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에 정치권에서 내놓은 대표적인 대책 중 하나가 바로 CCTV 확충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학생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즉, CCTV는 아무 소용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친구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큰 실수를 해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CCTV에 의존하려 했던 것입니다. CCTV를 설치하면 그곳에서의 범죄량은 일시적으로 감소하게 되지만 CCTV 사각지대에서는 오히려 늘어나게 되고, 이로써 전체적인 범죄량은 변화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아동 성폭력 문제가 이슈화될 때부터 우리 아이들의 안전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확충하고, 아이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러 차례 강조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지닌 기운을 회복시키고, 마음속에 뿌려있는 인간미의 씨앗을 틔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기도 합니다.

아동 성범죄나 학교폭력 모두 홀로 방치된 아이 사이에서 주로 발생하곤 합니다. 물론 학교폭력은 여러 아이들 사이에서도 발생하지만 대개의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자신이 깊이 신뢰하며 알릴 수 있는 통로가 없었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즉, 홀로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고립되어 있다는 것은 내 주위에 사람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내가 인간적인 의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당연히 부모님에게 있습니다. 모든 인성교육과 아이의 케어는 가정에 1차적 책임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 즉, 새벽까지 일을 해야 하고, 술을 마셔야 하는 그리고 근무시간에 제대로 앉을 수조차 없는 근로자가 태반인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가정은 대화가 단절되고, 서로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가정에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지요.

2차적 책임은 담임교사에게 있을 것입니다. 담임교사는 아이들과 수시로 상담하며 심리적, 현실적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지요. 그러나 학교에서의 잡무와 담임 학생 수가 너무 많은 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 선생님으로서도 정말 답답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저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기업의 가정친화 경영정책 도입이나 교과 과정의 분량 조절 혹은 수준 조절 등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가정친화 경영을 시행하는 기업에 일정 정도의 인센티브를 줍니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가령, 업무평가를 할 때도 업무시간 이 후까지 일을 하는 사람보다 업무시간 내에 효율적인 처리를 한 후 가족과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 더 가산점을 주는 방식 등 다양한 가정친화 경영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가정이 안정되지 않으면 직장생활 자체도 안정될 수 없기 때문에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교과과정의 난이도 조절을 통해 아이들의 학업부담을 줄이고, 다양한 특별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항상 성적으로 아이들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1년에 한 두 번 특강으로 '인성'을 얘기합니다. 교육 자체도 너무 지루한 이 시간을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공부의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지요. 왜 노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노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고, 잘 노는 아이만이 학교공부도 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경기도 내 모 명문고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 성적을 올리고,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공부 못 하는 학생을 데려와 꿈을 키워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선생님들의 열정과 학교의 다양한 활동으로 표출되었고, 놀랍게도 이 학교는 개교 몇 년 만에 경기도 내 최상위 명문고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아이들의 안전은 '복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홀로 방치되면서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생은 길거리로 내몰린 혹은 스스로 뛰쳐나간 아이들이 22만 명을 넘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이 아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을 '문제아'나 '결손가정 아이들'로 보기 전에 그 눈빛 속에 꿈과 미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아이들의 삶을 온전히 케어할 수 있도록 거미줄처럼 촘촘한 복지대책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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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이슈가 되었던 '개념 없는 중딩들'이 또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 학생들은 처음 부임한 여선생님을 상대로 '성희롱'을 한 혐의를 받으며 공분을 샀던 사건인데요. 어찌된 연유인지 갑자기 인터넷에 해당 동영상이 불길처럼 번지며 각 종 포털 사이트마다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학창시절 좋아하는 선생님 또는 순한 선생님을 놀려본 적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습니다만 이 경우는(이번에도) 수치심을 느낀 선생님의 제재 마저도 너무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 도가 지나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또 우리는 이 문제의 처리와 함께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저는 작년에 썼던 글을 수정보완하며 이 사건을 다시금 논해보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성희롱 사건으로 처리될 수 있을까?


우선, 이 사건이 많은 분들의 생각처럼 성희롱으로 처리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성희롱 특히, 이번처럼 직장내에서 일어난 성희롱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느냐'만 보는 건 아니란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어난 성희롱이 성립되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번째는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느냐는 피해자의 판단(관련글 : 피해자 중심주의란 무엇일까?), 두번째는 가해자의 존재, 세번째는 매개체 즉, 지위나 직장내라는 조건. 마지막으로 그에 따른 결과물 즉, 고용이나 승진 등에 지장이 생기거나 고용환경이 악화되는 것 등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학생이란 점이 상당히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직장내 성희롱 사건으로 처리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발생하지요. 또한 문제제기 할 수 있는 기한을 넘어섰다는 한계 역시 존재합니다.

