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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2 누드와 사회-(4)
  2. 2007.11.12 누드와 사회-(3)
  3. 2007.11.12 누드와 사회-(2)
  4. 2007.11.12 누드와 사회-(1)
  5. 2007.11.08 교복 가격 비싸긴 비쌉니다. 2

누드와 사회-(4)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43 Posted by 바람몰이
 

3.음란과 폭력1)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은 “프리섹스는 오케이, 성매매는 노”라는 말로, 성매매 반대의 정치학을 요약했다고 한다. 여성주의자들이 포르노를 반대하는 것은 성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대개 포르노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를 정상화, 합리화하는 정치적 재현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정희진은 반대해야 할 것은, ‘음란물’이 아니라 폭력물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남한 사회는 폭력물은 무제한 허용하면서도, ‘음란물’, 특히, ‘성찰적 음란물’에 대해서는 낡은 칼날을 휘두른다는 그의 지적은 옳다. 지난 번 대법원은 미술교사 부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나체 사진에 대해 1심과 2심에서의 무죄 판결을 뒤엎고, ‘음란물’이라며 일부 유죄 판결을 내렸다. 시민사회와 여론은 “ ‘음란’ 여부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한가”라며, 법원의 판결을 강하게 비판했었다.

  그러기에 정희진은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는 누구의 자유인가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표현의 자유는 공동체의 민주주의와 창조성, 다양성에 기여하지만, 강자의 표현의 자유는 폭력의 자유에 다름 아니다2). 이번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 문제라기보다는, 재판부의 ‘음란’의 정치학에 대한 무지와 그들의 획일화된 신체관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미술교사의 작품은 외모가 계급이 되어버린 ‘몸짱’ 지배의 한국사회의 억압적인 몸 이미지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것인데, 재판부의 수준은 이를 ‘음란’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정희진은 지금 대한민국을 도배하고 있는 ‘쭉쭉 빵빵’한 젊은 여성의 누드는 ‘아름답고’, 배 나오고 처진(대부분 사람들의 몸) 벗은 몸은 ‘음란’한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이런 종류의 ‘음란물’ 제작은 더욱 격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성 연예인의 누드 모바일 서비스 같은, 주로 여성이 대상이 되는 규격화된 몸 이미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란 것이다.



참고)링크 프라이스에 소개된 건강,미용 사이트~!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더 추가되어야 할 폭력이 있는 데, 그것은 마치 ‘인민재판’식으로 몰고가는 언론의 선동과 네티즌의 마녀 사냥식 폭력을 말한다. 특히, 언론의 한 개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은 이미 그 한도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미디어 몽매주의에 따른 네티즌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두 말 하면 잔소리같이 여겨질 정도인 것이다.


1) 한겨레 신문 2005년 8월 7일자 정희진의 칼럼 제목을 인용


2)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할 말은 하는’ 신문들처럼, (지배 세력의)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보장된 사회라며 조소섞인 말을 하기도 하였다. 앞의 일자 칼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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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사회-(3)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42 Posted by 바람몰이

 

2.누드열풍의 원인은 무엇인가?

   2-1.과시본능이 만든 문화코드1)

  진옥현은 인터넷의 등장,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의 대중화 등으로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더니 이제는 누구나 쉽게 카메라 앞에서 옷 벗는 세상이 되었다며, 얼짱, 몸짱 열풍에서 누드짱으로 이어진 요즘은 자기만족을 넘어서 때로는 익명성마저 무시한 채 많은 사람이 자기 몸을 봐 주기를 기대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에게 관음증과 노출증은 정신병 증상이 아닌 성적 취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얼마 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등장한 셀프누드는 공개되자마자 2만여 명이나 다녀갔고 1촌을 신청하는 네티즌도 폭주했다고 한다. 자기의 미니 홈피에 세미누드를 올린 주인공은  누드를 예술 장르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얼굴도 가리지 않았다고 하니, 아무리 셀프누드 열풍이 거세다고 해도 전문 모델이 아닌 일반인이 누드를 공개할 때는 얼굴을 가리는 것이 상식인데 비하면 엄청난 파격이긴 하다.

