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라 좀 낫다합니다. 남자아이라 확실히 다르다 합니다. 전 이렇게 보는 당신의 관점이 변해야 한다 합니다.

여아에게는 공주만화와 인형만 사주고, 예쁘다 귀엽다 합니다. 남아에게는 파워레인져와 자동차, 로봇만 사주고, 씩씩하다 용감하다 합니다.

만날 돌봄과 예쁨만 본 여아에게 이와 관련된 칭찬을 하니 이것만 좋은 걸 줄 알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며 자랍니다.

만날 싸움과 힘 겨루기만 본 남아에게 이와 관련된 칭찬을 하니 이것만이 남자의 이상인 줄 알고 그 기대와 믿음대로 성장합니다.

그러다보니 성별에 따라 최소 15%이상의 아이들이 이성의 기질에 가까운 뇌를 갖고 있는데도 이것이 개발되지 못한채 사장되어 버립니다.

나머지 비율의 아이들도 누구나 갖고 있는 양성적 기질을 건드려 보지도 못한채 너무 특정 성별의 특성으로 자라니 훗날 양성이 서로를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여기게 됩니다.

각 성별에 부과하는 성역할과 기대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자같은 남자, 남자같은 여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이성을 어릴 적부터 공감하는 능력과 양성성은 충분히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아라서 거칠고, 드센것이 아니지요. 여아라서 얌전하고, 차분한게 아닙니다. 남아 중에도 차분하고, 조용한 아이가 있고, 여아 중에도 사납고, 거친 아이가 있습니다. 타고난 성별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어떤 가치관과 태도로, 어떤 용어를 써가며 양육하느냐 입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이성의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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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남자다운 것인가?

요즘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오는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보면 극중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에게 차 안에서 소리치는 장면이 나오지요. 자기랑 같이 살건지 죽을 건지 말하라 소리를 지릅니다. 또 이 장면을 그대로 따와서 무한도전의 모 개그맨은 '죽을래 사귈래'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지요.

어제 해피투게더를 보다보니 또 비슷한 맥락의 모습이 나옵니다. 방송에 출연한 모 개그맨은 함께 출연한 여배우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거침 없이 몸을 만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얼굴을) 쳐주는 게 멋진거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지요.

물론 위 드라마는 극의 흐름에 따라 최대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는 것이였을 겝니다. 또 아래의 예능프로 역시 웃자고 했던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고민이 됩니다. 왜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매우 일방적이고, 마초성이 강한 모습을 남자다운 것이라 여기는 것일까요. 반대로 왜 여성은 이럴 때 가만 있거나 그냥 '가세요' 정도만 해야하는 것일까요.

남성성과 여성성은 늘 변해왔다

소위 말하는 '남성성'이나 '여성성'이란 것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늘 변화해 왔습니다. 때론 통통한 여성이 미의 기준이 될 때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나 성적 욕구를 표현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남성 역시 모든 걸 책임지며 꼭 '바깥 일'만 할 필요도 없고, 이렇게 소리를 잘 지를 필요가 없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것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은 것이며 이것을 굳이 따를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자면 이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21세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실상 '한물 간' 사상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이른바 '선진국' 그룹은 양성평등을 국가 경쟁력 확보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수적 과제임을 인식하고, 각 종 정책과 사회문화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당연히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반성이 있고, 성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소질과 흥미, 적성에 맞는 일과 캐릭터를 개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요.

허나 우리는 여전히 여자 아이는 핑크, 남자 아이는 블루를 가르칩니다. 여자 아이는 늘 치마를 입으며 '선머슴아' 처럼 뛰어다니지 말라 집안의 어른들이 훈계를 하십니다. 저는 무려 20년을 넘게 공직생활에 있던 7급 공무원이 자기 팀장에게 커피를 타다 바치는 모습 역시 많이 보았더랬지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관념은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각 국의 문화와 사상이 교류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성역할'에 대한 부분은 우리 모습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좀 더 성의 경계를 허물고, '양성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병대 사건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에 일어난 해병대의 여러 사건 속에 저는 왜곡된 남성성 역시 굉장히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판단을 합니다. 가령 성매매를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수열외를 당해버린 병사의 사례는 그 극명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부사관은 구타를 금지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사병들에게 왕따를 당해 상담을 하기도 했지요.

