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회색빛 도심과 답답한 차안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약간은 센티해진 듯 한 기분이 들때도 그렇지만 일상에 지쳐가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맘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 한적한 교외로 나가거나 등산을 가는 것도 좋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음악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영혼에 평안함을 줍니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영혼을 날개짓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위트 있는 연주자의 말솜씨와 함께 한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지난 주 찾았던 이루마 콘서트는 바로 이런 두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약간 쌀쌀했습니다. 마치 자로 잰듯 갑자기 추워진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은 공연장은 추위마저도 녹여버릴 설렘과 들뜸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있었고, 흥분된 분위기였으며 저 역시 이 흐름을 굳이 거스르거나 태연한척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흐름에 자연스레 함께 하며 설렘을 안고 공연장에 들어섰습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종이 울렸습니다. 화면에 사막의 모래가 금빛물결을 이루며 흩날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건반소리가 들리면서 조명은 한 남자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루마의 등장이었습니다.



첫 연주곡은 익히 들어본 적 있는 친숙한 곡들이었습니다. 연주를 마친 후 인사하던 그의 모습은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라기 보다는 친숙한 옆집 청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수줍은 미소와 약간은 썰렁한 듯한 농담을 던졌지만 이는 어색함이라기보다 편안함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꾸준히 연주를 해나갔습니다. 연주 하나하나에 열정과 마음이 있었습니다.연주가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있을 때쯤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마음이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결혼 후 세상에 나온지 50여일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군대에 갔던 터라 그가 군대를 가기 전과 군대에서 느꼈던 감정이 마치 나와 같았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길 끝에는 내가 있을까" 라며 부르던 노래를 들을 때는 마치 다시 군대로 돌아간 듯한 끔찍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주자와 하나되는 소통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1부가 끝나고 2부의 마지막을 향할 때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몰려 왔습니다. 그의 앵콜 공연이 이 마음을 달래주었지만 공연장을 나서며 느꼈던 아쉬움에 비할바는 아니였습니다. 다시 이런 기회가 있으면 또 오겠다며 스스로를 달래보았고, 평안함과 기쁨이 충만함을 상기해보았지만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은 다시 공연장을 향하고만 싶었습니다.

얼마만에 다녀온 피아노 콘서트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덧 문화조차 즐길 수 없어진 나를 보며 세월의 흐름과 일상의 차가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연주가 평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공연을 통해 느꼈던 감동은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이루마 콘서트는 한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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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과실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해자 과실 100%, 둘째는 쌍방과실(과실비율은 다름), 셋째는 내가 과실 100% 일때 입니다. 대개 중과실 사고가 아닌 이상 첫째와 셋째보다는 두번째 경우가 많지요. 과실비율만 다를 뿐 대부분 다 쌍방과실이란 얘기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가 있습니다. 바로 내게 오는 분노 흥분이 그렇습니다.

가령 한 여름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쳐봅시다. 우리는 갑작스런 비를 맞으며 "아~오늘 되게 재수 없네"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늘을 욕하거나 땅에 침을 뱉지요. 하지만 돌아보면 하늘은 하늘의 일을 한거고, 문제는 이를 흥분하며 반응한 내게 있습니다. 괜히 아무 죄 없는 땅은 침을 맞게 된 것이고 말이지요. 

또 다른 예로 옆집에서 너무 시끄럽게 한다 쳐봅시다. 도저히 쉬지 못하고, 잠을 못 잘 정도로 시끄럽다 해봅시다. 자, 그러면 이 때 괴로운 건 누구입니까?  잘못은 저 시끄러운 사람이 하고 있는 데, 정작 피해를 당하는 내가 괴롭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끄럽다" 는 사실에 "괴롭고, 짜증난다" 는 내 느낌이 내 마음을 놓치게 한 것입니다.

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 때문에 흥분이 일어날까요? 과연 이게 꼭 상대방이 잘못해서일까요? 아니지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설사 상대가 문제를 일으켰다해도 내가 여기에 장단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해를 주는 행위 즉, 사실이 있었다면 이 사실을 사실적으로 풀지 못하고, 내 느낌이 이에 반응하며 흥분하고, 분노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억울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데 누명을 쓰거나 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과연 나는 이 억울한 감정으로 계속 힘들어해야하는 걸까요. 잘못한 사람은 저기 있는 데, 왜 내가 고생해야하는 걸까요.

내 마음의 흐름을 잘 잡아야 하는 이유가 이런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실을 보며 내 마음의 흐름을 잡아야 괜히 억울하게 분노하고,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아예 상대나 사건에 반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회피하고, 도망치란 게 아닙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내 마음을 놓치고, 분노하며 흥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사실로써 인식하여 사실로써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무 바빠서 여유가 없고 정신 없는 게 아닙니다. 내가 나를 여유 없고, 정신 없이 몰아치기 때문에 여유가 없고,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바쁘면 좀 더 빠르게 일처리를 해가야지 정신 없어 한다고 일이 빨리 해결되진 않습니다. 사실과 감정의 구분은 마음을 잡아가는 훈련의 첫걸음입니다.