 사실 인터넷의 성인 커뮤니티에서는 셀프누드가 활발하다. 성인 포털 사이트나 관련 인터넷 카페, 사진 갤러리에는 일반인 누드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장씩 올라온다. 물론 아직은 대부분 익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2~3년 전만 해도 몰래 카메라 중심이던 일반인 누드가 방문객을 늘리고 눈길을 잡기 위해 섹시 컨셉트에서 누드까지 확장된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여성들이 셀프누드를 찍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2). 반직업적 형태로 성 취향과 관계없이 자기 몸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알바형, 자기만족이나 화상 채팅에 중독된 여성으로 대표되는 과시형, 누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동경을 갖고 있는 신세대 젊은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는 모델형, 그리고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단지 남자 친구나 남편 등의 권유로 찍는 희생형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셀프 누드의 대중화는 화상 카메라의 보급과 더불어 사회 문제를 일으킨 음란 화상 채팅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일반인들의 호기심은 모바일에 공개된 연예인 누드 열풍으로 누드에 대한 인식마저 바꿔버렸다. 때로는 셀프누드 마니아가 음란 화상 채팅 등으로 수입을 올리는 반 직업이 되기도 한다. 또 애로 배우 매니지먼트사에는 연예인 누드 붐 이후로 누드를 찍겠다며 스스로 찾아오는 대학생, 직장인 등 평범한 여성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진옥현은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나르시시즘적인 취향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파악하며, 과시본능이 만들어낸 문화코드라고 보는 것이다.


 2-2.노출 불감증 "내 알몸을 봐"3)

  주간한국은 잠자는 부인·애인의 누드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처음엔 남자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었어요. 그런데 막상 인터넷에서 내 누드사진을 확인하고, 흥분된 리플들이 줄줄이 달려 있는 것을 보니까 묘한 쾌감이 느껴지더라고요.” 하는 한 여성의 증언을 인용한다4).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남자 친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의 알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에 담아 내고 공개하는 셀프 누드 마니아로 변모해 갔다고 말했다.

또한 주간한국은 화상채팅은 라이브 포르노라고 하면서 텍스트기반으로 이뤄지던 음란 채팅은 웹캠과 함께 1인 라이브 포르노 시대를 열었다. 누드는 물론이고 자위 행위 등을 서슴없이 공개한 소수의 여성, 일명 ‘쇼 걸’들은 누드 불감증을 확산키는 데 1등 공신이라고 하고 있다.>주간한국은 통계도 인용하는 데, 2003년 한 스포츠신문의 온 라인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46%가 셀프 누드를 찍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호기심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공개된 연예인 누드 열풍으로 인해 누드에 대한 거부감을 없앴다. 연예인도 누드를 찍는데 나라고 못 찍을 것이 뭐 있느냐는 식의 안도감은 물론 용기까지 준 것이다.

  또한 누드를 통해 월 15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한 여성의 예 역시 보도한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셀프 누드 마니아였다고 하는 데, 그녀는 호기심에 인터넷에 폰카로 찍은 누드 사진을 올려 놓던 중 우연히 화상 채팅을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남자들 반응이 재밌어서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수입이 좋아서 요즘엔 반 직업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에로 배우 매니지먼트사인 나은 엔터테인먼트의 이경민 대표의 전언은 더 적나라하다. 이 대표에 따르면 연예인 누드 붐 때문인지 누드를 찍겠다며 스스로 찾아 오는 대학생, 직장인 등 평범한 여성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는 것.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젊은이들의 미팅 현장에서는 셀프 누드를 찍어 핸드폰 속에 저장해 뒀다 상대에게 보여 주기도 하는 것, 사진 작가 J씨는 요즘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무료 누드 사진을 찍어 주고 있다고 하는 데, 처음에는 모델료까지 지불해도 구하기 어려웠지만, 요즘은 모델 구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즉, 다시 말하자면 주간한국은 “디지털 혁명이 세상을 하루가 다르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보수적인 한국의 성 관념마저 뒤바꿔버리고 있다.”라고 하며, 특히 인터넷의 등장,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의 대중화 등의 추세에 따라 알몸은 더 이상 감춰둘 수 없게 만들고 있고 그러기에 관음증과 노출증은 정신병적 현상보다는 이제 당당한 성적 취향으로서 더 강하게 다가오고 있으며, 몰카든 셀카(셀프 카메라)든 이미 통제 불가능의 상황이 된 “누드불감증 시대”라는 것이다.


