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성교육 때 나왔던 질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력의 의미부터 정리하고, 하나하나 확인해 갑니다.

과연 정력과 결혼, 임신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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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절입니다. 아마 만난지 백일쯤 되는 기념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신학교를 다니며 폐지를 주워 생활하시는 어르신을 섬기는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민중이란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뛰며 공부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날도 날이니 만큼 당시 여자친구이던 지금의 아내가 갑자기 수원역에 있던 M식당을 가자 하였습니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 모르던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밥값이 8천원인 것입니다! 8천원은 어르신들이 하루 종일 리어카를 가득 채워 올 때나 받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었지요.

저는 경악을 했습니다. 식당에 가서 밥까지 나왔기에 식사를 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이런 밥을 먹을 수 있는가' 라며 제가 매우 강하게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솔직히 "지랄"을 했다는 게 맞습니다). 결국 당시 여자친구이던 제 아내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당시 저는 이것이 전혀 미안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역시 저와 비슷한 공부를 했기에 철저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많이 나이브해졌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수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참 제가 심했고, 옹졸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열한 삶을 살던 시기이었기에 후회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아내에게 그런 것은 정말 잘못한 일 같습니다. 그래도 불타는 사랑을 했던 저희 커플은 그 일이 있고도 약 1년 후 쯤 저희 커플은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평등결혼식을 한복을 입고 진행했었다.


결혼을 하며 저는 다른 날은 몰라도 결혼 기념일 만큼은 좀 특별한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결혼 후 출산까지 하고 군 복무를 했던터라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내는 그런 저를 이해해 주었지만 저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어제는 결혼한지 5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요즘 다음 view와 오 마이 뉴스에 지속적으로 성범죄 시리즈를 연재하다보니 강의가 좀 들어오고 있어 여유가 생겼습니다. 저는 지난 날의 미안한 맘을 달랠 수 있도록 아내에게 이틀 전부터 뭘 먹고 싶은 지 아무거나 다 고르라 하였습니다. 다음 맛집 블로거인 아내는 정말 좋은 동탄 신도시의 맛집을 알아내더군요. 어떤 곳인지 궁금증을 갖고 벼락을 헤치며 달려가보았습니다.

아내가 선택한 식당은 해물뷔페였습니다. 1인당 16000원이었지요. 30년 동안 제가 저를 위해 돈을 내고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비싼 식당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해물뷔페 가보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돌잔치나 장인 어른내외께서 오셨을 때 등 뭔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만을 위해서 가본 적은 없었지요.

가보니 소문처럼 이것저것 괜찮았습니다. 서비스나 분위기 모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맛도 너무 좋았습니다. 제 옆에 있던 딸아이는 연방 '맛있다' '야호~'를 외쳐댔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원없이 먹었습니다. 식당 서비스나 분위기, 맛도 좋았지만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5년전과 달리 예쁜 두 딸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저를 들뜨고, 기쁘게 하였습니다.

두 딸아이는 우리 부부의 사랑이자 자랑이다.


가만보면 행복한 삶을 산다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물질의 양을 상대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며 "상대적 박탈감" 이란 걸 느끼곤 합니다. 이미 절대적으로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고, 가끔 특별하게 비싼 식당을 갈 수도 있는 데 늘 부족하다 느끼지요. 그러나 이를 행복의 척도로 삼게 된다면 늘 답답하고, 쫓기는 마음으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서양의 많은 지혜자들과 고전은 욕심을 비우고, 감사하며 사는 데에 행복의 비결이 있다고 얘기해 왔던 것일 겝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아이들에게 많은 용돈을 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내와 해물뷔페를 가는 것도 내년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서 수학하는 탓에 물질의 절대적 양도 많이 부족하겠지요.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적은 용돈을 지혜롭게 쓰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말하며 삶을 긍정하고 싶습니다.

