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관련 법률의 강화를 환영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범죄 관련 법률은 상식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술을 마셨다하여 감형을 해주고, 피해자도 모르게 합의했다하면 사건 자체가 무마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성범죄 피해자는 제대로 얼굴조차 들 수 없는데 반해 가해자는 뻔뻔하게 살아가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이젠 최소한의 안전장치정도는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습니다. 법률이 개정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인식은 변화가 없습니다. 성범죄는 한 범죄자의 우발적 충동이나 잔인함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가 더 중요합니다. 예컨대, 성범죄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원인에 대한 이해, 피해자에 대한 처우, 무엇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 하고, 특히 여성을 일종의 성적대상으로 보는 성차별적인 문화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몸으로 느껴지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얼마 전 모 중학교에 강의를 갔었습니다. 이 곳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했는데요. 당시 왜곡된 성의식 즉, 강간통념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 중학교 1학년짜리 한 남학생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에이, 그래도 그 여자들 중에 한 두명은 좋아했겠죠.'

이런 왜곡된 성의식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범죄를 다루는 경찰 역시 비슷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7일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경남지방 경찰의 53.8%가 여성의 노출 때문에 성범죄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20.3%는 밤거리를 홀로 걷다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은 스스로 범죄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성이 끝까지 저항하면 강간을 당하지 않는다 생각한 분들도 10.4%나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수치가 특정지역에 있는 경찰의 문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언론에서 수차례 보도 되었듯 경찰의 성인지 능력은 매우 의심스러운 수준입니다. 오원춘 사건은 이것이 표현된 가장 극명한 사례라 볼 수 있겠지요.

 제가 모든 경찰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경찰은 성범죄 전담 여경을 배치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남성 경찰 역시 일선 학교 등에서 열심히 강의를 하면서 성범죄 예방과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경찰마저 이러한 의식을 갖게 된데 우리사회의 왜곡된 성의식이 너무도 뿌리 깊이 박혀있고, 이를 넘어서려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왜곡된 성의식에 대한 교육을 가장 철저하게 시행해야 할 곳이 바로 '군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자원입대도 있지만 주로 징집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강제성이 부여되고, 고립된 공간 속에서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군대는 이른바 '남성성'이란 특징이 가장 극명해지는 곳이고, 그러다보니 왜곡된 성의식이 아무런 거름막 없이 무차별적으로 농담거리 혹은 자랑거리처럼 퍼지기도 합니다. 

그 결과는 군대 내 성범죄의 증가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정확한 용어는 '성군기 위반사고'인데요. 성범죄를 '사고'정도로 보는 우리 군의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대 내 성범죄는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 민간인 성범죄 비율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여군과 남군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군과 남군 사이에서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병역의무를 이해하러 왔다가 이런 피해를 당하면 충격이 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성범죄 법률이 강화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범죄 관련 법률은 우리 사회의 공감대 속에서 근본적인 문화와 사회구조 등의 변화와 함께 이뤄져야 더욱 온전해 집니다. 체질이 변하지 않은채 기침 자체만 막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범죄를 진정으로 줄여내기 위해서는 양성간 관계성에 근거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며, 특히, 군대에서는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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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계속 되는 성폭력 관련 살인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분명 이 사건들의 가해자들은 엄정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며, 필요에 따라 교육과 치료를 반드시 병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재범률을 좀 더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피해자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성교육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제대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1. 가해자 앞에서 신고해서는 안 된다.

성폭력 가해자들에게는 초기의 적극적인 저항 또는 문제제기가 효과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초기에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여성이 소극적으로 보일 수록 가해자들은 쾌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사표명은 하되 신고를 바로 해서는 안 됩니다.

불편한 맘을 표현한 후 그 자리를 우선 피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난 후 신고를 해도 해야는 것이지요. 주변에 나를 도와줄 이가 확보되지 않은 이상 그 자리에서 바로 신고를 하려 하면 구타나 납치 등의 부작용이 초래됩니다. (만약 상황을 모면하기 어렵다면 단축키 1번을 경찰이나 119로 저장하여 신고 버튼을 누르면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2. 단축번호 1번이 부모님이나 애인이어서는 안된다.

대개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은 부모님이나 배우자, 애인으로 설정하곤 합니다. 그러나 내게 위기가 생겼을 때 이들이 즉시 위치추적을 하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지요. 단축번호 1번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이 즉, 경찰이나 119로 잡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스마트폰의 경우 어플이나 단축키를 바탕화면에 띄어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신고청' 이란 어플을 추천하곤 하는데요. 이 어플은 트위터나 페이스북까지 연동되어 있어 내게 위기가 생길 경우 경찰은 물론 가까운 지인들에게 동시에 연락이 가게 됩니다. 그러면 신고를 하기도 쉽고, 나를 찾기도 쉬워지지요.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3. 초기에는 저항, 그 후에는...

