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저보고 너무 늦었다 합니다. 딸내미 건희가 이제 35개월인데요. 왜 아직도 한글도 안 가르쳤냐는 것입니다. 지금이면 알파벳도 들어갔어야 한다 합니다. 예,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고, 제게 충고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건희에게 굳이 지금부터 그렇게 할 마음도 없습니다.

1.언어와 뇌 그리고 학습능력

사실 언어는 그 습득의 결정적 시기가 있습니다. 확실히 어릴 때 외국어를 일상에서 접한 아이들은 거의 원어민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일상"에서 자연스레 접한 게 아니라 "주입" 또는 "과잉" 될 때입니다.

4-5세까지의 유아는 신체기능이 거의 성인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뇌는 다릅니다. 뇌는 꾸준한 자극과 발달을 거치며 청소년기에 이르러야 성인과 유사해 집니다. 따라서 전인적인 뇌 발달을 고려한 적절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암기와 풀이 위주의 교육을 과하게 진행하여 전인적으로 골고루 발달해야할 뇌가 특정 부분에 대한 자극으로 몰리고, 이에 따라 오히려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퇴보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기존의 교육의 틀에 맞춰진 아이들은 창의성과 상상력 발달에 지장을 받게 됩니다. 만약 언어를 습득하여 다양한 동화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배워도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해 언어를 가르치던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만족과 초등학교 선행학습을 위해 언어를 교육합니다. 따라서 상상력과 창의성이 발휘될리 만무합니다. 


화이트헤드는 아동기를 The Stage of Romance 라 하였습니다. 낭만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끝없는 상상과 꿈의 시기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충분히 낭만을 거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생글생글 꿈이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한글과 외국어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란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언어가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는 본격적인 언어교육을 대개 10세 전후에 시킵니다. 이 때부터는 정확한 문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문법을 공부하고, 신문을 보며 토론합니다. 또 이 때는 영어보다 자국어를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과 프랑스의 정신(자유, 평등, 박애)을 배우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요. 참으로 아쉽게도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우리가 가져온 고유의 인간애와 민주주의의 정신, 평화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말 끝마다 영어를 과하게 섞어 써서  심지어 '언어 사대주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한 국어교육이 시험을 위한 것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변질되어 독해력이 딸리는 이른바 '난독증'(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네티즌을 일컫는 말)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블로그 운영을 하다보면 절감하게 된다)

제가 지난 9년여동안 학생을 지도하며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국어 공부를 못하면 절대 공부를 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성적이 좋은 학생도 고학년이 될 수록 반드시 점수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국어를 잘하는 학생은 지금 당장 성적이 낮아도 점점 향상될 확률이 높지요.

한국어를 자국어로 선택하는 나라까지 생기는 지금. 국어를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하 또는 무시할 필요는 없겠지요. 외국어 구사를 하는 건 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고, 한국인으로써 할 수 있는만큼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자라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인은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미국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3.감성과 인성 

왜 명문대를 나오고도 패륜을 저지르는 패륜아가 이리도 많아졌습니까. 부모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도 MP3를 듣고 있는 아이들이 왜 이리 많아졌고, 욕이 섞이지 않으면 대화가 안되는 아이들이 왜 이리 많아졌는지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받아쓰기 100점과 우수상을 얘기하고, 영재반을 보내는 부모님과 나라에서 우리가 꿈꾸는 '효자'나 '착한 아이'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똑똑한 아이'는 있을지 몰라도 '따뜻한 아이'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과 연대할 줄 아는 아이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현 교육체제와 부모님의 선택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게 작금의 현실이란 얘기입니다.


제가 앞서 잠시 말씀드렸던 프랑스는 어떨까요. 프랑스의 유아교육은 초등학교 준비를 위한 선행학습 단계가 아닙니다. 이 시기는 철저하게 아이들의 감성과 인성에 집중된 교육을 합니다. 문학과 체육을 즐기고, 시를 암송하며 지냅니다. 공동체 속에서 사회성을 기르며 자라 연대정신을 배웁니다.

감성과 인성은 책이나 학원에서 찾아지지 않습니다대자연에서 흙냄새를 맡고, 생명과 상호작용을 하며 생기는 것입니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시를 암송하며 생기는 것입니다. 이건 어릴 때가 아니면 습득할 수 없는 것이지요. 적어도 유아-아동기(3-7세까지) 어린이에게 제도권 교육을 강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리하며

저는 건희의 언어교육을 학교에 입학하면 시키려 합니다. 그 전까지는 지금처럼 아빠, 엄마와 뛰어 놀고 딸기를 따먹게 하면서 기를 것입니다. 함께 즐거운 동요를 부르고,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줄 줄 아는 아이로 기를 것이고, 또 지금까지 이렇게 교육해 왔습니다.

공부로 성공할 아이는 조기교육을 안시켜도 공부를 잘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공부로 성공하는 사람은 채 3%도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대다수 아이를 위해 머리가 똑똑하기 보다 가슴이 따뜻하고, 지식이 많기보다 지혜로운 아이로 기르는 게 우리가 우선 취해야할 큰 방향일 것입니다. 

