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런 저런 다양한 방법으로 알려졌습니다. 빛나는 별과 같은 자연을 통한 것, 천사가 직접 전하여 준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 중 천사가 직접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에게 아기 예수 탄생 소식을 전해준 것이 저는 참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왜 천사가 하필 그 많은 사람 중 목동에게 가장 먼저 아기 예수 탄생을 알렸던 것일까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합니다.



그 동안의 전통적 해석은 양 떼인 우리와 목자인 예수의 상징적 비유를 위해서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들에서 잠을 자지 않고 양을 지키는 목동이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 일하시는 예수와 비교되면서 말이지요.

예, 저는 이런 해석도 좋다고 봅니다. 썩 무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예수에게만 집중된 나머지 천사가 주목 즉, 하나님이 주목하여 천사를 보낸 목동이 너무 가벼이 여겨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기 예수 탄생을 알리는 내용입니다만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 직접 아기 예수 탄생을 듣는 당사자는 목동이지요. 천사가 굳이 목동에게 먼저 간 이유가 있을 거란 얘기입니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동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천사가 나타나자 목동들이 두려워 하였다 기록하는 데요. 사실 요즘도 천사를 보면 두려워할 수 있겠지만 당시 목동이 두려워했던 건 어떤 신비한 존재를 보았기 때문의 차원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목동은 한마디로
인생의 막장에 도달한 자
들이었는 데요. 더이상 물러날 곳도 없고, 어떻게 삶의 환경을 바꿔볼 수도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였다는 얘기입니다. 이들이 이런 처지가 되는 데는 당시 율법이 큰 몫을 차지하였습니다. 지금도 유대교는 안식일에는 손도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는데요. 그만큼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이 중요히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보면 목동일의 특성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단 하루도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목동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죄인이 되버리는 거지요. 세상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즉, 이들은 단순히 신비한 존재를 보았기 때문에 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는 성격이 더 강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반대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데요. 목동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 일도 구할 수 없거나 배척받은 이들 곧 '가장 천한 이들이다' 라는 겁니다. 안식일을 범할 수 있는특권(?)을 가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지요. 즉, 여기 저기 속된 말로 '구를 만큼 구른 이'가 목동으로 오는 것이다 뭐 이런 얘기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왜 천사는 가장 먼저 목동을 찾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렸던 것인가 대충 정리가 되지요. 그것은 예수가  세상에서 버림 받은 가장 낮고, 천한 이와 함께 하는 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고, 또한 동시에 이들을 이렇게 만들고 말았던 어이 없는 세상에 대한 무서운 고발이 담겨있는 것이라 이런 얘기입니다.   


저는 목동을 주목했던 성경의 관점과 실제 가장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과 함께 했던 예수를 생각하며 한국 교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 합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 크리스챤들은 지금의 이 위기를 위기로 여기지 않거나 잘 모른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세계에서 가장 신실하다는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일까. 저는 종교 생활은 잘 할지 몰라도 예수 제자 생활에는 약하다데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이게 약하니 교회에서는 그렇게 좋은 분도 밖에 나가면 똑같거나 더 심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지요. 교회의 도덕성이 일개 시민단체만도 못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은 당연히 될 수 없는 거겠지요. 또한 항상 얘기하 듯 개독교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바로 나 자신부터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비춰 내 삶을 변화해야지 그렇지 않고 그저 종교적 감정에 취해 예수 이름만 부르다 말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또한 그래야만 성경과 하나님이 목동에게 집중하여 천사를 보낸 것을 보며 우리도 목동을 찾는 삶을  살고, 또한 이들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세상을 향해 기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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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내에 양을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을 파는 곳 근처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연못은 참으로 특별한 곳이었는 데요. 그것은 천사가 한번씩 내려 오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천사가 오는 것도 신기하고 특별한 데 이 천사가 물을 움직이게 되고 물을 움직인 후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병도 상관없이 다 낫게 되는 겁니다. 정말 신묘하고 특별한 연못인 거지요.


자연스레 수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이 연못에 모여듭니다. 성경을 보니 예루살렘에 예수가 올라갔을 때도 그렇게 많이 있었다 합니다. 
물이 움직이는 걸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 중에는 38년 동안 병을 앓은 병자도 있었습니다. 예수가 그의 곁에 갑니다. 딱 보니 매우 오랫 동안 고생한 게 보입니다. 예수가 말을 꺼냅니다.

“네가 낫고 싶으냐?”

그랬더니 이 병자가 얼른 대답하지요. 그런데 대답이 좀 이상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낫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그렇다 아니다 하면 되는 거지요. 그런데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지요.
우리는 병자의 대답에서 중요한 점 하나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병자는 물음에 답하기보다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베데스다 연못이 갖고 있는 냉정한 정글의 법칙에 대한 하소연입니다. 오직 1등만이 살아남는 현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약자의 마음이 표현 된 거지요.

가만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지요. 1등만이 기억되지요. 오로지 최고만을 원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가난을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학교조차 제대로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이 과목당 수십만원짜리 과외를 받는 아이들을 넘어설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자연스레 뒤쳐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회의감, 패배의식, 불만 등이 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될 수록 사회가 더 불안해질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아니요. 이러면 안되는 거지요. 이 세상은 1등만을 위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져도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정직하게 땀흘려 살아가는 자들을 위한 곳입니다. 지금처럼 이래서는 안됩니다.


자, 아무튼 그  다음을 보지요. 성경은 예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선언하였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곧 나았습니다. 자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걸어갔습니다.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거지요. 

예수는 바로 이러한 냉혹한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을 철저하게 "치유해야할 대상" 으로 본다는 겁니다. 인간이 사는 곳, 생명에 관한 문제는 정글의 법칙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저는 오늘날 이런 세태를 치유하기는 커녕 오히려 앞장서고, 답습하는 교회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연말이면 전도 1등을 뽑아 어마어마한 경품을 주는 대형교회. 또한 교회끼리도 서로 교인수를 늘려 1등 교회가 되려하지요. 기도를 하면서도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만 합니다. 목회자는 축복에 축복을 더해 십일조 많이 하게 해달라 기도하기도 합니다.

전도 해야죠. 그러나 이런 큰 상품을 걸어 동기부여를 하고, 격려한다는 건 문제가 있지요. 교회 성장하면 좋지요. 허나 더 중요한 건 교회의 건강성이 성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머리가 되면 좋지요. 그러나 머리가 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삶을 살게 해달라 기도해야지요. 십일조도 교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더 많이 구제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거구요.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 우리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크리스챤은 1등하고, 물질 명예적 성공만을 하려 할 게 아니라 섬김의 1등, 정의와 평화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생명을 가꾸는 일에만 힘을 써야 하고, 오직 사랑만을 빚지며 살아야할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을 거슬러 분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자, 이제 다음 주면 성탄입니다. 저는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유례없는 경제위기로 그 어느 때보다 추워질 이번 겨울은 어려운 이를 더욱 어렵고, 춥게 만들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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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몰이
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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