"그래, 너는 행복한 사람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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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대하다보면 여러 감정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특히 남자는 살면서 늘 미안하기만 한 사람이 둘이 있다 합습니다. 첫째는 어머니고, 둘째는 아내입니다. 제 경우는 조손가정에서 자라다보니 어머니의 사랑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들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저와 아내는 대학 동창이었습니다. 같은 신학교에서 아내는 학회장, 저는 학회교육가배(후배를 지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저 학회장과 가배라는 사무적인 만남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날 우리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인생관이 비슷합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 신학적 노선도 거의 일치합니다. 또 욕심 없는 것도 비슷하고, 삶에 대한 마음도 비슷합니다. 예, 저희 부부는 세상의 부귀영화는 둘째로 둔채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며 살아가기로 평생을 살아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으로써 미안한 마음은 없을 수 없습니다. 특히, 엊그제는 더욱 그랬습니다. 요즘 저는 대학원 입학과 새로 부임하게 된 교회일 등으로 매우 바쁩니다. 집을 비우는 경우가 유독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매우 지쳤고, 많은 활동 때문에 생활비 역시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엊그제 있었던 아내의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없어도 맛난 미역국과 정성으로 생일을 챙겨줬었는 데, 이번에는 미역국조차 끓여주지 못했던 거지요.

참 미안했습니다. 아내에게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필요한 것도 얘기하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생일 선물로 "머리띠"를 선물해달라 하더군요. 순간 제 자신이 어찌나 초라해지던지요. 순간적으로 아내에게 '그게 뭐야'라며 콧방귀를 뀌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피곤하고, 어려운 가정상황 때문에 저를 배려해 얘기한 것일텐데 말입니다.

본래 화를 내는 것보다 콧방귀 등이 더 기분 나쁜 것이지요. 아내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대로 밖을 나갔지요. 그나마 가장 예뻐 보이는 머리띠로 생일 선물을 대신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또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게 일은 많은 데, 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내에게는 또 다시 미안했지요. 형편은 여전히 어려운데, 일 때문에 가정과 아내에게 점점 소홀해진 듯 해서 말입니다. 

아, 
하늘을 보며 큰 숨을 쉬고 싶은 수요일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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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아내 아침을 해주고 나니
             움켜쥔 걸 내려놓으니 행복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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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의 중요성

건강을 유지
하는 가장 큰 비결이 무얼까. 좋은 약을 먹는것. 당연히 아닐 것이다. 강한 육체를 갖기 위해 극한의 훈련을 하는 것. 이것 역시 아니다. 전자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치고, 후자는 오히려 신체를 상하게 하기도 한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마음으로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면 이것보다 건강을 유지하는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우리네 조상님들은 이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네 삶을 "살림살이"라 하였다. 삶자체가 서로를 살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부의 살림살이는 매우 중요
하다. 서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살아갈 부부가 서로를 살리는 삶을 살 수 없다면 그것은 곧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닌 고통스런 나날의 연속으로 귀결될 뿐이다. 


가사를 분담하는 것과 전담하는 것의 차이

평소 나는 가사 분담을 40% 이상 하고 있었다 자부하는 편이다. 또 아내 역시 이런 나였기에 아무것도 없는 필자를 선택하고, 결혼하게 되었다 한다. 확실히 이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서로 별 부담없이 경제적으로는 힘들지만 재밌고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확실히 가사를 전담하게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서로를 살리는 행복한 삶이 잘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분명 좀 더 자신을 잃어가고, 힘들어하는 한쪽이 생기고 말았다. 감정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입에서 사랑과 생명이 담긴 말보다 공허한 잔소리와 상처를 주는 말이 더 많이 나오고 말았다. 대화의 창이 점점 닫혀지고,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 역시 줄어
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깨"가 쏟아지는 삶이 짧은 이유

아마도 이것은
필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흔히 결혼은 현실이라 하고, 때론 미친짓이라고까지 하지 않던가. 꼭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엔 "깨"가 쏟아지는 행복한 삶은 대개 1-2년에 불과한 것 같다. 길면 3-4년이 대부분인 듯 하다. 참으로 아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환상에 젖어 살다 현실에 돌아오니 더 행복하더라' 라는 말이 나오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는걸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참으로 간단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산과 양육, 가사를 도맡아 하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배우자가 있고..또 밖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자신을 이해하고 품어주기를 바라며 이런 모습에 실망하는 배우자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에 대한 서운함과 아쉬움은 미움 또는 짜증이 되고 이것은 언어로 표출되고 마는 현상이 반복된다. 비아냥과 무시의 발언이 쏟아지며 대화의 창이 닫히고
만다. 그러면 누군가는 자녀에게 지나치리만큼 관심 또는 집착을 하게 되고, 또 다른 배우자는 일과 취미에 열중하고 만다.
 

