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연대'가 있어. 일명 '성노련'이라 하지. 외국에도 이와 같은 성노동자 연맹이 있고, 어떤 곳은 '노조'를 만들기도 했지. '성노동'이란 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성노동을 사회의 광범위한 측면에서 인정한다면 재론의 여지도 분명히 있어.
뭐 어쨌든지 좋아. 그런데말야 '성노동'에 관한 논의를 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건을 함께 고민하면서 진행할 필요가 있어.
첫째,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문화는 시정되고 있는가? 혹은 시정되었는가? 성차별적 문화로 인해 정상적인 노동으로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없는 불합리한 현실 때문에 '성노동'에 유입된 현실을 외면한채 '성노동'을 인정하면 자칫 문제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둘째, '성노동'에 종사했다 하여 그 여성이 사회적 차별 혹은 비난을 받지 않을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는가? 이른바 '합법화'라는 것을 채택한-합법화란 용어는 틀린 용어, '규제주의'가 옳은 표현-국가의 성매매 종사여성도 사회적 비난 때문에 노조가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무작정 '성노동'을 인정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임을 알 수 있어.
셋째, 성매매의 현장에서 인권이 충분히 보장될 것인가? 이것 역시 외국사례를 봐야 하는데, 성매매란 것이 1:1 방식의 은밀한 거래로 이뤄지다보니 여성의 인권과 건강 때문에 '규제주의'를 선택한 나라에서도 실제 별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어.
넷째, 성노동을 인정했을 때 이득을 보는 집단은 누구인가? 위 세 가지를 양보해도 만약 성노동 인정으로 종사 여성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면, 삶의 질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면 한 발 물러설 수 있지. 그러나 성노동을 인정할 때 실제로 이익을 보는 집단은 성매매 종사자나 일반 국민이 아닌 '알선자' 즉, 업주들임을 기억해야해. 현재 우리나라 성매매 산업은 약 20-25조 규모(4대강 사업과 맞먹음)인데, 이 모든 이익이 다 이 집단으로 들어가고 있지.
결국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성노동'을 인정하기 이전에 반드시 몇 가지 환경조성을 해야 한다는 것, 이를 인정한 후에 정책의 이익이 성매매 종사자의 삶의 질 향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데 외국사례를 볼 때 이를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것, 끝으로 우리가 성매매를 '인권' 더 나아가 '신앙'이란 측면에서 묵인 혹은 용인하고 나아가야 하는가의 문제, 즉, 여성이 성매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묵인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봐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어.
말하자면, 이런 주장은 '자유주의 여성주의'에 근거한 주장으로 성매매를 개인의 선택 혹은 기호 등의 문제로 국한해 보는 시각이라 그 외의 문제는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이로 인해 이익을 보는 집단은 따로 있다는 것이지. 이 구조를 바꿔내지 못한채 '성노동 인정'만 해버리면 문제가 자칫 더 커질 위험이 있는거지.
지금 규제주의를 선도적으로 채택했던 나라 중에는 성폭력이 오히려 증가해서 고민을 하거나 이 여성들이 성매매 산업에서 빠져 나와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를 수립하는데, 모든 정책의 방향을 모아가고 있지. 우리처럼 이 여성들의 삶의 질 문제는 제쳐둔채 '남성중심적 관점'으로 인정하냐 마냐의 얘기를 하는 곳은 없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어.
끝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말은 잘 걸러서 읽어. 부유함을 위해 뛰어든 여성도 있지. 하지만 이는 전체적인 틀에서 볼 때 매우 미미한 수준이고, 이들 역시 한 번 유입된 이상 '인간' 대접을 받으면서 사는게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란 점을 알아야해. 이건 직접 이들을 만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으로 '현장'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로 받아들이라구.
한신에서 신학공부를 한다는 건 그런거야. 우리는 '책'으로만 신학을 하는게 아니지. 신앙과 신학 그리고 현장을 함께 텍스트로 삶는거야. 1차적으로는 정보의 질을 분리해내고, 2차적으로는 이를 철학적으로 비판적 숙고 및 추상을 해내고, 3차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성서적 관점에서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재해석하여 살아있는 말씀으로 살려내는 훈련을 하며 발로 뛰어 나가는거야.
아무튼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두는 동생이 있어 좋구만. 열심히 공부하라고~다음에는 신분도 좀 밝히고! 나도 아직 학교에 있으니까~
방명록
비밀댓글입니다
2013/04/22 16:35비밀댓글입니다
2013/04/01 23:35아, 누군가 했네..^^
2013/04/04 07:25너 알고 있다~
지금 수유리로 올라갔나 보구나. 앞으로도 꾸준히 공부하면서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도록 해~
비밀댓글입니다
2013/04/01 23:1107학번이면 양정이랑 동기인가? 아무튼 반갑구만!
