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의 화두는 화해와 통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을 있는 시대적 요청이 바로 화해와 통합이란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한나라당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 서있다. 또한 이른바 민주계열이라 불리던 쪽에서 역시 서로 만남을 갖고 감사인사를 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도대체 이 화해와 통합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와 하겠다는 것인가.

언제나 기득권 또는 주도권, 힘을 가진 입장은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기 마련이다. 현 상태의 안정을 추구하고, 변화의 폭이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이고, 화해와 통합이란 명분으로 치장하며 상대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것은 문제이다. 이것이 거짓된 것이고, 결국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정권이나 정치권이 하는 모양새가 꼭 그렇다. 용산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은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고, 뉴타운이란 허울좋은 명분아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분들이 넘쳐나는 데 이들은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 한다. 국민들이 뭔가 문제제기를 하며 나서면 그 말을 듣기는커녕 경찰력을 먼저 동원한다. 노사갈등이 생기면 온전히 중재는 못할망정 용역지원의 폭력은 눈감아주고, 노조원들만 잡아 가두고 있다.

필자가 앞서 정치권이란 표현을 쓴것은 여기에 야당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얼 하는 사람들인가. 자신들만의 싸움에 빠져 국민을 위한다 하긴 하는 데, 전혀 공감대가 생기지 않는다. 투쟁을 해서 도대체 뭘 얻어내고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정부와 여당의 이 어이없는 국정운영에도 반사이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정권과 정치권은 화해와 통합의 대상을 잘 못 생각하고 있다. 여야가 화해하고, 통합하는 건 두번째 문제이다. 정치권과 국민이 다시 하나되는 게 먼저이다. 국민의 지지 없는 정당과 정권은 그 힘을 상실한 것이고, 이런 정치권만의 화해는 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 화해와 통합을 하려면 정치권만 해서는 안된다. 그들만의 잔치와 쇼는 이제 지겹기만하다. 이 사회의 통합은 정치권과 국민이 먼저 해야한다. 정치권과 정권에서 국민에게 진솔한 사과를 해야한다. 자신들이 기득권때문에 정쟁을 일삼았고, 국민의 품에 스며들지 못한 것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진정성이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다시 한번 그 힘을 부여하고, 이 나라의 에너지가 하나로 모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 백성들은 지난 월드컵과 태안에서 봤듯 이미 하나되어 있다. 정치권에서 그렇게까지 걱정 안하셔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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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 아내 좋을 땐 가깝게, 다투면 멀게만

저희는 신혼여행도 지금의 차로 전국일주를 했을 만큼 여행을 좋아합니다. 그 때 마다 아내는 조수 역할을 참 잘 해주곤 하였는 데요. 제가 목이 마를까 싶어 음료수도 챙겨주고, 함께 이정표를 보며 길을 찾기도 했었습니다. 각 자 자기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꼭 하나가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다투는 일이 생기면 전혀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차안 공기가 싸늘해지지요. 둘이 앉아 있는 거리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음료수 한잔 하기도 힘들만큼 먼 거리가 되어 버립니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탓'

성경을 보면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이야기가 나오지요. 선악과를 따먹은 후 눈이 밝아진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에게 질문 하는 하나님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 가를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들은 '탓'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의 '탓'을 하고, 하와는 뱀의 '탓'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어떻게 되나요. 모두 아시다시피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저는 배우자(또는 애인)와 다툼이 생겼을 때, 상황을 '악화' 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탓' 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황을 정리하여 파악하지도 못하게 하고, 내 잘못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탓'을 하기 시작하면 평행선이 그어지고, 종국에는 대화조차 시도하기 어려워집니다.


다툼 후 어색함을 깨뜨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

다툼 후 어색함을 깨뜨리는 데는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과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 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 데요. 말 그대로 이 어색함을 깨뜨리는 데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으로 실패를 겁내지 않는 기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무탄트 메세지라는 책을 보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화를 내거나 싫어하는 것은 그에게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란 대목이 나오는 데요. 그만큼 자신의 단점이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즉, 다툼 후
어색함을 깨뜨리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은 바로 '
나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 해야 하기 때문이란 얘기입니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생각처럼 쉽지 않지요. 허나 배우자와의 다툼에서야 말로 씩씩하고, 굳센 기운으로 통 크게 잘못을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존심 센 내가 먼저 사과할 수 있게 된 것은 

예전 연애시절이나 신혼 초기 저는 먼저 사과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자존심도 센 편이고, 아내보다 상대적으로 논리적인 판단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조금은 이런 구습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자평해봅니다. 요즘은 먼저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해와 공감을 자꾸 하려 하다보니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상황을 정리하다보니 스스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지요.

제 잘못을 명확히 보게 되고,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니 제가 먼저
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내와 다툰 후 화해하는 방법

저는 많은 남성분들처럼 애교를 잘 못 떠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런 어색함을 깨기 위해 주로 시도하는 게 하나 있는 데요. 그것이 바로 '코알라 놀이' 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냥 딱 달라 붙어 있는 겁니다. 제 경험상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뒤에서 안기' 였습니다. 뒤에서 안아주면 싫다 뿌리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흥분이 살짝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흥분이 서로 좀 누그러지면 이 때부터가 중요한데요. 무엇보다 다른 사족을 붙이면 안됩니다. 어느 광고처럼 진지하게 이것저것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사과하는 거지요. 그러면 집안이 망할 정도로 잘못한 일이 아닌 이상 대부분 그냥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를 하며 넘어가거나 웃으며 화해하게 됩니다.

