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형상 닮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2.12 세상을 섬기는 예수, 세상의 섬김을 받으려는 교회
  2. 2008.09.23 사람 중심 사고방식을 가진 예수 4



성경은
예수가 이 세상을 섬기려 왔다 합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내어 놓고, 죽기까지 사랑하며 섬기었다 증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런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자 메시아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고, 그를 세상에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처럼 세상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이러한 예수의 섬김을 함께 나누고, 따를 수 있도록 크게 세 가지 정도 정리해 나가볼까 합니다.


먼저, 예수는 직접 낮아지는 '발바닥 섬김' 을 하였습니다.


예수는 온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직접 걸어 다니며 '발바닥' 으로 섬긴 분입니다. 가만히 앉아 제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지적하는 게 아니었지요. 또한 '발바닥' 까지 내려 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몸소 낮아졌고, 누구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하늘에서 높아진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높은 자리에 올라 누구에게 지시할 수 있는 것을 "능력" 이라 합니다. 요즘은 교회도 그러지요. 낮고, 어려운 곳에 찾아가기 보다 은행 VIP 자리에 오르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 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건 줄 압니다.

물론 이렇게 외형적 발전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허나 그 속에 예수처럼 발바닥까지 내려가고,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섬기려는 정신이 있는지는 각 자 돌아봐야 한다는 거지요. 만약 교회진정 예수처럼 낮아져 세상과 이웃을 섬겨왔다면 지금처럼 "개독교"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두 번째로 가림 즉, 차별 없는 섬김이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는 세상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가난한 서민을 섬겼습니다. 세상이 모두 욕하던 사람들조차 섬겼습니다. 부정하다 여겨지던 사람들조차 섬겼습니다. 여자도 섬겼고, 이방인도 섬겼습니다. 그냥 다 똑같은 생명이자, 존귀한 존재라는 마음에 하나 같이 섬기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사랑과 조언, 비판을 하였습니다. 

요즘 우리와는 정 반대이지요. 요즘 세상은 멋진 옷과 좋은 차, 집을 가진 부자와 권력자는 정성으로 섬깁니다. 무슨 의원이나 상급 기관 관계자가 온다하면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이들은 그냥 쉽게 무시하고, 지나쳐 버리지요. 

교회도 그렇습니다.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힘이 잔뜩 들어가고, 발언권도 셉니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온 교인과 허름한 교인의 대우가 말은 안그런다 하지만 본인이 위화감을 느끼게 합니다. 헌금을 많이 내야 직분을 받으니 말이죠.

우리 스스로 좀 더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지금처럼 우리 안에 이런 어리석은 "가림"이 계속 존재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은총을 스스로 가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의 섬김은 이름도, 빛도 없는 "조용한 섬김" 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 하지요. 실제 예수 자체가 그랬습니다. 세상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냥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는 섬김이었습니다.
이게 원래 내 아버지께서 하시는 당연한 일이라는 거지요.

요즘 보면 뭐 그리 자신을 내보이려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이렇게 조용히 섬기는 게 당연한 일인 거지요. 그냥 말없이 하면 됩니다. 물질이 있으면 물질로 돕고, 요리 재주가 있으면 요리로 돕고, 운동이면 운동, 노래면 노래, 청소면 청소로 그냥 섬기면 되지요.

그런데 요즘은 뭘 하나만 해도 사진을 꼭 찍고, 현수막을 걸며 자랑 합니다. '기부를 얼마 했다..누구를 어떻게 도왔다' 난리 법석을 떱니다. 특히, 교회와 공직에 있는 분들이 유독 자주 보이지요.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했다고 자랑을 해대는 건지.


물론 아예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습니다만 과연 자신의 맘 속에 무엇이 들어있고, 무엇을 위하고 있는 건지 잘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입니다.



사실 세상을 섬긴 다는 것은 그리 쉬운 얘기는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섬김 즉, 자신을 먼저 닦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닦아 간다는 것..어렵지요. 그러나 동시에 섬김의 삶을 통해 인생의 더 깊은 배움하늘의 은총을 더욱 풍성히 누리게 되는 놀라운 역사도 있음에 우리는 용기를 얻고, 다시금 어려운 이웃과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 이름이 욕보이지 않게 하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더 깊은 영혼의 은총을 누리며 사는 데도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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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창 인기를 끌었던 '그 놈 목소리'라는 영화가 있지요. 자식 가진 부모 입장이 되니 예전과는 달리 이런 내용의 영화는 쉽게 손이 가지 않더군요. 하지만 새삼 유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며 '어쩌다 인정 많고, 사람 순하기로 소문난 우리 나라가 이렇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가만보면 요즘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취급되는. 인간성이 유린 되는 이런 일이 여전히 반복될 뿐 아니라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일이 반복 및 증가하게 하는 사회 구조 역시 여전히 존재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욕망이 만들어 낸 것이겠지요. 두말 하면 잔소리지요. 모두 사람의 가치보다 재물 같은 물질이나 이데올로기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이 잘못된 사회제도와 분위기, 사고방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말아 버린 거지요.