모두 전형적인 '남자다움'에 대한 오해 속에 나온 것들입니다. 여성을 많이 거느리거나 성경험이 많은 남성, 구타를 참아낼 줄 알아야 남자다운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이지요. 미군을 보면 구타를 없애고, 수직적인 질서가 아닌 프로의식과 자율적인 팀웍 형성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강군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군문화 즉, 왜곡된 남성성에 기반한 문화로 21세기를 끌고가려 하니 끝없이 문제가 나오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양성성을 개발한다는 것은

제가 양성성이 잘 갖춰졌다 생각하는 분 중 한분이 '차인표'씨입니다. 차인표 씨는 드라마에서는 굉장히 선이 굵은 연기를 많이 하시지요. 그 분의 외모부터가 남성미가 물씬 넘치기도 하구요. 각진 턱선과 엄청난 근육.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차인표 씨가 가정에서 생활하는 모습이나 어린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부드러운 모습을 보게 되지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연출이 아님을 '입양'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도 있구요. 

또 다른 예로 저는 채시라 씨를 들기도 합니다. 채시라 씨를 보면 우선 참 훤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요. 특히, 이 분의 젊은 시절 미모는 우리 나라를 대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채시라 씨가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프로' 의 모습이 물씬 풍겨납니다. 매우 철저한 자기 관리와 개발의 모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양성성을 개발한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가 되는 것도 아니며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남성도 여성성을 개발하며 여성성의 측면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여성도 남성성을 개발하며 남성성의 측면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성과 여성이 화성과 금성에서 온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닌 서로 하나될 수 있고, 어울려 더불어 사는 그래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정리하며

저는 위 방송에서 나온 모습을 이해합니다. 드라마이고, 예능이니 그랬겠지요. 그러나 이것을 당연하다는 듯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곤 합니다. 또 이러한 고정된 성역할을 주장하는 분들과도 자주 논쟁을 벌이곤 합니다. 이러한 관념이 우리의 정신사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나 문화의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마초 같은 남자나 현모양처 같은 여자라는 캐릭터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것을 감지해야 하고, 이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교육부터 군대 문화에 이르기까지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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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제일이라 합니다. 신혼부부의 이혼률 말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4세 이하 젊은이들이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사례가 전체 이혼율 평균의 10배에 이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빨리 했다가 감당을 못하고 헤어지는 사례가 느는 것이라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지요.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이혼사유 1위가 성격차이란 것을 보면 통계청의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됩니다. 오늘 이 글은 신혼부부의 이혼원인을 나름의 시각으로 고찰하고, 이를 통해 예비 부부 또는 신혼부부에게 도움이 되고자 포스팅됩니다. 아무쪼록 유익한 시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결혼식 준비'는 하는 데, '결혼준비'는 하지 않는다.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식 준비 자체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데, 결혼준비에는 너무도 소홀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식도 중요하지요. 이를 준비하다 파혼을 하는 걸 보면 결혼식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결혼식과는 비교도 안되는 일들이 넘쳐 납니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준비에 얼마나 소홀한가는 학창시절 시험과 비교하면 금방 나옵니다. 학교에서 중간고사 한번 보면 어떤가요. 요즘은 한달전부터 준비하곤 하지요. 새벽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혼이 맺어진다는 결혼생활을 위해 얼마나 준비하던가요.

2.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있다.

가장 믿는 사람이 배우자입니다. 그만큼 기대하고, 의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대치가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함께 설정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나의 기대치란데 있습니다. 흔히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는거 아니야'라고 하지요. 도대체 이건 누가 정한 것인지요. 바로 이런 일방적인 기대치가 서로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실망이 계속되면 어느 순간 '연인'이 아닌 '웬수'가 되고 맙니다. 웬수가 되면 정말 모든 게 보기 싫어지지요. 저 역시 이혼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통해 잘 느낀 바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신경이 곤두서고, 행동 하나하나가 싫어집니다. 기대치를 낮추거나 함께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화가 필요하지요.

3.부부의 대화법을 배우지 않았다.

부부의 대화는 조금 특별합니다. 조금만 실수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면 바로 서운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서운함을 그 때그 때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분노로 표출되게 됩니다. 한바탕 전쟁을 치뤄야 하지요. 같은 말을 해도 사업상의 고객과는 서운하지도 않고, 충분히 이해도 하는 데 내 배우자에게는 서운함을 느끼고, 화를 내게 됩니다.