오늘 이 글이 독자님의 삶을 더욱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평안한 휴일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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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분 정도 늦게 일어났습니다. 확실히 조금 늦게 일어나니 벌써 마음이 조급해지게 됩니다. 엑셀레이터를 좀 더 거칠게 밟으며 새벽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이내 곧 이렇게 가나 규정속도를 지키며 가나 거기서 거기임을 상기하며 다시 안정을 찾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아, 결국 2-3분 정도 늦게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참 재밌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무척이나 여유로웠습니다. 훨씬 어깨가 가볍고 출발할 때보다 느리게 가는 데 더 경쾌하게 달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상행길보다 10분정도 더 시간이 소요되고 말았습니다. 하하, 그러나 집에 도착한 저는 여전히 여유로웠습니다.

마음의 부담 때문이었겠지요. 스스로 제 자신을 급하게 몰아갔기 때문에 생긴 부담입니다.  결국 저는 5분 늦게 일어나도 2-3분 밖에 안 늦었고, 과속을 하며 달렸어도 빨라야 2-3분이었을 텐데 이 작은 차이 때문에 마음의 중심을 놓치고 평정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속박하며 몰아가던 것을 버리고 나니 하행길은 이렇게나 여유로왔단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삶의 환경과 다른 사람 등으로 인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깁니다. 항상 "탓"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내용이 있지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며 숨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하나님이 부르시지요. 그리고는 몇 가지 질문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때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참 재밌습니다. 서로 쟤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탓"을 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 결국 나 자신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역시 나 스스로 입니다. 내가 내 마음의 중심을 어떻게 잡고, 소화하느냐가 내 삶의 여유를 만들기도 하고, 나를 늙어가게도 만듭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님은 지금 어떤 마음이신지요. 그 마음의 중심을 잘 다스리며 삶을 만들어가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하루도 그 마음에 여유가 깃들고, 평안함을 만들어가시는 복된 시간들 되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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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말마다 부천, 오산, 잠실을 왕복하곤 합니다. 특히, 요즘은 오산에서 잠실까지 매일 새벽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제 옆을 강한 소리를 내며 총알처럼 지나는 승용차를 보았습니다. 분노의 질주를 하는 이 차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왜 인생을 이렇게 빨리 살려 하는걸까..'

여기서 자동차의 연비 얘기 잠깐 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승용차 연비는 시속 80km 쯤에서 가장 좋은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이 되면 점점 연비가 떨어지고, 특히 고속으로 넘어가면 급격히 연비가 나빠지게 됩니다. (관련글 : 내 차 연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이요. 이렇게 빨리 달려도 결국 대부분은 그 다음 톨게이트나 신호등에서 다시 만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규정속도를 지키거나 일반적인 도로 흐름에 맞추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거지요. 또 시간을 단축했다해도 10분 내외인 경우가 많더군요. 결국 연료를 많이 쓰고, 엔진과 여러 부품을 혹사하며 달려도 그만한 효율성을 내거나 만족도를 주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달리다보면 그 순간의 만족은 있을 수 있으나 그 종착역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고, 조금 더 빨리 앞서나간다해도 결국 누구나 늙게 되고, 죽음 앞에서 평등한 존재입니다.
 
너무 느리게 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굳이 이렇게 삭막하고, 차갑게 살 필요는 없겠지요. 다른 차량 사이를 파고들 듯 눈 앞의 만족을 위해 파고들며 사람 맘에 상처 줄 필요도 없을 겁니다. 서로 웃으며 얘기하고, 싸우면 다시 화해하고 또 다시 밥 한끼 먹으며 손을 맞잡는게 우리네 인생의 행복 아닐까요.

제 옆을 지나던 차량은 결국 톨게이트 앞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하이패스를 쓰고, 그 차는 쓰지 않았더군요..^._^;;
 
이 아침 이 글을 읽는 독자님과 저의 가슴에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바람몰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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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징기스칸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읽어 잠깐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유사이래 징기스칸만큼 영토를 확장한 왕이나 용장이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 군대를 이끌고 중국과 페르시아로 쳐들어갔고 많은 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그의 용맹스런 행위에 대해 이야기 했고, 세상에 그와 같은 왕은 없었다고들 하였습니다. 

