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구름처럼, 흐르는 물처럼 자유하려 하나 여전히 애를 쓰고 있다.

집착할 이유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을 붙잡고 무거운 마음에 홀로 길을 걷고 있다.

일그러진 붉은 달이 마치 내 마음 같으니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환하게 빛나는 달이 떠오르니 다시 마음을 붙잡아 본다.

행운유수 초무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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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잘 생긴 편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썩 좋은 인상도 아닙니다. 확실히 저는 타고난 인상 자체가 강했습니다. 짙은 눈썹과 엄청난 수염..ㅠ.ㅜ;; 어릴 적에는 속눈썹도 길고, 날씬해서 참 예뻤다하는 데,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는 전설과 같은 얘기이지요.

그러나 타고난 것만이 제 인상을 결정짓는 건 아니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살아온 남들과 조금은 다른 삶의 환경은 제 인상도 다르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제 나이 다섯에 제 부모님이 헤어지시는 과정을 모두 보았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가보니 허여멀건한 서울놈이 맘에 안드는가 봅니다. 참 무던히도 친구들에게 맞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다 복수심에 불타 태권도를 했고, 나름 소질이 있던 저는 조부모님 모르게 싸움 좀 하고 살았습니다.

또 인생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울고 있는 어린 여동생을 보면서, 빨간 대야에 생선을 담아 파시고, 500원짜리 삯바느질로 저를 키우시기 위해 고생하시던 조부모님을 보는 것, 또 이렇게 '버림'받은 나를 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겐 '악'밖에 없었나 봅니다. 공부도 잘 했지만 이것 역시 조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악으로 잘 했던 것이었습니다. 싸움도 잘 했지만 이것역시 지기 싫어 했던 것이었습니다. 모범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이것 역시 무시당하기 싫어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악'이 제 사춘기를 지배하였습니다.

'악'으로 사는 삶은 대학시절도 계속 되었습니다. 제 나이 19살에 독립을 했습니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많아서 둘다 잘 하고 싶었지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랬더니 직장에서도 상당히 인정받고, 대학에서도 과수석을 다투는 정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니 제 인상이 장난 아니였습니다. 지금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약 10년전 찍었던 면허증 사진입니다. 이번에 면허갱신을 하면서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스캔으로 받아 두었지요.

어떤가요. 인상이 장난 아니지요? 물론 화질도 좀 떨어지고, 피부색도 좀 검게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이 기본적으로 약 10도쯤 올라가 있지요. 뭔가 잡아먹을 듯한 눈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좀 슬퍼보이지요.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모습입니다. 예, 이 때는 한창 마음속에 적대감과 불만, 우울과 슬픔이 가득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자, 이건 얼마 전 면허갱신을 위해 찍었던 사진입니다. 어떤가요? 저는 제 자신을 보면서 좀 더 부드러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또 보다 편안해 보이고 말이지요.

예, 요즘의 저는 참 편안하고, 부드러워 졌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상당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확실히 저는 지난 10년 동안 인생이 많이 변한 케이스입니다.

제 인생이 변한 계기는 대략 네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는 아내와의 연애이지요. 수업시간에 하도 비판을 많이 해서 상처만 주던 제가 사랑을 얘기할 줄은 아무도 몰랐지요. 아내와의 연애는 그 사람의 맘을 헤아려 주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하였습니다. 역시 사랑은 위대한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우리 딸 건희의 탄생입니다. 건희를 처음 안는 순간 저는 그 자리에서 녹아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이 작은 녀석을 보며 눈물이 나왔던 그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지요. 그 후 녀석과 함께 즐겁게 놀면서 저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신학공부였습니다. 신학공부를 하며 제가 깨달은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자아와 욕심을 통해 많은 문제가 비롯되고 있음을 깨달으며 저는 물질을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나니 얼마나 편안하던지요. 저희 부부는 그저 "일용할"만큼의 양식만 취하며 평생을 살기로 하였습니다.

끝으로 네번째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블로그는 단순히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기 위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제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요.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휴~시간이 어찌나 빠른지요. 시골에서 복수의 칼을 갈던 한 아이가 이렇게 자라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남은 인생을 더 어렵고, 가난한 이와 함께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글을 통해 인생을 함께 나누는 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또 다가올 10년 후가 기대됩니다. 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런지요. 그 때도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며 한바탕 웃고,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통해 여러 분들이 힘을 얻고, 위로를 얻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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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사람

[LIFE]여유와 지혜의 장 2010. 3. 22. 15:44 Posted by 바람몰이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차마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말을 이을 수 없게 된.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쉽게 받아들일 수도 없고,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쉽게 풀어가기도 힘이 들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이것이 이뤄지는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이는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삶의 중심으로 두고 있는 기독교는 '십자가'라는 말을 쓴다. 십자가는 예수가 매달려 처형당한 사형틀이다. 또한 동시에 내게 부담이 되고, 상처가 될 때도 있지만 나만이 짊어질 수 있고, 풀어낼 수 있는 삶의 문제라는 개념의 용어이다.

누구나 사람은 이런 십자가를 하나씩 지고 있다. 그런데 한 개인이 짊어져야할 십자가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늘 상대적인 것이어서 그 당사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쉽게 평가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나 역시 기독교인으로써 누구나처럼 내가 짊어져야할 십자가를 갖고 있다. 나는 때론 '왜 이리 내겐 가혹한 십자가인가' 라며 원망섞인 울분을 토할 때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존재를 긍정받지 못하고, 살아가면서도 최소한의 행복조차 만들어 낼 수 없을 환경과 조건이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랬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문제가 나 때문이란 생각을 했었다. 겉으로는 늘 밝았지만 나는 죽음과 절망을 친구삼아 살아왔었다. 


나는 이 모든 걸 '오기'와 '독기'로 이겨내려 애썼었다. 운동을 하기도 하고, 억지로 밝은 척도 하면서..또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더 뛰어난 모습으로 복수하겠다는 뭐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 '오기'와 '독기'가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내 내면은 더욱 황폐화되어가고, 상처만 남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달라지기로 했다. 긍정의 힘을 믿고, 내 내면을 치유하며 나아가기로 했다. 때마침 만나게 된 지금의 아내는 이런 나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되었었다. 또 내게 허락된 너무 나도 예쁘고, 귀여운 딸 건희는 내 자신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었다. 이제 나는 굳이 종교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내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자부심을 갖고 살게 되었다. 
 

음.....


오늘 또 다시 나는 뜻하지 않은 매우 힘든 소식을 들었다. 차마 얘기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혼자만 소화해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내야만 하는 문제이다. 이를 가만 두고서 살 수 있다는 건 넌센스일 뿐이다. 나는 이 역시 내가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십자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이 고난을 겪을 수 있는 '특권'이 내게만 있고, 나는 이 '특권'을 통해 다시 더 깊은 영혼으로 태어날 수 있으며, 내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모든 열매는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새싹이 있기에 맺어진 것이다. 모든 새는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온 여린 새끼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미래의 사람은 과거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거에 매이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과거는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찾아가는 좋은 가르침이자 삶의 방향타가 된다.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이는 늘 그 삶이 희망차고, 밝은 기운이 넘친다. 그러나 과거의 사람은 과거에 얽매여 나무만 보고 숲이라는 큰 인생의 그림과 그 방향성을 놓치기 쉽다.

나는 이 깨달음대로 다시 오늘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내 딸들에게 훗날 이 날을 얘기해주며, 녀석들이 자신을 더욱 긍정하고 세상에 밝은 기운을 뿜으며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오늘을 다시 한번 살게하는 힘이다. 이 녀석들은 분명 더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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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말마다 부천, 오산, 잠실을 왕복하곤 합니다. 특히, 요즘은 오산에서 잠실까지 매일 새벽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제 옆을 강한 소리를 내며 총알처럼 지나는 승용차를 보았습니다. 분노의 질주를 하는 이 차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왜 인생을 이렇게 빨리 살려 하는걸까..'

여기서 자동차의 연비 얘기 잠깐 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승용차 연비는 시속 80km 쯤에서 가장 좋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이 되면 점점 연비가 떨어지고, 특히 고속으로 넘어가면 급격히 연비가 나빠지게 됩니다. (관련글 : 내 차 연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이요. 이렇게 빨리 달려도 결국 대부분은 그 다음 톨게이트나 신호등에서 다시 만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규정속도를 지키거나 일반적인 도로 흐름에 맞추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거지요. 또 시간을 단축했다해도 10분 내외인 경우가 많더군요. 결국 연료를 많이 쓰고, 엔진과 여러 부품을 혹사하며 달려도 그만한 효율성을 내거나 만족도를 주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달리다보면 그 순간의 만족은 있을 수 있으나 그 종착역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고, 조금 더 빨리 앞서나간다해도 결국 누구나 늙게 되고, 죽음 앞에서 평등한 존재입니다.
 
