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환상은 있어야 됩니다. 앞으로 수십년을 살게 될 삶인 데,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에 대한 꿈이 있어야지요. 저희 부부는 이를 위해 참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끊임 없이 대화하며 준비하였지요. 그리고  그 성과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인생관이나 자녀교육, 양쪽 집안에 대한 의견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하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 다섯가지만 골라서 함께 마음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1.카드, 캐피탈 회사의 압박

경제적인 부분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살림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지출해야하는 곳이 너무도 많지요. 예전에 차량 할부금 결제일을 한번 놓친 적이 있습니다. 깜빡 한거지요. 그랬더니 세상에 그 다음 날부터 엄청난 전화가 오더군요. 그리고 바로 카드가 정지되어 버렸습니다. 휴~할부금을 곧바로 냈지만 카드는 일주일이나 있어야 회복되어 참으로 불편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지요. 제가 말씀드렸듯 결혼 후 경제적인 문제로 다퉈보지 않은 부부는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가족이 먹고 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 기준이 높을 수록 현실에 불만이 많이 생긴다 생각합니다.


이 접시를 깨뜨려 말어~ 결혼이란 환상의 접시!



2.딸아이의 아픔

아이가 아플 때 겪는 아픔은 예습되지 않습니다. 공부로는 알 수 없는 뭔가 좀 더 깊고, 오묘한 가슴이 금가는 애절함입니다. 흔히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말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요. 특히, 그것이 내 잘못 또는 부모의 잘못 때문이면 더 할말이 없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큰 애가 어린이집 안가고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전업주부 생활을 할 때였는데요. 시원하게 '그래, 오늘은 아빠랑 있자!'라고 했었습니다. 하루 종일 우리 부녀는 재미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잠시 제가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며 컴퓨터를 하게 되었는데요. 갑자기 비명 소리와 함께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딸아이 앞으로 전신거울이 넘어졌던 거지요.

딸아이의 상태는 말이 아니였습니다. 다행이 거울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 틈에 손가락이 끼어 손가락이 절단될 뻔 하였지요. 그 작고 여린 손을 수술하고, 수술에 지쳐버린 아이를 보던 기억은 제 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습니다.(관련글 : 10분간의 방심이 딸아이 손가락을...)


3.아내의 삐짐

흐흐흐, 이건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사실 많은 남편들이 아내가 왜 삐졌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남자 또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이게 왜 삐질 일이냐는 거지요. 그리고 때론 화날 일이 없는 데,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며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렇지 않지요. 아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말을 해도 남편은 듣지도 않고, 결국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이 사람하나 믿고 살아가는 데, 이게 뭔가 싶기도 합니다. 

부부간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고, 많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는 부분이지요. 평소 대화가 있어야 서로 배우자 탓만 하지 않고,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서로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해주려면 이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저 대화하고, 이해해줘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 부부 결혼식은 양성평등 결혼식으로 모교 예배당에서 진행되었다.




4.익숙함 그리고 긴장감 제로

연애시절 제가 부부사이에 있어 갖고 있던 가장 두려웠던 부분입니다.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버리면 어떡하나...아무런 긴장감도 없어 그냥 사는 인생이 되어 버리면 어떡하나...제가 이런 기준으로 삼고 있던 게 바로 "방귀"입니다. 이걸 스스럼 없이 트는 순간 우린 부부 또는 연인이 아닌 그냥 '가족'이 되어버린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 지금도 저는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익숙함 속에 서로를 향한 더 깊은 신뢰와 우정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사랑이란 떨리는 감정은 길어야 3년밖에 안되는 호르몬 작용이란 점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데, 그것을 넘어서는 게 바로 신뢰와 우정이란 것입니다. 

저는 지금 결혼 5년차인데요. 다행이 아직은 설렘이나 사랑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조금씩 서서히 신뢰와 우정을 함께 쌓아가는 것 같습니다. 혹시 독자님께서는 결혼 몇 년차이시고, 어떤 노하우를 갖고 계신지요.(댓글을 통해 지혜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5.꿈의 사라짐-그냥 사는 인생

개인적으로 (아내와 자녀를 모두 내려놓고 봤을 때)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저는 결혼생활을 하며 제 꿈이 사라지고, 현실에 타협하며 사는 삶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꿈이 없는 삶이란 마치 회색빛 삶과도 같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꿈이 있고, 이를 이뤄가며 최선을 다해가는 삶에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두려워만 하니 참 피곤하더군요. 이걸 싫어한다하여 변하는 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두려움을 나에 대한 반성의 지점으로 삼고 매일 자신을 발견하며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스스로 제 꿈을 버리고 그냥 사는 인생이 되어버린다면 아마 아내는 물론 아이들도 매우 속상해할 것입니다. 아빠 또는 남편의 살아있는 눈빛 속에 가족의 희망을 볼 테니 말이지요.

필자가 결혼식 순서를 만들 때 넣었던 그림이다. 푸른 꿈을 잃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자 하는 맘을 담았다.



결혼은 현실이란 말도 있고, 아예 미친 짓이란 말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부부가 어떻게 얼마나 노력하는 결혼생활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에 따라 현실 속에 여전히 환상이 살아있고, 미친 짓을 넘어 행복함이 있다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무리 많이 미리 준비해도 결혼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허나 이것마저도 내 자신과 부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게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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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대하다보면 여러 감정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특히 남자는 살면서 늘 미안하기만 한 사람이 둘이 있다 합습니다. 첫째는 어머니고, 둘째는 아내입니다. 제 경우는 조손가정에서 자라다보니 어머니의 사랑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들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저와 아내는 대학 동창이었습니다. 같은 신학교에서 아내는 학회장, 저는 학회교육가배(후배를 지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저 학회장과 가배라는 사무적인 만남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날 우리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인생관이 비슷합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 신학적 노선도 거의 일치합니다. 또 욕심 없는 것도 비슷하고, 삶에 대한 마음도 비슷합니다. 예, 저희 부부는 세상의 부귀영화는 둘째로 둔채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며 살아가기로 평생을 살아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으로써 미안한 마음은 없을 수 없습니다. 특히, 엊그제는 더욱 그랬습니다. 요즘 저는 대학원 입학과 새로 부임하게 된 교회일 등으로 매우 바쁩니다. 집을 비우는 경우가 유독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매우 지쳤고, 많은 활동 때문에 생활비 역시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엊그제 있었던 아내의 생일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없어도 맛난 미역국과 정성으로 생일을 챙겨줬었는 데, 이번에는 미역국조차 끓여주지 못했던 거지요.