변화를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혼" 까지 맺는다는 "결혼"을 하는 걸까. 그것은 서로를 살리기 위한 삶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얗고 아름다운 웨딩 드레스와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으며 그 출발을 아름답게 수놓는 것은 왜 일까. 첫 단추부터 아름답게 시작해보자는 게 아닐까. 그런데 고작 몇 년만에 이렇게 감정이 식어버리며 살게 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라면 확실히 이런 건 그다지 권할만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는...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누구의 잘못이란 걸 따지기 전에...나는 이게 불만이다 말하기 전에...내 인생과 이 가정을 위해...과연 나는 내 배우자를 이해하고, 배려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나
돌아볼 일이다. 서로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아무런 발전도 없는 소모적인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사회구조나 통념 역시 중요하다. 이것 역시 폐기 또는 변화될 부분은 시대정신에 맞게 흐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부의 결혼생활에 가장 1차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역시 내 배우자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려는 바로 나 자신의 노력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난 백여일간 남편전업주부로써의 내가 느끼고, 깨달은 바이다.


정리하며

지난 백여일을 거치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구직의 문제와 살림에 치이며 정신적으로 많이 어렵기도 하였다. 하루하루가 아무런 의미없이 흐르는 것만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이 글을 쓰는 오늘 나는 내 자신의 성장을 보며 감사하게 된다. 아내를 더욱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다짐하게 된다. 서로를 살리는 생명살림의 삶을 꿈꾸며 이것이 내 삶의 한복판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읊조리게 된다. 이것은 아내와 나의 "혼" 까지 맺게 한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살려내고, 내 자신의 행복이 실현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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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소리쟁이야~제발 그만 좀 해!!

며칠전 있었던 얘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저는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웹진 "우리" 의 필진입니다. 한달에 한편씩 원고를 보내야 합니다. 운영자님은 큰 부담 갖지 않겠금 문자를 주시지만 저로써는 정해진 날짜에 특정 주제의 글을 써서 보내야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원고 마감의 압박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지난 달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희 집에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걸 토대로 쓰니 제법 반응도 괜찮더군요. 하지만 이번 달은 참 어려웠습니다. 원고 마감 이틀전까지 글의 컨셉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휴~상당히 마음이 답답하고, 급하지요.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습니다. 그리 큰 일도 아닌 데 자꾸 신경질을 내었습니다. 아내의 임신 후 제가 도맡아 하던 집안일조차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참 웃긴 현상이 일어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엄청난 잔소리를 해대는 것입니다. 아내가 출근에 쫓겨 그냥 던져놓고 간 옷을 일부러 가만히 두고 퇴근 후 돌아온 아내에게 '이게 뭐니?!' 라고 하는 걸 시작으로 사사건건 놓치는 게 없었습니다. 신경이 예민하니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이더란 것입니다.

하하, 이런 저 때문에 아내의 고생은 보통이 아녔습니다. 오죽하면 저보고 "이 잔소리쟁이야! 제발 그만 좀 해!! " 라고 할까요..ㅠ.ㅜ;;  나중에는 본인도 힘이 들어 저에게 짜증을 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이미 짜증난 상태니까 같이 짜증을 냈지요. 같이 짜증을 내니 서로 다툼이 일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서로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던 거지요. 


제 장인 어른께서는 농사를 지으시는데요. 가만보면 땅과 자연 때문에 많이 울고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정을 주어도 태풍 한방에 농사를 망치기도 하고, 때론 자연의 도움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며 웃기도 하시구요. 그러면서 더욱 생명의 소중함을 아시고, 인자한 주름이 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결혼 생활이란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서로의 말과 행동 때문에 많이 울고 웃곤 하지요. 나는 많은 정을 주며 노력하지만 배우자의 한마디와 행동 하나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반면 뜻밖의 작은 정성을 보며 웃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서로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인생이 하나의 인생이 되어 인생이란 큰 농사를 지어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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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저도 제법 잘 나가던 좋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며 학원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제 이름을 듣고 학원에 온 학생도 있었고, 학원 수강생 중에서도 제게 따로 과외 부탁을 하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법 수입도 좋았고, 어린 나이에 교무주임을 하며 표창장도 받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예, 그 때는 참 잘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만약 이 때의 저를 본다면 여자들은 저를 꽤 능력있는 남자라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득 저는 이런 삶이 주는 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허리를 다쳐 수술을 하게 되며 더욱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내 삶 자체는 아무런 여유가 없고, 매일을 피로에 지쳐 살아가며 돈만 벌고 있는 내가 무엇인가 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사람 냄새를 풍기며 생명을 일구는 삶이었던가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두려했던 신학을 다시 공부하며 제 삶을 바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제 아내는 이런 저를 보고 믿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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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 더욱 "격"을 지켜야 한다