너무 느리게 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굳이 이렇게 삭막하고, 차갑게 살 필요는 없겠지요. 다른 차량 사이를 파고들 듯 눈 앞의 만족을 위해 파고들며 사람 맘에 상처 줄 필요도 없을 겁니다. 서로 웃으며 얘기하고, 싸우면 다시 화해하고 또 다시 밥 한끼 먹으며 손을 맞잡는게 우리네 인생의 행복 아닐까요.

제 옆을 지나던 차량은 결국 톨게이트 앞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하이패스를 쓰고, 그 차는 쓰지 않았더군요..^._^;;
 
이 아침 이 글을 읽는 독자님과 저의 가슴에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바람몰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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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참으로 빠릅니다. 자동차도 참 빠릅니다. 요즘은 시속 200킬로 이상 내는 차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터넷도 참 빠릅니다. 얼마전 새로 설치한 인터넷은 100M의 전송속도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도 월반과 선행을 강조합니다. 휴~정말 너무 너무 빠른 세상입니다. 천천히 걸어가고, 한글을 학교 입학 후 가르치며, 도로에서 과속을 하지 않으면 욕을 먹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워낙 빠르다보니 정신도 없습니다. 천천히 세상을 알아도 될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노인네 같은 소리를 합니다. 술, 담배, 포르노처럼 쓸데없는 것도 왜이리 빨리 배우는지 모릅니다. 차도 너무 빨라서 사고가 납니다. 말도 너무 많고, 빨라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머리가 띵~하기만 할 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노래 역시 가사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상한 가수들이 얼마나 많던지요.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더 빠르게 흘러가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수를 마치고 양치를 하였습니다. 컵에 물을 받는 데, 습관적으로 손잡이를 끝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 물이 시원하고, 강하게 쏟아졌습니다. 컵에 물이 찼습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게 보입니다. 물이 빠르게 차고, 넘치는 걸 볼 수 있었지만 물을 끄고 나니 상단부가 덜 채워져 있던 것입니다.

입에 칫솔과 거품을 물고 참 재미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 물로 일단 입을 헹구고 다시 천천히 틀어보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느리지만 물이 천천히 가득차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아하, 참 재밌습니다. 이 속에 우리네 인생의 이치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빨리 살고, 많은 것을 차고 넘치게 움켜쥐려 하면 늘 그것이 부족해지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늘 컵의 상단부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기에 더욱 갈급해지는 일이 생기고 맙니다. 하지만 좀 더 여유있게, 나 자신과 세상 그리고 이웃을 바라보며 호흡을 고를 때 우린 조금은 느리지만 컵이 가득차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우리 사회의 사랑이 차게 됩니다.

한주를 시작하는 오늘 하루.

목소리를 낮추고, 호흡을 고르며 차 한잔 하는 맘으로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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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소리쟁이야~제발 그만 좀 해!!

며칠전 있었던 얘기 하나 해볼까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저는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웹진 "우리" 의 필진입니다. 한달에 한편씩 원고를 보내야 합니다. 운영자님은 큰 부담 갖지 않겠금 문자를 주시지만 저로써는 정해진 날짜에 특정 주제의 글을 써서 보내야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원고 마감의 압박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지난 달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희 집에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걸 토대로 쓰니 제법 반응도 괜찮더군요. 하지만 이번 달은 참 어려웠습니다. 원고 마감 이틀전까지 글의 컨셉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휴~상당히 마음이 답답하고, 급하지요.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습니다. 그리 큰 일도 아닌 데 자꾸 신경질을 내었습니다. 아내의 임신 후 제가 도맡아 하던 집안일조차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참 웃긴 현상이 일어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엄청난 잔소리를 해대는 것입니다. 아내가 출근에 쫓겨 그냥 던져놓고 간 옷을 일부러 가만히 두고 퇴근 후 돌아온 아내에게 '이게 뭐니?!' 라고 하는 걸 시작으로 사사건건 놓치는 게 없었습니다. 신경이 예민하니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이더란 것입니다.

하하, 이런 저 때문에 아내의 고생은 보통이 아녔습니다. 오죽하면 저보고 "이 잔소리쟁이야! 제발 그만 좀 해!! " 라고 할까요..ㅠ.ㅜ;;  나중에는 본인도 힘이 들어 저에게 짜증을 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이미 짜증난 상태니까 같이 짜증을 냈지요. 같이 짜증을 내니 서로 다툼이 일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서로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던 거지요. 


제 장인 어른께서는 농사를 지으시는데요. 가만보면 땅과 자연 때문에 많이 울고 웃으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정을 주어도 태풍 한방에 농사를 망치기도 하고, 때론 자연의 도움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며 웃기도 하시구요. 그러면서 더욱 생명의 소중함을 아시고, 인자한 주름이 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결혼 생활이란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서로의 말과 행동 때문에 많이 울고 웃곤 하지요. 나는 많은 정을 주며 노력하지만 배우자의 한마디와 행동 하나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반면 뜻밖의 작은 정성을 보며 웃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서로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인생이 하나의 인생이 되어 인생이란 큰 농사를 지어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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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징기스칸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읽어 잠깐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유사이래 징기스칸만큼 영토를 확장한 왕이나 용장이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 군대를 이끌고 중국과 페르시아로 쳐들어갔고 많은 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그의 용맹스런 행위에 대해 이야기 했고, 세상에 그와 같은 왕은 없었다고들 하였습니다. 

그런 징기스칸이 전쟁을 끝내고 고국에 돌아와 있던 어느날 아침입니다. 그는 그날 하루동안 사냥을 즐기려고 숲으로 말을 달렸습니다. 많은 보좌관이 그와 함께 갔습니다. 징기스칸과 그의 사냥꾼들은 하루 종일 숲 속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많은 사냥감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날은 매우 무더운 데, 사냥은 이뤄지지 않고..징기스칸은 매우 힘이 들었고,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냥터를 해매던 중 어떤 바위 가장자리에서 물이 조금씩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징키스칸은 말에서 뛰어내려 물방울을 받으려고 작은 은컵을 바쳐들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목이 말라 더 기다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징기스칸이 막 컵을 입에 대고 막 마시려는 순간, 그가 아끼던 매가 갑자기 컵을 쳐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 더 그의 컵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는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렇게도 아끼던 매를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이 마른 징기스칸은 아예 물이 떨어지는 곳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샘을 찾은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샘속에는 독이 매우 강한 커다란 뱀이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징기스칸은 갈증도 잊은 채 자기의 성급한 행동으로 가엾게 죽어버린 매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우리네 삶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먹고 사는 것, 옷을 입는 것 등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정치인을 뽑을 때도 그냥 잘 먹고 잘 살게 하겠다는 사람을 뽑습니다. 아이들도 성적의 굴레에 얽매여 자신들의 생명을 맘껏 펼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맙니다. 사람이 사는 게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니고 아이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게 성적이 전부가 아닐텐데 우리는 이것을 전부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재물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으며 공부를 잘 하면 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즐기는 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요. 재물이 많다하여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고, 공부를 더 잘한다 하여 반드시 인생을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던 정치인은 오히려 다른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무것도 못 배우고, 시장 한켠에서 김밥을 파시던 할머니의 얼굴에서 인생의 깊이를 느끼고, 그 분의 기부를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곤 한다는 것입니다.

성급함과 욕심을 아예 지워버리거나 버릴 수는 없습니다. 또 이것 없이 세상을 사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허나 우리는 내 마음을 다스려가는 노력을 할 수 있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가치를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수는 있습니다. 바로 이런 노력과 실천이 인생의 행복과 여유를 만들어 주며 내 자신을 더 존귀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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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떻게 하면 힘차고, 재미난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저는 이런 고민을 하며 참 단순한 계기를 통해 해법을 찾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늘 걸어다니며 출퇴근을 하면서였는데요. 단순히 시야만 바꿔도 그 삶이 변한다는 게 제가 터득한 작은 지혜였습니다.

걷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과 성향을 알 수 있지요. 팔을 경쾌하게 저으며 발을 끌지 않고 걷는 사람은 대개 긍정적이고, 밝은 삶의 자세를 갖곤 합니다. 이런 분들의 시야는 정면을 향하고, 대략 15도 정도 앞을 내다보며 걷곤 하더군요.

