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환상은 있어야 됩니다. 앞으로 수십년을 살게 될 삶인 데,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에 대한 꿈이 있어야지요. 저희 부부는 이를 위해 참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끊임 없이 대화하며 준비하였지요. 그리고  그 성과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인생관이나 자녀교육, 양쪽 집안에 대한 의견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 다섯가지만 골라서 함께 마음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카드, 캐피탈 회사의 압박

경제적인 부분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살림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지출해야하는 곳이 너무도 많지요. 예전에 차량 할부금 결제일을 한번 놓친 적이 있습니다. 깜빡 한거지요. 그랬더니 세상에 그 다음 날부터 엄청난 전화가 오더군요. 그리고 바로 카드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휴~할부금을 곧바로 냈지만 카드는 일주일이나 있어야 회복되어 참으로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지요. 제가 말씀드렸듯 결혼 후 경제적인 문제로 다퉈보지 않은 부부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가족이 먹고 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 기준이 높을 수록 현실에 불만이 많이 생긴다 생각합니다.


이 접시를 깨뜨려 말어~ 결혼이란 환상의 접시!



2.딸아이의 아픔

아이가 아플 때 겪는 아픔은 예습되지 않습니다. 공부로는 알 수 없는 뭔가 좀 더 깊고, 오묘한 가슴이 금가는 애절함입니다. 흔히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말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요. 특히, 그것이 내 잘못 또는 부모의 잘못 때문이면 더 할말이 없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큰 애가 어린이집 안가고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전업주부 생활을 할 때였는데요. 시원하게 '그래, 오늘은 아빠랑 있자!'라고 했었습니다. 하루 종일 우리 부녀는 재미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잠시 제가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며 컴퓨터를 하게 되었는데요. 갑자기 비명 소리와 함께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딸아이 앞으로 전신거울이 넘어졌던 거지요.

딸아이의 상태는 말이 아니였습니다. 다행이 거울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 틈에 손가락이 끼어 손가락이 절단될 뻔 하였지요. 그 작고 여린 손을 수술하고, 수술에 지쳐버린 아이를 보던 기억은 제 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습니다.(관련글 : 10분간의 방심이 딸아이 손가락을...)


3.아내의 삐짐

흐흐흐, 이건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사실 많은 남편들이 아내가 왜 삐졌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남자 또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게 왜 삐질 일이냐는 거지요. 그리고 때론 화날 일이 없는 데,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며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지 않지요. 아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을 해도 남편은 듣지도 않고, 결국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이 사람하나 믿고 살아가는 데, 이게 뭔가 싶기도 합니다. 

부부간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고, 많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부분이지요. 평소 대화가 있어야 서로 배우자 탓만 하지 않고,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서로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해주려면 이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저 대화하고, 이해해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 부부 결혼식은 양성평등 결혼식으로 모교 예배당에서 진행되었다.




4.익숙함 그리고 긴장감 제로

연애시절 제가 부부사이에 있어 갖고 있던 가장 두려웠던 부분입니다.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버리면 어떡하나...아무런 긴장감도 없어 그냥 사는 인생이 되어 버리면 어떡하나...제가 이런 기준으로 삼고 있던 게 바로 "방귀"입니다. 이걸 스스럼 없이 트는 순간 우린 부부 또는 연인이 아닌 그냥 '가족'이 되어버린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 지금도 저는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익숙함 속에 서로를 향한 더 깊은 신뢰와 우정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사랑이란 떨리는 감정은 길어야 3년밖에 안되는 호르몬 작용이란 점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데, 그것을 넘어서는 게 바로 신뢰와 우정이란 것입니다. 

저는 지금 결혼 5년차인데요. 다행이 아직은 설렘이나 사랑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조금씩 서서히 신뢰와 우정을 함께 쌓아가는 것 같습니다. 혹시 독자님께서는 결혼 몇 년차이시고, 어떤 노하우를 갖고 계신지요.(댓글을 통해 지혜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5.꿈의 사라짐-그냥 사는 인생

개인적으로 (아내와 자녀를 모두 내려놓고 봤을 때)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저는 결혼생활을 하며 제 꿈이 사라지고,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삶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꿈이 없는 삶이란 마치 회색빛 삶과도 같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꿈이 있고, 이를 이뤄가며 최선을 다해가는 삶에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두려워만 하니 참 피곤하더군요. 이걸 싫어한다하여 변하는 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두려움을 나에 대한 반성의 지점으로 삼고 매일 자신을 발견하며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스스로 제 꿈을 버리고 그냥 사는 인생이 되어버린다면 아마 아내는 물론 아이들도 매우 속상해할 것입니다. 아빠 또는 남편의 살아있는 눈빛 속에 가족의 희망을 볼 테니 말이지요.