2013/03/30 16:55'성노동자연대'가 있어. 일명 '성노련'이라 하지. 외국에도 이와 같은 성노동자 연맹이 있고, 어떤 곳은 '노조'를 만들기도 했지. '성노동'이란 것은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그럼에도 성노동을 사회의 광범위한 측면에서 인정한다면 재론의 여지도 분명히 있어.
뭐 어쨌든지 좋아. 그런데말야 '성노동'에 관한 논의를 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건을 함께 고민하면서 진행할 필요가 있어.
첫째,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문화는 시정되고 있는가? 혹은 시정되었는가? 성차별적 문화로 인해 정상적인 노동으로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없는 불합리한 현실 때문에 '성노동'에 유입된 현실을 외면한채 '성노동'을 인정하면 자칫 문제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둘째, '성노동'에 종사했다 하여 그 여성이 사회적 차별 혹은 비난을 받지 않을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는가? 이른바 '합법화'라는 것을 채택한-합법화란 용어는 틀린 용어, '규제주의'가 옳은 표현-국가의 성매매 종사여성도 사회적 비난 때문에 노조가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무작정 '성노동'을 인정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임을 알 수 있어.
셋째, 성매매의 현장에서 인권이 충분히 보장될 것인가? 이것 역시 외국사례를 봐야 하는데, 성매매란 것이 1:1 방식의 은밀한 거래로 이뤄지다보니 여성의 인권과 건강 때문에 '규제주의'를 선택한 나라에서도 실제 별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어.
넷째, 성노동을 인정했을 때 이득을 보는 집단은 누구인가? 위 세 가지를 양보해도 만약 성노동 인정으로 종사 여성들이 이익을 볼 수 있다면, 삶의 질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면 한 발 물러설 수 있지. 그러나 성노동을 인정할 때 실제로 이익을 보는 집단은 성매매 종사자나 일반 국민이 아닌 '알선자' 즉, 업주들임을 기억해야해. 현재 우리나라 성매매 산업은 약 20-25조 규모(4대강 사업과 맞먹음)인데, 이 모든 이익이 다 이 집단으로 들어가고 있지.
결국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면, '성노동'을 인정하기 이전에 반드시 몇 가지 환경조성을 해야 한다는 것, 이를 인정한 후에 정책의 이익이 성매매 종사자의 삶의 질 향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데 외국사례를 볼 때 이를 성공한 나라가 없다는 것, 끝으로 우리가 성매매를 '인권' 더 나아가 '신앙'이란 측면에서 묵인 혹은 용인하고 나아가야 하는가의 문제, 즉, 여성이 성매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묵인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봐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어.
말하자면, 이런 주장은 '자유주의 여성주의'에 근거한 주장으로 성매매를 개인의 선택 혹은 기호 등의 문제로 국한해 보는 시각이라 그 외의 문제는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이로 인해 이익을 보는 집단은 따로 있다는 것이지. 이 구조를 바꿔내지 못한채 '성노동 인정'만 해버리면 문제가 자칫 더 커질 위험이 있는거지.
지금 규제주의를 선도적으로 채택했던 나라 중에는 성폭력이 오히려 증가해서 고민을 하거나 이 여성들이 성매매 산업에서 빠져 나와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를 수립하는데, 모든 정책의 방향을 모아가고 있지. 우리처럼 이 여성들의 삶의 질 문제는 제쳐둔채 '남성중심적 관점'으로 인정하냐 마냐의 얘기를 하는 곳은 없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어.
끝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말은 잘 걸러서 읽어. 부유함을 위해 뛰어든 여성도 있지. 하지만 이는 전체적인 틀에서 볼 때 매우 미미한 수준이고, 이들 역시 한 번 유입된 이상 '인간' 대접을 받으면서 사는게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란 점을 알아야해. 이건 직접 이들을 만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으로 '현장'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로 받아들이라구.
한신에서 신학공부를 한다는 건 그런거야. 우리는 '책'으로만 신학을 하는게 아니지. 신앙과 신학 그리고 현장을 함께 텍스트로 삶는거야. 1차적으로는 정보의 질을 분리해내고, 2차적으로는 이를 철학적으로 비판적 숙고 및 추상을 해내고, 3차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성서적 관점에서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재해석하여 살아있는 말씀으로 살려내는 훈련을 하며 발로 뛰어 나가는거야.
아무튼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두는 동생이 있어 좋구만. 열심히 공부하라고~다음에는 신분도 좀 밝히고! 나도 아직 학교에 있으니까~
비밀댓글입니다
2013/02/19 17:24비밀댓글입니다
2013/01/07 19:00비밀댓글입니다
2012/11/04 15:04