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제 : 대통령은 정말 지금 뭔가 되고 있다고 보는가? >

어린이 집 선생님들은 왜 모두 바뀌었나?

지난 해 딸아이의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은 가정통신문을 항상 진심어린 마음으로 매우 꼼꼼하게 써주던 그런 분이었다.  우리 부부는 딸아이에게 엄마처럼 포근하게 보듬어 주는 그 선생님을 매우 좋아했었다. 다른 선생님들 역시 그 태도나 열정 등을 보며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 집 선생님이 모두 바뀌는 일이 있었다. 딸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닌지 꼭 1년 쯤 되던 때였다. 이유가 무엇인지 원장님께 물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일 뿐이라는 대답이었다. 물론 그 다음 새로 오신 선생님들도 참 좋았다. 지금 딸아이가 승급하며 올라간 반 선생님은 율동을 매우 잘 하는 밝고, 쾌활한 분이시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는 것이다. 왠지 이 분들이 한번에 모두 그만 둔것이 이들이 비정규직이고, 2년이란 고용의 시간을 채웠기 때문 같아서이다. 또 이런 것을 학부모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학부모들은 그저 틀에 박히 대답만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좋은 일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해법이란 요지의 얘기를 하였다. 필자도 동의한다. 지금 우리는 많은 일자리와 좋은 일자리가 매우 절실하다. 사실 일자리 창출이 복지라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일자리가 필요한 것은 맞는 얘기라 본다.


하지만 문제는 "좋은 일자리"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만들수 있겠느냐 이다. 사람마다 정의를 달리 할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가 보는 "좋은 일자리"는 최소한 "정규직" 일자리는 되어야 한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비정규직이란 존재 자체가 우리 경제와 삶의 질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흔히 기업가는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임금의 부담을 조절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통해 기업 이윤을 높이고, 기업이윤을 높임으로 근로자에게 더 많은 복지혜택을 줄 수 있다 얘기한다.


그런 측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 이전에 근로자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반 밖에 되지 않는 임금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당연히 임금이 적으니 구매력이 줄어들고, 여기에 고용의 불안함이 더해지며 소비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물가는 끊임 없이 오르고, 자식들은 자라나게 되니 그 막연함을 경마나 주식 등을 통해 만회하려는 보상심리가 작용하기까지 한다. 


좋은 일자리는 "의지"가 만들어 내는 것!

좋은 일자리는 돈이 없거나 방법을 몰라서 만들어 지지 않는 게 아니다. 좋은 일자리를 필자와 같이 최소한 "정규직"이라 정의할 때 이는 이미 방법과 사례가 나와 있고, 문제는 "의지" 라는 것이다. 특히, 정부와 기업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필자는 정부에게 이런 의지가 있는지 사실 매우 의문이다. 예를 들어 정규직 전환시 지원되는 세제혜택을 보라. 노동부는 지난 해 7월만해도 36.7%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발표했다. 그러면 산술적으로 벌써 수만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인데, 정규직 전환시 근로자 1인에게 제공되는 세제혜택을 받은 경우는 지난 해 총 5억원 즉, 고작 170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뭔가 되려면' 분명한 정부의 의지실질적인 결과로 표출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거시적 지표는 나아지고 있을 지 모르나 국민의 삶은 여전히 빡빡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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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회는 세상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람, 세상적인 것 등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세상의 가치나 관념이 들어설 수 없는 거룩한 곳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교회와 세상은 구별되지 않기도 합니다. 교회 역시 세상의 한 구성원이고, 크리스챤의 삶의 무대 역시 세상입니다. 또한 먹고 사는 문제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경제와 신학을 혼동할 우려를 지적합니다(구티에레즈). 그러나 신학과 교회가 경제문제를 외면한다면 이는 먼 세상의 구름 잡는 듯한 힘없는 이야기만 하게 될 뿐입니다. 본래 신학의 성격 자체가 종합학문이상 또한 이 세상의 작은 조화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와 선하신 의지가 미쳐야하는 이상 신학과 교회는 경제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목회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의 물신숭배적 성격이나 공산주의의 한계 등을 신학적으로 비판하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개혁, 크리스챤의 삶 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격동의 우리 사회 속에서 크리스챤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할지 균형잡힌 시각으로 그 실마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예컨대 이런 경우를 봅니다. 요즘 가장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쌍용차 근로자의 해고였습니다. 물론 시장의 요구대로 근로자 해고의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경영진의 무능력과 수익창출실패의 책임을 힘없는. 십수년씩 일한 근로자만이 모두 져야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와 회사사정이 어려워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노동시간이나 정년을 낮추면서라도, 봉급을 낮춰서라도 함께 일자리는 나눠 회생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예를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2000cc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계획이 있다 해봅니다. 그러면 총 구입금액과 한달 유지비 등의 견적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이 때 2000cc가 아닌 한단계 낮은 차량을 구입해 구입금액의 차액과 한달 유지비 차액만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것입니다.