물론 형사처벌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특히, 동영상을 유포했던 사람의 경우 특정 영상을 유포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기만 한다면 이는 공소시효 5년 이내이므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기타 다른 학생의 경우 모욕죄의 공소시효가 1년 이내이므로 처벌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성희롱인가 아닌가를 묻기 전에


그런데 여기서 한번 더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학생들의 처벌을 논하기 전에 그 이면에 깔린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것은 성희롱이 맞다 아니다'에 빠져버리거나 '이 학생들이 어떻게 처벌될까?'라는 호기심으로 접근하면 사건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사건을 처리 또는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세가지 지점을 함께 생각해 볼 것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가해 학생들의 성의식의 수준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성교육을 진행하면서보면 학년이 올라갈 수록 자신들은 모든 걸 안다 생각하는 학생들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막상 테스트를 해보면 점수가 형편 없는 걸 보게 됩니다. 즉, 우리 학생들의 성지식이 매우 부정확하고, 나도 모르게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입니다. 성지식이 부족하다보니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정확치 않지요. 상대를 배려하고, 내 자신을 다스리는 의식이 높아질 수 없습니다.(관련글 : 아동 성폭력 예방교육은 인성교육이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성의식이 보다 함양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식수준이 올라간다는 건 어느 한순간 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평소 꾸준히 교육을 받아 내면화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학교 등 공공교육기관에서는 보다 철저하고 꾸준한 성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이미 수차례 말씀드렸듯 1년에 한번 1시간짜리 교육으로는 그것도 한번에 두세주제(예 : 양성평등+성폭력 예방)를 강당에 수백명씩 모아놓고 진행하는 것으로는 역부족입니다.(관련글 : 아동 성폭력, 1년에 40분짜리 교육으로 부족하다

둘째는 '엄함'이 없는 우리네 교육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체벌을 반대합니다. 또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강제로 밀어버리는 것, 억지로 교복을 착용하게 하는 것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들 교육에 있어서 선생님의 '엄함'을 무시하는 것 역시 반대합니다. 말하자면 교육은 훈육의 차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딸아이 어린이집을 가보거나 교회를 가봐도 자기 자식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자주 보게 됩니다. 아이에게 너무 끌려다니기에 아이들이 부모님 무서운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 행동에 제약이 없고, 남에게 피해를 주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청소년이 되어 덩치가 커지면 아무도 이 학생들에게 뭐라 하지를 못합니다. 인성교육은 학교만으로는 어렵습니다. 개념없는 중딩들을 욕하기 전에 내 가정은 어떤지 한번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관련글 : 교권확립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끝으로 세번째는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실종된 것이 아닌가 매우 걱정이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성과 관련해서는, 자신보다 조금만 약하게 보이거나 낮은 위치에 있으면 너무도 쉽게 성희롱을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10대 청소년 연예인과 닮은 음란 동영상을 너무 쉽게 공유하며 즐기며 해당 동영상의 학생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관련글 : 당신의 관음증, 집단 폭력입니다). 말단 여직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성차별을 자행하면서도 '이게 왜 문제인가?'라는 반문을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침해되고, 사회적 권리가 박탈당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도 있겠지요. 특히, 성과 관련된 문제는 반드시 사회구조적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기본적인 전제는 바로 '사람에 대한 예의'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권리는 '나'에 대한 권리 보장 뿐 아니라 '너'에 대한 권리보장이 될 때 즉, 사람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로 이 점을 보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그 본질을 잊은채 배가 산으로 가는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리하며


'개념 없는 중딩들'은 도가 지나쳤습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분명 다시금 훈육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된 것에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고,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함께 보며 나아가야 상황이 개선되는 것이지 이를 놓친채 '이 아이들을 어떻게 벌줄 수 있을까' 만 얘기하는 건 흥미위주의 접근에 불과할 것입니다. 성의식의 함양을 통해서 그리고 가정교육의 재확립을 통해 사람에 대한 예의를 먼저 갖출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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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님도 훌륭하다. 그러나 성적과 공부는 학원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지난 약 10여년간 사교육에 종사하며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성적에 직접적 영향이 있는 학습은 학원이 학교보다 노하우 또는 실력이 더 낫다는 거지요. 물론 그렇다고 학교 선생님들이 훌륭하지 않다고는 안 합니다. 그런데 공부는 학원이 좀 더 낫다는 것입니다.

학교는 빠질 수도 있는 데, 학원은 빠질 수 없다.