필자가 결혼식 순서를 만들 때 넣었던 그림이다. 푸른 꿈을 잃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자 하는 맘을 담았다.



결혼은 현실이란 말도 있고, 아예 미친 짓이란 말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부부가 어떻게 얼마나 노력하는 결혼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에 따라 현실 속에 여전히 환상이 살아있고, 미친 짓을 넘어 행복함이 있다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리 많이 미리 준비해도 결혼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허나 이것마저도 내 자신과 부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게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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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저는 수첩이란 게 없었습니다. 노트 역시 거의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 듣고, 그 자리에서 암기하고 뭐 그런 나름 "똑똑한" 편에 속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생활도 잠시. 나이 스물셋에 전신마취 후 허리 수술을 한번 했더니 사람이 요상하게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의학적 지식을 근거로 댈 순 없으나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 이 후부터 자꾸 '깜빡~깜빡~' 하는 습성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 때 부터 제 핸드폰과 노트는 항상 꽉~꽉~메모로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경이나 자동차 키 등 사소한 물품을 던져놓고 깜빡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일어나 다 씻고 난 후 안경을 찾는 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 짰더니..세상에 제가 안경을 쓰고 있던게 아닙니까..ㅠ.ㅜ;;;(실화)


이런 저에게도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제 작은 소지품을 잘 챙겨주었습니다. 제가 한참 운전을 하다 '아~맞다! 그거 놓고 왔다!' 라고 하면 항상 아내의 가방 안에 그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던 아내가 얼마 전부터 이상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고 난 후 부터 조금씩 변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 역시 자꾸 '깜빡~깜빡~'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출산은 꽤 고단한 편이었습니다. 대학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골반이 벌어지지 않았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많은 운동과 준비를 했었습니다. 출산 당일 역시 계속 운동을 하며 준비를 했었고, 하루종일 계속된 진통을 이겨냈더랬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결국 담당 의사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이야기 했고, 의사 역시 산모의 안위마저 걱정되던 상황이라 수술을 하고 말았을 정도 였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아내는 확실히 몸이 약해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개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며 이른바 '진기'를 소진하게 되지요. 그리고 많은 영양분이 빠져나가고, 그 동안 약해져 있던 몸에 본격적인 반응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이걸 제대로 관리 못해주면 평생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요. 산후조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수 있는 대목인데요. 저희 역시 아예 시골로 내려가 산후 조리도 하고, 나름 좋은 것도 많이 먹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출산 후 여성이 출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요즘은 저희 부부 서로가 서로의 물품을 챙겨줍니다. 차에 타면 서로 묻곤 하지요.

"자기 핸드폰 가져왔어?"
"어~내가 챙겼어"
"지갑은 내가 가방에 넣어 놨어"
"어~그럼 이제 출발할까?"
 "어~"
"건희야, 아빠 이제 간다 자~출발~"
"추발~"


어디선가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글을 읽었는데요. 요즘 많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 둘이 하나인 것만 못할때도 많겠지요. 허나 이같이 좋고, 나쁨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이 특히, 내가 하기 나름이고, 이를 어떻게 느끼느냐는 내가 받아들이기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부부끼리 행복하게 사는 거 별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먼저 챙겨주기 시작하다보면 어느 샌가 서로를 더 믿고, 서로에게 더 감사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지요.

하하, 오늘 저녁에는 무얼 챙겨줄 수 있을려나요~

퇴근 후가 기다려지는 수요일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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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는 30년 같이 길게만 느껴지던 너무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결혼 3년만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휴가를 주었다 (☜클릭)하였지요. 제가 딸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 집에 가서 보니 식탁위에 왠 편지가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보낸 것이더군요.

편지 겉봉투를 보니 "건희 아빠 보시오~오늘의 미션봉투"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진이 좀 흐려서 그런데 분홍빛 바탕에 예쁜 집 그림이 있는 봉투였습니다.



봉투의 뒷면을 보니 예쁜 그러나 메세지가 있는 스티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면 마지막 "행복해" 에 새까만 "ㅇ"과 하트 표시가 있지요. 자세히 보니 원래 문구는 "너 때문에 올 한해 너무 행복했어"인데, 아내가 자신의 뜻을 전하려고 "행복행 " 로 바꾼 것이더군요.



내용을 열어보니 아내 특유의 둥글둥글한 귀여운 글씨로 두장이나 되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솔직한 마음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는 첫 휴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휴가 준 것에 대한 보람이 팍팍 들더군요.



편지를 읽으며 아내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그에 대한 표현도 짧게 해주었더군요. 또 한켠으로는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다음 문구때문에 그랬는 데요.