'나뉘어진 밥은 모든 사람을 배부르게 하고, 나뉘어진 고난은 모든 사람을 단결시킨다' 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과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출발은 먹을 것을 함께 나누는 데서(유월절) 시작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하나하나 성경적으로 풀어가며 뭔가 세상과는 다른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3.저는 신학을 전공했지만 국제경제학 역시 부전공하며 공부하였습니다. 투자까페 특별회원으로 활동하며 주식상담을 해주기도 합니다. 석박사급 전문가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경제공부를 하며 느낀 것은 두가지 입니다. 먹을 것으로는 사람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이고, 목회자는 반드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구조 즉, 경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양떼를 예수께서 살아가신 삶으로 바르게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한국 교회와 목회자가 성장과 소비만을 강조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치우치기도 했고, 나눔이 없는 성장과 생명이 없는 소비는 파멸만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무조건적인 금욕과 절제나 교회의 성장을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기왕에 성장할거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을 위해 성장하는 것이 좀 더 성경적이지 않냐는 것입니다. 소비를 할거면 기름값이 비싸서 자가용을 안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위해 기쁨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소비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목회자의 균형잡히고, 높아진 소양이 경제위기를 경험하는 우리의 정신없는 이 세상과 성도의 삶을 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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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최근 계속되는 경제위기로 경제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요즘은 저축과 절약만 강조하던 예전과 달리 다양한 교육기법이 개발되었지요. 그래서 시간 여유가 있는 초등학생 시절부터는 꼭 경제교육을 시키려는 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 저는 자녀의 경제교육을 '왜 시키려는가' 라는 질문과 함께 이론교육을 위한 몇 가지 방법론을 간단히 제시하고, 나름의 결론을 맺으며 이 글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왜 경제교육을 시키려는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경제학을 전공하면 경제를 잘 알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경제를 잘 알게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돈을 잘 벌어 더 행복하게 살으라는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오산 중 오산이지요. 공부를 할 수록 복잡해지고, 알 수 없는 것이 경제입니다. 경제, 경영학 박사라도 실제 사업체 경영에 실패하는 것이 바로 경제입니다. 즉, 내 아이가 돈을 많이 벌게 하려 경제교육을 시키시는 거라면 아예 생각을 접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허나 저는 경제교육을 꼭 시켜야 한다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인생이 행복한 게 아님은 경제공부를 할 때 가장 잘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까페>에서의 유시민 씨 말처럼 저도 국제경제학을 전공하면서 경제는 결코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말하자면 경제교육을 시키려는 목표부터 재설정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아이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에 구속되는 게 아니라 내 삶의 도구로 물질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물질 없이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나 내것을 나눌 때 더 큰 행복이 있을 수 있고, 무한경쟁 속에 물질을 거머쥔다는 것이 내 인격까지 담보하지 않음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실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 보십시오. 예전처럼 먹고 살게 없어서 힘들어 합니까. 지금 국민소득이 너무 적어서 우리가 힘든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함을 누린다는 나라 혹시 아시는지요. 그 나라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적은 소득 국가이지요. 사실 우리는 방글라데시보다 못한 행복도를 갖고 있습니다.