 2-3.사회학적 접근

  셀프누드는 나르시시즘을 반영하는 과시본능이 만든 문화코드라는 것이 첫 번째  인식이었다. 또한 두 번째 인식은 노출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분석은 사회전반과 관련되어 있는 경제구조에 대한 몰이해와 이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예술의 장르에서 벗어난 여성의 몸을 상품화 하고, 돈벌이 한 수단으로써만 여기는 상업과 결탁한 남한 사회의 누드 열풍의 원인을 한 개인의 내면 문제로만 치부해버리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성산업의 발전에는 그만한 경제구조의 문제가 결부되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적 기초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을 함께 짚어 내야만 오늘의 성산업에 의해 왜곡된 누드에 관한 보다 생산적인 담론을 끌어 낼 수 있지, 이것을 단순한 개인 내면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은 오늘의 누드유행을 온전히 해명하지 못 할 것이다. 

 

  20세기에는 두 번의 성 혁명5)이 있었다. 먼저 1920년대의 1차 성 혁명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중 문화와 구애의 급진적인 방향 전환이 이루어진 데이트 혁명이었다. 1차 성 혁명 당시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하게 된 아메리카 자본주의의 상황과 관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산업적인 하부구조 건설을 위한 자본을 축척하기 위해서 더 이상 지속적인 노동 윤리 또는 금욕주의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자본은 소비자를 필요로 했다. 이러한 새로운 경제 질서는 여러 면에서 기존 규범과 충돌하였다. 특별히 대량 소비를 위한 광고는 성적 판매를 일상화하면서 성에 대한 태도를 변혁하였다. 성 산업은 사회 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였다. 성적 자유주의는 성을 상업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virtue'나 ’intercourse' 같은 개념을 성애화 하는 동시에, 성적 매력을 가리키는 ‘sexy'라는 신조어를 대중화 시켰다. 결국 성해방의 가장 강력하고 가시적인 모델을 제공한 것은 광고업자와 미디어였다.

   1960년대의 2차 성 혁명은 성적 자유를 가속화하였고, 핵가족의 가치 자체를 부인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독신자 혁명이었다. 이것은 여성이 성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며 시작되었고, 그 쟁점은 피임-낙태의 권리와 동시에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반대, 즉,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프리섹스’ 였다. 이러한 프리섹스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여성해방을 가져 왔다기 보다는 미디에에 의한 ‘성의 상품화’와 평행하고 있다.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문화 산업이 대항문화의 ‘해방적 수사’를 원용하고, 그 쇠퇴를 틈타 그것을 독점하면서, 역설적으로 포르노 산업이 창궐하였던 것이다. 이 배경에는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전 세계 경제 이윤율의 고도화 된 성장과 지속이 있다. 흔히 하는 말대로 ‘먹고 살만해지니 이것 저것에 관심이 많이 쏠리는 것’이다6).

