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신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2.13 한국 교회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다 23
  2. 2009.02.06 예수가 '대형교회' 지어달라 한 적 있나? 8
  3. 2007.11.08 창조 이야기-(2)


본질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

저는 개신교인이지만 카톨릭의 성인들이 지닌 삶의 자세와 신앙을 존중합니다. 그 중에는 성 발렌티노도 있는 데요. 성 발렌티노는 가난한 과부와 고아를 돌보던 성자라 불리던 사람이지요. 그래서 그를 기념하며 나눔을 실천하게 되었는 데, 그것이 바로 발렌타인 데이의 기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본질은 온데간데 없고, 초컬릿 회사의 상술만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정말 성 발렌티노가 알면 가슴을 칠일입니다.

저는 교회도 그렇다 생각합니다. 교회가 그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질이라 함은 예수께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던 바로 그 정신을 얘기하는 거지요.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교회가 어떻게 본질을 잃어버렸다는 것인지 과거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과 비교하며 정치, 경제적 측면 위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 가판을 뒤엎었는가

예수는 자신이 직접 교회를 세운 적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 당시 예루살렘 성전체제에 철저히 저항하고, 거부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성전이 그 고유한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1.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사람, 물자, 돈, 권력이 집중된 곳이었는 데요. 먼저 예를 들어 희생제물용 짐승 판매를 보면요. 이것은 성전 광장에서 활발히 이뤄지곤 했었는 데요, 예레미야스에 따르면  이러한 가축 판매는 대제사장 가문의 소유였었습니다또한 성전세를 보면요. 모든 유대인은 반드시 지불해야할 것이 바로 성전세인데요. 매년 반세겔 이상을 내야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것 역시 고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 의하여 관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입된 자금은 바로 제사장 귀족과 그 후손들로 임명된 이들에 의해 관리되는 데요. 이는 결국 제사장 귀족들의 정규적인 수입 및 독점으로 연결되었고, 이것이 너무 심한 나머지 남아 도는 돈으로 오늘날의 은행 같은 역할까지 수행하게에 이르렀습니다. 

한번 돈 맛을 보니까 끊임없이 세를 강요하고, 이것은 결국 자기 가문끼리 나눠먹고 말이죠..


2.정치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정결과 부정, 유대인과 이방인, 율법 수호자와 죄인 사이의 차별을 야기시키고, 이러한 차별합법화 시켜준 종교적 토대였습니다. 또한 성전체제 지배자들의 정치 권력의 지지기반이었구요.

이 때,
 영악했던 로마는 바로 이 체제와 권위를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을 위시한 제사장 귀족들을 통하여 팔레스틴 내에서 로마 제국의 식민체제를 한결 수월하게 굳히는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가난하고, 억압받는 유대백성의 자리가 아닌 국가권력의 자리에 서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왔다는 것입니다.

3.또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며 믿는다 하여 같은 민족끼리도 싸우고, 잡고, 죽이고..

자, 상황이 이러하니 예수는 성전을
비판하고, 뒤엎을 수 밖에 없었지요. 이것은 본질적으로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아닌 물신을 섬기는 것에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때문에 수많은 가난한 유대 민중들이 억압과 착취를 당했기에 예수에게는 매우 중차대 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곳은 기도하는 곳이라 일갈하였던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비판 받는 몇 가지 사례

오늘날 교회가 비판 받는 가장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과 예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비교해보기 위해서입니다.

1.먼저, 돈과 교회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일단 딱 떠오르는 것이 "헌금강요"이지요. 물론 교회에서는 "강요"란 표현을 싫어합니다만 설교 시간 내내 헌금얘기를 하니 강요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특히, 그 항목이 워낙 많아서 말이지요..


여기서 잠깐 기복신앙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지요. 대개 헌금 기도할 때 보면 물질로 더 채워달라 합니다. 십일조 더 많이 내게 해달라 하지요. 그리고는 물질을 많이 내놓으면 이것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다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믿는 건지 풍요의 신 맘몬을 믿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되지요. 하나님이 거지인가요.

2.두번째로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때론 국민과 국가가 충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중재자가 되어야지요. 때로 권력이 자신을 절대화하는 과오를 범하게 되면(독재시절과 같이) 교회는 국민의 편에 서서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자유와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지켜내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러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촛불집회 때 사탄의 무리 운운한 것이 누구였나요. 지금 용산참사를 보며 발목 잡는다 하는 건 또 누구인가요. 예, 다 기독교인지요. 