2.어떻게 시켜나갈 것인가

먼저, 경제공부는 혼자하기 힘든 측면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린이용 경제신문 등도 좋은 것이 많으나 아이들이 처음부터 혼자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경제캠프 같은 곳도 좋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단기간일 때가 많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경제교육을 시키려면 부모님께서도 함께 공부하셔야 함을 말씀드리려 하는 것입니다. 신문이건 책이건 같이 읽고, 같이 공부하셔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전제로 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둘째, 어린이 경제신문 등을 구독하시는 분이 많은데요. 저는 바로 신문을 보지 마시고 먼저 경제공부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주셔야 함을 집고 넘어가려 합니다. 신문은 말 그대로 구독하는 것인데요. 사실 아이들이 학습지나 학원다니기도 바쁘다보니 별로 흥미가 없는 신문은 잘 보지 않습니다. 그냥 쌓아두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요즘은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는 학부모님이 많으신데요. 이럴거면 차라리 아이특성에 맞는 재밌는 경제만화 한권 고르셔서 읽게 하는 게 낫습니다. 아니면 아예 경제 관련 보드게임 등을 구입하시어 온 가족이 함께 즐기시는 것도 동기부여에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셋째, 기왕에 보시는 거 굳이 정기적으로 돈 들일 필요가 있을까요. 한국에서 경제 전반을 관장하는 곳이 바로 한국은행입니다. 이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가면 어린이, 청소년 경제교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주소가 어린이 경제마을인데요(
http://www.bokeducation.or.kr/ 회원가입 후 보시면 청소년 수준과 대학생 일반인 수준까지 있으니 이걸 이용하시는 건 어떠시겠습니까. 만화도 있고, 게임도 있습니다. 제가 해보니 시중에 있는 것들에 전혀 뒤지지 않았습니다.


3.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시면 사실 위의 세가지는 잊으셔도 됩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의 경제생활입니다. 부모님의 삶을 보고 아이들은 인생 사는 법을 배웁니다.

가만보면 마트에서도 충동구매 하시는 부모님을 자주 볼 수 있지요. 특히, 아이들이 조를 경우 주변의 눈을 의식해 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우자와 다툴 때도 돈 문제로 사네, 못사네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유산이나 부모님 모시는 문제로 누가 얼마를 냈네 어쨌네 하며 다투기도 합니다. 드라마도 꼭 보면 신데렐라 얘기같은 것만 나오고, 또 이걸 같이 보고 말이지요.

자, 이런 모습을 본 우리 아이들은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요. 이 아이에게 건강한 소비습관이 잡힐 수 있을까요. 돈을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로 인식하게 할 수 있을까요. 기왕에 벌어도 정직하고, 바르게 벌어야 한다는 맘을 품게 할 수 있을까요.

부모님이 계획성 있는 소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매일 돈 타령을 하거나 한다면 이 아이의 경제 미래는 어둡기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돈" 보다 "고귀한 삶의 가치" 가 있음을 "부모님의 삶" 으로 살아있는 경제교육을 시킴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며

저는 돈 자체가 나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돈에 구속되는 삶을 사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즉, 이제는 경제교육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지요. 내 아이가 돈 잘 벌어 부자 되는 경제교육이 아니라 내 삶의 도구로써 돈을 넘어설 수 있도록. 그리고 이것보다 고귀한 삶의 가치가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 경제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동기부여가 가능한 놀이나 만화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차근차근 교육을 진행하여 현 경제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왜 이리 힘들어했던 가를 가르쳐줘야 하지요. '물질이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이제는 그 갈길을 잃어 괴로워한다' 이 시대를 평가했던 소로스의 지적이 왜 나왔는지 알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나 이는 이론이나 설명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삶을 통해 물질을 넘어 보다 서로 사랑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도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을 지도해야 비로소 하나하나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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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아직도 네모가 있다.

[LIFE]여유와 지혜의 장 2008. 9. 3. 10:38 Posted by 바람몰이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때를 잘못타고난 탓에 가난한 것이라 불평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항상 불만과 짜증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발의 노인이 찾아와 그를 보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젊은이, 왜 그리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가?"

 "전 왜 이렇게 가난한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하다고? 내가 보기엔 아주 부자인 걸."

노인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였습니다.

 "제가 부자라고요?"