가까울 수록 격을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누구일까요? 부모-자식일까요? 친구일까요? 아니요. 저는 부부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가장 먼 관계란 소리도 듣지만 이는 너무 가깝기에 더 멀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높고, 실망도 클 수 있으며 쉽게 감동받고 상처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잘 조절하는 것은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 한 남자의 아내로써 사는 나의 조절능력이 있습니다. 가끔 '예쁜 짓을 해야 예뻐해주지' 란 말을 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 전에 나는 얼마나 예쁜 짓을 했고, 또한 내 배우자가 나를 통해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 신경써야

저는 부부간에 가장 조심하고 조심할 부분이 바로 "말" 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생활할 때도 중요합니다만 이는 어느 정도 '가면' 을 쓰고 있는 상태라 그만큼 수습하기 수월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은 다르지요. 한마디 말로 "정내미" 가 떨어져버려 "웬수" 와 사는 현상이 일어나 버리게 됩니다.

그 말중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배우자를 부르는 "호칭" 이라 생각합니다. "야", "너", "네가" 등의 표현을 쓰면 왠지모를 거리감과 차가움이 느껴집니다. 또 실제 싸움을 할 때 이런 표현이 나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친정이나 시댁 얘기가 나와 집안과 부모님 문제가 나오면 이젠 완전히 적이 되어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됩니다. 만약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갈만큼 가서 수습 안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무엇이 배우자를 부르는 적절한 호칭일까

평소 습관이 중요하지 싶습니다. "00엄마", "00아빠" 등은 배우자보다 자녀를 중심에 두고 있어 부부 중심의 표현이 아닙니다. 또한 "바깥양반" "집사람" 등 역시 상당히 양성의 성고정관념에 근거한 것이라 오늘날에는 맞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남편들이 자주 쓰는 "와이프" 란 표현은 비교적 여성의 지위에 대한 중립적 가치를 지닌 듯 하나 외래어이기에 기왕이면 좋은 우리말을 쓰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표현이 내 배우자를 부르는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해 저는 일단 배우자가 원하는 호칭을 사용하는게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통계를 보니 남녀가 각 각 배우자에게 듣고 싶어하는 호칭 1위가 "자기야"와 "여보" 라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예, 좋지요. 서로에게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표현해 줄 수 있다면 괜찮다 싶습니다. 특히, "여보" 란 표현은 조금 나이들어 보이는 듯하여 꺼려하는 젊은 커플도 많으나 그 의미는 '보배와 같다' 는 것이라 아주 훌륭한 표현이란 생각이 듭니다.


부부 서로의 부모님과 집안에 대한 얘기는 매우 민감한 것

그 다음 주의해야 할 것은 "부모님" 과 "집안" 에 대한 얘기입니다. 물론 부부 모두 배우자의 부모님과 집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서로 협의해가며 잘 모실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꼭 그러다보면 '너네 엄마한테는 이렇게 했는 데, 왜 우리만 그래' 나 '너네 집에 이렇게 했드라~' 라며 막말과 불만, 비아냥이 나오고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며 싸우게 됩니다. 꼭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도 결국 안좋게 되더라는 거지요.

여기서 일단 우리는 내 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쉽게 흥분하고 만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상황판단이나 제어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고, 결국 별것 아닌 문제를 갖고도 부부간의 큰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배우자를 향한 고마움의 표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

가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 아예 말을 안하는 게 낫다 하는 분들을 뵙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나요. 말을 안해도 마음으론 계속 쌓여가게 되는 걸요.