그러니 연습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내 의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또 그만큼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하지요. 특히, 부부간 막말은 정말 중요합니다. 굳이 욕을 하지 않아도 '야~''너' 등의 표현은 배우자의 자존감을 떨어뜨려 결혼생활을 참 어렵게 만듭니다

4.어떤 남편, 어떤 아내가 되어야하는 지 정리되지 않았다.

물론 생각한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일종의 '상상', '이미지화' 작업은 필요합니다. 특히, 요즘은 참 빨리도 변하는 시대이지요. 기술도 변하고, 문화도 변하며 가정에서의 삶도 변합니다. 당연히 남편과 아내의 역할 또는 기대치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바깥 양반'과 '집사람'으로 대변되는 성역할이 기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이 맞벌이를 해도 특정 배우자가 살림과 육아를 전담해야 하지요. 그런데 세상은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고 말입니다. 현실과 이상에서의 괴리를 느끼며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대목입니다.

5.어떤 아빠, 어떤 엄마가 되어야하는 지 준비되지 않았다.

자녀교육 역시 참 큽니다. 우리 나라는 대개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곤 하는데요. 그러다보니 아빠는 자연스레 아이들과의 관계가 멀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시험성적표를 들고와서 혼을 내기만 하지요. 그러다 아이를 체벌하게 되면 엄마는 '네가 뭔데 애를 잡고 난리야'라고 합니다. 또 비슷하게 평소에는 애들한테 별관심도 없다가 무슨 문제만 생기면 아내에게 '도대체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킨거야'라고 하지요.

참으로 문제입니다. 자녀교육은 엄마 또는 아빠만 하는 게 아니지요. 서로 사랑해서 자식을 낳았으면 함께 길러야 합니다. 최근 많은 연구보고를 보면 성평등한 부부관계 또는 민주적인 부부관계를 가진 가정자녀일 수록 사회성과 리더쉽 등이 뛰어난 것으로 나옵니다. 어떻게 엄마, 아빠의 역할을 가져야할 지 미리 잘 공부하고, 준비해야할 필요성이 나오는 대목이지요.

6.좀 더 참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조건 참으라는 게 아닙니다. 또 내 주장을 일방적으로 꺾으라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참아본다는 건 내 일방적인 주장을 나열하는게 아니라 한번 더 배우자의 생각을 이해해보자는 것입니다. 요즘은 부쩍 이런 과정이 약한 것 같습니다. 그냥 화가 나면 바로 막말과 욕을 하며 '그래, 갈라서'라고 합니다. 배우자를 향해 '짜증나'를 연발합니다. 

전혀 다른 성장환경에서 자란 두명이 만났습니다. 당연히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면허 한번 따려고 해도 한달을 넘게 알아가야 하는데, 하물며 배우자는 어떨까요. 참을 忍이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하였고, 백번을 하면 하늘을 얻는다 하였습니다(백인득천). 상대방의 마음을 한번더 아니 백번이라도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리하며

부부관계 권위자 가트맨<비난, 경멸, 방어, 담 쌓기>를 부부간 이혼의 실제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예, 결혼은 나이만 먹고, 안정된 직장만 있다하여 준비되는 게 아닐 겝니다. 서로의 인격을 닦아가고, 내 배우자를 충분히 이해할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모두 성인군자가 될수는 없는 것이니 함께 공부하고, 맞춰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신혼부부 또는 예비부부께서는 이점을 잘 기억하시어 행복한 가정 꾸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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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잘 꿈도 꾸지 않는 저인데, 악몽을 꾸었습니다. 너무나도 내용이 선명합니다. 새벽녘에는 이게 더 심했지요. 그래서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니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몸에 식은 땀이 가득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옆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둘째를 낳고, 폭염이 가득했던 올 여름 저는 혼자 자고 있던 터였습니다. 폭염으로
요즘 아내와 두 딸아이는 거실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난감했습니다. 제가 끼어 들어갈 자리가 없던 것입니다. 마음이 너무 뒤숭숭해 아이들과 아내 곁에서 자려했는 데, 이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물을 한잔 마셨습니다. 아이들이 깰까 싶어 불도 끄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셨습니다. 그러고보니 괜히 제 자신이 청승맞아 보였습니다. 사실 가족을 위한 배려로 그 동안 계속 이렇게 해왔던 건데, 가족과 함께 잠 잘 자리조차 없다는 생각을 하니 그렇더군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많은 아버지들