관련글을 옆에 링크해두오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종교와 정치와의 관계>

3.그 밖에교회가 사교판이 되고, 부자가 교회세습 하는 것, 교회 사고팔기나 신도 갈취 문제, 끊임 없는 싸움과 분열 등도 있지만 너무 길어질 듯 하니 더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제가 너무 부정적인 것만 보고, 일부의 문제를 다수일반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인가요? 예,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가 말하는 것은 분명 존재했던 "FACT" 이고, 현재 한국 교회는 이것때문에 매우 많이 그것도 아주 심하게 비판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며

오늘날 한국 교회와 과거 예루살렘 성전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별로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교회에 돈이 모이고, 권력과 결탁해가는 것, 사교판이 되며 끊임 없이 싸우고 분열해가는 것 등까지 너무도 비슷해 보입니다.

이래서는 안되지요. 한국 교회 변해야 합니다. 신도 늘리기, 큰 교회 건물 올리기, 국민에게 사탄 운운하기, 타 종교와 갈등일으키기, 자기들끼리 싸우다 분열하기 등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가 목터지게 외치던 그 거룩한 곳은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내 몸을 치장하기보다 더 어려운 곳에 거하며 나눠주기를 즐겨하고, 이 나라와 민족 세상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곳.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해 아무도 쓴소리 하지 못할때 분연히 나설 수 있는 그 곳.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가 짊어진 고난의 십자가를 따르는 그 곳. 뭐 이런 게 좀 더 성경이 말하는 교회에 가까운 모습..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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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에 사로잡힌 위기의 시대


1.소로스는 "인간 고유의 가치들을 화폐적 가치들이 대신하는 병든 현상"이라며 지금의 시대를 위기로 진단하기도 하였습니다. 마르쿠제나 월러스틴은 이렇게 한 극단으로 치닫는 사태는 종말적 파국에 이르게 되는 인간, 사회, 역사체제의 변증법적 마비상태를 초래한다 보기도 하였습니다. 장일조 교수(한신대 철학과)는 오늘날 우리는 물신을 갖다 앉히고, 당장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영혼, 육체까지 병들어 더 이상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름을 개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요. 사실 제가 이런 어려운 말을 굳이 갖다 붙이지 않아도 오늘날 물신주의의 팽배에 따른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음을 우린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물질적 욕망 때문에 우린 이렇게 위기의식을 갖고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소유"가 "삶"을 보장할 수는 없다


2.예수는 물질의 소유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이 분명 양식이 필요하고,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물(物)" 독점하거나 절대화 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사실 이같은 예수의 생각은 구약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25)"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 땅이 하나님의 것이란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과 하늘 위의 또 하늘 모두가 너희 하나님의 것이라 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분명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였지만 그것을 함부로 독점하거나 마치 자기의 것인양 해서는 안 된다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랬습니다. 부자청년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명하였고, 곳간에 많은 것을 보관해 안심하고, 먹고 마시려 하는 자에게 어리석은 사람이라 꾸짖었습니다.

이것은 '소유'가 '삶'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생의 깊은 성찰물(物)을 절대화 하지도 말고, 혼자서만 먹으려 하지도 말라는 준엄한 성경의 전통 위에 서있는 예수의 확언입니다. 


사도행전을 봐도 그렇지요. 어떤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자기 자신과 하나님을 속이고, 물질을 움켜쥐고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들에게는 심판이 임했고, 성경은 이것을 기록함으로써 신앙의 교훈은 물론 물질에 얽매여 절대화 해서는 안됨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신주의에 빠져버린 한국 교회


3.하지만 오늘날 교회를 보면 이런 예수의 가르침과 성경의 전통이 사라지는 듯해 매우 아쉽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우상으로 자리 잡은 물질, 물신주의거부하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서 지친 자들에게 위로나 지혜를 주지 못합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여기에 편승하며 앞장서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교회"입니다. 도대체 그 가격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대형교회를 보며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나 크리스챤의 축복이라 생각하는 일반인이 얼마나 될까요.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화려한 고급 승용차를 들 수도 있겠지요. 저는 "말" 이 아닌 "나귀" 를 타거나 직접 걸어다녔던 예수를 생각하면 이게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님은 경차나 준중형 차를 타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생각하시는 건지 어떤건지..