우선 불고기와 찌개가 있으니 데워서 먹고. 냉장고 윗칸에 반찬이 있어 꺼내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사놨어....(중략)...건희와 즐거운 식사시간 갖고. 설거지는 내가 아침에 해도충분하니깐 그냥 놔두고~건희 어제 목욕했으니 오늘은 그냥 손, 발, 세수만 하고 자도 될꺼야.  우유는 왼쪽 맨 끝 아래 싱크대 윗칸에 있어~1분만 살짝 돌려줘~

저에 대한 마음과 딸아이에 대한 걱정때문에 이렇게 자세하게 쓴 것이겠지만 어느 덧 그 순수하고, 맑던 막내 딸 아가씨를 소위 말하는 "아줌마"로 바꿔놓은 것 같아 그랬던 것입니다. 그냥 어제 하루쯤은 모든 걸 잊고 쉬었다 오기를 바랬는 데 말이지요..

아무튼 아내는 장문의 편지를 마치며 이런 표현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나도 근사한 휴가를 줄게. 기대해줘~사랑해요~정혁씨~감사해요~당신의 큰 사랑~

자, 이런 표현을 본 후 제 반응이 어땠을 것 같으십니까. 당연히 기분 짱~이었지요! 세상에 어느 남편이 이런 최고의 표현을 보면서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편지봉투에 있는 집 그림입니다. (핸드폰 카메라에 상처가 많아 좀 지저분하게 나오긴 했습니다만..실제로는 참 예쁘고, 따뜻해 보입니다)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우리 가정을 더욱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게 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보았습니다. 언덕위의 예쁜 집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부부의 마음 속에는 늘 이런 분홍빛 사랑이 살아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정과 애 때문에 웬수'와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인격을 알아가며, 더욱 설레는 사랑을 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행복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고,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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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결혼 생활이 주는 가르침>

대학 동기인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서로 사는 방식이 너무도 달랐던 터였다. 그러나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서로 불같이 뜨겁게 사랑을 했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며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었다.

우리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부터 정치, 경제, 사회에 이르는 토론을 하기도 했고, 우리의 비젼과 결혼생활 즉, 자녀교육부터 처가와 시댁 식구에 대한 이야기, 진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준비와 공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를 길러주신 할머님을 모시면서부터 이런 저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가정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지 않는 일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과 진행

할머니께서는 나를 막내 아들처럼 여기시어 잔소리가 유독 많으신 편이었다. 아내가 맡아야 할 고유 영역이 구분되지 않고, 어린 아들 키우듯 계속되는 간섭과 잔소리가 있었다.

이 때, 아내는 사실상 소외되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당연히 신혼의 단꿈을 꿔보지도 못한 아내는 이런 할머니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나이가 내가 26세, 아내가 25세였다. 솔직히 할머니와 마찰이 생길 때마다 모든 걸 이해하고, 맞춰드리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사실 같이 사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역시 문제가 많았다. 이 때 나는 공익요원으로 늦은 군복무를 막 시작했었다. 할머니는 물론 어린 딸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면서 동시에 군복무까지 수행해야 하는 터라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당시는 이래저래 도움의 손길도 있고,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먹고 살 만큼은 되었지만 아내와 할머니를 중재하기까지 여유도 없고,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다. 

문제의 누적과 극단에 이르게 된 싸움

당연히 계속해서 문제가 누적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연로하신 할머니와 다툴 수도 없고, 속상한 일을 내가 아니면 풀 수 없는 아내는 밤 늦게 돌아온 나를 붙잡고 할머니와 있었던 일을 말하곤 하였다. 

피곤하고, 지친 터에 여유도 없는 나는 이럴 때마다 아내가 할머니 욕을 한다 발끈하며 당신도 문제가 있다 양비론을 펴기 시작하였다. 해답 없는 매우 소모적인 그러나 서로의 감정에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내며 무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했던가. 미안하지만 이 말은 당시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서로에 대한 비아냥과 비난이 계속 되었다. 급기야 내가 집을 뛰쳐 나가거나 아내가 나가는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흥분하여 할머니께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심지어 종국에는 서로 헤어지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게도 되었다.

 이런 생활이 일년 넘게 계속되니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말이지 하루가 1년 같은 나날이 반복되었고, 지금보면 지난 3년이 마치 30년쯤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다시 찾은 비결

지금 우리는 다시 신혼초와 같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 할머니 역시 모시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서로 헤어짐까지 결심했던 극단적인 상황을 타개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 있었다. 약 6개월간 주말부부로 지내며 우린 왜 그 때 서로가 그런 말을 했는 지 각 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특히, 아내는 자신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 후 정신영역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고, 시할머니와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매우 깊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아내와 할머니 같은 외부에서 찾던 것에서 그것이 내게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마음수련을 시작하였다. "화"를 다스리는 훈련을 하고, 좀 더 친절하게 대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시작하였다.  서로 이런 노력을 약 6개월을 넘도록 계속하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에게 준 첫 휴가와 결혼생활의 의미

