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딸아이가 저에게 부쩍 자주 혼나곤 합니다. 가장 많이 혼나는 주제는 "때찌" 하는 것인데요. 이 녀석이 어느 날부터 습관적으로 때리는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어쩔 때는 깨물기도 하고 말이지요. 이런 건 어릴 적부터 잡아줘야하기에 제가 요즘 집중해서 교육 중 입니다.

"건희, 때찌하지 마세요. 이럴 땐 '아~예쁘다. 사랑해~'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네~사랑해요~"


그런데 딸아이를 지도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주로 "하지말라" 라는 얘기를 듣곤 하지요. 그러니 얼마나 간단합니까. 하지 말라는 항목만 딱 지켜내면 됩니다. 그러면 모범학생, 착한 자녀가 되는 거지요.

하지만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 할 수록 우리는 "하지말라" 가 아닌 "하라" 또는 "해야한다" 를 듣게 되지요. 어른이 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내 인생 속에서 져야할 책임의 분량을 잘 감당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휴~그러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스스로 뭔가 찾아 능동적으로 해내는 교육을 제대로 받은 건 아닌 데, 우리 사회는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남편이면 남편, 아내면 아내로써 요구하는 것이 너무도 많으니 말입니다.

가끔 우리도 '너는 무어니 이렇게 해야만해' 가 아니라 '네가 이런 위치에서 이런 일을 잘 해주니 너무 고맙고, 소중하다' 는 식으로 기대치나 눈높이를 조금은 낮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남편이니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가 아니라 '이렇게 수고해주어 고마워요' 라고, '주부이니 당연히 밥을 차려야지'가 아니라 '식사준비를 해주어 고마워요' 라고 말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높이를 살짝 낮추는 대신 내가 누군가를 돕고, 봉사하는 높이를 살짝 높여주는 삶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쯤은 내 가족과 배우자를 위해 나는 한번 더 봉사하고, 그들에겐 고맙다 인사해보는 건 어떨까요. 뭐든지 처음 하는 게 어렵지, 한번만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쉽습니다 ^_^


,
어제 저는 30년 같이 길게만 느껴지던 너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결혼 3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휴가를 주었다 (☜클릭)하였지요. 제가 딸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 집에 가서 보니 식탁위에 왠 편지가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보낸 것이더군요.

편지 겉봉투를 보니 "건희 아빠 보시오~오늘의 미션봉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진이 좀 흐려서 그런데 분홍빛 바탕에 예쁜 집 그림이 있는 봉투였습니다.



봉투의 뒷면을 보니 예쁜 그러나 메세지가 있는 스티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마지막 "행복해" 에 새까만 "ㅇ"과 하트 표시가 있지요. 자세히 보니 원래 문구는 "너 때문에 올 한해 너무 행복했어"인데, 아내가 자신의 뜻을 전하려고 "행복행 " 로 바꾼 것이더군요.



내용을 열어보니 아내 특유의 둥글둥글한 귀여운 글씨로 두장이나 되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솔직한 마음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첫 휴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휴가 준 것에 대한 보람이 팍팍 들더군요.



편지를 읽으며 아내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그에 대한 표현도 짧게 해주었더군요. 또 한켠으로는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다음 문구때문에 그랬는 데요.

우선 불고기와 찌개가 있으니 데워서 먹고. 냉장고 윗칸에 반찬이 있어 꺼내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사놨어....(중략)...건희와 즐거운 식사시간 갖고. 설거지는 내가 아침에 해도충분하니깐 그냥 놔두고~건희 어제 목욕했으니 오늘은 그냥 손, 발, 세수만 하고 자도 될꺼야.  우유는 왼쪽 맨 끝 아래 싱크대 윗칸에 있어~1분만 살짝 돌려줘~

저에 대한 마음과 딸아이에 대한 걱정때문에 이렇게 자세하게 쓴 것이겠지만 어느 덧 그 순수하고, 맑던 막내 딸 아가씨를 소위 말하는 "아줌마"로 바꿔놓은 것 같아 그랬던 것입니다. 그냥 어제 하루쯤은 모든 걸 잊고 쉬었다 오기를 바랬는 데 말이지요..

아무튼 아내는 장문의 편지를 마치며 이런 표현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나도 근사한 휴가를 줄게. 기대해줘~사랑해요~정혁씨~감사해요~당신의 큰 사랑~

자, 이런 표현을 본 후 제 반응이 어땠을 것 같으십니까. 당연히 기분 짱~이었지요! 세상에 어느 남편이 이런 최고의 표현을 보면서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편지봉투에 있는 집 그림입니다. (핸드폰 카메라에 상처가 많아 좀 지저분하게 나오긴 했습니다만..실제로는 참 예쁘고, 따뜻해 보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 가정을 더욱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게 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보았습니다. 언덕위의 예쁜 집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부부의 마음 속에는 늘 이런 분홍빛 사랑이 살아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정과 애 때문에 웬수'와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인격을 알아가며, 더욱 설레는 사랑을 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행복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고,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

잠깐 짬을 내어 책을 펼쳤다. 논문을 엮음 모음집이었는 데, 이런 저런 어렵고 중요한 내용이 많아 밑줄을 그어야 했다. 필기도구가 필요했다. 평소 연필을 자주 쓰던 터라 연필을 찾았다.