성범죄자들이 내게 접근할 때는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가벼운 성추행을 목적으로 하는 자들은 의외로 쉽게 떨쳐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 사건이나 통영 사건처럼 작정을 한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지요.

이럴 때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는 가해자들과 계속해서 말을 걸어 얘기를 해야 합니다. 이들과 친해지면 친해질 수록 살아날 확률이 높아지게 되지요.

그 후에는 가해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소리를 크게 지르게 되면 이들이 입을 막으려 시도하게 됩니다. 어린이의 경우 이럴 때 사망에 이르게 되곤 하지요. 따라서 가해자와 일종의 소통을 시도한 후 생존을 위한 자발적 순응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탈출을 시도하거나 신고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한 번은 만들어지게 됩니다.

4. 아동은 돌봄의 환경을 재정비해야만 한다.

아동 성범죄의 경우 아동이 홀로 있을 때 주로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아동 성범죄의 경우도 모두 비슷하지요. 이번에 발생한 통영사건의 경우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피해아동의 부모님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동과 부모를 떨어뜨려 놓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동이 절대 홀로 방치되어 있지 않도록 하는 '돌봄'에 대한 정비가 필요합니다. 지역아동센터든 학교든 종교시설이든 어디든 상관 없습니다. 아이가 홀로 있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보호자가 야간 근무를 하게 되는 경우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야간 보육 혹은 야간 보호시설이 반드시 보강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리하며

성범죄라는 위기상황에 노출되지 않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을 기초적으로라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순결이나 정조 관념에 사로잡히는 것보다 '생명'을 지키는 것을 핵심으로 한 방식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또한 어린 아이들의 경우 아이들 스스로 생명을 지키는 데 무리가 있기 때문에 돌봄의 환경을 점검하여 보강하는 '복지적 접근'이 반드시 이뤄져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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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알리가 노래 '나영이'로 인해 많은 비난
을 받으며 급기야 공개사과 기자회견까지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알리는 본인의 아픈 경험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고, 팬들과 나영이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사실 그간 위 노래로 인한 많은 비난이 알리에게 쏟아졌던터라 왜 자신이 이런 노래를 들고 나왔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했더랬지요.


알리의 뜻밖의 고백은 정말 충격적이면서도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알리와 관련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몇 가지 고민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불편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거지요.

우선 첫번째는 알리의 고백을 다루는 언론의 자세입니다. 알리는 자신이 경험했던 성범죄 피해사실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여성으로서의 치부', '여자로서 어려운 결정' 등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시선이 참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거나 소매치기를 당한다하여 그 피해자에게 치부가 되고, 흠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집에 도둑이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유독 성범죄만큼은 피해자가에 더 큰 상처를 주곤 하는 게 우리네 문화입니다. 도대체 왜 성범죄 피해경험이 치부가 되고, 여성에게 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래서는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은 '환향녀'라고 부르며 냉대했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일본군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수십년간 혼자 가슴 아프게 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우리의 시선이 좀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을 향한 정절 혹은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이제는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성범죄 피해는 아동 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큰 상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성폭력 발생국가입니다. 2-3위권의 수준인데요. 반면 신고율은 세계 최저임을 고려할 때, 실제 발생비율은 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아동 성범죄는 공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분노와 달리 성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아서 같이 해놓고' 혹은 '평소 행실이', '밤 늦게 다니니까' 등의 통념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폭력 가해자에게 쏟아져야할 화살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넘어 갑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또 다시 자신의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영원히 침묵하며 살아야만 하지요.

피해자가 어떤 시간에, 어디에 있었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인 여성의 성범죄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당연한 원칙을 너무도 쉽게 잊고 말지요. 이러한 2차 가해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알리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조두순 사건 이 후 수많은 나영이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영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피해를 숨겨야만 한채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 순간에만 들끓다 금방 식어버리는 현상 역시 반복되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사회적 반응 역시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이런 것들에 대해 분노했다면 이와 관련한 대책을 온전히 수립해야겠지요. 그러나 조두순 사건 이 후 우리가 만든 것들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cctv 확대설치와 화학적 거세가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허나 cctv가 아무리 많아도, 화학적 거세가 시행된다 겁을 주어도 여전히 성범죄는 활발히 일어납니다. 