반대로 고개를 숙이고 발을 끌면서 다니는 사람은 뭔가 조금은 자신감이 없고, 기운 없어 보이곤 합니다. 이런 분들 특징이 항상 아프다는 소리나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구요. 늘 땅만 바라보며 걷곤 합니다. 그리고 꼭 땅만 보고 걸으면서도 먼저 넘어지곤 하더군요. 대화를 해도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2.우리가 땅만 바라보고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사람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여유와 가치를 잃어버린채 먹고 사는 것과 물질에 붙잡혀 버린 삶. 기계화되고 합리적 이성만을 절대화 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삶 등으로 받아들입니다.

예, 이거 나쁘다는 거 아니지요. 그런데 요즘 우리는 너무 여기에만 치우쳐 사니까 이건 문제다..라는 것입니다. 자꾸 그러다보니 삶에 여유가 없어지고,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 이웃은 물론 가족끼리도 핏대를 세우는 삶이 되고 말았지요. 뭔가 이해해주려 하고, 양보하려 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고 맙니다. 심지어는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마저 함부로 이용해버리고 마는 요즘이지요.

때론 한번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삶도 있지요. 크게 숨을 돌이켜보는 삶도 있고,  비논리적인 것 같아도 정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삶도 있습니다. 모두가 높은 곳에 오르려 할 때 더 낮은 곳에서 섬기는 삶도 있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와 손을 붙잡고 사는 삶도 있지요. 저는 이런 삶을 하늘바람을 들이마시며 이 땅에서 조화를 이루는 삶이라 여깁니다.


3.가만보면 어느 것이든 극단에 치우치면 늘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그 중간에서 어중간..해도 문제가 있더라구요. 결국 자기의 색깔은 있지만 나와 다른 삶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에서 좋은 점을 내가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사람이 참 행복하고, 큰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무 이성적이려고만도 하지말고..너무 돈만 빠져 살지도 말고..또 그렇다고 세상모르게 '나혼자 행복해요..' 라고 살지도 말고. 내가 내 인생을 더 책임있게 사는 맑은 정신을 갖고, 조금은 큰 마음으로 인생을 받아들이며 배워나갔으면 좋겠다는 거지요.

예, 사실 말이 쉽지 참 어려운 얘기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는 있지요. 저같은 사람은 종교를 갖고, 봉사를 하며 살지요. 또 어떤 분은 열심히 일을 하면서 취미를 갖기도 하구요. 어떤 분은 가족을 더 소중히 여기며 챙기고, 그런만큼 어려운 이웃을 챙기기도 하더군요. 

음.. 확실히 그냥 나혼자 삶의 타성에 젖어 사는 것 보다는 좀 나아보이지요? ^-^

행복한 주말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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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출근길에 할머님을 모셔다 드리다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병원 신세인데요. 집근처 한방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당연히 치료도 전부 한방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전에 침치료를 하고, 물리치료를 합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부황을 뜨고, 오후에 침치료를 한번 더하고 있습니다. 침을 참 많이 맞지요? ^.^

제가 을 하도 맞다보니 침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우선 몸이 긴장해서 힘이 들어가거나 굳어 있으면 침도 잘 안들어가고, 참 아프더군요. 자연스럽게 몸을 풀어주고,  편안하게 맞아야 아프지도 않고 효과도 볼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네 인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너무 목에 힘을 주면서 살면 오히려 힘이 더드는 삶이 바로 우리네 인생인 듯 하지요. 또 너무 바쁘게 긴장해서 살면 더 힘든 것 역시 우리네 인생인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삶을 더 바삐 살고, 더 많은 돈을 벌때 능력이 있다하는 것일까요. 왜 더 높은 자리에서 기름기 넘치는 얼굴에 뻣뻣한 목을 한채로 검은 세단을 타고 와야 알아서 모시는 것일까요..

때론 자연스레 힘을 빼고, 자연이나 삶의 흐름을 타는게 얼핏 보기엔 좀 너무 여유를 부리는 듯 보이나 이것이 더 빠를 때도 있는 것 같지요. 너무 목에 힘을 주기보다는 좀 더 낮은 자세로 섬김의 삶을 사는 게 더 높임을 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희 애한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이 너무 바쁘게 뛰지말고 걸으라는 것입니다. 또 울면서 큰 소리로 떼를 쓰지 말고 천천히 하고 싶은 얘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겨우 세살짜리이긴 합니다만 ㅋ 그래도 이 녀석..말을 천천히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서 좀 더 침착해짐을 느끼게 되더군요. 아이의 표현력도 더 좋아지는 것 같구요.

우리도 좀 더 낮은 목소리와 낮은 자세, 좀 더 천천히 여유있게 침착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면 저희 애의 표현력이 더 좋아지듯 우리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이 시간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제 마음의 여유와 웃음을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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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론적 바탕과 경험에도 수익이 없었던 주식투자

제가 요즘 뜻하지 않게 주식투자를 좀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라 공부만 하고 실전경험은 없었더랬습니다. 공부하면서 모의투자만 좀 했었지요. 뭐 그 때 성적은 썩 나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실전은 좀 다르더군요.


투자 첫 달 제 수익은 0% 였습니다. 그냥 본전치기 했다는 거지요. 이게 지난 4월달 얘기입니다. 주식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시다시피 지난 4월은 상당한 강세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왠만하면 다 30% 이상 수익이 나고, 특정 테마주를 갖고 계신분은 2-300% 씩 수익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당시 0%라 하면 사실은 - 30% 이상이란 것과 같은 말이 되는 거지요.


강세장에서도 수익이 없었던 것은

제가 이렇게 된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급등주를 쫓아 고수익을 원하는 마음. 잠시를 참지 못하고 손절해버리면서 손실을 실현해버리는 마음. 마우스 위의 손가락을 잠시도 멈추지 못하는 바로 그 마음!! 즉, 여유를 갖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매매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5월달은 조금 전략을 바꿔보았습니다. 먼저 철저하게 기본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을 해보고 하루하루의 주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도록 여유최우선으로 "장전" 하였습니다. 총알 즉, 자본금보다 중요한 여유를 장전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한달 투자를 해봤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별로 안좋았다면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요. 예, 현재 약 25%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종목에 따라서는 70% 이상). 조급한 마음이 들어도 손가락을 묶어두고, 차 한잔 하면서 여유를 가져 보았지요. 때론 모니터를 끄고 하루를 그냥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수익이 생겼던 거지요.

정신없이 뛰지만 여유도 없고, 만족도 못하는 우리네 인생

사실 우리가 인생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너무 숨가쁘고, 바쁘게 사는 우리 이지요. 다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 그렇게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요. 정말 그렇게 일과 삶에 내 정력을 투자한만큼 충분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언젠가 신문을 보니 우리 나라 청소년들은 10억을 주면 가족도 버릴 수 있다 생각한다 합니다. 우리 나라 국민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뭐 거의 최하위권 수준이고 말이지요..

무엇이 행복한 삶이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가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돈만 벌고, 높은 자리에만 올라가면 된다 생각하는 풍조..세태..

참 안타깝고, 아쉬운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보면 더욱 그렇구요..



여유로운 삶이 맺는 열매는 투자대비 300% 이다!

여동생의 투자금을 받으면서 이번 투자를 통해 얻은 돈은 아예 '내 돈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여동생 입장에서는 돈을 집어 넣고, 가만히 앉아 벌었으니 불로소득이니 말이지요. 그래서 수익 중 일부를 반드시 좋은 곳에 쓰라는 의미로 얘기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신세만 지던 여동생에게 오랜만에 용돈을 주며 오빠 노릇 한번 하니 기분 좋구요.  여동생은 오빠에게 용돈을 받아 또 기분 좋고 말이죠. 좋은 곳에 기부도 하니 그 곳에서는 그 곳 나름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 더욱 좋고 말입니다. 

하~여유가 만들어주는 삶의 열매는 생각보다 참 큰 거 같지요? 따지고 보니 투자대비 300%가 나옵니다. 

좋습니다!  인생은 없이 산다고 불행한게 아니지요! 때론 산책을 하며 한숨을 돌려보고.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한번 더 생각도 해보고 말이지요. 그렇게 내 삶의 여유는 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바로 이런 삶이야말로 인생을 300% 더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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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난 번 운동하다 삐끗한 허리 재활 훈련을 위해 이틀에 한번꼴로 등산을 갑니다. 물론 등산이라 해야 그리 거창한 건 아니구요. 저희 집에서 조금 가면 나오는 성주산(하우고개) 약수터를 중심으로 한바퀴 돌고 오는 것입니다.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기는 너무 힘이 들고 해서 주로 퇴근 후에 가곤 하는데요. 야간 산행이라 비록 언덕 정도 규모의 산이지만 조심할 게 참 많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지요. 몸도 충분히 풀고 갑니다.
 