그런 징기스칸이 전쟁을 끝내고 고국에 돌아와 있던 어느날 아침입니다. 그는 그날 하루동안 사냥을 즐기려고 숲으로 말을 달렸습니다. 많은 보좌관이 그와 함께 갔습니다. 징기스칸과 그의 사냥꾼들은 하루 종일 숲 속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많은 사냥감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날은 매우 무더운 데, 사냥은 이뤄지지 않고..징기스칸은 매우 힘이 들었고,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사냥터를 해매던 중 어떤 바위 가장자리에서 물이 조금씩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징키스칸은 말에서 뛰어내려 물방울을 받으려고 작은 은컵을 바쳐들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목이 말라 더 기다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징기스칸이 막 컵을 입에 대고 막 마시려는 순간, 그가 아끼던 매가 갑자기 컵을 쳐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두 번 더 그의 컵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는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렇게도 아끼던 매를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이 마른 징기스칸은 아예 물이 떨어지는 곳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을 찾았습니다. 마침내 샘을 찾은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샘속에는 독이 매우 강한 커다란 뱀이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징기스칸은 갈증도 잊은 채 자기의 성급한 행동으로 가엾게 죽어버린 매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우리네 삶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먹고 사는 것, 옷을 입는 것 등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정치인을 뽑을 때도 그냥 잘 먹고 잘 살게 하겠다는 사람을 뽑습니다. 아이들도 성적의 굴레에 얽매여 자신들의 생명을 맘껏 펼치지 못하는 삶을 살고 맙니다. 사람이 사는 게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니고 아이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게 성적이 전부가 아닐텐데 우리는 이것을 전부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재물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으며 공부를 잘 하면 더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즐기는 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요. 재물이 많다하여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고, 공부를 더 잘한다 하여 반드시 인생을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겠다던 정치인은 오히려 다른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무것도 못 배우고, 시장 한켠에서 김밥을 파시던 할머니의 얼굴에서 인생의 깊이를 느끼고, 그 분의 기부를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곤 한다는 것입니다.

성급함과 욕심을 아예 지워버리거나 버릴 수는 없습니다. 또 이것 없이 세상을 사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허나 우리는 내 마음을 다스려가는 노력을 할 수 있고,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가치를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수는 있습니다. 바로 이런 노력과 실천이 인생의 행복과 여유를 만들어 주며 내 자신을 더 존귀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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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출근길에 할머님을 모셔다 드리다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병원 신세인데요. 집근처 한방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당연히 치료도 전부 한방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전에 침치료를 하고, 물리치료를 합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부황을 뜨고, 오후에 침치료를 한번 더하고 있습니다. 침을 참 많이 맞지요? ^.^

제가 을 하도 맞다보니 침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우선 몸이 긴장해서 힘이 들어가거나 굳어 있으면 침도 잘 안들어가고, 참 아프더군요. 자연스럽게 몸을 풀어주고,  편안하게 맞아야 아프지도 않고 효과도 볼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네 인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너무 목에 힘을 주면서 살면 오히려 힘이 더드는 삶이 바로 우리네 인생인 듯 하지요. 또 너무 바쁘게 긴장해서 살면 더 힘든 것 역시 우리네 인생인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삶을 더 바삐 살고, 더 많은 돈을 벌때 능력이 있다하는 것일까요. 왜 더 높은 자리에서 기름기 넘치는 얼굴에 뻣뻣한 목을 한채로 검은 세단을 타고 와야 알아서 모시는 것일까요..

때론 자연스레 힘을 빼고, 자연이나 삶의 흐름을 타는게 얼핏 보기엔 좀 너무 여유를 부리는 듯 보이나 이것이 더 빠를 때도 있는 것 같지요. 너무 목에 힘을 주기보다는 좀 더 낮은 자세로 섬김의 삶을 사는 게 더 높임을 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저희 애한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이 너무 바쁘게 뛰지말고 걸으라는 것입니다. 또 울면서 큰 소리로 떼를 쓰지 말고 천천히 하고 싶은 얘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겨우 세살짜리이긴 합니다만 ㅋ 그래도 이 녀석..말을 천천히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서 좀 더 침착해짐을 느끼게 되더군요. 아이의 표현력도 더 좋아지는 것 같구요.

우리도 좀 더 낮은 목소리와 낮은 자세, 좀 더 천천히 여유있게 침착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면 저희 애의 표현력이 더 좋아지듯 우리의 삶도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이 시간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제 마음의 여유와 웃음을 보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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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론적 바탕과 경험에도 수익이 없었던 주식투자

제가 요즘 뜻하지 않게 주식투자를 좀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라 공부만 하고 실전경험은 없었더랬습니다. 공부하면서 모의투자만 좀 했었지요. 뭐 그 때 성적은 썩 나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실전은 좀 다르더군요.


