

아하..그런데 이거 참 웃긴다.

이런 글을 쓰는 나이지만 글을 쓰며 새벽 출근 전 함께 막 잠에서 깨어난 아내를 보고 "나 아침밥 안해줄거야?"라 따지던 게 생각난다. 신혼 초 인터넷으로 구입한 의자를 남자인 내가 조립해야한다 바득바득 우기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아내에게 윽박질러 울게 만든 것이 떠오른다. 새벽에 마구 울던 아이에게 똑같이 일하고 퇴근 한 아내를 깨워 우유를 주고, 달래라 하던 게 떠오른다. 

허허..잠시 거울을 피해다녀야 할까보다.

나의 이중생활에 코가 얼마나 길어져 있을지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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