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살짝 한기를 느끼며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을 가리킵니다. 다시 잠자리에 들까 하기도 했지만 그 동안 밀렸던 블로깅도 하고, 무엇보다 성경책을 읽어야 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을 펴고 요즘 읽고 있던 요한복음을 펼쳤습니다. 아~오늘은 나면서부터 눈먼자를 치유한 예수님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눈먼자를 고치시다

일단 내용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걷는데 선천적으로 시각장애가 있던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이걸 본 제자들이 묻는 겁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

그러자 예수는 이것이 "죄" 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대답합니다. 그리고 잠시 설명을 더 해준 후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익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연못에서 씻으라 하지요. 그 후 이 사람은 눈을 뜨게 되었고,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는 것입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질문.

이 대목을 읽고 우선 저는 아마도 예수께선 마음이 많이 아팠겠지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 구체적인 기록이 나온 건 아니지만 제가 믿고, 따르는 예수시라면 분명 그랬을 것 같습니다.

혹시 독자님께선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된 중국 장애인 예술단을 보셨습니까? 저는 이 다큐를 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주인공으로 나온 11세 소녀가 "엄마, 왜 나는 다른 애과 달리 보청기를 껴야해? " 라고 묻자 "넌 듣지 못하기에 이걸 끼는 거라 말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하던 엄마의 얘기 부분에선 더욱 그랬습니다.

내가 지은 죄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눈까지 멀어야 하는걸까요. 그것도 태어나면서부터 말입니다. 평생을 고통 받고, 또 무엇보다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을 견뎌야만 하며 무엇보다 내 자신을 비하하고, 부정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그 마음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바로 지금 예수의 제자들은 한 사람의 인생과 그 힘든 내면을 보지 못하고 죄가 누구의 것인지 지적 호기심이나 충족시키며 논쟁을 벌이려 하고 있습니다. 헛되고 지나친 공명심으로 스스로 눈을 가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회복시키는 예수

자, 예수는 '누구의 죄 때문' 이란 질문에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 때문' 이란 대답을 합니다. 하하, 정말 어이없지요. 태어나면서부터 눈 먼게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보이기 위함이라면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지요. 그러면 이 하나님은 너무나도 잔인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떤 좋은 말도 그 상황에 따른 적절성이 있는 법. 우리는 이 대답 역시 그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지금 예수가 하는 이 대답은 모든 병의 근원이 "죄" 때문이라 생각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말 죄 때문에 이 사람이 눈 먼 것이라면 이 장애인이나 그 부모는 천하에 몹쓸 죽일 놈이 되고 말 것 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지금 이 문제를 이 사람에게 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돌림으로 한 사람의 인권을 돌려주고, 하나님의 크신 일을 얘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는 그 후 바로 이 사람을 치료해 주게 됩니다.


욕심은 눈을 가리고, 입만 떠들게 한다

사람이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무엇이 삶을 '삶답게' 만드는 걸까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죽은 삶이 있고, 죽어도 죽지 않은 살아있는 삶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눈을 뜨고 있어도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눈을 감고 있어도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헛되고 지나친 욕심과 공명심은 우리의 눈을 가리웁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 진심을 왜곡시키게 됩니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예수의 제자들처럼 한 사람과 그 영혼을 보며 공감하고, 이해해주지 못한채 논쟁이나 벌리며 하는 우리의 못난 모습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요.

오늘 하루 스스로 눈을 어둡게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세상의 어둠을 밝힐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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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징기스칸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읽어 잠깐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유사이래 징기스칸만큼 영토를 확장한 왕이나 용장이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 군대를 이끌고 중국과 페르시아로 쳐들어갔고 많은 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그의 용맹스런 행위에 대해 이야기 했고, 세상에 그와 같은 왕은 없었다고들 하였습니다. 

그런 징기스칸이 전쟁을 끝내고 고국에 돌아와 있던 어느날 아침입니다. 그는 그날 하루동안 사냥을 즐기려고 숲으로 말을 달렸습니다. 많은 보좌관이 그와 함께 갔습니다. 징기스칸과 그의 사냥꾼들은 하루 종일 숲 속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많은 사냥감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날은 매우 무더운 데, 사냥은 이뤄지지 않고..징기스칸은 매우 힘이 들었고,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냥터를 해매던 중 어떤 바위 가장자리에서 물이 조금씩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징키스칸은 말에서 뛰어내려 물방울을 받으려고 작은 은컵을 바쳐들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목이 말라 더 기다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징기스칸이 막 컵을 입에 대고 막 마시려는 순간, 그가 아끼던 매가 갑자기 컵을 쳐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 더 그의 컵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는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렇게도 아끼던 매를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이 마른 징기스칸은 아예 물이 떨어지는 곳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샘을 찾은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샘속에는 독이 매우 강한 커다란 뱀이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징기스칸은 갈증도 잊은 채 자기의 성급한 행동으로 가엾게 죽어버린 매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우리네 삶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먹고 사는 것, 옷을 입는 것 등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정치인을 뽑을 때도 그냥 잘 먹고 잘 살게 하겠다는 사람을 뽑습니다. 아이들도 성적의 굴레에 얽매여 자신들의 생명을 맘껏 펼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맙니다. 사람이 사는 게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니고 아이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게 성적이 전부가 아닐텐데 우리는 이것을 전부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재물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으며 공부를 잘 하면 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즐기는 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요. 재물이 많다하여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고, 공부를 더 잘한다 하여 반드시 인생을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던 정치인은 오히려 다른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무것도 못 배우고, 시장 한켠에서 김밥을 파시던 할머니의 얼굴에서 인생의 깊이를 느끼고, 그 분의 기부를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곤 한다는 것입니다.