투자 첫 달 제 수익은 0% 였습니다. 그냥 본전치기 했다는 거지요. 이게 지난 4월달 얘기입니다. 주식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시다시피 지난 4월은 상당한 강세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왠만하면 다 30% 이상 수익이 나고, 특정 테마주를 갖고 계신분은 2-300% 씩 수익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당시 0%라 하면 사실은 - 30% 이상이란 것과 같은 말이 되는 거지요.


강세장에서도 수익이 없었던 것은

제가 이렇게 된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급등주를 쫓아 고수익을 원하는 마음. 잠시를 참지 못하고 손절해버리면서 손실을 실현해버리는 마음. 마우스 위의 손가락을 잠시도 멈추지 못하는 바로 그 마음!! 즉, 여유를 갖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매매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5월달은 조금 전략을 바꿔보았습니다. 먼저 철저하게 기본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을 해보고 하루하루의 주가에 일희일비 하지 않도록 여유최우선으로 "장전" 하였습니다. 총알 즉, 자본금보다 중요한 여유를 장전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한달 투자를 해봤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별로 안좋았다면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요. 예, 현재 약 25% 이상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종목에 따라서는 70% 이상). 조급한 마음이 들어도 손가락을 묶어두고, 차 한잔 하면서 여유를 가져 보았지요. 때론 모니터를 끄고 하루를 그냥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수익이 생겼던 거지요.

정신없이 뛰지만 여유도 없고, 만족도 못하는 우리네 인생

사실 우리가 인생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너무 숨가쁘고, 바쁘게 사는 우리 이지요. 다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 그렇게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요. 정말 그렇게 일과 삶에 내 정력을 투자한만큼 충분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언젠가 신문을 보니 우리 나라 청소년들은 10억을 주면 가족도 버릴 수 있다 생각한다 합니다. 우리 나라 국민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뭐 거의 최하위권 수준이고 말이지요..

무엇이 행복한 삶이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가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돈만 벌고, 높은 자리에만 올라가면 된다 생각하는 풍조..세태..

참 안타깝고, 아쉬운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보면 더욱 그렇구요..



여유로운 삶이 맺는 열매는 투자대비 300% 이다!

여동생의 투자금을 받으면서 이번 투자를 통해 얻은 돈은 아예 '내 돈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여동생 입장에서는 돈을 집어 넣고, 가만히 앉아 벌었으니 불로소득이니 말이지요. 그래서 수익 중 일부를 반드시 좋은 곳에 쓰라는 의미로 얘기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신세만 지던 여동생에게 오랜만에 용돈을 주며 오빠 노릇 한번 하니 기분 좋구요.  여동생은 오빠에게 용돈을 받아 또 기분 좋고 말이죠. 좋은 곳에 기부도 하니 그 곳에서는 그 곳 나름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 더욱 좋고 말입니다. 

하~여유가 만들어주는 삶의 열매는 생각보다 참 큰 거 같지요? 따지고 보니 투자대비 300%가 나옵니다. 

좋습니다!  인생은 없이 산다고 불행한게 아니지요! 때론 산책을 하며 한숨을 돌려보고.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한번 더 생각도 해보고 말이지요. 그렇게 내 삶의 여유는 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바로 이런 삶이야말로 인생을 300% 더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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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난 번 운동하다 삐끗한 허리 재활 훈련을 위해 이틀에 한번꼴로 등산을 갑니다. 물론 등산이라 해야 그리 거창한 건 아니구요. 저희 집에서 조금 가면 나오는 성주산(하우고개) 약수터를 중심으로 한바퀴 돌고 오는 것입니다.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기는 너무 힘이 들고 해서 주로 퇴근 후에 가곤 하는데요. 야간 산행이라 비록 언덕 정도 규모의 산이지만 조심할 게 참 많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지요. 몸도 충분히 풀고 갑니다.
 

산에 오르니 참 좋았습니다. 밤에 TV를 보며 혼자 앉아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몸도 가벼워지고, 아픈 허리도 나아지고 말이지요. 날마다 약수를 떠가니 집에서 물을 끓일 필요도 없습니다~ㅋ


또 무엇보다 너무나도 고요한 그 적막함이 좋았습니다. 요즘 우리는 너무 복잡하고, 빠르며 시끄럽게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숨소리까지 들리는 고요함 속에 있으니 마음을 다잡는 데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산에 올라 잠시 도심을 내려다 보면 더 다가오곤 하였습니다. 어두운 산에서 보는 도심은 역시 참 시끄럽고, 바빠 보입니다. 자동차의 공명음이 하늘위에 떠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고, 시끄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환하기도 합니다.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사람의 눈은 어둠속에서 눈을 감고 쉬게 해주기도 해야하는 데, 하루종일 밝은 빛에서 부릅뜨고 살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 고문할 때도 보면 밝은 빛에서 잠 못자고 계속 눈뜨게 하는 게 그렇게 힘들다 하지 않습니까.