산에 오르니 참 좋았습니다. 밤에 TV를 보며 혼자 앉아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몸도 가벼워지고, 아픈 허리도 나아지고 말이지요. 날마다 약수를 떠가니 집에서 물을 끓일 필요도 없습니다~ㅋ


또 무엇보다 너무나도 고요한 그 적막함이 좋았습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 복잡하고, 빠르며 시끄럽게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숨소리까지 들리는 고요함 속에 있으니 마음을 다잡는 데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산에 올라 잠시 도심을 내려다 보면 더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어두운 산에서 보는 도심은 역시 참 시끄럽고, 바빠 보입니다. 자동차의 공명음이 하늘위에 떠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고, 시끄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환하기도 합니다.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사람의 눈은 어둠속에서 눈을 감고 쉬게 해주기도 해야하는 데, 하루종일 밝은 빛에서 부릅뜨고 살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고문할 때도 보면 밝은 빛에서 잠 못자고 계속 눈뜨게 하는 게 그렇게 힘들다 하지 않습니까.


때론 우리 삶의 호흡을 조금은 길게 가져가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한 때 유행했던 것처럼 조금 더 느리게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조금 더 조용히 살아도 괜찮을 겁니다. 시력에 문제를 주지 않는한 조명을 좀 더 끄고 살아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 삶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면 말이지요.  


산중턱에서 찍은 시내의 모습이다. 이 때 시간이 대략 8시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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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여유로 산을 오른다

[LIFE]여유와 지혜의 장 2009. 2. 2. 10:55 Posted by 바람몰이

<등산이 가르쳐 준 지혜3>

지난 토요일 교회 아이들과 가볍게 등산을 했습니다. 초등 6학년부터 고1까지 총 5명이었는 데요.  장소는 제가 자주 가는 부천 하우고개였습니다. 모두 오랜만에 바람을 쐬게 되어 들떠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학생들은 방학도 방학이 아니니 말이지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등산로 입구에 섰습니다. 오늘의 코스를 확인하고 오르기 시작했지요. 아니 그런데 초등 6학년짜리 녀석 하나가 불쑥 앞서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평소 아버지와 함께 자주 산에 올랐다 하여 큰 걱정은 안했지만 너무 앞서간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약 15분여가 흐르니 본 대열과 만나게 되더군요. 지쳐서 '헉헉~'대는 녀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나오는 꽤 많은 계단 앞에서는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본 대열이 한참을 기다리며 가다서다를 반복해야 했지요 ^.^;;

그래도 참 착한 녀석들인 것이 웃으며 서로 기다려주고, 농담도 하면서 재밌게 정상까지 올라가더군요. 함께 길을 걸으며 하우고개의 명물 구름다리 앞에서 사진도 찍고, 정상에서 시원한 배도 한조각씩 먹어보았지요. 등산로 입구에서 떠놨던 약수도 서로 먹여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웃으며 산을 오르다보니 문득 우리네 사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잘먹고, 잘 살아보겠다 앞만보고 달려가지요. 그러면 한 동안 잘 나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한숨 돌리려 옆을 돌아보면 아무도 없지요. 내가 지쳐 쓰러질 때 내 손을 잡아줄 이가 없습니다. 한 때 내 곁에서 웃음을 날리던 이들도 내게서 올 이익이 없으면 그냥 흩어지고 맙니다.

참 허무하지요. 지금까지 인생 뭐 살아왔나 싶은 공허함이 오기까지 합니다. 안타깝지요. 젊음과 열정을 모두 바쳐 지금까지 살아왔는 데, 막상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내게는 허무함만 남는다니..


가만보면 등산의 고수는 처음부터 힘을 쓰지 않더군요.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산을 오릅니다. 

우리네 삶도 좀 그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너무 혼자서만 앞서가지 말고, 바람소리도 들어가면서.. 또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눠가면서..그러다 뒤쳐지는 사람 기다려주기도, 손도 잡아주면서 그렇게..뭐 이런 삶도 나쁘지 않을 테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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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나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수학 강사 생활에 제법 짭짤한 수입을 얻었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도 있었다. 학원생활을 접고 난 후에도 한동안 내 이름은 살아 있었다. 부천으로 이사한 후에도 안산, 화성, 수원 등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때 아내는 가장 힘들었다는 얘기를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 돌아오는 나는 늘 여유가 없었다. 집에서는 축 쳐져 있었고, 아내와의 대화는 갈 수록 줄어들며, 겨우 말문이 트여도 늘 짜증으로 마무리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었다. 아이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었다. 물론 당시 너무 어리기도 했지만 아빠 얼굴을 몰라 잠시만 안아도 울어대는 통에 내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이 때 나는 매우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정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물질 충족을 통한 여유"가 가장 중요하다생각을 하였었다. 이걸 놓치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고, 내일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물질적 여유 없이 마음의 여유가 쉽게 허락될리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이 모든 일을 그만 두었다. 물론 허리 수술 부위의 재발이 직접적인 이유였지만 이런 삶이 계속 되었다간 가정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또한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내 영혼을 바라보며 이것은 사람이 사는 삶이 아니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당연히 수입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부족분은 아내의 취직으로 충당하고 있다. 나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모습을 보며 미안함에 늘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아내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한다. 훨씬 더 여유로워진 내가 좋다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아이를 안아주며,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내가 더 좋다 한다. 비록 지금은 서로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고 있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한다. 지금 당장은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우리의 내일에 비젼이 있고, 희망을 볼 수 있다 한다.

나 역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의 이혼과정을 모두 봐야만 했다. 생선장사와 삯바느질로 날 키우시던 조부모님과 살아오며 찢어질 듯한 가난에 너무 힘들었다. 대학시절은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뒤는 물론 옆도 보지 않고 달려온 인생이었다. 물론 지금도 내 결혼식조차 오지 않았던 아버님과의 관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삶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그저 움켜 쥐려고만 하던 을 눈 딱 감고 놓아버리면서부터 찾아온 행복이고, 여유였다.


사실 사람 사는 게 별거 아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내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이와 함께 하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내 정신줄을 놓치 않고, 늘 꿈을 꾸며 살 수 있다면 그 속에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그런데 그걸 보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에 뭔가 자꾸 움켜쥐려고만 하면 문제가 생긴다. 돈을 움켜쥐고, 명예를 움켜쥐고는 도무지 놓으려 하지 않는다. 주먹도 계속 쥐고 있으면 피가 안 통해 하얘지고, 경련이 일어나는 법이다. 인생의 행복이란 게 마치 비누와도 같아서 강하게 움켜쥘수록 자꾸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나는 생각한다. 


어제 언론 보도를 보니 일가족 4명이 생활고에 시달려 동반자살을 했다 한다. 또 다른 어떤 기사에는 10억이 있으면 양심은 물론 가족마저 버릴 수 있다 응답한 이가 50%가 넘는 다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더 이상의 물질적 풍요가 아닌 여유와 행복을 채울 수 있는 "비움의 영성"이 아닐까.

블로그 메인에 올려놓은 가족사진. 우린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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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겪은 일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녀오며 외곽 순환 고속도로를 탔는 데요. 평소 연비 등 문제로 늘 정속, 관성주행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기에 시속 100킬로로 조용히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룸미러를 통해 범상치 않은 불빛이 하나 보이더군요. 점점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습니다.

오호~제법 좋다는 평을 듣는 그런 H사의 S승용차였습니다. 차 사이를 이래저래 비집고 들어가며 신나게 달립니다. 안전거리는 당연히 없죠. 차 뒤에 바짝 붙어 있다 틈이 나면 넘어가고 그러더군요.

한참 열심을 내더니 이내 제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속으로 뭔가 급한 일이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제가 그 차를 본 게 차량 합류지점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허걱,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이 검은색 세단을~ㅋ

다음 요금소에서 만나버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번호판에 "허"자가 써있더군요. 렌트를 한 차라 하이패스가 없었나 봅니다. 그냥 얌전히 줄서서 요금을 내려 기다리더군요.

 
이걸 기억할 필요가 있지요. 우리 나라의 교통여건 즉, 신호가 매우 많고, 정체 구간이 곳곳에 숨어 있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과속해서 가봤자 결국 톨게이트에서 만나거나, 시내의 한 신호등에서 만나게 된 다는 겁니다. 결국 조금 빨리 도착해봤자 1,20분 내외인 경우가 허다하구요.

좀 더 여유를 갖고 운전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제 광고를 보다 보니 한국인의 빨리 빨리 근성때문에 급성장이 가능했다니 어쩌니 하는 말도 나오긴 하던데..동시에 그 덕에 빨리 빨리 사고율도 1등하고, 사망률도 1등하고 한 것도 사실이니 말입니다.