저는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서로 더 해주기"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의 핵심이 바로 내 배우자에게 "고마운 표현 더 해주기" 입니다.

내 부모님께 작은 것 하나만 해줘도 고맙고, 사랑한다 자주 많이 표현해주는 것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은 내 배우자의 동의와 지지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고마움의 표현은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습니다. "의식적인 노력" 이 필요한 부분이란 얘기입니다. 내가 한번 더 노력하는 자세가 있어야 배우자의 표현도 한번더 나오게 되는 것이지 나는 가만히 있는 데 배우자가 고맙다 할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정리하며

왜 우리네 어른들은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관계' 라 하신 걸까요. 저는 그것의 핵심이 바로 "말" 에 있다 생각합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 가장 크고 쉽게 감동하고, 반대로 가장 크게 서운해하며 멀어지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평소 배우자에게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부르는 호칭이나 부모님과 집안 문제 등을 두고 "의식적" 으로 고맙다 더 많이 얘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배우자를 향한 존중과 사랑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고마움의 표현 역시 "훈련" 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 한마디로 울고, 웃으며 빚도 갚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기왕이면 배우자에게 좋은 표현을 써서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가면 좋지 않을까요. 부부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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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결혼해야 철이 든다?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5. 19. 16:15 Posted by 바람몰이

경기여성정보웹진 "우리" 에 처음으로 원고를 보냈습니다. 원제는 "야야~이번에는 제발 운동화 한켤레 사자" 였는데요. "남자는 결혼해야 철이 든다?" 수정되었더라구요. 

제가 이번에 맡은 새로운 코너는 <남자 이야기> 라는 코너입니다. 이곳이 본래 여성정보웹진이었던 곳이기에 이번에는 남자의 시각으로 본 세상과 인생을 통해 함께 공부하자는 취지가 있다하였습니다.

직접 원고를 올릴까 했는 데, 문제가 있어 그렇게는 안 되겠더군요. 그래서 화면을 띄우고, 링크를 걸어둡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클릭하셔서 읽어보시구요. 댓글도 달아주신다면..^.^;;

글제목 클릭--->  
<남자는 결혼해야 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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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저는 수첩이란 게 없었습니다. 노트 역시 거의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 듣고, 그 자리에서 암기하고 뭐 그런 나름 "똑똑한" 편에 속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생활도 잠시. 나이 스물셋에 전신마취 후 허리 수술을 한번 했더니 사람이 요상하게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의학적 지식을 근거로 댈 순 없으나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 이 후부터 자꾸 '깜빡~깜빡~' 하는 습성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 때 부터 제 핸드폰과 노트는 항상 꽉~꽉~메모로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경이나 자동차 키 등 사소한 물품을 던져놓고 깜빡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일어나 다 씻고 난 후 안경을 찾는 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 짰더니..세상에 제가 안경을 쓰고 있던게 아닙니까..ㅠ.ㅜ;;;(실화)


이런 저에게도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제 작은 소지품을 잘 챙겨주었습니다. 제가 한참 운전을 하다 '아~맞다! 그거 놓고 왔다!' 라고 하면 항상 아내의 가방 안에 그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던 아내가 얼마 전부터 이상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고 난 후 부터 조금씩 변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 역시 자꾸 '깜빡~깜빡~'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출산은 꽤 고단한 편이었습니다. 대학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골반이 벌어지지 않았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많은 운동과 준비를 했었습니다. 출산 당일 역시 계속 운동을 하며 준비를 했었고, 하루종일 계속된 진통을 이겨냈더랬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결국 담당 의사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이야기 했고, 의사 역시 산모의 안위마저 걱정되던 상황이라 수술을 하고 말았을 정도 였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아내는 확실히 몸이 약해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개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며 이른바 '진기'를 소진하게 되지요. 그리고 많은 영양분이 빠져나가고, 그 동안 약해져 있던 몸에 본격적인 반응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이걸 제대로 관리 못해주면 평생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요. 산후조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수 있는 대목인데요. 저희 역시 아예 시골로 내려가 산후 조리도 하고, 나름 좋은 것도 많이 먹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출산 후 여성이 출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요즘은 저희 부부 서로가 서로의 물품을 챙겨줍니다. 차에 타면 서로 묻곤 하지요.