때론 우리 삶의 호흡을 조금은 길게 가져가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한 때 유행했던 것처럼 조금 더 느리게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조금 더 조용히 살아도 괜찮을 겁니다. 시력에 문제를 주지 않는한 조명을 좀 더 끄고 살아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를 통해 우리 삶에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면 말이지요.  


산중턱에서 찍은 시내의 모습이다. 이 때 시간이 대략 8시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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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여유로 산을 오른다

[LIFE]여유와 지혜의 장 2009. 2. 2. 10:55 Posted by 바람몰이

<등산이 가르쳐 준 지혜3>

지난 토요일 교회 아이들과 가볍게 등산을 했습니다. 초등 6학년부터 고1까지 총 5명이었는 데요.  장소는 제가 자주 가는 부천 하우고개였습니다. 모두 오랜만에 바람을 쐬게 되어 들떠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학생들은 방학도 방학이 아니니 말이지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등산로 입구에 섰습니다. 오늘의 코스를 확인하고 오르기 시작했지요. 아니 그런데 초등 6학년짜리 녀석 하나가 불쑥 앞서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평소 아버지와 함께 자주 산에 올랐다 하여 큰 걱정은 안했지만 너무 앞서간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약 15분여가 흐르니 본 대열과 만나게 되더군요. 지쳐서 '헉헉~'대는 녀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나오는 꽤 많은 계단 앞에서는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본 대열이 한참을 기다리며 가다서다를 반복해야 했지요 ^.^;;

그래도 참 착한 녀석들인 것이 웃으며 서로 기다려주고, 농담도 하면서 재밌게 정상까지 올라가더군요. 함께 길을 걸으며 하우고개의 명물 구름다리 앞에서 사진도 찍고, 정상에서 시원한 배도 한조각씩 먹어보았지요. 등산로 입구에서 떠놨던 약수도 서로 먹여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웃으며 산을 오르다보니 문득 우리네 사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잘먹고, 잘 살아보겠다 앞만보고 달려가지요. 그러면 한 동안 잘 나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한숨 돌리려 옆을 돌아보면 아무도 없지요. 내가 지쳐 쓰러질 때 내 손을 잡아줄 이가 없습니다. 한 때 내 곁에서 웃음을 날리던 이들도 내게서 올 이익이 없으면 그냥 흩어지고 맙니다.

참 허무하지요. 지금까지 인생 뭐 살아왔나 싶은 공허함이 오기까지 합니다. 안타깝지요. 젊음과 열정을 모두 바쳐 지금까지 살아왔는 데, 막상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내게는 허무함만 남는다니..


가만보면 등산의 고수는 처음부터 힘을 쓰지 않더군요.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산을 오릅니다. 

우리네 삶도 좀 그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너무 혼자서만 앞서가지 말고, 바람소리도 들어가면서.. 또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눠가면서..그러다 뒤쳐지는 사람 기다려주기도, 손도 잡아주면서 그렇게..뭐 이런 삶도 나쁘지 않을 테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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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다투고 난 뒤 마음은 늘 무겁다. 나는 꼭 싸운 후 '그게 화낼 일이었나?'를 스스로 묻곤 하는 데, 가만보면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닌 경우가 대다수여서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한 경우가 허다하다.

가만보면 우리가 사는 삶도 그런 것 같다. 그 때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질 것인양 불 같이 화를 내며 다투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일인 경우가 참 많다. 그리고는 '그 때 한번 더 참을걸..'이란 후회를 하곤 한다.

 
도대체 화를 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얘기를 듣다보면 정치부터 시작해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이유가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화가 나게 하는 이유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현상이 나이나 성별과는 별 상관 없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유치부 어린이부터 청소년, 청장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이유로 화를 내며-특히, 청소년, 청년 층은 입에 욕을 달고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다. 정말 그 일 때문에 내가 화가 난 것일까


사례1)한 여름 계속되는 장마를 경험할 때 우리는 뜨거운 햇살을 갈망하곤 한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장마가 끝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쬘 때 우리는 너무 덥다고 투덜대는 모습을 보인다.

장마는 그저 장마의 일을 하는 것 뿐이고, 햇살은 그저 여름햇살다운 더위를 내는 것 뿐인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며 화를 내곤 한다.


사례2)아이들은 뭔가 하나 갖고 싶기 시작하면 그것이 이뤄질때까지 떼를 쓰고, 화를 내곤 한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그것을 갖으면 그 때는 좋다 하면서도 이윽고 또 다른 것을 갖지 못해 화를 내곤 한다는 것이다.