주변 경관도 보고, 가족과 대화도 나누면서, 또 호두과자 하나씩 먹여 주면서 다녀도 그렇게 늦지는 않습니다.


 '에혀..결국 만나게 될 것을..'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만 보면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아둥바둥 앞만 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뛴다 해도 결국 다 땅에서 만나게 되는 건 똑같지요. 이렇게 해서 뭔가 손에 더 잡는 듯 해도 결국 마지막에 가져가는 게 없는 것도 똑같습니다. 세상에서 좀 더 편하게 사는 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고 말이지요. 

어떤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물질이란 건 비누와 같다 말이지요. 더욱 많이 잡고, 놓치 않으려 꽉 잡으면 잡을 수록 빠져 나가는 것이라구요. 지금처럼 물질에만 눈이 멀어 살다가는 인생의 더 중요한 것을 잊게 될 때가 많습니다.

결국 내 인생을 어떻게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가가 중요한 거고, 기왕이면 더 의미 있게 사는 인생이어야겠다..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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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바람의 나라를 보며 <운명>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한 때 나도 '나는 도대체 어떤 운명을 타고난 걸까' 강한 물음에 빠진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헤어지신 부모님은 15년 동안 두 분 모두 내게 한번의 연락조차 없었다. 두분이 헤어지심 자체도 큰 상처였으나 오랜 시간 연락조차 없었다는 것은  더욱 큰 상처로 남고 말았었다. 


내게 주어진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었다. 가만히 앉아 눈물이나 짜며 우울해할 틈도 없었다. 나는 당장 동네 불량배에게서 어린 여동생을 지켜야 했고, 길게는 내 자신의 힘을 길러 성공해야만 한다는 악을 갖어야만 했다.

당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절박한 삶의 환경이었다. 하지만 자식을 낳아 기르는 지금와서 보면 여유 있는 미소를 띄어 보게 되는 유년과 사춘기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 때 갖게 된 악과 현실의 눈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일조한 것도 사실이고, 어린 시절의 경험 덕에 지금의 나는 온화한 삶과 가정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2.참으로 어려운 시대다. 본래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참 유난히도 더 잘 안되는 시대다. 그래서일까..점집에 유례 없이 호황이다.
세상 살기 힘드니 이렇게 나마 힘을 빌어보고, 위로 받겠다는 마음이..충분히 이해되고..안타깝다.
 
그러나 이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허황된 귀신에게 시간, 마음, 재산마저 바치고, 심지어 가정이 파탄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한다. 


스텔라 까페를 운영하는 타로술사 스텔라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흔히 "운명"과 "숙명"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숙명"이란 우리가 타고 태어난 부모, 형제, 환경 같이 이미 정해져서 바꿀 수 없는 것이고, "운명"이란 우리의 의지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라 얘기한다.

그런데 이 운명을 바꾸는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한다. 그것이 바로 환경, 사람과의 인연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결단이다.

그녀는 "결단"을 다른 말로 "의지"라 표현하고 있었다.

또한 점술이란 자신의 운명에 있어서 하나의 도구이며 혹은 친구라고 생각해도 좋다고 한다. 어떤 메세지를 통해 얻은 순간의 통찰로 자신의 삶, 살아가는 것에 보태어 가는 것이란 얘기다.  (출처 :
http://www.stella-cafe.com )

그렇다. 나는 비록 점을 보거나 믿지는 않지만 그녀의 통찰은 인정할 만 하다. 무엇보다 삶이란 내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살아 내는 것" 이다. 점이 내 운명을 안내해주는 것이라 여기고, 나는 그대로 따르려 해서는 안된다.

내가 만들어 가는 운명이 바로 나의 삶이 되어야 한다.


3.바쁘고, 정신 없는 세상이라 하여 자신의 마음을 쉬이 놓치게 되니 의지가 없어진다. 의지가 없어지니 몸도 가만히 있게 된다. 몸이 가만히 있으니 현실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리가 없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탓한다. 운명을 탓하다 보니 점점 자기 자신이 더욱 무기력하게 느껴지고, 우울함에 빠지고 마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만다.

설사 숙명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 뜻은 내가 세우고, 다잡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절망하면 그 사람의 뜻은 절망이 될 것이요, 삶을 겸손히 배움의 자세로 익혀가면 그 사람의 뜻은 기쁨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 

비록 갈 수록 어려워지는 시대이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품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여유 있으면 여유 있는 대로 감사하며 즐길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어떤 환경도 감사한 자의 희망을 꺾을 수 없으며 그 어떤 것도 즐길 수 있는 자를 이길 수 있는 건 없으니 말이다.

즐기고, 감사할 줄 아는 삶은 불황도 이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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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 가르쳐 준 지혜

[LIFE]여유와 지혜의 장 2008. 5. 15. 09:54 Posted by 바람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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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에 취미를 붙이게 된 것은 그리 좋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달 무리한 업무로 인해 5년 전 수술했던 디스크가 재발해서 재활운동차원으로 접근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등산을 해보니 참으로 많은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산을 오르며 대자연과 호흡하며 내 자신을 이겨가는 극기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덤으로 체력도 좋아지고 디스크 역시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초보수준에 머물러 동네 뒷산 정도만 오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을 오르며 주변의 고수분들께 여러 조언을 얻기도 하는 데, 그 중 가장 재미난 조언은 바로 ‘부상’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등산을 하며 오르막에서 넘어지거나 발목이 삐끗할 때는 그렇게 큰 부상이 생기지 않지만 내리막길에서 하산시 부상을 당하면 매우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문득 우리네 인생도 이와 참으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습니다. 좌절과 낙망이 나를 지배해 죽음의 유혹과 우울한 나날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정상에 오르기 전 등산과 같은 경우라 생각해본다면 이 부상은 그리 큰 부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죽을 것만 같지만 좀 더 길게 내다본다면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던 시기라 추억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편안한 삶과 안락함에 젖어 있을 때 당하는 시험이 더 큰 아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상의 궤도에 서거나 성공의 나날을 보낼 때 당하는 부상은 매우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보다 큰 유혹이 다가오는 데 비해 내 마음과 정신은 마치 하산할 때 풀려있는 긴장감과 다리와 같은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 인생의 하향곡선 기울기를 보다 급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등산하는 내내 극기를 체험하며 대자연의 숨결과 호흡할 수 있어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듯이 우리의 인생 역시 내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과 대자연 또는 하늘의 섭리와 함께 호흡할 수 있을 때 좀 더 만족할 수 있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드시 높은 산을 올라야만 보람을 느끼는 게 아닌 것처럼 단순히 물질적 풍요와 명예만이 아닌 내 인생자체에 보람을 느끼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바로 그러한 복된 인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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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요즘 들어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구나..'를 느낄 때가 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내가 이런 순간을 많이 느꼈던 대표적 사례를 정리하며 나이를 먹어감의 의미를 짧게 생각해 본다.

1.후배의 정당한 항의나 의견제시에 그 중심내용보다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올 때
나이를 먹을 수록 보수화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보수화 되는 것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그 중심내용에 대한 평가와 인정 내지는 토론보다 태도를 문제삼는 것이라 하니 이럴 때마다 나는 나이를 먹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2.하루가 빨리 지나감을 알았을 때
일상과 업무에 젖어 아무런 사색이나 자기 반성 없이 하루가 그냥 흘러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내 자신의 꿈이나 말랑말랑했던 가슴이 없어짐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 나는 나도 이제 기성세대로 편입되어 나이를 먹었다 느껴진다.

3.동아리 모임에서 선배보다 후배가 많았음을 알았을 때
어느 날 오랜만에 동아리 모임에 나갔더니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아짐을 알았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후배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4.어느 순간 처녀, 총각 보다 아저씨, 아주머니와 더 많이 놀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처녀, 총각들과 놀면서 세대차이를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그런데 아저씨, 아주머니와 놀면서는 제법 말이 잘 통함을 깨달을 때가 있었다. 나도 이제 아저씨라는 게 맞는가 보다.

5.형, 누나라는 표현보다 형님, 누님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쓰고 있다.
확실히 20대 초반에는 형, 누나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러나 서른을 앞둔 지금은 형님, 누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6.느려도 조용하고 안락한 차를 선호할 때.
한 때는 빠르고, 잘 나가는 차를 선호했다. 소음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승차감 역시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점점 조용하고 안락한 차를 선호하기 시작하고 있다.

7.축의금(경조사비)이 많이 나간다
나도 많이 받고 있고 그 만큼 많이 나가고 있다. 상당히 부담이 되지만 결국 나도 똑같은 일을 한두번 이상 겪게 될 것이기때문에 직접 가지는 못해도 투자나 인맥관리 차원에서라도 꼭 경조사비를 내게 된다.

