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에 임신을 하냐 혼후에 임신을 하느냐로 논쟁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임신의 시점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임신에 관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가 핵심일 것 입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이냐와 양육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1.저는 지난 10여년간 교육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수많은 학부모님과 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동안 제 경험을 돌아보면 '애어른'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나이는 많이 드셨지만 부모님으로서 자녀교육을 위한 준비가 잘 안 되어 있는 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거지요.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이 없으니 교육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러니 본인은 안 하면서 아이들에게 무언가에 대한 강요를 하고, 학원으로 아이를 돌리게 됩니다. 아이들은 스트레스에 너무도 힘들어 하는 데 자신은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부족할 지라도 부모님의 의지와 철학이 아이를 다른 인생으로 만들어 갑니다. 반대로 아무리 경제적 풍요가 있어도 부모님의 의지와 철학이 없으면 아이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혼전에 임신을 하든지 혼후에 임신을 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지난 10여년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스스로 준비되지 않았다면 임신에 주의를 기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무턱대고 아이를 낳으면 끝나는 게 아니지요. 아이만 있다고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아닙니다.

2.예전에는 혼전에 임신을 하면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지요. 요즘은 아이가 혼수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요즘도 그런 성향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혼전이냐 혼후냐가 임신의 본질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임신의 시점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냐는 데 있겠지요.

연예인의 혼전 임신 문제도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아이인지 한순간 실수라고 생각하는 지에 따라 아이의 삶과 부부의 결혼생활이 달라집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임신이 되어야 그 아이가 사랑 속에 태어나게 되지요. 결혼식은 하나의 의식으로서 할 수도 있고, 안 할수도 있는 것일 겝니다.

물론 공인으로서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도 관점을 달리해서 볼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가' 아이와 상대방에 대한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통해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와 성관계와 결혼, 아이에 대한 여러 대화를 나누고, 성가치관을 다잡아 갈 수도 있겠지요. 

혼전에 임신을 할 수도 있고, 혼후에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임신을 위해 서로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고, 한순간 실수가 아닌 사랑으로 맺어진 결실이냐입니다. 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혼후에 임신을 해도 매우 힘든 결혼생활이 되고, 아이의 삶도 힘들어 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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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한 환상은 있어야 됩니다. 앞으로 수십년을 살게 될 삶인 데,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에 대한 꿈이 있어야지요. 저희 부부는 이를 위해 참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끊임 없이 대화하며 준비하였지요. 그리고  그 성과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인생관이나 자녀교육, 양쪽 집안에 대한 의견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 다섯가지만 골라서 함께 마음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카드, 캐피탈 회사의 압박

경제적인 부분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살림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지출해야하는 곳이 너무도 많지요. 예전에 차량 할부금 결제일을 한번 놓친 적이 있습니다. 깜빡 한거지요. 그랬더니 세상에 그 다음 날부터 엄청난 전화가 오더군요. 그리고 바로 카드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휴~할부금을 곧바로 냈지만 카드는 일주일이나 있어야 회복되어 참으로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지요. 제가 말씀드렸듯 결혼 후 경제적인 문제로 다퉈보지 않은 부부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가족이 먹고 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 기준이 높을 수록 현실에 불만이 많이 생긴다 생각합니다.


이 접시를 깨뜨려 말어~ 결혼이란 환상의 접시!



2.딸아이의 아픔

아이가 아플 때 겪는 아픔은 예습되지 않습니다. 공부로는 알 수 없는 뭔가 좀 더 깊고, 오묘한 가슴이 금가는 애절함입니다. 흔히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말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요. 특히, 그것이 내 잘못 또는 부모의 잘못 때문이면 더 할말이 없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큰 애가 어린이집 안가고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전업주부 생활을 할 때였는데요. 시원하게 '그래, 오늘은 아빠랑 있자!'라고 했었습니다. 하루 종일 우리 부녀는 재미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잠시 제가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며 컴퓨터를 하게 되었는데요. 갑자기 비명 소리와 함께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딸아이 앞으로 전신거울이 넘어졌던 거지요.

딸아이의 상태는 말이 아니였습니다. 다행이 거울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 틈에 손가락이 끼어 손가락이 절단될 뻔 하였지요. 그 작고 여린 손을 수술하고, 수술에 지쳐버린 아이를 보던 기억은 제 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습니다.(관련글 : 10분간의 방심이 딸아이 손가락을...)


3.아내의 삐짐

흐흐흐, 이건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사실 많은 남편들이 아내가 왜 삐졌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남자 또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게 왜 삐질 일이냐는 거지요. 그리고 때론 화날 일이 없는 데,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며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지 않지요. 아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을 해도 남편은 듣지도 않고, 결국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이 사람하나 믿고 살아가는 데, 이게 뭔가 싶기도 합니다. 

부부간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고, 많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부분이지요. 평소 대화가 있어야 서로 배우자 탓만 하지 않고,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서로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해주려면 이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저 대화하고, 이해해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 부부 결혼식은 양성평등 결혼식으로 모교 예배당에서 진행되었다.




4.익숙함 그리고 긴장감 제로

연애시절 제가 부부사이에 있어 갖고 있던 가장 두려웠던 부분입니다.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버리면 어떡하나...아무런 긴장감도 없어 그냥 사는 인생이 되어 버리면 어떡하나...제가 이런 기준으로 삼고 있던 게 바로 "방귀"입니다. 이걸 스스럼 없이 트는 순간 우린 부부 또는 연인이 아닌 그냥 '가족'이 되어버린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 지금도 저는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익숙함 속에 서로를 향한 더 깊은 신뢰와 우정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사랑이란 떨리는 감정은 길어야 3년밖에 안되는 호르몬 작용이란 점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데, 그것을 넘어서는 게 바로 신뢰와 우정이란 것입니다. 