젊은이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노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자네의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 1천 위안을 준다고 하면 승낙하겠는가?"

 "네? 싫습니다"

 "그럼 한쪽 손을 자르고 1만 위안을 주지. 어떤가?"

 "안 됩니다."

 "자네의 두 눈을 10만 위안에 팔게나."

 "다른 데 가서 알아보세요."

 "자네가 지금 당장 죽는 다면 1천만 위안을 주겠네. 어떤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그렇다면 자네에겐 이미 1천만 위안어치의 재산이 있는 셈이네. 이런
  데도 가난하다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텐가?"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청년은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인생철학 중에서)


9월 위기설로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좀 더 잘 먹고 살아보려 경제 대통령을 뽑았지만 국제 정세악화와 경제팀의 무리수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저 역시 쓰리잡을 뛰며 처자식과 할머님을 봉양하려 하지만 여전히 너무 힘이 듭니다. 심지어 딸내미 운동화 한켤레 사자는 말에도 고개가 숙여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어렵고, 여유가 없으면 삶은 더욱 고단해지는 법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경제가 발전하고,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어진 우리이지만 마음은 더욱 회색빛 물이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겐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다 했다지요?

네, 우리에겐 아직도 태안을 살려낸 측은지심과 단결력, 집중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사랑하는 가족과 내 열정이 있습니다.



이제 한가위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음만큼은 밝고 커다란 보름달처럼 다스려갔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을 다스려갈 때 상황을 이길 힘도 나고, 내일을 향한 희망도 잡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는 지금 무엇이 있으신가요?

좋게 좋게 생각하면서 정리해보세요!! ^.^

나에겐 아직도 네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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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시사]세상살이 2007. 11. 12. 11:06 Posted by 바람몰이

우리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시장에 나가도 그렇고 개인 사업하시는 분을 만나 뵈도 그렇습니다. 요즘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경제 침체론을 자주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 근거는 계속 증가하는 청년실업과 끝없는 내수침체 등을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의 정부 이 후 무역에 따른 경상수지는 거의 매달 대부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 성장률 역시 4-5%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실제 2000-2005년 OECD국가 평균 경제 성장률이 2.8%임을 감안한다면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국부의 잣대로 여기는 외환 보유고 역시 2천억 달러를 넘습니다. 오히려 정부에서는 넘쳐나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해 외국 부동산 구입이나 송금 제한을 완화 하는 형편입니다.

끝으로 대기업의 영업 수익률과 이익률은 계속해서 증가 또는 유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주가지수가 -오락가락은 하지만-2000을 넘어섰습니다. 시장에 자본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에 곤두박질 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잘 방어하고도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체감경기와 경기지표와 일정부분 괴리가 있음을 실감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경제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다음과같이 보고 있습니다.

먼저 성장의 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고용없는 성장이 대부분이란 것이지요.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의 설비투자와 고용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성장은 IMF 이 후 금융상의 성장입니다. 또한 국민의 80%가 취업해 있는 중소기업의 성장이 아닌 대기업의 성장입니다. 따라서 고용이 없고 계속해서 자본만 축척해 가는 꼴이 되고 이것이 일반 서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으니 계속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두번째는 대기업의 단기 위주 운영정책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유가 상승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과 국내의 정치상황 등을 볼 때 대기업에서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계획을 세워 설비 투자 및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 같습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이 늘어감에 따라 분명한 이익률 상승의 성과를 보여하는 부담이 증가한 것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자본을 빼버리고 시세차익만 얻은 후 가버리니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분명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위주 정책을 펼치게 되어 가는 것이지요.