  남한 사회의 경우는 1980년 대 중반 이 후 ‘3저 호황’을 통해 강화된 재벌 체제를 중심으로 계속된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bubble'을 형성하며 IMF까지 지속되었는 데, 특히, 95-97년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과잉축적은 6,70년대의 고도성장기의 지수적 자본성장률을 초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97년 IMF는 우리 경제의 결정타를 먹인 사건으로써 사실상 우리 경제의 'Bubble'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고, 사회전반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장하는 듯한 우리 경제는 이른바 'Belle epoque'로 상징될 수 있는 아메리카 경제의 이윤율 주기와 맞물려 진행되는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문화산업의 가장 활발한 성장이 가능하게 된 시기이다. 즉, 다시 말하면 하락하는 이윤율과는 상관없이 시장에 축적되어 있던 여유자금이 문화산업에 집중투자 되게 하는 것이다.

  남한에서 성 산업은 1980년 대 말 이후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이러한 팽창은 1970년대 이 후 발전 전략에서 외국인에게 국한되던 성적 착취 양식이 비공식 부문의 서비스 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일반화 되어 나타난다. 특히, 남한에서는 태국과 달리 성 산업이 외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내국인에게까지 허용된다.

  이러한 상업적인 성의 대중화는 우리 사회에서만의 독특한 경향을 띄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육체적 거래가 없는 성의 상품화 현상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경의 지적7)대로 성의 상품화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기준이 부재한 것이다. 따라서 성의 상품화로 파생되는 외설과 퇴폐라는 측면만 규제가 되는 것이 남한 사회의 현실이다.

  성의 상품화는 자본주의적 문화 산업의 불가피한 산물이다. 또한 성적 자유 또는 해방이라는 환상은 성의 상품화에 대해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기꺼이 공모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특별히 남한 남성은 공식적인 통계치로도 40배 이상의 상품화된 성을 서양 남성에 비해 이용하고 있다8). 서양의 성 혁명과 관련된 이데올로기 수입은 성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상황과 접목되면서 성적 무규범성을 가속화하고 있다. 남한 남성의 상품화된 성행위의 특징은 일본 남성의 가학적인 취향과는 성격을 달리 하면서도 연령에 관계없이 청소년기의 성적 모험에 가까운 성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누드열풍은 이러한 배경적 원인을 품고 있는, 과거의 에로티시즘의 이유 이상의 원인으로 인해 형성 된 것이다


1) 이 용어는 기업나라 객원기자인 진옥현이 사용한 것으로 기사제목은 “일반인도 벗기는 셀프누드 열풍”이렀다. 2005년 8월 16일자 보도이다.


2) 앞의 기사 발췌. 실제 주간한국 역시 아래의  2005년 3월 23일자 보도에서 셀프 누드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불러도 손색없게 되었다고 하며, 우리 사회의 셀프누드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먼저 알바형은 반직업적 형태로 성 취향과 관계없이 자신의 몸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경우다. 유흥가 접대부나 성 매매보다는 누드 촬영이 그나마 낫다는 인식이 있다. 연예인 누드의 대중화로 부담감이나 죄책감도 많이 사라졌다. 여대생에서부터 유부녀까지 그 대상이 폭 넓고 다양하고 모바일, 인터넷 누드 촬영이나 유료 화상 채팅 등의 분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작업의 특성상, 유료성인 화상채팅 아르바이트 등의 영역에 국한되기 일쑤다. 과시형은 얼짱, 몸짱 열풍에 기인한 우리 시대의 노출증이라고 할 수 있다. 돈벌이와 상관없이 셀프 누드 사진을 찍고 보여 주면서 자기 만족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다. 화상 채팅에 중독된 여성들이 대표적이다. 모델형은 누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동경을 갖고 있는 신세대 젊은 여성들의 욕망을 대변한다. 젊은 시절 아름다운 몸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논리다. 이들은 은밀하게 스튜디오를 찾아 온 뒤, 오히려 돈을 내고서라도 자신만의 누드를 남긴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섹시한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올리는 유형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희생형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단지 남자 친구나 남편 등의 권유로 인해 누드 이미지를 남기는 여성이다. <신문기사 발췌 및 정리>


3) 이 용어는 주간한국의 2005년 3월 23일자 보도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4) 보도에 따르면 30대 초반인 이 여성은 그렇게 침실에서 시작해 식당, 커피숍에서부터 심지어 사람들이 오가는 공원에서까지 성기를 드러내고 누드 사진을 찍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5) 제프리즈(Jeffreys, 1990, 1993)는 1980년대의 성 산업의 레즈비언 공동체로의 침투를 또 하나의 성 혁명으로 보기도 한다.