8.여동생 시집 보낼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집안 형편 상 여동생 시집을 거의 내가 보내야 할 입장이다. 그러다보니 어리게만 느껴지던 여동생이 어느 순간 혼기가 차고 있는 보며 나는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9.자식 걱정이 내 걱정보다 더 많아짐을 알았을 때
 내 자신의 비젼이나 자기 계발보다 딸 아이의 앞날과 건강 등에 대한 고민이 매우 많아짐을 알았다. 이제 나도 나만 보던 철부지 총각에서 자식을 보기 시작한 좀 더 확장된 인생을 살아감을 알았다. 좀 더 성숙해지고 책임 있는 인생을 살아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나이를 먹는 다 함은 인생이 더욱 무르익어 감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너무 무르익으면 그 껍질이 터질 만큼 흐물흐물해지고 너무 익지 않으면 떫어서 상품성이 떨어지게 된다. 결국 알맞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알맞게 잘 익어가야 함이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나이를 먹어가며 어린 시절을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하기보다는 겸손함의 지혜를 배워가며 하루를 살아도 성숙함을 일궈가는 '탱탱한 삶'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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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능시험 만점자
해마다 수능 시험 만점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들의 수고와 의지에 격려를 보냅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만점자 대부분은 언론에 나와 늘 같은 얘기를 하곤 합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학원은 거의 안다녔어요." "수업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예습복습을 철저히 했어요"

이걸 보는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에이..설마.." "말도 안돼." " 방송이니까 그렇게 말하는거지" "쟤가 사람이야?!"

2.수능출제위원장의 인터뷰
험 당일 뉴스에는 출제위원의 인터뷰가 자주 나옵니다. 기자들은 이번 시험 난이도에 대해 묻곤 하는 데 그 때마다 출제위원 또는 위원장님은 "난이도는 예년과 비슷하다." "교과서 위주로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모두 풀 수있게 만들었다."

이걸 보는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말도 안돼." "뭐 항상 그렇지.." "나도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긴 했는데.."

3.명문대에 자녀를 합격시킨 부모님 이야기
이른바 명문대에 자녀를 모두 합격시킨 어머니 이야기, 외국 명문대에 자녀를 합격시킨 어머니 이야기 등이 꼭 나옵니다. 이 분들은 보통 자녀를 믿고 알아서 하도록 도와주며 자신은 그저 보조만 했다는 말씀을 하곤 합니다.

이걸 보는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고액과외 하는 애들은 왜 이리 많아." "저 아주머니 또 책 한권 내시겠네."

4.술 마시고 놀다가 사고친 수험생 이야기
무면허로 부모님 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낸 이야기나 술 마시고 싸움을 하다 다쳤다는 이야기가 꼭 나오곤 합니다.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시험 후 스트레스를 풀려 그랬습니다"라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5.자살하는 학생들
시험 후 인터뷰 하는 학생들은 각 자 나름의 소감을 얘기합니다. 무슨 무슨 과목은 풀만했고, 무슨 무슨 과목은 어려웠더라..해볼만 하더라..너무 힘들더라..등을 말이지요. 그러나 해마다 빠지지 않고 보도되는 뉴스 중 하나는 늘 자살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제가 이 이야기를 쓴 것은 단순한 흥미때문이 아닙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가 반성할 지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아시다시피 명문대에 입학해야만 한다는 수험생들의 과중한 입시부담과 이를 조장하는 학벌위주 사회, 엄청난 사교육비 문제 등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걸 보고 '문제다..문제다..'하면서도 결국 내 자식을 또 다시 사교육에 몰아 넣고 명문대에 보내려 합니다. 이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말이지요. 이렇게 해야만 하는 부모님 역시 마음이 많이 아프실 거구요.

하지만 이런 현실만을 비관하며 언제까지 고개숙인 채 지내서도 안될 것입니다. 보다 희망찬 오늘을 살고 내일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이를 위해 저는 수능을 치른 수험생과 학부모님들께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1.수능은 인생의 수많은 시험 중 하나일 뿐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수능이 매우 중요한 시험임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인생을 좌지우지 하지는 않습니다. 수능 결과에  매몰된 나머지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집니다.

2.중요한 것은 대학진학 이후입니다. 대학 생활 설계를 한번쯤 해보시길 바랍니다.
명문대에 진학해도 제대로 취업이 되질 않습니다. 반면에 지방대생 중에도 취업 잘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학진학이후입니다. 대부분 신입생들이 처음 두달은 잘 하다가 그 뒤부터는 술에 빠져 허우적 대기 시작합니다. 공부 잘 안합니다. 대학 진학 이 후 어떤 생활을 할 것인지 잘 설계해보실 바랍니다. 대학 졸업때까지 반드시 이것만은 해놓겠다는 다짐을 해보세요.물론 설계대로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예 안해보는 학생과 해본 학생의 끝은 전혀 다릅니다.

3.대학 입학까지의 공백 기간을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이 기간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먼저 면허증을 따놓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대학 입학금에 보태는 것도 좋지만 특별한 가정환경이 아닌 이상 첫 입학금은 부모님께서 내주십사 정식으로 부탁드려 보세요. 내 자식 입학금을 해줬다는 것은 부모님께 부담이기도하지만 자부심도 된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생활 동안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의 노력으로 내 학비를 스스로 조달해보려는 노력인 것이지요.

4.이제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겠다 굳은 결의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혼자서만 여행을 떠나보길 추천합니다. 친구들과 가면 놀면서 술만 마시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산행을 하거나 바닷가를 걸으며 내가 살아온 인생을 정리해보고 앞으로 성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다짐해보시길 바랍니다. 여행자금은 면허 따고 약 1-20만원 가량 남을 것이니 이걸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이제 시험을 모두 치르고 성인으로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자녀들을 더 이상 애 취급 하시면 안됩니다. 성인으로서 스스로 책임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주시고 그 뜻에 따라 열심히 살도록 환경을 마련해주심이 좋겠습니다.

수험생 역시 더이상 부모님께 의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영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독립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대학 진학 이 후는 부모님께 걱정과 부담이 되기 보다 듬직한 기둥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님께서 나를 보며 힘든 지금의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되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의 밝은 오늘과 내일을 위해 건투를 기원합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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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일이 어색하다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12. 10:12 Posted by 바람몰이



생일을 맞이하는 내 모습은 늘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해마다 돌아오고, 벌써 27번째인데도..

까닭은 "내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려 했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모든 사물(생물 무생물 총칭)은 각 기 태어난 날이 다 있다.

내가 태어난 날 역시 그 중 하나이기에 유독 내가 축하받아야 할 이유가 그렇게 많은 것은 사실 아니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내 존재 자체를 기뻐해주고 아껴주어 챙겨주니까 그런거지..

또한 누군가 이 날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할 일도 아니다. 그 많은 생일을 일일히 다 챙기는 것도 상당히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

생일에 대한 적극적인 개념이해가 필요한 대목이다. 생일이란 "내가 태어났던 날"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는 날"인 것이다. 매일같이 깨어지고, 또 깨어지며 거듭나는 사람은 매일이 생일인 것이 되는 것이다.

특별히 크리스챤은 인식의 전환이 더욱 요청된다. 내 육체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로 늘 새롭게 태어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크리스챤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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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의 상실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12. 10:09 Posted by 바람몰이



균형을 잡는 다 함은 절대 적당한 중간선을 찾는 게 아니다. 진정한 균형은 좌우의 모든 끝을 보고 난 후 내 자신을 온전히 세웠을 때 잡을 수 있다. 내게 잘 해주거나 나쁜 짓을 한 사람도 잘 보고 내 마음을 다스리며 하늘의 이치에 맞춰 받아들일 줄 알아야 인생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이고..우리네 생명세계나 역사 역시 하늘의 삶과 땅의 삶 어느 하나에 치우쳐서는 곤란한 것이다.

한 때 우리의 역사는 땅의 삶을 물리치고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며 추상적인 관념에만 사로잡혀 딴 세상 사람처럼 살 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동서양을 막론하고-학문세계나 정신세계는 사람들의 현실적 삶에 아무런 힘을 끼치지도 못하고 도리어 억압하는 굴레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지금의 우리네 삶은 우리네 인간사 속에서 하늘의 뜻과 이치, 그 질서 등을 완전히 배제한채 살아가고 있어 지극히 물질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 결과 생태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파괴되었고, 우리네 정신 역시 그 따뜻함과 깊이, 인간냄새 등이 사라져가고 말초적인 흥분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인간을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아주 간단히 도식화하여 정리하여 보았는 데..

