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는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가해지는 성적행위' 즉, 상대방이 싫다고 표현을 해야 성폭력이라 규정했지만 요즘은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성적행위' 즉, 상대방의 자발성이 포함된 동의나 합의, 허락 등의 개념이 없이 가해진 모든 성적행위를 성폭력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개념이 결혼생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성적권리를 배타적으로 독점할 합법적 권리를 부여받았습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성적으로 충실할 의무를 지니고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때에는 이혼사유를 제공한 것이 됩니다. 그만큼 결혼생활에서 부부의 성관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우자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성관계를 맺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배우자의 성적권리를 배타적으로 독점할 합법적 권리를 부여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강제적인 성관계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와의 합의 등이 전제되지 않은 채, 더욱이 물리적이고, 언어적인 가시적 폭력이 수반된 일방적 성행위는 '관계'를 파괴하는 '폭력' 행위이고, 이는 '부부강간'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는 이러한 개념을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이미 1980년대부터 '부부강간'의 개념을 채택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부부의 관계를 어색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쪽만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를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양성평등한 부부관계의 중요성과 인권의 향상이란 개념 위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이러한 흐름에 약간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 대에 들어서야 겨우 이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비교적 보수적인 집단인 법원에서는 이후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부부의 성관계가 일방적이고, 폭력인 것이 아니라 상호 간의 인격의 존엄성 위에서 이뤄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습니다. 그동안 법원은 강제적인 부부의 성관계 이 후 결혼생활이 유지되었느냐 아니었느냐의 여부로 부부강간의 성립가능여부를 보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강제적인 관계가 있었지만 그 이후 결혼생활이 유지되면 부부강간을 인정하지 않고, 이 관계가 깨어지면 이를 인정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강제적인 성관계 이후에도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인 여성이 홀로 사회에 나와 자식까지 기르며 살아가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또 이혼에 따른 사회적 비난이나 자녀의 인생에 대한 부담도 큰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가정분위기에서 위축된 여성이 '이혼'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부부강간'의 성립가능여부는 '결혼생활의 유지'가 아닌 다양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결되어야 합니다. 피해자(대부분 여성)가 결혼의 지속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는가, 피해자가 또 다른 대안적인 선택의 정보 속에서도 결혼생활의 유지를 원하는가, 가해자가 변화될 개선의 여지는 충분한가 등을 다각도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자크 데리다는 '법'과 '정의'를 구분하며 끊임없이 상호영향을 주며 변증법적 발전을 할 것을 주장합니다. 데리다는 '정의' 자체에 대한 정의를 내리진 않았지만 이는 최소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이상적인 모습 즉, 인권이 더욱 보장되고 신장하는 방향성을 내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원이 당장의 법조문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보다 진일보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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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법원의 성범죄에 관련한 판결에 대해 고개를 젓게 됩니다. 오늘 포스팅할 주제는 어제 보도된 70대 남성의 9세 여아를 성폭행 사건 무죄 판결입니다.

<사건개요>
이 가해자는 지난 5년여에 걸쳐 4차례 상습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남성은 피해 여아의 장애인 부모가 일하는 과수원 주인이었는데요.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인상착의 등 성폭행 상황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어 강한 유죄 의심이 들지만 법원이 직권으로 병원에 의료감정촉탁을 한 결과, 피고인이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고도 발기가 전혀 되지 않는 점, 고령인 점 등을 볼 때 성폭행을 했을지 의심이 간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들었습니다.


물론 언뜻 보면 이해도 됩니다. 가해자가 일단 할아버지라는 거지요. 그리고 오랫동안 당뇨를 알아 발기부전 치료제를 먹고 나서도 발기가 안 되었다는 것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이 속에는 여러 함정이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왜 발기가 안 되면 성폭행을 할 수 없다 생각하는가?

피해 여아가 노인의 성기에 점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모종의 행위와 노출이 있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일 겝니다. 또 피해 여아의 처녀막이 이완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얘기는 피해 여아의 성기에도 모종의 압박이나 액션이 취해졌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실제 피해 여아는 약 5-10여분간 성관계(정확히 말하자면 피스톤 운동) 이뤄졌다 진술했지요.

현행법상 강간은 피해여성의 성기에 가해 남성의 성기가 강제로 삽입되어야만 성립됩니다. 그런데 피해 아동은 피스톤 운동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진술하고, 처녀막이 이완되는 결과물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것으로도 증거가 불충분하다 여깁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구체적인 증거가 나와야만 하는 것일까요.

발기가 되지 않는다하여 성기 삽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피스톤 운동이 원활하지 않다해도 '성'을 매개로 '폭행'을 한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2.고령자는 성폭행을 하지 않는가?

우선 이 사건은 가해 남성과 피해 여아의 권력구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피해 아동은 일단 겨우 9살짜리 아동입니다. 두번째로 피해 아동의 부모는 가해 남성 소유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 부부입니다. 말하자면 가해 남성에게는 절대적 약자이고, 가장 손쉽게 범죄 대상으로 선택될 수 있으며, 피해를 입어도 쉽사리 문제기를 할 수 없는 위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생각해볼점은 가해남성이 70대의 고령인 점이 성폭행을 하지 않는다는 근거가 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노인 강력범죄 발생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성폭행 역시 예외는 아닌데요. 작년에 보도된 기사를 보니 성폭행범은 지난 2000년 94명에서 작년 2010년 기준 423명으로 4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즉, 고령이란 이유가 성폭행범의 무죄 판결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3.피해 아동의 진술에는 왜 신뢰를 부여하지 않는가?

아동 성폭행의 특징 중 하나는 피해 아동의 진술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동의 정신적 충격이 큰 것은 물론 법정에서 수차례 상황을 기억하고, 평상시에라도 '반복 진술'하는 것 자체가 아동에게 무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외국은 굳이 피해 아동이 법정에서 진술하지 않아도 비디오 진술의 효력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피해 아동이 상황을 꽤 구체적으로 잘 진술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인상착의를 성기의 점까지 기억하고 있고, 성폭행 상황도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9세 여아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지요.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작은 실수로 아이를 다그쳐도 이 자체가 공포가 되어 아이의 말이 오락가락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자신의 부모의 위치나 자신의 상처를 넘어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과연 피해 아동의 단순한 진술이 아닌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에 신뢰성을 더 부여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가해남성의 진술에 더 신뢰성을 부여해야할 것인지를 말입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는 앞서 고려한 증거를 참작할 때, 피해 아동의 진술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게 더 옳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4.이해 안 되는 검찰의 일처리

끝으로 한가지 덧붙여, 저는 검찰도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가해 남성을 '성폭행' 만으로 기소했냐는 것입니다. 사건의 정황을 살펴볼 때 이 사건은 일단 '미성년자 강제추행'이 100%성립합니다. 그런데 이걸 빠뜨려서 결국 가해자에게 면죄부만 주고 말았습니다. 

이제 가해남성을 다시 강제추행으로 기소하려면 또 다시 피해 아동이 재진술을 해야하고, 법정을 오고가야 하겠지요(절대로 봐주는 건 안 된다). 그 오랜 시간을 지나며 이 아동은 얼마나 많은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될까요....이 아이가 살아갈 내일을 생각해 볼 때 눈물이 올라오는 걸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정리하며

여기까지 제 판단으로는 가해 남성이 성폭행범이라는 근거가 불충분 한 것보다는 성폭행범이 아니라는 근거가 더욱 불충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재판부의 판결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검찰의 일처리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한번에 똑 부러지게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것일까요. 검찰이나 법원은 사건을 사건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피해 아동과 가족의 상처와 아픔을 먼저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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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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