6)  'belle epoque'로 불리는 19세기 말 유럽의 상황은 실질적인 경제 이윤율은 바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으나, 이 때 시장에 풀려있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문화 예술 산업계에 투자됨으로써, 예술가들로 하여금 ‘풍요의 시대’라는 찬사가 나오게도 하였다. 이것은 70년대 이 후 미국경제의 사례 분석에서 좀 더 분명하게 제시되는 데, 실제 성산업이 가장 발전했던 70년대 대불황에서 90년대에 이르는 belle epoque는 5,60년대의 황금기를 거친 후 나온 장기파동에 후속하는 것이었다. 이 장기파동은 윤소영이 지적한 대로 체계적 축적 순환의 물질적 확장 국면과 금융적 확장 국면이었다. 이 때, 시장에는 상당한 자금이 퍼져있어서, 실제 경제적인 이윤율 하락 국면과는 별도로 문화산업이 창궐하는 시기와 연관되어 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본 보고서가 경제학 분석 보고서가 아니므로 생략하겠으니 윤소영 지음,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과천연구실 2001을 참조하라. 성 혁명에 관한 내용은 이미경 지음, <신자유주의적 ‘반격’하에서 핵가족과 ‘가족의 위기’-페미니즘적 비판의 쟁점들>,과천연구실 1999 윤소영 지음,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워싱턴 콘센서스’-마르크스적 비판의 쟁점들>. 과천연구실 1999 제1장 6절 ‘아메리카 핵가족의 형성’을 를 참조하라.


7) 이미경, 앞의 책,


8) 이미경, 앞의  책 p.76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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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사회-(2)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40 Posted by 바람몰이

 

1.접근과 추세

  1-1. 접근-예술의 영역에서는

 원시예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거나 조각하는 데서 비롯된 조형예술은 육체를 예술의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취급해왔다. 인간의 생명력과 움직임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육체 또는 그것 자체가 복잡 미묘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예술에서도 기술의 발달과 함께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이용하여 누드는 중요한 피사체가 되었다.

  이와 같이 예술의 영역에서 미적 대상으로서의 육체, 즉 작품화되는 나체의 전통이 그리스시대 때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반라 또는 전라의 육체에 직접 그림물감을 칠하는 보디페인팅도 이 누드의 전통을 확대한 것이고, 보디빌딩도 자기의 육체를 미화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예술적 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무대에서의 누드댄스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르네상스 이 후 남성 누드는 시간이 갈수록 그 수효가 급격히 줄어든 반면, 여성 누드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여성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기에 그 중심이 옮겨 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만은 않았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남성의 아름다움과 대등하게 바라보게 된 미술 쪽의 시각과 달리, 사회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불완전한 남성’ 취급을 받았다. 여성은 ‘하위의 성’일 뿐이었다. 변한 것은 여성미의 독자성을 발견하고, 여성 누드가 지닌 힘의 폭발성을 갈 수록 강하게 느꼈던 미술이, 누드 미술을 주체로 표현하는 미술에게 객체를 표현하는 미술로 변형시켰다. 말하자면 남성이 스스로를 찬양하는 미술로서의 누드 미술을 남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미술로서의 누드 미술로 바꿔버린 것이다.

  물론 모든 여성 누드가 에로티시즘의 목적을 띄고 있지는 않다. 특히, 중세의 누드는 순수함이나 헐벗음, 죄, 진실 등 다양한 상징성을 지녔고, 이 전통은 후대에도 어느 정도 이어져 내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에로티시즘은 여성 누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미술 속의 여성 누드가 취하고 있는 포즈만 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의 남자 누드처럼 ‘시선을 던지는 자’가 아니라 ‘시선을 받는 자’이다. ‘자기를 의식하는 자’가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자’이다. 즉,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1)이다.