왜 한달에 두번 놀토를 만들었던가요. 학습에 지친 아이들을 쉬게 하고, 현장에서 살아 있는 학습을 할 수 있기 위함이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이 시간에 주로 학원과 과외 보강을 하곤 하지요. 학교는 쉬더라도 학원 또는 과외는 절대 빠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슬리퍼 신고가는 건 되도, 학원은 안된다.

저희 학원 옆에 있는 모 학원은 학원생이 슬리퍼를 신고오는 등 생활규정을 어기면 체벌을 합니다. 그리고 3회 이상 어길 시 학원을 못다니게 합니다. 물론 이건 학원장님의 마인드에 따라 그럴 수 있습니다만 흥미로운 건, 이 학생들이 학교에는 슬리퍼를 신고간다는 것입니다. 즉, 학교는 괜찮은 데 학원은 안된다는 거지요.

제가 몇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만 저는 이 일이 가능한 배후에 "학원 불안증" 또는 "학원 맹신증" 이 있다고 봅니다. 모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는 데, 내 아이만 안 보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비싼 돈을 내고 보내는 학원이 더 나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란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난 10여년간 사교육에 종사해본 결과 이는 막연한 걱정 또는 기대일 뿐입니다. 이유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공부 잘 하는 애들은 학원 안 다녀도 잘 합니다. 제가 만난 몇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은 학원을 특별히 다니지 않습니다. 대신 습관이 참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잠시 쉬고, 바로 숙제를 합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잠시 후 구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스스로 공부를 합니다. 그 후 스타 크래프트를 하거나 수영장을 갔지요. 이 친구는 학원을 안 다녔지만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둘째, 쪽집게 식으로 성적이 향상되는 것과 학습능력 향상은 별상관 없습니다. 학원은 주로 반복되는 문제풀이로 문제유형을 파악하고, 풀이법을 숙지시킵니다. 또한 강사의 요령있는 요점전달과 암기로 성적을 향상시킵니다. 이렇게 하면 그동안 게을렀던 친구의 경우 성적이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학습능력이 오르는 건 아니지요. 실제 대학에 진학해서도 과외를 받는다는 보도를 보면 쪽집게식의 한계는 명확해 집니다.

셋째, 뇌는 적당히 쉬어야 더 효율적으로 사용가능합니다. 여러분 혹시 학창시절 하루종일 공부만 하던 친구 있으십니까? 저는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친구들이 성적이 오르긴 했는 데, 최상위권까지 가거나 하지는 못하더란 것입니다. 뇌는 적당히 쉬어주며 생리리듬을 유지해주는 게 중요하지 하루종일 운용하면 과부하가 걸리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학원 불안증 또는 학원 맹신증은 별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원가의 경쟁이 상당히 치열하다보니 여러 기술과 기법이 나오기도 합니다. 실력있는 강사님도 많구요. 하지만 반대로 대학생 알바도 많지요. 또 학원이나 과외를 하는 모든 학생이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정말 공부를 잘 하려면 아이들에게 꿈을 갖게 해주는 게 먼저입니다. 공부하는 목적이 있어야만 공부를 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왜 공부를 해야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아이들의 소중한 사춘기가 그저 짜증과 욕으로 점철될 뿐 이지요.

또한 공부는 습관이 좌우하는 것입니다. 정말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은 순간에 집중할 줄 압니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한번 맡은 과제는 성실하게 수행하는 성실성이 있습니다. 이건 타고나기도 하고, 훈련되기도 하는 데, 사교육을 받는다하여 모두 이렇게 변하지는 않지요. 진짜 중요한 것은 평소 집안이 어떤 분위기이고, 부모님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 입니다.

10억이면 가족도 버리겠다는 아이들이 허다합니다. 인성이 없는 교육이 한 몫을 한 결과입니다.

지금 독자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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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학적 오류"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상이나 관행, 제도 등이 원천이 되어 어떤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그러한 속성을 갖고 있다고 추론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던 사건이 일어나면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오류이고, 이번 K대녀 사건에서도 엿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한 여대생(?..물음표 처리를 한 것은 사건 당사자가 이 학교 재학생이란 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임)과 최초 글을 올렸던 블로거의 어머니 즉, K대에서 근무하는 여성분과의 일입니다. 처음 이 글이 올라와 주목받을 때만해도 '조작' 또는 '자작극'이란 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녹취파일이 공개되면서 거의 사실로 여겨지고 있고, 넷심이 들끓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다양한 글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인성교육의 부재" 또는 "가정교육의 문제"였습니다. 즉, 우리 사회의 인성교육이 부재하고,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반성 하자는 것입니다.