저는 대화를 하면서는 '차'를 한잔씩 하곤 했습니다. 그냥 얘기하다보면 어느 순간 또 다시 흥분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 때, 물 한잔 하거나 커피 한잔씩 하며 대화를 하면 한층 온화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며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라 누가 그러던가요. 저는 결별 직전까지 가던 시절을 겪으며 부부간 다툼은 사소하게 시작하여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의외로 쉽게 사과하기도 어렵고, 한번 기회를 놓치면 이것이 쌓이고 쌓여 결국 서로를 '웬수'라 부르는 지경에 이르거나 가정이 해체되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부 간 다툼만큼 내가 먼저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도 없다 생각합니다. 평행선에 서있는 배우자를 향해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평생 거리를 두고 떨어져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누가 이기고, 지냐 기선을 잡았냐 같은 유치한 문제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인격을 닦고, 가정을 지키는 아름다운 헌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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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다투고 난 뒤 마음은 늘 무겁다. 나는 꼭 싸운 후 '그게 화낼 일이었나?'를 스스로 묻곤 하는 데, 가만보면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닌 경우가 대다수여서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한 경우가 허다하다.

가만보면 우리가 사는 삶도 그런 것 같다. 그 때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질 것인양 불 같이 화를 내며 다투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일인 경우가 참 많다. 그리고는 '그 때 한번 더 참을걸..'이란 후회를 하곤 한다.

 
도대체 화를 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얘기를 듣다보면 정치부터 시작해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이유가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화가 나게 하는 이유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현상이 나이나 성별과는 별 상관 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유치부 어린이부터 청소년, 청장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화를 내며-특히, 청소년, 청년 층은 입에 욕을 달고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다. 정말 그 일 때문에 내가 화가 난 것일까


사례1)한 여름 계속되는 장마를 경험할 때 우리는 뜨거운 햇살을 갈망하곤 한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장마가 끝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쬘 때 우리는 너무 덥다고 투덜대는 모습을 보인다.

장마는 그저 장마의 일을 하는 것 뿐이고, 햇살은 그저 여름햇살다운 더위를 내는 것 뿐인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며 화를 내곤 한다.


사례2)아이들은 뭔가 하나 갖고 싶기 시작하면 그것이 이뤄질때까지 떼를 쓰고, 화를 내곤 한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그것을 갖으면 그 때는 좋다 하면서도 이윽고 또 다른 것을 갖지 못해 화를 내곤 한다는 것이다.

어른도 그렇다. 내가 타고 싶은 차를 갖지 못하면 마음에서 불행을 느끼고, 내 능력과 현실에 화를 내기도 하는 데, 막상 그걸 갖고 나면 또 다른 것을 갖지 못해 불행을 느끼고, 화를 내게 된다

결국 진짜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보고, 반응하는 나의 "반응체계"에 있다는 것이다. 장마를 보고 짜증과 화를 내고, 더위를 보고 또 다시 짜증과 화를 내는 나의 반응체계. 뭔가 갖고 싶은 게 생겼는 데, 이걸 갖어도 또 다시 다른 걸 갖고 싶어 안달나버리는 욕심과 집착의 반응체계에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바로 이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당연히 배우지 못하니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도 잘 모르게 된다. 종교에서도 그저 화를 내지 말고, 온유하거나 그러려니 하라고만 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또 이런 "화"를 딱히 분출할만한 곳도 별로 없다. 겨우 있는 게 유흥시설정도이니 밤마다 우리의 거리는 취객과 구토로 만든 피자가 넘쳐난다. 

이래서 어디 사는 게 사는 것 같을까..몸은 망가지고,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가니 말이다. 사회는 묻지마 범죄나 이웃이나 가족마저도 살인을 하는 극단적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분노게이지가 차고 넘칠 지경인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사실 나 역시 운전을 하거나 아내와 대화를 하며 자주 화를 내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친절까지는 아니여도 화내는 횟수나 정도가 상당히 감소하는 걸 스스로 느끼곤 하는 데, 그것은 다음과 순서로 진행하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1.내가 화 내려 할 때 정신줄을 놓지 않고 그 순간을 스스로 깨닫는다.
  (아..내가 지금 화내려 하는구나..이런 식으로)


2.'지금 이게 화낼 일인가. 정말 화낼 일인가. 진짜 꼭 화를 내야만 하는가'라고 세번 묻는다.

3.내가 할 말을 한번 이상 걸러내어 내뱉는다. 

4.그래도 참지 못할 경우 속에 있는 말을 하되 반드시 깔끔하게 풀어내는 "화해"를 "먼저" 청한다. 


극도로 분노하는 경우 상대방을 공감하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상처를 줄 말이 가벼운 아픔으로 줄어들고, 가벼운 아픔이 될 말이 서로 이해할 수준으로 줄어든다. 서로 이해할 수준의 말은 원활한 대화로 마무리될 수 있다. 

분명 내 의지에 따라 "화"를 내는 내 "반응체계"는 조절될 수 있다. 이것은 "화"를 원활히 풀어내며 내 인생을 좀 더 여유있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러했다. 만약 내 의지가 약하다면 꼭 이런 노력을 하려하지 말고, 그저 '내가 화를 내는 구나..' 라고 내 몸을 느끼도록 해보자. 이것만으로 벌써 반은 성공한 셈일 테니 말이다. 

또한 이제는 우리 사회 역시 "화"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좀 더 느낄 필요가 있다. 선진국처럼 학교나 직장내 전문 상담사를 배치하여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부담 없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문화공간 확보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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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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