실제 우리네 인생과 우주의 이치란 것은-동서양을 막론하고-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조화로운 삶에 그 기본과 끝이 있다. 특별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 성품을 입고 땅에 살게 하였다는 성경의 관점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즉, 오늘날 우리네 인생들이 당면한 역사적 책임이란 바로 신, 하늘, 추상이 지배하던 역사를 박차고 나와 땅, 물질, 현실이 지배하는 오늘의 역사를 거쳐 이제 변증법적 중심을 잡아나가는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 생명이 사라져가는 우리네 인간의 영혼과 온 생명세상에 하늘의 생명기운을 다시금 불어넣어 흙에서 사람이 되었던 옛 고백처럼 우리네 인간의 영혼과 세상이 호흡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조금 엇나가는 얘기이긴 하지만..오늘 우리 나라의 정치세계가 지극히 천한 것 역시 바로 이런 더 큰 세계를 볼 줄 아는 이가 없고, 오로지 자신의 바로 눈 앞 밥그릇 채우기와 기싸움만 해댈 줄 아는 이가 득실거리기 때문인 것이다.

이들은 하늘의 이치와 성품속에 지극한 땅의 삶을 살며 국민들을 인도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대의명분과 시끄러운 입방정으로 가장 천박한 인생사를 살고 있다.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도 좌우의 끝을 볼 줄 알고, 포용할 줄 아는 큰 마음을 지닐 수 있어야 그 중심을 잡고 국민들을 편하면서도 좀 더 고귀한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 우리의 맥으로 돌아와..아무튼 세상의 교회와 크리스챤들이 이런 큰 신앙의 맥락을 알고 살아나가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대로 각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열매를 맺어가고, 그 가운데 예수님과 같은 사람냄새 나고 하늘 냄새나며 그래서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고, 물질적으로 잘 살아가는 생명의 세상을 일궈갈 수 있어야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이 때에 자신의 자리와 삶에서 최선을 다해가며 주께서 다시 오시거나 나를 불러가실 때에 죄많고 부족한 나이지만..주님의 그 은혜로 살며 최선을 다했노라..열심으로 살았노라..그렇지만 너무 힘들었노라 이야기하며 그 품에 안길 수 있는 당당한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 여행의 첫번째 도전에 직면해보자.

지금 나는 어디서 무얼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는 무얼 알고, 무얼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내 삶은 바로 이 순간 우리 주님께서 오시거나 나를 불러가실 때에 나만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열심있고 책임있는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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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적은 짧은 생각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12. 10:05 Posted by 바람몰이


필자는 "국제 유가와 패러다임"(
http://blog.naver.com/kkuks81/30005482669)이라는 글에서 국제유가가 꾸준히 상승할 것을 예측한 바 있다. 또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세계 경제위기의 심화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소비성 및 착취성을 밝히며 "생명"을 향한 선택을 강조했었다.

사실 이 글을 쓸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설마..'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요즘은 하나둘씩 '진짜 그렇게 되는 것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 유가의 고공행진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고, 특별히 유류세 및 정유사 횡포가 큰 우리 나라에서는 그 부담이 너무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정신사적으로는 해체적이고도 지극히 개별적인 것과 실증적인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것들이 주는 장점을 놓치고 단점만이 반복되고 있고, 현실적으로는 지극히 물질중심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혜와 은혜로 바로 잡아가야할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선도해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우리가-특별히 교회가-물질중심의 삶에서 물질과 고귀한 정신이념-정신사로의 상승지향적 성향 포함-, 해체적이고도 지극히 개별적인 것 및 실증적인 것과 전일적이고도 포괄적이며 유기체적인 것의 조화를 꾸준히 추구해나가거나 유지해나갔다면 지금의 이런 파국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별히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하늘의 신령한 지혜 및 성령의 인도하심을 세상에서 유행하는 정신사 및 물질적인 삶과 온전히 구분하여 설파하여 나갔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실제 우리는 절벽 바로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상황이기에-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하나님께서 온 생명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게 하시면서까지 기다려 주시며 은혜를 베푸셨기에 이렇게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필자는 우리네 인간이 가지는 본성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비본래적인 상태(김경재 "폴 틸리히 신학연구"참조)에 있는 즉, 원죄에 빠진 상태인 인간이 지닌 이기성과 욕심, 잔학성, 폐쇄성, 정체성, 보수성 등으로 대변되는 그 본성에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필자의 주장이 꼭 다 들어맞거나 모두 공감하지 않는다해도) 늘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고, 따라서 다양한 주장이 오고가는 것이며 여기에는 당연히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내일의 방향을 제시하는 부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와는 반대로 현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좀 더 물질적인 풍요를 중시하는 부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네 인간의 심사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자유로운 본래적 상태에 머문 본성이었다면-우리는 에덴동산의 낙원과 같은 상태처럼-얼마든지 서로를 비판적으로 돕고 도우며 꾸준히 살아갈 수 있었을 것 아니었겠는가.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논리이다) 성경에서 바벨탑을 쌓다가 온 인류의 언어가 흩어지고, 다르게 된 것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알아가고, 타개해가며, 새로운 앞길을 열어 가는 것은 우리네 인간의 본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며  이것을 위해 이미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시며 그 거대한 물줄기를 생명의 물줄기로 바꾸어 놓으셨던 것이다. 정작 문제를 일으키고도 깨닫지 못하고 뻔뻔하게 자기를 죽인 인간을 너무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믿고 다시금 기회를 주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고, 희망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세상을 보며, 판단해가야 하는 걸까..

우선 조화를 깨뜨리는 지극한 편향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어쩌면 지극한 편향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극과 극은 그 끝에서 하나의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어설픈 편향으로 인한 폐쇄성일 것이다. (오늘의 삶이 지극히 물질적인 삶에만 편향된 것은 어쩌면 이것이 어설픈 편향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물질적인 땅의 삶에서 고귀한 인간애를 깔고 있는 하늘의-하나님의-삶으로의 반전을 통한 변증법적인 조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일적인 삶의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 결국 교회가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생명을 상품으로 전락시키지 말고..은혜마저 값싸게 팔아버리지 말고..겸손하면서도 열심있는 삶의 추구를 해야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착취지향 및 소비지향적 성향을 이겨내고, 지속적인 개발 및 유지가 가능한 생태적이고도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만큼 살아가며 휴머니즘을 구현해낼 수 있는 역사적인 생명으로의 삶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지구적이고도, 전생명적인 삶과 조화가 필요하다. 특별히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것은 자본주의적 착취성을 바탕으로 한 강대국의 그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진정한 인류의 하나됨과 행복의 추구 및 생명의 조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간 계층간 빈부격차 및 자연, 영혼과 생명의 파괴를 가속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셋째이다.

끝으로 우리 한명 한명이 "성인군자(?)"가 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성인군자라 하니 조금 이상하기도 하지만 결국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자신을 보고, 이웃을 보며, 온 생명을 볼 줄 아는 시대와 역사, 생명을 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른 '의식화(?), 계몽(?)' 등이 된 성숙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에 나를 못박고,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어 십자가의 도를 깨달으며 날마다 거듭나 모든 일에 협력하여 선을 이룰 줄 아는 성령에 사로잡힌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끊임없이 나와 우리가 사는 오늘을 바로 보고, 뒤를 반성하며, 내일을 살아가며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기체적이고도 정신지향적인 사고와 물질적인 삶의 현실속에서 전일적으로 판단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글을 정리해보자.

워낙 두서없이 쓰다보니 서론이 좀 긴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글이기는 하다..;; 어쨌든 필자가 하려는 말은 알아서 흘리고 마음에 와 닿는 한 마디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분명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다시 건강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책을 필자는 제시한 것이니 이를 통해 스스로 어떻게 살아왔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세상을 보며 살아갈 것인가를 조용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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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단순=

[LIFE]이 남자의 인생 2007. 11. 8. 10:42 Posted by 바람몰이

사랑하는 그대여


난 오늘도 그댈 생각해요


내 마음 속 가득 올라 오는


고마움, 미안함, 행복함, 힘듬...


사랑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합니다


이런게 사람사는 거고 사랑인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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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을 주소서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35 Posted by 바람몰이

사람의 살고 죽음은 하늘이 정하는 것


우리는 살고, 죽음을 기뻐하고, 슬퍼하여야 한다


아주 충분히..


그러나 이와 함께 거대한 우주의 한 부분으로 살았음을,


한 부분으로 살아왔음을 느끼며 감사해볼 줄 아는 지혜도 있어야 한다.


나는 오늘 내 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며,


충분히 자기의 생을 사시고,


큰 역사의 일부분으로 사셨다고 고인의 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어떻게 해야할지 더 잘 아시는 주님을 믿기에,


할아버지의 그 생 자체가, 비록 너무 고되고 한이 쌓였을 것이었지만,


나는 그 죽음 속에서 은혜를 느껴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할아버지를 통해 더 큰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가셨다고 믿는다.