P.S : 아이가 공부하고 싶다하거나 소질이 있다면 그 때부터 열심히 지원해줘도 늦지 않고, 영재교육을 시켜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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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대하여-성경일반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15 Posted by 바람몰이

 

여기서 잠깐 창세기 자체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과정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기자는 이 세상의 모든 물질-비물질적 세계와 인간의 생사화복 및 희노애락을 비롯한 감정, 풍요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생활 및 그 밖의 모든 이치마저도 우리 주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는 창조신앙을 우리에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1).


  물론 창세기를 잘 읽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이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걸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과 이에 따라서 어떤 과정과 순서로 세상을 만드셨는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다는 매우 간단한 사실이나 실제로 진정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라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도 몰랐는가 그리고 안 따먹게 말리면 되지 않았느냐는 단순한 논리적 모순이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그 밖에 1장 26절에 기록된“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복수로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낳게 하고, 심지어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동물은 6장과 7장이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고운 님. 그동안 성경을 문자 그대로 무조건 믿어만 왔던 우리의 무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2)
 


  성도 여러분. 성경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연히 일점일획도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진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과 심지어 죽음의 세상마저도 관통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사고와 당대 사회의 문화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 역시 ‘인간은 역사적 존재다’라고 하였지요. 어찌 한낱 인간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보고 전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저 주님께서 계시해주시는 것과 성령님의 영감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보며 한치 앞도 못 보는 인생사 속에서 그 뜻을 쫓아갈 뿐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 모든 걸 완성해가시는 주님의 섭리를 믿는 것뿐이지요. 신앙인으로써 최선을 다해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찾아가려 노력할 뿐인 겁니다.


   그러니 당연하게 몇 몇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 고대 근동 지방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네 성경이 완성되기까지는  수 천 년의 세월이 걸렸던 겁니다.


  
말하자면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그분의 목적에 합당한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기록된 성스러운 책이라 바로 이런 이야기인 겁니다. 당연히 인간적인 오류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이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겸손한 신앙인의 자세인 것이구요.

어찌 인간의 작업을 완전 무오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완전 무오하신 분은 오직 우리 주님뿐이시지요!!


   그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수 천 년의 신앙고백과 전승을 수 백 여년에 걸쳐 완성하려던 신앙의 선배들의 그 모습이 얼마나 숭고하기까지 합니까. 문자 그대로만 성경을 외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성경 기자들 즉, 주의 종들의 고백과 가르침을 겸허히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종 역사시대적 오류와 본문상의 차이를 통해 갈 지(之)를 그리면서도 성경 안에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맥락이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야 함이 좀 더 합당한 신앙인의 자세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실제 이러한 연구 결과는 세계 신학계에 나온 지 1백여년 이상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에서는 평신도들도 이런 내용을 이미 오래전부터 공부하며 말씀에 더욱 집중하는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카톨릭을 개혁하며 나온 우리 개신교가 오히려 더욱 보수화되어 뒤쳐지는 모양새인 것입니다.
이제는 좀 더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성경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고운 님!! 우리 하나님 말씀을 거저 받아먹으려 하지 맙시다. 이것이야말로 도둑심보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노력하여 얻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받는 대도 부단한 공부와 노력, 기도 그리고 성도 상호간의 교류와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돕고 돕는 것이 성도의 교제인거지요.

 

  여러분은 지금 노력하고 계십니까? 성도간의 교제도 하고 계신가요?


1)  물론 세상에서는 빅뱅이론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의 창조과정을 설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말 그대로 “가설”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설명 방식들이 옳다 한들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앙과 배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심오하고 세밀한 과정마저도 그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1+1 보다도 쉬운 것임을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노아의 홍수 이야기 같은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류의 홍수 이야기는 매우 다양하게 있습니다.


2)  온실속의 예쁜 화초는 자신에게 내재된 생명력을 다 펼치지 못합니다. 미운 자식은 떡을 주고, 예쁜 자식은 회초리를 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의 창조주이시자 어머니이고, 아버지시라면 우리를 결코 에덴에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고된 노동의 가치와 해산의 고통, 인생의 고난을 통해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더욱 펼치기를 원하셔야 하는 것이 자연스런 흐름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치를 우리네 신앙의 선배들은‘어찌하여 우리 인간사가 이리도 고되고 힘든가’그리고 ‘인간은 어찌하여 이리도 교만한가’라는 물음과‘인간의 교만함속에서 좌절 될 수 있는 이 모든 어려움과 고통 역시 하나님 안에 있고,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원죄의 아래 있음에 의한 것이다..그러나 하나님과 하나 되어 가며 자신의 구원을 일궈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감으로써 극복 가능하다’라는 것을 창세기의 거룩한 이야기를 통해 위대한 신앙의 선언을 한 것이지요.


 
실제 창세기에 있는 창조이야기 자체 역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 유행하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3). 이것을 창세기를 기록한 기자들이 신앙의 눈으로 각 기 다르게 신학적 각색을 통하여 정리해 하나로 모은 것입니다. 창세기 1장만해도 2장에 비해 4세기정도 후 즉, 바빌론 포로기의 고통을 겪으며 기록된 것입니다. 이것을 2장 앞에 위치시키는 신학적 작업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고백하는 것 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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