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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왜 싫다고 안 했니?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13. 8. 13. 12:18 Posted by 바람몰이

 

성폭력, 최근 우리 사회가 가장 주목하는 범죄의 한 유형이다. 우리나라의 성폭력 발생 건수는 연간 2만여 건에 이르고 있을 만큼 심각한데, 일반적으로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해 가해지는 모든 성적행위를 일컫는 말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상대방이 원하지 않거나 거부하는데도 성적행위를 가할 경우 성폭력이 된다는 의미이다.

다말과 레위인의 첩 이야기

이 개념에 따른 상황은 사무엘하 13장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암논은 성경에는 그가 다말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병(?)이 났고, 이를 이용해 다말을 불러들인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그는 다말이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려 하자 다말을 끌어안고 자신과 함께 누울 것을 제안한다. 그러자 다말은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 오라버니!(삼하13:12)’ 라며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현한다.

그러나 암논은 이를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완력을 이용해 다말에게 성폭행 가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는 적반하장으로 다말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하인을 시켜 밖으로 내쫓은 후 빗장을 걸어 잠그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다말은 목을 놓아 울었고, 이를 알게 된 압살롬은 훗날 암논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모조리 죽이게 되는 가슴 아픈 그러나 너무나도 분명한 성폭행 상황을 만들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위 경우는 피해자가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위치였고, 또 그렇게 하였기에 성폭력의 성립 여부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판단이 용이하다. 그러나 만약 위 상황에서 다말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 피해자가 그냥 가해자가 하자는 데로 가만히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또 피해자가 공주가 아닌 노예였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를 판단할 수 있는 사건이 사사기 19장에 나온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의 한집안의 가부장은 그 집안에 있는 노예를 비롯한 여성의 처우를 맘대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이 본문의 주인공 에브라임 산지 출신의 한 레위인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는 하룻밤 유숙하기 위해 들렀던 기브아에서 불량배에게 위협을 받게 되자 자신의 첩을 내어주기에 이른다. 그리고 여성은 밤새도록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 사건을 접한 우리는 대개의 불량배들을 손가락질하곤 한다. 그렇다. 이들은 오늘날 같으면 특수강간 혐의로 1.5배 이상의 가중처벌을 받는 엄중한 죄를 저지른 자들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남편과 노인의 집안을 구한 여성을 칭송하기도 한다. 그렇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희생은 많은 이들을 살려내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가해자 지목이나 미화가 전부가 아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성경은 레위인이 자신의 첩을 마치 물건처럼 ‘내주었다’고 표현한다. 당시 문화 즉, 여성은 한 집안의 가부장의 소유물이란 전통에 따라 그녀의 의사표현은 물어지지 않았고, 당연히 반영되지도 않았다. 결국 밤새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여성은 숙소 앞까지 힘겹게 걸어왔지만 그녀의 남편은 깊은 잠에 빠진 채 그녀를 기다리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홀로 고립된 채 문지방을 붙잡고 죽어야만 했다. 남편과 노인의 집안을 살리는 미화 속에서도, 온 이스라엘이 분노에 이르는 상황에서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남겨지고 말았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서두에서 제시한 성폭력의 개념이 얼마나 허점이 많은가를 알 수 있다. 레위인의 첩은 거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처지였다. 만약 그녀가 거부 의사를 표현한다면 또 다른 사회적 비난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또 집단 성폭행의 상황에서는 그녀가 아무리 애원을 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앞서 다말의 경우는 그녀가 공주임에도 가부장적 문화에서의 서열구조와 암논의 남성적 완력 때문에 그녀의 거부 의사표현이 묵살되고 말았다.

성폭력에 대한 개념이해 바뀌어야

실제 성폭력 사건의 발생상황에서는, 아무리 사소한 성희롱이라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명확한 의사표현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것은 성폭력이 단순히 가해자의 성적 욕망 등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복합적인 권력구도가 개입된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심지어 거부 의사를 표현해도 가해자의 왜곡된 성 의식이나 폭력성으로 인해 묵살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에 요즘은 성폭력을 판단할 때 피해자의 거부 의사 표현 여부를 묻지 않는다. 특히, 성인과 아동, 상급자와 하급자 등의 권력구도가 반영된 상황과 관계, 육체적 폭력이나 협박, 위계 등이 반영된 상황과 관계라면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이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성이나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 여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여기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란 개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상대방의 허락이나 동의, 합의 없이 가해진 모든 성적행위라 볼 수 있다.

성폭력에 대한 개념이해가 바뀐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전자의 경우는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관점이 더 많이 적용된 것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애정표현이라 하면 그냥 그렇게 넘어가게 되고 만다. 실제 우리 법원에서는 겨우 11세짜리 성폭행 피해 아동에게 ‘그때 왜 싫다고 안 했니? 너도 좋아서 했니?’라는 질문이 던져지곤 하였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피해자의 관점이 더 많이 적용된 것으로 가해자가 애정표현이라 주장해도 이와 달리 피해자에게는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신명기 등의 다양한 말씀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의 책임성을 지적하며 사형에 이르는 엄벌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자신이 소유한 노예라 할지라도 함부로 성적 가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성까지 폭넓게 내포하였고, 예수님은 이를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까지로 확대하면서 당시의 권력집단이었던 남성이 여성을 하나의 소유물이나 성적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한 인격 그 자체로서 볼 수 있어야 함을 깨우쳐 주고 있다. 철저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성을 착취나 정복의 대상이 아님을 정확히 지적하는 대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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