아마 이 땅의 많은 아빠들이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빠들은 늘 혼자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서야할지 그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켜내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아이들이 있고, 나 하나만 믿고 살아온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만 이런 저런 얘기도 듣다보면 때론 너무하다 싶은 남자들도 있지요. 요즘 언론보도에 자주 오르내린 인면수심의 아버지 즉, 성매매나 성폭력을 자녀에게 가한 경우를 보면 같은 남자지만 치가 떨립니다. 또 아내의 외로움도 이해가 되지요. 왜 이렇게 우울증에 빠지는 여성이 늘어나고, 처음과 달리 변해버렸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은 자신을 뒤로한채 가족을 위해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려 합니다. 이른바 '노동유연성'이란 허울좋은 미명아래 어느 날 갑자기 명퇴 당할지 모르는 이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서. 날로 더해가는 성범죄로부터 내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렇게 아버지는 오늘도 긴장의 끈을 바짝 잡고 살아갑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성역할에 대한 기대치도 변해야

음, 갑자기 조금 쌩뚱맞아 보이긴 하지만 저는 이렇게 남성에게 짊어지우는 여러 무게가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당연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게 역시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게 너무도 가혹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무게가 그렇다것입니다. 
 
과거부터 계속해서 규정된 이런 관념이 21세기 우리 사회까지 지배하게 된다면 우리는 멋진 정장에 짚신을 신고 다니는 것과 같은 꼴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버지가 설자리 역시 갈 수록 좁아지겠지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구도와 초단위로 변해가는 시대이니 말입니다. 이런 식이면 늘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외롭고 힘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양성평등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양성에 대한 성역할과 기대치, 그간의 고정관념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의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이걸 어떻게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리하며

아내도 제가 혼자 자는 게 내심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왜 혼자 자고 그러냐 그러네요. 오늘부터는 같이 자자고 말이지요. 하하, 하지만 오늘도 저는 아마 혼자 작은 방에서 자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을 위해 제가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이 여기까지 입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시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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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배기 아들이 자위를 하는 데 어떡하죠?"

유아기(3-5세) 어린이의 자위는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합니다. 문제는 이걸 발견한 부모님의 반응이지요. 아이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데, 엄마 또는 아빠가 "안돼"라며 과민반응을 보이곤 한다는 것입니다. 당황하는 것이지요. 아이에게 어떻게 뭘 말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오늘 저는 어제 글에 이어 유아기 어린이의 성교육에 대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1.일단 목욕부터 같이해라.

어떤 전문가는 만 1세만 되어도 성교육을 시작하라 합니다. 즉, 신체를 인식할 때부터는 조금 이른 감이 있어도 시작하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를  "목욕"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얘기합니다.
 
유아기 어린이들은 남녀의 신체차이를 아이 혼자 친구들 사이에서 느끼며 '나는 왜 이러지' 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또 흔히 아이들은 목욕하기를 싫어하지요. 따라서 아빠 또는 엄마와 함께 놀이하듯 목욕을 하며 신체차이를 설명해주면 보다 자연스레 교육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가끔 보면 -특히, 아빠의 경우- 딸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함께 목욕하는 걸 꺼려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자녀의 성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좀 더 적극적이실 필요가 있습니다. 여아가 아빠와 목욕을 한다는 건 성별차이를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통로가 됩니다.(남아의 경우도 마찬가지)

2.아이들의 심리-성기를 만지며 자위하는 아이

자, 목욕을 같이 하며 생식적 차이를 깨닫기 시작하면 이젠 심리적인 부분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참 재미난 생각을 합니다. 남아의 경우 여아들이 뭔가 나쁜 짓을 해서 성기를 떼어버린 것이라 여깁니다. 또 자신의 성기 역시 떼어질 수 있다 생각하는 '거세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편, 여아의 경우는 남아의 성기를 보며 자신도 일어서서 소변을 누는 행위를 합니다. 그리고 '왜 나는 고추가 없어?' 라며 질문을 하기도 하지요. 아빠를 두고 엄마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아빠와 결혼하겠다며 엄마에게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남아도 마찬가지)

