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교육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다?

10인 이상 양성으로 구성된 근로자가 있는 기업은 어디나 예외 없이 '직장내 성희롱 예방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강의 등으로 교육을 대체하기도 하고, 전문강사님을 초빙해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위의 두 교육방식 모두 '기분 나쁘다''씁쓸하다' 같은 남자들의 반응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리고 무엇이 기분 나쁘다는 걸까요.


남자는 모두 잠정적 가해자?

교육을 받다 보면 대개 강사님들이 모두 여자분들이십니다. 제가 여성임을 얘기하는 건 마치 말빨 좋고, 공부 많이 한 여성대표가 잠정적 가해자인 다수의 남성과 싸우러 온 듯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제가 일반 직장인으로 교육을 받을 때도 그랬습니다. 또 강사가 된 지금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난감하지요. 본래 직장내 성희롱을 법으로 강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강사나 피교육생 모두 이걸 보고, 짚어가는 게 아니라 매우 지엽적인 문제에 얽매인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는 지루하고, 소모적인 말싸움이 반복된다고나 할까요(예 : 그럼 이런 것도 성희롱이냐? 너무 한 것 아니냐? 이러면 너무 삭막하지 않느냐 등...)


강사는 성희롱이 발생하는 핵심 원인을 짚으며 접근해야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강사의 접근" 이 핵심이라 봅니다. 즉, 직장내 성희롱이 일어나는 핵심원인인 권력이나 의 관계를 보고 이를 통해 접근하는 게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게 성희롱을 가하는 면만 계속해서 강조하기 때문이란 얘기입니다. 아쉽지만 이건 마치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있는 것 같은 형국입니다.


현재 직장내 성희롱 문제는 "남녀고용평등법"에 그 핵심 개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왜 성희롱 문제를 형법에서 다루지 않고 남녀고용평등법에서 다룰까요. 그것은 성희롱 문제가 남녀차별이란 바탕을 두고 있고, 남녀의 차별이란 양성간의 불평등 즉, 사회적 힘이나 위치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 있다 보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는 성희롱이란 누구나 예외 없이 상대적 소수자에게 언제든 가할 수 있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제 군대내에서 동성간 이뤄지는 성희롱, 직장에서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에게 가하는 성희롱의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희롱이 다수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부정하거나 희석시키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성희롱은 일부 성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거나 짓궃은 사람이 우연하게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이런 근본적인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에 따라 더 많은 영역에서 더 많은 방법으로 성희롱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이구요.

저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러 오신 강사님께서 반드시 이 점을 기억하고,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어느 한쪽 성이 일방적으로 가해자란 논리나 너네들 까불면 이런 처벌 받는다'는 식으로 진행하면 곤란합니다. 교육을 받는 게 아니라 "잠" 자러 오는 분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니 말이지요. 


정리하며

오늘 저는 이 글을 통해 제가 양성평등과 성희롱을 어떻게 관련지어 바라보는 지 적어보았습니다. 사실 성희롱 발생원인 중에는 "반권력적 성희롱" 이라 하여 남자 부하직원이 여자 상사를 성희롱 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권력의 문제가 얽혀 상급자가 하급자를, 다수의 성이 소수의 성적 소수자에게 가하는 성희롱이 더욱 많아 보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남성을 일방적인 가해자라 규정짓고 들어가는 지금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아닐까요. 물론 현실적으로 남성이 더 많이 가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량한 다수의 남성을 잠정적 가해자처럼 얘기하면 참 곤란하지요. 좀 관심 갖고 싶던 맘도 사라지게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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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창 인기를 끌었던 '그 놈 목소리'라는 영화가 있지요. 자식 가진 부모 입장이 되니 예전과는 달리 이런 내용의 영화는 쉽게 손이 가지 않더군요. 하지만 새삼 유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며 '어쩌다 인정 많고, 사람 순하기로 소문난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가만보면 요즘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취급되는. 인간성이 유린 되는 이런 일이 여전히 반복될 뿐 아니라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일이 반복 및 증가하게 하는 사회 구조 역시 여전히 존재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욕망이 만들어 낸 것이겠지요. 두말 하면 잔소리지요. 모두 사람의 가치보다 재물 같은 물질이나 이데올로기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이 잘못된 사회제도와 분위기, 사고방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말아 버린 거지요.