성범죄의 심각성만큼이나 우리 사회가 침착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키라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아이들을 안전한 환경에서 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번 분노만 하다 금방 식어버리는 모습이 아닌 뭔가 일관성 있고, 지속성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알리가 미숙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아픈 경험만큼 나영이와 그 가족을 위한 좀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하더라도 이 부분까지 무마되는 것은 아닐 겝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그 메시지만큼은 우리가 잘 붙잡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함께 몇 몇 주제를 고민해보며 성범죄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자세가 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유독 여성에게만 특히, 성범죄 피해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정절 혹은 순결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어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향한 2차 가해를 줄이고, 보다 근원적인 성범죄 예방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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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에 대한 제 의견은 부정적입니다. 예전에 작성했던 "화학적 거세를 하면 성범죄가 줄어드나?"를 통해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물리적 거세를 하자 주장하며 이게 근본적인 처방이라는 분들도 계시던데요.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우선 물리적 거세 자체가 성기 절단이 아닙니다. 고환을 적출해 내는 것입니다. 허나 여전히 발기는 이루어집니다.

대체적으로 여성계 역시 화학적 거세를 환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제 이미경 성폭력상담소 이사의 경우도 비슷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러자 항의 전화가 오기도 했다는 데요(관련글 : 화학적 거세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한다고?). 사실 이 얘기는 이번에만 나온 게 아닙니다. 이미 수년전부터 여성계는 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밝혀왔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이 글에서는 크게 세 가지만 보겠습니다.
 
우선, 성폭력은 단순히 호르몬에 의해 일어나는 개인적이고 생물학적인 범죄가 아니란 것입니다. 성폭력은 보다 복잡한 사회구조가 얽혀있습니다. 이 속에는 강자/약자의 구도가 깔려있고, 우리 사회의 성평등의 문제가 결부됩니다. 또한 가해자의 내면적 불안과 피해의식 등이 있으며 피해자의 현실적 삶의 모순이 집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동 성폭력의 경우 아동인권과 복지의 측면으로 접근해야만 근본적인 예방대책 수립이 가능합니다. 가해자에게는 인권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찾아가고, 피해의식이나 대인관계 특히, 여성과의 문제를 풀어가는 치료를 병행해야만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성폭력이란 "성적행위"가 아닌 "폭력의 일환"이란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문제제기 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지금 우리는 성폭력을 너무 "성기중심"으로만 보고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현행법도 그렇습니다. 부녀자에게 강제로 성기가 삽입되지 않으면 강간이 성립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지요. 성폭력은 성기가 삽입되었다하여 성립되고 아니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성폭력이란 개념의 범주 속에 이미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이 혼재되어 있고, 가령 피해자의 구강 등에 강제로 성기를 삽입했다 해봅시다. 그러면 이건 성폭행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당연히 이것도' 성적인 폭력'이 가해진 성폭행인 것입니다. 


끝으로 세번째는 그 효과에 의문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 조지프 프랭크 스미스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자는 성범죄를 저지른 후 화학적 거세를 받아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보도된 사람입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자는 15년 후 75건의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다시 잡혀오게 됩니다.

(이것 못지 않게 화학적이든 물리적이든 거세 방식 자체가 갖고 있는 폭력성도 매우 강하게 지적됩니다) 

요컨대 성폭력은 단순히 개인적이고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며 성적인 문제라기보다 폭력이란 큰 틀에서 봐야하는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학적이든 물리적이든 거세를 하는 건 강력한 처벌의 일환일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예방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호르몬에 의한 문제라는 인식 속에 그 이면이 깔려있는 양성간의 수많은 문제들은 은폐시켜 버리고 맙니다. 문제의 핵심포인트를 놓치고, 아예 바꿔버리는 결과가 나온다는 거지요.

저는 지금의 정치권의 행태가 굉장히 포퓰리즘 이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먼저, 사실 우리에겐 이미 수많은 나영이가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이렇게 이슈가 되기 전까지는 서로 나서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두번째는 가만보면 대중이 원하는 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가 나서 거세시켜 버리자 하니 거세 얘기만 꺼냅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연일 계속되는 아동 성범죄를 보며 너무 흥분해 있습니다. 분노가 너무도 거센 나머지 침착하게 검증되고, 근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범죄가 일어나는 문제의 원인 자체를 놓치고 있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보다 피해 아동 또는 여성, 남성을 향한 따뜻한 가슴으로 그러나 차분하고, 냉정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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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사람은 역사적 존재(하이데거)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인간 인식의 한계성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 정신과 의지를 통해 한계의 범위를 확장하고,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도모할 수는 있다. 명확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판단, 노력은 우리 삶의 진보를 가져오는 힘이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만이 희망인 이유이다. 또한 이 글은 필자의 이와 같은 신념위에 쓰여질 것이다.

