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0.13 직접 땀흘려 일하는 예수 2
  2. 2007.11.08 선과 악을 알게 된 사람

직접 땀흘려 일하는 예수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8. 10. 13. 17:23 Posted by 바람몰이


1.저는 로또를 사지 않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로또 살 돈도 아깝기 때문이고, 둘째는 당첨되도 기분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왠 로또 얘기냐구요. 요즘 보면 가만 앉아서 돈 버는 사람이 자주 보여 그렇습니다. 부모 잘 만나 유산 상속 받는 것까지는 좋으나 세금을 안 내도 처벌 받지 않는 모습이나 부동산이나 그림 잘 사서 돈 벌어대는 모습..뭐 좋게 말하면 투자겠지만 저 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허탈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노동의 가치를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땀흘리는 것을 강조합니다.
먼저 하나님 자신이 직접 노동을 통해 천지를 창조했다 성경은 고백합니다. 그냥 거저 생긴 게 아니라는 거지요. 

또한 예수 자신이 노동자였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부모가 하던 일을 자연스레 물려받는 경우가 많았으니 예수 자신도 아버지 요셉처럼 목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예수는 자신이 만든 멍에는 가볍다는 비유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자신도 일한다는 고백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2.예수가 일하며 먹고 사는 데는 분명한 범위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용할 수 있는 만큼의 양식을 버는 데 까지 였습니다.

그가 일용할 양식을 강조한 것은 사람이 그 이상을 원할 때 오게 되는 유혹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작은 것에 감사하지 못하면 끝없는 욕망은 사람의 삶을 항상 불행하게 느끼게 합니다. 또한 사람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그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생의 여유를 놓쳐 버리게 됩니다. 끝으로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모른 채 이기적인 삶만을 살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맙니다.

구약 성경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것 이상의 양식을 모을 때 그것이 썩어 진동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내 욕심을 버리고, 공동체의 삶을 살며, 인생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때 하나님은 수십년간 매일 같이 양식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예수는 철저하게 이러한 성경의 맥 정점에 서서 분명히 선포를 하고 있는 겁니다.


3.예수가 직접 땀흘려 하던 노동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넓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노동이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노동이었습니다. 
좁게는 한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리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며 억눌린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어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지탄 받던 당시 세리장이. 그 중 한명은 예수를 만나 자신의 내면에 하나님 나라가 가득차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거둔 재물 중 부당하게 거둔 것은 네배로 돌려주겠다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새롭게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은총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예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훗날 쓰여진 성경 본문에는 마음이 가난하다 표현되어 있으나 원문은 그냥 가난한 자이다.) 이미 이 세상이 버리고, 지금 충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기억하고, 위로해주신다 합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 대한 분명한 꾸짖음이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예수를 만나 세상의 가치에 묶인 자신이 해방되고, 눈이 뜨이며, 억눌림에서 자유를 얻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또한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가 함께 상생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은총의 해가 되었습니다. 그 사회나 개인 모두의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4.오늘날 우리의 삶은 아무리 잠 안자고, 발버둥치며 일해도 반지하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 속에 있습니다. 이는 동시에 내가 땀흘리지 않아도 돈이 돈을 벌게 하고, 이 돈은 곧 힘이 되어 법망을 교묘히 피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정당하게 재물을 모은 자마저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하고, 죄인처럼 살아가게 합니다. 결국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구조가 됩니다. (사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체가 그렇기도 합니다만) 

사람들은 소외감, 박탈감, 허무함 등에 빠져 점점 영혼이 곤고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가난한 이나 부유한 이 모두 똑같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직접 땀흘려 일하고, 일용할 양식을 통해 삶을 긍정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부유한 이나 가난한 이 모두에게 해방감과 자유를 주고자 합니다.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넘어서 행복하고, 참된 인생을 살 수 있게 인도하고자 합니다. 실제 자신이 직접 나무를 다룬 목수로써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철저한 노동을 통해서 말입니다.



,

선과 악을 알게 된 사람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14 Posted by 바람몰이
 

창세기에서 천지창조 이야기를 지나 에덴동산 이야기에 도착하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선악과’ 이야기지요.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는 인간에게 내재한 “원죄”에 대한 설명이 있기에 더욱 인상 깊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고 모든 걸 허락하셨는 데, 단, 하나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선악과입니다. 이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것이어서 인간이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냥 그렇게 저렇게 잘 살고 있었는 데 갑자기 뱀이 하와에게 접근하여 유혹합니다. 그래서 하와가 냉큼 먹고서 아담에게까지 건내 줍니다. 순간 이들은 눈이 번쩍 뜨이면서 자신들이 벌거벗은 걸 알고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후 숨게 됩니다. 그 후 그들은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되고 결국 에덴동산 추방령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좀 더 주의 깊게 볼 대목들이 좀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흔히 여자의 산고와 남자의 수고를 하나님께서 주신 형벌과 저주라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혹시 성도 여러분께서도 아이를 낳고 내가 벌을 받았다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던데요. 그리고 여러분께서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받은 월급으로 가족들이 함께 생활해가며 내가 벌을 받고 있는 중이라 여겨오셨습니까? 저는 제가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우리 가족이 정직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너무 좋던데 말이지요.


