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관련 법률의 강화를 환영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범죄 관련 법률은 상식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술을 마셨다하여 감형을 해주고, 피해자도 모르게 합의했다하면 사건 자체가 무마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성범죄 피해자는 제대로 얼굴조차 들 수 없는데 반해 가해자는 뻔뻔하게 살아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이젠 최소한의 안전장치정도는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습니다. 법률이 개정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인식은 변화가 없습니다. 성범죄는 한 범죄자의 우발적 충동이나 잔인함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가 더 중요합니다. 예컨대, 성범죄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원인에 대한 이해, 피해자에 대한 처우, 무엇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 하고, 특히 여성을 일종의 성적대상으로 보는 성차별적인 문화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몸으로 느껴지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 모 중학교에 강의를 갔었습니다. 이 곳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했는데요. 당시 왜곡된 성의식 즉, 강간통념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 중학교 1학년짜리 한 남학생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에이, 그래도 그 여자들 중에 한 두명은 좋아했겠죠.'

이런 왜곡된 성의식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범죄를 다루는 경찰 역시 비슷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7일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경남지방 경찰의 53.8%가 여성의 노출 때문에 성범죄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20.3%는 밤거리를 홀로 걷다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은 스스로 범죄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성이 끝까지 저항하면 강간을 당하지 않는다 생각한 분들도 10.4%나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수치가 특정지역에 있는 경찰의 문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언론에서 수차례 보도 되었듯 경찰의 성인지 능력은 매우 의심스러운 수준입니다. 오원춘 사건은 이것이 표현된 가장 극명한 사례라 볼 수 있겠지요.

 제가 모든 경찰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경찰은 성범죄 전담 여경을 배치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남성 경찰 역시 일선 학교 등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면서 성범죄 예방과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경찰마저 이러한 의식을 갖게 된데 우리사회의 왜곡된 성의식이 너무도 뿌리 깊이 박혀있고, 이를 넘어서려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왜곡된 성의식에 대한 교육을 가장 철저하게 시행해야 할 곳이 바로 '군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자원입대도 있지만 주로 징집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강제성이 부여되고, 고립된 공간 속에서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군대는 이른바 '남성성'이란 특징이 가장 극명해지는 곳이고, 그러다보니 왜곡된 성의식이 아무런 거름막 없이 무차별적으로 농담거리 혹은 자랑거리처럼 퍼지기도 합니다. 

그 결과는 군대 내 성범죄의 증가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정확한 용어는 '성군기 위반사고'인데요. 성범죄를 '사고'정도로 보는 우리 군의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대 내 성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 민간인 성범죄 비율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여군과 남군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군과 남군 사이에서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병역의무를 이해하러 왔다가 이런 피해를 당하면 충격이 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성범죄 법률이 강화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범죄 관련 법률은 우리 사회의 공감대 속에서 근본적인 문화와 사회구조 등의 변화와 함께 이뤄져야 더욱 온전해 집니다. 체질이 변하지 않은채 기침 자체만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범죄를 진정으로 줄여내기 위해서는 양성간 관계성에 근거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며, 특히, 군대에서는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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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는 분들 참 많습니다. 하도 이슈가 되니 검찰도 친절하게 성폭력 예방 10계명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2월쯤이던가요. 서울의 모 검찰청 성폭력범죄대응센터에서 2010년에 법원에 재판을 청구했던 사건을 분석했던 거지요. 

성폭력 사건 통계화의 함정


검찰이 발표한 이 예방법
은 범행장소,시간, 대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늦봄에서 여름 사이의 야간을 주의하고요,  성폭력 범죄는 장소를 불문한다 하였습니다. 또 성인의 경우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을 조심하라 하였습니다. 모르는 관계가 훨씬 많다는 거지요. 이 외에도 음료수를 무심코 마시지 말라 하고, 30대를 조심하라고도 합니다. 어린이의 경우는 초범자를 조심하라는 얘기가 인상 깊네요.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조사한 바로는 동종 전과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같은 얘기는 참으로 허무합니다. 저 논리대로라면 얼마전 있었던 76세 노파 성폭행 사건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요? (이웃집에 사는 50대 남성이 할머니를 흉기로 위협해 폭력을 행사하며 성폭행한 사건. 피해 할머니는 구타로 인해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음) 말하자면 이것들은 하나하나 개별화-통계화시켜 예방법을 제시하다보니 엉뚱한 처방이 나온 것이란 얘기입니다. 한라산을 가자해놓고, 백두산으로 가버린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성폭력 사건은 우리 사회의 문화나 사고방식, 사건처리 방식 등이 통째로 바뀔 수 있어야 사건이 일어나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고, 사건발생 자체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성역할이 당연시되고,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여 인격이 사라져버리게 하며, 아동이나 청소년에게마저 'SEXY'를 요구하는 작금의 문화, 또 성매매를 특화시켜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이 현실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무엇을 조언하고 있는가


제가 가장 리얼한 성폭력 예방 십계명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도 성폭력 예방 십계명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직접 성폭력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제시하는 항목들인데요. 아래의 그림을 한번 보도록 하지요.

 

검찰과 피해 생존자들의 세가지 차이점


어떤가요? 앞서 검찰이 제시한 것과는 내용이 상당히 다르지요? 검찰이 발표한 자료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자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세 가지로 보면 됩니다.

우선 첫째는 사건 발생의 성격을 진단하는 관점이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검찰의 자료는 마치 성폭력 사건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범행의 객관적인 장소나 가해자의 특징이 있는 것 같이 말하고, 특히, 옷차림이 얇으면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는 말로 전형적인 '피해자 유발론' 적 관점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성폭력상담소의 경우 이것이 매우 치밀한 범죄이고,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며, 이 사건의 문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있다고 봅니다.

두번째는 사건 발생 후 처리에 대한 얘기가 있고 없고 입니다. 9번과 10번의 경우는 정말 너무도 힘든 성폭력 사건처리 경험을 가진 피해자들의 경험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물론 요즘 경찰이나 검찰의 처리과정이 훨씬 좋아졌다고는 합니다. 하도 사회적인 이슈가 되다보니 구체적인 관심을 갖는 분도 늘어나고, 인식도 개선된 것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대체로 냉혹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얼마전 한 성폭행 피해자는 법원 재판과정에서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모욕을 느꼈다며 자살을 하고 말았던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지요.

끝으로 세번째는 성폭력 예방을 위한 해법에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검찰의 자료만 보면 그 자료에 제시된 지역만 조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각 개별 사건을 종합하여 '범죄'의 문제로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폭력상담소의 자료를 보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시간, 장소, 때, 나이 등을 가리지 않고 너무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즉, 단순한 범죄만을 두고 볼 게 아니라 성차별적 사회문화와 구조 등 근본적인 원인을 봐야 한다는 거지요.

정리하며

검찰의 자료를 많이 비판했지만 이렇게 좀 더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것까지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왕에 뭔가를 하려면 좀 현실적일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려면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의 증언과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요. 이들을 더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니 성폭행 피해자가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극단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검찰은 이러한 작은 노력이 가져올 결과가 생각보다 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사건을 접근 및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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