참 미안했습니다. 아내에게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필요한 것도 얘기하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생일 선물로 "머리띠"를 선물해달라 하더군요. 순간 제 자신이 어찌나 초라해지던지요. 순간적으로 아내에게 '그게 뭐야'라며 콧방귀를 뀌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피곤하고, 어려운 가정상황 때문에 저를 배려해 얘기한 것일텐데 말입니다.

본래 화를 내는 것보다 콧방귀 등이 더 기분 나쁜 것이지요. 아내에게 참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대로 밖을 나갔지요. 그나마 가장 예뻐 보이는 머리띠로 생일 선물을 대신하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또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란게 일은 많은 데, 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내에게는 또 다시 미안했지요. 형편은 여전히 어려운데, 일 때문에 가정과 아내에게 점점 소홀해진 듯 해서 말입니다. 

아, 
하늘을 보며 큰 숨을 쉬고 싶은 수요일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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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 더욱 "격"을 지켜야 한다

가까울 수록 격을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누구일까요? 부모-자식일까요? 친구일까요? 아니요. 저는 부부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가장 먼 관계란 소리도 듣지만 이는 너무 가깝기에 더 멀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치가 높고, 실망도 클 수 있으며 쉽게 감동받고 상처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잘 조절하는 것은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 한 남자의 아내로써 사는 나의 조절능력이 있습니다. 가끔 '예쁜 짓을 해야 예뻐해주지' 란 말을 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 전에 나는 얼마나 예쁜 짓을 했고, 또한 내 배우자가 나를 통해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 신경써야

저는 부부간에 가장 조심하고 조심할 부분이 바로 "말" 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생활할 때도 중요합니다만 이는 어느 정도 '가면' 을 쓰고 있는 상태라 그만큼 수습하기 수월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은 다르지요. 한마디 말로 "정내미" 가 떨어져버려 "웬수" 와 사는 현상이 일어나 버리게 됩니다.

그 말중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배우자를 부르는 "호칭" 이라 생각합니다. "야", "너", "네가" 등의 표현을 쓰면 왠지모를 거리감과 차가움이 느껴집니다. 또 실제 싸움을 할 때 이런 표현이 나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친정이나 시댁 얘기가 나와 집안과 부모님 문제가 나오면 이젠 완전히 적이 되어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됩니다. 만약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갈만큼 가서 수습 안되는 상황이 오게 됩니다.


무엇이 배우자를 부르는 적절한 호칭일까

평소 습관이 중요하지 싶습니다. "00엄마", "00아빠" 등은 배우자보다 자녀를 중심에 두고 있어 부부 중심의 표현이 아닙니다. 또한 "바깥양반" "집사람" 등 역시 상당히 양성의 성고정관념에 근거한 것이라 오늘날에는 맞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남편들이 자주 쓰는 "와이프" 란 표현은 비교적 여성의 지위에 대한 중립적 가치를 지닌 듯 하나 외래어이기에 기왕이면 좋은 우리말을 쓰는게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표현이 내 배우자를 부르는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해 저는 일단 배우자가 원하는 호칭을 사용하는게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통계를 보니 남녀가 각 각 배우자에게 듣고 싶어하는 호칭 1위가 "자기야"와 "여보" 라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예, 좋지요. 서로에게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표현해 줄 수 있다면 괜찮다 싶습니다. 특히, "여보" 란 표현은 조금 나이들어 보이는 듯하여 꺼려하는 젊은 커플도 많으나 그 의미는 '보배와 같다' 는 것이라 아주 훌륭한 표현이란 생각이 듭니다.


부부 서로의 부모님과 집안에 대한 얘기는 매우 민감한 것

그 다음 주의해야 할 것은 "부모님" 과 "집안" 에 대한 얘기입니다. 물론 부부 모두 배우자의 부모님과 집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서로 협의해가며 잘 모실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꼭 그러다보면 '너네 엄마한테는 이렇게 했는 데, 왜 우리만 그래' 나 '너네 집에 이렇게 했드라~' 라며 막말과 불만, 비아냥이 나오고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며 싸우게 됩니다. 꼭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해도 결국 안좋게 되더라는 거지요.

여기서 일단 우리는 내 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쉽게 흥분하고 만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상황판단이나 제어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고, 결국 별것 아닌 문제를 갖고도 부부간의 큰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배우자를 향한 고마움의 표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

가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 아예 말을 안하는 게 낫다 하는 분들을 뵙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나요. 말을 안해도 마음으론 계속 쌓여가게 되는 걸요.

저는 이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서로 더 해주기" 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의 핵심이 바로 내 배우자에게 "고마운 표현 더 해주기" 입니다.