"자기 핸드폰 가져왔어?"
"어~내가 챙겼어"
"지갑은 내가 가방에 넣어 놨어"
"어~그럼 이제 출발할까?"
 "어~"
"건희야, 아빠 이제 간다 자~출발~"
"추발~"


어디선가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글을 읽었는데요. 요즘 많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 둘이 하나인 것만 못할때도 많겠지요. 허나 이같이 좋고, 나쁨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이 특히, 내가 하기 나름이고, 이를 어떻게 느끼느냐는 내가 받아들이기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부부끼리 행복하게 사는 거 별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먼저 챙겨주기 시작하다보면 어느 샌가 서로를 더 믿고, 서로에게 더 감사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지요.

하하, 오늘 저녁에는 무얼 챙겨줄 수 있을려나요~

퇴근 후가 기다려지는 수요일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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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결혼 생활이 주는 가르침>

대학 동기인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서로 사는 방식이 너무도 달랐던 터였다. 그러나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서로 불같이 뜨겁게 사랑을 했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며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었다.

우리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부터 정치, 경제, 사회에 이르는 토론을 하기도 했고, 우리의 비젼과 결혼생활 즉, 자녀교육부터 처가와 시댁 식구에 대한 이야기, 진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준비와 공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를 길러주신 할머님을 모시면서부터 이런 저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가정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지 않는 일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과 진행

할머니께서는 나를 막내 아들처럼 여기시어 잔소리가 유독 많으신 편이었다. 아내가 맡아야 할 고유 영역이 구분되지 않고, 어린 아들 키우듯 계속되는 간섭과 잔소리가 있었다.

이 때, 아내는 사실상 소외되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당연히 신혼의 단꿈을 꿔보지도 못한 아내는 이런 할머니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나이가 내가 26세, 아내가 25세였다. 솔직히 할머니와 마찰이 생길 때마다 모든 걸 이해하고, 맞춰드리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사실 같이 사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역시 문제가 많았다. 이 때 나는 공익요원으로 늦은 군복무를 막 시작했었다. 할머니는 물론 어린 딸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면서 동시에 군복무까지 수행해야 하는 터라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당시는 이래저래 도움의 손길도 있고,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먹고 살 만큼은 되었지만 아내와 할머니를 중재하기까지 여유도 없고,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다. 

문제의 누적과 극단에 이르게 된 싸움

당연히 계속해서 문제가 누적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연로하신 할머니와 다툴 수도 없고, 속상한 일을 내가 아니면 풀 수 없는 아내는 밤 늦게 돌아온 나를 붙잡고 할머니와 있었던 일을 말하곤 하였다. 

피곤하고, 지친 터에 여유도 없는 나는 이럴 때마다 아내가 할머니 욕을 한다 발끈하며 당신도 문제가 있다 양비론을 펴기 시작하였다. 해답 없는 매우 소모적인 그러나 서로의 감정에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내며 무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했던가. 미안하지만 이 말은 당시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서로에 대한 비아냥과 비난이 계속 되었다. 급기야 내가 집을 뛰쳐 나가거나 아내가 나가는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흥분하여 할머니께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심지어 종국에는 서로 헤어지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게도 되었다.

 이런 생활이 일년 넘게 계속되니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말이지 하루가 1년 같은 나날이 반복되었고, 지금보면 지난 3년이 마치 30년쯤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다시 찾은 비결

지금 우리는 다시 신혼초와 같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 할머니 역시 모시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서로 헤어짐까지 결심했던 극단적인 상황을 타개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 있었다. 약 6개월간 주말부부로 지내며 우린 왜 그 때 서로가 그런 말을 했는 지 각 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특히, 아내는 자신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 후 정신영역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고, 시할머니와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매우 깊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아내와 할머니 같은 외부에서 찾던 것에서 그것이 내게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마음수련을 시작하였다. "화"를 다스리는 훈련을 하고, 좀 더 친절하게 대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시작하였다.  서로 이런 노력을 약 6개월을 넘도록 계속하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에게 준 첫 휴가와 결혼생활의 의미