  여러분 모두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 모든 걸 들으신 하나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씀하셨다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뱀과 땅에게 저주를 내리신다 합니다.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준다 하셨고, 남자에게는 수고하여 땅에서 나는 것을 먹겠금 한다 하셨을 뿐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 자체를 죄라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정녕 죽으리라’고만 하셨습니다.


    진정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죄란 아담과 하와가 지었던 죄는 본래 하나였던 에덴동산과 동물, 인간이 내가 아닌 남으로 서로를 가르고 부정하며 하나가 아닌 갈라지고 깨어진 삶을 이야기한 것. 바로 이것이 아담과 하와의 죄인 것입니다.
1)

또한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과 저주 즉. 산고와 수고하는 노동은 오히려 너무나도 당신이 만드신 자녀들을 사랑하시어 그 죄에 대한 저주를 뱀과 땅에 내려 버리시며 다시 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생명창조 과정과 노동의 신성함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동행하는 삶의 기회를 주신 축복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과 수고하며 노동하고 사는 게 힘든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가 인간의 욕심과 교만함으로 없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 속에 절규하며 살게 하려 하셨던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가 인생을 살며 아이를 낳고 기르며 깨닫게 되는 주님의 뜻과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순수하게 자신이 흘린 땀방울을 통해 얻은 소출을 보며 감사기도를 드리고 더욱 나 자신이 소박해지며 순결해지는 경험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선악과 이야기는 창세기 기자가 ‘어찌하여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고, 남자는 끊임 없이 땅의 소출을 얻기 위해 수고해야 하며 이 땅에는 물질 중심적 가치만이 제일로 여겨지는가. 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높이며 교만한 자리에 서는가’ 등의 인간의 본질적 물음을 선악과라는 “신앙의 이야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자신의 판단을 절대시하고 욕망에 사로 잡힌 존재이며 우리네 인생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삶인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본래 아담이란 본래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하와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란 인물은 우리네 인간 군상을 표현하는 일종의 아이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닌 정신마저 땅으로 대변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되어 버린 인간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삽니다. 성경은 인간은 그래서는 안 되며 그럴 능력도 없음을 이미 바벨탑 사건을 통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러한 교만에 빠져 있고, 그나마 신앙생활을 한다 하여도 본래 성경이 증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옳다고 여기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이 글을 읽는 고운님. 우리 예수님께서 사셨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세상이 멀리하는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던 문둥병자와 함께 웃으시던 분이며 모두 돌팔매질 하던 여인을 막아 주시던 분이었습니다. 모두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할 때 가장 낮은 자리에 계셨으며 모두 많은 재물을 찾으려 할 때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셨던 분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통해 맺기 원하시는 열매가 있습니다. 당신을 통해 맺게 되는 그 열매는 분명 당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보람 있게 해줄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세상이 따르는 가치와 정반대의 것이라 때로 고통받기도 하고 곤궁한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1)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원죄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그와 하나 되는 삶을 사는 본래적 상태에서 벗어난 인간이 비본래적인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기독교]하늘바람몰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인과 아벨  (0) 2007.11.08
창세기에 대하여-성경일반  (0) 2007.11.08
사람을 만드시다  (0) 2007.11.08
창조 이야기-(2)  (0) 2007.11.08
창조이야기-(1)  (0) 2007.11.08

,
BLOG main image
하늘바람몰이
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by 바람몰이

카테고리

큰 머리 제목 (1160)
[성교육] 학교 교육용 영상 (0)
[LIFE]이 남자의 인생 (193)
[LIFE]몸짱 프로젝트 (21)
[LIFE]여유와 지혜의 장 (63)
[LIFE]육아 이야기 (3)
[교육]자녀교육 한마당 (73)
[안전] 안전교육 (49)
[안전] 응급처치 (18)
[성교육]생생 강의현장 (37)
[성교육]성교육 이야기 (177)
[성교육]낯설게 바라보기 (79)
[문화]방송,영화,격투기 (102)
[문화]신바람 자동차 (78)
[문화]블로그 인생 (24)
[기독교]하늘바람몰이 (87)
[기독교]변해야 산다 (35)
[경제]주식투자종목분석 (23)
[시사]세상살이 (82)
리뷰 아르바이트 (7)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TNM Media textcube get rss
바람몰이'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