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알리가 노래 '나영이'로 인해 많은 비난
을 받으며 급기야 공개사과 기자회견까지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알리는 본인의 아픈 경험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고, 팬들과 나영이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사실 그간 위 노래로 인한 많은 비난이 알리에게 쏟아졌던터라 왜 자신이 이런 노래를 들고 나왔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했더랬지요.


알리의 뜻밖의 고백은 정말 충격적이면서도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만한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알리와 관련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몇 가지 고민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불편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거지요.

우선 첫번째는 알리의 고백을 다루는 언론의 자세입니다. 알리는 자신이 경험했던 성범죄 피해사실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여성으로서의 치부', '여자로서 어려운 결정' 등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시선이 참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거나 소매치기를 당한다하여 그 피해자에게 치부가 되고, 흠이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집에 도둑이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유독 성범죄만큼은 피해자가에 더 큰 상처를 주곤 하는 게 우리네 문화입니다. 도대체 왜 성범죄 피해경험이 치부가 되고, 여성에게 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래서는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은 '환향녀'라고 부르며 냉대했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일본군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수십년간 혼자 가슴 아프게 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우리의 시선이 좀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을 향한 정절 혹은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이제는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성범죄 피해는 아동 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큰 상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성폭력 발생국가입니다. 2-3위권의 수준인데요. 반면 신고율은 세계 최저임을 고려할 때, 실제 발생비율은 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아동 성범죄는 공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분노와 달리 성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아서 같이 해놓고' 혹은 '평소 행실이', '밤 늦게 다니니까' 등의 통념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폭력 가해자에게 쏟아져야할 화살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넘어 갑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또 다시 자신의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영원히 침묵하며 살아야만 하지요.

피해자가 어떤 시간에, 어디에 있었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든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인 여성의 성범죄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당연한 원칙을 너무도 쉽게 잊고 말지요. 이러한 2차 가해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알리가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조두순 사건 이 후 수많은 나영이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영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피해를 숨겨야만 한채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 순간에만 들끓다 금방 식어버리는 현상 역시 반복되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사회적 반응 역시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말 이런 것들에 대해 분노했다면 이와 관련한 대책을 온전히 수립해야겠지요. 그러나 조두순 사건 이 후 우리가 만든 것들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cctv 확대설치와 화학적 거세가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허나 cctv가 아무리 많아도, 화학적 거세가 시행된다 겁을 주어도 여전히 성범죄는 활발히 일어납니다. 

성범죄의 심각성만큼이나 우리 사회가 침착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키라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아이들을 안전한 환경에서 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번 분노만 하다 금방 식어버리는 모습이 아닌 뭔가 일관성 있고, 지속성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알리가 미숙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아픈 경험만큼 나영이와 그 가족을 위한 좀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하더라도 이 부분까지 무마되는 것은 아닐 겝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그 메시지만큼은 우리가 잘 붙잡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함께 몇 몇 주제를 고민해보며 성범죄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자세가 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유독 여성에게만 특히, 성범죄 피해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정절 혹은 순결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어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향한 2차 가해를 줄이고, 보다 근원적인 성범죄 예방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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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까지는 아니더라도 호르몬제 주입으로 성욕을 감퇴시켜 성범죄율을 낮추자는 취지로 나옵니다. 지난 번 조두순 사건때도 강하게 제기되었고, 이번 김길태 사건(가제목, 이하 김길태 사건)에서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써 성범죄와 피해자(또는 생존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요.


성폭력은 성충동을 제 1원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우선 성폭력에 대한 얘기부터 좀 해야겠습니다. 성폭력은 상대방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습니다. 흔히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으로 구분하곤 하지요. 그런데 이는 단순히 성욕이나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치부해서 원인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성폭력이 일어나는 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충동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 많은 사건이 매우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양성간 위상 또는 지위 등 평등문제와 더 연관이 깊다는 것입니다.

제가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자, 사무실에 여자 사장님과 남자 부하직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 사장님이 매우 아름답다 해봅시다. 그러면 성충동을 제어못한 남자 부하직원이 여자 사장님에게 성희롱이나 추행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해고될 수 있는 직접적 부담이 있기 때문이지요. 허나 반대로 남자 부하직원을 향해 여자 사장님은 부담없이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미스터 k, 오늘 셔츠 섹시한데~"


징벌적 차원의 화학적 거세로는 성폭력 예방이 어려워

자, 그렇다면 우리가 화학적 거세를 하자는 처음의 이슈로 돌아와 봅니다. 우리가 이를 시행하자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는 이들의 성욕이 성범죄에 주요 원인이고, 이것을 줄이면 성범죄가 줄 것이란 기대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요.
 
만약 예쁜 여성에 대한 성욕이 성폭행의 직접적 원인이라면 우리는 영아로부터 8-90대 노파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성폭행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노출이 잦는 여름에 더 많아야하는 데, 꼭 그렇지도 않음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많은 남성들이 잠재적 성폭력 범죄자란 매우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성충동은 충분히 제어가능하지요. 저는 제어불가능하다 하는 남자를 본적도 없고, 만약 그런다면 우리 나라는 지금 성폭력으로 넘쳐 나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지요. 대부분 선량한 남성들은 성충동 제어를 할 수 있고, 또 교육이나 치료를 통해 그렇게 만들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잔혹한 범죄가 있어야만 관련 법률정비와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쏟는 걸까요. 저는 조두순 사건이 후 나영이 등과 같은 어린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잘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 수없이 존재하는 어른 나영이 즉,
성인 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전무함보았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조두순 사건을 모두 끔찍하게 기억하고는 있으나 이 역시 얼마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속에 잊혀지며 우리는 아무런 제도도 정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김길태 사건이 터지자 또 다시 나오는 얘기가 징벌적 성격이 짙은 "화학적 거세"입니다. 화학적 거세를 떠나서 우리는 성폭력에 대한 예방교육과 관련 대책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앞으로 또 다른 김길태, 조두순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러니 제가 씁쓸할 수 밖에요. 분명 이쪽일을 하는 사람으로써 이런 관심과 사회적 분위기가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거라 생각되지만도....그 원인을 짚어내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친 처방을 내려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며

저는 이 안타깝고, 끔찍한 사건을 통해 우리가 좀 변했으면 합니다. 우선 관련제도 정비를 해야합니다. 꾸준한 예방교육은 물론 피해자에 대한 지원책이 잘 서야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피해자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나 이것만을 강조하면 국가의 책무성에 대한 부분이 사라지게 됩니다.

두번째로 감정적 차원에서 징벌적 요구를 하는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피해자(또는 생존자)를 동정적인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이들은 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관련제도 정비 후 법에 따라 분명하게 처벌 및 교육, 치료를 해가야하는 것이지 우리 감정에 따라 죽여라 살려라 한다면(그 울분과 안타까움은 이해되나)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체계와 토대를 만드는 것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

덧1) 부족한 글이 다음 메인에 실렸습니다.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허나 화학적 거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 논의가 진행되는 듯 하여 아쉬움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양깡님의 "조두순 사건, 화학적 거세가 정답일까?" 가 가장 쉽게 잘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덧2) 이 글은 1편만이 아닌 후편이 하나 더 기획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업로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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