그러나 양성의 어린이 모두 아빠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더 작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즉, 성욕에 의한 자위라기보다는 갇힌 감정에 대한 심리적 위안을 찾는 만족행위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기타 여러 부분에서도 적용됨)

이럴 때는 '안돼'라고 하며 부정적이고,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주며 다른 장난감을 주며 자신의 신체가 소중한 곳임을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또한 아이가 어떤 부분에서 심리적인 부담이나 억압을 느끼고 있는지 잘 헤아려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부모님의 모습과 성역할 교육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게 바로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요즘은 좋은 책도 많고, 자료도 많습니다. 학원도 참 많지요. 허나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여전히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성교육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부모님이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성교육은 자연스레 이뤄지게 됩니다.

특히, 성역할에 대한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유아기 아동들은 성역할에 대한 최초의 배움을 시작합니다. 또한 소꿉놀이를 하며 이를 반복, 확인해갑니다. 문제는 이 때 고정화된 성역할이 끝까지 간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양성평등이 세계적 대세이자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중요 이슈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를 보면 양성성을 지닌 어린이의 학습성취도와 사회적 능력이 더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양성평등을 이뤄가는 사회일수록 그 경쟁력과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즉, 어린 시절부터 너무 정형화된 성역할을 부모님이 보여주실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역할에 대한 열린 자세를 갖고 설명해주시며, 부모님 역시 서로 함께 하는 살림살이가 되는 게 좋겠습니다.

정리하며

양성에 대한 열린 자세를 갖고 사는 모습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성역할 교육이 됩니다. 또한 함께 놀이하듯 목욕을 하며 자연스레 생식적 차이를 습득하는 게 좋으며 혹시 아이가 자위를 한다면 어떤 부분에서 심리적인 부담이나 압박을 겪고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은 유아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유아기 아동은 최초로 성별구분과 역할을 습득하게 됩니다. 또한 이 때의 학습이 성인까지 가는 무의식의 기본이 됩니다. 따라서 어떤 교육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진행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이점을 핵심으로 기억하고, 교육을 "삶"을 통해 진행하신다면 여러 권의 책을 읽히거나 학원에 보내시는 것보다 훨씬 양질의 교육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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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여일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가사에 일부 참여한 것과 달리 그 한복판에 뛰어들어감으로 많은 배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경험은 제 구직에도 영향을 주었고, 저는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하, 어제 저는 여성단체에 들어가 양성평등, 직장내 성희롱 등의 교육을 하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사실 원래 어린 시절부터 저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뇨 조금 문자를써서 말하자면 "소수자" 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자란 숫자의 개념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든 발생되는 상대적으로 연약(?)한 편견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자를 의미하는 데요. 제 눈에 비친 여성은 일상에서 늘 편견과 배제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의 입장이었고, 동시에 이 때문에 남성 역시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 성장환경 영향이 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님과 자란 저는 늘 여동생과 제가 다르게 받아들여짐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여동생은 늘 이게 불만이었고, 저는 늘 여동생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 조부모님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나름 "영재" 소릴 들으며 "기대주" 로 과대평가 되었고, 게다가 "장남" 이었으며 여기에 옛 어르신들의 남아선호사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던 거지요. (지금 여동생은 그 때 얘길 하면서 서운했다 얘기하며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잘 보니 양성간에 가해지는 차별 또는 편견은 상대적으로 소수자였던 여성을 더 힘들게 하지만 결국 남성 역시 힘들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평소 생각은 대학시절 여성신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에 빠져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보니 역시 제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양성 모두 어려움과 아픔을 겪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양성 모두의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곳은 제가 직접 알게 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한주 연재했던 글을 보고, 제 구직자리를 찾던 아내가 제안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학습을 통해 전문가로 거듭나고, 제가 깨닫고, 경험한 것을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있다 여겼습니다.

하하, 제가 앞으로 어떤 삶을 만나게 될지..

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어떤 그림을 만들어나갈지 참으로 기대되고, 궁금해집니다. 


독자님 보시기엔 어떤가요.

저 잘 해낼 수 있을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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