어른도 그렇다. 내가 타고 싶은 차를 갖지 못하면 마음에서 불행을 느끼고, 내 능력과 현실에 화를 내기도 하는 데, 막상 그걸 갖고 나면 또 다른 것을 갖지 못해 불행을 느끼고, 화를 내게 된다

결국 진짜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보고, 반응하는 나의 "반응체계"에 있다는 것이다. 장마를 보고 짜증과 화를 내고, 더위를 보고 또 다시 짜증과 화를 내는 나의 반응체계. 뭔가 갖고 싶은 게 생겼는 데, 이걸 갖어도 또 다시 다른 걸 갖고 싶어 안달나버리는 욕심과 집착의 반응체계에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바로 이 "화"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당연히 배우지 못하니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도 잘 모르게 된다. 종교에서도 그저 화를 내지 말고, 온유하거나 그러려니 하라고만 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또 이런 "화"를 딱히 분출할만한 곳도 별로 없다. 겨우 있는 게 유흥시설정도이니 밤마다 우리의 거리는 취객과 구토로 만든 피자가 넘쳐난다. 

이래서 어디 사는 게 사는 것 같을까..몸은 망가지고,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가니 말이다. 사회는 묻지마 범죄나 이웃이나 가족마저도 살인을 하는 극단적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분노게이지가 차고 넘칠 지경인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사실 나 역시 운전을 하거나 아내와 대화를 하며 자주 화를 내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친절까지는 아니여도 화내는 횟수나 정도가 상당히 감소하는 걸 스스로 느끼곤 하는 데, 그것은 다음과 순서로 진행하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1.내가 화 내려 할 때 정신줄을 놓지 않고 그 순간을 스스로 깨닫는다.
  (아..내가 지금 화내려 하는구나..이런 식으로)


2.'지금 이게 화낼 일인가. 정말 화낼 일인가. 진짜 꼭 화를 내야만 하는가'라고 세번 묻는다.

3.내가 할 말을 한번 이상 걸러내어 내뱉는다. 

4.그래도 참지 못할 경우 속에 있는 말을 하되 반드시 깔끔하게 풀어내는 "화해"를 "먼저" 청한다. 


극도로 분노하는 경우 상대방을 공감하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상처를 줄 말이 가벼운 아픔으로 줄어들고, 가벼운 아픔이 될 말이 서로 이해할 수준으로 줄어든다. 서로 이해할 수준의 말은 원활한 대화로 마무리될 수 있다. 

분명 내 의지에 따라 "화"를 내는 내 "반응체계"는 조절될 수 있다. 이것은 "화"를 원활히 풀어내며 내 인생을 좀 더 여유있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러했다. 만약 내 의지가 약하다면 꼭 이런 노력을 하려하지 말고, 그저 '내가 화를 내는 구나..' 라고 내 몸을 느끼도록 해보자. 이것만으로 벌써 반은 성공한 셈일 테니 말이다. 

또한 이제는 우리 사회 역시 "화"를 다스리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좀 더 느낄 필요가 있다. 선진국처럼 학교나 직장내 전문 상담사를 배치하여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부담 없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건전한 문화공간 확보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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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나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수학 강사 생활에 제법 짭짤한 수입을 얻었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인기도 있었다. 학원생활을 접고 난 후에도 한동안 내 이름은 살아 있었다. 부천으로 이사한 후에도 안산, 화성, 수원 등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때 아내는 가장 힘들었다는 얘기를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 돌아오는 나는 늘 여유가 없었다. 집에서는 축 쳐져 있었고, 아내와의 대화는 갈 수록 줄어들며, 겨우 말문이 트여도 늘 짜증으로 마무리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었다. 아이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었다. 물론 당시 너무 어리기도 했지만 아빠 얼굴을 몰라 잠시만 안아도 울어대는 통에 내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이 때 나는 매우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정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물질 충족을 통한 여유"가 가장 중요하다생각을 하였었다. 이걸 놓치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고, 내일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물질적 여유 없이 마음의 여유가 쉽게 허락될리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님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이 모든 일을 그만 두었다. 물론 허리 수술 부위의 재발이 직접적인 이유였지만 이런 삶이 계속 되었다간 가정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또한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내 영혼을 바라보며 이것은 사람이 사는 삶이 아니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당연히 수입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부족분은 아내의 취직으로 충당하고 있다. 나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모습을 보며 미안함에 늘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아내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한다. 훨씬 더 여유로워진 내가 좋다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아이를 안아주며,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내가 더 좋다 한다. 비록 지금은 서로 주말부부로 떨어져 살고 있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한다. 지금 당장은 고생스럽기도 하지만 우리의 내일에 비젼이 있고, 희망을 볼 수 있다 한다.