끝으로 비정규직의 증가때문에 그렇습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압박으로 인해 계속해서 CR 즉, 단가인하 부담을 지게 되어 경영이 어렵습니다. 대기업은 "노동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단기간의 이익을 내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의 어이 없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한 몫을 했구요. 그러다보니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고 구매력이 떨어지니 당연히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경기가 침체되어 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돈이 있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줄여가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정부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가장 크다 생각합니다. 물론 언론의 어처구니 없는 사실 왜곡과 호들갑, 정치권의 말조차 안나오는 공세도 있지요.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이야 했겠지요. 실제 기업 대표를 초청해 만찬도 많이 하고 단도직입하여 필요한게 뭐냐..뭘 해주길 원하냐..등 얘기 하는 모습도 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과 갈등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잘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량이자 리더쉽 인 것이지요. 이에 실패한 것은 결국 정부에 말 그대로 "일차적"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 국민 역시 반성할 지점이 있습니다. 너무 생각없이 언론 보도와 소문에 넘어간다는 겁니다. 그 구체적인 근거가 없이 일방적 주장만 하고, 그 반대편의 이야기는 관심조차 같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마찬가지이지요. 인터넷을 한번만 뒤져봐도 그렇고 반대편 주장을 들어보면 자기 생각을 좀 더 합리적으로 세워갈 수 있는 건데 말이지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거지요. 상생하기 위해서는 서로 도우며 선순환 구조를 적절히 만들어가야 하는 데 그러지를 않는 겁니다. 일단 제 밥그릇 먼저 챙겨놓겠다는 거지요.

이제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양 진영으로 구분되어 있다 합니다. 사실 세계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국익을 위해 그리고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지혜를 모으는 열린 가슴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민주주의란 바로 이 지점에 그 기준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한 것이지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노동자와 자본가가, 진보와 보수가, 정치권과 국민들이 말입니다. 이들은 어느 것 하나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니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경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서로를 믿지 못 하고 내 밥 그릇 찾기에만 몰두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서로에 대한 비난만 하면서 말이지요. 아마도 이런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4-5만불이 되어도 계속 어렵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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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적은 짧은 생각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12. 10:05 Posted by 바람몰이


필자는 "국제 유가와 패러다임"(
http://blog.naver.com/kkuks81/30005482669)이라는 글에서 국제유가가 꾸준히 상승할 것을 예측한 바 있다. 또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세계 경제위기의 심화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소비성 및 착취성을 밝히며 "생명"을 향한 선택을 강조했었다.

사실 이 글을 쓸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설마..'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요즘은 하나둘씩 '진짜 그렇게 되는 것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유가의 고공행진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고, 특별히 유류세 및 정유사 횡포가 큰 우리 나라에서는 그 부담이 너무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정신사적으로는 해체적이고도 지극히 개별적인 것과 실증적인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들이 주는 장점을 놓치고 단점만이 반복되고 있고, 현실적으로는 지극히 물질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와 은혜로 바로 잡아가야할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선도해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우리가-특별히 교회가-물질중심의 삶에서 물질과 고귀한 정신이념-정신사로의 상승지향적 성향 포함-, 해체적이고도 지극히 개별적인 것 및 실증적인 것과 전일적이고도 포괄적이며 유기체적인 것의 조화를 꾸준히 추구해나가거나 유지해나갔다면 지금의 이런 파국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별히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하늘의 신령한 지혜 및 성령의 인도하심을 세상에서 유행하는 정신사 및 물질적인 삶과 온전히 구분하여 설파하여 나갔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실제 우리는 절벽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상황이기에-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나님께서 온 생명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시면서까지 기다려 주시며 은혜를 베푸셨기에 이렇게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필자는 우리네 인간이 가지는 본성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비본래적인 상태(김경재 "폴 틸리히 신학연구"참조)에 있는 즉, 원죄에 빠진 상태인 인간이 지닌 이기성과 욕심, 잔학성, 폐쇄성, 정체성, 보수성 등으로 대변되는 그 본성에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필자의 주장이 꼭 다 들어맞거나 모두 공감하지 않는다해도) 늘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고, 따라서 다양한 주장이 오고가는 것이며 여기에는 당연히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내일의 방향을 제시하는 부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와는 반대로 현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좀 더 물질적인 풍요를 중시하는 부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네 인간의 심사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자유로운 본래적 상태에 머문 본성이었다면-우리는 에덴동산의 낙원과 같은 상태처럼-얼마든지 서로를 비판적으로 돕고 도우며 꾸준히 살아갈 수 있었을 것 아니었겠는가.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논리이다) 성경에서 바벨탑을 쌓다가 온 인류의 언어가 흩어지고, 다르게 된 것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알아가고, 타개해가며, 새로운 앞길을 열어 가는 것은 우리네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며  이것을 위해 이미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며 그 거대한 물줄기를 생명의 물줄기로 바꾸어 놓으셨던 것이다. 정작 문제를 일으키고도 깨닫지 못하고 뻔뻔하게 자기를 죽인 인간을 너무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믿고 다시금 기회를 주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고, 희망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세상을 보며, 판단해가야 하는 걸까..