2.성경은 이것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전통은 이런 가치관이 매우 강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못하고 우상을 섬긴다는 거지요. 물론 이런 전통은 신약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이 아닌 세상적인 것에 몰두한다는 겁니다. 그 핵심 원인이 바로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이란 겁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넣어주셨던. 공동체를 지향하고, 서로를 아끼던 우리의 인간성을 부끄러울 정도로 타락하게 만들어 죄악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는 거지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인정이 메마르고, 무시무시한 문제 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공기에 젖어 사니 공기가 있는 줄 모르듯, 죄악에 물든 세상에 사니 이게 당연한 건줄 알고 있는. 얼마나 우리가 죄에 무감각해져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3.성경의 핵심인 예수 역시 돈이나 명예를 쫓고, 이기심이 가득하여 선한 본성을 죄에 빠지게 하는 이 어이 없는 사회 분위기를 보며 그 사람의 존재 자체와 영혼이 귀하게 여겨지지 못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세상을 보며 "정신 차리라" 정확히 꾸짖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가 바리새인과 안식일 논쟁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요. 당시 바리새인들은 39가지나 되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안식일 금지조항, 정결규정으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백성들을 죄인이라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재물과 권력 즉,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유다의 지배권력세력과 체제>를 통렬히 꾸짖습니다. 안식일 마저도 자신들의 도구로 삼아 사람을 소외시켜버리는 이들을 향해 말입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이 꾸짖음은 사람, 인간성, 영혼이 사라진 종교, 사회로 대표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에게 가해진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10:14는 하늘과 하늘 위의 또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것 모두가 너희 하나님 야훼의 것이라 분명히 선언합니다. 철저한 하나님 중심주의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는 바로 이 <하나님 중심주의>가 의도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와 권력을 독점하려고 불의한 제도, 권력, 체제, 사회분위기에 맞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즉,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 중심에 그 가치가 있다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 사회를 보며 정신 차리라 아주 통렬하게 꾸짖을 수 밖에요..자기 스스로 사람을 소외시켜 가고, 굴레에 종속시키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정신차리라 할 수 밖에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 영혼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4.
우리는 흔히 신의 아들 예수.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그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는지는 소홀히 여기곤 하지요.

그래서 한국 교회 교인들하나님 중심주의내지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는 아주 열심이면서 이웃 사랑이나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 낮은 자리에 서는 데는 약합니다. 대형교회가 넘쳐나고, 대형고급차가 넘쳐나는 데 이웃을 섬기는 손길을 점점 줄어듭니다.

하나님 중심주의는 사람 중심주의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하나라는 거지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어려운 소외된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의 영혼을 보며 한없이 눈물흘리며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섬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좀 더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 잘 사는 자나 못 사는 자나 서로 존중할 수 있게 하려 애를 쓰게 됩니다.


5.물질 만능주의와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이 시대. 사람마저 상품이 되는 이 시대.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나, 존경받는 잘 사는 부족한 이 시대. 평화보다 전쟁이 더 많은 이 시대.

저는 <예수 알아가기> 라는 주제로 약 10회 정도의 글을 연재해 보려 하는 데요.

오늘 그 첫번째 시간.
김준태라는 시인이 ‘아무나 보듬고 싶다’라는 시기 참 다가와서요. 이 시를 통해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제 글이<예수님은 누구신가?!> 묻고, 기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아무나 보듬고 싶다

무식하게 정말 일자무식하게

사람이여 환장하게 좋은 사람이여


아무나 보듬고 설레이고 싶다


그리하여 더욱 아무나 보듬고


우리가 사람과 사람이라는 놀라움을


강물에 입술 적시듯 노래하고 싶다


생명이여 생명의 소중한 것들이여


이제 나는 아무나 보듬고 싶다


사람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이제 나는 아무나 보듬고 싶다


우리가 너무 깊이 보듬어


마음에 행여 가시가 박힌다손


육신에 행여 손톱자국이 머무른다손


생명이여 생명의 소중한 눈동자여


사람의 뼈는 하늘의 하늘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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