예, 이 말도 맞습니다. 가정교육이나 인성교육이 매우 중요하고, 이것이 부족해 일어난 일 맞습니다. 분명 반성해야 하고, 더욱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문제의 원인을 덮거나, 심각성을 희석 시킬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런 논리 즉, '어린 시절의 아픈 경험이 원인이고, 우리 사회 공동의 문제이다..' 라고 해버리면 강력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지요. 분명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묻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할 성인이고, 타인의 명예 또는 재산, 생명 등에 해를 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여학생(?)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물론 예로 들었던 강력범죄는 아니지만) 그 여학생(?)은 '성인'입니다. '성인'이란 말은 자신의 행동에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정교육이 문제이고, 인성교육이 빚은 현실이 맞다해도 이미 성인이 된 여학생의 행동을 정당화 또는 눈감아 주기는 어렵습니다. 분명 이 여학생(?)은 자신의 어머니뻘 되는 직원분께 막말을 동반한 모욕을 가했고, 이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이런 안타깝고, 씁쓸한 일이 터졌으니 우리 사회와 내 자녀에 대한 교육철학을 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제가 <자녀교육 한마당>카테고리에서 항상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두번째 또는 함께 고민되어야할 문제입니다. 지금 이 사건에서 우선해야할 것은 사건 당사자의 분명한 입장표명이고, 그에 따른 개인적-학교적 후속 조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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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보고 너무 늦었다 합니다. 딸내미 건희가 이제 35개월인데요. 왜 아직도 한글도 안 가르쳤냐는 것입니다. 지금이면 알파벳도 들어갔어야 한다 합니다. 예,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고, 제게 충고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건희에게 굳이 지금부터 그렇게 할 마음도 없습니다.

1.언어와 뇌 그리고 학습능력

사실 언어는 그 습득의 결정적 시기가 있습니다. 확실히 어릴 때 외국어를 일상에서 접한 아이들은 거의 원어민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일상"에서 자연스레 접한 게 아니라 "주입" 또는 "과잉" 될 때입니다.

4-5세까지의 유아는 신체기능이 거의 성인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뇌는 다릅니다. 뇌는 꾸준한 자극과 발달을 거치며 청소년기에 이르러야 성인과 유사해 집니다. 따라서 전인적인 뇌 발달을 고려한 적절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암기와 풀이 위주의 교육을 과하게 진행하여 전인적으로 골고루 발달해야할 뇌가 특정 부분에 대한 자극으로 몰리고, 이에 따라 오히려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퇴보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기존의 교육의 틀에 맞춰진 아이들은 창의성과 상상력 발달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만약 언어를 습득하여 다양한 동화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배워도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해 언어를 가르치던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만족과 초등학교 선행학습을 위해 언어를 교육합니다. 따라서 상상력과 창의성이 발휘될리 만무합니다. 


화이트헤드는 아동기를 The Stage of Romance 라 하였습니다. 낭만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끝없는 상상과 꿈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충분히 낭만을 거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생글생글 꿈이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한글과 외국어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란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언어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본격적인 언어교육을 대개 10세 전후에 시킵니다. 이 때부터는 정확한 문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문법을 공부하고, 신문을 보며 토론합니다. 또 이 때는 영어보다 자국어를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프랑스의 정신(자유, 평등, 박애)을 배우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요. 참으로 아쉽게도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우리가 가져온 고유의 인간애와 민주주의의 정신, 평화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말 끝마다 영어를 과하게 섞어 써서  심지어 '언어 사대주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한 국어교육이 시험을 위한 것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변질되어 독해력이 딸리는 이른바 '난독증'(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네티즌을 일컫는 말)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블로그 운영을 하다보면 절감하게 된다)

제가 지난 9년여동안 학생을 지도하며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국어 공부를 못하면 절대 공부를 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성적이 좋은 학생도 고학년이 될 수록 반드시 점수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국어를 잘하는 학생은 지금 당장 성적이 낮아도 점점 향상될 확률이 높지요.

한국어를 자국어로 선택하는 나라까지 생기는 지금. 국어를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하 또는 무시할 필요는 없겠지요. 외국어 구사를 하는 건 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고, 한국인으로써 할 수 있는만큼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자라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인은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미국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3.감성과 인성 

왜 명문대를 나오고도 패륜을 저지르는 패륜아가 이리도 많아졌습니까.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도 MP3를 듣고 있는 아이들이 왜 이리 많아졌고, 욕이 섞이지 않으면 대화가 안되는 아이들이 왜 이리 많아졌는지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받아쓰기 100점과 우수상을 얘기하고, 영재반을 보내는 부모님과 나라에서 우리가 꿈꾸는 '효자'나 '착한 아이'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똑똑한 아이'는 있을지 몰라도 '따뜻한 아이'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과 연대할 줄 아는 아이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현 교육체제와 부모님의 선택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게 작금의 현실이란 얘기입니다.