우선 조화를 깨뜨리는 지극한 편향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지극한 편향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극과 극은 그 끝에서 하나의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어설픈 편향으로 인한 폐쇄성일 것이다. (오늘의 삶이 지극히 물질적인 삶에만 편향된 것은 어쩌면 이것이 어설픈 편향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물질적인 땅의 삶에서 고귀한 인간애를 깔고 있는 하늘의-하나님의-삶으로의 반전을 통한 변증법적인 조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일적인 삶의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 결국 교회가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생명을 상품으로 전락시키지 말고..은혜마저 값싸게 팔아버리지 말고..겸손하면서도 열심있는 삶의 추구를 해야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착취지향 및 소비지향적 성향을 이겨내고, 지속적인 개발 및 유지가 가능한 생태적이고도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만큼 살아가며 휴머니즘을 구현해낼 수 있는 역사적인 생명으로의 삶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지구적이고도, 전생명적인 삶과 조화가 필요하다. 특별히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착취성을 바탕으로 한 강대국의 그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진정한 인류의 하나됨과 행복의 추구 및 생명의 조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간 계층간 빈부격차 및 자연, 영혼과 생명의 파괴를 가속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셋째이다.

끝으로 우리 한명 한명이 "성인군자(?)"가 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성인군자라 하니 조금 이상하기도 하지만 결국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보며, 온 생명을 볼 줄 아는 시대와 역사, 생명을 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른 '의식화(?), 계몽(?)' 등이 된 성숙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에 나를 못박고,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어 십자가의 도를 깨달으며 날마다 거듭나 모든 일에 협력하여 선을 이룰 줄 아는 성령에 사로잡힌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끊임없이 나와 우리가 사는 오늘을 바로 보고, 뒤를 반성하며, 내일을 살아가며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기체적이고도 정신지향적인 사고와 물질적인 삶의 현실속에서 전일적으로 판단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글을 정리해보자.

워낙 두서없이 쓰다보니 서론이 좀 긴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글이기는 하다..;; 어쨌든 필자가 하려는 말은 알아서 흘리고 마음에 와 닿는 한 마디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분명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다시 건강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책을 필자는 제시한 것이니 이를 통해 스스로 어떻게 살아왔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세상을 보며 살아갈 것인가를 조용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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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다

[시사]세상살이 2007. 11. 8. 13:43 Posted by 바람몰이
 
2007년 7월 30일 인터넷 기독교 신문 에큐메니안에 올렸던 글

 

여동생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다

세계 경제의 전망 속에서 교회를 보다

                                                                                                            임정혁 kkuks81@yahoo.co.kr


오전에 여동생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야기의 요지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여동생은 저축성 예금에 가입해 매달 적금을 넣고 있다. 이 예금 상품은 자금운영을 통한 투자를 하는 것이고, 최근의 주가상승으로 이자가 상당히 붙었다. 그런데 지난 주 급락한 주가의 영향으로 그동안 붙었던 이자의 총액이 줄어들고 있다. 이 저축성 예금을 해약해서 이만큼의 이자라도 챙겨야 되나 말아야되나 궁금하다.

필자는 어떤 대답을 하였을까?

지금의 호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최근 국내 주식시장은 주가2000의 시대를 맞이하는 등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세계 증시의 호황 및 국내의 풍부한 유동자금의 유입 등을 대표적인 원인으로 열거하며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겠다. 물론 지난 금요일은 "검은 금요일"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급락하기도 하였다. 또한 일선 주식시장 현장 전문가들은 1800-1700선까지의 하락을 경고하기도 하였고, 일부는 그 이상까지 하락할 것을 예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중 다수는 꾸준한 하락이 후 중장기적 흐름 속에서 주식시장이 반등할 것을 예측하고 있는 것이 현상황이다.