그런데 허걱..연필심이 부러져 있다..ㅡ.ㅡ;;


흔히 "샤파"라고 하는 연필깎이를 찾았다. 보이지가 않았다. 이런..ㅜ.ㅠ;;

연필꽂이를 보니 커터가 있다. 무심결에 집어들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연필이 너무 작아 깎는 게 쉽지가 않다. 순간 어린 시절 기억이 오버랩 되며 스쳐 지나갔다.


나는 생선장사와 삯바느질을 하시던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할아버지께서는 월남에서 허리를 다치셔 거동이 불편하셨기에 할머님께서 돈벌이를 하셨었다. 그래서 나와 여동생의 교육은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고교 졸업을 할 때까지 아버지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하셨었다.

다섯살에 시골에 내려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할머님은 시장에서 3000원짜리 가방과 800원짜리 철제필통, 1200원짜리 연필 한다스(지우개 달린 것)을 사오셨었다. 학교에 처음 가던 날 할아버지께서는 연필을 손수 깎아 주셨었다. 정확히 다섯개를 깎아 주셨었다. 한시간에 하나씩 쓰고, 혹시 모르니 한두개는 여유분으로 두라는 거였다.

이 후로도 할아버지는 매일 밤마다 연필을 깎아 주셨다. 자기 전에 미리 미리 책가방과 준비물을 챙기라는 평소의 가르침을 주셨었고, 내가 모든 준비를 끝내면 최종적으로 할아버지께서 깎아 주신 연필을 필통에 넣어 확인을 해주셨다. 

하루는 내가 직접 연필을 깎아 보겠다 한적이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위험해서 안된다 하셨다. 허나 나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검정색 학생용 칼을 들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고사리 같던 손에 무슨 힘이 있어 연필을 제대로 깎겠나..당연히 삐뚤빼뚤했고, 할아버지께서 마무리를 해주셨다.(지금 생각해보면 손가락을 베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사실 당시 친구들은 모두 "샤파"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끝이 뾰족한 연필을 사용했었다. 저학년 시절은 샤프의 사용이 금지되었었기에 뾰족한 연필심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샤파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친구들이 부러웠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샤파를 살 여유까지는 되지 않았었다. 내가 아직도 당시 책가방과 필통, 연필 가격을 기억하는 건 우리 집의 수입에 비해 너무도 큰 지출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저 이런 것마저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 했다. (또 사실 감사했다. 두분이 얼마나 힘들게 우리 남매를 기르셨는 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할아버지는 돌아가셔 곁에 계시지 않는다. 살아생전 너무 고생만 하셔 내가 반드시 호강시켜드리리라 다짐했건만 내가 결혼하던 그 해 돌아가시고 말았다. 매일 밤 연필을 깎아 주시던 할아버지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답하지 못한 것은 두고 두고 가슴의 한으로 남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나는 작년 초까지 안산의 한 작은 교회에서 독거노인을 섬기는 일을 해왔다. 지금 잠시 사정이 있어 떠나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돌아갈 곳이다. 그러나 몸뚱아리만 움직여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다.

그렇다. 다시 책을 잡는 일이다.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체계적으로 풀어내야 한다. 또한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여의도를 감시하는 일이다. 저 양반들이 함부로 국민의 이름을 들먹이며 팔아먹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너무 먼 얘기이겠다. 당장 모시고 있는 할머님부터 챙겨야겠다. 장인, 장모님께 전화라도 드려야 겠다. 아내와 좀 더 행복한 가정을 이뤄야겠다.

아하..오늘 저녁은 내가 해야하려나..   



,
BLOG main image
하늘바람몰이
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by 바람몰이

카테고리

큰 머리 제목 (1160)
[성교육] 학교 교육용 영상 (0)
[LIFE]이 남자의 인생 (193)
[LIFE]몸짱 프로젝트 (21)
[LIFE]여유와 지혜의 장 (63)
[LIFE]육아 이야기 (3)
[교육]자녀교육 한마당 (73)
[안전] 안전교육 (49)
[안전] 응급처치 (18)
[성교육]생생 강의현장 (37)
[성교육]성교육 이야기 (177)
[성교육]낯설게 바라보기 (79)
[문화]방송,영화,격투기 (102)
[문화]신바람 자동차 (78)
[문화]블로그 인생 (24)
[기독교]하늘바람몰이 (87)
[기독교]변해야 산다 (35)
[경제]주식투자종목분석 (23)
[시사]세상살이 (82)
리뷰 아르바이트 (7)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TNM Media textcube get rss
바람몰이'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