내 부모님께 작은 것 하나만 해줘도 고맙고, 사랑한다 자주 많이 표현해주는 것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큰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은 내 배우자의 동의와 지지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고마움의 표현은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습니다. "의식적인 노력" 이 필요한 부분이란 얘기입니다. 내가 한번 더 노력하는 자세가 있어야 배우자의 표현도 한번더 나오게 되는 것이지 나는 가만히 있는 데 배우자가 고맙다 할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정리하며

왜 우리네 어른들은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관계' 라 하신 걸까요. 저는 그것의 핵심이 바로 "말" 에 있다 생각합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 가장 크고 쉽게 감동하고, 반대로 가장 크게 서운해하며 멀어지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평소 배우자에게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부르는 호칭이나 부모님과 집안 문제 등을 두고 "의식적" 으로 고맙다 더 많이 얘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배우자를 향한 존중과 사랑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고마움의 표현 역시 "훈련" 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 한마디로 울고, 웃으며 빚도 갚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기왕이면 배우자에게 좋은 표현을 써서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가면 좋지 않을까요. 부부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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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내의 다이어트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벌써 3주차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그 동안 수차례 다이어트 시도를 하다 금방 포기하는 걸 봐온지라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 중간에 금방 멈추는 듯 하여 눈물 쏙 빠지게 제가 독한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기왕에 시도하는 거 꼭 성공해서 자신감도 찾고, 건강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유산소 운동을 하고 밤에는 웨이트를 하며 식단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도 움직여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이어트 외조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지난 2년간 하던 일을 그만 두게 되어 이번 주부터 말일까지는 시간도 많습니다. 그 전에는 이미 먼저 몸짱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었지요.


제가 아내를 위해 할 일은 크게 두가지 측면이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첫째는 식단조절에 같이 임하는 거고, 둘째는 아이를 잘 봐주는 것입니다.

일단 장을 봐왔습니다. 닭가슴살과 두유를 주문했고, 샐러드용 양배추와 달걀, 두부, 버섯, 감자, 단호박 등을 구입해왔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에 어떤 음식을 해줄까 생각하여 일주일치 식단을 짜보았습니다. 탄수화물과 고단백의 양을 조절할까 합니다. 섬유질이 부족하지 않도록 오후 간식을 싸주려고도 합니다. 

그 다음 아이를 제가 지금보다 더 봐줄 수 있도록 하는데요. 사실 여자의 입장에선 두번째가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먹다 남긴 밥을 처리하는 것. 이것만해도 벌써 보통 일이 아니지요. 아이가 울어서 운동을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마음이 얼마나 쓰입니까. 운동장을 돌다가도 아이가 신경쓰여 금방 들어가게 되지요. 그래서 기왕에 보는 아이 제가 좀 더 신경쓸 수 있도록 할까 하는 것입니다. 저녁도 제가 좀 챙기고, 목욕도 주로 제가 시킬 수 있도록. 우유 등도 제가 좀 더 챙겨주려 합니다.

그런데 사실 아내의 다이어트에 외조를 하면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워낙 어린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도해와서 그런지 아니면 성격이 그런지...뭐든 한번 하면 제대로 하라고 잔소리가 너무 심합니다. 물론 아내가 잘 되라 하는 거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참 힘든 일이 될 겁니다. 사실 벌써부터 아내의 불평이 나오는 듯도 합니다. 아..이걸 어째야할지...아마도 아내의 다이어트에 제가 제대로 외조를 하려면 이놈의 입방정(?)부터 잘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아내를 처음 본건 대학 새내기 시절 강의실이었습니다. 그 때 아내는 수업에 늦어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요. 저희 과의 특성상 굉장히 얌전하거나 남자 같은 여학생이 많은데, 그 때 아내는 너무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제가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ㅋㅋㅋ 주로 심야에 방문하곤 했던 족발보쌈 친구들과 피씨방에서 아내를 달래주던 우동 국물은 또 다른 아내를 만들어냈고, 결정적으로 아이를 낳으며 상당히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변한게 몸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마음이 약해지고, 더 어두워져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감도 더욱 잃어가는 듯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아내의 다이어트가 반드시 성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이놈의 잔소리만 어떻게 한다면...으...ㅡ.ㅡ;; 이번 외조의 핵심에는 제 입을 다스리는 게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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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처가일까 애처가일까?

[LIFE]이 남자의 인생 2009. 7. 2. 13:57 Posted by 바람몰이


얼마 전 아내의 마법기간 중 밥을 챙겨주는 글을 올렸습니다. 조회수가 수백회가 넘어가자 여러 반응이 나오던데요. 문득 그 반응들을 보며 문득 '공처가와 애처가' 의 차이가 무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사전에서는 아내에게 눌려 지내는 남편을 공처가라 합니다. 애처가는 아내를 각별히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눌려지내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각별한 사랑을 하는 것인가요.

아마 그 동안 제 글을 읽어오시고, 제 모습을 처음 보는 분들은 제가 "애처가" 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제가 써온 글을 보면 알 수 있듯 저는 대학시절부터 페미니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아내를 사랑하며 가정에 충실하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주변에서는 저를 애처가를 넘어 공처가라 하기까지도 합니다. 너무 아내의 말을 많이 들어주며 풀어주려 한다는 거지요. 집안 살림도 너무 많이 한다고 합니다. 처가에 너무 많이 신경을 쓰려 한다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습니다. 

참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저는 그냥 제 "소신" 대로 살아오고 있는 데, 주변 반응이 저를 "애처가" 와 "공처가" 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지요. 

사실 이런 표현자체가 상당히 우습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자한테 눌리고, 잡혀산다는 말 속에는 이미 여자를 휘어잡고, 강하게 리드하며 살아야한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또 애처가란 말자체에도 여성은 그저 남자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고 말이지요. 이런 용어 속에 이미 남성 중심적 사고 방식이 강하게 박혀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페미니스트이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또 대단히 앞서나가는 진보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란 게 어떤가요. 일방적인 순종이나 수동적인 태도를 요구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또 나 혼자 독불장군으로 주도하는 삶을 살면 반드시 큰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조금 앞서 나간 이야기지만 우리가 결혼을 하는 이유를 돌아봐도 그렇지요.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이란 꿈에 기초가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림에 삶의 방향성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네 조상님들은 결혼 후 삶을 "살림살이"라 하였지요. 예, 서로를 살리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바로 결혼생활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결혼생활에서 아내 또는 남편의 일방적인 순종을 요구한다...하...이럴려면 결혼을 왜 하는 가요? 제 상식으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저는 공처가든 애처가든 다 좋습니다. 제가 열심히 가정에 충실하려는 것은 저와 긴밀하게 엮여진 아내의 인생에 제가 부담되는 존재가 되지 않고, 기왕이면 행복하게 해주려는 데 있습니다. 또 이것이 바로 내 인생의 행복을 담보하는 일이고, 어린 딸아이 인생의 첫단추를 잘 끼워주는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래야 서로의 삶을 살리는 "살림살이"가 될 수 있을테니 말이지요.