교회가 은행의 VIP가 되어서는 무얼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VIP가 되려면 섬김의 VIP,나눔의 VIP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굳이 전문적인 신학 얘기를 안 해도 이게 좀 더 교회다운 모습 아닌가요.

예수는 이런 대형교회를 원한다 한 적도 없지요. 크리스챤은 낮은 곳에 거하라 했지 고급 승용차를 타며 VIP 대우나 받으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축복을 물질로 받으려 하는 것은 풍요의 신 맘몬이나 바알을 섬기는 것이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십자가 고난의 길을 따르는 기독교 전통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예수는 들에 핀 꽃 한송이를 보고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입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들사람처럼 산다하여 영화롭지 못 한 것도, 행복하지 못 한 것도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비움의 영성"이 아닐까


4.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만큼 풍요를 누린 적이 또 있었을까요. 하지만 동시에 지금처럼 이 물질때문에 힘들어하고, 삶의 위기를 느낀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여전히 눈 앞에 있는 이 물질적 풍요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며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뭔가 다른 가치와 이 삶을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줄 수 있는 곳은 종교의 영역 밖에 없습니다. 허나 또 다시 안타깝게도 이 종교마저도 이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특별히 오늘 얘기하고 있는 기독교는 이에 앞장서는 듯한 인상까지 풍깁니다.  

한국의 기독교 변해야 삽니다. 그래야 비기독교인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지탄이 되고 물의를 빚어서는 기독교도 살 수 없고, 비기독교인도 스트레스 때문에 짜증나 못삽니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한국의 기독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대형교회의 건물 올리기나 신도 채우기가 아닌 "비움의 영성"을 채워가는 것이 아닐까요.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1.이 글은 제가 가져왔던 나름의 생각을 총 3회 기획하여 연재할 글의 2편입니다. 앞으로 3회 동안 저는 모두 함께 고민해볼 수 있도록 전문신학영역까지 들어가지 않고, 평이한 수준을 유지하며 글을 연재해보고자 합니다. 

2.가끔 오해하는 분이 계시는 데요, 저는 특정교단 등 집단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 위인도 못 됩니다.

3.상대에게 험한 말을 하는 등의 악플은 사전공지 없이 삭제처리 하고자 하오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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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이야기-(2)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11 Posted by 바람몰이

  앞 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와 그 이치에 대해 짧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과 하늘의 세상에서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삶의 방향성을 찾고 구원 받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인간답고, 땅은 더욱 땅 다우며, 하늘은 더욱 하늘답게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제 눈에는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심지어 크리스챤마저도 물질적인 생활에 종속되어 이것이 전부인양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기도할 때 물질의 축복을 더해 달라 하지요.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물질적으로 비대해져 이제는 각 은행이 대형교회를 알아서 VIP로 모신다 하지요. 목사님들은 고급 대형 승용차를 몰고 다니시구요. 마치 말로는 주님을 섬긴다하지만 실제로는 물질을 더 섬기는 것 같아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얼마나 시장의 논리에 휩쓸려 살고 있으면 이제는 “시장이 하나님이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요. 교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져 이제 세상은 아무도 교회를 신성하다 여기지 않습니다.

세계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수탈하며 부를 누리는 일종의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지요.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여전히 불균형한 상태이구요
1). 우리네 정신세계는 전 세계에 몰아닥친 왜곡된 해체주의적 물결에 휩쓸려 이제는 허무주의만이 가득하고 오히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눈에 확실한 것을 보여주며 대중을 선도하는 포퓰리즘을 추종하는 것만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2차 대전이나 황우석 사건 같은 것은 그런 대표적인 예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정신을 연구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인간답게 사는 법을 공부하던 철학을 비롯한 각 종 인문학이 사라질 지경입니다. 그리고 실용성만을 추구하며 오로지 먹고 사는 데만 유용한 것을 학문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2).

문화는 어떻습니까. 문화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정화시키며 그 사회의 수준을 끊임없이 살아있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란 것은 돈의 논리에 완전히 잠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전락하여 일반인은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는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돈을 동원해 많이 팔리거나 전문가라는 사람이 방송에 나와 소개해주면 고급문화가 되고 몇 만원에서 몇 십 만원을 지불해야만 누릴 수 있는 그런 형국입니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을 통해 인간의 말초적인 신경만을 자극하는 포르노 산업만이 꾸준히 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 인류의 문화가 얼마나 추락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3).