주여, 그 영혼이 안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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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별거 있어?!

[LIFE]여유와 지혜의 장 2007. 11. 8. 10:25 Posted by 바람몰이

때때로 인생 별거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그렇기때문에 인생이 참 별거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 냄새 풍기며 사는 것..

생명을 생명으로 아끼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

하늘을 섬기며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것..


말은 거창하지만 참 별거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면서도 잘 못하기에 거창한 말이 되고

인생은 별거 있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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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도1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24 Posted by 바람몰이

매일 같이 소리를 지르며 온 집안을 뒤 엎는 아이를 보며

고된 삶을 살면서도 자신과 아이 그리고 저를 한없이 사랑하는 아내를 보며

평소 용돈 한번 못드려도 함께 살아 행복해 하는 할머님을 뵈며

제가 사는 인생과 삶의 자리가 고됨을 넘는 은혜의 바다임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무엇을 해달라, 무엇을 들어달라 조르기보다

하루의 삶과 순간 순간에 감사기도를 더 드릴 수 있게 하시며

그저 당신의 뜻을 헤아리고 들을 수 있는 믿음과 넉넉한 여유를 갖게 하신 당신이시이기에

저는 오늘도 가슴을 적시는 눈물에 영혼을 촉촉히 가꾸어 갑니다.


당신의 종으로 바르게 서 가기를

당신이 허락하신 생명을 당신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며

함께 인생을 살게 하신 아내와 가족들을 사랑하고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생명세상을 가꾸갈 수 있기를


이 한 청춘과 호흡을 바쳐 원하고 또 원합니다.


당신께서 이 가슴에서 솟고 있는 뜨거운 피를 식지 않게 도와주시고

주위를 둘러보고 뒤를 돌아보며 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발이 지치지 않게 하시며

세상의 이치와 당신의 뜻을 보려하는 번뜩이는 눈이 흐려지지 않게 도와주소서.


어디서나 제소리를 내게 하시고

그러나 그 보다 더 많이 듣게 하시며

날카롭게 잘라낼 때보다 더 많은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하늘의 신령한 지혜와 은혜를 나뢰어 주시어


당신을 경외할 줄 알고

당신께서 뜻을 하늘에서 이룸과 같이 이 땅에서도 이뤄 갈 수 있는 자 되게 하시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되 남는 것은 넉넉히 나눌 줄 알고

함부로 남을 정죄하기 전에 내 자신을 성찰하며

시험에 들었을 때도 낙망치 않고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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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이야기-(2)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11 Posted by 바람몰이

  앞 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와 그 이치에 대해 짧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과 하늘의 세상에서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삶의 방향성을 찾고 구원 받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인간답고, 땅은 더욱 땅 다우며, 하늘은 더욱 하늘답게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제 눈에는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심지어 크리스챤마저도 물질적인 생활에 종속되어 이것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기도할 때 물질의 축복을 더해 달라 하지요.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물질적으로 비대해져 이제는 각 은행이 대형교회를 알아서 VIP로 모신다 하지요. 목사님들은 고급 대형 승용차를 몰고 다니시구요. 마치 말로는 주님을 섬긴다하지만 실제로는 물질을 더 섬기는 것 같아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얼마나 시장의 논리에 휩쓸려 살고 있으면 이제는 “시장이 하나님이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교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져 이제 세상은 아무도 교회를 신성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세계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수탈하며 부를 누리는 일종의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지요.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여전히 불균형한 상태이구요
1). 우리네 정신세계는 전 세계에 몰아닥친 왜곡된 해체주의적 물결에 휩쓸려 이제는 허무주의만이 가득하고 오히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눈에 확실한 것을 보여주며 대중을 선도하는 포퓰리즘을 추종하는 것만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2차 대전이나 황우석 사건 같은 것은 그런 대표적인 예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정신을 연구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인간답게 사는 법을 공부하던 철학을 비롯한 각 종 인문학이 사라질 지경입니다. 그리고 실용성만을 추구하며 오로지 먹고 사는 데만 유용한 것을 학문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2).

문화는 어떻습니까. 문화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정화시키며 그 사회의 수준을 끊임없이 살아있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란 것은 돈의 논리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전락하여 일반인은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는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돈을 동원해 많이 팔리거나 전문가라는 사람이 방송에 나와 소개해주면 고급문화가 되고 몇 만원에서 몇 십 만원을 지불해야만 누릴 수 있는 그런 형국입니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을 통해 인간의 말초적인 신경만을 자극하는 포르노 산업만이 꾸준히 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 인류의 문화가 얼마나 추락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3).


1)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홀로 짝이 없이 있는 것을 보고좋지 않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자를 잠들게 하고 그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 대목은 가부장제나 남존여비 사상 정당화에 많이 동원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자나 남자는 한몸에서 나와 만들어졌고, 하나가 되어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우리 속담처럼-“일심동체”의 신앙적 증언인 것입니다.


2) 어째서 이런 것만이 쓸모 있는 것이란 말입니까.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모르는 돼지에게 진주를 안겨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매우 비싼 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면서도 저질스런 운전매너를 갖고 있는 분들을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이치 아닌가요?


3) 심지어 인간의 영혼과 사랑의 교류가 없는 무분별한 성행위마저도 인간의 본능이라 가르치는 포르노 산업과 이에 이용되는 각 종 미디어는 정말 할말을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본래 섹스란 것은 종족의 번식을 위한 동물적 본능. 즉, 생득적 능력입니다. 여기에 정신적 동물인 인간은 그 속에서 고차원적인 사랑과 영혼의 교류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창조과정과 사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십시오. 그 어떤 동물이 오로지 쾌락만을 위해 성행위를 한다는 말입니까. 오로지 인간만이 합니다. 이것이 각 종 포르노를 중심으로 한 성산업의 발달과 맞닿으며 아무런 감정교류가 없는 특히, 남성의 판타지 충족만을 위한 성행위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인생을 사는 게 고달픈 겝니다. 주님의 뜻이라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곳이니까요. 에덴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양새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교회에 가 평안을 찾으며 본향을 갈 생각만 하게 됩니다. 또 여러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족과 재산, 인간관계까지 모두 잃어 갑니다. 그저 죽어서 천국가는 게 구원이라 여기는 거지요.


  사실 구원이란 그렇게 단순한 얘기는 아닙니다. 세계의 신학이 설명하는 구원만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모두 지적하는 분명한 것 하나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구원받은 기쁨의 삶이 되지 못하고 죽은 후에야 구원받는 것은 진정한 구원이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지요. 죽었던 나사로의 삶을 바꾸셨고, 우물가의 여인의 삶을 바꾸셨으며 모두에게 돌팔매질 당하던 여인의 삶 또한 구원받은 삶으로 바꾸셨던 겁니다. 삭개오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그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 나라로 충만하여 자기가 거짓되게 거둔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까지 하였지요.


  결국 온전한 신앙생활이란 이 땅에서의 내 삶 또한 구원받은 에덴의 삶이 되게 해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늘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함께 말입니다. 세상을 두개로 구분하여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 등으로 단정 지어 보지 말고 말입니다.   


   사실 얼핏 보면 세상은 땅과 하늘, 영혼과 육체, 이상과 현실 등으로 구분(이원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의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문화는 더욱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하나님 한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은혜 속에 있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전일적 세계체계”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것은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어떻게 육체 없는 영혼이 있을 수 있고, 영혼 없는 육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몸이 아프면 정신도 약해지는 것이고, 반대로 강한 정신을 갖고 있으면 약한 육체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지요. 바울 역시 부활은 영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육체의 부활이 있다하였고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그 첫 열매가 되었다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간단한 이치입니다.

   

   이제 두 번째 창조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는 고운님이여. 우리는 죽어서만(!) 본향1)에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땅 역시(!) 본향처럼 살아 갈 수 있어야 하지요. 더욱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 정직하고 바른 삶을 살아가며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추종하는 물질적 가치는 멀리하고 아둔해지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둘로 보지 말고 하나로 온전히 통전시켜 나갈 수 있는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히브리 사람들은 죽음을 미화하지도 않고, 신성화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떨어져버린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그냥 잠자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것도 지하세계. 즉, 스올에 내려가서 말이지요. 스올이란 하나님의 영이 비취지 않는 곳 이구요. 하지만 주님의 사람들은 훗날 부활할 때 신령한 몸으로 모두 일어나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바울 사도의 증언이구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옥에 가는 것과는 조금 다른 거지요. 사실 지옥이란 말 자체가 불교 용어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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