흐흐흐..여러분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저는 공처가인가요 애처가인가요?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설픈 페미니스트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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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6시 10분이더군요.

잠깐 눈을 비비며 사진을 찍으니 그새 2분이 지나 6시 12분이 되었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다. 고양이 발을 하며 조심조심 다녀왔지요.
그리고 오늘의 요리 재료를 꺼내왔습니다. 왼쪽부터 장인 어른께서 직접 농사지으신 딸기로
만든 딸기쨈, 식빵, 치즈, 머스타드 소스, 달걀, 닭가슴살입니다.
한번에 꺼내려고 두손이 고생을 했네요.



가스렌지의 "딱" 소리가 왜 이리도 크게 느껴지던지요.

한방에 점화시키고, 후라이팬 위에 빵을 올렸습니다.

노릇노릇 맛나게 구우려고 집중에 또 집중을!! ^.^



달걀도 부치고, 닭가슴살도 전자렌지에 데웠습니다.

달걀은 빵에 잘 맞을 수 있도록 최대한 모양을 내보았습니다.

닭가슴살은 마치 회를 뜨듯 심혈을 기울여 얇게 잘라내었구요.



저와 오늘 요리의 주인공 아내를 위한 두유입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24팩 한박스에 6천냥 주고 구입했습니다.

요즘은 저, 아내, 딸아이, 할머님까지 모두 열심히 두유를 마시고 있답니다.




제 요리의 맛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신 딸기쨈 하나만 있어도 이미 훌륭한 맛을 내기 때문이었지요. 
 




자, 딸기쨈을 잘 펴서 발라주고 그 위에 달걀과 치즈, 얇게 썬 닭가슴살을 올려주었습니다.




짜잔~아내를 위한 아침 요리가 끝났습니다!

어떤가요..먹을 만해 보이는가요? ^.^;;



요리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6시 30분 조금 넘었더라구요.
대략 30여분 정도 요리했던 것 같습니다.



'요리를 마친 후 아내와 함께 즐거운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ㅠ.ㅠ;;

오늘은 요즘 마법에 걸려 피곤해하는 아내를 위해 준비한 아침이기에
아내가 더 잘 수 있도록 일부러 깨우지 않았습니다.



출근길 아내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을 위해 준비된 샌드위치를 보고 맛을 보았나 봅니다.


샌드위치 진짜 맛있다~

땡큐 자기~



라는 문자가 왔네요.

고맙긴요..겨우 이런 걸 가지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아내를 위한 아침을 준비하고나니

아내의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아내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네요.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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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저는 수첩이란 게 없었습니다. 노트 역시 거의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 듣고, 그 자리에서 암기하고 뭐 그런 나름 "똑똑한" 편에 속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생활도 잠시. 나이 스물셋에 전신마취 후 허리 수술을 한번 했더니 사람이 요상하게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의학적 지식을 근거로 댈 순 없으나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 이 후부터 자꾸 '깜빡~깜빡~' 하는 습성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 때 부터 제 핸드폰과 노트는 항상 꽉~꽉~메모로 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경이나 자동차 키 등 사소한 물품을 던져놓고 깜빡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일어나 다 씻고 난 후 안경을 찾는 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쥐어 짰더니..세상에 제가 안경을 쓰고 있던게 아닙니까..ㅠ.ㅜ;;;(실화)


이런 저에게도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제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연애시절부터 제 작은 소지품을 잘 챙겨주었습니다. 제가 한참 운전을 하다 '아~맞다! 그거 놓고 왔다!' 라고 하면 항상 아내의 가방 안에 그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던 아내가 얼마 전부터 이상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고 난 후 부터 조금씩 변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 역시 자꾸 '깜빡~깜빡~'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출산은 꽤 고단한 편이었습니다. 대학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골반이 벌어지지 않았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많은 운동과 준비를 했었습니다. 출산 당일 역시 계속 운동을 하며 준비를 했었고, 하루종일 계속된 진통을 이겨냈더랬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결국 담당 의사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이야기 했고, 의사 역시 산모의 안위마저 걱정되던 상황이라 수술을 하고 말았을 정도 였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아내는 확실히 몸이 약해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개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며 이른바 '진기'를 소진하게 되지요. 그리고 많은 영양분이 빠져나가고, 그 동안 약해져 있던 몸에 본격적인 반응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 때 이걸 제대로 관리 못해주면 평생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요. 산후조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수 있는 대목인데요. 저희 역시 아예 시골로 내려가 산후 조리도 하고, 나름 좋은 것도 많이 먹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출산 후 여성이 출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결국 요즘은 저희 부부 서로가 서로의 물품을 챙겨줍니다. 차에 타면 서로 묻곤 하지요.

"자기 핸드폰 가져왔어?"
"어~내가 챙겼어"
"지갑은 내가 가방에 넣어 놨어"
"어~그럼 이제 출발할까?"
 "어~"
"건희야, 아빠 이제 간다 자~출발~"
"추발~"


어디선가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글을 읽었는데요. 요즘 많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 둘이 하나인 것만 못할때도 많겠지요. 허나 이같이 좋고, 나쁨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이 특히, 내가 하기 나름이고, 이를 어떻게 느끼느냐는 내가 받아들이기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부부끼리 행복하게 사는 거 별게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먼저 챙겨주기 시작하다보면 어느 샌가 서로를 더 믿고, 서로에게 더 감사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지요.

하하, 오늘 저녁에는 무얼 챙겨줄 수 있을려나요~

퇴근 후가 기다려지는 수요일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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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결혼 생활이 주는 가르침>

대학 동기인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서로 사는 방식이 너무도 달랐던 터였다. 그러나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서로 불같이 뜨겁게 사랑을 했고,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며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었다.

