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문을 해준 노컷뉴스 기사를 모셔옵니다.

성폭력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교육부에서는 올해부터 초중고교 성교육을 10시간에서 15시간으로 늘리고 이를 의무화했다.

시간뿐이 아니다. 분명히 과거와 비교하면 내용이 달라졌다. 보건 교과서 등을 보면 남녀의 신체 차이와 같은 생물학적 교육을 넘어 이제는 피임 방법과 종류도 실려 있을 정도다. 확실히 과거보다 개방적인 지금의 청소년 성 문화를 반영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대규모 인원을 모아놓고 진행하는 일회성 강의, 형식적인 수업, 보건교사 부족 등 '양'에 비해 '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성교육을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떠한 관점과 내용으로 교육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성교육 전문가들은 "성 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을 반영한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여성 화장실이 남성 화장실보다 많은 게 역차별일까?

'성 인지적 관점'이란, 성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우리를 둘러싼 문화, 규범, 제도 등이 특정 성별에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관점을 말한다. 요즘은 주로 제도나 정책과 관련된 개념으로 시작된 것으로, 여성주의적 관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간혹 여성주의적 관점이 남성을 역차별한다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남성도 있지만, 그렇게 냉소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가장 쉽게 들 수 있는 사례가 공공 화장실이다.

야구장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의 화장실을 보면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변기 수가 같거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 이용 시간이 더 걸리는 여성의 처지에서 굉장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남성 역시 그러한 여성을 기다리다 지쳐버리기 일쑤다.

'성 인지적 관점'이 반영된 화장실은 여성 화장실 변기 개수가 남성보다 약 1.5배 많다. 이것은 역차별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좋은 결과를 도출했다. 여성은 오래 줄을 서지 않아도 되게 됐고, 남성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 것이다.

◇ '성 인지적 관점'이 부족한 성 의식

성교육 전문가들이 제도나 정책과 관련된 개념으로 시작된 '성 인지적 관점'을 성교육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성차별적인 구조와 문화에서 비롯한 성 역할과 권력관계가 지금 우리 사회의 성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고정된 성 역할을 살펴보자. 남자는 많은 여자를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취하고 성 경험을 갖는 것이 좋은 것이라 이해하고, 여성은 참한 여성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여성을 몰아붙이며 스킨십을 하는 장면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여성의 거부를 "안 돼요 돼요 돼요" 혹은 "싫어 싫어 싫어 좋아 좋아 좋아"라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직장에서 야한 얘기를 하는 직원 때문에 불쾌함을 표현하는 여성이 있으면 '속으로는 좋으면서' 또는 '괜히 내숭 떨고 있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이 자신은 피해자임에도 피해 사실을 숨기려 한다. 치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자신이 잘못해서 일어난 것과 같다고 느낀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밤늦게 다니느냐, 왜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셨느냐, 짧은 치마를 입어서 그런 것 아니냐" 책임을 전가하는 것 역시 2차 성폭력 가해인 동시에, 지극히 가해자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여학생들에게 "밤늦게 다니면 안 된다" "스스로 조심해라" 등의 교육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상은 서로 안면이 있거나 교제하는 관계의 커플에게서도 나타난다.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 구애 행위나 성 행동을 하는 것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남성 중심적 성격은 개별 커플에도 똑같이 작동하면서 늘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여성이 우월한 지위를 가져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거나 여성 중심적 구조를 가진 사회는 반대로 남성에 대한 여성의 폭력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 인지적 관점'을 적용하면 사회 문화적인 차원에서 이슈를 검토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과 관련한 문제 역시 '개인'의 선택과 책임 문제로 돌릴 수 없다.

◇ '성 인지적 관점'으로 본 성폭력

성폭력과 같은 성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곤 한다. 대표적인 게 ▲여성이 야하게 옷을 입어서 ▲ 성욕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 음란물 때문 등이다.

이러한 분석은 성 일탈에 대한 문제를 개인 차원으로 국한하는 것이다.

여성이 야하게 옷을 입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고 하면, 왜 여름이나 겨울을 가리지 않고 1년 내내,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계획된 성폭력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성욕 때문이라면 여성도 성욕이 있는데 왜 성폭력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남성뿐인지 설명이 안 된다. 음란물 때문에 성폭력이 증가한다면 모든 음란물 시청자가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님 역시 설명할 수 없다.

성교육 전문가들은 "오히려 성폭력은 사회적 지위가 약하거나, 나이가 낮은 이들을 돈이나 지위, 물리력으로 대해도 된다는 통념과 이를 재생산하는 구조와 연관이 깊다"고 말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 추문 사건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위계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폭력, 성매매 등 성교육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성 인권과 관련된 이슈들은 권력관계의 작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목소희 팀장은 "성 인지적 관점을 기르면 스스로 성 관련 결정을 할 때 작동하는 사회 문화적인 요소들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해줄 수 있다"며 "그래서 '나'와 관계없는 일이 아닌 우리를 둘러싼 요소들에 대한 '문제의식 기르기'에 대한 얘기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성 인지적 관점을 훈련하면 성별만이 아닌 계급, 나이, 장애, 인종, 지역 등등 권력에 따른 위계를 작동하게 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힘을 기를 수도 있다. 심지어 임신, 출산, 성 발달 등 생물학적인 과학 지식도 성 인지적 관점(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면 달라질 수 있다.