제가 앞서 잠시 말씀드렸던 프랑스는 어떨까요. 프랑스의 유아교육은 초등학교 준비를 위한 선행학습 단계가 아닙니다. 이 시기는 철저하게 아이들의 감성과 인성에 집중된 교육을 합니다. 문학과 체육을 즐기고, 시를 암송하며 지냅니다. 공동체 속에서 사회성을 기르며 자라 연대정신을 배웁니다.

감성과 인성은 책이나 학원에서 찾아지지 않습니다대자연에서 흙냄새를 맡고, 생명과 상호작용을 하며 생기는 것입니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시를 암송하며 생기는 것입니다. 이건 어릴 때가 아니면 습득할 수 없는 것이지요. 적어도 유아-아동기(3-7세까지) 어린이에게 제도권 교육을 강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리하며

저는 건희의 언어교육을 학교에 입학하면 시키려 합니다. 그 전까지는 지금처럼 아빠, 엄마와 뛰어 놀고 딸기를 따먹게 하면서 기를 것입니다. 함께 즐거운 동요를 부르고,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줄 줄 아는 아이로 기를 것이고, 또 지금까지 이렇게 교육해 왔습니다.

공부로 성공할 아이는 조기교육을 안시켜도 공부를 잘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공부로 성공하는 사람은 채 3%도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대다수 아이를 위해 머리가 똑똑하기 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지식이 많기보다 지혜로운 아이로 기르는 게 우리가 우선 취해야할 큰 방향일 것입니다. 

P.S : 아이가 공부하고 싶다하거나 소질이 있다면 그 때부터 열심히 지원해줘도 늦지 않고, 영재교육을 시켜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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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가진 게 죄예요?!

[시사]세상살이 2009. 2. 2. 16:11 Posted by 바람몰이

최근 강호순의 충격적인 살인 관련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의 현장검증 모습과 범행수법을 보면 남자인 나조차 치가 떨린다. 하물며 여성의 입장에서는 오죽하랴. 여기저기 무섭다는 말이 나오고,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한번은 스치듯 '딸 자식 가진 게 죄'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딸 간수 잘하라' 하기도 하고, '딸자식 교육 잘 시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해가 된다. 가까운 이를 걱정해주는 마음일 것이니 고맙기도 하다. 

하지만 뭔가 뒤끝이 좋지 않다. 일단 '그래야겠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맞장구 치지만 그리 편치가 않다.
형식논리로 따져 범죄자가 주로 남자이니 '아들 간수 잘해야한다'거나 '아들 교육 제대로 시켜라'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잔혹한 범죄 앞에서 우리 사회가 그 속에 담긴 그 무엇. 예컨대 이런 범죄자가 양산되는 구조와 또한 이에 대한 해결점 등에 대한 고민 없이, 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성고정관념에 얽매여 '딸자식 관리 잘하라' 쉽게 말해버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에 그렇다.

사실 유전자나 정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범죄 전에 찾아가 붙잡을 수도 없고, '당신 유전자 검사 한번 해봅시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경우는 문제가 생긴 후 사후 처벌 및 관리가 철저한 것이 최선이다.

진짜 문제는 멀쩡하게 잘 살다가도 어느 순간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이 사회구조이다. 꾸벅꾸벅 졸게나 만드는 틀에 박힌 성교육,  인성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 교육체계, 나같이 조용히 살려해도 저절로 분노가 쌓이는 사회구조, 내면에 가득한 분노를 적절히 풀어낼 수 없는 문화,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의 가족마저 돈 때문에 살해하는 끝없는 물신주의의 팽배!

결국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런 수많은 아킬레스 건은 강호순이 싸이코패스라며 개인의 문제에만 집중할 때에 이미 어딘가에서 또 다른 강력 범죄자를 양산하는 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듯하니, 이런 일이 생길때마다 무슨 죄인이라도 된 거마냥 긴장해야하는 딸자식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처럼 먹고 사는 데만 올인하는 사회 풍조에서는 어떤 대책을 세워도 이런 일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상처부위를 도려내는 수술도 필요하지만 체질을 바꿔야 진짜로 질병이 낫지 않겠냐는 얘기다. 

요즘 아이들 덩치만 컸지 체력도 체질도 약하다하는 데, 이게 사회의 성장과도 똑같다. 버스를 기다리다 비명횡사해야 하는 이런 사회에서 국민소득 몇 만불이 되고, 세계 몇 대 경제강국이란 타이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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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몰이
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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