우리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부터 정치, 경제, 사회에 이르는 토론을 하기도 했고, 우리의 비젼과 결혼생활 즉, 자녀교육부터 처가와 시댁 식구에 대한 이야기, 진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준비와 공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나를 길러주신 할머님을 모시면서부터 이런 저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가정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부딪히지 않는 일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과 진행

할머니께서는 나를 막내 아들처럼 여기시어 잔소리가 유독 많으신 편이었다. 아내가 맡아야 할 고유 영역이 구분되지 않고, 어린 아들 키우듯 계속되는 간섭과 잔소리가 있었다.

이 때, 아내는 사실상 소외되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당연히 신혼의 단꿈을 꿔보지도 못한 아내는 이런 할머니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나이가 내가 26세, 아내가 25세였다. 솔직히 할머니와 마찰이 생길 때마다 모든 걸 이해하고, 맞춰드리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사실 같이 사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역시 문제가 많았다. 이 때 나는 공익요원으로 늦은 군복무를 막 시작했었다. 할머니는 물론 어린 딸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면서 동시에 군복무까지 수행해야 하는 터라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당시는 이래저래 도움의 손길도 있고,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먹고 살 만큼은 되었지만 아내와 할머니를 중재하기까지 여유도 없고,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다. 

문제의 누적과 극단에 이르게 된 싸움

당연히 계속해서 문제가 누적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연로하신 할머니와 다툴 수도 없고, 속상한 일을 내가 아니면 풀 수 없는 아내는 밤 늦게 돌아온 나를 붙잡고 할머니와 있었던 일을 말하곤 하였다. 

피곤하고, 지친 터에 여유도 없는 나는 이럴 때마다 아내가 할머니 욕을 한다 발끈하며 당신도 문제가 있다 양비론을 펴기 시작하였다. 해답 없는 매우 소모적인 그러나 서로의 감정에 아물수 없는 상처를 내며 무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했던가. 미안하지만 이 말은 당시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서로에 대한 비아냥과 비난이 계속 되었다. 급기야 내가 집을 뛰쳐 나가거나 아내가 나가는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흥분하여 할머니께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심지어 종국에는 서로 헤어지자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에 이르게도 되었다.

 이런 생활이 일년 넘게 계속되니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정말이지 하루가 1년 같은 나날이 반복되었고, 지금보면 지난 3년이 마치 30년쯤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다시 찾은 비결

지금 우리는 다시 신혼초와 같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 할머니 역시 모시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서로 헤어짐까지 결심했던 극단적인 상황을 타개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 있었다. 약 6개월간 주말부부로 지내며 우린 왜 그 때 서로가 그런 말을 했는 지 각 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특히, 아내는 자신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이 후 정신영역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였고, 시할머니와 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매우 깊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아내와 할머니 같은 외부에서 찾던 것에서 그것이 내게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마음수련을 시작하였다. "화"를 다스리는 훈련을 하고, 좀 더 친절하게 대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시작하였다.  서로 이런 노력을 약 6개월을 넘도록 계속하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에게 준 첫 휴가와 결혼생활의 의미

오늘 나는 결혼 3년만에 드디어 아내에게 첫 휴가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리 대단한 휴가를 주는 건 아니다. P블로그 사이트에서 리뷰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내가 시사회에 당첨되었기에 아이와 가정살림은 내가 책임질테니 대학시절 단짝과 재밌게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늦게 와도 된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지난 시간동안 매일 같이 아내를 울리고, 힘들게 했던 날에 대한 반성이자, 변화된 우리 부부의 상징적인 첫 열매라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제 이 첫열매를 시작으로 우린 더욱 풍성한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다. 지금 행복한 것처럼 앞으로도 행복하고, 지금 이 힘든 시간을 잘 풀어내며 온 것처럼 앞으로도 여러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통해서 사람을 배우고혼자만의 삶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는 것이 바로 결혼생활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인생의 가르침일 것이니 말이다.


대학 연애시절 찍었던 사진. 상당히 겉늙어 보이는 나와 달리 아내는 여전히 매우 어려보인다.

작년 여름 가족휴가 때 찍은 사진. 세식구 모두 초췌한 모습이다 ^.^;;

결혼 초 가족이 쇼핑나갔던 모습

결혼 초 갓난 딸아이를 봐주시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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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취직과 함께 주말부부로 지낸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유독 빨리 지나간 듯 느껴진 올 한 해였지만 아내와 아이가 없는 집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더디게 흐른다. 텅빈 방에 혼자 누워 외로움과 벗하며 청하는 잠은 그리 반가운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새벽 두시나 되야 잠이 들게 되었다.


물론 주중에 한번, 주말에 한번 가며 최대한 자주 만나려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자주 듣게 되는 소리도 몇 가지 생겼다.

먼저, 방에서 홀아비 냄새가 난다
는 것이다. 언젠가 여동생이 했던 말이다. 그나마 내 몸에서는 안난다 하니 다행이었다.(그 후 향기00을 사서 뿌려주고 있음)

두번째는 얼굴이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는 것이다. 물론 잠을 늦게 자서 피곤한 탓도 있겠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세번째는 일은 잘 한다
는 것이다. 혼자서 무얼 하겠는 가.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일을 하게 된다. 이미 해봤던 것도 여유 있게 생각하다보니 이래저래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치밀한 준비가 가능했다. 


물론 주말 부부로 지내다 보니 좋은 점도 있긴 하였다. 무엇보다 아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더 애틋한 마음이 들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확실히 사람은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내와 떨어져 살고 나니 그 동안 몰랐던 아내의 소중함이 많이 느껴진다. 밤 마다 피곤해 잠 못드는 나를 위해 안마를 해주고, 아침마다 잘 다녀오라 인사해주는 일상이 이젠 너무 특별해졌다.

또한 그 전에 우리가 다퉜던 일을 생각하며 '아..그래서 그 때 그랬나 보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는 식의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한마디를 해도 좀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해줘야 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아내가 있는 곳까지는 한참을 운전해야 하는 터라 차에서 혼자 웃는 걸 연습해보기도 한다.