두번째로 이 글에서 필자는 성폭력의 원인을 나름의 시각으로 고찰하고,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물론 사회변혁과 제도 개선도 필요하나 성폭력 문제는 제도의 확립만으로 예방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글은 사회과학적 접근보다 철학적 접근을 그 방법론으로 택하게 될 것이다.


성폭력 원인에 대한 다양한 접근

2.성폭력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어떤 여성운동가는 "습관" 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성구매를 하는 습관, 접대문화속에 여성을 부르는 습관 같은 성매매 습관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습관은 여자는 남자를 위해 존재하는 기껏해야 2등 시민이란 인식을 갖게 한다 이야기 한다. 일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성폭력은 양성간의 문제 뿐 아니라 아동과 동성간에도 이뤄지는 것이기에 이는 한계가 있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학자들의 연구는 일탈행동을 얘기하기도 하고, 문화를 얘기하기도 한다. 갈등주의적 접근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말하자면 현상에 대한 연구로써는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으나 그 이면에 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이면에 깔린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작금의 물신주의와 힘과 권력에 의지한채 객체화 된 사람의 성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본성이라 하겠다. 


물신주의와 지배욕에 대한 구체적 접근

3.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우리 사회전반의 풍토에 만연해 있는 물신주의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하나의 "객체"로 인식하게 한다. 즉, 인격과 그 존엄성을 보지 못하고, 단순한 대상으로만 보게 한다는 것이다. 객체로 전락해버린 인간의 몸과 성은 더 이상 존중받을 대상이 아니게 된다. 하나의 물건처럼 사고 팔며 성적 욕구의 만족을 위한 "도구"되어 버리게 된다.

또한 지배와 통제의 욕구라는 인간의 본성은 내가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는 힘과 권력의 차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불평등한 위치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을 가리고, 집단의 문화에 결탁하며 내 자신을 은폐하고, 반복 지속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을 강자 앞에서는 숨기다 약자 앞에서 야수적 본성으로 표출하며 피해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게 된다.

자, 이제 이런 관점으로 성폭력을 다시 보도록 하자. 우선 성희롱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은 성희롱에 대한 법령이 형법이 아닌 남녀고용평등법에 제시된 것부터 생각할 수 있다. 남녀간의 사회적 위치와 힘의 차이가 바로 성희롱을 일으키는 원인이라 본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여성 상사가 남자 부하직원을 성희롱 하는 것도 이해되고, 심리적 우위에 있는 남성이 여자 상사를 반권력적 성희롱 모델에 따라 성희롱 하는 것도 이해되게 된다. 이들에게 성희롱 대상자는 더 이상 인격체가 아니고 내 위치와 힘을 이용해 성적 유희를 즐기거나 희롱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두번째로 성폭행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부는 여성의 야한 옷이 성충동을 일으켜 우발적으로 범행이 일어나게 한다 하지만 실제 성폭행 사건은 70% 이상 계획된 범죄이다. 또한 동성간에도 성폭행이 일어나고, 아동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범죄를 보면 어떠한가. 이를 보며 필자는 나보다 강한 자에게는 굽신거리다 조금이라도 약한 자에게는 그 태도가 돌변하는 노예근성 같은 지배욕과 동물적 본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마음이 필자 개인만의 것이라 쉽게 치부해버릴 수 있는 것일까.


시대를 탓하기 전에 내 자신부터!

4.린다 레드레이는 "성폭력은 성적만족을 위한 행위라기보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격앙되고 과격한 욕구의 표현" "성폭력의 기저는 폭력, 분노와 지배욕"이라는 말을 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그녀의 견해가 정확한 것이라 생각한다. 성적 불평등이 시작된 이래 양성간에 가해진 성폭력은 물론 최근 이슈가 되는 동성간, 아동 성폭력 역시 이 모든 것에 그대로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는 "악마와 계약을 교환하고 풍부함을 대가로 초월성과 목적성을 팔아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목적의 부재에 괴로워하고 있다"라고 하였던 보드리야르나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서 "인간 고유의 가치들을 화폐적 가치들이 대신 하는 병든 현상"이라 진단한 소로스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이는 비단 경제와 문화 뿐 아니라 성폭력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조차 나를 알 수 없게 하는 이 정신 없는 시대는 성폭력의 수위와 양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어떤 정신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또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의 변화가 사회가 변하게 하는 밀알임을 상기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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