나 역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의 이혼과정을 모두 봐야만 했다. 생선장사와 삯바느질로 날 키우시던 조부모님과 살아오며 찢어질 듯한 가난에 너무 힘들었다. 대학시절은 학업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뒤는 물론 옆도 보지 않고 달려온 인생이었다. 물론 지금도 내 결혼식조차 오지 않았던 아버님과의 관계 등을 비롯한 다양한 삶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그저 움켜 쥐려고만 하던 을 눈 딱 감고 놓아버리면서부터 찾아온 행복이고, 여유였다.


사실 사람 사는 게 별거 아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내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이와 함께 하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내 정신줄을 놓치 않고, 늘 꿈을 꾸며 살 수 있다면 그 속에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그런데 그걸 보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에 뭔가 자꾸 움켜쥐려고만 하면 문제가 생긴다. 돈을 움켜쥐고, 명예를 움켜쥐고는 도무지 놓으려 하지 않는다. 주먹도 계속 쥐고 있으면 피가 안 통해 하얘지고, 경련이 일어나는 법이다. 인생의 행복이란 게 마치 비누와도 같아서 강하게 움켜쥘수록 자꾸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나는 생각한다. 


어제 언론 보도를 보니 일가족 4명이 생활고에 시달려 동반자살을 했다 한다. 또 다른 어떤 기사에는 10억이 있으면 양심은 물론 가족마저 버릴 수 있다 응답한 이가 50%가 넘는 다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사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더 이상의 물질적 풍요가 아닌 여유와 행복을 채울 수 있는 "비움의 영성"이 아닐까.

블로그 메인에 올려놓은 가족사진. 우린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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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겪은 일이었습니다. 교회에 다녀오며 외곽 순환 고속도로를 탔는 데요. 평소 연비 등 문제로 늘 정속, 관성주행 습관을 들이려 노력하기에 시속 100킬로로 조용히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룸미러를 통해 범상치 않은 불빛이 하나 보이더군요. 점점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습니다.

오호~제법 좋다는 평을 듣는 그런 H사의 S승용차였습니다. 차 사이를 이래저래 비집고 들어가며 신나게 달립니다. 안전거리는 당연히 없죠. 차 뒤에 바짝 붙어 있다 틈이 나면 넘어가고 그러더군요.

한참 열심을 내더니 이내 제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속으로 뭔가 급한 일이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제가 그 차를 본 게 차량 합류지점이어서 더욱 그랬습니다.



허걱,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이 검은색 세단을~ㅋ

다음 요금소에서 만나버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번호판에 "허"자가 써있더군요. 렌트를 한 차라 하이패스가 없었나 봅니다. 그냥 얌전히 줄서서 요금을 내려 기다리더군요.

 
이걸 기억할 필요가 있지요. 우리 나라의 교통여건 즉, 신호가 매우 많고, 정체 구간이 곳곳에 숨어 있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과속해서 가봤자 결국 톨게이트에서 만나거나, 시내의 한 신호등에서 만나게 된 다는 겁니다. 결국 조금 빨리 도착해봤자 1,20분 내외인 경우가 허다하구요.

좀 더 여유를 갖고 운전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제 광고를 보다 보니 한국인의 빨리 빨리 근성때문에 급성장이 가능했다니 어쩌니 하는 말도 나오긴 하던데..동시에 그 덕에 빨리 빨리 사고율도 1등하고, 사망률도 1등하고 한 것도 사실이니 말입니다.

주변 경관도 보고, 가족과 대화도 나누면서, 또 호두과자 하나씩 먹여 주면서 다녀도 그렇게 늦지는 않습니다.


 '에혀..결국 만나게 될 것을..'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만 보면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아둥바둥 앞만 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뛴다 해도 결국 다 땅에서 만나게 되는 건 똑같지요. 이렇게 해서 뭔가 손에 더 잡는 듯 해도 결국 마지막에 가져가는 게 없는 것도 똑같습니다. 세상에서 좀 더 편하게 사는 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고 말이지요. 

어떤 목사님이 그러시더라구요. 물질이란 건 비누와 같다 말이지요. 더욱 많이 잡고, 놓치 않으려 꽉 잡으면 잡을 수록 빠져 나가는 것이라구요. 지금처럼 물질에만 눈이 멀어 살다가는 인생의 더 중요한 것을 잊게 될 때가 많습니다.