1)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홀로 짝이 없이 있는 것을 보고좋지 않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자를 잠들게 하고 그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 대목은 가부장제나 남존여비 사상 정당화에 많이 동원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자나 남자는 한몸에서 나와 만들어졌고, 하나가 되어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우리 속담처럼-“일심동체”의 신앙적 증언인 것입니다.


2) 어째서 이런 것만이 쓸모 있는 것이란 말입니까.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를 모르는 돼지에게 진주를 안겨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매우 비싼 고급 외제 승용차를 몰면서도 저질스런 운전매너를 갖고 있는 분들을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이치 아닌가요?


3) 심지어 인간의 영혼과 사랑의 교류가 없는 무분별한 성행위마저도 인간의 본능이라 가르치는 포르노 산업과 이에 이용되는 각 종 미디어는 정말 할말을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본래 섹스란 것은 종족의 번식을 위한 동물적 본능. 즉, 생득적 능력입니다. 여기에 정신적 동물인 인간은 그 속에서 고차원적인 사랑과 영혼의 교류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창조과정과 사랑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십시오. 그 어떤 동물이 오로지 쾌락만을 위해 성행위를 한다는 말입니까. 오로지 인간만이 합니다. 이것이 각 종 포르노를 중심으로 한 성산업의 발달과 맞닿으며 아무런 감정교류가 없는 특히, 남성의 판타지 충족만을 위한 성행위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인생을 사는 게 고달픈 겝니다. 주님의 뜻이라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곳이니까요. 에덴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양새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교회에 가 평안을 찾으며 본향을 갈 생각만 하게 됩니다. 또 여러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족과 재산, 인간관계까지 모두 잃어 갑니다. 그저 죽어서 천국가는 게 구원이라 여기는 거지요.


  사실 구원이란 그렇게 단순한 얘기는 아닙니다. 세계의 신학이 설명하는 구원만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모두 지적하는 분명한 것 하나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구원받은 기쁨의 삶이 되지 못하고 죽은 후에야 구원받는 것은 진정한 구원이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지요. 죽었던 나사로의 삶을 바꾸셨고, 우물가의 여인의 삶을 바꾸셨으며 모두에게 돌팔매질 당하던 여인의 삶 또한 구원받은 삶으로 바꾸셨던 겁니다. 삭개오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그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 나라로 충만하여 자기가 거짓되게 거둔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까지 하였지요.


  결국 온전한 신앙생활이란 이 땅에서의 내 삶 또한 구원받은 에덴의 삶이 되게 해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늘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함께 말입니다. 세상을 두개로 구분하여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 등으로 단정 지어 보지 말고 말입니다.   


   사실 얼핏 보면 세상은 땅과 하늘, 영혼과 육체, 이상과 현실 등으로 구분(이원화)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의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문화는 더욱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의 하나님 한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은혜 속에 있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전일적 세계체계”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것은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어떻게 육체 없는 영혼이 있을 수 있고, 영혼 없는 육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몸이 아프면 정신도 약해지는 것이고, 반대로 강한 정신을 갖고 있으면 약한 육체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지요. 바울 역시 부활은 영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육체의 부활이 있다하였고 우리 예수님께서 바로 그 첫 열매가 되었다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간단한 이치입니다.

   

   이제 두 번째 창조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는 고운님이여. 우리는 죽어서만(!) 본향1)에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땅 역시(!) 본향처럼 살아 갈 수 있어야 하지요. 더욱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 정직하고 바른 삶을 살아가며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추종하는 물질적 가치는 멀리하고 아둔해지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을 둘로 보지 말고 하나로 온전히 통전시켜 나갈 수 있는 화해와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히브리 사람들은 죽음을 미화하지도 않고, 신성화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부정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떨어져버린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그냥 잠자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것도 지하세계. 즉, 스올에 내려가서 말이지요. 스올이란 하나님의 영이 비취지 않는 곳 이구요. 하지만 주님의 사람들은 훗날 부활할 때 신령한 몸으로 모두 일어나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바울 사도의 증언이구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옥에 가는 것과는 조금 다른 거지요. 사실 지옥이란 말 자체가 불교 용어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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