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1.25 예수는 왜 눈물을 흘렸나-(2-2)
  2. 2008.10.13 직접 땀흘려 일하는 예수 2

예수는 왜 눈물을 흘렸나-(2-2)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8. 11. 25. 23:50 Posted by 바람몰이


예수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인가

그런데 예수가 만드는 평화는 흔히 말하는 현실의 삶을 무시한 내면이나 내세의 평화라기 보다 좀 더 적극적 의미를 품은 분명한 현실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예수는 온 몸을 투신해서 평화를 선포하고,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말하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적극적 개념의 평화를 갖고 있던 예수
먼저 예수는 구약 성경의 샬롬 신앙을 갖고 있었음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샬롬" 이란 직역하면 평화를 말하는 것인 데, 흔히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전쟁반대' 구호로 대변되는 전쟁부재, 개인 내면의 평화 등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옷을 빠는 것'이 아니라 '옷을 만드는 것'과 같은 창조의 개념입니다. 즉, 전쟁부재 상황을 유지하는 보존 활동과 질적으로 다른 '평화 부재의 상황에서 작업을 통해 비로소 평화를 이룩해내는 창조 활동'을 말하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평화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서 시작
예수의 이러한 평화는 예언자 이사야가 정의가 평화를 가져온다 이야기 하고, 시편 기자가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이야기 했듯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서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은 정의를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않으며,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렘22:3). 또한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생명을 구원하고, 도움이 없는 자를 건지고, 압박하는 자를 꺾는 것이라 합니다. (시72:4) 마리아의 입을 통해서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고, 제왕들을 왕자에서 끌어 내리며, 낮은 사람들을 높이고, 주린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지금 정의가 없고, 착취와 부정, 거짓, 파괴, 양극화 만이 계속되는 예루살렘을 보며
평화가 없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강팍함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그 속에서 울부짖는 영혼이 보여 너무 가슴이 아프니 말입니다. 또한 이런 맥락 위에서 예루살렘에 도래할 하나님의 심판도 선포하고 하는 거지요.


정리 하는 글 : 우리 사회를 보면서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예수가 지금 이 사회를 본다면 또 다시 두번째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는 서민을 위한다 말은 하지만 정작 서민 눈에는 부자를 위한 정책 밖에 보이지 않고. 경제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양극화는 계속 심화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보다 냉혹한 입시의 경쟁에 빠져야만 하지요. 대북 관계는 지금 죽어가는 수만의 어린이와 동포를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는 갈 수록 더 늘어나고,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교회는 또 어떻습니까. 예루살렘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더 낫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어려운 세상에 대형 교회 목회자는 고급 승용차에 올라 타 있고, 교회는 세습의 대상이 되며, 낮은 자세로 섬기지는 못할 망정 은행 VIP나 되고 말이죠. 사회적으로는 일개 시민단체보다 도덕성이 낮다 평가 받고 있습니다. 종교간 화해와 사회 통합에 기여는 못할 망정 오히려 대립과 분열을 야기시키는 행위만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지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가 전하려 했던 그 복음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지향하던 가치와 노력을 받아 올 수 있어야 하겠지요. 예수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발걸음을 쫓아야 합니다.

바로 그럴 때 비로소 교회가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참된 공동체가 되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섬기며 화해의 사도가 되는 십자가를 충분히 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왜 눈물을 흘렸나-(2-1) 바로가기

예수는 왜 눈물을 흘렸나 (1)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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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땀흘려 일하는 예수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8. 10. 13. 17:23 Posted by 바람몰이


1.저는 로또를 사지 않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로또 살 돈도 아깝기 때문이고, 둘째는 당첨되도 기분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왠 로또 얘기냐구요. 요즘 보면 가만 앉아서 돈 버는 사람이 자주 보여 그렇습니다. 부모 잘 만나 유산 상속 받는 것까지는 좋으나 세금을 안 내도 처벌 받지 않는 모습이나 부동산이나 그림 잘 사서 돈 벌어대는 모습..뭐 좋게 말하면 투자겠지만 저 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허탈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노동의 가치를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땀흘리는 것을 강조합니다.
먼저 하나님 자신이 직접 노동을 통해 천지를 창조했다 성경은 고백합니다. 그냥 거저 생긴 게 아니라는 거지요. 

또한 예수 자신이 노동자였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부모가 하던 일을 자연스레 물려받는 경우가 많았으니 예수 자신도 아버지 요셉처럼 목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예수는 자신이 만든 멍에는 가볍다는 비유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자신도 일한다는 고백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2.예수가 일하며 먹고 사는 데는 분명한 범위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용할 수 있는 만큼의 양식을 버는 데 까지 였습니다.

그가 일용할 양식을 강조한 것은 사람이 그 이상을 원할 때 오게 되는 유혹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작은 것에 감사하지 못하면 끝없는 욕망은 사람의 삶을 항상 불행하게 느끼게 합니다. 또한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그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생의 여유를 놓쳐 버리게 됩니다. 끝으로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모른 채 이기적인 삶만을 살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맙니다.

구약 성경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것 이상의 양식을 모을 때 그것이 썩어 진동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내 욕심을 버리고, 공동체의 삶을 살며, 인생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때 하나님은 수십년간 매일 같이 양식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예수는 철저하게 이러한 성경의 맥 정점에 서서 분명히 선포를 하고 있는 겁니다.


3.예수가 직접 땀흘려 하던 노동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넓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노동이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노동이었습니다. 
좁게는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리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며 억눌린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어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지탄 받던 당시 세리장이. 그 중 한명은 예수를 만나 자신의 내면에 하나님 나라가 가득차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거둔 재물 중 부당하게 거둔 것은 네배로 돌려주겠다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새롭게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은총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예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훗날 쓰여진 성경 본문에는 마음이 가난하다 표현되어 있으나 원문은 그냥 가난한 자이다.) 이미 이 세상이 버리고, 지금 충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기억하고, 위로해주신다 합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 대한 분명한 꾸짖음이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예수를 만나 세상의 가치에 묶인 자신이 해방되고, 눈이 뜨이며, 억눌림에서 자유를 얻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또한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가 함께 상생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은총의 해가 되었습니다. 그 사회나 개인 모두의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4.오늘날 우리의 삶은 아무리 잠 안자고, 발버둥치며 일해도 반지하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이는 동시에 내가 땀흘리지 않아도 돈이 돈을 벌게 하고, 이 돈은 곧 힘이 되어 법망을 교묘히 피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정당하게 재물을 모은 자마저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하고, 죄인처럼 살아가게 합니다. 결국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구조가 됩니다. (사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체가 그렇기도 합니다만) 

사람들은 소외감, 박탈감, 허무함 등에 빠져 점점 영혼이 곤고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가난한 이나 부유한 이 모두 똑같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직접 땀흘려 일하고, 일용할 양식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부유한 이나 가난한 이 모두에게 해방감과 자유를 주고자 합니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넘어서 행복하고, 참된 인생을 살 수 있게 인도하고자 합니다. 실제 자신이 직접 나무를 다룬 목수로써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철저한 노동을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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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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