또한 딸아이와 많이 친하졌다는 것이다
. 주중에 가면 대개 8시나 되야 하는 데, 녀석은 그 때부터 나와 정신없이 놀려 한다. 주말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잠을 자도 내 품에 안겨 자고, 밥도 내가 먹여 주는 걸 좋아한다. 기저귀도 굳이 아빠와 갈겠다고 한다. 나 역시 더욱 녀석이 사랑스럽고, 소중히 느껴진다.

사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커갈수록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더 느끼는 것이라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부녀가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해 가는 건 굳이 나쁘게만 볼 문제가 아니리라. 


아마도 우리 부부는 6개월 이상 더 주말 부부로 지내야 할 것 같다. 그 때까지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아내와 딸이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 같다.(필자는 부천, 아내와 딸은 오산에 거주) 내 몸도 피곤하고, 아이도 힘들고, 아내도 그립지만 누구나처럼 어쩔 수 없는 삶의 형편이란 것이 있다. 따라서 이 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게 잘 활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선택일 것이다.

나는 남은 6개월 동안 지금보다 아내를 더 이해하고, 공감해주려 노력하고 싶다. 또한 아이를 더욱 사랑하고 싶다. 끝으로 내 자신을 더욱 깊이 닦고 싶다. 그러면 힘든 시기일 수 있는 지금이 우리 가정의 더 행복한 내일을 위한 소중한 배움과 준비의 시간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처럼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가정의 사람들과 이 사회를 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내가 내 가족 사랑으로만 멈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역시 우리의 이 힘든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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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가 약간 안 된 즈음. 아내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장모님이셨다. 장모님께서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하셨다. 그 때 나는 출근 준비를 하려 샤워를 하던 참이었는 데, 밖이 순간 적막해지고 어색한 기운이 도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밖에 나가보니 역시나 아내의 표정은 굳어 있고, 욕실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애통함이 느껴졌다.

나는 급히 사무실에 전화하여 사정을 알렸다. 직장과 가까운 아내는(걸어서 3분) 사무실에 직접 가서 급한 서류 정리를 한 후 내려오기로 하였다. 처가에 가기 까지 약 두시간의 여유가 생긴 순간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아내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집안 청소와 내려가는 차에서 먹을 간식만들기였다. 이제 20개월 된 딸아이때문에 어지러진 방을 정리하니 휴~한참이 지난다. 다행이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재빨리 간식 만들기에 들어갔다.

집안을 둘러보니 커다란 고구마 두개가 보였다. 맛탕을 할 까 했는 데, 그러기엔 시간이 좀 부족한 듯 싶었다. 허나 고구마 튀김을 하기에는 적당한 여유였다.

"옳커니!! 고구마 튀김을 해보자!!"


<고구마 튀김 만들기>

1.고구마 껍질 손질.
대개 고구마 튀김은 껍질을 안 벗기고 하는 경우가 많은 데, 내 손에 있던 녀석은 상한 곳이 좀 있어 손질하게 되었다.

2.적절한 크기로 자르기.
아이도 있기에 너무 크게 자를 수는 없었다. 딸아이도 손에 잡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손질하였다.

3.튀김가루 입히기.
반죽을 하여 튀김 옷을 입혀 하는 게 정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하고, 식용유가 많이 입힌 것은 아이를 생각해 꺼리는 편이다. 그래서 튀김 가루를 입히게 되었다.

나는 평소 요리를 할 때 재료를 남기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가루조차 남기는 걸 꺼려한다. 본래 진정한 고수는 재료하나도 남기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 요리 재료를 통에 넣고 그 위에 적절한 양의 가루를 붓는 방식이다.



모든 고구마에 가루를 묻힌 후 남은 통의 모습이다. 가루가 거의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 계산은 정확했고, 나는 알뜰한 살림을 하였다. 후후후..^.^;;



4.달걀 옷 입힌 후 후라이팬에 튀기기.
달걀 두개를 그릇에 풀었다. 이 때, 나는 특제 소스를 첨가하곤 한다. 특제소스라 하여 뭐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니다. 튀김을 좀 더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 약간의 우유나 두유를 첨가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딸 아이가 먹다 남긴 검은 콩 두유를 살짝 넣었다. 달걀 자체는 약간 색이 어두워지나 실제 튀기게 되면 전혀 차이가 없다.


5.완성 된 모습.
위에 잠깐 언급했듯 우리 집은 식용유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래서 후라이팬에는 최소한의 식용유만을 부었다. 또한 접시에 키친 타올을 올려 놓고 한참 동안 기름을 빼는 과정을 거쳤다. 아래 사진은 고구마 튀김의 완성본이다. 그리 대단한 장식을 하거나 뛰어나게 예쁜 건 아니지만 제법 그럴 싸한 모습이다. 이것은 아내와 딸아이가 먹게 된 양이다.


아래 사진은 고구마 끝 부분과 약간 오래 튀겨진 부분이다. 이건 내가 먹을 부분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양이 제대로 된 것과 거의 비슷해 보인다. 이런..ㅡ.ㅡ;;



요리를 마칠 때쯤 하여 아내가 돌아왔다. 나에게 뭘 하냐 묻는다. 그래서 "당신이 울적해하길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어 깜짝 이벤트를 했다" 하였다.

그런데 이런..아뿔싸..

아내는 내가 샤워하는 동안 어제 먹다 남긴 파전을 혼자 먹었다 한다. 사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전날은 우리 결혼 기념일이라 저녁에 조촐한 파티를 했었고, 며칠 집을 비운 사이 남은 음식이 상할 까봐 혼자 먹었던 것이다. 당연히 아침부터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니 고구마 튀김이 제대로 먹힐리 없다.

결국 내 고구마 튀김은 오히려 아내의 속을 느끼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뿐이었다.

'흑흑..이거 완전 낭패로다..ㅠ.ㅜ'


처가에 내려가는 길. 아내는 그래도 신랑이 해준 음식이 고맙다고 고구마 튀김을 꾸역꾸역 먹는다.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그 정성을 봐주고, 고맙다 하며 먹어주는 게 사랑스럽다.

