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2.25 네가 기도 MP3 냐? 8
  2. 2008.11.25 예수는 왜 눈물을 흘렸나-(2-2)

네가 기도 MP3 냐?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9. 2. 25. 10:49 Posted by 바람몰이


오늘은 지난번 총론에 이어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는 첫 시간입니다. 먼저 저는 지난 번 언급했던 이사야의 말을 다시 들어보며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29:13)


이사야서는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되고 정리되었습니다. 흔히 신학자들은 이사야서를 세 부분으로 나눠 보는 데요. 이것은 제 1이사야서 부분입니다. 이 글이 작성되던 시기는 대략 바빌론 포로기 직전이나 초반쯤으로 보는 게 정설입니다. 

즉, 나라가 패망의 기로에 있는 매우 급박하고, 힘든 상황이었다는 얘기인데요.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치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심지어 직접 찾아오시겠다는 말씀까지 하신다는 점입니다. 아래 구절을 한번 살펴볼까요.

만군의 주님께서 너를 찾아오시되,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를 일으키시며,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태워 버리는 불길로 찾아오실 것이다.(사29:6) 

상당히 충격적이지요. 하나님이 이렇게 오실만큼 당시 이스라엘이 타락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타락했다는 건 무엇일까요. 그것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질은 이들의 야훼 신앙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이들을 노예와 나그네 생활하던 것에서 이끌어주시고, 그 어리석고 연약한 이스라엘 민중이 자기초월을 통해 출애굽 후 나라를 세우기까지 이끌어주신 야훼에 대한 신앙이 어느 덧 풍요를 쫓고, 허례허식이 가득찬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자기들의 어려운 시절을 잊고 교만에 빠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세상에 이런 모양새가 얼마나 심했으면 다음과 같은 말씀까지 올까요.


마치 굶주린 자가 꿈에 먹기는 하나, 깨어나면 더욱 허기를 느끼듯이, 목마른 자가 꿈에 마시기는 하나, 깨어나면 더욱 지쳐서 갈증을 느끼듯이, 시온 산을 치는 모든 나라의 무리가 그러할 것이다.(사29:8)


자,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내용은 기도에 관한 직접적 언급이 담긴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부분을 첫 글부터 강조하는 것은 바로 "진정성"의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저 때 당시 이스라엘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요. 끊임없이 더 큰 파이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그러나 아무리 파이를 먹어대도 허기를 채우지 못해 갈급하고, 굶주리는 모습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사업 잘 되려면 교회다니라는 분이나 교회를 인맥 넓히는 사교장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참 많지 않나요. 
 
우리의 신앙생활이란 것 역시 교회 출석과 새벽기도 참석같은 행위나 눈에 보이는 것에 상당히 신경이 가있지는 않나요? 내가 며칠기도까지는 해봤다..뭐 이러면서..나는 방언기도를 한다..뭐 이러면서 말이지요. 들리는 얘기로는 요즘은 무슨 방언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도 있다지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들은 말을 흉내낼 뿐이다" 라고 개탄해 하시는 하나님 앞에 그 속에 진정성이 있어야 하지요. 기도도 그럴 것입니다. 
 
중언부언 하듯 그저 양만 많이 늘려가는 게 아니라 한마디 기도를 내 뱉어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내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골방에서 주님과 1대1로 만나며 옷이 아니라 마음을, 재가 아니라 눈물을 뿌리는 기도야말로 진정성이 담보된 기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나 내 곁에 계시던 주님을 만나 그 은혜에 휩싸이게 되면 우리는 이기적인 내 자아를 넘어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며,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시는 또한 내가 가진 것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들에 핀 백합화처럼 솔로몬보다 더 영화로움에 감사할 줄 아는.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도를 닦는 "수도"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분명한 것은 주님을 만난 이들은 그 삶이 변화하였고, 그 핵심에는 바로 늘 진정성이 가득한 기도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자, 오늘 이 엄청난 교회와 신도수를 자랑하는 이 한국 교회가.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하고 주님만 따르겠다 하던 우리가. 한번쯤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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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왜 눈물을 흘렸나-(2-2)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8. 11. 25. 23:50 Posted by 바람몰이


예수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인가

그런데 예수가 만드는 평화는 흔히 말하는 현실의 삶을 무시한 내면이나 내세의 평화라기 보다 좀 더 적극적 의미를 품은 분명한 현실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예수는 온 몸을 투신해서 평화를 선포하고,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가 말하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적극적 개념의 평화를 갖고 있던 예수
먼저 예수는 구약 성경의 샬롬 신앙을 갖고 있었음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샬롬" 이란 직역하면 평화를 말하는 것인 데, 흔히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전쟁반대' 구호로 대변되는 전쟁부재, 개인 내면의 평화 등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옷을 빠는 것'이 아니라 '옷을 만드는 것'과 같은 창조의 개념입니다. 즉, 전쟁부재 상황을 유지하는 보존 활동과 질적으로 다른 '평화 부재의 상황에서 작업을 통해 비로소 평화를 이룩해내는 창조 활동'을 말하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평화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서 시작
예수의 이러한 평화는 예언자 이사야가 정의가 평화를 가져온다 이야기 하고, 시편 기자가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이야기 했듯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서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은 정의를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않으며,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라 합니다(렘22:3). 또한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생명을 구원하고, 도움이 없는 자를 건지고, 압박하는 자를 꺾는 것이라 합니다. (시72:4) 마리아의 입을 통해서는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고, 제왕들을 왕자에서 끌어 내리며, 낮은 사람들을 높이고, 주린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지금 정의가 없고, 착취와 부정, 거짓, 파괴, 양극화 만이 계속되는 예루살렘을 보며
평화가 없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강팍함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그 속에서 울부짖는 영혼이 보여 너무 가슴이 아프니 말입니다. 또한 이런 맥락 위에서 예루살렘에 도래할 하나님의 심판도 선포하고 하는 거지요.


정리 하는 글 : 우리 사회를 보면서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예수가 지금 이 사회를 본다면 또 다시 두번째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는 서민을 위한다 말은 하지만 정작 서민 눈에는 부자를 위한 정책 밖에 보이지 않고. 경제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양극화는 계속 심화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보다 냉혹한 입시의 경쟁에 빠져야만 하지요. 대북 관계는 지금 죽어가는 수만의 어린이와 동포를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는 갈 수록 더 늘어나고,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교회는 또 어떻습니까. 예루살렘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더 낫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어려운 세상에 대형 교회 목회자는 고급 승용차에 올라 타 있고, 교회는 세습의 대상이 되며, 낮은 자세로 섬기지는 못할 망정 은행 VIP나 되고 말이죠. 사회적으로는 일개 시민단체보다 도덕성이 낮다 평가 받고 있습니다. 종교간 화해와 사회 통합에 기여는 못할 망정 오히려 대립과 분열을 야기시키는 행위만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지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가 전하려 했던 그 복음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지향하던 가치와 노력을 받아 올 수 있어야 하겠지요. 예수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발걸음을 쫓아야 합니다.

바로 그럴 때 비로소 교회가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참된 공동체가 되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섬기며 화해의 사도가 되는 십자가를 충분히 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는 왜 눈물을 흘렸나-(2-1) 바로가기

예수는 왜 눈물을 흘렸나 (1)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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