필자는 - '중장기'가 얼마만큼의 기간을 의미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 위에서 언급한 전문가들의 예측이 적중할 것이라 본다. 우선 세계 경제 자체가 일단 호황국면이다. 둘째로 미국내 사정에 의한 쇼크가 한번씩 있기는 하지만 세계 경제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세계 경제의 호황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 아닌 중국의 연 10% 대에 달하는 성장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아직까지는 국제 유가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호황이 오래 가지 않고, 어쩌면 마약과도 같은 성격으로 인해 그 끝이 매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도구와 목적의 반전, 민중의 고통을 예고

보드리야르는 "사회 전체가 주식회사가 되어 악마와 계약을 교환하고 풍부함을 대가로 초월성과 목적성을 팔아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목적의 부재에 괴로워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즉, 현대 자본주의가 어떠한 흐름의 방향이 없는 말하자면 합목적성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 그 첫째 이유이다.

둘째는 인간 및 뭇 생명의 풍요를 위한 도구가 이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상하역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소로스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인간 고유의 가치들을 화폐적 가치들이 대신 하는 병든 현상"이라 진단한바 있다.(첫째와 둘째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논하기로 하자)

끝으로 좀 더 현실적으로 볼 때 세계경제의 풍요와는 별도로 그 이윤율이 점점 감소함으로써 종국에는 상당한 고통이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풍요와 안락은 세계경제가 상당수준에 올라와 있기에 누리는 것이며 일정수준에 오른 경제는 국제유가의 끝없는 고공행진과 더불어 급격한 하락세를 이윤율의 하락과 더불어 이룰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미 배럴당 75달러를 넘어섰고,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두바이유 역시 70달러에 육박하였다. 수많은 예측 속에 골드만삭스는 배럴당 95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란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고 특히 중국 경제의 성장과 관련한 유가상승설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금융세계화의 확산은 자본주의 위기의 반증

다시 한번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분명 세계의 석유 매장량은 그 끝이 있다는 것이고, 휴버트 정점설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과 생산량과의 상관관계에서 그 상승의 정점은 2006-7년이며 그 이후는 계속해서 매장량과 생산량이 감소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이러한 예측의 배후에는 급속화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현상이 있다. 한신대의 윤소영 교수는 금융 세계화의 확산은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반증이라 하였고, 서울대 김세균은 결국 이 모든 위기의 충격은 세계의 민중들이 질 것이라 경고한바 있다.

이것의 배후에는 당연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투기자본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경제는 지금 계속되는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는 자본수지와 무역수지가 늘 동률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경제가 유지되는 것은 한국, 일본, 독일 그리고 최근의 중국의 자본유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심화되는 미국 경제의 위기와 세계 경제의 위기는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인한 이른바 "오일쇼크"와 금융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민중의 삶의 피폐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호황을 곧이 곧대로 볼 수 없고, 이것은 마약과도 같은 현상일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진보적 교회도 속한 교회로 돌아가는게 좋겠다

필자는 여기서 소위 말하는 민주화운동을 해왔던 진보적 교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진보적 교회는 과거의 화려한 역사는 그만 말하고 이제 자신이 속한 교회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그래서 자체의 개혁을 통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에 부족함 없는 질적-양적성장을 이뤄가면 좋겠다. 어찌 될 지 모르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와 한국의 정세를 관망하며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아예 사회에서 발을 빼라는 게 아니다. 자신들이 정치세력이 되어 앞에 나서다가 뒤돌아 텅빈 교회를 보고 결국 어설픈 도인이 되어 교회에 세상을 등지고 가만히 농사만 짓고 있지 말라는 얘기다.(이에 대한 이야기도 추후 자세히 하도록 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여동생에게 어떤 대답을 하였을까..필자는 여러 이야기를 꺼내며 "그냥 좀 더 관망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여동생이 가입한 상품의 기한이 1년 남짓밖에 안남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상품의 만기가 5년 이상이었다면 필자는 관망하다 6개월내지 1년내에 해약 해버리라고 하였을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예측과 판단들이 잘못되고 또 잘못된 것임을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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