하지만 결국
처가 도착 후 이 고구마 튀김은 조카들의 손에 넘어갔고, 조카들은 맛있다며 한두개 집어 먹더니 어느 순간 한통을 다 비워놓았다. 하하하, 이런..^.^;;

우린 삼일장을 잘 치뤄냈다. 예배를 드리며 마음을 잘 다스리며 할머니를 보내드렸고, 염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냈다. 상여를 들고 길을 걸으며 마지막 가는 길 까지 잘 배웅해드렸다. 수백명이 넘는 손님 역시 잘 대접하여 보내드렸다.


비록 깜짝 이벤트는 절반의 성공으로 그쳤지만 마지막 날에는 한결 평안해진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깜짝 이벤트의 성공보다 더 보람있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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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커져버린 아내의 모습

[LIFE]이 남자의 인생 2008. 11. 17. 15:05 Posted by 바람몰이
시어머니도 아닌 시할머니와 함께 사는 건 그리 쉬운 얘기가 아니다. 벌써 나이차이만 50년 이상이 난다. 시간에 따른 문화적 차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어느 것 하나 걸리지 않는 게 없다. 게다가 그 시할머니께서 평생 장사를 하시며 뛰어난 언변과 강한 고집을 가진 분이고, 신랑의 수입이 넉넉치 않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형편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시할머니를 
3년 동안 모시고 살았다. 기쁜 일도 많았지만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다. 때론 눈물을 훔치며 내게 따지는 아내를 보기도 해야했다. 한 없이 순수하고, 착하기만 하던 아내가 점점 성격이 날카로워지는 걸 보기도 해야했다.


물론 나나 할머니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특히, 나와 아내가 다투는 날이거나 내가 할머니께 이것저것 따지는 날에는 모두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겨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어려움이 좀 풀리고 나아질까 기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린 결국 분가를 결정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 생선장사로 날 길러주신 할머니시다. 할머니는 나를 막내 아들쯤으로 여기시고, 나 역시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다. 따라서 분가 결정은 나로써는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우리 부부마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또한 계속 나만의 주장을 하는 건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그 어린 나이에 그만하면 아내로써는  자기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아니 보통이상으로 훌륭한 아내였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아내가 이런 말을 꺼냈다. 오늘 할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그냥 분가하지 말고 계속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다 말씀드렸다 한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하였다. 사연인 즉슨 이러했다. 

지난 주 수요일 아내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었다. 향년 87세 이셨다. 그런데 삼일간 장례를 치르며 아내는 여러 생각과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자신은 며느리로써 여러 상황과 시할머니를 보았는 데, 자신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이젠 시할머니를 며느리로써 뿐 아니라 자식의 눈으로 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자식의 눈으로 시할머니를 보게 되니 그 동안 못 보던 것이 보이고, 어찌해야할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더라 한다. 그러니 할머니와 막혀 있던 대화의 통로가 조금씩 열림이 느껴지고, 또 막혀 있던 부분도 어떻게 열어야 할지도 알 것 같다 하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듣고 있어야만 했다. 혹시 '한 순간의 감정에 취해 한 얘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아내가 너무나도 진지하고, 그 말 속에 진실성이 잔뜩 스며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다시 이런 말을 해준 아내가 그저 고맙기만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냥 분가하도록 하자" 고 얘기하였다. 아내에게 일종의 "휴가"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할머니께는 내가 좀 더 수고하며 왔다 갔다 하면 되는 일이었다.

또한 가만 살펴보니 아내에 비해 내 준비가 너무도 되어 있지 않았다. 신학 공부를 하며 나름 수도를 해왔다 생각했지만 나는 아내에 비해 한참 부족한 존재였다. 그러고 보면 그냥 분가하자 하는 말은 아내를 핑계로 내 부족함을 감추려 하는 어색한 도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정말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인데..


이런 나를 보면 시어머니도 아닌 시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아내의 변화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50년이란 시간을 넘어서는..시할머니를 모시는 손주 며느리가 아닌 자식의 눈으로 보게 되는 참으로 놀라운 인식의 확장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 나는 장인, 장모님도 우리가 모시고 살자 했었다. 그러나 나는 내 할머니도 이해하고, 모시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과연 장인 장모님께는 그럴 수 있을것인지..적어도 아내가 내 할머니께 해드렸던 것만큼은 해야할텐데 그럴 수 있을런지..

아하..이거 걱정이 엄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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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어 옴을 느낌은

[LIFE]이 남자의 인생 2008. 4. 22. 01:51 Posted by 바람몰이

아내와 딸 아이가 떠나고 나면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일 또 고된 삶의 현장으로 뛰어나가야만 하는 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계속 그래왔다..


가족이 떠난 빈자리는


그들이 있을 때는 모르지만

 
어둠이 짙어 갈 수록 온 몸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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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드시다

[기독교]하늘바람몰이 2007. 11. 8. 10:12 Posted by 바람몰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세상의 중심에 세우심은 이 생명세상을 아끼시고, 인간을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 아주 잘 나타난 대목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을 땅에서 취해 만든다 할 때 “땅”이란 말 자체가 원래는 “먼지”라는 뜻입니다. 아담이란 말은 일반적인 “사람”을 뜻하는 것 이구요. 하와라는 말은 “생명의 어머니”라는 뜻이지요.    

여기서 잠깐 아는 목사님께 들은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남자를 먼저 만들고 그 후 여자를 만드셨잖아요. 그래서 이 구절은 남자가 여자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논리에 자주 동원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식의 그런 얘기 말이지요.