저는 지금 결혼 5년차인데요. 다행이 아직은 설렘이나 사랑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조금씩 서서히 신뢰와 우정을 함께 쌓아가는 것 같습니다. 혹시 독자님께서는 결혼 몇 년차이시고, 어떤 노하우를 갖고 계신지요.(댓글을 통해 지혜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5.꿈의 사라짐-그냥 사는 인생

개인적으로 (아내와 자녀를 모두 내려놓고 봤을 때)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저는 결혼생활을 하며 제 꿈이 사라지고,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삶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꿈이 없는 삶이란 마치 회색빛 삶과도 같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꿈이 있고, 이를 이뤄가며 최선을 다해가는 삶에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두려워만 하니 참 피곤하더군요. 이걸 싫어한다하여 변하는 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두려움을 나에 대한 반성의 지점으로 삼고 매일 자신을 발견하며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스스로 제 꿈을 버리고 그냥 사는 인생이 되어버린다면 아마 아내는 물론 아이들도 매우 속상해할 것입니다. 아빠 또는 남편의 살아있는 눈빛 속에 가족의 희망을 볼 테니 말이지요.

필자가 결혼식 순서를 만들 때 넣었던 그림이다. 푸른 꿈을 잃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자 하는 맘을 담았다.



결혼은 현실이란 말도 있고, 아예 미친 짓이란 말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부부가 어떻게 얼마나 노력하는 결혼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에 따라 현실 속에 여전히 환상이 살아있고, 미친 짓을 넘어 행복함이 있다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리 많이 미리 준비해도 결혼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허나 이것마저도 내 자신과 부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게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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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자는 한 여인과 결혼을 약속하고, 지금은 신혼의 달콤한 오늘과 내일을 꿈꾸며 지내고 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도 했고, 살림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나갔던 필자는 어느 아파트 한쪽에 버려진 작은 교자상과 책장을 보았다. 또한 동네 형님과 함께 돌다 냉장고와 와 작은 고가구를 발견하였다. 곧 필자는 그것들을 주워다 살림에 합쳤고, 우리 커플은 그것들을 걸레로 닦고, 포장하며 제법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우린 서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좀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 '왠 청승을 그렇게 떨고 있냐'는 거다. 기왕 새로 시작하는 거 새걸로 좀 사지 뭘 남이 쓰던 걸 쓰고, 버린 걸 주워오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웃으며 가볍게 흘리려 하였다. 보통 그렇게들 얘기하고,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챤"으로서 다시 생각해본 필자는 몇 가지 생각을 짧게 해보게 되었다.

첫째, 과연 우리는 이러한 '소비지향적' 흐름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다. 소비는 말 그대로 소비이다. 기존의 것을 쓰기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것 역시 또 다시 소비되어 사라지게만 할 뿐이다. 소비란 그 말 자체에서 착취성과 소모성, 파괴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성격이 지닌 영향력은 자연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인간내면으로 들어가면 그 영혼이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끊임없는 소비의 유혹에 휩싸이게 하고, 그 사회로 들어가면 생명이 그것 자체로 귀히 여겨지지 못하고 소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 되고 있다. 헛된 욕망에 사로 잡힌 영혼과 사회가 계속 멍들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의 엄청난 발전과 함께 찾아온 소비지향이, 전 생태계와 우리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메마르게 하고, 아프게 하는 가 우린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소비지향성은 그것이 반생명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 크리스챤들이 여기에 쉽게 동조해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둘째, 지금 교회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늘 생명중심의 마음을 잘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대가 소비지향적 세태를 보이며 생태계와 인간, 사회를 좀 먹어 간다면 그 반대쪽 자리에 서서 중심을 잡아가기도 해야한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며, 그 생명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인간의 영혼과 그 사회의 건강성을 견실히 잡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몇 몇 교회들을 보니 막대한 돈을 들여 건축하는 걸 중요한 기도제목으로 놓고 전력질주 하고 있다. 몇 몇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고급 식당에서 한끼에 몇 만원짜리 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각 은행이 특별관리대상으로 알아서 모시고 있다는 말도 있다.

모두 알다시피, 교회에 들어온 돈은 목회자 고급 승용차 유지와 번쩍이는 교회건축에 쓰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게 아니다. 이 세대의 소비의 중요한 축이 되어 VIP고객으로 모심 받으라고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사회의 소외되고, 아픔의 그늘이 있는 곳에 써야한다는..파괴되어 가는 생명을 살리는 데 써야한다는..뭐 이런 상투적인 말까지 꼭 할 필요가 있겠는가. 각 자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일 일이다.

혼수를 장만하다 있었던 에피소드를 통해 두서 없는 이야기를 펼쳤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크리스챤은 늘 생명중심의 방향을 잘 잡아나가야 한다. 반생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생명의 방향으로 돌이킬 수 있겠금 한쪽 날개의 힘을 실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며 동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주체적인 신앙적 판단을 내리며 책임있는 자신의 삶을 살고, 이 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다시 한번 살펴볼 일이다. 난 지금 도대체 어느 자리에 서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건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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