2.성경은 이것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전통은 이런 가치관이 매우 강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못하고 우상을 섬긴다는 거지요. 물론 이런 전통은 신약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이 아닌 세상적인 것에 몰두한다는 겁니다. 그 핵심 원인이 바로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이란 겁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넣어주셨던. 공동체를 지향하고, 서로를 아끼던 우리의 인간성을 부끄러울 정도로 타락하게 만들어 죄악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는 거지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인정이 메마르고, 무시무시한 문제 많은 세상에 살면서도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 착각하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공기에 젖어 사니 공기가 있는 줄 모르듯, 죄악에 물든 세상에 사니 이게 당연한 건줄 알고 있는. 얼마나 우리가 죄에 무감각해져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3.성경의 핵심인 예수 역시 돈이나 명예를 쫓고, 이기심이 가득하여 선한 본성을 죄에 빠지게 하는 이 어이 없는 사회 분위기를 보며 그 사람의 존재 자체와 영혼이 귀하게 여겨지지 못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세상을 보며 "정신 차리라" 정확히 꾸짖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가 바리새인과 안식일 논쟁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요. 당시 바리새인들은 39가지나 되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안식일 금지조항, 정결규정으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백성들을 죄인이라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재물과 권력 즉,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유다의 지배권력세력과 체제>를 통렬히 꾸짖습니다. 안식일 마저도 자신들의 도구로 삼아 사람을 소외시켜버리는 이들을 향해 말입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이 꾸짖음은 사람, 인간성, 영혼이 사라진 종교, 사회로 대표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에게 가해진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10:14는 하늘과 하늘 위의 또 하늘, 그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것 모두가 너희 하나님 야훼의 것이라 분명히 선언합니다. 철저한 하나님 중심주의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는 바로 이 <하나님 중심주의>가 의도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와 권력을 독점하려고 불의한 제도, 권력, 체제, 사회분위기에 맞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즉,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사람 중심에 그 가치가 있다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 사회를 보며 정신 차리라 아주 통렬하게 꾸짖을 수 밖에요..자기 스스로 사람을 소외시켜 가고, 굴레에 종속시키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정신차리라 할 수 밖에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 영혼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4.
우리는 흔히 신의 아들 예수. 예수의 신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그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는지는 소홀히 여기곤 하지요.

그래서 한국 교회 교인들하나님 중심주의내지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는 아주 열심이면서 이웃 사랑이나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 낮은 자리에 서는 데는 약합니다. 대형교회가 넘쳐나고, 대형고급차가 넘쳐나는 데 이웃을 섬기는 손길을 점점 줄어듭니다.

하나님 중심주의는 사람 중심주의와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하나라는 거지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어려운 소외된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의 영혼을 보며 한없이 눈물흘리며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섬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좀 더 정의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 잘 사는 자나 못 사는 자나 서로 존중할 수 있게 하려 애를 쓰게 됩니다.


5.물질 만능주의와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이 시대. 사람마저 상품이 되는 이 시대.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나, 존경받는 잘 사는 부족한 이 시대. 평화보다 전쟁이 더 많은 이 시대.

저는 <예수 알아가기> 라는 주제로 약 10회 정도의 글을 연재해 보려 하는 데요.

오늘 그 첫번째 시간.
김준태라는 시인이 ‘아무나 보듬고 싶다’라는 시기 참 다가와서요. 이 시를 통해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제 글이<예수님은 누구신가?!> 묻고, 기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아무나 보듬고 싶다

무식하게 정말 일자무식하게

사람이여 환장하게 좋은 사람이여


아무나 보듬고 설레이고 싶다


그리하여 더욱 아무나 보듬고


우리가 사람과 사람이라는 놀라움을


강물에 입술 적시듯 노래하고 싶다


생명이여 생명의 소중한 것들이여


이제 나는 아무나 보듬고 싶다


사람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이제 나는 아무나 보듬고 싶다


우리가 너무 깊이 보듬어


마음에 행여 가시가 박힌다손


육신에 행여 손톱자국이 머무른다손


생명이여 생명의 소중한 눈동자여


사람의 뼈는 하늘의 하늘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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