  그런데 그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남자는 한낱 먼지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여자는 그 속의 단단하면서도 탄력 있는 갈빗대를 통해 만들어진 걸 생각해보라는 거지요. 결국 여자는 하나님께서 남자를 만드시고 난 후 나오는 많은 오류와 문제를 다 보완하여 먼지가 아닌 갈빗대를 취해 만드신 업 그레이드 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남자보다는 여자가 한수 위이고, 남자는 여자의 말을 잘 듣고 순종해야 세상살이가 좀 더 현명해진다는 겁니다. 어떠십니까? 그럴 싸 하지 않나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 되어 행복을 누리는 걸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뒤에 가인과 아벨 얘기에서도 말씀드리겠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로 엮어주신 것을 인간의 힘으로 함부로 나눠서는 안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열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될 뿐 아니라 사람은 서로 하나 될 때 구원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가만히 스스로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내 남편에게 대하는 것, 내가 내 아내에게 대하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연애할 때와는 또 다른 내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서로에게 긴장이 풀려갈 수록 더욱 함부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나도 모르게 아내나 남편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남에게는 하지 않는 그런 행동들 말입니다. 그리고는 혼자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서로에게 대한 미안한 마음에 차마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기 힘이 듭니다. 그저 서로 눈빛만 보고 확인할 뿐이지요. 그래서 ‘에구..이 웬수야..’하면서도 “정” 때문에 살아가는 겁니다. 자식들도 있고 하니 말이지요. 또 한편으로는 사랑한다는 한 마디로 이 모든 걸 씻기도 하고 말이지요.


   다른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의식적인 내가 일종의 가면을 쓰고(페르조나) 이뤄 집니다. 그러나 배우자에게는 그러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솔직한 부분이 나오는 것이지요. 이것은 의식적인 내가 아닌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있는 내 모습으로써 나조차 몰랐던 솔직한 내 모습이 발현된 것이지요.


  또 한편 내가 모르는 세계와 사고방식을 아내와 남편에게서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보며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배움을 얻게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내 생각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구나..’ 이러면서 말이지요.


  결국 아내나 남편은 내 자신을 더 솔직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가장 가까운 거울이라 이런 이치인 거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더 알아가며 인격을 더욱 성숙히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쉬운 일상의 예만 보아도 우리는 사람이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세계는 반쪽짜리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함께 할 때 더욱 온전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태초부터 인간은 평등할 수밖에 없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WCC1)에서는 이미 오래 전 이런 내용을 신앙고백하며 문서화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벌써 몇 십년전 얘기이군요. 하지만 한국 교회는 아직도 이런 흐름을 잡지 못하고 있음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성도님께서도 WCC라는 얘기나 아래 각주에 달아 놓은 얘기는 아마 처음 보실 겁니다. 교회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내용이니 말이지요.


  아무튼 이것이 최신 경향이자 고백입니다. 물론 성경 속 세계를 보면 남녀관계가 완전히 평등했다 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운동 진영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특히, 바울 사도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지요. ‘여자는 잠잠하라’등의 내용이 주된 그 타켓이구요.


  예, 그분들 말씀이 맞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또한 남성 신학자나 목회자 위주의 신학계나 교계에서 경청해야할 부분도 많습니다. 저는 또 그래야만 우리가 더욱 온전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성경은 당시대에서는 보기 힘든 보다 평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을 끊임없이 지향하고 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무렴 최첨단 과학과 고도의 교육수준을 보이는 요즘도 온전한 남녀간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 데 몇 천년 몇 백년 전 세계에서 어찌 완전함을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이런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그 경향과 중심을 보고 이야기를 함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기왕에 말이 나온 김에 남녀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여러분께서 보기 쉽게 남녀평등이라 했습니다만 최근에는 이 말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녀평등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남자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네 습성이 배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온 말이 바로 “양성평등”입니다. 앞으로는 저도 양성평등이란 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근대 교육의 확장과 민주의식의 내면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성의 경제적 안정의 기회확보는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을 강화시켰습니다
2).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첨가하는 분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일정부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한 축을 차지하기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편입니다. 그만큼 보수적인 가르침이 지속되어 온 것도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이런 역사적 흐름에 따라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 많았습니다. 그걸 보고 우리는 “페미니즘”이라 하곤 합니다. 이 페미니즘도 다양한 흐름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다 다루기 힘든 측면이 있군요. 서점에 가면 페미니즘에 관한 좋은 책이 많습니다. 그러니 -저는 꼭 남성분들께서 보시기를 권합니다-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가서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네 사람을 만드신 첫 모습과 성경이 꾸준히 증언하는 남성과 여성-여성과 남성의 관계입니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한 양성평등의 개념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크리스챤은 더욱 그렇습니다. 특별히 가사와 육아 문제 등은 가장 큰 축을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남성들이 더욱 아내를 위해 열심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명절에도 그렇구요. 반대로 여성들 역시 남편의 작은 변화와 노력에 많은 칭찬과 격려를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2-30년간 살아오던 방식을 바꿔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최근에는 여성의 권익이 많이 신장된 나머지 남자들이 오히려 더 위축되어 있다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서로 싸움닭처럼 고개를 쳐들 필요도 없고 서로 내가 희생당하고 있다고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거지요. 이렇게 서로 돕고 협력해가며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그런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우리 주님께서는 이런 협력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가장 기뻐하실 겁니다. 꼭 뭘 완전히 잘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멘?



1)  이 모임은 교단과 카톨릭, 개신교 등을 총 망라한 초단위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모이는 곳이지요. 그래서 세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신앙고백과 선언을 하며 책임있는 사회의 일원이자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는 곳입니다.


2) 과거 남성에게만 국한되어왔던 기초 교육 및 고급 교육이 여성에게 확대되며 여성계 내부에서 스스로의 권리와 위치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의 선거권 확보 등의 기본적 권리찾기 운동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확산과 함께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산업화와 함께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향상됨에 따라 여성이 더 이상 남성에게 종속될 필요가 없어 졌습니다. 이른바 ‘화려한 싱글“의 등장입니다. 여기에 성과학의 발달은 여성이 임신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였지요. (이것의 좋고 나쁨은 둘째로 하고요) 이런 역사적 흐름은 최근의 양성평등 개념과 운동으로까지 확산되며 상당히 보수적인 우리 나라에서도 여성 법무부 장관이나 총리가 나오는 지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니다. 물론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 얘기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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