오늘 나는 결혼 3년만에 드디어 아내에게 첫 휴가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리 대단한 휴가를 주는 건 아니다. P블로그 사이트에서 리뷰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가 시사회에 당첨되었기에 아이와 가정살림은 내가 책임질테니 대학시절 단짝과 재밌게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늦게 와도 된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지난 시간동안 매일 같이 아내를 울리고, 힘들게 했던 날에 대한 반성이자, 변화된 우리 부부의 상징적인 첫 열매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제 이 첫열매를 시작으로 우린 더욱 풍성한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다. 지금 행복한 것처럼 앞으로도 행복하고, 지금 이 힘든 시간을 잘 풀어내며 온 것처럼 앞으로도 여러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통해서 사람을 배우고혼자만의 삶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것이 바로 결혼생활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인생의 가르침일 것이니 말이다.


대학 연애시절 찍었던 사진. 상당히 겉늙어 보이는 나와 달리 아내는 여전히 매우 어려보인다.

작년 여름 가족휴가 때 찍은 사진. 세식구 모두 초췌한 모습이다 ^.^;;

결혼 초 가족이 쇼핑나갔던 모습

결혼 초 갓난 딸아이를 봐주시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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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자는 한 여인과 결혼을 약속하고, 지금은 신혼의 달콤한 오늘과 내일을 꿈꾸며 지내고 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도 했고, 살림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나갔던 필자는 어느 아파트 한쪽에 버려진 작은 교자상과 책장을 보았다. 또한 동네 형님과 함께 돌다 냉장고와 와 작은 고가구를 발견하였다. 곧 필자는 그것들을 주워다 살림에 합쳤고, 우리 커플은 그것들을 걸레로 닦고, 포장하며 제법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우린 서로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좀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 '왠 청승을 그렇게 떨고 있냐'는 거다. 기왕 새로 시작하는 거 새걸로 좀 사지 뭘 남이 쓰던 걸 쓰고, 버린 걸 주워오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웃으며 가볍게 흘리려 하였다. 보통 그렇게들 얘기하고,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챤"으로서 다시 생각해본 필자는 몇 가지 생각을 짧게 해보게 되었다.

첫째, 과연 우리는 이러한 '소비지향적' 흐름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인가? 이다. 소비는 말 그대로 소비이다. 기존의 것을 쓰기만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것 역시 또 다시 소비되어 사라지게만 할 뿐이다. 소비란 그 말 자체에서 착취성과 소모성, 파괴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성격이 지닌 영향력은 자연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인간내면으로 들어가면 그 영혼이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끊임없는 소비의 유혹에 휩싸이게 하고, 그 사회로 들어가면 생명이 그것 자체로 귀히 여겨지지 못하고 소비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 되고 있다. 헛된 욕망에 사로 잡힌 영혼과 사회가 계속 멍들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의 엄청난 발전과 함께 찾아온 소비지향이, 전 생태계와 우리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메마르게 하고, 아프게 하는 가 우린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소비지향성은 그것이 반생명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 크리스챤들이 여기에 쉽게 동조해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둘째, 지금 교회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늘 생명중심의 마음을 잘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대가 소비지향적 세태를 보이며 생태계와 인간, 사회를 좀 먹어 간다면 그 반대쪽 자리에 서서 중심을 잡아가기도 해야한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며, 그 생명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인간의 영혼과 그 사회의 건강성을 견실히 잡아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몇 몇 교회들을 보니 막대한 돈을 들여 건축하는 걸 중요한 기도제목으로 놓고 전력질주 하고 있다. 몇 몇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고급 식당에서 한끼에 몇 만원짜리 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각 은행이 특별관리대상으로 알아서 모시고 있다는 말도 있다.

모두 알다시피, 교회에 들어온 돈은 목회자 고급 승용차 유지와 번쩍이는 교회건축에 쓰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게 아니다. 이 세대의 소비의 중요한 축이 되어 VIP고객으로 모심 받으라고 허락하신 것이 아니다. 사회의 소외되고, 아픔의 그늘이 있는 곳에 써야한다는..파괴되어 가는 생명을 살리는 데 써야한다는..뭐 이런 상투적인 말까지 꼭 할 필요가 있겠는가. 각 자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일 일이다.

혼수를 장만하다 있었던 에피소드를 통해 두서 없는 이야기를 펼쳤다. 이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크리스챤은 늘 생명중심의 방향을 잘 잡아나가야 한다. 반생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생명의 방향으로 돌이킬 수 있겠금 한쪽 날개의 힘을 실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며 동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주체적인 신앙적 판단을 내리며 책임있는 자신의 삶을 살고, 이 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다시 한번 살펴볼 일이다. 난 지금 도대체 어느 자리에 서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건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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