오늘 나는 결혼 3년만에 드디어 아내에게 첫 휴가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리 대단한 휴가를 주는 건 아니다. P블로그 사이트에서 리뷰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가 시사회에 당첨되었기에 아이와 가정살림은 내가 책임질테니 대학시절 단짝과 재밌게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늦게 와도 된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지난 시간동안 매일 같이 아내를 울리고, 힘들게 했던 날에 대한 반성이자, 변화된 우리 부부의 상징적인 첫 열매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제 이 첫열매를 시작으로 우린 더욱 풍성한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다. 지금 행복한 것처럼 앞으로도 행복하고, 지금 이 힘든 시간을 잘 풀어내며 온 것처럼 앞으로도 여러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통해서 사람을 배우고혼자만의 삶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것이 바로 결혼생활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인생의 가르침일 것이니 말이다.


대학 연애시절 찍었던 사진. 상당히 겉늙어 보이는 나와 달리 아내는 여전히 매우 어려보인다.

작년 여름 가족휴가 때 찍은 사진. 세식구 모두 초췌한 모습이다 ^.^;;

결혼 초 가족이 쇼핑나갔던 모습

결혼 초 갓난 딸아이를 봐주시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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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취직과 함께 주말부부로 지낸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유독 빨리 지나간 듯 느껴진 올 한 해였지만 아내와 아이가 없는 집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흐른다. 텅빈 방에 혼자 누워 외로움과 벗하며 청하는 잠은 그리 반가운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새벽 두시나 되야 잠이 들게 되었다.


물론 주중에 한번, 주말에 한번 가며 최대한 자주 만나려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주 듣게 되는 소리도 몇 가지 생겼다.

먼저, 방에서 홀아비 냄새가 난다
는 것이다. 언젠가 여동생이 했던 말이다. 그나마 내 몸에서는 안난다 하니 다행이었다.(그 후 향기00을 사서 뿌려주고 있음)

두번째는 얼굴이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는 것이다. 물론 잠을 늦게 자서 피곤한 탓도 있겠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세번째는 일은 잘 한다
는 것이다. 혼자서 무얼 하겠는 가.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일을 하게 된다. 이미 해봤던 것도 여유 있게 생각하다보니 이래저래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치밀한 준비가 가능했다. 


물론 주말 부부로 지내다 보니 좋은 점도 있긴 하였다. 무엇보다 아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더 애틋한 마음이 들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확실히 사람은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내와 떨어져 살고 나니 그 동안 몰랐던 아내의 소중함이 많이 느껴진다. 밤 마다 피곤해 잠 못드는 나를 위해 안마를 해주고, 아침마다 잘 다녀오라 인사해주는 일상이 이젠 너무 특별해졌다.

또한 그 전에 우리가 다퉜던 일을 생각하며 '아..그래서 그 때 그랬나 보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는 식의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한마디를 해도 좀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해줘야 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아내가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운전해야 하는 터라 차에서 혼자 웃는 걸 연습해보기도 한다.

또한 딸아이와 많이 친하졌다는 것이다
. 주중에 가면 대개 8시나 되야 하는 데, 녀석은 그 때부터 나와 정신없이 놀려 한다. 주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잠을 자도 내 품에 안겨 자고, 밥도 내가 먹여 주는 걸 좋아한다. 기저귀도 굳이 아빠와 갈겠다고 한다. 나 역시 더욱 녀석이 사랑스럽고, 소중히 느껴진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커갈수록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더 느끼는 것이라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부녀가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해 가는 건 굳이 나쁘게만 볼 문제가 아니리라. 


아마도 우리 부부는 6개월 이상 더 주말 부부로 지내야 할 것 같다. 그 때까지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아내와 딸이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 같다.(필자는 부천, 아내와 딸은 오산에 거주) 내 몸도 피곤하고, 아이도 힘들고, 아내도 그립지만 누구나처럼 어쩔 수 없는 삶의 형편이란 것이 있다. 따라서 이 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게 잘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선택일 것이다.