 

  1-2.추세

 신라와 고려시대 일부에서 개방화됐던 우리 나라의 성문화는 조선시대 이래 유교적인 틀 속에서 오랫동안 보수적인 색채를 띠었다. 우리 나라에서 성과 누드가 공론화 된 시기는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 선두에는 연예인이 서있다. 1991년 가수 겸 영화배우인 유연실이 반라와 전라 등의 사진 81컷을 모아 사진집 ‘이브의 초상'을 펴낸 것이 시초. 이후 10여 년 간 모델 이승희를 비롯해 서갑숙, 성현아, 김지현, 권민중, 이혜영, 고소영 등 내노라하는 연예인들이 누드집을 출판했으며 매번 큰 충격과 함께 화제의 중심에 섰다. 최근 유명 여자 연예인들이 경쟁적으로 누드집을 내면서 우리 사회에 `벗기 열풍`이 불고 있다.

  성현아가 처음 온라인에 누드 영상을 공개했을 때는 사이트가 해킹을 당하는 수난을 겪으며 1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권민중의 누드공개에서는 해킹 위험이 적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서비스하면서 해외 화보집 제의를 합해 매출 규모가 50억원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현재 누드영상을 공개 중인 김완선은 기대치가 더 올라가 일부에서는 100억원대를 거론한다. 물론 모바일 접속자를 막연하게 추정한 수치여서 그다지 신빙성은 없지만, 그만큼 누드영상이란 콘텐츠의 경제 규모가 커졌다는 반증이다. 이혜영은 아직 누드영상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에 24억원을 받고 초상권을 판매했다. 이쯤 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다. 한번 벗었다 하면 수 십억의 매출이 오르고 인기도 높아지니 `꿩 먹고 알 먹는`셈이다. 옷을 벗는 행위가 일종의 사업이자 자신을 홍보하는 마케팅 수단이 된 것이다.

  몸값으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너나없이 누드를 찍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확실히 지금의 우리사회는 누드가 돈이 되는 사회이고, 섹슈얼리티가 이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세상이 달라지고 사회가 변하면서 `누드`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달라졌다. 그래서일까. 이제 누드 열풍은 더 이상 돈을 위해 옷을 벗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우리사회에는 각각의 이유로 옷을 벗고, 그 벗은 몸을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개인과 집단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대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돈을 받고 팔 것도 아닌 누드 사진을 돈을 들여 찍기도 하고, 셀프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공개하기도 한다.



1) 이주헌 지음 <신화 그림으로 읽기> 학고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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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사회-(1)

[문화]방송,영화,격투기 2007. 11. 12. 17:39 Posted by 바람몰이

  서 론
요즘 문화계의 화두 중 하나는 성(性)이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성과 관련한 원색적인 대사들과 불륜을 소재로 한 내용이 여과 없이 나오더니, 연예인들의 누드열풍이 일반인에게까지 전가돼 ‘누드 전국시대'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옷을 벗는 연예인들부터 시작해 누드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생활의 한 영역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성(性)의 공개가 이제는 표현의 자유 중 하나쯤으로 여겨지며, 보편화 되는 추세다. 옷과 사회적 통념을 입은 채, 은밀한 성은 최근 누드열풍 속에서 소통과 자유, 즐거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때로는 매춘과 상업화의 대상으로, 또 마케팅의 강력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성은 이제 일상이자 상품이며 자기과시의 강력한 무기로 바뀌었다. 몸값으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너나없이 누드를 찍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확실히 지금의 우리사회는 누드가 돈이 되는 사회이고, 섹슈얼리티가 이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제 누드 열풍은 더 이상 돈을 위해 옷을 벗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우리사회에는 각각의 이유로 옷을 벗고, 그 벗은 몸을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개인과 집단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들이 이렇게 옷을 벗고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 보고서는 최근 일고 있는 이러한 누드열풍이 본래의 예술적 관심과는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이고, 이러한 원인을 진단하고자 한다. 또한 이것이 품고 있는 사회적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대학시절 보고서로 제출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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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가격 비싸긴 비쌉니다.