성급함과 욕심을 아예 지워버리거나 버릴 수는 없습니다. 또 이것 없이 세상을 사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허나 우리는 내 마음을 다스려가는 노력을 할 수 있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가치를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수는 있습니다. 바로 이런 노력과 실천이 인생의 행복과 여유를 만들어 주며 내 자신을 더 존귀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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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창 인기를 끌었던 '그 놈 목소리'라는 영화가 있지요. 자식 가진 부모 입장이 되니 예전과는 달리 이런 내용의 영화는 쉽게 손이 가지 않더군요. 하지만 새삼 유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며 '어쩌다 인정 많고, 사람 순하기로 소문난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가만보면 요즘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취급되는. 인간성이 유린 되는 이런 일이 여전히 반복될 뿐 아니라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일이 반복 및 증가하게 하는 사회 구조 역시 여전히 존재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욕망이 만들어 낸 것이겠지요. 두말 하면 잔소리지요. 모두 사람의 가치보다 재물 같은 물질이나 이데올로기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이 잘못된 사회제도와 분위기, 사고방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말아 버린 거지요.


2.성경은 이것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전통은 이런 가치관이 매우 강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못하고 우상을 섬긴다는 거지요. 물론 이런 전통은 신약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이 아닌 세상적인 것에 몰두한다는 겁니다. 그 핵심 원인이 바로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이란 겁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넣어주셨던. 공동체를 지향하고, 서로를 아끼던 우리의 인간성을 부끄러울 정도로 타락하게 만들어 죄악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는 거지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인정이 메마르고, 무시무시한 문제 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공기에 젖어 사니 공기가 있는 줄 모르듯, 죄악에 물든 세상에 사니 이게 당연한 건줄 알고 있는. 얼마나 우리가 죄에 무감각해져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3.성경의 핵심인 예수 역시 돈이나 명예를 쫓고, 이기심이 가득하여 선한 본성을 죄에 빠지게 하는 이 어이 없는 사회 분위기를 보며 그 사람의 존재 자체와 영혼이 귀하게 여겨지지 못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세상을 보며 "정신 차리라" 정확히 꾸짖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가 바리새인과 안식일 논쟁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요. 당시 바리새인들은 39가지나 되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안식일 금지조항, 정결규정으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백성들을 죄인이라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재물과 권력 즉,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유다의 지배권력세력과 체제>를 통렬히 꾸짖습니다. 안식일 마저도 자신들의 도구로 삼아 사람을 소외시켜버리는 이들을 향해 말입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이 꾸짖음은 사람, 인간성, 영혼이 사라진 종교, 사회로 대표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에게 가해진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10:14는 하늘과 하늘 위의 또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것 모두가 너희 하나님 야훼의 것이라 분명히 선언합니다. 철저한 하나님 중심주의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는 바로 이 <하나님 중심주의>가 의도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와 권력을 독점하려고 불의한 제도, 권력, 체제, 사회분위기에 맞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즉,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 중심에 그 가치가 있다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 사회를 보며 정신 차리라 아주 통렬하게 꾸짖을 수 밖에요..자기 스스로 사람을 소외시켜 가고, 굴레에 종속시키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정신차리라 할 수 밖에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 영혼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4.
우리는 흔히 신의 아들 예수.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그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는지는 소홀히 여기곤 하지요.

그래서 한국 교회 교인들하나님 중심주의내지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는 아주 열심이면서 이웃 사랑이나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 낮은 자리에 서는 데는 약합니다. 대형교회가 넘쳐나고, 대형고급차가 넘쳐나는 데 이웃을 섬기는 손길을 점점 줄어듭니다.

하나님 중심주의는 사람 중심주의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하나라는 거지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어려운 소외된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의 영혼을 보며 한없이 눈물흘리며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섬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좀 더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 잘 사는 자나 못 사는 자나 서로 존중할 수 있게 하려 애를 쓰게 됩니다.


5.물질 만능주의와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이 시대. 사람마저 상품이 되는 이 시대.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나, 존경받는 잘 사는 부족한 이 시대. 평화보다 전쟁이 더 많은 이 시대.

저는 <예수 알아가기> 라는 주제로 약 10회 정도의 글을 연재해 보려 하는 데요.

오늘 그 첫번째 시간.
김준태라는 시인이 ‘아무나 보듬고 싶다’라는 시기 참 다가와서요. 이 시를 통해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제 글이<예수님은 누구신가?!> 묻고, 기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아무나 보듬고 싶다

무식하게 정말 일자무식하게

사람이여 환장하게 좋은 사람이여


아무나 보듬고 설레이고 싶다


그리하여 더욱 아무나 보듬고


우리가 사람과 사람이라는 놀라움을


강물에 입술 적시듯 노래하고 싶다


생명이여 생명의 소중한 것들이여


이제 나는 아무나 보듬고 싶다


사람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이제 나는 아무나 보듬고 싶다


우리가 너무 깊이 보듬어


마음에 행여 가시가 박힌다손


육신에 행여 손톱자국이 머무른다손


생명이여 생명의 소중한 눈동자여


사람의 뼈는 하늘의 하늘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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