나는 남은 6개월 동안 지금보다 아내를 더 이해하고, 공감해주려 노력하고 싶다. 또한 아이를 더욱 사랑하고 싶다. 끝으로 내 자신을 더욱 깊이 닦고 싶다. 그러면 힘든 시기일 수 있는 지금이 우리 가정의 더 행복한 내일을 위한 소중한 배움과 준비의 시간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처럼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가정의 사람들과 이 사회를 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내가 내 가족 사랑으로만 멈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역시 우리의 이 힘든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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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곧 한 여인을 만났다. 그간 한번의 연애경험이 없던 나에겐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난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인식의 관점과 내 삶의 수많은 패턴들이 바뀌게 되었다. 모든 연애가 그렇듯 우리 역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믿음과 뜻을 품고 잘 이겨내었고, 곧 결혼을 할 예정이다.

결혼 준비를 하며 주변의 많은 사례들을 보았고, 많은 조언을 들었다. 쭉 훑어보니 '이 정도는 해야한다..' 하는 기본선이 있었다. 혼수, 예단, 웨딩촬영, 드레스, 턱시도, 해외신혼여행...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이러한 기본선을 지켜가는 것이-흔히 일생의 단한번이라 말하곤 하는-결혼의 의미를 더욱 뜻깊게 할 것인가..더욱 풍요로이 해줄 것인가..경제적인 부담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워지켜나가기로 하였다.

첫째, 모두 하는 대로 하는 대로 꼭 할 필요는 없다. 우리 결혼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 세상의 관념들이 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고, 후배들과 또래의 젊은 커플들에게 모범 사례로 기억되거나 참고가 될 수 있는 예식을 준비해 보자.

셋째, 20대 중후반이 되어서까지 부모님의 손을 빌려 시작하지는 말자. 힘들더라도 우리의 힘으로 가보자.

이정도의 큰 틀을 잡아보며 우린 좀 더 세밀한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먼저 기존의 웨딩홀을 빌려 하는 흔히 말하는 결혼식을 지양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이 속에는 서로의 사랑과 인격, 신념을 존중하는 고백이 충분히 담보되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린 서로의 종교와 신념을 존중하여 대학 채플실을 빌려(약 5만원 상당)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받아오는 식의 남성중심적 예식이 아닌 양성평등적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서로의 은사님이신 여성 목사님을 주례로 모시기로 하였다. 이것을 통해 양성이 서로를 존중하는 양성 평등적 의미를 담아내고 싶었던것이다.

또한 결혼식 때 흔히 입곤 하는 턱시도와 드레스를 과감히 벗고, 우리의 전통 한복을 입기로 하였다. 꼭 서양사람들의 몸에 맞춘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우리의 결혼에 우리의 의식을 담아내는 것 또한 뜻깊은 것이라 여겨졌다.

혼수, 예단 등은 모두 생략하기로 하였다. 사실 그 동안 차근차근 준비하기도 하였거니와 대부분 새로운 살림을 시작한다 하여 꾸준히 사용가능한 물품을 버리거나 처분하고, 새것을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내가 갖고 있던TV, 오디오 세트, 책장, 그녀가 갖고 있던 식기류, 컴퓨터, 전기밥솥 등을 그대로 이용하기로 하였다. 냉장고는 누군가 몰래 버리고간 350리터짜리를 구해다 깨끗이 닦아 사용하였다. 자본주의 적 소비의 시대 속에 산다고 하여 우리까지 편승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소비중심의 생활양식이 지구별에 끼칠 영향은 눈에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신혼여행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일단 해외여행은 지양하기로 하였다. 아직 우리네 땅도 제대로 모를 뿐더러, 굳이 해외로 나가야만 할 이유가 없었다. 또 나간다고 하여 딱히 더 좋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필자의 소형차를 이용하여 전국일주를 하기로 하였다. 같은 값일지 몰라도, 이것을 통해 더 오래 함께 있고, 전국의 수많은 명승고적을 탐방해보고, 우리네 인심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사람 사는 맛을 느껴보기로 하였던 마음이다.(200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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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LIFE]이 남자의 인생 2007. 11. 8. 10:35 Posted by 바람몰이

불같이 시작해서, 불같이 이뤄가는 우리의 사랑.


나는 하나님의 뜻을 보며 결정을 했다.


난 그동안의 내 기도가 응답 받은 것이라 받아 들인다.


이제 하늘의 은혜를 통해 서로의 삶을 풍성히 일궈나가길 기도하고 있다.


우리를 통해 더 많은 열매가 맺어지길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열매가 아름답게 맺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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