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9.24 바람둥이 예수 4
  2. 2007.11.10 이런 자세로 목회함이
  3. 2007.11.08 기도 이야기

바람둥이 예수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8. 9. 24. 15:31 Posted by 바람몰이


1.저는 예수를 바람둥이라 생각합니다. 이성이나 홀려대는 카사노바처럼 그를 비하하려는 게 아닙니다. -둥이란 어떠한 성질은 지닌 사람을 뜻하는 우리말 인데요. 말 그대로 바람의 성질을 갖고 있는 예수이기에 바람둥이라 여기는 겁니다.

인간은 사유재산이 생기고, 권력분화가 일어난 후 단 한번도 재물, 권력, 명예 따위의 노예가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들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여기며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란 의식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경제는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합니다. 옛 선현들은 명예는 한 줌의 재와 같다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비록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 이상 이것들을 배제하고 살 수는 없지만, 이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살아야만 비로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일 겝니다. 

예수는 이런 세속적 가치를 버리라 하지는 않습니다. 제자들이 길을 떠날 때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보내신 분이지요.

그러나 이것에 얽매이기만 해서도 안됨을 설파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살라는 것. 즉, 자유롭게 성령에 따라 살라합니다. 성령이란 성스러운 영. 히브리어로 루아흐라 하는 바람인데요. 성령에 따라 산다는 건 결국 바람과 같이 사는 그런 겁니다.


2.본래 바람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지요. 무질서하게 부는 것 같지만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거대한 흐름을 갖고 흐르고 있습니다. 때론 사람을 시원하게도 하지만 때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무섭지요.

예수가 지닌 이러한 바람의 영성은 철저하게 그의 삶을 통해 나타났었습니다. 그의 삶은 하늘의 뜻이란 고기압에서 인간의 삶이란 저기압을 향해 흐르는 삶이었지요. 이것은 자유분방 한 듯 여행하며  섬김과 십자가를 향한 흐름의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무런 세속적 가치에도 얽매이지 않고, 붙잡히지도 않는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이 땅위의 인간의 삶을 사는 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억눌려 절망하는 자들에게는 희망이 되었고, 정의가 없고 인권이 유린되는 곳에서는 강한 기둥이 되어 정의와 인권을 되찾게 하였습니다. 평화가 없는 곳에서는 서로를 향해 기도하게 하였고, 내면의 상처와 고민으로 고통받는 자에게는 자신의 영혼이 해방되는 구원의 감격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예수는 그렇게 세상의 어떠한 가치나 제도, 이데올로기에도 붙잡히거나 정체하지 않으며 참으로 바람 같이 사신 그런 분인 거지요. 그리고는 민중을 선동했다며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란 정치범 죄목을 뒤집어 쓴 채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33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3.이 세상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심리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흐름 자체가 심리적 침체에 빠져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질과 명예 같은 가치를 잡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불안한 심리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것을 잘 잡고 삐까뻔쩍한 외제차를 몰고 와야만 능력있고, 뛰어난 사람으로 인정받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침체"의 개념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수는 바보 중의 상 바보입니다. 그의 바람과 같은 영혼은 요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마 그가 2천년 전이 아닌 지금 와 있었다면 어느 역 앞 노숙자 신세가 되지 않는다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불안하고, 침체된 심리 상태가 아닌 살아있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반짝이는 눈동자를 지닌 삶을 살고 있었을 겝니다. 그의 곁에는 배고파도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소크라테스가 모여 있었을 겝니다.


4.오늘날 한국 교회 특히, 목회자들은 그의 바람과 같은 영성을 철저하게 본 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교회 건물과 신도의 숫자, 각 종 종교행사 출석률, 사회적 명예와 지위 등에 얽매여 있습니다. 교회에 모여 자식의 명문대 입학과 물질적 성공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억눌리고 힘들어 하는 자를 위한 섬김과 나눔 등의 사회적 책임 역시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예수님을 거룩하게 여기고, 사랑한다 하면서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는 참된 하늘 바람으로 샤워하지를 못합니다. 교회 용어를 빌리자면 성령을 받지 못하게 될거라는 얘기입니다.

오늘 예수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쳐 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라 하였습니다. 지금처럼 기독교인들이 망령되게 일컬어지는 삶을 살아서는 안되겠지요.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뤄지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관용으로 용서하듯 우리가 생명세상에 지은 죄에 대한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악에서 우리를 구하옵시기를 구하며 모든 것의 권위와 영광은 우리 인간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닌 하늘 아버지의 것이라 고백하게 하였지요.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주제의 두번째 글입니다. 저는 "예수님은 바람둥이"라는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고운 님께 영혼까지 맑게 하는 시원한 예수의 하늘 바람이 지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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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세로 목회함이

[기독교]변해야 산다 2007. 11. 10. 09:52 Posted by 바람몰이
이런 자세로 목회함이...