도움 :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자문 : 임정혁. 경기도 오산 거주. 7살, 5살, 2살짜리 세 딸을 키우는 딸바보 아빠. 전 화성여성회 성 평등 강사단 교육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법무부 법교육 출장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집·학교·교회 등 1년에 300회 정도 성교육을 하고 있다.


,

 

1. 이번 수원살인사건을 보면서 내내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선 피해 여성께서 돌아가신 것 자체가 너무 가슴아팠고요. 범인 오씨의 범행수법이 너무도 잔인한 것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를 힘들게 하였던 것은 이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수준 이었습니다.

처음 이 사건이 보도될 때 언론에서는 가해자 오씨의 말만 듣고 우발적 범행이라 보도하였습니다. 경기경찰청 역시 사건은 축소 은폐하면서 가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한채 사건을 파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거의 바닥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지요. 

2.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성범죄 가해자의 말을 듣고 범행일체를 파악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범행 패턴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를 이용하여 기본적인 인식을 하고, 그외 과학수사 기법을 통해 객관적인 자료를 보강하곤 합니다.  

만약 이번처럼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는 피해자의 증언을 들을 수 없기에 더욱 객관적인 자료를 중시하게 되지요. 특히, CCTV 가 있다면 이것은 아주 중요한 증거자료로써 여겨지게 됩니다. 그 외 범인의 DNA나 알리바이 등을 확인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이 사건에서 경찰은 cctv 와 목격자 확보 등에 소홀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가해자의 계획성과 의도성을 확실히 알 수 있었음은 물론 목격자 역시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사실 저같은 성교육 전문가나 민간단체 사이에서 상식 중의 상식인 명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폭행 사건은 십중팔구 계획된 범죄이다' 라는 것이지요. 성범죄 가해자의 80% 이상은 아는 사람의 소행이며 이들은 피해자의 나이나 직업, 외모 등과 상관없이 성범죄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가해자의 진술처럼 '우발적인 범행' 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건을 접근하는 자세부터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 CCTV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지요.

피해자를 수십조각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사람이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것을 믿었다면 정말 바보인 것이고, 만약 그게 아니였다면 의도적으로 사건은 축소, 은폐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4. 이에 경찰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접수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특히, 현장 경험이 많은 분들을 모시려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습니다. 일반 범죄의 경우는 현장 경험이 많으면 사태 파악이 잘 될 수도 있지만 성범죄는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범죄는 강력범죄입니다. 그러나 일반 강력범죄와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강도, 살인 등의 경우는 수사관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성범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피해자의 입장을 '공감'하는 것입니다.

성범죄를 이렇게 처리해야 하는 것은 그래야만 사건의 재구성이 가장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일시적으로 운이 없었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의 전 인격이 유린되고, 찢기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의 진술은 일관성을 갖기 어렵고, 신고 순간 자체에도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 경험이 많은 분을 모시는 것 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성인지능력을 높이고, 현장을 정확히 파악해 즉각적으로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 할 수 있겠습니다. 피해자의 비합리적인 대화를 받아들이는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현장 감각, 그리고 현장에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나가 되어야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5.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보도되었던 경찰의 미숙한 성범죄 대응을 보면서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분들의 열의와 정의감이 성범죄에 있어서 빛을 발하지 못할 때가 종종 보였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것도 문제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이 분들에 대한 교육에 소홀하고, 현장 출동 시스템을 명확히 구축하지 못한 경찰 수뇌부에 대한 지적 역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
BLOG main image
하늘바람몰이
시원한 샘물처럼, 상쾌한 숲 속 바람처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며 세 딸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봅니다.
by 바람몰이

카테고리

큰 머리 제목 (1160)
[성교육] 학교 교육용 영상 (0)
[LIFE]이 남자의 인생 (193)
[LIFE]몸짱 프로젝트 (21)
[LIFE]여유와 지혜의 장 (63)
[LIFE]육아 이야기 (3)
[교육]자녀교육 한마당 (73)
[안전] 안전교육 (49)
[안전] 응급처치 (18)
[성교육]생생 강의현장 (37)
[성교육]성교육 이야기 (177)
[성교육]낯설게 바라보기 (79)
[문화]방송,영화,격투기 (102)
[문화]신바람 자동차 (78)
[문화]블로그 인생 (24)
[기독교]하늘바람몰이 (87)
[기독교]변해야 산다 (35)
[경제]주식투자종목분석 (23)
[시사]세상살이 (82)
리뷰 아르바이트 (7)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TNM Media textcube get rss
바람몰이's Blog is powered by Tistory.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