결국 내 인생을 어떻게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가가 중요한 거고, 기왕이면 더 의미 있게 사는 인생이어야겠다..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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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포기하며 얻은 것들

[LIFE]여유와 지혜의 장 2008. 6. 24. 10:17 Posted by 바람몰이

내가 다니는 직장은 집에서 약 3Km거리에 있다. 한동안은 차량을 이용해 주로 출퇴근 했었다. 밤까지 계속 이동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듭되는 무리한 일정덕에 5년전 수술한 디스크가 재발하게 되었고 나는 과감히 차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출퇴근 시간 걷기"였다. 재활운동을 꾸준히 해야하지만 계속 일을 쉴 수는 없었기 때문에 결정한 대안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아침잠을 줄여가며 좀 더 일찍 일어난다는 게 쉬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차량을 이용한 출퇴근에만 익숙해져 이 거리를 걸어간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참 재밌는 현상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는 30분-1시간되는 거리를 걸어다니곤 하였다. 그 때는 이 거리가 그리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았었다. 어느 덧  문명과 편리함에 길들여진 내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이런 결정을 내리고 출퇴근을 걸어서 한지 벌써 한달이 넘어 두달이 꽉 차고 있다.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차를 포기하기로 했던 첫 결정에 매우 만족하게 되었다. 차를 포기하는 대신 수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나는 건강을 얻을 수 있었다.

아직 디스크 재활에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생활에 불편함이 있다. 하지만 매우 좋아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더불어 살이 의외로 많이 빠지기 시작하고 있다. 몸이 가벼워지고 한 때 경계성 고혈압까지 올랐던 혈압 역시 매우 안정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근길 초반에 있는 자전거 도로이다.



두번째로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었다.

출퇴근시 이용하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에 있는 많은 풀벌레. 아침마다 내 마음을 깨워주는 새소리. 시원한 아침공기 등이 그것이다. 복잡한 도심 속에도 이런 소중한 생명이 있음을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이젠 내게 둘도 없는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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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중간쯤 있는 자전거 도로이다.


세번째로 생각을 정리하며 차분해 질 수 있었다.

도시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옆차와의 거리, 신호 등을 보느라 정신 없기 때문이다. 자칫 딴 생각을 하다 1초라도 출발이 늦어지면 뒤에서 난리가 난다. 하지만 걷기를 통해 나는 복잡한 내 맘을 정리해 나갈 수 있었다.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하니 생활이 정리되며 깔끔해져 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직장 앞에 있는 공원 조깅로 이다.


끝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침, 저녁마다 걸으며 자연을 벗삼게 되자 내 맘속에는 여유가 깃들기 시작했다. 주차 문제 하나라 얼굴을 붉히던 삶에 샘물이 적셔지게 된 것이다. 삶에 여유가 깃드는 것은 곧 내 인생의 만족도와 행복감의 증가로 이어졌다.

 
사실 가만보면 직장과 집 사이 거리가 그리 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약 3km를 걷는 데 25분 정도 소요되고 있다. 혹시 조금 늦으면 자전거를 타고 가면 된다.) 그러나 아침 시간에 20분 먼저 일어나기가 힘들어 걸어서 출퇴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웰빙을 외쳐대며 몸에 좋은 것을 찾는 것과는 배치되는 상황이다. 

약 두달여 동안 걸어서 출퇴근을 해보니 웰빙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웰빙의 삶을 꿈만 꾸지 말고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실천해 나가보자. 내 삶이 더욱 신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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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즐기는 여백의 미

[LIFE]여유와 지혜의 장 2008. 5. 20. 14:51 Posted by 바람몰이


어린 아이들이 인형탈을 쓰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 안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손을 흔들어대며 마음껏 웃음을 짓습니다. 뭘 특별히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한참을 이 모습을 보다 보니 문득 제 자신이 보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사람과의 만남에 '만남' 그 자체의 설렘과 기쁨이 사라지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만나곤 합니다. 또 무언가 내게 해주기를 바라거나 내게 무엇을 바라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벽을 쌓아두고 거리를 유지하려 합니다. 저 사람은 어떻고, 이 사람은 어떻다며 나도 모르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가며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졌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너무 찌들어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은 게 아닌 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계산에 익숙해지며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지요. 여유가 없으니 순수함이 자리할 틈도 없습니다.

또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던 생각도 납니다. 그 때는 강아지 자체가 너무 예쁘고 녀석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에 기쁨과 행복을 느꼈었습니다. 뭐 대단한 녀석도 아니고 그저 동네 잡종견에 불과했지만 복슬이라 부르며 예뻐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누가 거저 준다해도 싫다 합니다. 털빠지고, 똥치우며, 밥 줄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종자가 좋은 녀석이면 고려해본다 합니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세상에 너무 찌들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맞긴 맞나 봅니다. 그냥 계산만 해대며 계산기 같은 인생에 젖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속에 정체되고 동화되어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분명한 정신을 갖고 꿈을 꾸며 영혼의 호흡을 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과 세상에 찌든 나를 관망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가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내 영혼과 삶의 "여백의 미"를 즐길 필요가 있겠습니다.
단단하면서도 탄력있는 대들보가 있는 우리의 전통가옥은 쉽게 무너지거나 상하지 않지요. 내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복잡하고 정신 없는 이 세상과 내 삶에서 단단하면서도 탄력있는 대들보를 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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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몰이
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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