1. 인기를 위한 목회가 아닌, 인격적인 목회를! (롬12:10-20)

2. 직업적인 목회가 아닌, 소명감에 불타는 목회를! (겔34:1-16)

3. 최고, 최대를 위한 목회가 아닌, 최선의 목회를! (살전2:1-12)

4. 경쟁적인 목회가 아닌, 성실한 목회를! (마25:14-30)

5. 자랑을 위한 목회가 아닌, 겸손한 목회를! (눅17:10)

6. 수와 양에 치중하는 목회보다는, 알곡을 키우는 질적인 목회를! (요10:9,16)

7. 자아 중심의 목회가 아닌, 주님 중심의 목회를! (빌1:20)

8. 명예를 위한 목회가 아닌, 영혼을 위한 목회를! (고전9:19-23)

9. 인간의 칭찬을 받기 위한 목회가 아닌,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목회를! (마6:16-18)

10. 과장된 위선의 목회가 아닌, 양심적인 정직한 목회를! (마23:1-36)

11. 내 힘으로 하는 목회가 아닌,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는 목회를! (행1:8)

12. 받기 위한 이기주의적인 목회가 아닌, 생명까지도 주는 희생적인 목회를! (행20:24)

13. 의무감으로 하는 타율적인 목회가 아닌, 사랑 때문에 하는 목회를! (살전2:8)

14. 정죄하는 목회가 아닌, 이해와 관용의 목회를! (마26:41)

15. 책망의 목회가 아닌, 권면과 위로와 칭찬의 목회를! (살전1:2-8)

16. 명령과 지시만 하는 권위의 목회가 아닌, 본을 보이는 실천의 목회를! (벧전5:3-4)

17. 발로 뛰기만 하는 목회가 아닌, 무릎으로 기도하는 목회를! (눅2:39-46)

18. 십자가를 타고 가는 교만의 목회가 아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순종의 목회를! (16:24)

19. 인간의 지혜로 하는 목회가 아닌, 성경말씀 중심의 생명있는 목회를! (딤후3:15-17)

20. 교인을 외모로 보는 계산적인 목회가 아닌,
의롭고 괴로운 자의 편에 서는 진실된 목회를! (약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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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이야기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22 Posted by 바람몰이

 

기왕에 말이 나온김에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기도’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기도방법이 완전히 잘못된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더욱 성경이 계시해주는 하나님은 물론 내 자신에게 오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기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도의 가장 모범이신 예수님을 보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거나 어떤 결정을 하실 때도 항상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시되 정확하고 똑바르게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기도의 끝에서 내 뜻을 이루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이뤄 달라 기도하며 주의 뜻을 들으셨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하는 기도는 어떻습니까. 
 

일단 말이 많습니다.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 지 침이 튀어 바닥을 적실 정도입니다. 또 쉬지도 않고 몇 시간씩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땀에 흠뻑 젖어 목소리가 쉰 상태로 정서가 순화됨을 느끼고 만족함을 느끼며 기도를 마치고 일어납니다. 도대체 언제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만 해대는 게 자기 감정을 만족시키고 위안을 얻는 것이지 주의 말씀을 듣고 그 뜻대로 내가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시간인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무어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언을 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방언은 믿음이 좋다 하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 성도님들을 합니다. 그래서 은사의 증거가 되기도 하고 신앙의 모범이 되어 부러움을 사기도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통변”이라고 해서 방언을 해석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방언은 이러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신약성경 사도행전까지 말하는 방언은 한마디로 “외국어”입니다. 각 지방과 나라의 언어란 말입니다. 언어가 통하는 게 방언이고 이것은 구약시대 바벨탑 사건에서 흩어졌던 언어가 다시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하나로 모이는 사건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라는 사람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언어 속에 인간의 사고가 있고, 인간의 사고는 언어활동과 함께 이뤄진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언어를 흩으신 것은 만남과 하나 됨의 인간관계 속에 있는 영혼의 교류를 흩으신 게 됩니다. 또한 언어를 통하게 하신 것은 다시금 그 교류의 통로를 열어주신 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고린도 전서 14장은 방언이 하나님께 말하는 성령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혼자서 아무도 못 알아듣는 방언만 해대다 교회가 분열되기 보다는 모두 똑바로 알아듣는 예언이 더 낫다는 후자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 알아듣는 방언 만마디 보다는 알아듣는 기도 다섯마디가 낫다 하지 않습니까?


  지금 교회도 고린도 교회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방언을 아무리 해대도 교회가 하나 되거나 우리 사회가 변하는 역사가 없습니다. 심지어 방언을 잘 하는 분일 수록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방언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방언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시 한번 고린도전서 14장을 정독해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방언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도 있다 하더군요.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 다구요..

  기도의 내용은 또 어떻습니까. 그저 우리 가족이나 내가 잘 되게 해달라 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잘되게 해달라 합니다.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달라 합니다. 물질생활에 부족함 없이 축복해 달라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문제인 것은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낮은 자들과 함께 하시며 온 몸으로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을 가르치셨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하셨으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남을 섬기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용할 양식을 기도하라 하셨구요.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 가족이나 내가 잘 됨과 동시에 더 많은 어려운 이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사랑하는 이뿐만 아니라 미워하는 이가 잘 되게 해달라 해야 하며 셋째로 머리가 되어도 교만치 않도록 도와달라 하거나 남들이 싫어하는 꼬리가 되어 더욱 섬길 수 있게 해달라 해야 합니다. 끝으로 물질생활에 부족함이 없게가 아니라 일용할 양식만을 달라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이니 말입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자 최고의 방법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수많은 위인들은 모두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하였습니다. 먼저 자신이 말씀에 의해 깨지고, 쪼개지며 변화했고 눈물로 가슴을 찢는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삶을 통해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였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중요한 기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일종의 경고 표시인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랑하는 고운 님이여!!

  지금 이 순간 잠시 책을 덮으시고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깨닫고, 주님의 뜻을 발견했다면 이 책을 안보고 버리셔도 됩니다. 인간의 지혜로움보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주의 뜻을 전할 뿐인 종에 불과하구요.


  만약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시어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찾아와 감동을 주신다면 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저 이 순간 주님 앞에 불려 간다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저를 통해 작은 열매를 맺으셨고, 저는 그 사명을 감당한 것이며 세상은 여러분을 통해 희망을 갖고 아름다운 씨앗을 또한 뿌리고 키워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여러분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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