[교육]자녀교육 한마당 2007. 11. 8. 13:16 Posted by 바람몰이



지난 해 였던가요..아니 지난 해 뿐 아니라 여러번이었던 듯 합니다. 9시 뉴스를 보는 데 교복값이 비싸다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실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부모님들과 상담해보면 비싼 교복값을 하소연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도 자식이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아이가 이렇게 건강히 자랐다는 뿌듯함에 기쁜 마음으로 사주게 되는 것이 우리네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것 역시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가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것은 교복값 안에 숨겨진 거품이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실제 언론보도에 의하면 교복업체끼리의 가격 담합은 물론 그 품질 조차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라 보면 될 듯 합니다. 부모님의 마음과 아이들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는 상술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유명 메이커를 붙인 고가의 교복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사달라고 하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끼리는 교복 메이커를 비교하며 자신을 과시하는 습성이 있지요. 심지어 같은 메이커 교복을 입은 친구들끼리-일시적이긴하지만-따로 모이는 경우까지 있으니까요. 자연스레 저가의 옷을 친구들은 자신감을 잃어가구요.

상황이 이러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내 자식 기죽이지 않으려고 아이들이 원하는 데로 따르게 되지요. 말하자면 뻔히 바가지이고, 거품인 걸 알면서도 사줄 수 밖에 없게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거지요.


저는 유통구조의 개선 및 옷 값 거품을 없애는 교육당국의 개선과 더불어 우리네의 자녀 교육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봅니다. 아이들이 이러는 것은 결국 부모님의 가정교육과 우리 사회의 문화가 만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외모를 중시하고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문화..말로는 이걸 비판하고 싫어한다 하면서도 결국 동경하고 따르고 있는 문화..물질에만 지극히 치우쳐 있는 물질만능문화..끼리끼리 뭉쳐대는 패거리 문화..그리고 이 모든 걸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갈 수 있도록 아이를 도와주지 못하고 그것을 종용하는 듯한 우리네 현실..

진정 아이를 위한 교육을 하려면 제 값을 하는 물건을 제 값을 주고 사올 수 있는 지혜를 기르게 가르쳐줄 수 있어야 겠지요. 과소비가 가져오는 폐해를 알고 아껴쓸 줄도 알면서 꼭 필요할 때 과감히 소비할 줄 아는 교육을 해야겠지요. 겉치장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에 그 속을 채워가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지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바르고, 건강한 정신을 갖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교육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비싼 교복을 원하는 자녀를 두신 학부모님께 이런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1.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게 무언지 가르쳐 주세요. 겉치장을 통해 예뻐지는 것과 동시에 그 속을 채워가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해 주세요.

2.두번째로 비싼 교복을 사게 됨에 따른 여러 결과를 충분히 설명해 주세요. 왜 교복이 비싸졌는지도 설명해 주시면 더욱 좋겠지요. 또한 비싼 교복을 샀으면 그 반대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 주시고, 저가의 교복을 샀을 때 역시 그 반대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 주세요.

3.끝으로 비싼 교복과 저가의 교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기회를 주세요. 그리고 그 선택을 존중해주세요. 이 선택의 존중은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책임있는 자세로 살아가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저는 교복 사는 순간을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방법을 깨우치는 귀한 교육의 시간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비싼 교복을 사도 소기의 성과가 있는 거지요. 이런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여 이 나라의 주축이 될 때 이 모든 걸 바꿔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닐 수 있게 될 테니 말이지요.

물론 가급적이면 선배의 것을 물려 입는 다거나 이름없는 중소업체의 교복을 사입음을 통해 소비를 통해 어려운 서민을 돕는 방법을 알게 하거나 물질을 효율적으로 아껴쓰는 방법을 알게 하는 것이 좋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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